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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3, 곰소

선운사를 나온 우리(나와 태하)는 김성수 생가를 들려 줄포로 갔다.

줄포(茁浦). 띠풀이 자라는 포구란 뜻이다. 띠풀이 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우리집에 띠풀로 만든 자리가 있었는데, 자손을 번창하라는 기원이 담긴 것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어찌됐든 풀을 뜻하는 초두 초()자가 들어가는 풀 이름은 주로 옛 사람들이 좋아했던 풀이었던 것 같다. 하여간 줄포 역시 이름이 예쁘다. 우리말로 굳이 바꾼다면 '띠개' 쯤 될려나...

 

곰소염전(파란 블로그)/ 지금도 여전히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

 

줄포는 번성과 퇴락을 함께 경험한 소도시다. 일제 식민지 초기에 부안과 정읍, 고창의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쌀을 대량으로 일본으로 반출하던 유수의 수출항이었다. 그런 영향으로 번창하자, 포구가 개흙이 쌓이면서 큰 배를 댈 수 없고, 일제가 곰소항을 개발하면서부터 퇴락하기 시작한 곳이다.

 

줄포는 아주 옛날에 여자친구랑 한번 들렸던 곳이다.

당시 줄포는 마치 60-70년대 도시 풍경을 재현해놓은 영화세트처럼 시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형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때 이곳에서 밥을 먹었던 것 같다. 그때 기억을 되살리고, 그리고 퇴락한 소도읍에서 옛 향취가 남은 밥집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곰소 어판장/ 가장(?) 한적한 곳이다.

 

그러나 줄포의 식당들은 거의 문을 닫은 상태였다. 유동인구가 없는 소읍에서 더군다나 일요일까지 찾아올 손님이 없었나보다.

 

줄포는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지만, 시장거리는 거의 변화가 없이 70년대를 재현해놓은 영화세트같다. 버스 정거장도 그때 그 자리에 있고...

 

우리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줄포를 빙빙 돌다, 끝내 먹을 만한 식당을 찾지 못하고 곰소로 향했다.

 

곰소해변/ 물고기를 말리고 있다.

 

곰소를 찾은 이유는 당초에는 염전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의외로 지체되고, 염전 근처에는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곧바로 곰소 시내로 향했다.

 

곰소 시내라고 하니 적응하기 쉽지 않다. 옛날에 이곳을 여행하였을 땐 아주 한적한 시골 어항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거의 큰 도회지 못지 않게 아주 사람이 많이 몰리는 유명한 포구로 변해있었다. 특히 각종 젓갈을 사러 관광버스가 줄을 이을 정도다.

 

곰소 포구/ 예전과 다른 곳에 항구를 개발해놓았다.

 

우리는 못먹은 점심을 먹을 겸 곰소 시장으로 갔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이곳의 주메뉴인 것 같은 '젓갈정식'을 먹기로 했다.

가격은 8,000원. 그러나 내용물은 실망스럽다. 그러나 어쩌랴. 관광지에 오면 외지인은 모두 촌놈인 걸. 수업료 내는 셈치고, 공기밥을 하나 더 시켜 내온 젓갈을 실컷 먹었다.

 

옛날 한적했던 포구는 어떨까? 발걸음을 옮기니 번성한 시장이 되어 있다.

 

<다음은 내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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