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둘을 검거하라

꼬뮨 현장에서 2009/10/29 03:54

오늘도 만신창이가 되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보니 진이 다 빠집니다.

긴 하루.

자료를 모으고, 기록을 남기고, 즉시 알려야 하는 것들을 모아 행동하는 라디오 방송을 겨우겨우 만들고 났더니 시간은 어느새 새벽 4시가 되어 가네요.

아직도 레아입니다.

지쳐서 집에 갈 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침통하고 분하고 억울해서 미칠 것만 같습니다.

판결문이랍시고 철거민들에게 없는 죄까지 모조리 뒤집어 씌우는 판사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정말 뒷골이 확 땡기면서 고혈압으로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또 심장에 통증이 느껴집니다.

 

오늘 살인재판 규탄대회를 하고,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용산범대위 대표자들이 남일당 분향소 앞에 조그만 천막을 치고자 했습니다.

무슨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천막을 하나 치려고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폭력경찰 3백명이 달려들어서 사람들을 두들겨패고, 그 천막을 탈취해 가버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성연 님은 경찰 방패에 맞아 입술이 찢기고 피가 흘렀습니다.

유영숙 님은 넘어진 채로 경찰에 의해 땅에 질질 끌려 갔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구타 당하고, 연행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카메라로 찍고 있는데, 앞에 있던 어느 전경 지휘관이 나와 둥글이를 지목하면서 낮은 소리로 '저 둘을 검거하라'고 지시합니다.

그 명령을 들은 전경들이 나와 둥글이 앞으로 다가옵니다.

지휘관은 귓속말로 속닥거립니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몰래 방패 안으로 끌고 들어오라고 지시합니다.

전경들이 알았다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살금살금 대열 앞으로 치고 들어옵니다.

방심하고 있다가 연행될 것 같아서 저는 미리 빠졌습니다.

다행히 옆에 있던 둥글이도 그 상황을 눈치 채고 있었나봅니다.

둥글이 역시 연행을 피했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지휘관의 은밀한 명령을 자기도 들었다고 합니다.

 

남일당에서 한솥밥을 먹던 동지이자 식구인 철거민은 오늘 법정 구속되어 감옥으로 끌려가고, 우리는 또 경찰폭력에 시달리며 연행되거나 위협을 당합니다.

하루종일 지치도록 싸웠는데, 밤 11시가 지나 경찰이 모두 물러가고 난 뒤 난장판이 된 남일당 주변을 그냥 둘 수 없어 철거민들이 다시 대청소를 합니다.

지친 몸,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온힘을 다해 물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더러운 것들을 씻어냅니다.

 

저 깊은 곳 불구덩이에 사는 악마가 내 몸을 붙잡고 끌고 내려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용산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싸움은 가진자들의 개, 재판부의 살인재판이 내려진 오늘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지금까지 내딛어온 걸음보다 더 강하게 걸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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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9 03:54 2009/10/29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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