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출 수도 없고 물러나지도 않는다
꼬뮨 현장에서 2009/10/31 01:42오늘은 또 도봉경찰서엘 다녀왔다.
용산참사 해결을 위해 투쟁하던 7명이 또다시 청와대 앞에서 연행되어 있다기에 지지방문 겸, 항의농성 겸, 행동하는 라디오 녹음 겸 등등 해서 레아에서 출발한 것이 오후 4시 무렵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용산에서 서울 북쪽 끝자락에 있는 도봉서까지 가는데 약 1시간이 걸렸다.
몸이 좋은 상태에서 자전거 복장 등을 갖춰입고 달렸다면 1시간 이내에 당도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투쟁에 올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동대문을 지나 창신동 그리고 동묘앞 신설동으로 가는 길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전화가 울리길레 한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은 채 동묘앞 도로에 길게 어지럽게 늘어선 버스며 택시며 오토바이 사이를 곡예비행을 했다.
발신자를 보니 송경동이다.
자전거를 타다가는 너무나 위험하기에 다른 사람이었으면 안받았을 전화.
하지만 그의 이름이 적힌 전화기 액정이 너무도 반가웠다.
이러다 사고라도 나면 나도 좀 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간다.
전화기에 대고 무조건 예, 예 했다.
그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다.
요즘은 매일 경찰서에 다니는 것 같다.
전혀 내 취향이 아닌 자들과 매일 대면해야 하는 것이 끔찍한데도, 도대체 난 왜 이따위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왜 내가 그따위 무례하고 상스런 무뢰배들과 말을 섞어야 하는가.
내 몸은 축나고 있는데, 왜 계속 그래야 하는가.
그 답을 난 안다.
질리도록 잘 알고 있다.
나는 용산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용산에서 새로운 시대의 봄을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밑바닥에서는 줄곧 존재해왔던, 겉으론 OECD 가입이니 G20 정상회담 개최니 민주화사회니 세계 10위권 진입이니 호들갑을 떨어도 그 밑바닥에서 계속 뿌리깊게 존재해왔던 이 사회의 구조적 억압이 2009년 용산학살을 통해 그 추악한 단면을 한웅큼 드러내보였기 때문이다.
용산을 통해,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체제의 폭력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젠 저들이 감출 수도 없을 것이고, 나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