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처벌을 원한다
꼬뮨 현장에서 2009/10/06 00:01
'용산사진관'에서 찾아온 사진이야.
사람들이 잘 익은 붉은 사과를 들고 용산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데, 오두희 여사가 '난 사과가 아니라 처벌을 원한다'고 하길레, 얼른 벌을 치는 그림을 그리고 무아와 같이 찍은 사진이 이거야.
10월 1일에는 모여서 송편을 빚었어.
나는 레아에 와서 공연 준비를 한참 하다가 사람들이 송편을 빚고 있으니 같이 와서 하자는 말을 듣고, 곧 남일당으로 갔어.
그런데 딱 보니까, 부엌에 앉아 반죽을 하고, 송편을 빚고, 음식을 나르고, 준비하고, 찌고 하는 사람들 95% 이상이 여자들인거야.
아찔했어, 정말.
너무너무나 미안하고, 그렇더라.
우리가 아무리 가부장제 욕을 하고, 나부터 바꾸자고 운동을 하는데, 용산에도 여전히 부엌일은 모조리 여성들에게 떠맡겨져 있구나 그런 고민이 들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는데,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던거야.
아주 어렸을 적에 송편을 빚어본 것 말고는, 송편을 빚어본 적이 없어서 처음엔 좀 망설였어. 혹시 망치거나 하지 않을까 해서.
그래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자리에 앉아서 일단 빚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해서 좀 배웠어.
한번 배우고 났더니 금방 할 수 있겠더라.
나는 계속 만두 형태로 송편을 빚는데, 다른 사람들은 정말 동그란 달 모양으로 예쁘게 빚더군.
난 동그랗게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계속 터지고 잘 안 되고 해서 몇 번을 노력하다가 그냥 내가 편한대로 하자고 해서 계속 만두 모양으로 만들었어.
유가족 김영덕 님도 만두 모양으로 만들고 계시더라.
그러면서 전라도에서는 만두 모양으로 송편을 빚는데, 이런 모양으로 빚는 것이 동그란 보름달 모양으로 빚는 것보다 나중에 찌고 났을 때 더 쫄깃하고 좋다면서 '만두모양 송편 예찬론'을 폈어.
그말에 나도 위로를 받아서 계속 만두모양으로 만들었어.
그러다가 사람들이 밥을 먹고 설거지해야 할 그릇이 쌓여서 내가 가서 설거지를 하는데, 처음에 남일당에서 내가 설거지를 하려고 하면 다들 나서서 말렸는데, 이제는 별로 말리는 사람이 없다.
몇 번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보여드렸더니' 이젠 내가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서 좋아.
어떤 사람들은 남자가 설거리를 하면서 제대로 깨끗하게 못한다면서 못하게 하는 사람도 있는데, 몇 번만 하는 모습을 보이면 이내 그 모습에 익숙해지기 마련이거든.
설거지가 끝나고 다시 가서 송편을 빚는데, 여전히 송편 빚는 사람이 총 20명이라면 그중 소위 남자는 한 명 또는 두 명인거야.
용산 식구들 다 모여서 같이 송편을 빚자고 시작한건데, 결국 그 몫은 또 여성들에게만 부과되는 것 같아서 찜찜했어.
그래, 난 여전히 하루아침에 완전히 뒤바뀐 세상을 꿈꾸고 있어.
완전히 새로운 질서와 규칙이 아무런 거부감없이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현실에서는 그게 너무 아득하기만 한거야.
나역시 순간순간 나의 기득권에 안주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보게 된단다.
레아에서 생활한지 벌써 반 년이 되었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투쟁의 진지이자 그 자체로 해방의 공간인 이곳을 꾸려나가기 위해서 나 역시 많은 노력을 했던 것 같아.
10월 1일엔 이곳에서 즐거운 공연도 열렸어.
그날의 공연이 뉴시스라는 통신사의 기사에 보도가 되었는데, 그 기사를 쓴 기자가 내게 와서 물어보는 거야.
이 공연 기획했느냐. 그렇다.
사소한 것들을 물어보더니, 기사에 인용하게 한 마디 해달라고 하더라.
좀 괜찮은 말을 해달라고 하는데,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짜내고 고민을 해도 '용산참사 해결하라' 여덟글자밖에 떠오르지 않는거야.
공연을 기획하게 된 이유에 대해 한 마디, 공연을 하면서 느꼈던 한 마디, 공연에 온 사람들에게 한 마디, 뭐라고 물어봐도 도무지 '용산참사 해결하라' 이말밖에는 아무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 거야.
그래서 나도 무척 답답했는데, 아마 그 기자도 꽤 답답했을거야.
쓴 기사를 보니까 내가 한 말로 인용이 되어 있던 부분은 그냥 추석에도 여기 있겠다고 답한 것이거든ㅎㅎ
상상력이 메말라버린 것일까.
한편으론 처량하고 서글픈 생각까지 들었어.
기름기까지 모두 쫙 빠지고 앙상한 뼈만 남은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사막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고, 내 정신이 너무나 황폐해져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그런 메마름에도 난 용산에서 항상 위로를 받으니까 괜찮아.
길바닥 콘서트가 끝나고, 용산국민법정 관련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그걸 준비하는 활동가 민선이 시간이 새벽에 겨우 난다고 해서 또 새벽에 인터뷰를 하느라, 공연을 위해 몰려온 많은 오래된 친구들과 제대로 뒷풀이를 하지 못해서 아쉬웠어.
이래저래 편집도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다 보니까 어느새 10월 2일 아침이 되었더라.
라디오를 편집해서 올리고, 돌리고 그러는데, 만장이 찢겨 있는 것을 보고는 분명히 내가 밤새 레아 1층에 앉아 있을 동안에 일어난 일일텐데 왜 난 그런 만행이 저질러지는 동안 모르고 있었을까 자책을 했어.
그것을 미리 봤다면, 또는 누가 그랬는지 보기라도 했다면, 카메라로 찍기라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서 그 일 이후로 밤이 되면 레아를 뜨지 못하고 있어.
내가 나가버리고 이곳을 지키는 눈이 없어지면 또 놈들이 몰려와서 레아에 어떤 망발을 해놓을지 몰라서 실은 좀 불안하거든.
그래서 거의 매일 레아에 앉아서 라디오 편집을 하고, 글을 쓰고, 자료를 읽고, 구상을 하고, 인터넷 라디오를 위한 프로그래밍까지 하면서도 완전히 일에만 집중하지 않고 가끔씩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어.
그러다가 카메라를 들고 바깥을 나가서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별일 없겠지 하면서도 10월 2일 새벽에도 그러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격이기 때문에 주의를 하고 있는거야.
이렇게 지내다가 가끔 견디기 힘들 때가 있어.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것들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아까는 잠시 분향소에 들러서 방명록을 보게 됐어.
사람들이 다양한 필체로 써놓은 글들을 우두커니 서서 무관심한 표정으로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는데, 우리 여기 용산에 있으면서 그런 말들 참 많이 들었잖아, 용기를 내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 힘내라, 진실이 승리한다,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이런 위로의 말들 말야.
그런데 순간 정말 그런 말들에서 위로를 받게 됐어.
누군가 따뜻하게 내 맘을 어루만져주는 것 같으면서,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가 왜 별 것 아닌 것 갖고 고민하고 있나, 얼른 힘내고 다시 열심히 해야지, 이런 생각이 퍼뜩 드는거야.
그래서 다시 돌아와서 일을 마저 하는 중이다.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는 빛 바랜 사진 한 장으로나 남을 이야기이지만, 용산4구역이 철거된다고 해서 내 기억까지 철거되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모기가 들끓는 이곳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