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 일기꼬뮨 현장에서 2006/05/22 00:59한참동안을 나사가 두어개 빠진 듯한 기분으로 지냈다.
머리속으로는 이것을 해야지 생각했다가 몇 초가 지나면 나는 그것을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가는 그것은 하지 않고 전혀 다른 일을 하면서 허둥대고 있다.
그러다보니 몸은 허둥지둥 움직이는데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아직도 바퀴살이 하나 부러진 자전거 뒷바퀴는 고치지 못하고 있다.
앰프와 연결하는 부분이 망가진 기타는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다섯 개는 되는데 하나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전화도 걸어야 하고, 노래도 만들어야 하고, 복잡한 일정도 챙겨야 하지만 무엇보다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휴식이 필요한 것일까.
자전거를 타고 대추리에 내려갔었다.
내려가는 길에 자전거 뒷바퀴 살이 하나가 부러졌다.
그걸 고쳐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냥 타고 갔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자전거 파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바퀴살 하나쯤은 부러져도 당장 큰 이상은 생기지 않는단다.
그래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별 사고 없이, 하지만 마음만은 가까스로 대추리에 도착했는데, 마음이 불안불안해서 가만 있지를 못하겠는거다.
어서 저 바퀴를 수리해야 마음이 좀 진정이 될 것 같았다.
디온이 보란듯이 말했듯 어쩌면 나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치는 6번 유형일지도 모른다.
대추리 내려가는 길에 송탄에 들러 유니티를 만났다.
요즘 내가 작업한 노래들을 모두 들려주었다.
컴퓨터를 이용해 피아노며, 기타며, 드럼이며, 관악기며, 현악기 등 잡다한 악기 소리 흉내를 낸 것인데, 유니티는 컴퓨터로 흉내낸 그 소리들이 구리다면서 그냥 다 집어치우라고 했다.
거짓말을 절대 하지 못하는, 상처가 될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내뱉는 친구.
그는 내게 그렇게 인공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해 소리를 만들어내려면 테크노를 하든가 아니면 그냥 통기타에 노래만 부르는 것이 더 듣기 좋다고 일침을 가했다.
순간 몇 달간 밤을 새며 공들여온 내 음반 작업이 모조리 무너져버리는 것 같았다.
분명히 사람이 진짜 악기를 연주해 낸 소리와 나 같은 초보자가 컴퓨터로 뽑아낸 악기 소리는 차이가 많다.
그렇다고 돈을 주고 세션을 쓸 수도 없고...
유니티에게 돈없는 뮤지션이, 가진 것이라고는 통기타와 컴퓨터뿐인, 재능은 없고 열정만 넘치는 음악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했더니, 악기를 배우란다.
피아노도 배우고, 드럼도 배우란다.
그래서 직접 연주를 하란다.
제길, 말이 쉽지.
그런데 그렇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처구니없게도 들고 있다.
드럼을 배우고, 피아노를 배워서 직접 연주하고 녹음을 해서 앨범을 내려면 앞으로 십년은 걸릴텐데...
날 몇 년간 알아온, 보다 정확히는 내가 부르고 다니는 음악을 몇 년간 들어온 누군가 그랬다.
'조약골 너도 참 노래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너무 잡다하게 이것저것 해온 것도 문제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난 뭐든 대충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무엇을 하든 대충해온 것 같다.
노래도 대충, 연주도 대충.
그러면서 '나처럼 노래를 못하는 사람도 노래를 할 수 있다고, 음악이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지 않아도 자연스레 삶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음악이라고, 나처럼 너도 고통과 즐거움을 노래해보라고, 난 그런 정신으로 노래를 한다'고 말하고 다닌다.
핑계는 좋다.
새벽에 도착한 나를 위해 마리아가 따뜻한 이불과 베게를 챙겨주었다.
고맙다.
나도 대추리에 살게 되면 머리를 빡빡 깎게 될 것 같다.
기를 이유가 없다.
마리아의 눈에서 그것을 읽어낼 수 있다.
마리아가 좋다.
모기들이 출몰한다.
이놈들은 일부러 소리를 내며 날아다녀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고는 지쳐 쓰러진 틈을 타 온몸을 공격한다.
대추리에서 자려는데 코도 물리고, 이마도 물리고, 발도 물리고 그래서 아예 잠을 자지 못했다.
모기가 없는 곳이 너무나 그리웠다.
새벽에 황새울로 나갔다.
동이 터오는데, 군인들과 경찰들이 꼼지락거리기 시작한다.
울화통이 먼저 치밀어 오른다.
대추리 마을을 쭉 한 바퀴 돌아본다.
얼마 전만 해도 내가 걷거나 자전거를 타던 곳이 모두 철조망과 수로로 완전히 차단되어버렸다.
저놈들이 마을을 감옥으로 만들어버렸다.
끔찍하다.
이를 악물고 끈질기게 싸워야겠다고 다시 결심한다.
저놈들 다 몰아내기 전까지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
희망을 잃지 말자. tag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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