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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아'가 누구냐면 '홍시아가'이다. 파란꼬리의 엄니께서 어느날 탐스럽게 열린 홍시를 따다가 파란꼬리에게 주셨단다. 물론 꿈 이야기이다. 파란꼬리나 말걸기나 아가가 생길 때 꿈을 꾸지 않았다. 그래서 파란꼬리 엄니께서 태몽을 꾸신 걸로 여기기로 하였다. 결국 파란꼬리 뱃속에서 잘 자라고 있는 아가는 홍시 꿈과 깊은 인연이 있으니, 태명이 '홍시아가'를 줄여 '홍아'가 되었다.
파란꼬리와 말걸기는 홍아를 만나기 전 무거운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내고 있었다. 그 스트레스의 원인 중 하나는 주위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의 주위 사람들은 무식한 데다가 그 무식을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밟아버리는 데에 가차없이 이용했다. 무식의 신발을 신고 몰상식한 발차기를 날리는 인간들은 사실, 말걸기 주변의 '멀쩡한 인간들'이었다. 진보적이거나, 자유로운 이념을 지녔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들 말이다.
이들의 무식과 깊은 관련이 있는 통계가 하나 있다. 대한민국 불임부부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가임 연령 부부의 일곱 쌍 중 한 쌍, 그러니까 14%가 불임부부이다. 주변의 노령 부부를 제외하고, 알고 지내는 7쌍의 부부 중 하나는 불임이다. 엄청난 수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잠시 시간을 내어 세어 보길 희망한다.
1년 간 남녀가 피임 없이 성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이 되지 않으면 불임을 의심해야 한다. 1년 내에 자연임신이 될 확율은 85%인데, 아이를 갖겠다고 계획한 후 1년이 지나도록 임신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불임부부일 확률이 아주 높다.
불임의 원인은 제각각이고 그 원인에 따라서 임신을 시도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약물투여, 호르몬 주사, 각종 수술, 인공수정, 시험관 아기 등 별게 다 있다. 운이 좋다면 호르몬 몇 방으로 임신에 성공할 수 있다. 운이 좀 있는 편이라도 수술까지는 받아야 할 것이다. 만약 아주 약간의 운만 있다면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해야 할 것이고 돈도 '억' 깨져야 할 것이다. 운이 없다면 아기는 포기해야 한다. 이게 불임부부의 운명이다.
파란꼬리와 말걸기는, 시간과 돈을 들인 것 치고는 운이 좀 있는 편에 속하지만 지금의 담당 산부인과 의사는 '홍아'를 두고 '기적'이라 한다.
결혼했다고 해서 아기를 꼭 가져야 할 이유는 없다. 반면에 아기를 꼭 갖고 싶어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이든 부부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몰상식한 무식이들은 지난 수 년 간 말걸기에게 "아기는?"을 외쳐댔다.
불임부부이건 아니건 간에 남의 가족사에 간섭하는 꼬라지 자체가 짜증나는 일이었다. 아기가 이미 있어서 안부를 묻는 것도 아니고, 아기를 가질 거냐 안 가질 거냐를 따져 묻는 게 '인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었다. 그게 왜 인사가 될 수 있을까? 그저 인사로 그치면 그나마 화는 덜 치민다. "아기는?" 다음에는 "애는 있어야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나아." 따위는 뭐냐. 그딴 질문 좀 하지 말라고 하니 이런 대답도 돌아온다. "아기 낳을라고 결혼한 거 아냐? 아기 생각 없으면 결혼은 왜 해?"
더우기, 주변의 일곱 쌍 중 하나가 불임부부인데 눈치도 없이 "아기는?"을 나불대는 인간들 꼬라지 하고는. 무식해서 무례하다 해야 하나. 14%면 대충 퉁쳐서 장애인 비율이고 동성애자 비율이다. 진보 따위나 인간에 대한 예의를 외치는 인간들이 아무데서나 주변사람을 대할 때 당연히 비장애인이거나 헤테로일 것이라 여긴다면 혼날 텐데 왜 부부라면 임신은 죄다 정상적으로 할 것이라 여기냔 말이다.
아기를 낳아 기르고 싶은데 아기가 생기지 않으니 1년은 조마조마했고 그 후 1년은 피가 말랐다. 지난 해부터 파란꼬리와 말걸기는 병원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황사기의 파트너였던 미즈메디까지 가야 하나 고민도 했었다. 노력과 비용의 마지노선이 거의 정해졌고 그 마지노선에 미치면 입양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인데 "아기는?"! 아가리를 찢어버리고 싶지 않을까?
그이들 중에 가족계획 자체가 궁금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불임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로 알지 못하였다. 그러니 대답하기 힘든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짜증만 나지 않을 뿐.
사람들은 참 생각이 없다. 말걸기는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장애인이 겪는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실은 이해할 생각 없다. 또한 성소수자들의 감성도 관심 없다. 다만, 비장애인이나 헤테로가 '정상' 또는 '기준', '보편'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렇게 혹은 여기지 않으려는 태도를 지향한다. 마찬가지로 불임이 아닌 사람들에게 불임부부의 피마름을 이해하라고 할 생각은 당시에도 없었고 여전히 없다. 하지만 임신을 당연한 것으로 취급하는 태도에 마구 욕을 퍼붓고 싶었다. 썅! 무식하고 무례한 것들이 지랄하넷!
이런 빡 도는 상황에서 스트레스에 취약한 말걸기가 성기능을 제대로 작동시켰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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