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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는?"

 

언제부터였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귀에 굳은살 박히도록 들은 질문이 있다. 아마도 2003년도부터였겠지, 그 해에 파란꼬리랑 '공식적'인 결혼을 선포했으니까.

 

이런 질문.

 

"애는?"

 

처음부터 이 질문은 기분이 나빴다.

4년도 더 된 이 물음들의 대답은 속과 겉이 달랐다.

 

속으로는,

 

"남이사."

 

겉으로는,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따위.

 

 

남이 애를 낳건 말건 상관할 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애는?"이라는 질문을 한다. 말걸기는 이런 질문이 한국의 문화라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속과 겉이 다른 대답을 해왔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도 결혼은 했느냐, 애는 있느냐를 먼저 묻는다. 가끔씩 보게 되는 친구들도 이제는 소식이 있을 법하다고 한다. 아마도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결혼하면 애를 낳는 게 당연한 거니까 저 부부는 애를 언제 날까 궁굼해 하며 그 궁금함을 표현하는 게 '예의'라는 거지.

 

그래서 가끔은 말걸기도 '예의' 상 이런 질문을 하기도 했다. 말걸기가 통념 안에 위장하고 있어야 편할 때이겠다. 또는 이런 실례를 이해해 줄거라고 믿는 사람에게도 하곤 했었는데 그건 말걸기가 출산과 육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하는 조언을 우회적으로 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태도가 지겨워졌다. 그래서 앞으로는 주변에서 "애는?"이라는 질문을 하면 "상관 마!"라고 대답할 거다. 물론 남에게 애 낳을거냐 따위는 묻지도 않을 거다. 그리고 말걸기의 바뀐 태도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 아주 개지랄을 떨어줄 거다. 만약 말걸기의 개지랄에 대항하는 자가 있을지 알 수 없어 강력한 무기도 하나 마련해 두었다. 이 무기에 끄덕 없는 자는 인간성이 제로인 자이니 주위에서 매장당할지도 모른다.

 

 

자, 그럼 말걸기는 왜 이런 질문이 지겨워졌을까? 간단하다. 4년도 넘게 똑 같은 질문을 주위에서 반복해서 들어봐라. 안 지겹겠나. 정말 지겨워질지 안 지겨워질지 실험당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말걸기가 매일매일 물어주마. 4년 버티는 인간 없을 걸. 말걸기는 참 오래도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