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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가 온통 뒤숭숭한 이 시대, 민주노동당도 맛탱이 가고 있다. 물론 어제 오늘 벌어진 갑작스런 사태는 아니다. 수년 간 벌어진 일이라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오래된 만큼 절망은 깊이 파고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이 망하려면 멀었다.
1.
이명박이랑 신나게 족구하는 한국노총에게 허리 90도 꺾고 사죄하는, 그것도 대선이 다가온답시고 비굴하게 고개 숙이는 민주노동당에게 쬐끔의 자존심이라도 있는가 싶기도 하다. 한국노총이 이명박이랑 놀든 누구랑 놀든 상관할 바도 아니고 선거 다가오니 뻔뻔하게 굽실거리는 것도 봐줄 수는 있으나 어떻게 노동자의 파업권과 전임자 임금 건을 바꾼 한국노총에게 머리를 숙일 수 있단 말인가.
사실 그 보다는, 파업권, 복수 노조 따위의 가장 기본적인 노동자 권리와 전임자 임금 건을 두고 내심 갈등했던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의 유력한 배후 중 하나라서, 그래서 한국노총에게 이렇게 사과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조직노동자를 아주 많이많이 배신한 것은 아니라는 게 더 좌절스러울 따름이다.
정당에 고용된 사람이 진보를 추구하는 활동가라면, 그리고 그 정당이 진보정당이라면 결코 노동자가 될 수 없다는,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니는 자들이 있다. '노동자'가 악마 같은 자본가에 대항하는 무슨 선한 존재도 아니고 '노동조합'이 프롤레타리아 혁명를 집행하는 결사대도 아닌데 당 지도부는 자본가가 아니라고 둘어대니 어이없다. 프롤레타라이가 적어도 백 년은 피흘리며 만들어 놓은 '부르조아 시대 노동법'도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부정하다니.
그 보다는, 예산을 확정할 수 있는 당대회 권한을 임단협에 한해서는 당대표에게 위임하라는 결정을 내린 당대회는 점점 더 또라이 집단이 되어간다는 게 한심하다. 이 따위 말도 안되는 안건을 노조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최고위가 만들어 올려도 대의기관이 거르지 못한다는 건 당이 깊은 수렁에 빠졌다는 걸 보여준다. 민주적 절차가 그때 그때 편의에 따라서 고무줄이 되어버린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의 기치 아래 농활 다니는 권영길의 모양새는 아무래도 삐꾸다. 경선 직후 상공회의소부터 다니기 시작한 권은 문국현을 열나 까는 듯 하더니 손잡아 보자고 하질 않나 여느 부르조아지 정치가의 길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100만 민중대회가 뻥카로 들통날 일만 남았는데 그 후 대책은 아무도 모르고 있으니 뭐하자는 것인지.
권의 공식적 발언은 권캠의 몇몇에 의해 좌우되고 있고 권이 지나는 길 또한 자민통 지역 조직을 지원하기 위해 정해지니 내용 있는 대선이 될 리가 없다. 당의 주장을 일관되게 다루어 온 기관은 권의 발언에, 그 발언의 기초에 아무런 영향과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사적인 방식으로 대선 조직이 움직이고 있는가.
이 사태로 확인된 바가 있다. 우파는 결코 진보정당을 이끌 자격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예전에는 단지 우려했던 바에 그쳤으나 이번 대선을 계기로 철저히 검증했다. 정치에서는 악당보다 나쁜 게 무능한 놈이니 우파가 악당보다 나쁜 존재라는 것 또한 뼈저리게 확인했다.
이런 좌절이 더욱 좌절인 이유는, 좌절로 이끈 당내 무리들에게서 어떻게 당권을 빼앗을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 전망이 보이지 않아 당을 떠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당적은 아직 아니 지웠어도 당을 향한 마음을 지운 이들이 수두룩하다. 진정 우파의 승리가 다가 오는 듯하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망하려면 멀었다. 왜냐하면 아직 민주노동당 내에서 확인해야 할 게 남았기 때문이다.
2.
민주신당 따위야 원래 이 나라를 쌈 싸먹은 놈들이니 이명박 대안으로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국현을 지켜보고 있다. 문국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쩌구 저쩌구...해 봐야 사람들은 귀담아 듣지도 않는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X됐다.
어쨌거나 확인되지 않은, 검증되지 않은 사람 혹은 세력을 새로운 희망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은 언제나 있는 일이다. 대중은 일단 희망적으로 보이면 안 따진다. 민주노동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 심상정이 예상 밖 약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민주노총 중앙파의 빽만이 아니었다. 당무에서는 어떤 것도 검증 받은 적 없는 심상정이 뜬 건 '묻지마 신뢰'도 작용했던 것이다.
당내 우파와 그 떨거지들은 그들의 무능을 스스로 확인해 주었다. 그럼 이제 민주노동당이 갈 때까지 가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남았다. 당내 좌파의 능력을 확인해야 하는 일이다. 적지 않은 당원들이 당내 좌우 갈등을 혐오하면서도 은근히 좌파를 지지하고 있다. 전폭적이지는 않더라도. 또한 적지 않은 당원들은 좌파가 당권을 장악해도 당이 똑바로 될까 의심하기도 하지만 우파보다야 훨씬 나을 거라고 믿고 있다.
정치의 요체 정당에서 무능을 발휘한 우파에 대한 평가는 끝났다. 이제 좌파에 대한 평가만 남았다. 좌파가 평가를 받고 이들에게도 미래가 없다는 걸 모두가 확인할 날이 서둘어 와야 한다. 이 날이 오면 밑천 거덜난 민주노동당을 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나을 거라 생각한 좌파 무리의 무능도 확인해야 진보진영 내 더 이상 믿을 세력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이쯤 되어야 다시 시작할 이유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다시 시작한다는 건 새로운 주체의 형성이다. 새로운 주체 형성은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모두들 기피하고 있다. 그래서 좌파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면 새로운 주체 형성은 없다.
문제는 좌파가 우파로부터 당권을 빼앗지 못하면 그 검증의 계기는 자꾸만 뒤로 미루어진다는 점이다. 결국 새로운 시작은 자꾸 멀어진다. 과연 차기 당권 선거에서 좌파는 승리할 수 있을까.
그래서 민주노동당이 망하려면 멀었다. 그래서 지금 탈당하거나 당을 외면하는 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망하는 꼴을 지켜보며 모두 함께 깨달음을 얻길 바란다. 이 깨달음이란 검증되지 않은 자들에 대한 묻지마 희망 따위는 버리고 기획과 실행 능력을 갖춘 자들을 선별하게 된다는 걸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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