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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위기? 왜지?

 

노회찬이 위기(!)를 맞이했단다.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선출 선거에서 3위로 밀렸다. 심상정에게 2위를 내주었다. 물론 뒤집힌 순위는 충북, 강원, 수도권에서 다시 엎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 건-충격적이지는 않다- 아무래도 노회찬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어쨌거나 권영길과 2강을 이루겠다는 포부, 혹은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완전히 밟아버렸으니 말이다.

 

1.

 

노회찬을 밀어내고 심상정이 2위를 차지한 건 '노회찬에게 가야 할 표(?)'가 심상정에게 향했기 때문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노회찬 선본은 처음부터 사기에 가까운 슬로우건인 '평당원 혁명'을 내세웠고 소위 정파투표로부터 자유로운 건 노회찬인 것처럼 뻥을 쳤다.

 

노회찬과 심상정의 은근한 기대와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NL은 권영길을 지지하게 되었다. 노회찬은 NL의 타협할 수 없는 입장인 통일론에 있어서 NL의 의견을 청취했으며 심상정은 아예 수용을 했다. 심상정은 NL-국민파 동맹의 개방형경선제와 민중경선제의 또 다른 버전인 비정규직 입당 1일 당권 특례를 '비정규직 정당화'라며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둘 다 NL-국민파 당지도부들의 지랄같은 짓들에 침묵해 왔다. 그럼에도 NL-국민파 동맹은 예상대로 권영길에게 갔다.

 

그래서 결국 덩치 큰 민주노총 중앙파의 대부분은 심상정에게 남았고 상대적으로 쪽수 적은 혁신네트워크는 노회찬에게 남았다. 당내 전진은 쪼개져서 각 후보진영으로 갔다. 정파투표는 노회찬을 빗겨 나갔나? 아니다.

 

단, 이번 대선후보 선출 선거에서의 특징은, 정파의 영향력 언저리에 있던 일부 당원들이 자기 생각대로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셋 모두 잘 알려진 인물들이고 그만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당원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뒤집으면 이제까지의 다른 선거에서보다 정파들의 '쪽지돌리기'가 덜 먹힐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비정파-비NL 경향의 당원들에게 선택의 즐거움(?)이 생겼다는 점이다. 권, 노, 심 모두 NL이 아니니 정파들의 '쪽지돌리기'를 거부할 수 있는 당원들은 스스로 선택해야만 한다. 노회찬은 이러한 당원들을 겨냥해 '평당원 혁명'을 내세웠지만 이러한 당원들의 적지 않은 이들이 심상정을 지지하고 있다.

 

심상정이 무섭게 치고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노를 지지하는 정파보다 덩치 큰 민주노총 중앙파가 배경을 이루어준 것이기도 하지만 소위 비정파-비NL 당원들의 선택에 힘입은 바가 크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럼 왜?

 

2.

 

일단 언론에 비친 심상정은 대단히 의정활동을 잘 한 국회의원이다. 실제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 준 정치인이다. 다만, 대선후보감으로 여겨질만큼의 스케일을 보이지 못해 이번 경선이 시작할 시점까지는 지지율이 낮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심상정은 당을 위해서 제대로 일한 적인 없는, 그러니까 당의 위기 상황이나 중요한 전환점에서 책임을 져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권영길이나 노회찬 만큼 제대로 된 평가가 불가한 이력을 갖춘, 실제로는 신삥 정치인이라서 마타도어가 불가한 동시에 묻지마 도박을 해 볼 수 있는 인물이다.

 

게다가 심상정은 여성후보이다. 지금 돌고 있는 말 중에는 "한나라당은 여성 후보를 버렸다. 이때 진보정당이 여성후보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노회찬이나 심상정이나 거기서 거기, 혹은 둘 다 잘 할 것 같아서 누굴 선택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심상정 지지를 긍정적으로 생각토록 한다.

 

당원들의 선택이 노회찬에서 심상정으로 가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노회찬 때리기'이다. 네거티브 선거 전술이 승리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소문이 사실이라고 믿지는 않아도 이미지가 흐려지기 때문이다. NL들은 거짓을 동원해서 노회찬을 마타도어 하고 있고 당 공식 기관을 이용한 치사한 짓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노회찬의 이미지는 적지 않게 퇴색되었다.

 

NL들의 네거티브 전술에 대한 노회찬 선본의 대응도 노회찬 이미지를 흐리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노선본은 '평당원 혁명' 기조 아래 특정 정파들의 개지랄을 부각해 왔는데 이 자체가 역설적으로 정파 투표를 부추기고 있다. 게다가 '싸ㅇㅇ' 사건과 같은 노선본의 뻘타는 노회찬과 그 일파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너무나도 투명하게 보여주었다. 즉, 노회찬 선본의 능력이 의심되는 대목인 것이다. 게다가 어제는 '취중 방송'까지 했다지 아마? 노선본의 자기 관리 능력이 바닥으로 내려 앉고 있다. 이제야 권영길 평가한다고 지랄하고 있질 않나...

 

결국 노회찬은 더 이상 '비전을 갖춘 정치인'으로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는 게 3위로 밀린 이유이다.

 

3.

 

권영길은 진보적이지 않다.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발에 땀이 차서 실내에서 슬리퍼 신고 일하는 상근자들에게 잔소리나 하고, 인사 안한다고 투덜대는 거야 '구닥다리 할아버지가 다 그렇지 뭐'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노선본이 발표한 권영길 검증은 '사실'을 넘어 '진실'이다. 차라리 '진리'라고 해도 말이 될 정도다.

 

권영길은 '베드로'가 아니라 '유다'인 것이다. 적진에 가서 혼자 토론한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당강령을 문제 삼는다고 해서 '당강령을 만든 이들이 잘 몰라서', '나중에 바꿀 것'이란 말을 함부로 한다. 그것도 당대표이자 대통령 후보로서 말이다.

 

권은 황우석 사태 때 용감하게 진실을 외치던 당 기관을 깔아뭉개는 데 여념이 없었다가 나중에 황우석 뽀록나니 말 바꾸는 비겁함을 갖춘 것은 기본이다. 이 비겁함은 부유세 정책에 대한 태도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2002년 대선 때 중앙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부유세 얘기를 했더니 기자가 '선배님, 부유세 얘기하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단다. 이 얘기 듣고 마음이 바뀐 권은 인터뷰 후에 기자에게 전화 걸어 부유세는 기사에서 빼달라고 했고 실제로 빠졌다. 그러던 권이 부유세 정책 뜨자 나중에는 '부유세 도입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얼토당토 않은 주장까지 했다.

 

한편 심상정은 대단히 좌파적인 인물로 알려졌지만 사실 좌파가 아니다. 이 사람의 정치 감각이 잘 작동해서 좌파, 혹은 원칙을 지키는 인물로 보여지도록 한다. 2004년도 소위 '2중대 사건'에 중대한 책임이 있는 자가 김창현 당시 총장 등 NL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심상정이다. 국보 올인에 대한 평가보다는 진보정당의 책무를 져버렸다는 측면에서.

 

'2중대 사건'은 NL들이 국보법 폐지를 위해서는 열우당 2중대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입장을 흘리자 벌어진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NL들의 역할은 국회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국에서 민주노동당은 '국가보안법,언론개혁법,사학개혁법,과거사진상규명법 등 4대 입법 과제' 중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선택해서 '하나만 패자'로 가는 전술을 선택한 것이다.

 

2004년도 하반기 4대 입법 과제는 그해 가을 열우당, 민주당, 민주노동당이 만나 6대 개혁 과제(▲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 규명 ▲언론 개혁 ▲교육 개혁 ▲국회 개혁 포함 정치 개혁 ▲재벌 개혁)를 합의한 데에서 출발한 것이다. 나중에 정치개혁과 재벌 개혁은 한나라-열우 간 대척할 만한 법안이 나오지 않아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 개혁 과제 항목을 합의한 것은 심상정 당시 수석부대표이다. 심은 개혁과제에 비정규직(파견법) 문제도 포함할 것을 주장했다가 특히 열우당이 거부하자 비정규직 문제를 빼 놓은 채 개혁 공조에 합의했다.

 

이러한 의회 전술은 민주노동당으로 하여금 의회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국에 빨려들어가도록 했다. 그러니까 파견법과 같은 민주노동당이 절대 타협해서는 안되는 쟁점은 버려둔 채 의회 중심의 정국으로 'GO!'한 것이다. 이 의회주의 전술은 민주노동당의 성장이나 진보운동의 확장을 방해했다. 개혁공조에 합의하지 않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을 '똥고집', '객기' 부리는 '독불장군'처럼 추진했어야 했다. 분명 의회는 이를 씹었을 것이고 언론도 조롱했을 테지만.

 

민주노동당은 수석부대표가 질러 놓은 짓을 교정할 만큼의 능력도 없었고, NL-국민파 동맹이 장악한 지도부는 별 생각도 없었다. 그러다가 연말에 갑자기 국보법으로 국회가 살짝 술렁이자 국보 폐지 '올인' 투쟁을 벌였고 그 와중에 '2중대'라는 엉뚱한 표현이 등장한 것이다.

 

'2중대'라는 표현에 집착한 좌파 바보들(사실은 비겁자들)은 잘못된 의회전술을 평가하지 않았다. 그러니 심상정의 책임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마 심상정이 국회의원이 아니라 사무총장이었다면 애초의 6대 개혁 과제 공조를 실랄하게 비판하였을 것이다. 왜? 자기가 한 일이 아니니까.

 

4.

 

반면 노회찬은 권영길이나 심상정처럼 뻔한 진보정당의 이념을 자기 입으로 훼손한 짓을 한 적이 없다. 그런 걸 주장하거나 행한 적도 없다. 다만, 오래 전 꼬마민주당 참여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당시 진보정당이 없었으니 딱히 '배신'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주대환이 그랬듯이 성숙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래도 언제든 '저편' 넘어로 갈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도 찝찝하다. 어쨌든 김선생님이나 쫓아다녔던 무리들, 진보정당 건설을 훼방했던 소위 '좌파'무리들이 이걸 두고 지랄하는 걸 보면 진짜 지랄이다.

 

이런 점에서 노회찬은 권영길이나 심상정보다는 당이념에 충실한, 앞으로도 충실할 인물인 것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회찬이 당원들에게 더 이상 '비전을 갖춘 정치인'으로 보이지 않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쉽게 말하면 이것이다. 권영길이 황빠 노릇할 때 뭐했지? 심상정이 보수정당 꽁무니 쫓아다니며 협상할 때 뭐했지? 노회찬에게 이걸 물어보면 뭐라 대답할까? 노회찬이 그 상황에서 '한 마디' 했다면 결코 영웅은 되지 못했다. 엄청 두들겨 맞았을 것이다.

 

전국의 황빠가 정국을 주도할 때 민주노동당 정책위 한 구석에서는 황빠에 대항하고 있었다. 입장 발표 하려고 당의 선출직 당직, 공직자를 물색할 때 죄다 생깠다. 그때 노회찬도 심상정도 생깐 인물들이다. 왜? 얻어 맞을까봐. 긁어 부스럼 만들 이유 없으니까.

 

개혁공조는 노동 문제를 묻어버리는 효과가 있었는데 노회찬은 아무소리 안했다. 아마 한 마디 했으면 '지랄 옆차기'한다고 욕 많이 들었을 것이고 법사위 간 놈이 노동 얘기한다고 '월권' 따위 소리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노회찬이 지금 대선후보 경선 시점에서 '끝발'이 서지 않는 이유는 오랜 세월 이같은 '꼴통짓'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사이에서도 단단히 자리잡은 '남의 울타리(상임위) 안에 벌어지는 일에는 함구한다'는 보수정치권의 '룰'에 한 번도 제대로 개긴 적 없다. 누구와 함께? 당내 모든 지도부, 정치인들과 함께!

 

이런 행실은 노회찬이 코너에 몰릴 때 노회찬에 대한 신뢰도 함께 흘들리게 했다. 노회찬에 대한 마타도어가 심해도, 정파들이 돌리는 '쪽지'를 보아도, 여성후보가 있어도, '그래도 노회찬은 그때 할 말 했잖아'라고 누군가 말할 수 있었다면 노회찬은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평당원 혁명'이 개구라라고 해도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었을지 모른다.

 

노회찬의 뒷심이 딸리는 이유는, 따뜻하게 사람 챙길 줄 몰라 많은 능력 있는 이들로 하여금 떠나게 만든 것도 있고 시덥지 않은 놈들이 주요 스탭으로 꼬이는 걸 막지 못한 데에도 있지만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민주노동당에 정면 도전하지 않은 게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