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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레디앙>의 "민주노총 여성활동가 133인 심상정 지지"와 관련된 글.

 

 

위의 기사는 민주노총 여성활동가 133명이 21일 심상정 후보에 대해 공개 지지를 선언한 얘기다.

 

기사에 따르면 심상정 지지자들은,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주의자’로서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라며 “말로만 여성주의를 내거는 후보가 아니라 온몸으로 여성주의를 체득하고 실천해 온 후보 심상정이야말로 기층 여성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할 적임자임을 확신한다”고 했단다.

 


이 기사를 읽고 다시 확인했다. "정치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심상정은 여성주의를 체득한 사람이 결코 아니다. 말걸기가 생각하기에는 심상정은 여성주의에 대해 아는 게 없거나 여성주의를 알고는 있지만 실천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말걸기가 올 봄에 잠시 동안 심상정과 단 둘이 얘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말걸기가 물어보았다. 민주노동당 후보 중 유일한 여성 후보인데 이 강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치 지형 상 조건을 물었던 것임.)

 

심상정은 대답했다. 여성 문제를 다루는 자신의 보좌관이 몸이 아파 휴직 중이라고 했다. 곧 돌어오면 여성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했다.

 

말걸기는 또 물었다. 국회의원으로 당직을 갖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3년이 지났지만 사실 여성 문제나 성평등 문제로 당 활동을 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심상정은 대답했다. 자신은 이제까지 여성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기회를 당에서는 갖지 못했다. 국회 재경위에서 경제 문제를 다루기에도 벅찼다고 했다.

 

이 대답을 듣는 이가 여성주의자이거나 성평등주의가 아니어도 좋다. 그러나 그 이념의 원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심성정의 답변을 여성주의자의 답변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공식적인 대화가 아니니 중요한 대목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과의 대화에서조차 이렇게 답을 하는 사람이 여성주의를 체득했다고 할 수는 없다. 정치인이 여성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여성주의자인 척 할 수도 있는데 그 정도도 못하는 꼴이다.

 

 

말걸기는 이 대화를 통해서 심상정은 당의 공식 정책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음을 알았다. 아마 당의 경제 분야 입장에 대해서는 관심도 많고 개입도 많이 했을 터이지만 대통령 후보 해보겠다는 스케일은 없는 사람이다. 지금이야 온갖 분야의 정책에 관심을 기울이겠지만 그거야 지금은 그래야만 하니까 그런 것 뿐이다.

 

2005년 하반기에 당 정책위는 2006년 지방선거 정책.공약을 만들어서 자료도 뿌리고 교육을 했다. 당시 여성정책 분야는 정책과 공약 내용을 발표하지 않고 성인지 정책 개발의 필요성과 방법에 대해서만 문서를 제작, 교육했다.

 

이 문서는 당 정책위의 공식 문서로서, 여성문제를 지방자치, 경제, 교육, 의료와 같이 병렬적 분야로 다루는 것은 성평등 실현에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고 모든 분야의 문제를 '성인지적 관점'에서 관찰하고 성불평등 요소를 발견하여 그 대안을 찾으라는 '철학적, 방법론적' 지침서였다. 이런 관점으로 정책을 개발하라는 것이다.

 

심상정은 이 문서를 읽지 않았다. 읽었다 하더라도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했다면 실천할 의지가 "0"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당의 여성주의의 기초를 제공했다고 할 만한 당의 공식 문서를 읽어 놓고 "이제까지 여성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답할 수 있나? 아무리 비공식적인 대화라지만.

 

아니 뭐 바쁘다 보면 당 문서 안볼 수도 있다. 그래도 여성주의자라면 그렇게 답은 안한다. 아니, 못한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보좌관이 없다고 여성 관련 일을 못하고 있다는 변명도 못한다. 자기 구상이 없기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아니면 심상정에게는 여성 문제는 하나의 분야로서 경제 문제보다 후순위의 문제인 것이다. 이건 여성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여성주의가 경멸하는 태도이다.

 

 

위의 <레디앙> 기사에서 지지자들은 심상정을 두고 '여성주의자'라고 했다. 그리고 지지자들은 '여성주의자'로서 심상정을 지지한다고 했다. 그들이 여성주의자라면 심상정이 여성주의자가 아닌 걸 모를 리 없다. 물론 개인적인 관계를 갖고 있지 못해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심상정이 여성주의자라고 믿을 만한 진실을 알지 못하면서도 여성주의자인 심상정을 지지한다고 했다.

 

그렇다. 지지자들에게도 '진실'은 중요한 게 아니다.  이게 정치다. 심상정을 지지하는 이유가 '여성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데에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건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심상정이 '여성주의자'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심상정 지지자들이 심상정을 '여성주의자'로 만드는 것이니 심상정의 여성주의에 대한 몰지각을 탓하지만은 않을 일이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심상정은 당의 지역 조직의 여성모임에 찾아가 "여성주의자 심상정입니다"로 자신을 소개해 왔으니 심상정을 '여성주의자'로 포장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심상정에게 있다.

 

 

 

어쨌거나 심상정이 여성주의자가 아닌 게 진실이긴 하나 정치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게 분명하다. 심상정을 여성주의자로 포장해서 더 많은 정치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면 심상정이 여성주의자가 아닌 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여성주의자인 척은 했으면 좋겠다. 여성주의자가 답할 수 없는 말은 삼가라 말이다. 어디가서 뽀록내지 말고. 쪽팔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