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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님의 [민주노총, 많이 쪽팔리겠다] 에 관련된 글.
위 행인의 글을 읽고선 생각이 났는데 말걸기에게는 '주사파 전력'이 있다. 지난 해 말에 말걸기의 신념 체계의 변화를 더듬었던 글, [우익이나 될까부다]에서는 이 전력이 빠져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말걸기의 '주사파 전력'은 '신념'의 영역이 아니라 '규정'의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최근 정보통신부가 김일정, 김정일 부자를 찬양하고 북한 체제를 하느님 나라처럼 그리는 글들을 삭제하라고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등에 명령했다. 그 근거는 <망법>이라고 불리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의 이름은 예전에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등에 관한 법률>이었는데 2000년도에 온라인 검열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법 개정이 추진되면서 이름도 길어졌다. 물론 이 개정 법률의 '정보보호' 규정들은 프라이버시를 심히 침해하는 조항들이라 다시금 투쟁의 대상이 되었다.
어쨌든, 2000년도와 2001년도는 이 법률과 <전기통신사업법>의 '불온통신' 문제로 정보운동진영이 '표현의 자유'를 모토로 새롭게 조직되고 투쟁하던 시기였다. 정보운동진영은 강제적인 인터넷 내용 등급제와 국가 기관에 의한 강제 삭제에 맞서 싸우면서도 내부에서는 논쟁이 있었다. 과연 모든 표현물을 옹호해야 하는가?
명확한 결론을 내렸다고는 할 수 없으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표현,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 차별(성, 인종 등)을 조장하고 선동하는 표현에 대해서는 법적 테두리에서 손을 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들이 많았던 듯하다. 물론 이러한 경우라 하더라도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방식으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표현물이 실.질.적.인. 위.해.가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지저분해도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원칙은 국가권력이 강제하는 법적 테두리이고 이와는 별도로 온라인에서 집짓고 사를 이들은 사적 영역에서 각자의 윤리적 규제를 행할 수 있다. 법적 강제는 처벌이 따르므로 심각하게 개인의 표현의 자유(뒤집으면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게 될 수 있다. 반면 사적 영역에서는 그들만의 규범을 스스로 만들고 지켜면서 그들만의 일체성과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대중적인 커뮤니티들이 광고를 제한하고 욕을 못하게 하고 정치적 지지를 표명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런 규범들은 그들이 커뮤니티가 된 목적에 충실하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2000-2001년도 투쟁의 과정에서 <정보통신 운영 규정>이라는 당규를 제정하게 되었다. 말걸기가 당시의 정보운동의 논의를 담아 입안했다. 민주노동당은 마땅히 검열, 무엇보다 사상의 검열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 충실한 규범을 만들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이 당규를 제정할 즈음에, 그리고 여전히 국가의 온라인 검열로 싸움을 할 때 주사파 게시물 때문에 내홍을 겪게 되었다.
예전의 민주노동당 사이트에는 '자료게시판'이라는 게 있었다. 이용자들이 공유하고 싶은 문서 자료를 자유롭게 올리는 게시판이었다. 당원들에게만 허락된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 게시판에 진지한 자료들이 올라왔다. 어디 가나 공부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으니 이 게시판이 잘 활용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구국의 소리' 따위에서 김일성, 김정일 저작 등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올라오다가 주르룩 도배가 시작되었는데 거의 주체교 광고게시판이 되어버렸다.
당시 당 사이트 컨텐츠 담당자로서 말걸기가 살펴 보니 중복 게재된 게시물이 없었다. 그러니까 당규에 따라 삭제할 수 있는 게시물은 하나도 없었다. 눈꼴 시려도 어쩌겠나 냅둬야지.
결국 주사파에 대한 불타는 혐오 의지를 가진 이들이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주사파 게시물을 삭제하라는 원성이 높아졌다. 주사파 게시물을 밀어내기 위해서 다른 자료를 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주사파와 주사혐오파들은 경쟁을 했다.
자유게시판과 실명게시판(당원게시판은 나중에 생겼다)에 등장한 진중권과 같은 주사혐오파들의 주장은 이러했다. 똘레랑스는 앙똘레랑스에게까지 똘레랑스를 베푸는 게 아니다, 앙똘레랑스에게는 앙똘레랑스로 대응해야 한다, 그러니까 북한체제는 인권을 짓밟는 체제이므로 그들의 주장을 담은 게시물들은 삭제해야 한다 따위.
지금도 당에서 정보통신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펭귄과 말걸기는 이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김일성과 김정일, 북한체제를 찬양하는 글이 이 사회에 어떤 위해를 가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주사혐오파들이 국가에 의한 주사파 탄압에는 함께 싸울 용의는 있다는 말에는 기절 직전까지 갔다. 악당이 나쁜 놈 괴롭히는 건 못 봐 주겠고 지들은 나쁜 놈 괴롭히겠다니!
펭귄과 말걸기는 당규가 정한 바대로 주사파 게시물을 그래도 두었다. 진중권 등 주사혐오파들은 펭귄과 말걸기를 '주사파'라고 했다. 이게 바로 말걸기의 '주사파 전력'이다.
당시에 <망법> 때문에 시청 앞에선가 행사가 있어 진중권을 만나게 된 일이 있었다. 진중권에게 당 사이트의 주사파 게시물을 삭제할 수 없는 이유를 직접 설명했는데 진중권은 무척이나 혐오스러운 눈빛과 표정으로 말걸기를 대했다. 진중권은 말걸기에게도 앙똘레랑스를 베풀었다.
펭귄과 말걸기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날라온 공문 생깠고 말걸기가 당의 정보통신 부서 떠난 후에도 펭귄은 열심히 정통윤의 공문을 생깠다. 그리고 지금은 정보통신부 명령도 생까고 있다.
말걸기는 주사파들에게는 기피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주사혐오파들에게는 주사파와 똑같은 놈들 취급받으면서 주사파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고 꿋꿋하게 '원칙'을 지켰었는데 행인이 전한 소식을 읽으니 수년 전의 억울한 감정이 다시금 솟아났다.
행인 말대로 종교 취향인 주사게시물이 뭐 대단하다고 지우라고 난리인지. 그보다 더 웃긴 건 주사파들이 주사게시물을 열심히 지운다는 것이다. '주사파'로 낙인찍힌다는 건 정말이지 자존심이 상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데 주사파 스스로 주사게시물을 지워버렸다.
이제는 이런 생각까지 한다. 스스로 지킬 의지가 없는 사상이 탄압받을 때 지켜주어야 하는가?
***
전국연합, 민중연대, 한청은 열심히 자기 사상을 지워버렸고 민주노총 지도부도 사모하는 사상을 지워버렸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지우지 않았다. 왤까?
주사게시물을 지우지 않는 게 명분이 있는 행동이라는 걸 모르지 않은 주사파들이 여기서는 지우고 저기서는 지우지 않는 이유, 말걸기만의 분석은 이러하다. 민주노동당은 아직 완전한 주사파 조직이 아니므로 당의 재산은 주사파의 재산이 아니다. 벌금을 물든 과태료를 물든 '내 돈 아닌데 뭐'가 작동한 듯하다. 돈도 안 들이고 정치적 명분 챙기기 쉽다.
물론 행인과 펭귄의 사상의 자유, 아니 종교의 자유 지키기 신념이 없이는 불가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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