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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마누라가 오늘 교사로서 첫 출근을 했다.
학창시절의 기억은 결코 교사의 꿈을 꾸지 못하게 했단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새로운 삶을 모색했고, 살아가야 하는 삶이 교사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려받은 피에 이끌린 바도 있어 보인다. 아버지는 현직 교사이시고 할아버지는 교장, 증조부는 훈장이셨단다.
교육대학원을 진학했고 두 번만에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오늘 아이들과 첫 만남을 맞이하게 된다. 학교의 방침으로 오늘 입학식에서, 가르치게 될 학생들과 그들의 학부모 앞에서 하게 될 취임사를 준비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시가 한 편 있습니다. 한 시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오기로 한 자리에서 그 사람을 기다립니다. 어찌나 긴장을 하고 예민해져 있는지,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님이 오셨는가 하여 깜짝 놀랍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그를 향해 다가갑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행동을 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런 자세로 살고 싶습니다." (마누라의 취임사 원고에서)
마누라는 아이들을 무척 사랑할 것이다. 이때문에 고생도 많을테다. 아이들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어찌나 긴장을 하고 예민해' 할 지 상상도 간다. 지난 주부터는 온통 학교가서 아이들과 무엇을 해야 하나 머릿속이 가득했다. 아이들에게 해야 할 첫 마디가 무엇이어야 할까, 담임이 된 학급에서 반장은 어떻게 뽑아야 할까, 짝꿍은 어떻게 지어 줄까, 자리는? 번호는? 책은 어떻게 읽힐까... 등 무척 세세한 것까지 고민이 끝이 없다.
학교는 학교다. 대한민국 학교다. 양심을 갖고 있는 수많은 교사들의 고통의 현장이다. 무엇보다 상처투성이로 자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무지기수다. 좌절 또 좌절이 일상이 될 지 모르는 학교에서 건강한 교사로서 아이들과 건강하게 지내길 기원한다. 그리고, 앞으로 약 30년 간 꿈을 가꾸어야 할 마누라에게 축복을 기원한다.
다음은 취임사 원고에서 인용한 그 시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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