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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을 만나다

 

엄마되기님의 [아기와 모임] 에 관련된 글.

 

화요일 칙칙한 하늘이 심상치 않았지만, 말걸기는 고장난 컴퓨터를 들고 용산에 갔었다. 어찌어찌하다 인연이 닿은 분이 용산에 매장을 열고 있는데 이제부터 본격적인 단골로 거래해 볼까 싶어서. 용산 전자상가까지 행차한 김에 전화 한 통을 걸었다. 진경네 집에 미루네가 왔단다. 미루맘과는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미루팜과는 한 때 한솥밥 먹었으니 또한 반가운 이였다.

 

 

진경이 사과를 좋아한다니 사과를 한봉다리 사 갔다. 말걸기는 누구네 방문을 할 때 빈손으로 가기가 머슥하다면 대체로 먹을 걸 사 간다. 그리고 말걸기가 먹고 싶은 걸 사간다. 그런데 오늘은 복숭아가 아닌 사과를 사 갔다. 진경한테 아부 좀 해보려고. 그러나...

 

진경이 뱃속에 있을 때 진경맘은 임신빈혈이었다. 얼마나 심각한 건지 알 수 없으나 외출도 자주 하지 못한 때도 있었다. 그때 행인과 바람을 부추겨서 쇠고기 먹인다고 꾀나 훌륭한 중국요리집에 모시고 가 맛난 음식 많이 사줬던 일이 있었다. 그 단백질과 철분과 기타등등 영양소를 받아 먹었을 진경이... 말걸기를 보자마자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나올 때까지 얼굴 디밀면 도망가듯했다. 말걸기의 빨간 배낭하고만 놀고... 치.(이 얘기를 파란꼬리한테 했더니 여자아이가 아니라서 그런단다... 음... 좀 위로가 된다...)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이 익숙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영 낯설지도 않다. 오래전에 핏덩어리 조카가 말걸기와 몇 개월 함께 살았으니까. 그때야 일이 바쁘다고 가끔씩만 조카를 봤지만 사실 별로 했던 건 없고...

 

낯설지 않다는 건 어린 아이가 있을 땐 아이가 주목받기 마련이고 아이 중심으로 모든 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다. 미루가 집을 나와 쉽게 잠들지 못해 엄마 아빠는 분주했다. 진경은 여기 저기 장난거리와 놀고 있었지만 엄마와는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말걸기가 할 일은, 방문한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아니다. 진경 땜에 사과를 깎다만 진경맘 대신 사과를 깎아야 하고 엄마들 아빠를 위한 케잌을 날라야 하고 설거지를 해야 한다. 그게 아기네집에 가서 해야 할 일이다.

 

 

용산전자상가에서 진경맘네까지는 멀지 않다. 그래도 진경맘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망설였다. 진경이를 깨우는 건 아닌지, 말걸기가 방문한다면 또 다른 일을 생기는 건데 목디스크로 고생하는 진경맘을 더 고생시키는 건 아닌지. 그러다 미루네가 와 있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방문했다.

 

직장 없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지인의 방문을 바라는 것 같다. 설마 매일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생활의 엑센트가 될 만큼은. 진경맘 뿐만 아니라 아기, 혹은 아기들과 집에서 지내는 엄마들의 초청을 여러번 받아봤다. 그런 초청은 빈말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대체로 그런 초청은 결과적으로 거절하게 되었다. 말걸기가 게으른 게 젤루 큰 이유지만 계속 뒤로 미루도록 망설이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아기를 돌보아야 할 아기의 엄마에게 폐를 끼칠까봐. 또 하나는 아기를 돌보는 가운데 대화란 쉬운 게 아니니까.

 

그래도 일단 방문을 하게 되면 좋다. 왜냐면 진경맘 말대로 끊기고 집중하기 어려운 대화의 연속이기는 해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으니까. 오늘에야 진경이가 실제로 존재하는 아가라는 걸 확인했다. 아마도 앞으로는 진경맘과 다섯병의 블로그가 더 생생해질 것이다. 덩달아 운이 좋게도 미루까지 확인했다.

 

 

진경맘의 블로그의 글들은 무척 구체적이고 적나라하다. 그런데 문득 진실 그 자체는 아닌 듯 느껴졌다. 짧은 방문은 다섯병의 블로그에 등장하는 진경의 모습, 진경과 맘의 관계가 더 진실에 가깝게 느끼게 했다. 진경맘과 다섯병의 진실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하루종일 함께 지내는 진경맘의 경험과 하루 중 일부만을 함께 지내는 다섯병의 경험이 달라 블로그의 글들도 달라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뭐, 각자의 진실이 있기 마련이기도 하지.

 

 

말걸기를 경계하는 진경을 보고 말걸기는, "애들은 말걸기를 싫어해." 이 말 듣고 미루맘은 "용기를 내쇼." 격려에 감사.

 

미루팜이 들려준 코미디같은 얘기. "내가 육아휴직 쓰겠다고 했더니 인천연합 출신 상근자가 재고해보라면서 했다는 말이 글쎄, '진보도 좋지만 우리에게는 변혁의 길이 있잖아'라고 하더라."

 

 

진경아, 말걸기를 담에 볼 때는 "고기 사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