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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님의 [언젠 위기가 아니었나?] 에 관련된 글.
새벽길님의 [민주노동당의 위기?] 에 관련된 글.
민주노동당이 위기를 맞았다. 그래서 언론까지 탄다. 이렇게라도 언론을 타야 민주노동당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겨레21>이 민주노동당의 위기에 대한 기획기사를 실었다. 말걸기는 잼나게 봤다. 구구절절 나름의 진실을 담은 기사들이었다. 이걸 두고 행인과 새벽길은 불만 혹은 비평을 토로했다. 왜들 이러시나, 기자란 그렇게 먹고 사는 족속인 걸 알고 있지 않았나. 대한민국 어느 언론도 문제를 보여줄망정 결코 그 해법의 고민은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었나들. 릴렉스! 릴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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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은, "우리 안에 위기는 언제나 존재했다. 문제는 위기가 아니다. 그 위기를 돌파해나갈 용기도 방향도 없다"고 민주노동당의 현실을 제대로 지적했다. 말걸기는 "조직의 능력은 위기를 피해가는 데에 있지 않고 위기를 관리하는 데에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행인과 새벽길의 글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비공감도 있다. 두 글이 <한겨레21> 기사의 뒤집기 버전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새벽길은, "민주노동당이 제대로 되려면, 이를 지지한다는 사람들, 그들이 참여해야 한다. 그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물론 당에서는 참여의 통로를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교육과 토의를 일상화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하는데 그 방식에 대한 고민은 위 글에서는 찾을 수 없다.
진보진영의 운동권들과 민주노동당의 활동당원은 운동의 위기를 얘기하면서 수없이 이런 류의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몽땅 대안이 아니었다. 그리고 대안을 도출할 프로그램도 아니었다. 참여의 확대, 인식의 전환, 교육, 토론, 실천 등등. 모든 평가서와 사업계획에 들어 있는 단어들이다. 돌파구를 찾을 의지가 없거나 능력이 없거나. 아니면 돌파구를 찾으면 절대 안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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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은, "운동의 암적 존재들과는 확실하게 선을 그을 때가 되었다. 사안별로 연대할 수 있을지언정 당을 함께하는 것은 더이상 있어서는 안된다."라고 했고, 행인은 "한겨레21은 죽었다 깨나도 민주노동당 부진의 원인이 바로 오늘날 지도부를 뽑아준 특정정파의 몰지각에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즉, 총선 직후 민주노동당을 좌지우지했던 NL-국민파 동맹의 기막힌 행태가 제대로 평가받지 않으면 안되고, 그들은 이제껏 저지른 만행만으로 진보진영에서 퇴출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옳다. 그런데, 정치영역에서는 '진정한 진보의 가치'를 설정하고 그 기준으로 특정 정치집단을 단죄할 수가 없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가장 무능한 정파가 가장 거대한 정파라는 아이러니에서 알 수 있는 건, 머릿 속에 박힌 '진보라면 이래야 정상 아니야?'는 현실과 괴리된 관념 덩어리로서 현실의 정치룰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말걸기는 NL-국민파 동맹의 그 추악한 행태를 까발리면서 비판하거나 비난하거나 하는 일이 무용하다고 생각치 않는다. 꼭 NL-국민파 동맹이라는 특정 정치집단을 겨냥하지 않는 방식으로 민주노동당 위기의 책임을 따지는 것도 무용하다고 생각치 않는다. 다만, 이 모든 비판과 비난이 완벽하게 현재의 정파구도로 빨려들어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비판과 비난이 약발이 생긴다.
현재의 정파구도의 힘은 무지막지해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대책이 잘 서질 않는다. 사실 정답은 '무법자들'을 퇴출시킬 '의적단'을 창설하는 것이다. 즉, 새로운 진보정치의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진보정치 주체 형성을 열망하는 자들은 이미 기존의 정파구도에 편입되어 있는 골때리는 상황이다. 어떠한 '상식적' '진보적' '합리적' 움직임도 이미 정파의 한편에서 타정파를 공격하는 논리나 실천이 되어버린다. 이게 현재 정파구도 순환의 힘이다. 놀랍다. 이런 정파구도를 만들어 낸 운동권들. 위대하다!(매직이야, 매직.)
또 한가지 측면에서는 '무법자들'을 응징하기 위해서만 '의적'을 규합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왜냐면 '무법자들'을 응징한 후에는 뭘 해야 할지 모르니까. 진보진영 내 모든 정파들이 이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NL-국민파 동맹에 대항한 거대 동맹이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지난 민주노동당 최고위 선거 때부터 서울시장 후보 선거까지 <전진>과 <혁신>의 유치 뽕짝 한심 퍼레이드도 이런 맥락과 닿아 있다고 본다. 당권 경쟁에서 자기 파벌이 승리해야 하고, 민주노동당이 갖고 있는 사회적 영향력 중 최대한 많은 파이을 자기네가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정파로서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 패턴이긴 하다.)
이 두 가지(①모든 행동은 정파적일 수밖에 없다, ②이 조직에서는 우리 정파만이 제대로 할 수 있다)가, 그 순환의 폐해가 오래도록 지적되어 왔지만 어느 누구도 정파구도에 손대지 못한 배경라고 본다. 말걸기는 이 두 가지가 사실은 하나의 인식과 밀접하다고 본다. 그게 뭐냐면, "진보진영의 승자가 이 사회의 승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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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건 주체사상이건 소위 '혁명이론'에서 이 나라 운동권들이 배운 것 중에 하나가, 오직 위대한 사상으로 무장한 주체(노동계급이라 하든, 민중이라 하든, 혹은 선진 혁명가라고 하든)만이 혁명을 완수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어떤 '혁명이론' 책에는 한 줄도 인쇄되어 있지 않은 결론을 내려버린다. "위대한 사상으로 무장한 주체가 나(우리)네!" 책에 인쇄된 '노동계급이든 민중이든 대상으로 삼지 말지어다' 따위의 진리는 논쟁이나 후배 가르칠 때만 튀어나오는 말일 뿐이다. 머리와 진심이 분열되어 있는 오만함은 운동권들의 공통점이다.
재미난 건, 현실 진단과 문제의 발견, 앞으로의 사회상에 대한 견해에 앞서 진보(평등, 해방, 통일, 혁명, 뭐든)를 위해 뭔가 한다는 의식이 우선한다는 점이다. 이 의식을 공유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바로 운동권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한다. 운동권의 이런 공유의식은 '선민의식'이라고 비판받아왔다. 그래서 김정진이 말하는 '독수리 5형제 의식'이 시사하는 바도 크다.
이런 태도는 진보진영 밖의 사회집단이나 룰(법 따위)에 대한 지나친 폄하를 낳으며 진보진영 내 경쟁에서의 승리가 진보의 최대 목표가 되도록 한다. 민주노동당의 급여 세탁이나 대표 부정 선거와 같은 범법이 쉽게 벌어진다는 점이 그렇고, 사업계획의 대부분이 진보진영 내 어떤 조직이나 단체와 어떤 일을 벌일까로 채워진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모든 행동의 궁극은 각 정파들의 손익계산이다. 그냥 한 마디로 우물 안에서 논다는 것이다.
결국 NL-국민파 동맹은 위협받을 수가 없다. 미국과 북한에 대한 태도를 제외하면 한국 사회의 주류이데올로기와 한치의 오차도 없는 NL-국민파 동맹의 노선에 동조하는 운동권은 언제나 다수일 수밖에 없다. 진보진영이라는 펜스 쳐 놓고 그 안에서 싸우면 힘 센 놈이 계속 권력을 휘두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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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프라이머리나 진보정치 인물론 따위가 진보의 이념에 부합하느냐를 미리 판단하는 것은 오류다. 말걸기는 김윤철이 '교과서 좌파에서 벗어나라'는 말에 동의하는데, 그가 글에 써 놓은 이런저런 거 하자는 게 아니라(해도 좋고. 어쩜 이미 하고 있고),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이념과 정책을 뽑아내서 새로운 '눈높이 교과서' 써야"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이 태도는 오픈 프라이머리나 진보정치 인물론을 진보의 이념에 부합하느냐를 미리 판단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들이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에게 유리한, 혹은 필요한 조치이냐를 판단하게 한다. 당이 정해 놓은 진보의 잣대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 정해 놓지 않고, 다양한 이해 관계를 가진 개인과 집단들과의 접촉으로 진보를 표방한 정당에게 요구되고 있는 조치를 도출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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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걸기의 정리되지 않은 긴 주저림의 요지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운동권들이 공유하고 있는 의식을 버리지 않으면 희망이란 없다. 스스로 정치조직이라고 한다면 훨씬 넓은 밖을 보고 정치를 하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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