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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어나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지만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오로지 나만의 몫이니 스스로 받아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젊고 건강할 때부터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보고, 마음 자세를 가다듬는 훈련이야말로 자연스럽고도 건강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길입니다.
일본의 노인요양원 의사로 있는 나카무라 진이치가 쓴 ‘의사를 반성한다’라는 책을 읽다가 이 대목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봤습니다.
“나는 어떤 죽음을 상상하고 있지?”
가끔 죽음명상을 하면서 저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해봅니다.
사고나 자살로 생을 마치는 것이 아니라면
허름한 요양원에서 홀로 외롭게 죽어갈 확률이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양원에서 생을 마친다는 것이 조금 씁쓸하기는 하지만 그 현실도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리 비참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이 외롭게 생을 마치는 것은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 별반 다를 것이 없겠죠.
다만 생의 마지막 순간을 편안하게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롭고 별 볼일 없는 지금의 이 삶을 오롯이 내 것으로 받아들여야겠죠.
그리고
지금의 것들에 뭔가를 더 얹기보다 조금씩 덜어내면서 이 삶을 유지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 삶이 주는 편안함이 죽는 순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겠네요.
내 생의 마지막은 외롭고 초라하겠지만
편안하게 마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보렵니다.
2
“읽는 라디오를 언제까지 진행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10년 넘게 진행해온 경험이 있어서 앞으로 10년쯤은 거뜬히 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쯤 되면 그만두는 것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겠죠.
그렇다면 제가 죽을 때까지 계속 할 수도 있을 텐데...
기력도 약해지고 의욕도 별로 없어진 나이에 읽는 라디오를 진행할 동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도 읽는 라디오를 진행한다면 ‘아주 오래된 친구와 특별할 것 없는 얘기를 나누며 서로를 토닥거려주는 방송’이 되지 않을까요?
조금 낭만적으로 포장한 것 같기는 하지만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번잡스럽게 이 사람 저 사람 찾아와서 판에 박힌 덕담이나 안부 얘기를 하는 것보다는
별것 없는 얘기를 잠시 나누고 헤어져도 편안할 수 있는 그런 관계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딱히 없더라도 제가 그 얘기를 들어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족합니다.
찾아와주는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가 얘기를 계속 하고 싶어지는 거겠죠.
그때도 마음이 닫히지 않고 세상을 향해 눈과 귀를 열어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지금의 이 편안함을 이어갈 수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편안함을 죽을 때까지 이어간다’는 것이 비현실적인 꿈 같이 느껴져서 조금 씁쓸해지기도 하네요.
뭔가 목표를 세우면 부담감만 생겨서 더 힘들어지네요.
‘제가 죽을 때까지 읽는 라디오를 진행한다’는 목표는 포기합니다.
그저 지금의 이 편안함이 이어질 수 있을 때까지만 진행해보죠.
그것만으로도 이 방송을 이어가는 이유가 충분하니까요.
3
사랑이에게 새 친구가 생겼습니다.
산책하는 길에 새로 이사 온 집이 있는데 그곳에 개 한 마리가 있더군요.
처음 볼 때부터 둘이 호감을 보이더니 가끔 마주칠 때마다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누곤 합니다.
그런데 저 녀석의 관심이 조금 과합니다.
멀리서 사랑이가 보일 때부터 짖어대다가
인사를 나누고 사랑이가 가려고 하면 가지 말라고 또 맹렬하게 짖어댑니다.
마치 친한 형제를 강제로 분리시키려고 하니 발버둥치는 상황처럼 보이기도 해서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랑이는 인사를 나누고는 유유히 제 갈 길로 떠나버립니다.
사랑이가 산책길에 마주치는 녀석 중에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개도 있습니다.
그 녀석은 사랑이보다 덩치도 큰 개인데 멀리서 보일 때는 괜찮다가도 사랑이와 거리가 가까워지면 아주 맹렬하게 짖어댑니다.
그 개와 같이 사시는 분의 얘기로는 어릴 적에 다른 개들에게 물렸던 경험이 몇 번 있어서 다른 개들이 다가오면 그렇게 예민하게 군다고 하더군요.
덩치 큰 개가 그렇게 짖어대면 저도 조금 긴장하게 되는데 사랑이는 무덤덤하게 그 개를 바라보다가 주변 냄새를 맡으면서 제 갈 길을 가버립니다.
그런 사랑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개가 참 의젓하네요”라며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사랑이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사랑이가 어렸을 때는 산책을 나가면 혼자서 막 앞서나가며 저를 끌다시피 했었습니다.
그렇게 산책을 하면 둘 다 힘들기 때문에 산책 훈련을 시켜보려고 이런저런 노력들을 많이 해봤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또 산책 중에 다른 개가 보이면 으르렁거리면서 싸우려고 하는 통에 “왜 이렇게 개가 사납냐?”는 소리도 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산책을 자주 하면서 저랑 호흡을 맞춰가는 방식을 익혀가게 되고 다른 개들과 만나는 경험도 쌓이다보니 점차 차분해졌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다른 개와 심하게 싸운 적도 있었고, 암컷과 뜨겁게 사랑을 나누기도 했었죠.
아직도 산책을 나서면 저랑 가볍게 실랑이를 벌이며 서로 밀당을 하기는 하지만
익숙한 산책길에서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가면서 편안하게 산책을 즐깁니다.
사랑이 나이가 많아서 기력이 예전만하지 못한 것을 느낄 때면 조금 짠해지기도 하지만
서로가 호흡을 맞춰가면서 여유롭게 즐기는 산책은 더없이 즐거운 시간입니다.
(Joep Van Rhijn의 ‘Vergane Glo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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