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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11회 – 세상은 참혹하고 내 마음은 심란하고

 

 

 

1

 

이래저래 어수선하고 심란한 마음이 몇 달째 가라앉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감하고 소심한 성격이라서 작은 문제에도 마음이 곧잘 출렁거리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거나 문제가 해결되면 심란함이 가라앉곤 하는데

이번에는 꽤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면

역시나 일상의 사소한 문제들로 출렁임이 이어지고 있는데

일렁였다가 사라지는 잔물결들 속에

꽤 길게 이어지는 심란함의 파동이 있었습니다.

그 심란한 파동은 감귤농사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만들어내고 있더군요.

 

감귤농사를 8년째 이어오면서 꽤 경험이 쌓였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나무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서 토대가 흔들려버리고

또 한 번의 실수로 한 해 농사를 망쳐버리기도 해서

허탈함과 두려움이 저를 감싸버렸습니다.

예전에도 이런 문제가 생기면

“새롭게 배운다는 자세로 더 열심히 노력하자”며

마음을 토닥거리면서 나무에 더 집중하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 심란함이 좀처럼 가라앉질 않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어느 정도 연차가 쌓여갈 때 한번쯤 심각한 위기가 오곤 하는데

농사의 초보 딱지를 때려는 지금 제게 그런 위기가 닥친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안식년 휴가를 갖거나 새로운 관심거리를 만들어 마음을 일에서 잠시 떨어뜨려놓는 것이 도움이 되지만

혼자서 농사를 지어가는 제 입장에서는 그것도 어렵습니다.

 

이 녀석과 싸울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면

마주해야겠죠.

걱정을 넘어선 무서움을 가만히 들여다봐야합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계속 들어보렵니다.

힘들어하는 제 마음에게 도움이 되어줄 방법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그렇게 옆에서 계속 지켜보면서 그 과정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제 마음 혼자서 힘든 과정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고

그런 과정을 겪으며 농사 경험이 쌓이고 있다는 점을 나무에게도 말해주고 싶습니다.

 

 

2

 

평년보다 살짝 이르게 장마가 시작됐습니다.

장마가 오면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에 몸과 마음이 눅눅해지기 쉽습니다.

이런 날씨를 병충해들은 더 좋아해서 감귤나무 방제에도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힘든 시기인데 짜증과 예민함이 자라나기 좋은 때이죠.

 

한바탕 비가 퍼붓고 난 후

날씨 때문에 미뤄뒀던 감귤나무 방제를 서둘러 했는데

그 와중에 농약 치는 기계가 고장 나서 애를 먹었습니다.

이래저래 문제를 해결하고 난 후

감귤나무에 비료를 주느라 땀을 흠뻑 흘리고 났더니

텃밭에는 잡초들이 무섭게 자라고 있더군요.

이제 또 비 날씨가 이어진다고 하니

마음은 또 조급해집니다.

 

심란하고 어수선하게 하루하루가 이어지는데

구름도 없고 바람도 없는 맑은 날이 반짝하고 찾아왔기에

밀려뒀던 빨래를 급하게 했습니다.

뜨거운 햇살에 잘 말라가는 빨래를 보니

아주 조금은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 같습니다.

제 마음에도 수시로 때가 끼지만

그때마다 빨고 말리며 살아가야겠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내 마음이 심란할 때는 가급적 밖으로 눈을 돌리려 노력합니다.

만만치 않은 삶 속에서 어떻게든 버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내 자신이 겸손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치열하기보다는 참혹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전쟁이 벌이지고 있고

권력을 가진 자들은 세상을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고 있고

실시간으로 연결된 세상은 스포츠중계 하듯이 그 모습들을 공짜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 아비규환의 모습들을 바라보다가

그 속에서 제 모습이 보여 뜨끔해졌습니다.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타인의 고통을 쇼핑하는 와중에도

마음 속 심란함에만 집착하는 제 모습이 보였거든요.

그런 제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윤동주의 ‘자화상’이라는 시가 떠오르더군요.

 

 

 

(윤동주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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