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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12회 – 흔들리며 피는 꽃

 

 

 

1

 

감귤농사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면서 공부를 다시 하고 있습니다.

감귤농사 초기에 배웠던 것들이었는데

그동안 쌓인 경험만 믿고 관성대로만 해왔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면서 기본을 다지고 있습니다.

 

주위에 직접 물어보면서 배울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하나씩 익혀가다 보니

너무 다양한 정보들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 정보들을 다 접하다보면 오히려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에

하나 하나 제 경험과 비교해보면서 참고할 것을 골라내고

나중에 재배과정에서 더 조심스럽게 시도를 해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조심스러운 과정이 이어지다보니 머릿속에서는 더 고민들이 많아집니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방법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느 지점에서 변화를 줘야하지?”

“부족한 것보다 과한 것이 더 문제가 되는데, 과해서 나타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지?”

“올해 결과가 너무 참혹해서 내년에는 결과가 좋아야 하는데, 그 걱정과 욕심 때문에 스트레스만 생기는 건 아닌지...”

“혹시 내가 알지 못했던 지점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는 어떻게 파악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머릿속에 해답 없는 고민과 걱정들만 쌓여 가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 고민을 잊어버리고 싶지만

그런다고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기에

하우스에 들어가 나무들을 살피며 말을 걸어봅니다.

“그동안 열심히 한다고 해왔는데도 너희들이 하는 얘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해. 앞으로도 열심히 할 거고, 그 과정에서 또 너희들의 얘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실수를 할지도 몰라. 그래도 너희들의 얘기를 이해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만은 알아줬으면 해.”

 

 

2

 

감귤농사 때문에 이래저래 걱정이 많지만

일단 하우스 안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하면

나무랑 대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는 분의 추천으로 해조추출물을 뿌려주고 있는데

이파리 색깔이 짙어지는 것이 보여서 다행스럽기도 하고

열매들도 조금씩 커가는 것이 보여서 흐뭇하기도 합니다.

나무의 수세를 좋게 만드는 것이 관건인데

아직은 이런저런 고민들만 있어서 걱정이 풀리지는 않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는 나무를 보며 제 자신을 토닥여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0시가 넘으면 하우스 안에는 30도가 넘어 가기 때문에

중간 중간 쉬면서 여유롭게 일을 합니다.

나무 아래 놓아둔 의자에 앉아 땀을 식히며 책을 읽고 있노라면

사랑이도 살며시 제 곁으로 와서 편안한 시간을 같이 즐기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무 아래서는 이중섭의 그림에 대한 책을 읽습니다.

한국전쟁으로 머나먼 남쪽으로 피난을 왔지만

생활고 때문에 가족들은 일본으로 떠나야 했고

가족에게 그림을 그려 보내며 미안함과 서글픔을 달래곤 했다는데

그 그림들이 애잔하면서도 편안해서 좋았습니다.

이중섭의 아이들이 물고기와 함께 즐겁게 놀고 있는 것처럼

저도 사랑이와 함께 감귤나무를 타고 오르면서 즐겁게 노는 상상을 해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오전에 힘들게 감귤나무에 농약을 치고

오후에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스님의 생활을 찍은 영상을 보고 있는데

벽에 걸린 액자 속 글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 말을 주변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거든.

흘휴시복(吃虧是福)이라, ‘손해를 보는 게 곧 복이다.’

그러면 두 가지 이익이 생기잖아요.

그 사람은 득을 봐서 좋고 나는 덕을 베풀어서 좋은 거 아냐, 그런 거지?”

 

그 스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니

어려운 사자성어가 살며시 제 곁으로 다가와서

“남들한테 손해 보면서 바보처럼 살 수 있겠어?” 라고 묻기에

그냥 가볍게 미소를 지어줬습니다.

 

 

 

(범능스님의 ‘흔들리며 피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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