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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15회 – 예전의 추억에 잠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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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사랑이가 밖에서 지낼 때

근처에서 풀어놓고 기르던 개가 가끔 놀러온 적이 있었습니다.

혼자 외롭게 지내던 사랑이는 누군가 찾아와주니 반갑게 맞았고

그 개가 암컷이어서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둘이 친해지나 싶더니 어느 날 뜨겁게 사랑을 나누더군요.

둘의 뜨거운 사랑이 몇 번 있고난 후 그 개는 더 이상 사랑이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 개는 귀여운 강아지들을 낳아서 함께 주변을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산책하는 길에 그 개와 강아지들을 발견한 사랑이가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어댔지만

그 개는 사랑이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새침하게 멀어져버렸습니다.

“야, 이 나쁜 녀석아. 니가 먼저 사랑이한테 찾아왔었는데 이제는 볼 일 없다고 매정하게 돌아서냐?”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더군요.

 

얼마 전에 산책을 하다가 그 개와 마주쳤는데 늙어서 힘도 없고 살도 쪽 빠져서 안쓰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여전히 사랑이는 꼬리를 흔들며 반기지만 새침한 그 녀석은 흘낏 사랑이를 쳐다보고는 자기 갈 길 가버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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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랑이가 밖에서 지낼 때

유기견 한 마리가 가끔 찾아와서 사랑이 밥을 먹곤 했습니다. (나중에 녀석에게 우정이라고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사랑이는 우정이가 밥을 먹을 때면 망을 봐주기도 하면서 배려를 하더군요.

저도 그런 우정이에게 간식도 던져주며 마음을 표현했더니 금방 친해졌습니다.

 

그렇게 친해진 우정이는 사랑이와 가볍게 장난도 치며 즐겁게 놀았습니다.

사랑이보다 덩치가 큰 녀석이었지만 둘이 놀 때면 항상 사랑이에게 져주곤 했었죠.

그러다가 어느 날 아주 사소한 문제로 둘이 다툼을 벌였고, 그 다툼을 말리는 과정에서 제가 우정이에게 발길질을 했었습니다.

그날 이후 우정이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는지 저와 사랑이를 보면 아는 척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급기야 사랑이에게 공격을 가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그런 우정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더 애정을 보이려고 노력했더니 녀석의 마음을 풀고 다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이가 우정이의 배신을 용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랑이와 같이 산책을 하고 있으면 우정이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데, 사랑이는 그 모습을 보고 으르렁거리며 싸우려 들었고, 저는 사랑이를 데리고 얼른 달아나야 했습니다.

그렇게 웃픈 상황이 몇 번 반복되다가 어느 날부터 우정이가 보이지 않더군요.

누군가 그런 상황을 보고는 우정이를 유기견 보호소로 보내버린 것이 아닐까 추측만 해봅니다.

1년 넘게 정들었던 녀석이 사라지니까 조금 허전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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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감귤 선과장에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나중에 녀석에게는 예쁜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조금만 녀석이었는데 누군가 다가가려하면 사납게 짖어대곤 했습니다.

작고 가냘프게 생긴 녀석이 목줄에 묶인 채 혼자 지내는데 주인은 가끔 밥만 줄 뿐 제대로 돌보지를 않더군요.

그런 예쁜이가 안쓰러워서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인사도 건네고 간식도 건네주곤 했지만 녀석은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사랑이도 처음에는 관심을 보이다가 예쁜이가 워낙 까칠하게 구는 바람에 관심을 거둬버렸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는데 그 자그만 예쁜이가 새끼들을 낳았습니다.

왜소한 체구에 갈비뼈가 들러날 정도로 앙상한 녀석이었는데 그 몸으로 새끼들을 보살피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주위에서 돌봐주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서 매일 산책을 시켜주며 예쁜이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곤 했었죠.

예쁜이와 제대로 친해지기 시작하니 제 품에 안겨서 얼굴을 마구 핥아대는 등 애정표현이 아주 적극적이었습니다.

겉보기에 아주 까칠한 성격에 강단도 쎈 사나운 녀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더없이 정이 많은 녀석이었던 겁니다.

 

그렇게 예쁜이와 친해져서 정을 나누고 있었는데

어느 날 두 번째 임심과 출산이 있었고

보다 못한 어떤 분이 동물학대로 신고까지 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예쁜이는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됐습니다.

정을 줬던 녀석이 가장 힘들 때 갑자기 사라져버려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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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이는 첫 출산에서 새끼를 여섯 마리 낳았습니다.

여섯 마리 새끼들은 하나 둘씩 분양이 돼서 나중에 두 마리가 남았는데

어느새 훌쩍 자라서 주변을 막 뛰어다니곤 했죠.

예쁜이가 산책을 나설 때면 엄마를 따라 나섰다가도 얼른 집으로 돌아가곤 하던 녀석들이

조금씩 따라오는 정도가 길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와 함께 산책을 나서게 됐습니다.

 

그렇게 세 마리를 이끌고 하우스에 데리고 와서 풀어주면 아주 신이 나서 여기저기 뛰어다닙니다.

그런데 한 녀석은 겁이 많아서 멀리 뛰어가지는 못하고 제 주변에서만 돌아다니다가 제게 다가와 관심을 보이곤 했습니다.

저를 빤히 쳐다보는 귀여운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제 기분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어떤 할아버지가 그 녀석을 데려갔다고 하는데, 잘 지내고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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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이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던 어느 날 백구 한 마리가 예쁜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더군요.

유기견인지 여부는 모르겠는데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털 상태도 양호한 게 얼마 전까지 사람 손에서 길러진 것이 분명해보였습니다.

사람들에게 공격적으로 대하지 않아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았는데, 문제는 그때가 예쁜이의 발정기여서 그 녀석이 수시로 예쁜이와 교미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잠시 방심하는 틈에 사랑이가 집밖으로 나오게 됐고

오래간만에 자유의 몸이 된 사랑이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예쁜이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예쁜이 곁에는 그 녀석이 턱하니 버티고 있었고, 한참 발정기였던 암컷을 사이에 두고 두 마리 수컷이 순식간에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 싸움은 짧게 끝났지만 사랑이는 얼굴에 심각한 상처를 입어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고, 그 녀석도 그날 이후 예쁜이 곁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아주 짧은 인연이었지만 잊지 못할 큰 상처를 남기고 떠나버린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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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길에 있는 집에 새로운 분들이 이사 왔고 그 집에 스피츠 한 마리도 같이 왔습니다. (그 녀석의 이름은 모카입니다.)

둘은 처음부터 편하게 인사를 나눴고 오래된 친구처럼 친해졌습니다.

특히나 모카가 사랑이를 격하게 반깁니다.

멀리서 산책하는 사랑이가 보이면 마구 짖어대면서 집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둘이 만나면 5분이고 10분이고 가만히 바라보며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그러다 사랑이가 가려고 하면 이산가족이 헤어지지는 것처럼 따라가며 마구 짖어댑니다.

 

그 모카를 뒤로하고 사랑이는 유유히 제 갈 길을 가는데

10여 년을 살면서 이런저런 개들과 다양한 인연들을 쌓아 와서 그런지

아직 어린 모카의 집착에 사랑이는 의연하기만 합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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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한 아이가 태어나서

생애 처음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젊은 부부는 첫 아이의 백일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아이의 밝고 희망찬 미래를 기원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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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 아이에게는 동생들이 생겼고

동생들과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가난한 집안이었고 이런저런 문제들이 있었지만

아이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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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어느새 청년이 됐습니다.

집안사정과 학교생활이 마냥 밝고 행복한 것은 아니었지만

밝고 착하고 공부 잘했던 청년은

부푼 꿈을 안고 서울로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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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푼 꿈이 원대한 혁명의 열정으로 타오른 청년은

이후 울산에서 정열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 같이 사진을 찍었던 이들 중에

한 명은 10여 년의 해고자 생활 끝에 병들어 죽었고

한 명은 노동운동의 상징과 같은 삶을 살다 은퇴해서 노년을 보내고 있고

그 청년은 현실에 타협하지 않으려다 깊은 수렁에 빠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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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수렁에서 10년을 허우적거리다 몸과 마음이 망가진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의지할 것은 그를 따르는 개 한 마리뿐이고

그의 삶은 누추하고

몸은 늙어가고 있습니다.

그에게 아직도 부푼 꿈과 타협하지 않는 열정이 남아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3

 

예전의 나를 돌아보고 있노라면

애잔하거나 흐뭇한 기분이 들기 보다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한숨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름 착하게 살고자 했고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그 속에서 제가 저질렀던 악행들이 제 발목을 잡고 있는 겁니다.

백 번의 선한 행동도 한 번의 악한 행동으로 물거품이 되는 법이죠.

 

그때의 제 행동을 생각하면

‘짧은 인생경험에서 오는 미숙한 실수’라거나

‘삶의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해 잘못 흘러넘친 열정’이라거나

‘제대로 된 분출구를 찾지 못한 욕망의 일시적 일탈’이라고 변명하고 싶어지는데

그 행동 하나로 상처를 입은 이들을 생각하면 할 말이 없어집니다.

 

이제 나이 들어 외진 곳에서 홀로 조용히 살아가는 저는

지난날의 그런 악행들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해보지만

나중에 나이가 더 들어 지금의 저를 돌아봤을 때

또 다시 얼굴이 화끈거리고 한숨이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은 됩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면서 제 자신을 수시로 돌아보며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최백호의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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