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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날씨가 더워지면서 사랑이 산책시간이 빨라졌습니다.
해가 뜨면 금방 더워지기 때문에 이른 아침에 선선한 기운을 느끼며 산책을 합니다.
그 시간에 산책을 하노라면 사랑이와 같은 이유로 일찍 산책하는 개들을 마주칩니다.
그렇게 마주치는 개들은 다 안면이 있습니다.
어떤 개는 사랑이와 친하지 않지만 주인과는 아주 친해서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어떤 개는 사랑이를 보면 데면데면 하지만 오래전에 사랑이와 뜨거운 시간을 보냈던 사이입니다.
산책길에 익숙한 이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다보면 아침 시간이 여유로워집니다.
그런데 그 반가움과 여유로움 속에 짠한 기운이 스며듭니다.
사랑이를 포함해서 만나는 개들이 모두 노견이기 때문입니다.
한 녀석은 산책시간이 버거워서 중간 중간 쉬어줘야 하고
한 녀석은 나이가 많아지면서 살이 홀쭉하게 빠져버렸습니다.
그 녀석들보다 두 살쯤 어린 사랑이만 팔팔한 것 같아 보일 정도입니다.
이곳에서 오랜 세월을 지내며 터줏대감처럼 자라온 녀석들이
이런저런 사연들을 뒤로하고 조금은 데면데면해졌지만
산책길에 만나 짧은 인사라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렇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감귤 선과장을 지나치는데
갑자기 예쁜이가 떠올라
애잔한 마음이 일렁이더군요.
2
폭염이 이어지다보니 많은 것들이 힘들어 합니다.
열매가 매달려서 한참 크기를 키워야 하는 감귤나무는
열매와 이파리와 뿌리를 모두 키우느라 버거워하는 것이 보입니다.
더위에 기본적으로 취약한 사랑이는
에어컨이 켜진 방에서 지내지만 입맛이 없는지 밥을 잘 먹지 않습니다.
장마철에 폭풍성장을 해야 하는 텃밭의 채소들은
비가 오지 않는 바람에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가득이나 머릿속에 걱정과 고민들이 많은 저는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보며 켜켜이 고민과 걱정을 쌓아갑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감귤나무의 힘겨움을 덜어주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들을 계속 하고 있고
사랑이를 위해 고기와 간식을 사료에 섞어주고 있고
텃밭에는 수시로 물을 주면서 땅이 마르지 않게 하고 있고
머릿속 고민에 치이지 않도록 생각을 비우려고 무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고 노력하다보니
감귤은 조금씩 커가는 것이 보이고
사랑이도 사료를 먹는 양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고
텃밭에서는 각종 채소와 과일들이 주렁주렁 달려서 익어가고 있고
제 마음도 그런 것들을 보며 위안을 얻고 있습니다.
여름은 이렇게 땀과 고민과 결실이 함께 어울리며 커가는 계절입니다.
3
기록적인 폭염이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는 요즘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한 분이 “무더위로 에펠탑 접근 불가라고 한국 뉴스에 나오는데 지금 이곳은 서늘해서 긴팔 옷을 입고 다닌다”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리셨더군요.
그런 파리의 날씨도 이상저온이 아니라 요맘때의 정상적인 기온이라면서, 얼마 전에 이틀 정도 기록적인 더위가 있었지만 잠시 스쳐지나간 더위일 뿐이었다고 했습니다.
파리처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지만 언론사들이 있는 서울에서는 멀리 떨어져있는 이곳에서도 ‘기록적인 폭염’은 아직 느껴지지 않습니다.
물론 제주도는 서울보다 더위가 늦게 시작하고 늦게 끝나는 특징이 있기는 하지만
예년보다 이르게 장마가 끝나고 바로 폭염이 찾아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낮 최고기온이 31~32도 정도 수준이어서 견딜 만합니다.
더군다나 요 며칠은 낮 기온이 30도 밑으로 떨어져서 낮에 에어컨을 켜지 않고도 지낼 만합니다.
기레기들의 과장선동과 설레발로 오히려 더 덥게 느껴지는 것이 짜증날 찰나
어떤 분의 sns에 올라온 짧은 글이 뒤통수를 탁 치더군요.
“현장 내려가기 겁나네요~~
오늘은 실내온도 45도 이상일듯요 ㅜㅜ”
(윤수근님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
파리에 사시는 분은 “선선하기만 한데 무슨 폭염이냐?”라고 어이없어 하고
제주에 사는 저도 “이 정도면 견딜만한데 웬 호들갑이냐?”며 실소를 지어 보이는데
경기도의 공장에서 일을 하시는 분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도 하우스 안에는 오전 9시만 되면 30도가 넘어서고 낮에는 40도를 훌쩍 넘어섭니다.
그래서 여름에는 새벽에 일어나 3~4시간 정도만 일하고 낮에는 방에서 에어컨을 켜놓고 쉽니다.
자작농인 저야 그렇게 일하면서 더위도 피하고 여유도 즐기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폭염 속에 말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변에 취나물 밭이 많은데 그곳에서는 폭염 속에서도 낮에 일을 하시는 분을 심심치 않게 봅니다.
버스를 타고 지나다보면 건설 현장이나 아스팔트 위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자주 보기도 합니다.
여름에는 적당히 땀도 흘리면서 여유와 풍요를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제 말이
그분들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생각을 하니
또 다시 고개가 숙여집니다.
(허클베리핀의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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