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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42회 – 진보세력에게도 버림받은 삶이지만...

 

 

 

1

 

제가 인터넷에 거처를 잡고 있는 곳 중에 ‘진보블로그’가 있습니다.

진보적 색채가 비교적 강한 곳인데 그곳에서 20년 가까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블로그가 그렇겠지만, 시대의 흐름이 변하면서 블로그 대신 sns나 유튜브 등으로 이동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특히나 그곳은 마이너한 곳이라서 그리 많지 않던 사람들마저 빠져나가 지금은 십여 명 정도가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워낙 오랫동안 있었던 곳이라서 마음이 편안하고, 아직도 이런 가치를 지키고 있는 곳을 버리고 싶지 않기도 하고, 얼마 되지 않는 이웃들이지만 정도 들어서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길 바라지는 않습니다.

관리자가 신경을 써서 그곳을 개선해주기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작고 초라하지만 편안하고 소중한 공간으로 남아있기 바랄 뿐이죠.

 

그런데 몇 달 전부터 그곳에 스팸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하는데 지워지지 않고 계속 쌓여가고만 있습니다.

가끔 제 블로그에도 그런 댓글이 달리지만 스팸은 보일 때마다 제가 지우기 때문에 제 블로그는 깔끔한 편입니다.

하지만 사용자가 떠난 다른 블로그에 달린 댓글들은 지워지지 않고 계속 쌓여가고, 심지어 운영자가 운영하는 블로그에도 댓글이 무수히 쌓여가고 있습니다.

그 댓글의 대부분은 ‘노래방 알바’니 ‘비아그라 판매’니 하는 선정적 광고들이어서 보기에 불쾌한데도 점점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구 소멸이 심각한 외진 마을에 있는 낡은 다세대 주택’이 연상됩니다.

사람들은 떠나서 빈집들이 늘어가고 마을은 황량하기만 한데, 어느 날부터 선정적 전단지들이 무작위적으로 뿌려지고 있지만, 그걸 치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꼴이죠.

쇠락해서 버려진 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 모습을 보며 그곳에 대한 정이 뚝 떨어져버렸습니다.

‘세상 낮은 곳에서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진보의 가치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진보에게 마저 버림받은 그곳에 계속 머물러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심각하게 “진보블로그를 떠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찾는 이들이 별로 없는 그곳을 떠난다고 별로 영향을 받을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더군요.

가끔씩 찾아와서 읽는 라디오에 댓글을 달아주시며 오랫동안 소통을 이어가시는 이웃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곳을 떠나더라도 다른 블로그에서 읽는 라디오는 계속 진행하기 때문에 소통은 계속 할 수 있겠지만, 오랫동안 정이 쌓여있던 그곳을 떠나게 되면 그들과의 소통도 자연스럽게 멀어질 것이 뻔합니다.

그 생각을 하게 되니 그곳을 떠나지 못하겠더라고요.

“진보에 버림받았다”는 비참함보다 “마음을 나눌 단 한 명이 남아있다”는 따뜻함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것이 진보의 진정한 가치임을 가슴에 새기면서 읽는 라디오는 계속 이어집니다.

 

 

2

 

농사에 대해 얘기하는 영상들을 보면 ‘고된 농사일’이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저도 농사를 지어보기 전에는 ‘농사는 고된 일’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10여 년 동안 해본 농사는 그리 고되지 않았습니다.

밭농사의 경우 파종과 수확시기에 품이 많이 들뿐 관리하는 데는 그다지 고된 일이 많지 않습니다.

과수농사는 여름철 농약을 칠 때가 조금 힘들고, 수확할 때 사람 일손이 필요한 것 말고는 그다지 힘들지 않습니다.

물론 이건 육체적인 고단함을 얘기하는 것일 뿐, 정신적으로는 이런 저런 것들에 신경을 많이 쓰기는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농사를 고되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고된 농사일에서 벋어나게 해줄 신제품’을 팔려가 하거나, ‘농민들의 고된 삶에 도움이 되는 정책’들을 홍보하거나, “내 부모님은 평생 고된 농사일에 파묻혀 늙어가셨지...”라는 식의 지식인들의 회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반대로 농사를 낭만적인 일로 묘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국기행’이나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죠.

거기에 묘사되는 농민들은 온화한 표정 속에 유유자적하며 살아가는 신선과 같은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제 주변의 농부들은 가부장적이고, 속 좁고, 텃새가 있고, 뒷말 많고, 이해타산적이고, 자기중심적입니다.

물론 도시에서와는 달리 여유롭고 순박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모습이 ‘목가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 것들도 역시 도시인들의 팍팍한 삶을 달래주기 위해 농촌을 예쁘게 채색해서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일 뿐입니다.

 

제가 경험하고 있는 농사는 고되지는 않지만 돈벌이가 되지도 않습니다.

몇 만 평씩 대규모로 하는 경우가 아닌 소농들의 수입은 고만고만합니다.

제 경험으로 밭농사 천 평의 연 수입이 5백 만 원이었고, 시설을 갖춘 감귤농사 7백 평의 연 수입은 3천 만 원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 천 평씩 농사를 지어야 어느 정도 수입이 나오는데 그만한 땅을 갖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결국 고만고만한 수입으로 고만고만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농사의 현실이 이렇지만 저는 지금의 삶이 너무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신경 쓰지 않고

수시로 무시하거나 이용만 하려드는 것에 내성이 생기고

가난한 삶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기만 하면

농사만큼 여유롭고, 자율적이고, 사색적이고, 겸손하고, 풍부하고, 창조적이고, 활기찬 일은 없습니다.

 

 

3

 

시골에서 살다보면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머나 먼 외국의 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작년부터 두쫀쿠의 인기가 장난이 아니라는데 저는 머나 먼 중동의 특별한 간식을 보는 느낌입니다.

나중에 두쫀쿠가 중동의 간식이 아니라 한국에서 개발된 레시파라는 걸 알았지만 역시 저에게는 머나 먼 중동 얘기처럼 들릴 뿐이었죠.

두쫀쿠만 그런 게 아닙니다.

탕후루니, 대만 카스텔라니, 소금빵이니, 마라탕이니 하는 것들도 해외여행에서 맞보는 이색음식인줄 알았으니까요.

물론 아직까지 그 맛을 느껴보지도 못했습니다.

하다못해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허니버터칩도 먹어보지 못했으니까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탄 음식들마저 접해보지 못했는데 그보다 덜 알려진 음식들은 이름마저 신기한 경우가 많습니다.

연예인들이 이곳저곳 찾아가며 맛있는 것들을 먹는 프로그램들을 보다보면

이름도 생소하고 비주얼도 낯선 음식들이 우리나라에 참 많더군요.

그들은 이미 여러 번 먹어봤는지 아주 편안하게 주문하면서 맛에 대한 품평도 자연스럽게 하는데

그것을 지켜보는 저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그런 문화적 차이를 처음으로 느꼈던 것이 제게는 돈까스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분위기 한번 살려보겠다고 시내에 있는 경양식집을 갔었습니다.

그곳에서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돈까스를 처음으로 주문해봤고, 포크와 나이프의 사용법을 잘 몰라서 주위 사람들이 하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며 따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서울에서 자취를 하기 시작했을 때

어느 시장 안 분식점에서 초등학생이 돈까스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서울과 지방의 문화적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그때 실감했죠.

이제 세월이 흘러 한국도 많이 발전했고 세상은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있는데

그 문화적 차이는 오히려 점점 벌어지고 있는 느낌이니

이건 제가 세상물정을 너무 몰라서 그런 걸까요?

 

두쫀쿠가 뭔지, 탕후루가 뭔지, 소금빵이 뭔지는 모르지만

저는 그에 못지않게 다양한 것들을 새로 접하고 있습니다.

상추 종류가 수십 가지나 된다는 것을 농사지으면서 알게 됐습니다.

얼마 전부터 흔하게 먹는 청상추나 적상추 외에 다양한 잎채소들을 심어보고 있습니다.

로메인상추가 얼마나 아삭한지 알게 됐고, 샐러리의 향이 얼마나 좋은지도 알게 됐고, 청치커리와 적치러리가 맛과 모양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됐고, 고수는 너무 향이 독특해서 다른 것들이랑 섞어 먹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됐고, 흑상추는 별다른 맛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상추뿐만 아니라 배추 종류도 다양합니다.

얼갈이배추는 어릴 때 먹어야 더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봄동은 그 아삭한 맛이 의외로 오래간다는 것을 알게 됐고, 청경채는 단단해서 다른 배추와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지만 재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일반 배추는 결구 후에 속이 물러버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호박에도 애호박과 늙은 호박, 단호박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작년에 주키니호박이라는 것을 처음 재배해서 먹어보기도 했습니다.

조생양파, 만생양파, 적양파가 맛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고, 망고 수박과 애플 수박은 일반 수박과 또 다른 맛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 외에도 근대, 케일, 아욱 같은 채소들도 해마다 새롭게 재배해보면서 다양한 맛을 느껴보고 있습니다.

세상을 앞서가는 사람들은 이국적인 음식들을 새롭게 맛보고 있지만

세상에서 밀려난 저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다양한 채소들의 맛과 향에 푹 빠져있습니다.

 

 

 

(자우림의 ‘그래 제길 나 이렇게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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