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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40회 – 한겨울 시골살이

 

 

 

1

 

겨울이면 저는 할 일이 별로 없어 한가한 시간을 보내지만

주변은 아주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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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 가장 바쁜 곳은 감귤 선과장입니다.

가을에 수확하는 극조생부터 최근에 수확하는 만감류까지

인근에 있는 감귤 농가들이 계속 감귤을 실어오고 있어

매서운 추위에도 선과장은 쉬는 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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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장 앞에 있는 콜라비 밭도 얼마 전부터 수확을 시작했습니다.

한꺼번에 수확하지 않고 적당하게 자란 것들을 골라서 수확하기에

그리 분주하지는 않지만 겨울 동안 계속 수확을 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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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파 밭은 이미 반 넘게 수확이 진행됐습니다.

밭에서 쪽파를 뽑아들고 창고에서 일일이 다듬어서 포장을 하는데

난방을 하면 쪽파가 시들기 때문에 추위를 견디면 하루 종일 쪽파를 다듬어야 합니다.

쪽파 수확은 가내수공업에 가까운 일이어서 목과 어깨가 아프기는 하지만 시간은 잘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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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밭은 이제 수확을 시작했습니다.

여름 더위가 늦게까지 이어져서 파종이 늦어진 만큼 수확도 늦어졌습니다.

브로콜리 시세는 12월이 가장 좋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떨어지기 때문에 늦게 수확할수록 걱정이 많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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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나물 밭도 바쁜 것에서는 다른 작물에 뒤지지 않습니다.

짙은 초록색이 수확을 진행하면서 연한 초록색으로 변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기는 하지만

하루 종일 밭에 쭈그리고 앉아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아가며 수확을 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수확하는 시간도 꽤 오래 걸리기 때문에 취나물 수확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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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밭들은 바쁘게 움직이는데 무 밭은 한가합니다.

무는 자란 상태와 시세를 보고 하루 날 잡아서 한꺼번에 수확하는 것이어서

다른 작물들에 비해 여유롭기는 합니다.

다만 기온이 영하도 떨어지는 날이 계속 이어지면 무가 물러져버리기 때문에 날씨에 신경이 많이 쓰이기는 하죠.

 

계속 이어지는 추위 속에 할 일 없는 저는 조금 힘들어지지만

주위에 다양한 채소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는 모습과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활력을 얻습니다.

거기에 더해

저 멀리 눈 쌓인 한라산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도 아주 상쾌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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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느 날 도시의 삶을 포기하고 지역에 사는 이를 만난 적이 있다.

“여기는 없는 것이 많아서 참 좋아요.”

무슨 말인가 싶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없다는 건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거잖아요.”

그 말이 심장을 쿵 울렸다.

사실 지역은 없는 것이 많고 도시보다 불편해서 견디며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말은 내 생각이 틀렸음을 지적했다.

‘아, 그렇구나! 없다는 건 실패와는 다른 거구나.’

 

 

경상북도 상주에 사는 여성분들의 글을 모아놓은 ‘촌촌여전’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조그만 시골에서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시는 분들의 얘기였는데

김주애씨의 얘기를 듣다가 이 부분에서 제 마음이 공감되고 위로가 되더군요.

 

제가 대도시에서 살 때는 워낙 없이 살다보니까 풍요롭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시골에서 농사짓다보니 각종 채소들을 원 없이 먹을 수 있어서 지금이 더 풍요롭거든요.

물론 불편한 것도 많습니다.

교통편도 많이 불편하고,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주위에 연락할 곳이 마땅치 않을 때도 있고, 뭔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하고, 문화생활이니 하는 것은 거의 포기하고 살아야 하죠.

그런데 그런 조건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면 괜찮습니다.

덜 움직이고, 덜 소비하고, 미리 챙겨놓고, 마음을 비우면서 살다보면 삶이 여유로워집니다.

그리고 처음 농사를 지어보는 저는 배워야할 것이 많습니다.

작물재배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농기계 사용법과 관리요령, 농자재 구입 시기와 방법, 농약 비료의 선택과 올바른 사용방법, 하우스 유지 보수를 위한 다양한 기능, 판매처 선정과 대금처리 방식 등 해결해야하는 문제가 많습니다.

큰 문제는 돈을 주고 업자를 부르기도 하지만 웬만한 것은 혼자서 치리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씩 방법을 익히다보니 다기능인이 돼가고 있습니다.

간혹 시골에서 혼자 살면 외롭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기도 한데

제 경험으로는 대도시에서 살아갈 때가 훨씬 외로웠습니다.

오히려 개나 나무와 교감을 나누다보니 마음을 둬야할 대상이 많아져서 마음은 더 풍요로워졌습니다.

 

상주에서 살아가는 김주애씨의 얘기 속에서

저랑 비슷한 마음을 만나게 되니

제 삶이 훨씬 풍요롭고 여유로워지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3

 

곤경에 처한 이를 외면하지 않고 달려가 도와주려던 미국인이 무참하게 사살되는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정말 끔찍했습니다.

추악한 권력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전 세계가 지켜봤습니다.

어디 미국뿐입니까.

이란에서는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사살 당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조차 모릅니다.

몇 년째 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는 민간열차가 공격당하고 발전소가 공격당하고 도시가 쉼 없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올해 북반구에서는 겨울 추위가 유난히 심하다는데 우리나라보다 더 북쪽에 있는 우르카이나의 추위는 얼마나 혹독할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보일러가 켜진 방안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인터넷으로 세상 돌아가는 소식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고통에 가닿을 방법은 없고

이 추악한 세상을 바꿔낼 힘은 없는데

제 자신은 너무도 편안하기만 해서

미안하고 부끄럽다 못해 무기력해지기도 합니다.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보려

유엔난민기구에 조금의 후원금을 보내고

이렇게 읽는 라디오 원고를 쓰며

그 모든 것을 제 마음 속에 꾹꾹 담아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지만

“외면하지 말고, 참견하지 말고, 몸으로라도 바람을 막아주자”고 다짐해봅니다.

 

 

 

(Joanne Shenandoah의 ‘Peace And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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