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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해 처음 재배에 도전해 본 감자를 수확했습니다.
시험 삼아서 세 뿌리 정도 뽑아봤는데
꽤 튼실한 것도 있고 아주 자잘한 것도 있었습니다.
반찬으로 만들어 먹었더니 그 맛은 아주 좋았습니다.
처음 재배해 보는 것이라서 올 초부터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유튜브에 관련 영상들이 많아서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저마다 조금씩 얘기하는 것이 달라서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농사는 결국 자신이 직접 하면서 터득하는 수밖에 없기에
최대한 기본에만 맞춰서 재배를 했습니다.
처음에 씨감자에서 순을 내는 과정이 조금 긴장되기는 했지만
순이 난 감자를 심고 나서는 이런저런 과정들을 최소화하면서 재배했기 때문에
재배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인지 결과물이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좋습니다.
텃밭에서 이뤄지는 작은 도전이지만
이렇게 하나씩 배워가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갈 수 있어서
뿌듯하고 행복했습니다.
2
이래저래 사회생활을 이어가면서 서서히 지치고 영혼이 사그라들어 갈 때
과감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조그만 출판사를 차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돈도 별로 없고 경험이나 인맥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곧 마주하게 된 현실은 각오했던 것 이상으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기획, 섭외, 계약, 편집, 디자인, 마케팅, 판촉, 재고관리, 세무까지 모든 것을 혼자서 처리해야했습니다.
돈이 모자라서 각종 대출을 최대한 받아내고, 얼마 되지 않는 인맥을 총동원해서 비용절감 방안을 모색하고, 정 안되면 인터넷으로 공부하면서 혼자서 어설프게 실무를 처리하고,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서 각종 서점에 책이 깔리게 만들고, 어렵기만 한 세무업무 처리를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끙끙거려야 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책을 시장에 내놓아도 반응은 시원치 않은데, 또 다른 책을 기획하기 위해 작가와 자금을 알아봐야 합니다.
그렇게 답이 나오지 않는 일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인 출판사 사장님들이 모여 술자리 푸념처럼 하던 얘기를 모아서 책으로 만들었는데
그분들의 얘기가 솔직하고 담백한 매력이 있어서 좋더군요.
책 속에서 어떤 분이 “성취하는 삶 대신 경험하는 삶을 살게 됐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제 마음에 살포시 와 닿았습니다.
뭔가를 이루려고 현재를 참아가며 미래로 달려가기 보다는
지금의 삶에 충실하며 조금씩 쌓여가는 경험에 가치를 두겠다는 뜻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그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삶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소중한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에게 물어봤습니다.
“나는 지금 내 삶의 경험을 제대로 느끼고 알차게 쌓아가고 있을까?”
3
2년 전 ‘읽는 라디오 다시!’를 시작할 때
병든 감귤의 태반을 버려버리고 나머지도 가공용으로 헐값에 팔아야 했다는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새순과 꽃봉오리가 올라오는 나무를 바라보며 “다시! 시작해보자”라고 주문을 외웠었죠.
그러고 나서 다음해에는 수확량도 많았고 시세도 좋아서 뿌듯한 기분을 느꼈지만
올해는 수확량도 부족하고 품질관리에도 실패해서 깊은 한숨을 쉬어야 했습니다.
귀농하고 10년을 넘겼고 감귤농사는 8년을 넘기면서
“이제 조금 농사에 대해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또 다시 참담한 현실을 마주하니 농사가 무서워져서
“다시! 시작해보자”고 제 자신을 격려하기도 힘듭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새순들은 다시 왕성하게 커가고
이제 막 달리기 시작한 열매들은 커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다시 나무를 살피면서 이것저것 노력을 해봐야겠죠.
그동안 배우면서 익혀왔던 것들에 좀 더 충실하면서
주위의 조언들을 참고해서 새로운 시도들을 조금씩 해보려고 합니다.
욕심내지 말고 조심스러우면서도 용감하게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이렇게 배우는 경험들이 또 쌓여가면서
조금씩 나아지리라 기대해보는데
나의 경험들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류금신의 ‘또 다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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