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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혜원씨가 쓴 ‘웅크린 마음이 방안에 있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소위 ‘은둔형 외톨이’라고 불리는 이들과 함께해왔던 경험을 녹여놓은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 손이 갔던 이유는 제가 그런 삶을 살았었고, 지금도 반은 ‘은둔형 외톨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 무수히 널려 있지만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던 존재들은
어느 날 흉악범이 돼서 언론에 나타났을 때에야 세상이 조명을 합니다.
그리고 정신병원이나 교도소, 상담소나 재활시설 같은 곳으로 그들을 보내야한다고 난리를 치고는 시간이 지나면 또 관심에서 멀어져버립니다.
그런 세상의 비정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도 들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이 외톨이들의 현실이죠.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상대를 대상화해서 관찰하고 분석하고 진단하는 식의 전문가적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가 닿을 수 있도록 교감하고 응원하고 기다려주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을 향한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자신만의 심연에 빠져있는 사람은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섣불리 자기 얘기를 하지 않으려하고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하지만 동정이나 자기 기준으로 접근하려는 사람을 극도로 혐오하고
마음이 통하는 이에게 눈물 나도록 고마워하지만 사소한 것에 고슴도치처럼 날카로워지기 일쑤입니다.
심연의 퇴적물처럼 쌓이고 쌓인 마음의 상처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깊기 때문이죠.
책 속에서 얘기하는 여러 사례들이 너무도 생생한 나의 경험이었기에 공감하면서 푹 빠져들었습니다.
상담을 통해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경우와 그렇지 못했던 경우에 대한 얘기도 듣고, 세상의 편견에 대한 설명도 듣고, 가족과 주변인들이 겪는 힘겨움에 대한 얘기도 들으면서 제가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것들도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공감과 거리두기를 함께 해 나가다보니 지금의 제 위치가 살포시 보이더군요.
그 깊은 심연에서 올라오기는 했지만 광장으로 나가지는 못한 채 어정쩡하게 서 있는 저는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연민의 마음으로 안타깝게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경험해봐서 알지만...”이라며 어설프게 조언하며 섣부르게 다가서려는 꼰대의 모습이 보이는 겁니다.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이후 제 자신에게 다짐했던 말이 있습니다.
외톨이들과 교감하면서 동시에 꼰대 기질이 일어나려는 제게
그 말을 다시 한 번 들려주고 싶어지네요.
외면하지 않기
참견하지 않기
몸으로라도 바람을 막아서 온기를 지켜주기
2
나도 언젠가 강의에서 말했었다. 나를 위해 쓰려고 하면 나 자신은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그러나 남을 위해 쓰려고 할 때 나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 된다고.
김진영씨가 쓴 ‘아침의 피아노’라는 책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항암치료와 죽음을 곁에 두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써놓은 글들인데요
그 와중에 이런 깊은 사색의 말을 남겨주시니 제 마음이 살짝 움직였습니다.
철학자답게 약간 멋을 부린 문장이기는 하지만
자신만 보지 말고 주위를 보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자는 이 말이
저를 위한 삶의 지침서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살짝 제 입맛에 맞게 고쳐 쓰고 싶어지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내가 의지하기에 내 자신이 너무 허접한 존재로 보이지만
남이 나를 알아봐주면 나는 더없이 든든한 존재가 된다.
철학자의 이타적인 사색의 결과물을 속 좁은 속물의 치기로 바꿔버렸네요. 헤헤헤
3
이곳의 4월은 여유로우면서 분주하고 풍요롭습니다.
지난 겨울 동안 바빴던 브로콜리 밭은 수확을 다 마치고 깔끔하게 갈아놓았습니다.
여름 작물을 하기 전에 잠시 밭이 쉬는 시기입니다.
월동 작물 중에 비교적 수확이 늦은 편인 양파는 이제 수확이 한창입니다.
남의 밭이지만 크고 단단한 양파들이 널려있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올해는 양파가격이 좋다고 하는데 갑자기 중국산 양파를 수입한다고 해서 말이 많더군요.
그 옆 밭에는 비교적 이르게 심는 단호박이 터널 속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호박 줄기들이 비닐터널을 뚫고 나와 왕성하게 뻗어나갈 겁니다.
그 왕성한 생명력을 지켜보는 맛도 괜찮습니다.
저희도 감귤을 수확했습니다.
감귤 상태는 아주 좋은데 수확량이 너무 적어서 흐뭇함과 아쉬움이 함께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또 성과와 과제를 확인하고 내년에는 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이제 기온은 점점 올라가고 해야 될 일들은 늘어나겠죠.
이럴 때일수록 여유와 풍요로움을 가슴에 잘 담아둬야겠습니다.
(백건우의 ‘Chopin: Nocturne No. 1 in B flat minor, Op. 9 No.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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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감귤은 겨울에 수확하는거 아닌가요? 시장에 가면 3월이면 감귤이 자취를 감추고 천혜향? 낑깡, 미국오렌지 이런거만 팔던데요. 봄에 수확하고 계시는 감귤이 궁금합니다. ^^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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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만감류는 겨울에 수확을 합니다. 저희가 재배하는 거는 카라향이라는 건데 이건 만감류 중에 가장 수확시기가 늦어서 4월에 수확을 합니다. 요즘 감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새로운 품종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는데, 카라향 말고도 또 다른 품종이 4월에 수확한다고 하더군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