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주말 그리고 월요일: 몇 가지 좋은 느낌들.

2008/11/17 23:53 생활감상문

토요일 방콕 모드 가운데 한참 전 내려받아 놓은  <겨울 이야기>(Conte d'hiver) 드디어 보다. 역시 겨울에 보길 잘했단 생각(그럼 <봄 이야기>는 역시 봄에 봐야 할까?). 뭔가 춥다는 기분과 완전 잘 어울림. 팰리시 말대로 "선택에 대한 선택" 조심. 기분이 내키면 겨울 휴가 때 한 번 더 봐도 좋겠다. 초반 도서관 사서와 헤어지는 장면에서 살짝 졸았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본 로메르 영화 가운데 이 영화의 프랑스어가 제일 단순해서, 프랑스어 대본이나 자막 파일을 구할 수 있다면 한글 자막 가려놓고 독학용 교재로 써도 좋겠다 싶다.(영상용 번역이어서 그런지 몇 군데 딴소리로 옮겨놓은 데 발견하기도 했지만, 대세엔 뭐 지장 없으니까)

 

4월 말 이후 6개월 이상 미뤄둔 각종 티켓 정리를 어제 드디어 했다. 여름옷도 이제서야 집어넣는 판에 화장대 위에서 먼지만 쓰고 있는 티켓들도(어차피 버릴 것도 아니니) 제자리 찾아줘야겠다 싶어서 티켓 노트로 고고씽~. 영화, 연주회, 뮤지컬, 전주, 무주, 상하이... 공짜 표도 많았지만 생각보다 많이 돌아다녔다 싶기도 했다. 중간중간 잃어버린 티켓이 있다는 것도 발견하고. 겨우 날짜순으로 정리해서 동행인(Y군, Y양, M군, H양, SW양, J양 etc. et biensûr moi toute seule)만 적어놨으니 그 코멘트 정리는 또 언제 한단 말인가? 이것도 겨울 휴가 때? 여하간 10월 11일 이후 극장 가서 영화 본 일이 없다. 바빠서..라기보다는 개봉 영화 중에 딱히 땡기는 게 없어서...가 답이라서... 좀더 기다려보자 싶다. 그동안 10여 년 만에 성치님 옛날 모습이나 감상해 드리면서...

 

학교를 떠나기 1년 전부터 한의원 출입이 잦아지고, 수영, 동네 산보, 인라인 스케이팅, 자전거, 한강변 걷기, 재즈 댄스, 스윙댄스, 등산, 스레드밀, 웨이트 트레이닝 등 각종 운동에 입문해 저질 체력을 보강해 오긴 했지만... 역시 최고(最高이자 最故)은 입운동이다. 어제 간만에 편집자 후배 C양을 만나기 전에는 살짝 시큰둥했는데.... 만나서 세 시간 [주로 내가] 왕수다를 떨었더니 기분 완전 좋아져서 씩씩하게 일하러 갔다. 좀더 적극적으로 주말 점심시간을 활용해 사람 좀 만나야겠다 싶어졌다. ㅋㅋ

 

11월 들어서면서 요가와 야근 때문에 늦게 들어오고, 영어회화 수업 때문에 일찍 나가는 루틴 속에서 홈베이킹은 당분간 포기하고, 요리도 최소화하려 했으나... 거참 이상하게도 나는 요리를 하면 에너지를 받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요가 수업 다닌 지 한 달 반쯤 지난 지금... 몸 상태가 꽤 좋아져서 그토록 두려워하던 본격 야근 모드도 제법 잘 버티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귀찮아도 꼬박꼬박 다니는 수밖에 없다 싶다.T T 요리는 하고 싶다고 한번에 몰아서 몇 시간 동안 이것저것 하는 버릇 버리고, 간단한 요리법으로 퇴근 후 스트레스 풀 정도의 반찬 한 가지쯤 만드는 정도로 하고.

 

얼마 전[가깝게는 한 달, 멀게는 여름]부터 [물리적으로보단 가짓수 면에서] 일을 완벽하게 감당하지 못하고, 그것에 스트레스 받으면서... 일을 대하는 내 태도를 좀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이전의 내가 메쏘드 연기를 하는 배우―철저히 저자의 의도를 추체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거나 원고 속 장소를 방문한다거나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를 본다거나는 식으로 원고와 싸우고 진빼고 기어이 납득해서 내 원고라고 부르는 단계까지 가는 것―같기만 했다면 지금은 뭐랄까,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 출신의 아티피셜한 연기를 하는 영국 배우―기본적인 편집 문법들을 충분히 숙지하고 각 원고에 합당한 방식으로 조합하면서 그 순간순간에만 원고와 접속하는 편집자―의 모드를 추가해 보자는 거다.(무슨 맥락인지 굳이 이해하고 싶은 분은 이 링크 참조) 다양한 원고를 동시에 접하고 진행해야 하는 지금 원고마다 개별적인 접신을 했다가는, 일을 주도적으로 해나가기는커녕 모든 원고에 대한 어설픈 환상 속에서 정신분열증에나 걸릴지 모른다. 이럴 때는 그저 나를 자신으로 온전히 보전할 필요가 있다. 굳이 따지자면 70대의 이순재처럼... 일정한 퀄리티와 무한 변신 능력을 갖춘 편집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하는 방식뿐 아니라 일하는 태도조차도 몇 가지 모드를 가지는 거랄까? 뭐 이것도 과욕이긴 하지만... 그냥 쫓기기만 하는 것보단 이런 설정을 해서 약간의 여유를 되찾는 게 나쁘지는 않잖아. 이런 생각으로 어제 C양에게도 약간 너스레를 떨고.... 내친 김에 필~ 받아 그간 '에크리 덩 에디트리스'(생각해 보니 이도 관사를 잘못 썼잖아!)라 불렀던 '분류'를 '편집자-되기'로 개명했다. ^ ^ 그랬더니만 우연의 일치로다가 오늘 조회시간에 Y사장님은 2년차 후배들에게 이런 내용을 책-기계가 되기 위해서 일단 책-세계에 빠져들라(취향을 버리기 위해 취향을 가지라)는 주문으로 내놓으신다. '하~! 어느 정도 일의 구조 때문에 도달할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2년차들이 이제부터 들어가야 할 단계를 난 이제 막 벗어나려 하고 있군... 방향을 아주 잘못 잡지는 않았어.' 정도의 느낌. 뭐 그래도 갈 길은 멀고, 게다가 모퉁이마다 교차로는 나타날 테지만.

 

아, 이렇게 주절거렸더니 12시가 목전이다.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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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7 23:53 2008/11/17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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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미영  2008/11/20 1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 블로그 와본다 하면서 이제서야.. 전체적인 느낌이 책 만드는 사람같은데..^^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쌓여서 세계수준(^^)의 편집자가 되길.
  2. 강이  2008/11/20 2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와... 언니~~~ 고마와요. 자주 놀러오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