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박현채...

얼마 전 박현채 선생님의 글을 다시 뒤적이다가, 전집 7권에 실린 89년인가 제2회 단재 상 수상 기념 강연의 녹취록을 봤다. 초입에서 박현채 선생이 세 가지를 언급하는데, 참으로 감동적이다. 지금 원문을 가지고 있지 않아 정확히 옮기지는 못하지만 대략 이런 이야기였다.

 

첫째, 신채호 선생이나 단재 상을 받는 박현채와 같이 역사에 기록되는 사람도 있지만, 역사의 진보에 공헌한 무수한 기록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둘째, 살아오면서 해온 모든 것들을 살아 생전에 보상받고자 하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

셋째, 주제넘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하기 보다는 고전에 충실하고자 했으며, 자신의 작업이 그러한 고전을 벗어나 어떤 독창성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것.

 

수상소감으로 볼 때, 이와 같은 발언들은 상당히 긴장감을 담고 있는 것 같다. 기록되지 않는 민중의 역사적 주체성을 전제하는 그는 상을 존재하게 해주는 더 큰 조건으로서의 기록되지 않는 민중을 언급함으로써 시상자와 수상자 모두를 긴장케 한다. 나아가, 그는 개체의 삶의 한계에 지적 실천의 작업을 가두지 않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개인의 지적 작업을 더욱 긴 역사적 시간대 안에 위치시키면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세대의 소유물이 아닌, 역사적 민족/사회의 자산으로 공유화하고 있다. 나아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역사로부터 단절되기 보다는, 고전에 충실한 지적 실천의 태도를 취한 것 역시 새로운 것에 휩쓸리는 근시안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학술풍토에 보내는 경고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나는 90년대 이후 나온 어떤 지적 성과들도 박현채만큼의 독창성을 담보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박현채로부터 한발자국도 더 나가지 못한 느낌이 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