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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 들어온지 5년을 넘어 6년차로 접어들면서 대만 생활의 새로운 단계를 구상하게 된다. 이미 그동안 내가 대만의 외부에 있지 않음을 일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대만의 친구들은 나를 더이상 손님으로 대하지 않는다. 즉, 나의 언행에 대해 손님에 대한 아량을 베풀지 않는다. 처음 왔을 때, 나를 손님으로 대했던 무수한 친구들 가운데 지금까지 남은 절친은 손에 꼽는다. 대만 내부로 들어오는 과정 속에서 불가피하게 겪게 되는 일이랄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처음 들어와서 공교롭게도 학술/연구 영역 보다 먼저 알게된 영역이 연극계이다. 늘 멀게 느껴진 연극/예술/문화라는 테마가 슬쩍 나의 삶으로 들어온 셈이다. 물론 당시에는 그 지점으로 파고들 능력도 희망도 없었다. 사실 당시 그 인연은 아시아의 사회운동적 네트워크에 빚진 바 큰데, 덕분에 석사 과정 초기에 대만의 사회운동 전반을 두루두루 접촉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사회과학 석사논문의 본질적 한계를 추궁하면서 '문화'로의 전환을 선택했고, 그 이후에는 다시 '역사'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여전히 '문화'와 '역사'는 나의 핵심적 범주이다.
그러던 가운데 근래에 다시 나는 '예술'과 인연을 맺고 있다. 다시 연극을 통해서인데, 종교(鐘喬, 중차오), 왕묵림(王墨林, 왕모린) 선생과 같은 연출가 및 한국의 극단 <쉼>과의 직간접적인 작업이 상당한 자극을 주고 있다. 사실 그래봐야 작품 제작 과정에서 필요한 통번역을 맡아주는 것인데, 통번역이 양방의 이야기와 맥락에 대한 충실한 이해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커다란 도전이기도 하다. 극단 <쉼>은 왕묵림 선생을 초청해서 전태일과 이소선의 인간적 면모를 새롭게 부각시킨 <엄마, 안녕>이라는 극으로 대만 및 한국에서 공연한 바 있다. 이번에 <차사극단>이 선보인 이스라엘 연출가 길 알론 선생의 작품 <보이지 않는 마을>은 극단 <쉼>의 배우를 초청해 대만에서 극을 만들고 공연했다. 내 딴에는 처음 연극평을 써보았는데, 다소간 외삽적인 부분이 있었지만, 나름 나의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었던 점에 만족한다. 내년에는 왕묵림 선생이 <안티고네>를 북경, 대만, 한국의 배우들을 동원해 창작할 예정인데, 그 초기 구상을 듣고 이후에 함께 작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특히 왕묵림 선생은 '아시아'와 '제3세계'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바탕으로 매우 실험적인 연극을 만들고 있다.
사실 이러한 번역의 일은 그동안 거의 끊이지 않고 계속해왔던 것인데, 문득 그것이 외부에서 맴도는 느낌이 아니라 나의 논의 안으로 들어왔음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느낌이 내가 전리군 선생의 '문학'에 대한 이해의 노력과 관련됨을 직감한다. '자유'와 '평등'의 문제와 관련해서도 논의를 풍부하게 해줄만한 자원들을 예술적 층위와 관련해서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도 든다.
늘 새로움은 이렇게 숙성의 과정을 거쳐 별안간 내 앞에 던져진다. 나는 그것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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