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단상
분류없음 2012/08/14 03:45언젠가 문득 홀에 앉아 패스트푸드를 먹는 맥도날드 고객들을 쳐다보게 되었다. 스몰 커피 공짜 프로모션에 이끌려 제집 드나들듯 매일 맥도날드 매장을 찾던 어느 날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그리스, 지중해 연안, 동유럽 등지에서 이민온 이른바 '이민자'들이었고 또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워낙 황인종이 드문 동네라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매장에 들어서면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그들의 건조한 눈에서 삶의 에너지와 활력을 찾기는 좀 어렵지만 그래도 그들은 살아있다. 그들의 언어로 떠들고 대화하고 신문을 읽고 소리는 나지 않지만 캡션이 흐르는 텔레비젼을 본다.
한국에 있을 적엔 드물게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 식당을 찾곤 했다. 아주 드물었다. 그래서 무엇을 골라 어떻게 먹어야 할지 결정하는 일이 '일'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 나라로 거처를 옮긴 뒤 가끔 억지로라도 끼니를 해결해야 할 때, 사실은 무엇을 먹어야 할지 난감할 때 나는 어느새 맥도날드 식당에서 꾸역꾸역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떡볶이와 오뎅, 순대 같은 것들이 무척 그립고 라면이라도 팔면 좋겠는데 하는 부질없는 바람을 품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나와 같은 이주자들에게는 결정의 폭이 대단히 좁다. 좁을 것이다. 맥도날드 매장을 노인정 분위기로 탈바꿈하는 데에 이바지하신 그 어르신들도 당신들의 나라에 계실 적엔 맥도날드 버거와 프렌치프라이드포테이토로 끼니를 때우는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 어르신들도 나름대로 당신들의 입맛에 맛는 무엇보다 저렴하고 '괜찮은' 음식을 드셨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그리스식 음식을 취급하는 식당, 지중해식 음식을 파는 식당은 무엇보다 '비싼 편'이다. 나? 한국 식당? 글쎄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닌데 마음 놓고 먹을만한 수준의 음식도 드물고 무엇보다 코리아 타운이나 다운타운으로 가야 한다. 꾸역꾸역 억지로 한국 식당에 가면 먹으면서도 먹고나서도 아, 이 맛이 아닌데 싶은 마음에 괜시리 울적해진다.
나는 이제 맥도날드, 서브웨이, 무슨무슨 버거 따위의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일에 잘 단련되었다. 특히 무선 와이파이까지 제공하는 맥도날드에 가는 일은 이제 일도 아니다. 특히 맥도날드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영수증 번호를 집어넣어 피드백을 제공한 뒤 얻는 쿠폰을 마련하는 일에도 제법이다. 그 쿠폰 한 장이면 버거 하나 값에 사이드샐러드와 음료를 덤으로 먹을 수 있으니 거의 4-5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한 끼를 아주 든든히 해결할 수 있다.
어떤 날 가만히 앉아 이런 삶의 변화를 찬찬히 새겨보면 막연한 상실감 같은 데에 젖어드는 것 같아 까닭없이 슬프기도 하지만 또 이렇게라도 살아지는 게 인생이다 싶어 또 밥을 지으러 그냥 훌훌 털고 일어나기도 한다. 배는 하염없이 늘어지게 나오고 아 정크 푸드 때문인가, 나이 탓인가. 잘 되겠지. 아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