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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노동]우리의 의지는 아직 꺾이지 않았다!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3/02 14:55
  • 수정일
    2011/03/02 15:45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우리의 의지는 아직 꺾이지 않았다!

다시 불붙는 현대차 비정규직 2차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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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2차투쟁이 시작되었다. 2월10일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법원은 또다시 최병승 조합원의 손을 들었다. 대법판결을 지켜봐야한다던 사측은 파기환송심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더니, 파기환송 확정판결이 난 지금은 또다시 항고했고 판결을 최병승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며 시간을 끌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2일에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시 양재동 본사 앞에 섰다. 그러나 이날 예상되었던 ‘2차파업 결의대회’는 ‘금속노조 결의대회’로 그 수위가 낮아졌고 항의서한 전달이나 본사를 타격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은 없었다. 어렵게 본사까지 온 조합원은 집회가 끝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했다. 금속노조 관료들의 형식적인  행사치례만 있었을 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열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9일부터 이상수 지회장이 조계사에서 단식농성 중이고 12일 현대차 본사 옆 광고판에서 노덕우·김태윤 전 수석부지회장 2명이 고공농성을 하다 진압당하기도 했다. 현재 현대차 울산 각 공장에서는 노조간부와 활동가에 대한 징계해고가 속출하고 있고 이에 맞서는 조합원들의 잔업거부, 부분파업 등이 전개되고 있다. 비정규직지회는 17일 2차파업 출정식과 19일 조합원 총회를 가지고 구체적인 투쟁계획을 논의 중이다.
[The FocuS]는 점거해제 이후 재투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투쟁하는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시트사업부 김응효 대표와의 인터뷰는 서초경찰서 앞에서 집회신고 투쟁을 벌이던 지난 1월26일, 2공장 정구영 대의원과 이도한 대의원은 파기환송심 확정판결 다음 날인 2월11일에, 조미선 4공장 현장위원은 이후 전화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음을 미리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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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FocuS]소말리아 ‘해적소탕’과 대한민국 ‘군사주의’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1/03/02 14:27
  • 수정일
    2011/03/02 15:46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새해 벽두부터 피랍소식과 구출소식이 연이어 전해졌다. 지난 1월 21일 삼호주얼리호는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당한지 6일 만에 구출됐다. 군 당국은 현지에 파병된 청해부대로 작전을 마쳤으며, 한국인 8명 등 선원 21명 모두가 무사하다고 발표했다. 석해균 선장이 총상을 입긴 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납치된 선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던 가족들은 지옥에 갔다 온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런데 생명에 지장이 없다던 석 선장의 병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됐다. 의료진에 따르면 석 선장은 최소 6발 이상의 총탄을 맞은 것으로 확인됐다. 초기 응급조치와 무관하게 처음부터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군 당국이 ‘작전성공’을 부각시키기 위해 축소 발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에 충분했다. 칭찬 일색의 과열된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이번 작전의 실상도 하나씩 드러났다.

 

MB 작품?

청해부대의 이른바 ‘아덴만 여명’ 작전이 끝나자, 이명박은 국방부를 제치고 직접 TV 앞에 섰다. “내가 명령을 내렸다” 한 마디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이명박은 자신이 군의 수장으로서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했음을 숨기지 않았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에서 고뇌에 찬 결단으로 외계인을 물리친 대통령 같은 설정이었다. 실제로 ‘아덴만 여명’ 작전은 ‘이명박 특명작전’으로 진행됐다.
삼호주얼리호 이전에도 소말리아 해적들에 의한 납치는 수차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신속한 대응이 이뤄졌다. 이명박 특명작전은 피랍 하루 만에 시작됐다. 이명박은 할 수 있는 수단을 다 써서 작전을 수행하라고 지시했고, 군 당국은 지체 없이 군사작전을 펼쳤다. 하지만 1월18일 1차 작전은 해적들의 완강한 저항과 부대원 3명의 부상으로 실패로 끝났다. 2차 작전에서도 추가 인명피해가 우려됐다. 그런데도 이명박의 답은 “계속 하라”였다.
이명박에겐 피랍선원 구출작전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새해를 악재와 함께 시작한 이명박은 레임덕 위기관리에 직면했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낙마사태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반발까지 불러왔고, 구제역 늑장대응과 치솟는 물가불안으로 여론악화까지 겹쳤다. 피랍사태를 더 이상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공언한 건 명분일 뿐이었다. 또한 해외 군사작전은 연평도 포격사태 이후 거세진 ‘안보무능’ 지적을 만회할 기회로도 판단했다.
 2차 작전은 일종의 도박이었다. 1차 작전의 실패 이후 해적들의 경계는 한층 강화되었다. 해적들이 납치된 선원들을 인간방패로 삼아 저항할 수도 있어, 작전과정에서 선원들의 신변보장은 불확실했다. 하지만 이명박은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군은 4500t급 최영함의 함포 사격은 물론 링스헬기의 기관총 사격까지 동원했다. 석 선장의 총상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지율 반등과 정국 반전을 노린 이명박에게 단 한 명의 인명피해는 그저 불가피한 것이었다.
피랍선원 구출작전 이후 이명박은 대대적인 치적홍보에 나섰다. 이명박이 멍석을 깔아주자 군도 덩달아 춤췄다. 언론브리핑을 자처하며 작전 당일의 시간대별 상황과 1차 작전과 2차 작전의 전술비교까지 상세히 밝혔다. 압권은 작전 실황을 담은 영상공개였다. 천안함 침몰 당시 군사기밀을 내세워 입을 꽁꽁 틀어막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도 물론 있었다.

 

실종된 민주주의

이명박에게 이번 작전은 ‘완전작전’이어야 했다. 말 그대로 결점 없이 완벽해야 했다. 이명박의 대국민 담화문과 군 당국의 발표에는 어떠한 인명피해도 담겨 있어서는 안 됐다. 때문에 석 선장의 부상은 축소되어야 했고, 석 선장이 해적뿐 아니라 해군이 쏜 총에도 맞았다는 사실은 아예 은폐되어야 했다. 천안함 침몰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정보에 대한 통제는 공공연히 벌어졌다. 사람들을 ‘어리석은 백성’으로 알고, 또 ‘어리석은 백성’으로 만들려는 이명박의 시대착오적인 인식은 또 한 번 드러났다.
사태는 <부산일보>가 1차 작전의 실패를 보도하면서 더욱 증폭되었다. 국방부는 <부산일보>를 비롯해 <미디어오늘>과 <아시아투데이>에 대해 국방부 출입금지와 취재자료 제공금지 조치를 내렸다. 엠바고(보도시점 유예)를 어겨 구출작전에 지장을 주고 피랍선원의 안전에 위협을 줬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해당 언론은 국방부의 브리핑을 받은 적도, 엠바고를 수용한 적도 없었다. 엠바고는 취재원과 언론 사이에 성립되는 약속으로 법적 구속력 같은 건 전혀 없다.
더구나 엠바고 수용여부는 전적으로 언론의 몫이다. 언론은 각자 판단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1차 작전이 실패한 상황에서는 피랍선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섣부른 군사작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것이 필요했다. 국방부의 주장대로라면 오히려 구출작전 이후 군에서 밝힌 군사작전의 전략과 기밀이야말로 더 문제가 된다. 해적들에겐 그만한 좋은 전투교범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국방부의 초강경 대응은 작전실패에 따른 책임을 피랍선원의 안전을 이유로 은폐하고, 엉뚱한 곳에 분풀이한 것에 불과했다.
국방부의 제재조치는 언론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2차 작전이 성공했음에도 엠바고 불응을 문제로 삼은 것에는 분명 의도가 담겨 있었다. 물론 이명박의 ‘완벽작전’에 흠을 낸 괘씸죄가 적용된 측면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건 이러한 제재조치가 전형적인 언론탄압이라는 점이다. 군의 군사작전에 보도자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강한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본때 보이기용인 것이다.
과거 70~80년대식의 보도통제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라는 최소한의 민주주의조차 권력의 입맛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음이 또 한 번 드러났다. 비판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정보를 통제하고, 자기 할 말만 하겠다는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은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이러한 독선적인 일방주의가 국익을 내세운 군사주의 앞에서 용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익과 군사주의

1차 작전과 2차 작전 사이에 대다수의 언론은 다른 나라의 해적소탕 사례를 집중보도했다. 국방부의 엠바고 조치에 협력하며 해외의 진압사례만 유독 부각시킨 건 2차 작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익’이라는 명분 아래 벌어지는 군사적 해결은 당연하거나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민주주의 사회’ 대한민국에서 정보가 통제된 건 정권의 일방적인 강요 때문만은 아니었다.
군사작전의 실상은 석 선장의 부상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군사작전은 어디까지나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정치권력의 각본대로 추진되었으며, ‘자국민의 보호’는커녕 ‘자국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도 군사작전에 대해 지지 또는 방조한다는 건 군사주의를 강화하려는 정권의 노림수에 편승한 것이었다. 그렇다보니 재발방지 대책에서도 군사주의는 더욱 더 강화되고 있다.
현재 피랍사태를 막기 위한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는 ‘대양해군’이 떠오르고 있다. 효과적인 해적소탕 작전을 위해선 최소 2∼3척의 대형함정을 원거리로 파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군 당국은 청해부대에 링스헬기 한 대를 더 보강하는 한편 군수지원함을 추가 파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참에 구축함 한 대로 운영되고 있는 청해부대의 규모를 확대·개편하겠다는 것이다. 피랍선원 구출작전을 계기로 해군력 증강 담론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대양해군에 대한 지지는 보수 진영뿐 아니라 개혁을 외치는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한겨레>는 “소말리아 인질 구출작전이 성공한 것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에 꾸준히 해군 전력을 증강한 데 힘입은 바가 크다”(2011년 1월25일 <한겨레>)는 목소리를 전하며 대양해군의 선두에 섰다. 천안함 침몰을 계기로 추진된 이명박의 연안해군은 비판의 대상이 된 반면, 청해부대의 최영함 같은 구축함 6척을 건조한 김대중·노무현의 대양해군은 칭송의 대상이 됐다.
대양해군에 대한 이러한 호의는 이명박 정권을 ‘안보무능’ 정권으로 규정하면서부터 강화되었다. 천안함 침몰 이후 특히 연평도 포격사태를 겪으면서 자유주의 진영이 내세우는 평화의 의미는 점차 퇴색됐다. ‘평화주의’ 대신에 ‘안보주의’가 자리를 꿰차기 시작했다. 자유주의 진영에 손을 내밀고 있는 진보신당의 심상정은 자신의 블로그에 심지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기도 했다. “국방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참담한 인식 수준에 대한 우려는 이번 연평도 사건을 통해 현실로 증명되었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3년 만에 상승의 최정예 우리 군이 연전연패의 당나라 군대가 돼 가고 있는 것은 인정하기 싫지만 우려스런 현실이 되고 있다.”(2011년 1월14일 <한겨레21> 재인용)
안보주의는 군사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명박에 대한 반발은 김대중·노무현에 대한 향수 속에서 안보무능의 극복, 즉 개혁과 진보를 외치는 쪽에서도 강한 군대를 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양해군으로 상징되는 해군력 증강은 대수롭지 않게, 오히려 강렬한 욕구로 표출되고 있다. 결국 군사주의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보수진영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열망이 정당화되기 위해 소말리아 해적들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야 했다.

 

악순환

지난 1월30일 생포된 소말리아 해적 5명이 한국으로 압송됐다. 수사결과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해적들은 대부분 이십대로 밝혀졌다. 해적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은 올해 나이가 열아홉 밖에 안 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를 다니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각종 언론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같은 인간의 입장에 서 있지 않았다. 흡사 짐승 쳐다보듯 했으며, 악마로 그려내기 일쑤였다.
생포된 해적이 빛나는 전리품이라면, 사살된 해적은 혁혁한 전과였다. 군사작전 과정에서 무려 8명이나 죽었지만, 그 죽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꺼릴 것 없이 죽여도 되는 ‘악의 화신’이었을 뿐이다. 최소한의 인도주의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소말리아 청년들이 왜 해적이 되었는지(상자기사 참조)도 관심 밖이었다. 소말리아 정부가 해적 시신 8구를 받아들인다고 하지 않았다면 그 시신들은 정말로 인도양 공해상에서 수장되었을 것이다.
급할 것도 없는 해적수송에 전력을 기울인 이명박은 득의양양한 표정이다. 석 선장의 이송, 선원들의 귀국에 이어 삼호주얼리호의 귀항까지 아덴만 이슈를 2월 말까지 끌고 가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이번 작전으로 소말리아 해적에 의한 피랍사태가 근절된 건 아니다. 삼호주얼리호 구출사건으로 해적들이 보복을 다짐하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피랍사태는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소말리아 해역은 세계 물동량의 20%, 유류수송의 25%를 차지하는 무역항로다. 그런 만큼 1년에 평균 2만여 척의 선박이 지나간다. 이중 한국 국적의 선박은 280여 척으로 추산되는데, 선주들은 위험이 뻔히 보이는데도 소말리아 해역으로 계속 배를 보내고 있다. 반면 남아공 희망봉의 우회항로는 꺼리고 있다. 선원들 목숨보다는 물류비용 절감에 따른 이윤창출이 더 중요한 까닭이다. 피랍사태가 벌어져도 선주들 입장에선 배를 되찾는 게 가장 급선무다. 그러니 협상금 같은 비용이 들지 않는 군사작전은 마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명박을 수장으로 내세운 정치권력 또한 해외 군사작전에 적극적이다. 당장 이번 구출작전을 들먹이면서 해외파병을 당연시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유별나서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또한 아프간·이라크 파병 등 해외파병을 강행했다. 세계 곳곳의 갈등과 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 몫 챙길 수 있다고 여기는, 패권국가와 닮아가려는 군사주의 야망은 동일했다. ‘자국민 보호’는 명분일 뿐, 중요한 건 자본과 보조를 맞춰 그들의 든든한 후견인이 되는 것이었다.
다행히 석 선장의 병세는 피격 2주 이후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석 선장의 병세를 걱정하던 많은 사람들도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건 지금 이 순간에도 소말리아 해상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손쉽게 결정한 군사작전이 그만큼 손쉽게 피의 보복을 가져오지는 않을지, 우려는 점차 커지고 있다. 해적소탕을 명분으로 한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에서 이제는 되물어야 한다. 그 희생은 누구의 몫인가. 누구를 위한 군사작전인가.

 

소말리아 : 동아프리카의 이라크

소말리아는 1990년대 내전에 휩싸이면서 나라 전체가 황폐해졌다. 해안선이 3,000km에 달해 대부분 어업으로 생계를 잇던 소말리아 사람들은 군벌들의 아귀다툼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내전과 동시에 소말리아 해역에 나타난 외국 선박들은 소말리아 사람들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다.
외국 선박들은 매년 약 3억 달러어치의 해산물을 휩쓸어 갔다. 소말리아 사람들의 생존기반을 뒤흔드는 일이었다. 심지어 일부 선박들은 유럽에서 1t당 약 1000달러의 처리비용이 드는 폐기물을 1t당 3달러에 소말리아 해역에 버리기도 했다. 그 돈은 고스란히 지역 군벌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내전으로 기아선상에 놓은 소말리아 사람들에게 해적질은 유일하게 돈을 쥘 수 있는 일이었다. 처음엔 불법어획과 불법투기에 대한 벌금 명목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는 ‘해적산업’으로 커졌다. 그 대상도 소말리아 해역을 지나는 모든 선박으로 확대됐다. 소말리아 해적질은 조직폭력배와 연계된 각종 사업들처럼 자본주의 지하경제의 한 단면을 띠게 되었다.
한때 소말리아 해적질은 급속히 위축된 적이 있었다. 2006년 8월 소말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던 ‘이슬람법정연대’가 수도 모가디슈를 장악하고, 소말리아 전역을 통치하면서부터다. 이슬람 율법을 신봉하는 이슬람법정연대는 도둑질을 큰 범죄로 여겨 해적들을 소탕했다.
미국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교두보이자 세계적인 무역항로를 가진 소말리아를 계속 자기 영향력 아래에 두려 했다. 하지만 이슬람법정연대가 미국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자, 미국은 에티오피아와 함께 소말리아를 침공했다. 그리고 2006년 12월 이슬람법정연대를 축출해 그 자리에 친미 과도정부를 세웠다. 명분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이슬람법정연대가 알 카에다와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친미 과도정부의 영향력은 수도 모가디슈와 그 인근지역을 빼곤 제한적이었다. 각 지역 군벌들은 다시 활개를 쳤고, 해적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선 문제될 게 없었다. 오히려 극성을 부리는 해적질은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해 주었다. 사실상 해적질을 방조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연합해군함대를 이끌고 있다. 여기엔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남한 등 주로 친미국가 해군이 배속되어 있다. 남한은 지난 2009년부터 청해부대를 파병했으며, 작년 12월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법안 중에는 소말리아 파병연장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에서도 청해부대는 미 해군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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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정치사상의 자유는 없었다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1/03/02 14:12
  • 수정일
    2011/03/02 14:12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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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하 ‘사노련’) 사건 재판1심 선고가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는 오세철 활동가 등 4명의 활동가들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나머지 4명의 활동가들에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한 집시법 위반을 덧붙여 8명의 활동가 모두에게 벌금 50만원형을 부과했다.

재판부는 사노련 사건에 국가보안법 7조를 내세웠다. 위헌논란이 끊이지 않는 낡은 악법을 또다시 적용한 것이다. 반국가단체에 대한 찬양․고무 조항의 국가보안법 7조는 불고지죄인 10조와 함께 그동안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적받아 왔다. 그 내용이 너무나 추상적이어서 자의적으로 적용될 소지가 많고, 실제로 역대 정권에서 정치탄압의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7조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탄압의 무기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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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에서 사노련은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하는 단체로 규정되었다. 사노련 명의의 정치신문과 잡지, 그리고 각종 토론회 발제문에 ‘무장봉기 및 폭력혁명을 통한 정부전복’ 주장이 담겨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재판부는 이를 집요하게 따졌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사상의 자유는 당연한 권리에 속한다. 그 누가 어떠한 정치를 가지든, 어떠한 단체를 만들든 국가권력이 개입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더 나아가 정치사상의 자유는 사회구성원 스스로 새로운 체제, 새로운 사회를 요구하고 건설할 권리까지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말 그대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면 정치사상의 자유가 혁명의 권리로 인정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재판부는 케케묵은 국가보안법을 들먹이며 이 사회에서 정치사상의 자유가 허울에 불과한 것임을 스스로 폭로했다. 혁명의 권리는커녕 기본적인 정치사상의 자유마저 묵살했다.

지금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독재정권의 폭압에 맞서 생존권과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민주화 투쟁이지만, 이 나라 재판부는 단지 국가보안법만을 떠올릴 것이다. 국가변란의 선전․선동은 물론 직접행동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민주주의조차 거부하며 정치사상에 대한 규제와 검열, 통제를 여전히 고수하는 이 나라 공권력과 지난 수십 년 동안 노동자와 서민 위에서 군림해온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독재정권은 서로 이역만리 떨어져 있지만 국가권력의 공통된 속성이 무엇인지 하나같이 보여주고 있다.

유죄 판결을 받은 8명의 활동가들은 법정에서 나오자 곧바로 항소할 뜻을 밝혔다. 오는 28일 일괄적으로 항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지난 2009년 8월 기소된 사노련 사건은 이제 항소투쟁에 들어가게 됐다. 그동안 1년이 넘는 경과 속에서 사노련 사건에 대한 관심은 초반에 비해 줄어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재판1심 선고를 앞두고는 국내외에서 연대의 목소리가 조직되기도 했다. 항소투쟁은 정치사상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연대의 장과 공론의 장으로 다시금 활용되어야 한다. 사회주의를 내건 정치활동의 자유를 향한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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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FocuS]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에 다시 불을 붙이자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1/01/26 14:33
  • 수정일
    2011/01/26 14:33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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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1공장 점거파업이 지난 9일 일단락되었다. 11월 15일부터 25일 동안 진행된 1공장 점거파업은 ‘불법파견 정규직화에 대한 성과 없이 먼저 농성을 해제하지 않는다’는 기조 아래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강고한 투쟁의지로 흐트러짐 없이 진행돼왔다. 하지만 농성 기간 동안 줄기차게 계속돼 온 현대차지부 지도부의 압박과 개별 조합원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가압류로 인해 결국 비정규직노조 지도부는 ‘농성을 먼저 해제하고 교섭을 진행하자’는 현대차지부와 사측의 안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11월24일부터 28일까지 긴박했던 시간들

 

11월 20일 황인하 조합원이 민주노총 영남권 결의대회 도중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서 분신을 시도한 이후, 24일 금속노조와 현대차지부, 비정규직지회 지도부는 사측에 ‘특별교섭’을 요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특별교섭의 주요의제로 △농성장의 비정규직 고소고발, 손해배상, 치료비 등 해결 △금번 농성장의 고용보장 △비정규직지회 지도부의 신변보장 △불법파견 교섭에 대한 대책 요구 등을 설정하고자 했다.
하지만 25일,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교섭의제에 대한 찬반토론에서 ‘24일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비정규직지회 지도부 간에 논의된 교섭 요구안의 내용이 이번 투쟁의 쟁점을 불법파견 정규직화가 아니라 동성기업이라는 하청업체의 고용승계 투쟁으로 협소화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쟁취투쟁을 위해 1공장 점거파업을 끝까지 사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투쟁의지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교섭요구안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던 것이다.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이 날 교섭요구안이 보고된 자리에서 찬반토론 끝에 이 같은 교섭요구안이 적혀있던 종이를 다 같이 찢어버리며 자신들의 의지를 표출하기도 했다.
이에 26일, 다시 3주체(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비정규직지회) 간 회의가 진행되었다. 3주체 회의에서 비정규직지회 지도부는 25일 확인된 조합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정규직화에 대한 성과 있는 합의 없이 농성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교섭의제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대차지부의 반대로 인해 이 같은 주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27일, 또다시 비정규직 주체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3주체의 교섭 요구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며 장시간 찬반토론을 진행했다. 격렬한 토론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3주체 회의에서 도출된 교섭 요구안 자체를 바꾸지는 못했다. 현대차지부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대신 비정규직지회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주장을 교섭의 단서로 삼아 28일에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사측과 다름없는 정규직지부

 

비정규직지회는 28일 ‘정규직화에 대한 성과 있는 합의 없이 농성을 풀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독자적인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비정규직지회의 독자적인 행동이 계속되자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현대차지부의 통제와 협박은 더욱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대차지부 이경훈 지부장은 28일 기자회견이 3주체 회의에서 도출된 합의를 깨는 행위라며 비정규직지회를 비난했다. 게다가 이 날 1공장 농성장에 있던 울산연대노조 권우상 전 사무국장을 ‘외부세력’이라고 지칭하고, 욕설과 폭행을 하며 농성장에서 끌어내기까지 했다. 3주체 회의에서 논의된 교섭요구안이 비정규직 조합원들에 의해 계속해서 거부되자, 이에 대한 불쾌감을 ‘외부세력이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부추기고 있다’는 식의 폭력으로 드러낸 것이다.
29일에는 결국 현대차지부 소식지를 통해 “비정규직지회의 입장과 관계없이 3주체 회의에서 결정한 교섭 요구안으로 사측에 교섭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지부는 어떻게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 교섭 전에 먼저 1공장 점거농성을 풀게 할 생각이었으나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투쟁의지에 부닥치게 되어 뜻대로 되지 않자 결국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정규직지회를 압박하는 데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차지부의 압박은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된 총파업을 조합원 총회로 찬반을 묻겠다는 데서 절정에 달했다. 조합원 총회 카드는 보수적인 정규직 노동자들의 정서를 이용해 비정규직 투쟁을 가로막아보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2월 8일 진행된 현대차지부의 총파업 찬반투표 결과 공개는 금속노조의 요청으로 14일로 늦춰지긴 했지만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고, 조합원 총회 다음날인 12월 9일 비정규직지회는 1공장 점거농성을 해제했다.

 

 

 

 

방관자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진행되는 내내 금속노조는 현대차지부와 비정규직지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무력한 모습만 보였다. 3주체 회의에서 도출된 합의내용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부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지를 현대차지부에서 거부할 때 금속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경훈 지부장이 겉으로 매번 ‘아름다운 연대’를 운운하면서 현장에서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날뛰는 동안 금속노조는 현대차지부 눈치 보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금속노조는 지난 11월 22일에 진행된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에 따라 12월 1일 중앙쟁대위를 진행했고, 중앙쟁대위에서 12월 3일 전조합원 잔업거부, 8일 4시간 간부파업을 결정했다. 중앙쟁대위에서 결정된 잔업거부와 간부파업은 지난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한 12월 총파업에 부합하는 결정사항은 아니었다. 이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중앙쟁대위 논의 과정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때문에 정규직들까지 파업하면 3일 만에 망한다’고 공공연하게 협박을 하고 다녔던 현대차지부 이경훈 지부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금속노조가 총파업을 진행할만한 동력이 있느냐 없느냐는 사실상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가 총파업을 진행할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실질적인 총파업 동력의 문제를 차치했을 때 남는 것은 금속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투쟁현장에서 얼마나 현실적인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는지의 여부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현대차지부에 의해 가로막혀있을 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했어야 할 금속노조는 현대차지부의 비정규직 투쟁 파괴 행위에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고만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 아산사내하청지회 송성훈 지회장이 지난 12월 7일 인터넷에서 밝혔듯이 금속노조 박유기 위원장은 3주체 회의에서 1공장 점거파업 유지를 줄기차게 주장했던 송성훈 지회장을 배제한 현대차지부의 행태를 모르는 척 동조하기도 했다.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지켜내지 못한 비정규직지회 지도부

 

점거파업 기간이 길어지고 단전과 단수가 반복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조합원들의 피로도는 점점 쌓여갔다. 점거농성이 한창이던 지난 12월 4일에는 사측에서 포클레인을 몰고 와 1공장 외벽을 부수기도 했다. 무엇보다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괴롭혔던 것은 현대차지부의 농성해제 압박이 사측의 공격만큼이나 거셌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비정규직지회 지도부는 3주체 회의가 거듭될수록 현대차지부와 금속노조의 압력에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비정규직지회로 이루어진 3주체 회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사수하기 위한 회의체라기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사측과 적절한 선에서 교섭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통제장치로 기능했다. 3주체 회의에서 현대차지부의 입장이 전적으로 반영된 교섭 요구안이 만들어지면, 비정규직지회 지도부가 회의 결과를 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게 보고하고,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찬반토론을 거쳐 3주체 회의결과에 반대하는 양상이 1공장 점거파업기간 내내 반복되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비정규직지회 지도부는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3주체 회의에서 관철시키지 못했다. 3주체 회의가 열릴 때마다 매번 또다시 현대차지부의 의견이 전적으로 반영된 안을 들고 조합원들에게 돌아오게 되는 광경이 계속되었다. 11월 28일 비정규직지회의 독자적인 기자회견 이후 뜸했던 3주체 회의가 금속노조 중앙쟁대위에서 향후 파업 일정을 결정한 이후 다시 열리기 시작하면서 현대차지부의 압박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지난 6일, 현대차지부는 확대운영위에서 ‘조합원 총회가 예정돼있는 8일 이전에 사측과의 교섭자리가 마련될 경우 총회를 연기하고 비정규직 농성은 해제한다’는 결정을 일방적으로 내리고, 이것을 비정규직지회에 선전포고했다. 그리고 이에 화답하듯 사측에서 “12월 7일 15시 울산공장 본관1층 아반떼룸에서 특별협의체 개최일청을 요청드린다”고 현대차지부에 공문을 보냈다. 이어서 7일 예정돼있던 3주체 회의에서 줄곧 교섭을 위한 점거파업해제를 반대해 온 현대자동차 아산사내하청지회 송성훈 지회장이 현대차지부에 의해, 현대차지부를 포함한 3주체 모두의 암묵적 동의 아래 배제됐다.
이렇게 송성훈 지회장이 배제된 채 7일 3주체 회의가 진행되고, 이때부터 현장에서 비정규직 농성자들에 대한 현대차지부 간부들의 집단적인 회유와 협박이 집중됐다. 회유와 협박을 견디지 못한 백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농성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9일 오전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이상수 지회장이 조합원 총회를 개최했고, 조합원 총회 자리에서 3주체 회의때 논의된 교섭요구안을 보완한다는 조건 하에 농성해제 시기에 대한 결정권을 비정규직지회 지도부에게 위임할 것이 격론 끝에 결정되었다. 이상수 지회장은 곧바로 진행된 3주체 회의에서 결국 선농성해제를 받아들여 1공장 점거파업을 정리했다.
현대차 울산, 전주 비정규직지회 지도부가 아산 사내하청지회 송성훈 지회장이 3주체 회의에서 배제된 것을 묵인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비정규직지회 지도부는 사측의 공격과 현대차지부의 압박으로부터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지켜내지 못했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동성기업 고용승계의 문제로 협소해지는 것을 우려했던 조합원들의 뜻을 받아 안지 못한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점거파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현대차지부 간부들의 회유와 협박, 비정규직지회 지도부의 동요, 농성해제 직전 사측이 개별 조합원에 대해 가하기 시작한 손배가압류 등 복합적인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1공장 점거파업을 넘어선, 그 이후의 전망 없이 이제까지 임해왔던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투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문제지점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향후에 또다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확산시키는 데 실패하고 말 것이다. 

 

선언이 아닌 실천이 필요해

 

1공장 점거파업이 끝나고 지난 10일 처음으로 노사 상견례 자리가 마련된 이후, 지난 14일, 21일, 28일 세 차례 교섭이 진행되었다. 교섭 자리에서 사측은 “교섭이 아니라 협의체”라는 말만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불법파견 정규직화에 대한 대책은커녕 동성기업 소속 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게 전원복직이 아닌 선별복직안을 제시할 뿐이었다. 교섭을 위해 먼저 농성을 해제하라고 마르고 닳도록 외쳤던 현대차지부는 사측이 제시한 선별복직안을 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게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해 빈축을 샀다. 
이렇게 동성기업 고용승계 문제마저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현장에서는 노사간 교섭과 무관하게 파업에 참가한 비정규직 조합원들에 대한 대규모 손해배상 청구와 징계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다음 투쟁 계획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비정규직지회 지도부는 교섭에서 사측이 전향적인 안을 내오지 않으면 재파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있는 운동단체들도 2차 파업에 돌입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2차 파업에 다시 돌입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지난 11월 15일 울산공장에서 1공장 점거파업이 시작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크고 작은 현장 활동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2차 파업에 돌입하려면 재파업을 하겠다고 선언만 하고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1차 점거파업의 열기가 식기 전에 더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끌고나가 재파업의 조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현장 활동의 계획과 실천이 필요하다. 
현재 비정규직지회 지도부는 1공장 점거파업 해제이후 교섭과 현대차지부만을 바라보고 있다. 14일에 공개된 현대차지부의 총파업 찬반투표는 모두가 예상했듯 부결되었다. 그러므로 현대차지부와 교섭일정에 얽매이지 않고 조합원들의 자발성을 밀어 올릴 수 있게끔 훈련이 돼야한다. 현대차지부의 압력에 얽매이지 않는 독자적 투쟁을 전개할 수 있어야 다시 투쟁에 돌입했을 때 승기를 잡을 수 있다.
만약 자기계획 없이 이대로 상황논리에 이끌려가다가 1월이나 2월 중으로 예정된 확정판결의 결과가 뒤집힐 경우, 걷잡을 수 없는 블랙홀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사측은 어떻게든 시간을 더 벌어보기 위해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별 영양가 없는 교섭을 질질 끌고 갈 것이다. 확정판결에서 불법파견 판정이 뒤집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교섭에만 올인 하는 태도가 지속된다면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지지부진하게 전개될 것이고, 조합원들의 투쟁 열기는 시들어갈 것이다. 

 

비정규직노조의 주체성을 강화해야

 

1공장 점거파업은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물꼬를 텄다. 하지만 정규직화 문제가 단사만의 투쟁으로 실현될 만큼 쉬운 문제는 아니다. 이번 투쟁을 통해 정규직 조합원들의 태도는 이미 확인되었다. 정규직조합원들을 설득하기 위한 활동은 당연히 전개되어야 하지만 실제로 이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지부가 중심이 되어 진행될 수밖에 없는 현재의 교섭구조에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이해와 욕구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규직화는 비정규직 투쟁의 전국적인 확산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1공장 점거파업의 흐름을 타고 얼마 전 고공농성에 돌입한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지난 12월 23일 창원지방법원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냈다. 하지만 불법파견 판정이라는 것은 대중적 분노가 터져 나올 수 있는 “틈”에 불과하다.
이 “틈”을 최대한 활용하여 대중적인 투쟁을 만들어내고 압박할 주체가 강화되지 않는다면 불법파견 정규직화 쟁취투쟁은 소실될 것이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다시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정규직 전환이라는 목적과 함께 노동조합을 강화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 즉 파업에 참여했던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주체화시키고 조직대상을 2, 3차, 한시하청 노동자로 확대하려는 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1차 점거파업 때처럼 조합원들의 자발성과 투쟁의지가 정규직 노조상층부와 충돌해 튕겨져 나오지 않도록, 향후 투쟁의 방향에 전적으로 반영될 수 있게끔 구조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비정규직지회 지도부의 쇄신과 3주체 회의에 종속되지 않으려는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조합원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려면 가장 먼저 1공장 점거파업에 대한 조합원들의 집단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1공장 점거파업에 대한 평가토론이 진행되려면 전조합원 총회와 각공장별 조합원 총회, 각공장별 분임조 토론이 다시금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확정판결 이후에도 투쟁의 열기를 이어갈 수 있다. 1공장 점거파업에 대한 평가와 토론으로부터 조합원들의 집단적 불만이 직접적인 행동으로 표출돼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라는 목표, 비정규직 노조의 주체적 힘이 강화되지 않고서는 사측과의 교섭도 진척될 수 없다는 것, GM, 아산, 전주  등 다른 비정규직 노조들과의 공동투쟁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 확인되어야 한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쟁취투쟁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비정규직 주체들은 확정판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투쟁 국면을 조성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전 투쟁 과정에 대한 평가,  사측의 탄압에 대한 집단적인 저항없이 교섭에만 의존한다면 기존의 오류가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향한 손해배상과 징계로부터 동성기업 고용승계문제마저도 지켜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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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FocuS]위키리크스, 자본가권력의 금기를 깨다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1/01/26 14:28
  • 수정일
    2011/01/26 14:28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작년 12월15일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가 2010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 수많은 네티즌들은 즉각 반발했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였다. 어산지는 온라인 투표에서도 1위에 올랐다. 올해의 인물이 갑자기 바뀌자 의혹이 제기됐다. <타임>은 도전보다는 안전을 선택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세계적인 이슈 메이커, 어산지에 대한 관심은 세밑까지 뜨거웠다.
해를 넘겨도 어산지에 집중된 세계의 이목은 여전하다. 어산지의 말 한마디가 뉴스가 되고, 화제를 낳고 있다. 특히 어산지가 신변 위협에 맞서 일종의 보험으로 내세운 ‘최후의 심판 파일’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최후의 심판 파일에는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알려졌는데, 인터넷을 통해 이미 배포된 상태다. 어산지가 암호만 공개하면 누구나 열어볼 수 있다.
인터넷 사용자 20억 명 시대, 위키리크스 사태가 불러일으킨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비밀문서 폭로 활동이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비밀주의와 정보공개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보가 자본의 운동과 권력의 작동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은 가운데, 위키리크스 사태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대판 로빈후드

 

작년 11월 무려 25만 건에 달하는 미국 외교전문을 폭로한 위키리크스는 지난 2006년 12월 어산지가 설립한 네트워크 조직이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이름을 따왔다. 상근자는 10명 안팎이지만 전문적인 능력을 기부하는 협력자가 1000여 명, 각종 지원을 해주는 지지자가 1만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을 만큼 국적을 초월한 최초의 네트워크 조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잇단 폭로로 위키리크스에는 ‘고발 전문’이란 말이 따라 붙는다. 어산지는 이런 위키리크스가 ‘과학적 저널리즘’을 개척했다고 자부한다. 과학적 저널리즘의 핵심은 뉴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그 근거가 되는 원문도 온라인에 함께 공개해 독자 스스로 진실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게 한다는 데 있다. 때문에 어산지는 위키리크스가 기존의 언론과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위키리크스로 새로운 형태의 언론이 출현했다고 말한다.
어산지의 남다른 열정은 그의 신념과 관련 있다. 어산지는 스스로를 ‘시장원리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한다. 어산지가 못마땅해 하는 건 시장이 아니라 왜곡된 시장 질서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시장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시장 참여자 사이의 정보 격차를 줄인다면 결국에는 국가와 기업에도 이익이 된다고 역설한다. ‘공정한 사회’야말로 어산지의 구호인 셈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유행했던 마이클 샌델의『정의란 무엇인가』가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어산지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도 국가나 기업 자체가 아니다. 국가나 기업이 일삼고 있는 비윤리적인 행위다. 어산지는 자유와 정의가 결핍된 곳에서는 윤리적으로 무장된 시민의 저항이 불가피하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해커 시절에도 ‘뚫고 들어간 컴퓨터 시스템 망치지 않기’, ‘정보 변경하지 않기’, ‘획득한 정보 공유하기’ 등의 원칙은 지켰다고 한다. 윤리의 잣대로 어산지는 감춰진 정보의 공개가 부조리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네티즌들은 열광하고 있다. 어산지는 정의로운 반역자로 불리고 있다. 미국 정부의 탄압 공세에 순교자 이미지까지 덧씌워졌다. 그 영향력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확대되었다. 작년 12월 7일 어산지가 영국 경찰에 체포되자, 유럽과 남미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어산지를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어산지가 호주 출신 때문인지, 호주에서는 1,000여 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어산지가 보석으로 풀려나서야 집단행동은 잦아들었다.

 

 

△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위키리크스 대전

 

위키리크스 사태가 뜨겁게 달아오른 데에는 미국도 한 몫 했다. 작년 11월 위키리크스가 미국의 외교전문을 공개한 건 2006년 이후 꾸준히 해오던 활동의 일부였다. 지난해만 해도 4월에는 이라크 민간인 학살 동영상을, 7월에는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학살 사례를 각각 공개했다. 미국이 벌이고 있는 전쟁의 추악한 진실은 다시 한 번 세상 밖으로 드러났지만, 그 당시 미국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미국은 태도를 싹 바꿔 발끈하고 나섰다.
미국은 위키리크스가 봐줄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고 보고 있다. 정부기관이나 공직자들의 비리나 비행을 폭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매우 위험한 행위라는 입장이다. 통상 미국의 외교문서는 몇 십 년이 지나 관계자들이 죽거나 은퇴한 다음에야 공개되는데, 위키리크스의 이번 외교전문 공개는 최근 3년간 미국 외교의 실체를 낱낱이 보여주었다. 모르면 모르는 거고, 알아도 모르는 척 해야 하는 외교의 원칙을 위키리크스가 깨버렸다고 난리가 아니다.
미국의 탄압은 가히 전방위적이다. 미국 정부는 호주 국적의 어산지에게 국내법인 간첩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다. 사법처리가 어려울 것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지만 만일 어산지에게 간첩죄가 적용되면 10년형에서 최고 사형까지 구형할 수 있다. 미 의회에서도 조지프 리버먼 상원의원을 중심으로 몇몇 의원들이 ‘반(反)위키리크스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안에는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문건을 보도한 언론사에 대한 처벌까지 담겨 있다.
위키리크스에 대한 실질적인 압박은 사이트 폐쇄와 자금줄 차단이다. ‘아마존닷컴’, ‘테블로 소프트웨어’ 등 미국 서버 업체들은 위키리크스 사이트에 대한 서버 제공을 중단했다. 결제 서비스 업체 ‘페이팔’, ‘비자카드’는 위키리크스 후원금 계좌를 동결했다. 미국 최대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도 위키리크스의 금융 거래를 차단했다. 어산지는 이 같은 탄압에 ‘디지털 매카시즘’, ‘비즈니스 매카시즘’이라면서, 위키리크스의 존재를 부정하는 미국에 강하게 반발했다.
위키리크스 사태는 시민사회 대 국가권력 간의 대결로 굳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면서 대결의 구도가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특히 러시아는 미국 외교가에서 푸틴 총리를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관료국가의 우두머리’로 묘사한 것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패권국가 미국을 향해 중국과 러시아가 동조하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모양새가 연출될 만큼, 이번 파문이 끼친 영향은 실로 전 세계적이었다.

 

아이러니

 

세계를 뒤흔든 위키리크스는 ‘폭로 저널리즘’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무게중심은 ‘폭로’ 쪽에 있다. 하지만 작년 4월까지만 해도 위키리크스는 폭로만 하진 않았다. 자신의 견해도 같이 밝혔다. 이라크 민간인 학살 동영상을 폭로하면서는 ‘부수적 살해’라는 제목을 단 편집 영상도 함께 공개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기존 매체와 차별화 하는 것에서 한 발 물러서기 시작했다. 자신의 입장에 비판이 뒤따르자, 이를 곤혹스러워했기 때문이다.
기존 매체와 협력하는 방향으로 폭로의 방식을 바꾼 위키리크스는 미국 외교전문 폭로에서도 관련 자료를 미국의 <뉴욕타임즈>, 영국의 <가디언>, 독일의 <슈피겔>과 같은 매체에 사전에 넘겼다. 일제히 보도되도록 시점만 요구했을 뿐 다른 모든 작업은 이들에 맡겼다. 위키리크스는 어디까지나 ‘정보의 유통자’로 남았다. 물론 폭로의 충격파는 컸다. 위키리크스가 정보 공개에 따른 책임을 분산하면서도 정보의 광범위한 확산을 노렸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들 매체가 주류 언론이란 점은 위키리크스에 족쇄가 될 수 있다. 사실 이번에 폭로된 미국 외교전문의 내용은 주로 외국 정상이나 국제기구 인사들의 사생활, 각국 외교 담당자들이 미국 외교 당국자들과 비밀스럽게 오간 얘기들이다. 25만 건 중 ‘외국전파금지’는 4330건, ‘비밀’은 1만 6652건에 그친다. 많은 수는 비밀로 분류되지 않은 것이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고, 미국의 격한 반응에 견줘본다면 대단치 않는 것들이다.
문제는 그런 정보마저 주류 언론에 의해 재구성되는 과정이다. 미국은 폭로에 가담한 매체들에 칼날을 겨누지 않았다. 보도 자제만 요청했다. 이들 매체에선 자체 검증팀을 가동시켰으며, 만에 하나 미국 안보에 위험이 되는 내용의 경우 미국 정부와 협의까지 했다. 국가 안보와 자기 검열의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주류 언론의 한계는 여전했다. 위키리크스가 기존 매체의 영향력에 기대는 한, 위키리크스는 자신의 취지와 충돌하는 이들 매체의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위키리크스를 독단적으로 운영하는 어산지의 태도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폭로의 날카로움은 위키리크스 외부를 향해서만 곤두서 있지, 그 내부에서는 전혀 다르다는 지적이다. 어산지가 위키리크스를 개인숭배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후원받은 자금의 사용처에 대한 의문도 잇따르고 있다. 일부 위키리크스 출신 활동가들이 위키리크스 내부의 실종된 민주주의에 반발해 새로운 정보공개 사이트 ‘오픈리크스’를 출범시킬 것이라는 얘기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자본, 권력, 비밀

 

 

△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미국의 탄압에도 위키리크스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되레 더 많은 지지자를 얻었다. 미국의 사이트 폐쇄 조치에 위키리크스는 스위스 서버 업체 ‘스위치’의 도움으로 한 숨 돌리게 됐다. 사이트 주소는 wikileaks.org에서 wikileaks.ch로 바꾸었다. 후원금도 늘고 있다. 지지자들은 개인 블로거의 계좌를 통해 송금하는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위키리크스를 살리겠다고 나서고 있다. ‘용기에는 전염성이 있다’는 위키리크스의 구호는 현실에서 증명되고 있다.
위키리크스 사태는 온라인 세상에서 기존 권력이 항상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강력한 수호자’임을 자임해 온 미국의 위선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미국이 ‘위키리크스 때리기’에 몰두하면서는 국가 검열의 사유화가 어느 정도인지 그 실상이 확인되기도 했다. 누가 정부고, 누가 기업인지 모를 만큼 탄압에는 한 목소리가 났다. 위키리크스는 박멸해야 할 테러조직일 뿐이었다. 이 모든 게 ‘자유민주주의’의 나라 미국에서 벌어졌다.
이는 그 동안 기업이나 국가의 불법적 또는 비윤리적인 행위들이 얼마든지 합법으로 용인되어 왔음을 뜻한다. 기업과 국가 간의 단단한 유착 관계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비단 미국 뿐 아니라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다. 위선의 장막을 조금만 걷어낸다면 어디든 비리와 부패, 그리고 그것들을 비밀로 감싸는 침묵의 짬짜미를 확인할 수 있다. 위키리크스는 그 실체를 보여주었을 따름이다.
남한 사회에서도 비밀주의가 판을 치긴 마찬가지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한미FTA 재협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밀실 협상으로 진행되었다. 정권만이 아니다. 기업에서도 영업 비밀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시민사회단체들이 백혈병 관련 자료를 요구해도 수년째 영업 비밀을 내세워 뻗대고 있다. 유해 물질에 노출된 노동자들의 잇단 죽음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오로지 기업의 이윤만이 중요할 뿐이다.
어산지는 부조리없이 투명한 자본주의를 꿈꾸고 있다. 어산지는 부조리 없는 투명한 세상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자본가들의 사적 소유와 사유재산 보호를 신성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밀주의는 당연한 속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착한 자본주의’, ‘건강한 자본주의’가 실현된다 해도 지배 질서의 금기가 깨지지 않는 한 달라질 것은 없다. 어산지의 바람대로 정보 격차가 줄여질 수는 있어도 해소될 수는 없다.
위키리크스 사태는 정보공개를 세계적인 쟁점으로 부각시켰을 뿐 아니라 정보공개를 바라는 목소리가 대중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보여주었다. 위키리크스 지지자들은 사이버 공간에 머물지 않았다. 어산지가 체포되었을 땐, 세계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시위가 조직되기도 했다. 앞으로도 정보공개에 대한 요구는 대중의 요구로 적극적으로 제기되고, 대중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강화될 필요가 있다. 정보공개 운동이 실질적인 대중운동으로 나아가게 될 때, 자본과 권력이 그토록 감추고 통제하려는 온갖 비밀의 실체 역시 대중 앞에 고스란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위키리크스 폭로, 어떻게 이뤄지나

 

하와이 말에서 ‘위키위키(wikiwiki)’는 ‘빨리빨리’란 뜻이다. ‘리크스(leaks)’는 유출, 누설을 말한다. 이런 ‘위키리크스(wikileaks)’에서 폭로하는 과정은 직접성, 익명성, 집단지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우선 누구나 쉽게 내부 고발을 위한 정보를 위키리크스에 제공할 수 있다. 이것이 직접성이다. 내부 고발자가 정보를 위키리크스에 올리는 순간부터는 익명의 인터넷 접속을 보장하기 위한 기술이 가동된다. 그 중 하나가 ‘토르(tor)’다. 토르는 적군에 노출되지 않는 통신을 위해 미 해군이 개발하다 중단한 것을 해커들이 재활용한 기술이다. 제출된 정보에 대해선 내부 고발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한 암호화 과정도 이어진다. 익명성이 보장된 다음에는 정보의 신뢰성에 대한 검증이 이뤄진다. 소수의 전문가들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참여해 정보가 악의적인 것은 아닌지 검토한다. 집단지성의 단계까지 거치고 나서야 위키리크스는 그 정보를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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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노동]2011년 : 간접고용 확대와 복수노조 시대에 대응해야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1/01/26 14:20
  • 수정일
    2011/01/26 14:20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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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정부의 전략

2011년에는 정부가 지난 10월 발표한 ‘고용전략 2020’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이 하나씩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고용전략 2020’의 목표는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로 고용률 70% 이룰 것”이라는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의 발언에서 잘 드러나듯 비정규직의 전반적 확대이다. 명시적 실업률을 낮추는 동시에 노동유연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기존 비정규직이 주로 기간제나 파견제 위주였다면 노동시간을 자본의 입맛에 맞게 쪼갠 시간제 일자리는 노동시간 감축에 비례해 임금도 감소한다. 결국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로 귀결된다. 이 제도는 공공기관과 여성노동자가 많은 사업장에서 우선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질질 끌어왔던 비정규법 개정을 통해 기간제한 없이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는 업종을 확대하고, 불법파견이 활발한 업종을 파견허용업종으로 변경하여 파견·간접고용을 전 산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불법파견 투쟁의 근거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법·제도 통한 노조무력화 공세 이어질 듯

 

작년 타임오프제 강행을 통해 보여주었듯이 정권 차원의 노조무력화 공세가 계속될 전망이다. 새해벽두부터 타임오프를 이면합의한 노조간부들을 형사처벌하려는 시도가 포착되고 있다. 12월31일 단체협약 시정명령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포항·경주 지역 7개 금속노조 지회가 입건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법적처벌은 기아자동차와 같은 대공장노조를 직접 겨냥하기보다는 단순한 압박용 카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고용노동부는 “조합원 1천명 이상인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타임오프 이면합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할 방침”이라며 관련한 사이버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내부고발 및 제 3자의 고발을 받을 계획이다. 이외에도 ‘3대 쟁의질서 개선과제’로 ‘생산라인 점거, 불법 피케팅, 공격적 직장폐쇄’ 집중지도를 통해 현장투쟁을 직접 통제하고 탄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2011년 노사관계의 핵심, 복수노조 허용

 

올 7월1일부터 기업별 단위에서 복수노조가 허용된다. 97년 민주노총 합법화와 함께 초기업별 복수노조, 즉 산별노조는 인정되었으나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은 14년째 유예되어왔다.
노동자들의 복수노조 요구가 거셀 때 자본은 복수노조 허용의 문제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서로 맞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법 개정안 논쟁이 한창이었던 2009년 말에는 자본가들 사이에서도 복수노조를 둘러싼 이견이 존재했다. 당시 경총은 “복수노조로 인한 혼란과 폐해는 노사관계 불안을 조장하고 기업 경쟁력의 악화로 이어”진다며 완곡하게 반대 의견을 밝혔다. 반면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복수노조 허용을 찬성하며 ‘복수노조 3년 유예’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경총의 입장에 반발해 경총을 탈퇴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입장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친자본 성향의 이경훈을 지부장으로 한 노조를 두고 어용노조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현재의 노사협력 분위기를 깰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경영계의 한 관계자는 “자칫 사측에서 다른 노조를 지원했다가 현재 노조 내 온건·합리파까지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고민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자본가들은 복수노조 시대에 대응태세를 갖추는 모양새다. 여기서 핵심은 교섭창구단일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복수노조 허용에 따라 노사관리 비용상승과 혼란이 우려되었지만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를 통해 일정정도 해소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본가들 사이에서는 노조설립의 최소요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교섭창구단일화가 실시되면 우선 자율적으로 교섭창구단일화를 하게 된다. 하지만 단일화가 되지 않으면 과반수이상의 노조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고 과반수노조가 없을 때에는 조합원 수에 비례해서 공동교섭대표단을 꾸리게 된다. 그러나 조합원 수가 10% 미만인 노조는 공동교섭 대표단에서 제외되므로 소규모노조는 설립되더라도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보장되기 어렵다. 또한 개정된 노동법에 따라 지금과 달리 초기업노조 역시 이러한 조건을 따라야 하므로 금속노조나 보건의료노조 등의 민주노총 소속 산별노조가 교섭에 참여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조직노동운동

 

민주노총은 큰 틀에서 2011년을 2012년 권력교체기를 앞둔 시점으로 파악하고 “비정규직 문제해결”과 “민중복지”를 핵심사업 목표로 잡고 있다. 상반기에는 최저임금을 가지고 ‘국민과 함께하는 임금투쟁’을 집중적으로 벌일 계획이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과 타임오프와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등 노조법 재개정을 위해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노동관련법 전면 재개정 범국민본부’(이하 ‘범국본’)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제출한 계획에는 기층을 조직하고 투쟁을 지원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대신 상층중심의 이슈화사업이 자리 잡고 있다. 민주노총이 5월까지 구성할 예정인 범국본은 사실상 시민사회단체, 야당을 중심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현장에서 교육과 투쟁을 조직하는 계획보다 야당과의 연대사업이 핵심이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일정은 2012년 대선을 준비하는 흐름 위에 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민주노총은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연대에 편승하여 대선 이후의 위치를 보장받을 심산인 듯하다. 때문에 상반기에 집중하는 최저임금투쟁 역시 ‘대국민 캠페인’을 통한 이슈화에 그칠 것이다.

 

대공장 정규직 운동

 

지난 11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장점거파업을 진행할 당시 현대자동차지부(이하 ‘현대차지부’) 집행부는 “아름다운 연대”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투쟁을 통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단순히 정규직 집행부 몇 명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차지부의 연대파업 찬반투표 부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규직 조합원들 내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통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올해 현대차지부는 단협갱신을 앞두고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와 복수노조 문제를 한꺼번에 직면하게 되었다. 남은 임기동안 “혼란보다는 안정을 위한 집행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이경훈 지부장의 발언이나 2년간 무쟁의로 임단협을 마무리한 것으로 볼 때 타임오프를 이면합의한 기아차지부와 비슷한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복수노조 허용에 대해 대공장 정규직노조들은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조법 개정 논란이 한창이던 2009년 말, 현대차지부와 기아차지부는 소식지에서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어용노조가 설립되어 기존의 ‘건강한 계급적 노조’가 공격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밝히기도 했다.
이는 일반적으로 복수노조를 찬성하는 민주노총의 입장과 반대되는 것으로 대공장노조가 안정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타임오프제와 마찬가지로 복수노조에 대한 대공장노조의 불만이 실질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미 안정된 교섭력을 바탕으로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및 투쟁사업장

2010년 7월, 대법원 불법파견 판결은 그 동안 침체되어 있던 대공장 사내하청 투쟁이 다시 살아나는 계기가 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열망은 폭발적인 노조가입과 자발적인 현장투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동성기업 노동자 해고로 촉발된 1공장 점거농성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다른 사내하청노조로 이어져 현대차 비정규직 공장점거 직후 GM대우비정규직지회는 부평공장 정문 위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대차 비정규직노조는 독자적인 교섭력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규직노조 통제의 벽을 뚫지 못했다.
때문에 2011년 대공장 사내하청운동은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아직 대중적 투쟁의 분위기가 남아있는 현대차에서 노조를 확대강화하고 주체를 형성할 수 있는 투쟁이 필요하다. 이러한 성과를 쟁취한다면 이후 비정규직 투쟁이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생존 위한 대기업 구조조정

 

한진중공업 부산공장에는 2009년의 쌍용자동차처럼 정규직의 정리해고가 예고되어 있다. 2년 동안 선박을 수주하지 못한 것을 이유로 사측은 400명에 대한 정리해고 계획을 노조에 통보한 상태며 5일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노사협상 재개로 연기한 상태다.
한진중공업은 2010년 초에도 400명 규모의 구조조정을 발표했으나 노조는 인위적 정리해고를 중단하고 선박수주 노력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었다. 하지만 이후 3천 명이 넘는 비정규직이 해고되었고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정규직 정리해고가 추진되고 있다. 이는 한진중공업이 필리핀 수빅조선소로 집중하여 세계 조선산업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으로 철회되기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현재 노조의 입장은 투쟁보다는 야당과 연계한 정치적 압력을 통해 구조조정 규모를 최소한으로 하는 방향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다시 대공장 정규직의 투쟁이 터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미조직분야에 노조건설 흐름 이어져

최근 몇 년 동안 공공기관과 학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결성과 그에 따른 투쟁이 활발했고 2011년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 동국대 미화노동자들이 본관점거와 삭발투쟁을 통해서 복직했다. 최근에는 홍익대에서 용역업체 계약해지로 해고된 174명의 미화노동자들이 본관농성을 하고 있다.
한편 전북에서는 한국노총 소속이었던 버스노조들이 민주노조를 건설하고 근로기준법 준수를 쟁취하기 위한 파업에 돌입했다. 한국노총 간부들이 자신들의 급여만 인상하고 조합원들을 무시한 것에 반발한 것이다. 이들은 직장폐쇄와 시도 관청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농성과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수도권장기투쟁사업장

 

G20 국면에서 기륭과 동희오토 투쟁이 정리된 이후 수도권에는 GM대우비정규직지회와 학습지노조 재능지부가 남아 있다. 기륭과 동희오토의 경우 복직에 합의가 되긴 했으나 유예기간이 길기 때문에 향후에 합의내용을 강제하는 투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GM대우비정규직지회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현재 벌이고 있는 공장정문 고공농성과 지회장 단식을 진행 중이다. 재능지부의 투쟁은 3년을 지나고 있다. 작년 말부터 사측은 노조의 뿌리를 뽑기 위해 노조에 가입해 있다는 이유로 해고를 일삼고, 현장에서 노조탈퇴를 위한 공작이 극심하게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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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한반도]2011년 : 평화에 대한 열망이 커지고 있다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1/01/26 13:52
  • 수정일
    2011/01/26 13:52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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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이후 남북관계

 

작년 3월26일 천안함 침몰 이후, 남북관계는 다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천안함사건이 일어나기 직전만 해도 보스워스 미국 특사가 북한을 방문하고 6자회담 재개와 3차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이 점쳐지는 등 해빙무드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러나 천안함사건은 이 모든 것을 무로 돌려놓았다. 정부는 아직도 천안함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증거들에 대한 반증이 계속 제기되고 있으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천안함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예상된 바였다. 조중동 등 우익언론에서는 처음부터 이를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북풍몰이를 했지만, 실제로는 선거를 앞둔 의혹제기에 그칠 뿐 명확히 북한의 소행이라고 규정하진 못하리라는 것이 대다수의 예측이었다.
그러나 남한정부는 예상을 깨고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못 박는 무리수를 두었다. 때문에 남한정부는 끝내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으며 국제사회를 설득하지 못했다. 천안함 사건이후에도 남북관계 악화는 계속됐고 마침내 지난 11월23일 연평도 포격사건이 벌어졌다. 12월20일 남한이 연평도 해상사격 훈련을 강행하면서 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서울 불바다” 발언 이후 최대의 위기상황이 조성되었다.

 

 

오락가락하는 MB 대북정책

 

클린턴 정부에 이어 등장한 부시정권은 집권초기부터 대북강경 기조를 내세웠다. 부시정권은 클린턴 정부가 북한 핵에 대해 지나치게 무른 대응을 했다고 비판하며, 사실상 북한을 고립·압박·붕괴시킨다는 전략을 사용했다. 미국 정부는 인권단체들을 지원하며 북한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압박 정책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불러왔을 뿐이었다. 결국 이라크 전쟁에 지친 부시 정권은 정권 말기에 들어 북미대화를 시작했다.
북미 화해무드는 2007년 영변 핵시설 폭파에서 정점을 이뤘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는 다음 정권에서 “북미정상회담→남북정상회담→남북평화협정 체결”의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점쳐졌다.
이런 상황은 미국의 태도에 영향을 강하게 받는 남한의 보수 세력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2007년 한나라당은 새로운 대북정책인 ‘한반도 평화비전’을 제출했는데, 이 정책은 ▲비핵평화체제 착근 ▲경제공동체 형성 ▲통행·통신협력체제 기반 구축 ▲인도적 협력·지원 ▲인권공동체 실현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여 햇볕정책의 내용을 상당부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명박이 후보시절 제시한 ‘비핵개방 3000’ 정책도 사실상 이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 ‘비핵개방 3000’은 쉽게 말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3천 달러를 만들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이회창은 이명박의 대북정책이 햇볕정책과 다를 바 없다는 이유를 출마의 주요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부시 정부나 조중동 등 국내 우익세력이 주장하는 붕괴론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주도자들은 자신들이 대북강경주의가 아니라 중도실용주의자라고강조하고 있다.
햇볕정책의 지지자들은 이명박의 대북정책이 북한 핵의 선(先) 폐기를 주장하고 있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비핵개방 3000’이 북핵의 선폐기를 배타적으로 주장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비핵개방 3000’은 2007년 당시 북핵의 단계적 폐기가 진행되고 있던 상황에서 핵 폐기 단계에 맞추어 북한을 지원을 하겠다는 주장이었다.
문제는 MB정권의 외교노선의 근간이 기본적으로 친미주의라는 데에 있다. 비핵원칙도 사실상 미국의 입장을 그대로 이야기한 것에 다름 아니다. 당시에 어느 정도 실용적으로 보였던 대북정책이 미국의 노선 변화에 따라 오히려 강경정책으로 전화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질서가 미국과 중국의 양강 대결구도로 재편되면서 한반도는 이들 양대 강대국 사이에 끼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노무현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점차 초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과 여전히 군사·경제·문화적으로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군사·외교적인 독자성을 가지겠다는 노선이었다.
반면 현재 MB정권의 외교안보 정책담당자들은 한미동맹 강화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이런 태도는 결국 남한이 기댈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라는 신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런 친미 노선은 결국 미중 대결구도가 강화될수록 점차 중도실용이 아니라 대북 강경책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긴장 강화를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정책기조의 변화

 

천안함 사건이 터지자, 조중동 등 우익언론은 즉각 북한정부의 공격에 의한 침몰이라고 몰아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하지만 이명박이 최초로 보인 반응은 신중하게 대처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조중동 등 우익세력과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이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남한의 우익세력은 사실상 미국 부시정권과 같은 북한 붕괴론과 흡수통일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는 사실상 네오콘의 노선과 동일한 것이었으며 부시 정권에서도 임기 말기에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철회한 것이었다.
세계 양대 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고 있는 한 북한 정권이 90년대 초반 동구권 국가들처럼 급작스럽게 붕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군이 주둔하는 국가와 직접 국경을 맞대기 싫어하는 중국은 경제지원을 통해 북한 정권의 붕괴를 막고 국제사회에서도 북한의 후견인 노릇을 하며 북한을 완충지대로 활용하고 있다. 남북 관계가 좋지 않았던 최근 몇 년 동안 중국과 북한의 경제협력은 중국의 만주개발과 함께 엄청나게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중동 등 우익언론들은 줄기차게 북한 정권이 불안하다는 보도를 쏟아내 왔다. 그리고 최근 3대 세습이 결정된 이후 이러한 보도들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정보가 대단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실제로 이러한 보도가 얼마만큼 사실일지는 거의 알 수 없는 일이다.
조중동 등과 MB정권의 차이는 결국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집권세력과 이데올로기 세력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연평도 사태이후 MB정권 역시 “주시해야 할 것은 북한 지도자들의 변화보다 주민들의 변화”라거나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이 잘 산다는 것을 알기 시작한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중대한 변화. 통일이 가까워지고 있다”며 북한의 급변사태를 예고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정권의 태도는 미국의 영향이 크다.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미관계가 풀릴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으나 결과는 오히려 더욱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오바마 정권은 국내 문제에 있어서 자유주의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대신 대외정책, 특히 중국과 북한에 대해 강경하게 나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전략가들은 카터 정권 이후 안보문제에 약하게 처신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공화당에 주도권을 뺏기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민주당 안에도 북한·중국·이란에 대해 강하게 나가야 한다는 기류가 만만치 않게 존재하고 있으며, 지난 94년 제네바 합의 때도 클린턴 정권이 너무 밀린 것 아니냐는 여론이 일면서 중간선거 패배에 일조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실제로 작년 중간 선거를 앞두고 오바마 정권은 북한에 대해 압박으로 일관했다. 중국에 대해서도 집권 초기부터 인권문제를 내세우며 대립각을 세웠다.
중간선거는 민주당의 패배로 돌아갔지만, 더욱 큰 문제는 중국이 미국의 강력한 경쟁대상으로 떠오르면서 중국을 군사·경제적으로 견제, 압박하고자 하는 미국의 욕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연평도 포격 : 중국-북한 vs 한미일 삼각동맹

 

중국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만난 가장 강력한 적수로 성장하고 있다. 소련은 애초부터 경제적으로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결국 무리한 군비경쟁 끝에 붕괴했다. 한때 경제력에 있어 미국의 턱밑까지 추격했던 독일이나 일본은 군사적으로 미국에 종속되어 있다는 약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미국은 플라자 합의 같은 인위적인 환율조정을 강요하여 이들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환율을 둘러싼 중미의 대립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중국은 독일·일본과 달리 중국은 미국에 고분고분할 이유가 전혀 없다. 현재의 추세라면 중국경제는 15~20년 내로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군비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경제에 폭탄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막대한 양의 미국 국채를 가지고 있다.
미국은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이 더 성장하기 전에 최대한 견제장치를 마련해 놓으려 한다. 미국은 이를 위해 미사일방어체제(MD)를 고리로 한미일 삼각동맹을 구축하고자 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판 나토(NATO)를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유라시아 대륙의 양끝에서 잠재적인 적대국들인 중국·러시아·이란을 압박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전 단계로 한일군사협정 체결 등이 필요하지만 반일정서가 강한 남한에서 유사시에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등의 내용이 포함될 수 있는 한일군사협정이 사회적 동의를 받기는 상당히 어렵다.
북한의 위협으로 인한 한반도 긴장 강화는 미국에게 있어 그러한 구상을 추진할 수 있는 가장 큰 명분이다. 만일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어 남한 국내에서 전시작전권 환수,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 등의 논의가 본격화된다면 미국으로서는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미국은 천안함 사태이후 대화를 요구하는 북한에 대해 일체의 회담을 거부하고 계속 압박하며 군사적 긴장을 높여오고 있다. 최근 군사적 긴장이 극에 오른 상황에서 한일군사협정 체결 논의가 오고가고 있다는 것은 한반도 긴장 강화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미국정부의 이러한 태도야 말로 북한으로 하여금 연평도 포격과 같은 강수로 군사·외교적 압박에 대응하도록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과 중국의 유착관계는 더욱 강화되고 있으며, 북한 정권의 핵에 대한 집착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계속 이렇게 갈 수 있을까

 

하지만 미국과 남한의 입장에서도 이런 식의 대결구도를 계속 밀어 붙일 수는 없는 일이다. 최근 미국의 <폭스뉴스>는 북한이 이란과 공동으로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중동이나 다름없는 <폭스뉴스>의 보도이기 때문에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보도는 북한의 핵기술이 이란으로 넘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미국의 불안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핵보유 자체는 미국에게 커다란 위협이 되지 못할 수 있지만, 북한이 이란에 핵시설을 제공하여 이란이 핵보유국이 된다면 이는 여전히 중동에 우선적인 전략적 관심을 갖고 있는 미국에게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남한도 마찬가지다. 남북관계의 불안과 안보문제의 부각은 오히려 보수파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이미 6·27 지방선거 결과는 북풍이 더 이상 먹히지 않으며 국민들의 평화에 대한 열망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정권 인사들 대부분이 군면제자인 상황에서 한반도 긴장의 강화는 정권의 안보무능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한나라당 지도부에서조차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한자본의 이해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이미 개성공단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했음에도 노동력과 시장을 중국에게 뺏기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또 남북관계의 불안은 시장에서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게 하여 주가가 폭락하는 경제적 혼란을 빚을 수 있다.
북한의 평화공세 역시 부담이다.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 회담 재개를 주장해왔고 남한과 미국이 여러 가지 이유로 회담을 거부해왔다. 1월5일 북한은 다시 한 번 무조건 회담을 재개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거듭된 북한의 외교 공세는 현재 한반도 불안의 원인을 미국과 남한의 책임으로 돌리는 효과를 낳고 있다.
전쟁 각오를 다지던 이명박이 6자 회담 수용 입장을 갑자기 밝힌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 역시 일단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이 긴장관계가 극한으로 치닫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1월19일로 예정된 중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련된 모종의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

 

평화에 대한 열망

 

MB정권은 원래 작년 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이후, 남북관계의 극적인 반전, 국내 정치권과의 통 큰 화합을 통해 이명박을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부각시켜 집권 후반을 화려하게 장식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내일신문>에 의하면 “보수인사 중심이었던 대통령 외교안보자문단도 중도나 개혁적 전문가까지 포괄해 개편하는 안을 확정짓고, 명단까지 작성했다”고 한다.
남북관계가 안정화될 때, 남한자본이 얻는 이득은 상당히 크다. 남북관계의 불안 때문에 남한의 주가가 항상 실제보다 저평가 되어 있다는 소위 “코리안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한반도의 안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이 적극적으로 평화를 요구하고 있을수록, 평화에 대한 갈망이 높아질수록, 북한문제가 대선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여전히 미국이다. 미국이 한반도 긴장을 계속 바라고 있는 한 남북관계가 당사자들의 이해만을 가지고 풀리기는 어렵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이 널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북한정권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연평도 포격 등의 도발과 평화회담 공세 등 당근과 채찍 전술을 통해 대화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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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경제]2011년 : 성장률은 둔화되고 갈등은 깊어지다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1/01/26 13:41
  • 수정일
    2011/01/26 13:44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GDP 성장률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2010년에 세계 경제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IMF는 지난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4.8%로 추정했다. 금융위기로 완전히 고꾸라졌던 2009년과 비교하면 놀랄만한 회복력이다. 그러나 이런 성장세는 2011년에는 주춤할 전망이다. 2009년의 마이너스 성장과 비교했기 때문에 2010년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이 나올 수 있었다. 이제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날 순서이다. 위기 탈출을 위해 각국 정부가 진행한 경기부양 정책도 끝난 상태라 올해 경제성장률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2009 

 2010 

 2011   

세계

0.6%

4.8%

4.2%

선진국

3.2%

2.7%

 2.2% 

미국

2.6%

2.6%

2.3%

EU

4.1%

1.7%

1.7%

 신흥개도국

 2.5% 

7.1%

6.4%

 중국

9.1%

10.5% 

9.6%

 브라질

0.2%

7.5%

4.1%

 인도

5.7%

9.7%

8.4%

△ IMF 경제전망률 전망치


IMF가 전망하는 올해 경제성장률은 4.2%이다. 선진국은 2.2%, 신흥국은 6.4%의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한다. 선진국의 낮은 성장률은 올해는 물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실업률은 10%에 가까울 정도로 높다. 또 재정적자 문제 역시 심각하다. 그리스와 아일랜드에 구제금융이 실시됐지만 위기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재정위기가 포르투갈을 거쳐 스페인에까지 이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돌고 있다. 스페인은 유로존 안에서 4위의 경제국이기 때문에 그 파급력은 그리스나 아일랜드와 비교할 수 없게 크다. 높은 실업률과 재정적자, 그리고 고령화와 저출산 등으로 선진국 경제는 2011년은 물론 꽤 오랫동안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반면 신흥국과 개발도상국 경제는 높은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대부분 5% 이상의 높은 성장률로 세계경제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특히 중국은 매년 9%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며 G2로서의 자기 입지를 확고하게 다지고 있다. 2011년에도 이런 흐름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다만 빠른 성장으로 인해 물가상승과 자산 거품이 일어나고 있어 신흥국 경제정책이 긴축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경우 지난해 지급준비율 인상과 금리인상을 잇달아 내놓으며 세계 증시를 출렁이게 만들기도 했다.
한편 지난해에 ‘전쟁’이라는 표현까지 붙을 정도로 치열하게 벌어졌던 환율 갈등은 올해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자랑과 달리 G20 서울회의는 아무런 해결 방안도 마련하지 못했다. 2011년 미국과 일본은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경기부양을 꾀하기 위해 양적완화 정책을 계속 이어갈 전망이다. 대표적인 수출국인 중국과 독일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 국면을 계속 이어가는 한 수출을 통해 다른 나라의 부를 빼앗아 오는 것이 자국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율을 둘러싼 갈등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최고로 기억될 2010년, 올해는?

 

경제성장률이 6%를 넘어선 지난해는 정권과 자본에게 최고의 해였다. 이렇게 성장율이 높아지는 데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제조업이다.

지난해 제조업은 사상 최고의 가동률과 실적을 기록했다. 금융위기 속에서 정부는 고환율 정책을 펼쳐 수출 대기업이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도왔다. 이를 바탕으로 수출기업들은 글로벌 구조조정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위기 이전보다 시장점유율을 더 높일 수 있었다.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는 중국의 높은 성장세 역시 남한 경제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금융 위기 속에서도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중국에서 산업 생산이 늘면서 각종 부품과 소재 수요가 늘어났다. 이는 남한 기업들의 수출량 증가로 이어졌다. 이런 조건 속에서 제조업 가동률은 꾸준히 늘어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설비투자 역시 크게 늘어났다.
환율 불안과 유럽 재정위기, 중국의 긴축 정책 실시 등 몇 가지 불안요인이 있지만 올해 수출기업의 실적은 지난해와 비슷하게 이어질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남한경제 역시 선진국보다 높은 성장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자신하는 5% 성장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대부분의 민간연구소들은 물론 국책연구기관인 KDI마저 4%대 초반의 성장률을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부르주아 연구기관들이 2011년을 경제가 후퇴하는 시기로 보는 것은 아니다. 2010년 성장률이 기저효과와 부양정책으로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왔다가 2011년에 정상적인 성장률로 돌아가는 것으로 본다. 올해 잠시 숨고르기한 다음 내년에 다시 성장률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2012년 이후 남한경제가 호황기였던 2000년대 초반과 같은 성장률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이다.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는 더 이상 선진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고질적인 저성장을 몇 년 뒤 남한 경제가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2007년 이후 남한 제조업 가동률지수 추이 (출처 : 통계청)

 

 

수출대기업은 계속 승승장구

 

2008년 금융위기는 남한 수출대기업에게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였다. 글로벌 구조조정 속에서 살아남아 지위를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올해에도 이어지겠지만, 자동차나 반도체 등 이미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수출산업에서 남한 대기업들이 밀리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자동차 판매량은 18% 정도 늘었다. 정부가 경기 부양책으로 내놓은 노후차량 교체 인센티브 지급이 끝났지만 완성차 회사들은 신차를 속속 출시하면서 자동차 판매량을 꾸준히 늘렸다. 수출에서는 중국이나 남미 등 신흥국 시장에서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특히 국내 1위 기업인 현대기아자동차는 해외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리며 경쟁사들을 맹추격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폭스바겐에 이어 판매량 2위를 기록하는 등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올해 내수 시장이 지난해보다 줄어들 전망이지만, 신흥국 시장이 계속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반도체는 지난해 2/4분기에 공급과잉으로 전환하면서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며 침체기를 겪고 있다. 올해 역시 반도체 가격은 계속 떨어질 전망이다. 이로 인해 상하위 업체 간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고 내년 정도에 치킨게임이 다시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같은 1·2위 업체는 이 시기를 잘 견뎌낼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남한기업이 기술과 원가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제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 벌어지는 기업 간 격차

 

남한경제가 6%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의 임금은 깎이거나 동결됐다. 이처럼 경제 성장의 성과는 자본에게만 돌아간다. 그것도 대자본이 모든 것을 가져간다. 구조조정은 나라밖은 물론 안에서도 일어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더욱 커졌다. 올해에도 이런 경향은 계속될 것이다. 조선, 건설, 유통 등 중소규모 기업이 완전하게 정리되지 않은 산업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는 더욱 커지면서 부실기업 솎아내기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산업은 2010년 10월말 현재 신규 수주량이 896만 CGT (2009년 동기간 236)로 크게 늘어 연말까지 1000을 넘길 것 예상된다. 신규 수주가 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주잔량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수주잔량은 2009년보다 19.%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소조선소들의 계약이 잇달아 계약을 취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해양플랜트 수주가 늘어날 것으로 보여 현대중공업, 대우해양조선, 삼성중공업 등 TOP 3에 드는 대형 조선사들은 상선부문 수주가 줄어들어도 수익에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신규수주를 늘리지 못하고 있는 그 외의 중형 조선소들은 구조조정에 몰릴 수밖에 없다. 특히 새로운 회계기준을 도입하게 되면 각 기업의 부채비율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 구조조정 대상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내수산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건설산업의 경우 미분양이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금리인상과 가계부채 부담으로 주택시장 회복세는 제한적일 전망이다. 재정상태가 취약한 중소 건설회사들은 부실기업으로 분류되어 정리될 것이다. 서비스산업 역시 대형업체들과 중소업체의 간극이 더 벌어질 것이다. 유명백화점이나 대형 유통업체, 중저가 브랜드 의류업체를 제외하고는 전망이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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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정치]2011년 : 대선으로 가는 징검다리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1/01/24 16:56
  • 수정일
    2011/01/24 17:33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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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치는 아무래도 2012년 대선 구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근혜 일인독주체제가 여전한 가운데, ‘박근혜 대 반(反)박근혜’의 싸움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정국도 차츰 차기 주자들 중심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이 속에서 이명박 정권의 레임덕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MB, 잇단 악재 속 레임덕

 

작년 하반기 이명박은 잇단 악재에 부딪쳤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친정체제 구축에 나섰다가 국무총리·장관 후보 셋이 낙마하는 개각 파문을 겪었다. 청와대 불법사찰 의혹은 대포폰 정국으로 이어졌다. 연평도 포격사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보수정권의 수장, 이명박에겐 또 하나의 악재로 작용했다. 천안함 침몰 때와 마찬가지로 ‘북풍’은 불지 않았다.
새해 예산안 날치기 통과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독선만 다시 확인되었다.
이명박은 정면 돌파를 내세우고 있다. 예산안 정국에서 보듯 밀리면 끝이라 여기고 있다. 연평도 사격 훈련도 강행했다. 친서민 구호가 거짓이었음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아도, 전쟁 불안감이 가중됨에 따라 평화 여론이 확산돼도, 어디든 일방통행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박형준, 이동관 등 이른바 ‘MB 코드 인사’로 친정체제를 재구축한 이명박은 당장 상반기에 한미FTA 재협상 국회통과를 밀어붙일 태세다.
이명박이 강공으로 나설수록 레임덕의 그림자는 더 짙어지고 있다. 이명박의 독주에 여권 안에서도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불만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민심을 잃어가는 ‘지는 권력’에 고분고분 따를 이유가 없다. 집권 4년차, 차기 주자들과의 마찰과 각종 권력형 비리 사건이 언제든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점도 이명박의 입지를 좁게 만들 수 있다. 역대 정권처럼 이명박 역시 레임덕의 공식을 밟아가고 있다.

 

출처 : 한국일보

한나라당의 복잡한 속내

 

한나라당에선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새해 예산안 후폭풍은 거세게 몰아쳤다. ‘이명박의 돌격대’ 이미지만 커졌다. 싸늘한 여론을 의식

 

해선지 <조선일보>도 한나라당을 싸움만 잘하는 거대 여당이라 질타했다. 대북 강공책에 따른 손실도 적지 않았다. 보수 강경파를 묶어세우긴 했지만 전쟁에 불안해하는 여론 결집에 내심 당혹스런 눈치다. 당 안팎에선 이대로 가다간 재집권은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위기감에도 온도 차가 있다. 친박보다는 친이, 그중에서도 수도권 친이계는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잇단 실정으로 수도권에선 존재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판이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수도권 참패의 악몽은 내년 총선에서 고스란히 반복될 수 있다. 한미FTA 강행 처리 반대와 이명박 정권 대북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수도권 친이계 일부에선 때 이른 감이 있지만 당-청 분리 카드까지 만지작거렸다.
이명박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은 차기 주자의 몫이다. 현재 한나라당에서 독보적인 차기 주자는 박근혜다. 친이 쪽에 김문수, 오세훈이 있지만 쫓아가기에도 버겁다. 한나라당의 셈법이 복잡한 건 그래서다. 그 동안 친이는 이재오계와 이상득계로 나뉘어 권력다툼에 몰입했지만, 더는 그럴 수 없게 됐다. 언제까지 이명박과 공동운명체로 있을지 결정해야 한다. ‘유력한 미래 권력’ 박근혜와의 거래도 필요하다. 구심점을 잃어가는 친이의 결집력은 점점 느슨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대선을 2년이나 앞둔 시점에서 박근혜가 이명박과 전면전을 치를 가능성은 낮다. 급속한 레임덕에 따른 정치적 혼란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당 밖에서는 부는 바람이다. 개혁-진보 쪽으로 기운 여론과 그 견제심리가 만만찮다. 박근혜의 고심은 여기에 있다. 당내 경선을 통과한다고 끝이 아니다. 폭넓게 퍼진 반(反)이명박 정서는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명박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박근혜가 누구보다 먼저 대권 행보에 나선 까닭이다. 복지를 화두로 내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심과 자기색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에 복지만큼 좋은 게 없다. 물론 이명박과 날선 대립까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한미FTA만 해도 박근혜가 찬성했으면 했지 반대할 사안은 아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명박과 차별화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확대하겠다는 것이 지금 박근혜가 취하는 전략으로 보인다.

  

박근혜의 복지

 

지난 12월20일 박근혜는 ‘사회보장기본법 전부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2012년 대선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다. 국회의장과 당대표를 비롯 현역 국회의원만 70명이 넘게 참석한 이 공청회에서 박근혜는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국민이 실제 느끼는 복지의 체감이 낮고 만족도도 높지 않다"며 "복지 지출이 후세에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줄 수 있는 선제적 투자가 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이른바 ‘한국형 복지국가 건설`이 박근혜 캠프의 기본 슬로건이 될 것을 예고했다.?
이는 민주주의·복지·평화 등의 이슈를 가지고 대선에 임할 것이 뻔한 야권에 맞서 이슈를 선점하고 MB와 차별성을 만들어내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나 ‘생애보장 복지’로 요약되는 ‘박근혜 복지’는 보편적 복지가 아닌 선별적 복지라는 점, 복지 재원 조달에 대한 방안이 없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기존 입장과 크게 달라지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박근혜 복지에 대해서 이명박과 당내 경쟁자들은 즉각 퍼주기식 복지, 복지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된다며 일제히 박근혜 견제에 나섰다. 특히 오세훈은 무상급식을 가지고 시의회 및 교육감과 연일 날선 대립을 펼치며 보수의 총아로 거듭나고자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보수적 제스처들은 한나라당 골수지지자들의 호의를 사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대선 본선에서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데에 한나라당 내 반박(反朴)그룹들의 고민이 있다.

  

범야권 통합 흐름, 힘 받을까

 

한편 민주당은 여전히 어부지리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예산안 후폭풍에서는 ‘부자정권’에 맞서 ‘민생’을 내세우고, 연평도 정국에서도 천안함 침몰 이후처럼 ‘전쟁 대 평화’ 구도로 가져갔다. 여론도 나쁘지 않다. 반(反)이명박 정서가 워낙 강한 탓이다. 민주당은 혼자서도 해볼만 하다고 보고 있다. 전면에 나선 손학규는 야권연대보다는 민주당 중심으로 대응했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대선을 의식한 개인적 행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작년 지방선거 때는 야권연대가 가능했다. 시장은 민주당, 구청장은 민주노동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 이런 식으로 나눠먹기를 할 수 있었다. 내년엔 다르다. 총선에서 야권연대가 가능하려면 민주당이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수도권은 물론 호남에서도 성의 표시로 최소한 몇 석은 다른 정파에 넘겨야 한다. 계파 구도가 복잡한 민주당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대선은 총선과 또 다르다. 오로지 한 자리를 건 싸움이다. 겉으로야 민주당을 비롯해 반(反)한나라당 진영 어디든 야권연대를 부정하진 않는다. 이명박 정권에 피로감을 느낀 여론을 흡수하려 할 때, 야권연대만한 명분도 없다. 만일 대선 구도가 범야권 후보단일화 바람을 타고 ‘박근혜 대 반(反)박근혜’, ‘보수 대 개혁-진보’로 압축된다면 선거 결과 또한 예측하기 힘들게 된다. 범야권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손학규, 유시민, 정동영 등은 저마다 한 방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 야권연대가 시일을 다투고 문제로 제기되고 있지는 않다. 총선과 대선은 내년이다.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자기 진영에 유리한 쪽으로 이해득실 따지기에 바쁠 것이다. 야권연대 방식으로 야권단일정당론에서 소통합연합론, 진보대통합까지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는 것도 당장은 야권연대가 지지부진할 것임을 뜻한다. 내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치적 지분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FTA가 올해 첫 시험대가 될 듯

 

갈수록 떨어지는 이명박의 인기, 박근혜의 독주와 야권의 인물난 등은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올 한 해 동안 여야를 막론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이면적 흐름을 만들어낼 것이다. 총선이 가까워 올수록 한나라당의 탈MB 흐름은 더욱 강화될 것이 분명하지만, 가시적인 당의 재편은 총선의 결과에 따라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보온병, 자연산 발언 파동에도 불구하고 안상수가 계속 당대표를 맡고 있는 것은 결국 당내 역관계를 조정할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선거가 없는 2011년은 제기되는 정치 의제에 따라 정국의 분기점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감사원장 인사파동에서 청와대는 이미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인사파동 이후 MB정권의 첫 시험대로는 한미FTA 정국이 예상된다. 야권의 격렬한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권은 예산안 때와 같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 하겠지만, 과연 한나라당이 어느 정도의 결속력을 갖고 대응할 것인가에 따라 MB정권의 국정장악력이 시험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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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2011정세전망]민주주의·평화·복지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1/01/24 16:51
  • 수정일
    2011/01/24 18:11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새해가 밝았다.

2010년은 3월 천안함사건에 이어 11월 연평도 포격사건까지 벌어지면서 대북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된 한 해였다. 그러나 우파의 노골적인 북풍선동에도 불구하고 6월 지방선거에서 역(逆)북풍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 예상외로 야당이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MB에 대한 반감이 대중투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정권에 대한 불만을 대중투쟁으로 이끌 세력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촛불투쟁 이후 탄압을 심하게 당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정권과의 충돌을 피하고 제도권 정당과 정책연대를 강화하는 방향을 취했다. 가장 큰 동원력을 가졌던 민주노총은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경제성장률은 높았고, 자동차·반도체·조선 등의 수출대기업은 여전히 호황을 누렸다. 금속대공장 노동자들의 실리주의적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다. 작년 여름 기아자동차지부의 타임오프 이면합의는 정권의 노동탄압에 대해 노조관료의 이해만을 챙긴 배신적인 행위였지만, 이러한 행태를 비판하는 세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본격화되는 레임덕

 

구제역과 신종플루가 전국을 휩쓰는 가운데, 정초부터 터져 나온 감사원장 인사파동으로 MB정권은 본격적인 레임덕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6·27 지방선거 패배 이후 이명박은 “공정한 사회와 친서민중도실용”, “소통과 대화의 정치”를 강조하며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실제로 박근혜와 회동을 하는 등 당청·대야 관계에 변화가 나타났고, 정부 관계자들은 G20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른 뒤 냉각된 대북관계를 풀고 본격적인 유화국면으로 나아갈 계획이 있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G20정상회의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고,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이러한 계획은 어긋나고 말았다. 결국 이명박은 예산안 강행처리, 측근인사 전면배치 등 “강경모드”로 기조를 바꾸었다.

하지만 이러한 강경모드는 결국 지지율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후퇴, 한반도 긴장강화로 인한 불안감의 증대, 노골적인 반(反)서민정책 등은 국민의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연초부터 인사문제로 한나라당이 공공연하게 반기를 들 정도로 집권세력의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주의, 평화, 복지

 

경제성장률은 최근 몇 년 간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양극화는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민생존권의 악화로 말미암아 박근혜조차 복지를 말할 만큼 복지가 사회적 의제로 자리 잡았다. 한반도 불안으로 평화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복구하려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MB정권은 연평도 포격 이후 이런 요구에 대해 더욱 보수적인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에 이런 이슈들은 각 정치세력에게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면서 대선구도에서 본격적인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이 때문에 정권과 한나라당의 갈등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명박은 레임덕을 막기 위해 공권력과 탄압이라는 손쉬운 무기에 기대고 싶겠지만 집권말년을 향해가는 지금, 집권초기만큼 공권력의 활약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작년에 오세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광장이 열린 것처럼 집회와 시위의 공간이 점차 열릴 가능성이 높다.


낡은 운동 깨고 새로운 주체 형성해야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틈새를 대중투쟁으로 돌파해야할 주체가 여전히 약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급진성을 잃어버린 시민사회단체, 선거에만 목을 매는 진보정당들, 조합주의의 덫에 걸려 꼼짝하지 못하는 민주노총 등 낡은 운동질서가 오히려 새로운 운동을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 지속되고 있다.

대중적으로 저항이 확산되지 못한 채 싱겁게 끝나버린 G20 반대투쟁은 주체 부재의 상황을 명확히 보여주는 실례였다. 불법파견 판정과 함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이 11월·12월을 뜨겁게 달구었지만 역시 정규직노조의 벽을 넘지 못하고 점거 25일 만에 별다른 성과 없이 농성을 해제하고 말았다.

낡은 운동질서를 깨고 새로운 저항의 주체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가 향후 장기적인 운동의 전망을 좌우할 것이다. 민주주의, 평화, 복지로 형성되고 있는 대중적 화두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사회주의자들의 고민이 필요하다.

2011년 1월12일 사회주의노동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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