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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노동]홍대 농성장에서 만난 강현구씨 인터뷰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3/02 16:08
  • 수정일
    2011/03/02 16:08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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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소개 부탁드린다
가톨릭 대학교 사회학과 강현구라고 한다.

 

홍대 투쟁 소식을 어떻게 접하게 되었나
처음에 같은 학교 다니는 친구가 청소 노동자와 관련한 서경지부에서 꾸린 학교별 회의체를 하고 있었다. 친구가 나가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말해주었다. “홍익대에서 170명 정도 해고되었다 같이 가자”고. 그 다음날 총장실 앞 점거하고 다음날 아침 7시에 홍대 와서 같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홍대 문제가 트위터에서 많이 이슈가 되었나
해고사실은 계속 회의체에 참여하신 분이 올렸고. 점거와 관련한 얘기는 실행 전에는 올리지 않았다.

 

동희오토 노동자들이 트위터에서 비정규직당을 만드는 등 동희오토 때부터 노동자 투쟁의 과정에서 트위터가 많이 사용된 것 같다
처음에는 트위터를 농성하신 분들이 직접 쓰진 않았고 연대 가신 분들이 현장 소식을 전달하는 것으로 사용했다. 사진을 찍어서 올린다든지. 동희오토 때부터 처음으로 농성하시는 분이 직접 쓰시기 시작했다. 동희오토 농성이 끝나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 때 현대차 사장인가 노동부 장관인지가. ‘비정규직 임금 많이 받는다’라고 해서 농성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트위터를 통해서 월급 명세서를 찍어서 반박하면서 효과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번 홍대 투쟁에서는 특이하게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까지의 실천으로 많이 이어진 것 같다. 왜 홍대투쟁에서 그런 것이 가능했을까
사실 나도 궁금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랜드나 동희오토나 지지하는 여론은 있어도 적극적으로 연대물품을 보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무래도 조합원분들이 나이대가 고령이시고 여성분들이 많으신 편이니까 일반 시민들이 자기 부모님이 겪으실만한 일이다 그렇게 느껴서 더 적극적인 듯하다.
동희오토나 현대자동차는 젊은 남성들이어서 그런 감수성을 못 느꼈는데. 부모님 같은 분이라 더 그런 감수성이 더 강해진 듯하다.
홍대 투쟁에서 연대의 흐름이 커진 것은 김여진 씨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홍대 흐름이 거세게 올 때 김여진 씨가 더 크게 만든 부분도 있기는 하다. 김여진 씨가 오기 전에도 일반 시민들이 연대물품을 보내주고 계셨다.
홍익대 총학의 말이 사안을 더 키운 부분도 있다. 외부세력 운운하니까 ‘그래, 우리 외부세력이다.’ 이러면서.

 

이러한 흐름이 홍대 투쟁 말고 다른 투쟁에도 하나의 흐름으로 퍼지는 것이 가능할 것 같은가
학교에서 청소노동자 관련해서 발제를 했다. 1학년 학부생에서 학과로 넘어가면서 ‘사회학은 이런 것이다’에 관한 미리배움터를 열었고 청소노동자 관련한 발제를 했는데 반응이 우호적이었다. 관심도 많고 뜨거웠다. ‘더 알고 싶다’, ‘더 알지 못해 아쉽다’는 말이 나왔다.
20대들이 탈 정치화되고 있다고 많이 우려하는데 대학 내에서 이런 사건이 터지니까 다른 대학에서도 우리 대학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인 것 같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 홍익대가 잘 해결된다면 다른 대학에서도 노동자 조직화의 흐름이 일지 않을까. 댐 구멍이 하나 나면 물이 콸콸 흘러나오는 것처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더 많은 사람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는 것 같다. 설령 인터넷 언론이라고 해도 직업기자고 어떻게든 현장의 목소리가 기자에게 걸러져서 언론사 가치관에 맞게 바뀌는데 트위터 같은 것을 통해서는 일반 시민들이 여과 없이 바로 의견을 올리니 현장과 가까워지는 듯하다.
그리고 속도가 매우 빠르다. 예전에는 인터넷 언론도 빠르다고 했는데 트위터는 현장에서 생생하게 라이브로 얘기가 나오니까 더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 닿는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달라
홍익대 문제가 사회적으로 얘기되고 하는 것이 좋긴 한데 걱정되는 건 어머님 아버님 문제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어머님 아버님이라는 말은 간접고용의 문제를 덮고 ‘부모님 같은 분을 건드리냐’는 전통적 가치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홍익대 투쟁이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비정규직의 문제, 간접고용의 문제에 대해 환기해서 사람들이 비정규직 투쟁에 더 관심을 갖고 사람들이 더 지지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인터뷰한 날 | 2월14일
정리 | 정지원 (jeewon@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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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노동]홍대입구역에서 1인시위를 진행한 도우너씨 인터뷰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3/02 16:04
  • 수정일
    2011/03/02 16:05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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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간단히 소개 부탁드린다
서양화과 졸업한지 2년 된 전업화가다. 생활비는 조금 조금씩 번다. 작업실에서 취미생을 가르치기도 하고 과외를 하기도 하고.

 

홍대 투쟁을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되었고 1인시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사실 1월10일 정도까지는 그냥 뉴스기사로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트위터에 여기 홍대 미대 학생이 같이 청소노동자분들 초상화를 그릴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고, 그걸 친구가 이야기해줘서 “아 그럼 나도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초상화 그리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나도 뭔가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마침 1월1일부로 과외가 다 짤려서 시간이 많기도 했다. 그 친구를 통해서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과 처음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초상화를 그려드리면서 조금씩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17일에 작업실에서 인터넷을 하는데 노컷뉴스 기사에서 오전에 기자회견을 하시던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이 울고 계시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 초상화를 그려드렸던 분들도 배경에 보이는 것 같았다. 가슴이 매우 아팠고, 뭔가 이 사건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그날 저녁부터 1인시위를 시작했다.

 

1인시위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것이 있나
사실은 경찰이 한 번 왔었다. 아무래도 홍대 전철역 안에서 하다보니 역무원이 와서 자꾸 나가라고 했다. 자꾸 이러면 경찰을 부를거라고 했다. 괜한 마찰을 일으키기 싫어서 매번 지하상가 쪽으로 비켜주었으나 하루는 화가 나서 “1인시위는 집회가 아니기 때문에 집시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경찰이 와도 잡아갈 수 없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역무원이 정말 경찰을 불렀다. 그 역무원은 경찰이 이걸 잡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경찰은 이미 잡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주민신고가 들어왔는데 좀 혐오스럽다고 한다. 자리를 비켜줄 의향이 없느냐?”고 권유를 했다. 나는 “비켜줄 의향이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잘 마무리되었다.

 

다른 투쟁에 비해 홍대 투쟁에서는 온라인 활동도 활발했지만 온라인에서 투쟁을 알게 된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의 실천도 활발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나도 사실 좀 의외다. 나 자신도 왜 이 사건에 이렇게 끌렸을까 잘 모르겠다. 그냥 개인적으로는 홍대가 미대가 유명하니까 같은 미대생으로서 좀 더 가깝게 느껴진 거 같고 (미대에는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데 대학 다닐 때 쓰레기를 마구 버렸던 게 생각이 나면서 청소노동자분들께 죄송스러웠다), 홍대 이 주변이 좋은 카페나 공연장도 많고 젊은 분위기여서 그런지, 홍대로 모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 것 같다. 사실은 내가 작년에 과외하던 집이 양재IC 근처라서 과외를 오갈 때마다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사람들이 데모하는 게 보이곤 했었다. 그런데 그때는 왠지 분위기가 아저씨들이 좀 무섭기도 하고, 양재IC 사거리가 황량하기도 해서 혼자서는 절대 근처에 구경도 못갈 것 같은 삭막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농성장에 여성분들도 많아서 그런지 아기자기하고 편한 분위기가 있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발길을 끄는 것 같다.
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김여진 씨의 역할이 큰 것 같다. 스크린의 꽃이라 불리는 여배우가 이런 사안에 뛰어든다는게, 언뜻 딱딱해 보일 수 있는 이번 사건의 전체적인 인상을 유화시켜준 것 같다. 그래서 노동운동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거부감이 줄어들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분이 트위터를 열심히 하시면서 ‘날라리 외부세력’이라는 자발적인 모임을 만들어 20∼30대 젊은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신 것이, 젊은 트위터리안들을 현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른 노동자들의 투쟁도 트위터를 통해서 접해본 적이 있나

트위터를 시작한 게 길지 않아서 많이 접하진 못했었는데 ‘모닝’ 만드시는 동희오토 분들 이야기는 한 번 접했었다. 그러나 그냥 한 번 글을 읽고 마는 정도였지 내가 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처음 이 홍대 사건을 접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홍대 미대 학생이 같은 미대생으로서 사람을 모집했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 학생이 아니었으면 나는 다른 투쟁과 마찬가지로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을 것 같다.

 

기존에 운동단체에서 주최하는 집회, 투쟁에 연대해본 적 있나
그냥 재작년에 그 FTA 반대하던 촛불집회, 광화문 사거리에 명박산성 쌓고 그럴 때 대학 친구들이랑 갔던 것 정도이다. 그런 종류의 대규모 집회가 있다고 하면 가끔 아는 친구들이랑 개인적으로 가곤 한다. 어떤 운동단체가 주최하고 여기 주최가 어딘지 그런 걸 잘 알진 못한다.


예전에 참여한 집회와 홍대 집회와 다른 느낌이 있나
어쨌든 내가 여길 참여하는 방식이 기존 집회를 참여했던 방식과 달라서 느낌은 많이 다르다. 청소노동자분들과 안면이 있다보니 도우너 옷 입고 집회 있을 때 참여하거나 점거농성중인 문헌관에 찾아가면 매우 반겨주시고 좋아해주신다. 이럴때면 참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찾아오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는 문화 콘텐츠랄까 시각적인 콘텐츠가 많은 것 같다. 정문에 옷 같은 것(홍대 정문에는 청소노동자들의 작업복을 걸어놓은 설치미술품이 있다)도 걸려있고, 조선일보 광고에 썼던 일러스트도 그렇고, 문헌관 이곳저곳에 미대생들이 만들어놓은 작품도 그렇고, 하고자 하는 얘기를 글 외에 시각적으로 보여주려는 노력이 많은 것이 다른 집회랑 다른 분위기인 것 같다.

 

연대하면서 노동운동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바뀌었나
사실 내가 기존 노동운동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이 곳이 분위기가 가족적이고 문화적인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판단도 상황이 끝나야 제대로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이 농성이 안 좋게 끝나면 ‘아 내가 그때 왜 이렇게 설렁설렁 했지? 좀 더 과격하게 했어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제는 집회가 끝나고 다같이 다음 아고라에서 받은 10,000명 지지서명문을 행정실에 전달하러 갔었는데, 행정실 문은 잠겨 있고 교직원 한명이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조합원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었다. 이 와중에 약간 시비가 붙었는데 홍대 농성장에서 언성이 높아지는 걸 처음 보게 되었다. 나는 좀 울컥하면서 ‘아, 이게 그냥 적당히 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구나. 내가 좀 안일하게 생각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대의 지금 이 분위기가 무조건 좋다고 평가하긴 아직 어려울 것 같다. 결국은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승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투쟁에 트위터가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나는 현재로서는 트위터는 매우 훌륭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포털사이트와 같은 공급자 중심의 어플리케이션이 아닌 사용자 중심의 어플리케이션으로, 정보의 검열이 적고, 점조직적이고 열린 관계를 통해서 정보가 신속하고 빠르게 전파된다. 이번 홍대 사건도 상황이 일어난 초기부터 전 과정이 실시간으로 트위터를 통해 알려졌고,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했다. 그리고 자발적인 참여인을 만들었다. 이는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상황이 급격하게 변화함에 따라서는 많은 사람들을 현장으로 모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뷰한 날 | 2월1일
정리 | 정지원 (jeewon@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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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경제]물가는 오르고 양극화는 심해지다

  • 분류
    경제
  • 등록일
    2011/03/02 16:02
  • 수정일
    2011/03/02 16:08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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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물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설 연휴가 끝난 뒤에도 물가상승은 계속됐다. 15일 기준으로 돼지고기 가격은 지난해보다 80.7%나 올랐다. 닭고기 가격도 50%가 올랐다. 밀의 경우 30% 넘는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서울우유는 다음달 1일부터 기업체에 공급하는 우유 가격을 최고 65.9% 인상하겠다고 밝혔다가 이에 대한 항의가 빗발쳐 4시간 만에  번복하기도 했다.

 

이상기후와 투기세력 

 

정부가 물가상승률을 3%로 억제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월보다 4.1% 올랐다. 설 연휴가 끝난 뒤에도 물가는 진정되지 않았고 갈수록 심각해질 전망이다.
물가상승의 원인에 대해 부르주아 경제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이상한파와 홍수, 가뭄으로 작황이 부진해 농산물 공급이 줄어든 것을 들고 있다.

 

비상업용 순매수 포지션(non-commercial net long position)

 

순매수 포지션이란 선물옵션 거래 용어인데, 실수요에 바탕을 두지 않은 비상업용 순매수 포지션이 크면 헤지펀드 같은 투기성 자금이 많이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여기에 경기회복 속도가 빠른 신흥국을 중심으로 원자재와 식료품 수요가 늘어나면서 물가가 오르고 있다고 진단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달 식품가격지수가 전월보다 3.4%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1990년 관측을 처음 시작 뒤로 가장 높은 수치이다.
투기세력의 문제도 있다. 오랜 저금리 기조와 양적완화 정책으로 시장에는 자금이 넘쳐나고 있다. 이 자금들이 더 높은 수익을 찾아 상품시장으로 몰려 들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밀의 비상업용 순매수 포지션은 3만5천건으로 2007년 8월 이후 가장 많았다. 옥수수 역시 41만4천건으로 전보다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원유의 경우에는 지난달 11일 약 22만7천건으로 처음 통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았다. 이렇게 투기 자본이 몰려들면서 물가 불안이 더 심해지고 있다.
이상기후나 투기세력 문제는 국가 차원에서 손 쓸 수 없는 문제들이다. 이 문제를 물가상승의 중요한 원인으로 얘기하는 이들이 대책으로 내놓는 것은 공공요금 인상 억제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물가상승폭을 줄이면서 나라 밖 사정이 진정될 때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정부대책은 가격억제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물가대책 역시 초기에는 공공요금 인상 억제가 핵심이었다. 지난달 13일 대책회의를 연 정부는 공공요금과 대학등록금 인상 억제 등을 해결책이라며 내놓았다. 그러나 공공요금 인상을 마냥 미룰 수는 없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상반기에 억누른 공공요금 인상이 풍선효과로 하반기에 터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굳이 하반기까지 갈 것도 없이 지난달부터 공공요금은 무서운 기세로 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만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달 도시가스 요금은 4.7% 올랐고, 상수도 요금은 0.9% 올랐다. 그 외 공공요금들도 모두 올라 평균적으로 0.9%가 올랐다. 4년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올해 안에 전기요금과 대중교통 요금을 인상하겠다는 계획도 발표되고 있다.
정부가 빼든 또다른 카드는 몇몇 독과점 기업에 가격인하 압력을 넣는 것이다. 정유, 통신, 유통업계 대기업들이 도마에 올랐다. 이명박은 기름값 발언을 지속적으로 흘리며 정유회사들에 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기획재정부 윤증현 장관은 “독과점산업인 정유와 통신사들이 국민을 상대로 막대한 이익을 냈다”며 가격인하를 촉구하고 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자신이 직접 기름값 원가 계산을 하겠다며 정유사에 으름장을 놓았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판매수수료 공개를 요구하며 대형 유통업체를 압박하고 있다.
정부의 이런 압력에 해당 기업들은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해당 산업 실정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가격인하만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압력의 강도를 계속 높이자 형식적으로 따르는 시늉을 보이고 있다. 정유회사인 SK이노베이션 구자영 사장은 지난 10일 “정부 방침을 중분히 이해한다”며 정부정책에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유통업체들 역시 몇몇 식료품 가격을 동결했다.
하지만 원가공개 요구에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정부의 요구가 어디까지 먹힐지 의문이다. 정부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기업이윤을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는 이명박 정부이기에 그렇게 할 리 없기 때문이다. 물가안정을 위해 정부가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쇼를 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양적성장을 위한 고환율과 저금리

 

△2007년 이후 원달러 환율 그래프 변화. 이명박 취임 이후 급격하게 상승했다.

한편 물가상승의 원인을 작황부진과 같은 외부 요인에서 찾지 않고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 저금리 정책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던 당시 94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9개월 뒤인 11월 24일 1,500원 선을 넘어섰고 이듬해인 2009년 3월에는 1,575원에 이르렀다. 이후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평균적으로 1,200원대를 유지했다.
환율이 높으면 수출대기업은 가격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 남한 수출대기업들은 금융위기 기간동안 높은 실적을 거두며 경쟁기업을 물리쳤는데 이는 정부가 고환율 정책으로 뒷받침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와 서민들은 높은 물가를 감당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고환율로 석유와 같은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서 국내 물가가 오르기 때문이다. 수출대기업 성장을 위해 국내 소비자를 희생시킨 것이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계속 동결한 것도 물가가 오르게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높은 수준을 보였지만 한국은행은 딱 한 번 금리를 올렸을 뿐이었다. 이는 정부의 입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열석 발언권을 행사하며 한국은행에 압력을 넣었다.
소위 경제전문가라 불리는 이들 중 상당수는 금리 인상을 물가상승 억제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꼽는다. 여당인 한나라당에서도 고환율과 저금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경기위축을 우려하여 금리 인상을 최대한 막아 왔다. 그러나 물가상승이 심각한 수준인 지금 금리인상을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금리를 인상했던 한국은행은 이번 달에는 동결했다. 아직까지 정부는 물가상승보다 경기 둔화를 더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달에는 금리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부르주아 경제전문가들의 예측이다.
현재로선 물가안정을 위한 가장 확실한 대책은 금리인상이다. 단기적으로는 공공요금이나 가격인상을 억누르는 시늉을 하며 버티겠지만, 결국 금리인상 카드를 들고 나올 수밖에 없다. 금리가 오르면 부채를 진 가계의 이자 부담은 늘어난다. 집을 구하기 위해 또는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대출을 받았던 노동자와 서민들은 고통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노동자, 서민들에게 또 한번의 고통 분담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양극화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6.1%이다. 2002년 이후 가장 높다. 정부와 언론은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회복에 성공했다며 떠들어댔다. 그러나 남한 경제가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동안 이 사회의 양극화는 점점 심해졌다. 경제 위기를 이유로 노동자들의 임금은 삭감되거나 동결됐다. 그 결과 지난해 소득증가율은 5.8%에 불과했다.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소득이 늘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소득이 늘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계층간 격차도 커지고 있다. 남한에서 중산층의 규모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또 저임금 근로자 비중은 25.6%로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다.
현재의 물가상승은 남한 뿐 아니라 신흥국 대부분이 겪고 있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나라에서 물가가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명박 정부 역시 GDP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강을 파고, 돈을 풀고, 달러를 사들였다. 이렇게 양적인 성장에만 몰두하느라 물가 문제에는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았다. 물가를 잡으려다 성장률을 떨어뜨릴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심각한 물가 불안 상황에 이르렀다.
부르주아 경제전문가들이 말하는 경제성장은 정확히 말해 가진 자들만의 성장이다. 일반 대중 모두에게 성과가 고루 돌아가지 않는다. 반면 물가상승으로 인한 고통은 저소득층일수록 더욱 심하게 겪는다. 정부가 자랑하는 6.1% 경제 성장, 2.9% 물가 상승은 가진 자들에게 부를 6.1% 더 안겨주고 저소득층에게 2.9%의 고통을 더 안겼다는 뜻일 뿐이다.

 

하수혁 (24hour@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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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노동]노동자 투쟁에서도 트윗,트윗?! 홍익대 투쟁과 온라인을 통해 흐르는 연대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3/02 15:59
  • 수정일
    2011/03/02 15:59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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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2월20일, 홍익대 청소·시설·경비 노동자들은 50일간의 농성 끝에 신규 용역업체와의 잠정합의안을 가결했다. 용역업체와의 합의내용에는 ▲전원 고용승계 ▲일 8시간 근무 및 주 5일제 ▲시급 4,450원 ▲식대 월 5만원 ▲명절 상여금 5만원 ▲전임자 청소 1명과 경비 0.5명 ▲서경지부 집단교섭 단협안 준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기존에 이들은 75만원의 저임금과 한 끼 밥값 300원으로 대표되는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일했다. 이러한 환경을 바꾸기 위해 홍익대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170여 명이 해고되었다. 2011년 1월1일, 학교가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내쫓자 노동자들은 홍대의 본관에 해당하는 문헌관 1층에서 점거 농성을 시작했고 50일 간의 농성 투쟁 끝에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용역업체와 합의가 이루어진 지금까지도 학교는 여전히 원청사용자성을 부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조활동 역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홍익대학교는 청소·시설·경비 노동자들이 농성에 들어간 이후 책임을 회피하고 노조 탄압으로 일관했다. 홍익대분회 분회장과 서경지부 간부 등 7명을 건조물 침입, 감금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 했던 것이다. 이에 노조는 고소고발 취하, 교섭테이블 마련, 노조 인정 등을 요구해왔으나 용역업체와 타결한 지금도 학교는 고소고발 취하 요구와 공식 대화 테이블에 응하지 않고 있다. 비록 용역업체와 합의하고 현장으로 복귀하기는 하지만 학교와의 투쟁은 계속되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새로운 연대의 흐름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최근 몇 년간 여러 학교에서 벌어진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소속 대학은 달라도 이들의 노동조건은 거의 유사하다. 간접고용과 저임금에 맞서는 고령 여성노동자의 투쟁은 다른 대학의 투쟁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되었다. 원청사용자성을 극구 부인하려고 하는 모습도 유사하다. 그러나 홍익대 투쟁은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이 사안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의 연대 흐름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까지 온라인 공간에서의 활동은 주로 투쟁 주체가 준비하는 홍보활동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러한 홍보에 반응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서명운동 동참 등 온라인에서의 활동에 한정된 것이었다. 오프라인에서의 실천에 참가하는 것은 주로 투쟁사업장 노동자, 민주노총 관련자, 각종 정치단체 성원들로 한정되었다. 하지만 홍익대 투쟁에서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의 연대는 수동적인 서명운동 수준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끊임없는 지원과 연대

이번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온라인, 특히 트위터를 통해 이 사안을 알게 된 사람들의 실천은 더욱 적극적인 것이었다. 농성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홍익대에는 여러 개인이 지지물품을 보내왔다. 밑반찬, 핫팩, 커피 믹스 등 다양한 물품후원과 투쟁기금 지원이 이어졌다. 심지어 2월6일에는 ‘이노케어시스템즈’라는 중소기업에서 RT(글을 퍼 날라서 자신을 팔로우 하는 사람이 읽을 수 있게 하는 기능) 10회 당 홍대 노동자들에게 충전식 손난로를 보내준다는 글을 올렸고, 두 시간도 안 돼 600개가 넘는 RT를 받았다. 바로 다음날 충전식 손난로 180개가 홍대 노동자들에게 전달되었다. 이러한 지원물품은 앞으로도 예정되어 있다. 외환은행노조에서도 RT 한 회마다 100원씩 적립하여 홍대에 투쟁기금으로 전달한다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후원을 넘어서는 실천도 이어지고 있다. 홍익대 농성장은 여러 대학의 학생들, 인근 주민들, 홍익대입구역 근처에서 투쟁하고 있는 두리반 사람들, 홍익대에 맞서 함께 싸우고 있는 성미산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꾸며놓은 플랜카드와 지지메세지로 가득하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을 안타깝게 여긴 몇몇 예술학과 학생들은 ‘데굴데굴’이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은 떡국 끓이기, 길거리 행진, 퍼포먼스 등의 활동을 펼쳤다. 전업화가인 도우너 씨는 홍대입구역에서 도우너 옷을 입고 홍익대 투쟁에 관심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농성이 시작된 지 얼마 안된 1월8일에는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하 ‘날라리외부세력’)이라는 트위터 상의 모임이 꾸려져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조선일보에 홍대 노동자 문제 해결을 요청하는 광고를 내는가 하면 홍대 투쟁에 필요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우당탕탕 바자회’를 열기도 했다. 설 연휴에는 홍대 노동자들에게 떡국을 대접하는 떡국 번개를 진행했고 트위터에서 농성장에 김치가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돌자 2월13일에는 농성에 꼭 필요한 김치를 담그는 ‘김장번개’를 진행하기도 했다. 2월17일에는 홍대 노동자들에게 김여진 씨가 출연하는 <아이들>이라는 영화를 보여주는 영화번개도 진행했다. 이러한 활동은 모두 트위터에서 모인 사람들의 자발적인 활동과 모금으로 가능했다.

 

트위터 연대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학교의 묵묵부답에도 불구하고 이런 연대에 힘입어 홍대투쟁은 힘 있게 진행되었다. 지난 2월15일에는 2000명이 모여 집회를 진행하고 홍익대 정문에서부터 농성장이 있는 문헌관까지 행진하기도 했다. 이 집회에는 노동조합이나 기존의 정치단체뿐만 아니라 날라리 외부세력과 홍익대 투쟁을 지지하는 개인들도 많이 참가하였다. 이렇게 온라인을 통해 모이게 된 사람들이 노동자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찾기 어려웠다. 이러한 움직임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왜 특히 홍익대 투쟁에서 이러한 연대가 가능했던 것인지에 대해 몇몇 참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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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기고]1사1조직의 관료적 통제를 뚫고 투쟁하는 비정규노동자들과 연대를 강화하자!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3/02 15:43
  • 수정일
    2011/03/04 16:59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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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1조직의 관료적 통제를 뚫고 투쟁하는 비정규노동자들과 연대를 강화하자!

기아화성공장 사노신 독자모임 이상욱

 

2011년은 소수노조, 비정규직노조 고난의 시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법과 제도를 통한 파업권 통제


이명박 정권은 비정규직 확대하는 ‘고용전략2020’과 더불어 2011년 7월 1일 복수노조 허용 이후 교섭창구단일화를 무기로 노조무력화 공세를 취할 것이다. 교섭창구단일화가 되면 1)자율적으로 교섭창구단일화 2)단일화가 되지 않으면 과반수이상 노조로 교섭창구 단일화 3)과반수노조가 없을 때에는 조합원 수에 비례해서 공동교섭대표단 구성 4)조합원 수가 10% 미만 노조는 공동교섭대표단에서 제외. 소규모 노조는 설립되더라도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파업권)을 확보하기 어렵다.
개악된 노조법은 파업찬반투표 등 노조의 합법적 파업권 행사를 정부가 검열·통제하도록 하고 있다. 가뜩이나 무쟁의 등 전투성을 잃어가는 대공장 노조들은 조합원 이탈을 두려워하며 과반수노조, 10%이상 노조가 되기 위해 전투성을 버리고 개량을 택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것이다. 대공장 정규직노조가 과거처럼 살쾡이파업 등의 비공인파업에 들어갈 가능성이 희박한 가운데 합법적 파업권을 획득하기 위해 대중추수적인 보수적 길을 선택하고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쟁의행위찬반투표를 해야 하는 현실이다.


민주노총-한국노총의 연대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이 당선된 후 민주노총 상층지도부는 환호했다고 한다. 한국노총 안에서 그나마 개혁파라고 평가되는 이용득 위원장의 당선은 향후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파기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에 민주노총과 공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표면적 이유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미조직·비정규직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에는 관심이 적은 듯하다. 일례로 삼성전자노동자들의 백혈병 등 산재로 인한 잇단 죽음으로 폭로되고 쟁점이 되는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투쟁조직화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의 2차파업이 난항을 겪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어떤 계획도 나오고 있지 않다. 다만 그동안 민주노총의 기반이었던 대규모 사업장에서 과반수,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잃지 않는 것이 중대한 관심사가 되고 있고 산하 산별노조나 핵심 대규모 사업장의 눈치를 보는 실정이다. 금속노조나 공공운수노조(준)의 계획에 기반하고 있다는 하반기투쟁계획 이외에 상반기 투쟁계획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하반기에 파업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금속노조의 시기집중식 15만 파업계획도 어용 집행부인 현대차 이경훈 집행부의 임단협 계획에 달려있을 뿐이다. 복수노조-창구단일화 시대에 ‘민주노조사수’ 구호로 포장된 이러한 민주노총의 대공장 기득권 위주의 관료적인 모습은 2011년 정세를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겐 대세에 굴종할 것인가, 아니면 독자적인 투쟁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힘든 선택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투쟁 통제하는 1사1조직
복수노조-창구단일화 문제에서 이미 1사1조직으로 포섭 돼 버린 기아비정규직분회 같은 경우는 더욱 상황이 좋지 않을 수 있다.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선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저항이 정규직노조의 이익과 대립되면 어김없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신해왔다.
출산휴가, 산재 등으로 인한 휴가자의 일을 임시 계약직이 대체하는 상황에서 사측의 공정 축소로 일자리를 잃은 정규직이 임시계약직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들어와 고용을 유지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러한 정규직 대의원의 노사합의를 노조 집행부가 비호해서 결국 임시 계약직이 쫓겨났다.
원청의 공사로 인한 휴무 때문에 비정규직만 피해를 본 경우도 있다. 1년 이상의 공사로 일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다르게 임금손실 보전은커녕 다른 업체로 강제전환배치 당하는 상황에 놓였고, 그 다른 업체의 임시계약직은 결국 재계약에서 배제되어 해고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분회 집행부는 투쟁을 조`하기 보다는 다른 업체로 옮기더라도 임금손실이 없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면피하는 모습이었고 그 뒤에는 암묵적 동의를 하는 정규직 노조집행부가 있었다.
지금까지 분회집행부는 정규직노조의 반동적이며 기회주의적인 행태에 대해 이렇다 할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 같은 태도는 동일한 현장조직이 배출한 집행부라는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1사1조직을 완성해야 한다는 입장에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소위 좌파 정규직집행부-우파 비정규직집행부처럼 다른 현장조직 출신 집행부가 있었던 상황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상층 집행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순적인 1사1조직 논리는 일선 비정규직대의원들의 인식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 비정규직현장의 간헐적인 투쟁분출을 스스로 막는 논리로 사용되고 있다.
대공장에서 노조민주주의는 내부에서부터 파괴되고 있다. 간헐적으로 분출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저항도 정규직노조에 의해 통제당해 순식간에 불씨가 꺼져버리고 만다. 예산권, 파업권, 교섭권도 없는 사내하청분회는 정규직노조를 바라보며 더욱 완벽한 통합, 1사1조직의 완성만이 생존의 방법이라고 여기고 있다.
대의원대회도 노동자민주주의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최근 기아 대의원대회의 양상을 보면 노조활동의 최소한의 약속인 규약마저 지키지 않고 있다. 집행부건 대의원이건 자신들의 의도가 관철되게 하기 위해 억지를 쓰거나 대의원대회를 장기화시키는 관행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이런 모습을 처음 접하는 비정규직 대의원들은 한편으로는 실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급속하게 그런 관행에 융화되어 버리고 만다.

 

기아에서 추진되는 불법파견의 문제점

현대차 불파투쟁은 노동자투쟁의 촉발과 확대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순간순간 발휘되는 노동자의 창조성과 지도자들의 헌신과 노력이 불파투쟁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금속노조-기아차지부에서 추진되는 불파투쟁은 현대차 불파투쟁에서 보였던 그 어떤 긍정적인 요소도 발견할 수 없다. 이렇게 얘기하면 노조지도부는 활동가들이 열심히 현장을 조직하지 않아서 문제라고 반문하며 노조로 단결해야 한다고 할 것이 뻔하다. 무쟁의, 연대투쟁의 기각 등 자신의 모습에 대한 반성은 없고 자신들의 관료적, 기회주의적 모습을 숨기기 위해 대중들을 동원할 뿐인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진지하게 활동하는 계급적 활동가들조차도 기아차 불파투쟁에 불을 붙이기 위해 열심히 조직화해야 한다는 밑도 끝도 없는 논리에 휩싸여 있다. 이런 인식을 깨고 노조관료들과 명확히 차별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편리한 현실론으로 무장한 노조관료들에게 이용당할 뿐이다.

 

교섭에만 더욱 집중하게 만들 위험성
정권의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를 빌미로 한 파업권봉쇄, 노조무력화는 금속노조-기아차지부가 기획하는 불파투쟁에 영향을 그대로 미칠 수밖에 없다. 사내하청분회는 임단협 과정에서 원청사용자성을 주장하며 원청과의 교섭을 요청하고 있지만 진행 된 적이 없다. 하청바지사장단과 집단교섭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본질은 정규직노조에 의한 대리교섭이다.
이런 가운데 금속노조-기아차지부가 추진하는 불파투쟁은 비정규직조합원들의 자발성을 끌어내고자하는 계획이 전무한 가운데 2011년 임금협상과정에서 특별요구로 상정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교섭의제로 상정되어 임금협상기간이라는 쟁점기간을 통과하면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관심을 갖지 않겠냐는 단순한 발상이다.
불법파견 집단소송이 원활하게 추진되기 어려운 상황은 현대차의 법원판결-현장투쟁의 수순이 아니라 곧바로 교섭테이블로 이목이 집중될 가능성을 크게 만들고 있다.
 
1차 하청만을 위한 조합주의적 투쟁으로 변질될 위험성

사내하청 중심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은 비정규직보다 못한 수백만 명의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노동운동이 되어 사회적 고립을 자초할 수 있다. (하부영, <제2민주노조운동 들불> 1월25일)
 
1사1조직으로 포섭·통제되어 있는 사내하청노조의 처지에서 정권의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로 흔들리게 되는 상황을 맞이할 분회 집행부는 작년과 같은 행태를 충분히 반복할 수 있다. 정규직이 주선한 대리교섭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상황은 필연코 사내하청노조의 조합주의를 강화한다. 1사1조직은 소수노조, 비정규직노조의 예측 불가능한 자발적인 투쟁을 통제하는 관료들의 좋은 통제장치 구실로 자리 잡게 된다.
우리는 구체적인 정세를 인식하지 못하고 ‘불파투쟁 승리’ + ‘민주노조 사수’ 구호에 휩싸여 비정규직운동의 전망을 잘못짚어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노동자를 외면하는 노조를 사수하고 2·3차 하청노동자를 외면하는 불법파견투쟁을 승리로 이끈다고 해서 비정규직운동의 전망이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고 전진하기 위해서는 전투성을 회복하기 위한 중요한 방법으로서 비정규직현장의 노동자민주주의의 적용과 실현, 조합주의 관료들에 의해 포위, 통제당한 상황을 주체적으로 타개하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 비정규직노동자들 스스로의 연대와 소통 강화 등의 과제를 실천하기 위한 전망을 세울 필요가 있다.
사업장에 갇혀서 진행되는 불파투쟁은 명확한 한계를 지닌다. 사업장 울타리에 갇혀 연대투쟁도 외면하는 임단협 투쟁과 마찬가지로 조합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아에서도 불파투쟁 열심히 하자’는 막연한 구호로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대공장 비정규직운동 전망은 어떻게 만들어 질 수 있을까

 

정규직노조의 무쟁의에 대항한 계급적 독자성
타임오프저지투쟁에서 기아차지부가 보여주었던 무쟁의라는 반노동자적인 모습이 올해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더욱이 올 하반기 지부임원선거를 앞두고 더더욱 전투성을 포기할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이다. 선거를 앞두고 좌파대동단결의 구호가 또다시 나올 것은 빤 한 일이다.
시도 때도 없이 자본과의 타협을 일삼는 우파 민족주의자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무쟁의도 당당한 전술이라고 외치는 소위 좌파집행부의 틈바구니에서 계급적 독자성을 유지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업장 안에서 집행부라는 노조체계를 뛰어 넘어 정규직집행부의 무쟁의에 대항하기란 쉽지 않다. 작은 몇몇 업체의 투쟁이 정규직집행부의 무쟁의를 돌파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 각급 업체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강제전환배치, 유연화 탄압은 알려지지도 않고 있고 정보도 조직되지 않고 있다.
거꾸로 분회집행부는 현장의 투쟁 사안을 집중시키면서 지도력을 확대하는 것이 아닌, 물품 사업이나 조합원콘도사용권확대 등 복지사업과 교육위원·산안위원 등의 모집사업으로 조합원들의 관심 이반을 막기에 급급하다. 사측의 구조조정 탄압을 모아내고 이 탄압의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임시계약직, 2·3차 하청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활동들을 조직해내야 한다.

 

조합주의 편에 서지 않겠다는 비정규직노동자의 선언이 필요하다!
정권의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로 노조를 흔들면서 이에 노조 안에서는 집행부를 필두로 조합주의에 찌든 대동단결주의가 크게 성행할 것이다. 노조가 저항의 기운을 잃고 민주노조 정신을 배반할 때 사측은 구조조정의 칼을 들이밀 수 있다. 그동안 여러 눈치를 보며 뒤로 미뤄두었던 내부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앞의 예와 같이 비정규직, 그 중에서 임시·단기 계약직노동자들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분회조합원 중심, 1차 하청 중심의 불파투쟁은 2·3차 하청노동자, 임시 단기계약직 노동자, 지역 납품업체에서 파견직의 형태로 열악하게 노동하는 노동자들을 소외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내하청분회마저 자기조합원 먼저 살리고 봐야 그나마 조직력을 유지하고 나중에 큰 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 아닌가라는 현실도피적인 모습에 빠진다면 대공장에서 비정규직운동은 결코 전망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수차례 임시계약직 노동자들을 배신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불파투쟁 기조는 또다시 그들을 배신하는 꼴이 될 것이다. 이렇게 계속 간다면 대공장에서 비정규직운동은 끝나고 말 것이다.

 

관료적 통제에 갇히지 않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연대와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홍대미화원노동자들, 학습지노동자, 삼성의 산재노동자 등 대규모 사업장 투쟁이 아닌 소규모 노조, 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들의 투쟁에 연대·지원하는데 소극적이다. 하급 산별노조나 대공장노조들의 연대투쟁 회피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타임오프투쟁전선에서 전국의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무쟁의로 배신한 기아차지부, 그리고 현대차 이경훈 어용 집행부의 연이은 무쟁의 횡보 예상 속에서 관료들과의 독자성을 확보하면서 연대투쟁을 모색하지 않으면 관료들의 반노동자적인 흐름에 갇힐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정규, 영세사업장노동자들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시야가 공장울타리에 갇히지 않도록 강화되는 조합주의에 저항하는 활동을 펼쳐야 한다.

 

자기 조합원 위주의 조합주의를 극복하는 노력은 계급성을 유지할 때만 가능하다

정권의 개악된 노동법을 무기로 노조의 파업권을 정부에서 통제하는 시대가 왔다. 이를 기회로 작업장 깊숙이 구조조정 탄압을 진행할 것이고 방방곡곡 비정규노동자를 더욱 확대해나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노조사수만을 외치고 사업장 울타리 안으로 갇혀 머무른다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노조 관료들은 자신들의 입맛대로 위기를 사용할 것이다. 노조집행부는 자신의 위치를 지기키 위해 언제 어디서 분출될 지 모르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을 통제하기 위해 때로는 노련하게, 때로는 폭력적으로 통제해왔다.
우리는 당장에 정권의 탄압과 노조관료들의 통제를 뚫고 나갈 수 없다. 이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고 현실과 타협한다면 미래는 탄압에 저항 한 번 못하는 굴욕적인 비정규노동의 시대가 될 것이다. 여기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지금은 돌파구를 만들 때다. 현실론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무쟁의와 투쟁하는 노동자를 배신하는 행위를 비판하고 우리 스스로 연대의 망을 확대해야 한다.
자기 조합원위주의 조합주의를 극복하는 노력은 계급적 독자성을 유지할 때만 가능하다. 소수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고작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고통 받는 90%의 노동자를 대변하는 투쟁을 할 때 정권과 자본, 노조관료들의 장벽을 뚫고 전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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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기고]철폐하자, 간접고용! 기아공장에서도 본격적인 대응을!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3/02 15:37
  • 수정일
    2011/03/04 16:58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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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폐하자, 간접고용! 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기아공장에서도 본격적인 대응을!
기아화성공장 단결노동자회 이준영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두 가지 의미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탄압과 착취와 차별에 신음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착취공장, 절망공장을 멈추고 노예가 아니라 당당하게 공장의 진정한 주인임을, 역사의 주인이자 희망공장임을 선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피와 눈물을 먹고 처절하게 투쟁해온 전체 비정규직 투쟁의 역사 위에 굳건하게 서 있다는 점에서 또한 ‘역사’적이다.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의 파업투쟁은 직접적으로 정규직화가 목표이다. 그러나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의 의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에 대해 자신의 문제처럼 승리를 염원하고 있다.
이 투쟁은 파견과 하청제도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자본에 대항한 투쟁이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투쟁이 아니라 비정규직 착취제도를 통해 노동자 내부를 분열시키고, 결국 정규직의 임금과 노동조건, 고용도 악화시키는 총자본의 착취전략에 파열구를 내는 투쟁이다.
이 투쟁의 계기가 된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은 사법부의 시혜가 아니라 기륭, 동희오토, GM대우, 학습지, 화물, 건설 등 비정규직 동지들의 장기간에 걸친 피눈물 나는 투쟁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장점거 파업투쟁은 기아차 비정규직 동지들의 공장점거 파업투쟁의 기초 위에 굳건하게 서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은 이러한 비정규직 투쟁의 계승자이고, 기간투쟁의 한계를 넘어서서 대중적 투쟁으로 진행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예제도 철폐를 내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투쟁이 아니라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절한 요구와 염원을 안고 진행되는 투쟁이다. 더 나아가 이 투쟁은 비정규직, 정규직 가릴 것 없는 전체 노동자들의 투쟁이기도 하다. 대법원 판결을 기점으로 활력을 받고 있는 ‘정규직화 투쟁’, ‘간접고용 철폐투쟁’은 침체된 기아공장의 비정규직투쟁에 새로운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단지 기아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넘어, 강력한 투쟁을 점화하자!
 
당장 고민해야할 것들

전국 대공장 비정규직 투쟁의 두 축을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과 기아차 비정규직 투쟁으로 본다면, 현장주체들의 여건, 현장조건 등의 이유로 인해 2006년 이외엔 공동투쟁의 호흡이 맞지 않고 있다. 기아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원청사용자성 쟁취투쟁,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투쟁은 시기적 일치성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투쟁 역시 기아차 비정규직 투쟁과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의 호흡이 당장에는 맞지 않고 있다.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울산 1공장 점거파업을 위시한 현대차 비정규직투쟁을 두고 ‘당장의 투쟁’과 ‘장기적 투쟁’을 병행하고, 결국 일치시켜 나가는 계획과 결의를 다져야 한다.
현대차 비정규직투쟁이 패배한다면 기아공장에서 단기적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도 정규직화 투쟁은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투쟁은 연대 차원이 아니라 기아공장의 투쟁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우선 분회-지회-지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찾아서 모색해야 한다. 기아공장에 있어 정규직화 투쟁은 ‘당장의 투쟁’인 현대자동차 비정규직투쟁을 어떻게 지지, 엄호, 연대하고 공동투쟁을 성사시킬 것인지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선 3개 분회 토론회를 통해 해당 주체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간접고용 철폐! 직접고용 쟁취! 투쟁의 계획과 결의를 완성해야 한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사내하청분회는 공조직이나, 토론과 결의의 주체는 체계적 틀로 국한되는 의결단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능동적으로 토론의 과정과 내용공유를 통해 관심과 열의가 있는 원·하청노동자들의 참여 속에 함께 완성되는 것이 향후 투쟁의 앞날을 밝혀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당 주체단위인 ‘분회 중심’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속노조 혹은 기아자동차지부에서 결정하는 것을 수임하는 정도로는 해당 주체인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한계 안에 불파투쟁을 가두어버릴 뿐이다. 따라서 주체인 비정규직노동자 스스로의 방향과 결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부, 나아가 금속노조에 기아자동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계획, 방향, 부단한 실천을 확고하게 전달해 나가는 결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기아자동차와 현대자동차의 차이

무엇보다 청원식·종속적인 관점을 청산해야 한다. 사내하청분회는 당사자의 부단한 실천과 힘이 담보되지 않을 때, 자본은 물론이요 지부-지회도 (누가 집행부를 잡고 있든 상관없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전제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화성 사내하청분회는 2010년 11월23일 분회 독자적 잔업거부를 전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전체평균 잔업거부 동참율이 30%에 불과했다. 업체별 편차가 크게 존재했으며 비정규직지회 당시 평균치에 크게 밑도는 참여율이다. 반면 2010년 11월26일 금요일과 12월3일 금요일은 지부 전체 주간조 잔업거부를 시행했다.
비정규직 조합원들도 이때는 전체가 참여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평균 30%참가율의 11월23일 분회 독자적 잔업거부에 원·하청 사측이 더욱 긴장해서 대응을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실은 여전히 부단한 조직의 과제를 부여하지만 또한 적들이 무엇을 더 두려워하는지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행정적인 수준의 정규직화 사업을 넘어야 한다. 집단소송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고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이미 집단소송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그러나 기아의 경우는 집단소송의 여부를 아래의 조건들을 놓고 판단하여야 한다.
기아차 비정규직 현장의 특성으로, 50대 이상의 연령대 비율이 현저히 높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실제 이 연령대의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투쟁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현저히 낮을뿐더러, 소송에 참여할 확률도 희박하고, 정규직 단협상 정년인 59세가 초과된 노동자들의 경우도 있다.
물론 노동조합의 관점으로 이 연령대의 노동자들이 그럼에도 불법파견 대상이며, 사측이 이를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고령대의 노동자들을 위장도급으로 채용하여 이중의 착취를 했다고 주장하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임금차액 청구소송으로 설득한다고 해도, 현실적 설득력은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적극성을 기대하기란 어렵다고 판단된다. ‘상시업무 정규직화’를 주장한다고 해도, 처우개선이나 잘되면 중규직화 정도의 기대감을 가질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식당·청소 노동자들도 법으로만 따지면 불법파견이 성립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경우 집단소송을 조직화는 물론 투쟁의 열기를 집중시키는 매개로 활용할 수 있었지만, 기아차 비정규직 현장에서는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상당히 크다. 또 어차피 현대차 비정규직에 비해 늦을 수밖에 없다.
물론 왜 기아는 집단소송을 하지 않느냐, 정규직화 요구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공격이 예상되지만 이는 뛰어넘어할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현대차 판결은 법제도에 한정될 문제가 아니라 전체 제조업 사업장에도 적용되는 사회적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현장조건의 차이를 고려한 투쟁계획이 필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장상황을 객관적으로 놓고 그에 따른 최적의 투쟁계획을 세워야 한다. 물론 현장상황의 차이로 현대차 직접라인공정 비율 높음/ 기아차 직접라인공정 비율 적음(혼류공정이 적고, 비정규직 공정이 집단화되어 있음)과 같은 경우를 주요하게 들 수도 있겠으나, 이와 같은 차이는 결정적 요소가 아니라고 보인다.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은 지난 2004년부터 불붙었던 불법파견 투쟁의 패배로 인하여 그동안 수천 명의 정리해고를 허용하는 결과를 낳았다.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은 100명이 넘는 투쟁과정의 해고자, 업체폐업-선별승계, 징계남발 속에서 비정규직지회를 사수해왔다. 이런 억눌림 속에 2010년 7월22일 대법원 판결은 단비와도 같은 희망을 찾아낸 것이다. 즉 이 판결을 통해 투쟁꺼리, 땅 속에 처박혀 있을 줄 알았던 노동자의 본성을 일깨운 것이다. 지금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불법파견 투쟁은 유일한 요구이며, 절박함 속에 싸울 수 있는 태세를 일깨워주는 단초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현대차의 상황을 고스란히 대입할 수 있을까? 분명하게도 지난 비정규직투쟁 과정 속에서 기아차비정규직지회와 현대차비정규직지회가 확보한 단협상의 내용은 많은 차이가 있다. 당장 기아차 비정규직노동자의 절박함은 상대적으로 크게 떨어진다. 그렇기에 열성적이고 집중적인 사업진행이 꾸준히 없다면 구호로만 머물게 될 우려가 있다.
대표적으로 기아차 비정규직에겐 별다른 정리해고는 없었던 점(물론 분회가 되고 난 뒤 업체전적이 발생하여 증가추세임), 기아차 비정규직은 업체변경 시 기본승계, 징계와 해고와 관련된 단협조항과 관례에 의한 보장이 앞서 왔던 점 등이 있다. 때문에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절박함이 지금 당장은 적다. 불법파견 투쟁이 단지 경제적 투쟁이 아닌 사회정치적 투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인지한다면, 더욱 투철한 투쟁계획 완성과 결의를 모아가야 한다.
물론 불법파견 정규직화든,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상시업무 정규직화, 사내하도급 철폐, 원청사용자 직접고용 등등 비슷하면서도 다양한 목표가 있으나, 현장에 가장 적합한 투쟁목표와 계획을 중심에 두어야 이 큰 싸움을 일관성 있게 펼쳐갈 수 있다.

 

투쟁의 기조와 목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때문에 기아에서 불파투쟁을 끌고 가기 위해서는 제도와 형식을 뛰어넘는 실천 활동이 전제되어야 한다. 투쟁계획은 해당 주체들의 적극성은 물론이거니와 근태협조, 예산 지원이 완벽하게 되기 어렵다는 전제 하에 실천 가능해야 한다. 분명 사내하청분회는 공조직임에도 불구하나, 실제적 실천사업은 공조직의 틀에서 지원받는 예산과 근태협조를 뛰어넘어야 한다.
또한 참여자 또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노조간부에 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참여하고자 하는 조합원까지 폭넓게 대상으로 해야 한다. 이를 전제로 투쟁의 기조와 목표를 다음 세 가지 정도로 제시한다.

 

1) 간접고용 철폐, 기아자동차(주) 직접고용 요구
사내하청의 불법파견 여부를 따지는 것은 수세적인 대응이며, 자본의 무차별적 사내하도급 사용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와 철폐 그리고 원청회사의 직접고용 원칙을 주장 한다. 금번 대법원 판결은 사회적 기준으로 인식해야 한다.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체 상시업무 정규직화!

 

2) 파견법 철폐, 파견법 개악 분쇄
자본은 역시 통이 크다. 수년간 침체되어 있던 불법파견 투쟁이 발발되었지만, 자본은 아예 통 크게 파견법을 바꿔 ‘불법을 합법으로’ 만들고자 한다. 국회에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는 파견대상 전면 확대, 고용서비스 민간이양은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 사람장사 합법화는 결단코 폐기되어야 한다. 파견법 개악이야말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집중해야 할 의제가 아니던가.

 

3) 외주화 분쇄
위장하도급, 파견법 개악, 외주화는 모두 노동유연화의 일환이다. 해외공장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노동유연화와 원·하청 노노분열, 노동조합 무력화의 가장 큰 공격 중 하나다. 실제 외주화에 대한 정규직 조합원들의 위기감은 자본에 대한 투쟁을 향하기보다는 하청노동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흐르는 위험이 있다. 
이러한 투쟁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해당 주체단위인 3개 분회의 구체적 실천사업을 위해 3개 분회 공동논의체를 구성하여 운영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전 현장진단(각 분회별 현황), 구체적 공동사업수립, 결정사항 이행평가, 각 분회별 의견공유 및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3개 분회의 집행부-대의원-확대간부, 활동가, 조합원을 포괄한 ‘회의, 결의대회, 수련회, 집회, 연대투쟁’도 진행해야 할 것이다.
3개 분회는 비정규직 핵심주체(분회집행부-대의원-확대간부-열성조합원)를 중심으로 사내하청분회가 집중력과 실력을 갖추도록 조직해야 하며, 금속노조 불파TFT, 기아차지부 불파TFT, 현대차비정규직(3주체)와의 공동논의 참여는 최소한 위 공동논의체를 중심으로 참여한다. 분회 중심성의 명확한 기초위에 기아자동차(주)에 ‘간접고용 철폐, 기아자동차(주) 직접고용’ 특별교섭을 요구하고, 금속노조와 기아차지부에 확고한 투쟁을 촉구해야 한다.

 

회의감, 종속주의, 패배주의를 버리고, 배신감을 뛰어넘는 자발적인 실천을 확보하자!

투쟁의 전제는 3개 사내하청분회에 있다. 분회가 힘을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뚜렷한 전망과 활동이 없기 때문이다! 집행부와 활동간부들의 의지, 구체적 전망, 계획이 배치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가 문제해결과 투쟁의 대상이 현대·기아 자본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원청자본을 대상으로 한 전면적인 투쟁이 가능토록 조직해야 한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불법파견 투쟁에 돌입하면서 바지하청과의 교섭을 일체 거부하였다. 대법원에서도 명백한 불법파견임이 증명된 이상 아무 상관이 없는 바지하청과 교섭을 한다는 자체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면에는 비정규직지회의 조직력으로는 그간 바지하청과의 협상도 여의치 않았던 점이 있다. 대법원 판결이라는 반격의 근거와 조직력 확대를 꾀한 이상 모든 투쟁집중력을 원청자본에 쏟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 점은 기아 비정규직 현장조건과는 차이가 존재한다. 이에 따른 규정과 전술적 판단을 하여야 한다. 정규직 조합원들을 교육·조직하기 이전에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요구로 확고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 이전에 사내하청분회 확대간부, 활동가, 열성조합원들에 대해 교육과 토론 그리고 실천사업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동지들이 “사내하도급 철폐, 정규직화 투쟁”에 있어 핵심대오로의 단단한 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공동투쟁과 원·하청 공동투쟁을 배치해야 하지만 당장 안 된다면 공동투쟁은 분회 집중투쟁을 통해 성취되어야 할 것이다. “원·하청 노조의 진정한 연대는 상급관료와 대공장 조합주의에 대한 굴복이 아니라, 전면적인 투쟁을 통해서 전진하는 쟁취의 대상이라는 것! 이 모든 투쟁과정에서 견지되어야 할 것은 보다 강고한 비정규직 투쟁 주체들의 주체성과 독자성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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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노동]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기아비정규직 운동의 전망인가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3/02 15:31
  • 수정일
    2011/03/02 15:44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기아비정규직 운동의 전망인가 

_기아자동차화성공투단(준) 주최 현장토론회

 

지난해 대법원이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인 최병승 조합원을 불법파견으로 판정한 이후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점거투쟁이 벌어졌고 전주와 아산에서도 노조가입과 출투, 선전전 등 노조활동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다시 꿈틀대기 시작한 대공장 사내하청운동은 그동안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던 GM대우자동차비정규직지회의 아치농성으로 이어져 2월1일 하청업체와 단계적 복직안에 합의를 도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비정규직노조가 존재하는 대공장 중 현장조합원을 2천 명 가까이 보유하고 있는 기아자동차(이하 ‘기아차’)에서도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 1월28일 기아자동차화성공동투쟁단(준) 주최로 열린 “불파투쟁, 기아비정규직운동의 전망인가?” 토론회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과정을 되짚어 보고 기아차 현장의 특수성과 비정규직운동의 전망을 모색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기아자동차 현장의 특수성

토론회는 조성웅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부지회장이 불법파견 판정 이후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터져나온 업체투쟁 및 점거농성 과정과 그 속에서 보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발성, 노조집행부의 지도력 부재, 정규직지부의 관료성 등을 생생하게 전달한 이후 기아차 활동가들의 발제로 이루어졌다.
먼저 발제한 비정규직노동자 모임 <단결노동자회>의 이준영은 현대자동차와 같은 불법파견 투쟁 방식을 기아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자에서는 불법파견 판결이 투쟁의 도화선이 되었는데, 기아차에서는 그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조업 대공장에서 불법파견 이슈가 활발했던 2005년 당시 기아차 비정규직 운동은 정규직화 투쟁보다 업체투쟁에 기반을 둔 단협체결에 초점을 두었다.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해당자가 적었기 때문이다. 수년이 지난 지금은 자본이 공정상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불법파견의 요소를 거의 없앴기 때문에 유효판결의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뿐만 아니라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는 정년퇴임을 앞둔 고령자가 많아 정규직화에 대한 열망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준영 발제자는 많은 조합원들이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을 지지하지만 아직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다고 진단했다.
다음으로 <기아차 사노신독자모임>의 이상욱은 1사1조직 전환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변화에 중점을 두며 발제에 나섰다. 2008년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가 정규직노조에 폭력적으로 통합되어 현재는 각 공장별 정규직지회 아래 사내하청분회로 재편되어 있다. 비정규직노조는 안정적인 체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반면 정규직지부·지회에 통제당하면서 독자적인 교섭권과 쟁의권을 사실상 상실했다.
이로 인해 최근 몇 년간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주체화나 의식화를 위한 투쟁과 교육 없이도 약간의 임금인상과 고용을 보장받았고 그 결과 비정규직노조는 강화되기는커녕 수 년 간의 업체투쟁·파업투쟁의 경험과 기억이 퇴화하고 있는 지경이다.

 

기아자동차와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

2000년대 초중반 현대차를 중심으로 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과 이어진 노조건설,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의 원청과의 단협체결 등 성과가 있었지만 정규직 중심의 운동질서 속에서 독자적 투쟁력이 질식당하면서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말 벌어진 현대차 울산공장 점거 역시 정규직노조의 농간으로 정리 되었고 이후 정규직노조는 교섭과정에서도 선별적 복직안을 중재안으로 내며 투쟁력을 흩트렸다. 그러나 현재 그것을 뚫고 나아갈 수 있을 만큼 비정규직 주체들의 조직력과 활동가층이 두텁지 못하다.
현재 기아차지부는 불법파견 태스크포스팀(TFT)을 가동 중이라고 하지만 현장실태조사나 조직화 내용은 없고 TFT 플래카드를 맞추거나 회의차수만 늘리고 있는 상태이다. 사내하청분회 역시 법적 진정을 낼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가능성과는 상관없이 사업으로만 가져가는 모양새이며 활동가·조합원과의 공청회 등은 거의 열리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준영은 기아차 현장을 점검하고 불법파견 투쟁을 제안하면서 정규직화가 목적이 아니라 이를 매개로 하여 조합원들을 주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욱은 1사1조직이 강제된 기아에서 비정규직조합원들의 근본적인 의식변화 없이 불파투쟁에 나설 경우 곧바로 교섭에 기댈 확률이 높고, 2·3차 및 임시계약직 노동자들을 배제한 채 분회로 조직된 1차 하청만을 위한 조합주의적 투쟁으로 변질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관료주의 극복과 주체성 확보가 관건

이러한 기아차 현장의 객관적·주체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발제자 및 참가자 대부분은 현대차와 같은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슬로건과 방식을 기아차에 적용하기는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기아차 비정규직 운동은 과거 현장투쟁단과 비정규직지회 시절 업체투쟁과 파업의 경험이 지금 전혀 성과로 존재하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때문에 현장투쟁과 주체복구를 위한 계획이 가장 시급하다. 그러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이러한 매개로 활용하기에는 구체적인 조건이 따라주지 않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계획을 제출한 이준영 발제자도 교육과 선전전, 토론회 등 기본적인 현장 활동의 복구를 제기했으며 이상욱 발제자는 1차 하청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는 운동을 2·3차 및 임시계약직 조직화로 확대하고 노조에 국한되지 않는 기존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자고 제안했다.
이준영 발제자의 말대로 “기아공장에 있어 정규직화 투쟁은 ‘당장의 투쟁’인 현대자동차 비정규직투쟁을 어떻게 지지, 엄호, 연대, 그리고 결국 공동투쟁을 성사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일 수밖에 없다.
현장의 전투적 활동가들의 고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이라 판단하여 이상욱, 이준영 발제자의 발제문을 요약하여 싣는다. (조성웅 부지회장의 발제문은 지면관계로 싣지 못했다.)

 

이서윤 (cdbb@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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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현자인터뷰3]싸우는 우리들이 현대차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3/02 15:25
  • 수정일
    2011/03/02 15:44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싸우는 우리들이 현대차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_2공장 이도한·정구영 대의원

 

2월10일 파기환송심 확정판결 이후 조합원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정 :
우리가 승소할 것이라고 대부분의 조합원이 알고 있었다. 당연히 되야하고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되고 나니까 또 의외로 안도감을 가지는 조합원이 많았다. 기자회견을 (10일) 2~3시에 했는데 수시로 DMB 틀어서 뉴스가 뜨느냐 보는 조합원도 많았고 퇴근 후 각 언론, 방송 뉴스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
하지만 우리 12일 상경투쟁에 대해서 작년 10월30일 상경투쟁 했던 인원보다는 많이 적다. (상경투쟁 참여인원이) 적은 상태에서 이 판결로 인해서 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는데 그렇게 많은 효과는 없다. 어차피 (안가는 사람은) 안 간다고 했고, 개인적인 사정도 있는 거니까.
지위확인 (집단)소송 1차 심리 건이 15일에 있다. 주간조는 가지만 야간조는 새벽에 출발해야 해서 어려울 수도 있다. 자기 심리 건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야한다는 조합원도 있고 굳이 변호사 다 선임해놨는데 올라갈 필요성이 있냐는 반응도 있다. 지회 차원에서 버스가 제공되는 것도 아니고 1인당 3만~3만 5천원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이 : 어제(10일) KBS 다큐멘터리 팀에서 인터뷰를 하고 갔다. 거기서 세 가지 질문을 했다. 첫 번째 질문, 고법판결이 났는데 조합원들 사이에서 어떤 얘기가 나오느냐. 가만히 사측의 인터뷰를 보고 있으면 자꾸만 고법 판결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고법 판결도 맞지만 법을 지키라는 거다. 근로기준법을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자기네들이 앉아가지고 뚝딱뚝딱 만든 법인데 자기네들이 안 지키고 있으니. 최병승 동지 한 사람의 판결문을 가지고 왈가왈부 할 게 아니라 근로기준법 6조 몇 항에 나와 있는 ‘2년 이상’(고용의제)이라는 그 조항을 지키라는 거다.
두 번째 질문이 회사가 (정규직) 시켜줄 것 같냐. 그래서 나는 얘기했다. 회사가 시켜줄 것 같지 않다, 또다시 상고를 할 것이다. 그런데 명분 없는 시간 끌기다. 한 사람만의 문제로 밀고나가면서 우리를 해고시키고 할 것인데. 850만 비정규직도 있을 거고 제조업 사내하청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다수가 있고, 비조합원들도 있는데 이런 식으로 탄압을 해 버리면 다음부터는 어느 누가 (투쟁) 하겠나.
세 번째 (회사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또다시 파업을 할 것이냐. 당연히 현장에서 싸움을 만들어가야 되지 않느냐. 지금 이상수 지회장도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데 그것만 바라보고 ‘저 사람이 해결해주겠지’ 그거는 그냥 그 사람보고 죽으라는 얘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딱 두 가지다. 첫 번째가 대국민 선전전을 통해서 전 국민한테 알려서 현대자동차를 비판하게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가 바로 현장 안에서의 싸움이다. 그 싸움만큼은 우리가 계속 만들어가야 된다고 얘기를 했다.

 

이전에 비해 조합원들이 위축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정 :
첫째로 비정규직 임금이 열악하니까. 작년 연말에 나오는 성과급이 (파업 때문에) 차질을 빚었고, 그만큼 일도 못했고. 1인당 많게는 200만원 적게는 150만원 씩 손해를 보니까. ‘나 때문에 가족들 고생하는 거 싫다’, 이런 식으로 활동 안 하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징계가 있다니까. 현장투쟁 중에도 많이 맞고 많이 잡혀가고 그랬다. 나 같은 경우에도 11월15일 시트에 있다가 생전 처음 유치장도 들어갔다가 하루 살고 나왔는데. 갔다 온 사람들 중에 죽을 각오로 더 해보자라는 각오가 생긴 사람이 있는 반면에 상당히 겁을 많이 먹은 조합원들도 있고. 
 

이 : 첫째 생계비, 1번이다. 두 번째 각종 정직, 해고에 대한 불안감. 세 번째 불확실한 미래, 내가 투쟁을 계속한다 하더라도 이 회사가 과연 불복을 할 것인가. 글이나 선동을 하는 것은 조합원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나조차도 확신을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됩니다!’ 이런 게 아니라 ‘우리 싸움이 이기든 지든 우리 동지들 함께 갑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근데 우리가 사측하고만 싸우면 되는데 사측의 뒤에는 지부가 있고 정권이 있을 거고 옆에는 언론이 있을 거다. 인터넷 다음을 보니까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시켜주면 노동시장이 고착화 되어서 유연화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아주 불안할 것이라는데. 그 말대로 하자면 비정규직을 더 늘리고 한 1~2년 쓰다가 버리고 또다시 1~2년 짜리를 받는다, 그런 논리다. 그러면 자기들 말대로 고용이 늘어나는 건 사실이다. 그 다음에 또 누군가 오고. 그러면 세상 천지에 이 회사 1~2년, 저 회사 1~2년 우리보고 이렇게 다니라는 건지.
정말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압박으로 다가와서 조합원들이 흔들리지 않나.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스스로가 결의를 하기 위해서는 대의원들이 꾸준하게 다니면서 얘기를 해야 되는데 사측의 카더라 통신이나 유언비어 같은 것에 흔들리는 조합원도 많다.
조합원 중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비정규직 중에서 조합원과 비조합원이 있고. 또 조합원 중에서는 종이조합원과 진성조합원이 있고 또 비조합원 중에서는 가입을 할까말까 망설이는 사람이 있고 아예 상관이 없는, 이렇게 많이 나눠져 있으니 싸움이 되겠나.

 

대의원으로서 현장조직하면서 어떤 점이 어렵나
정 :
정규직 대의원들처럼 자기근무 안하면서 활동하면 좋은데 우리 (비정규직) 대의원들은 각자 자기 일을 하면서이런 활동을 하는 중이니까 솔직히 몇 배로 힘들다.
조합원들이 열성적으로 잘 따라주면 수월하겠지만 안하겠다는 사람 설득하러 다니랴, (인원) 파악하러 다니랴 상당히 힘이 들고 받친다. 월수금 출투도 하고 일찍 나와서 식사시간 항상 피케팅 필수로 다 하고, 또 집으로 돌아가면서 조합원들 만나고.
힘든 이야기 하려면 나오지도 않았어야 한다. 어차피 하려고 나왔는데. 예전에는 나도 즐기는 마음으로 했고 지금도 그 마음 변함은 없는데. 조합원들도 위축이 되고 징계위 내려온다니까 나도 해고까지 각오하고 나온 사람이지만 그런 이야기가 들리니까 마음도 아프고.
 

이 : 대의원이 중요하기 때문에 활동하고 있는데. 조합원들 배신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도 하고 있고. 그런데 흔히들 하는 말처럼 ‘니 혼자 노력한다고 세상이 바뀌냐’. 참 그 말이 맞다. 왜냐면 수백 명씩 모여 있는 조직에서 한두 명이 잘한다고 해가지고 조직 자체가 잘 꾸려지진 않는다. 전부 다 다 개인적인 생각들이 있으니까.
예를 들어서 상경투쟁이 있으니 돌아다녀보면 ‘와이프가 임신했다’, ‘내가 감기몸살이 걸렸다’, ‘나는 서울은 못 가고 현장에서 열심히 하겠다’. 누구는 내 생각을 바꾸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 붙잡고 4박5일을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걸 또 논쟁하지 않고 그냥 가버리면 안 따라온다.

 

어제(2월10일) 사측에서 지회 사무실 침탈 있었다는데 현장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관리자들이 현장을 활보하고 있다는데
정 :
사측탄압에 대해서 분노뿐이다. 말 그대로 욕까지 하면서. 안타깝다. 지회(사무실)이 가까이 있지 않아서 소식지로만 알게 되었다. 도장부에 조합원들을 잠시 보려고 쉬는 시간에 잠시 갔었다. 나하고 이진한 사업부 대표하고 올라갔었는데 10분간 이야기를 했다. 지금 상태나 조합원들 힘내라고 모아놓고 얘기하는 중에 사측 관리자 3~4명이 보였다. 이야기 끝나고 내려가니까 7~8명이 둘러싸더라. ‘여기 왜 올라왔느냐’고. 그래서 우리는 ‘쉬는 시간에 내가 우리 조합원들 보러 왔는데 그것도 안 되느냐, 우리는 가겠다’ 그랬더니 졸졸 따라오더라. 각 중요부분, 점거 우려가 있는 공정에는 관리자들이 다 배치되어 항시 보초를 서고 있다.
 

이 : 현장위원들도 열심히 하고 있고, 예전 같지 않게. 근데 열심히 한다는 게 사측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열심이다. 사측은 오로지 공장이 잘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우리가 피켓을 들고 있음으로 해서 눈살을 찌푸리겠지만 일단 공장이 잘 돌아가니까 피해를 주지 않는 노조활동을 열심하고 있다고 보시면 된다. 유인물 돌린다고 해서 아침 출투, 중식선전전을 한다 해가지고 공장이 서는 것도 아니고. 비조합원, 정규직 조합원, 우리 조합원들에게 계속해서 알려나가고 그러한 부분은 좋지만 사측에게 아무런 피해가 없다. 그걸 통해가지고 대대적인 가입이 이뤄진다고 하면 또 다른 문제가 되겠지만. 스스로가 가입할 수 있는 그런 역량이 또 필요한 거고.
 

정 : 지금 사태를 보면 비조합원들이 가입을 하는 것보다는 더 우려되는 게 지금 가입해있는 조합원들이 가입 떨어져나가는 상태니까 그게 더 우려스러운 거다. 
사측도 말은 분명히 점거농성 풀고 내려왔을 때 교섭장에서 고법판결 보고 어떻게 답을 주던지 하겠다고 해놓고 지금에 와서 한 사람 만에 국한된 판결이지 여러분들하고 상관없다 이런 식으로 한 입으로 두 말하고.
그리고 우리 한참 투쟁 중일 때 고등학생 알바들이 와서 차를 만들었다. 시민들도 알아야 될 게 그 차 불량률이 엄청 많았다. 지금도 많이 나갔을 거다. 근데 지금 또 알바를 모집해놨다고 한다. 분명히 우리들 대량해고나 징계 먹고 이러면. 지금 인원 다 맞춰놨다고 한다, 사측에서. 내가 들은 이야기로는.

 

사측 징계에 대한 예상은 어떻게 하나
정 :
상경투쟁 이후에 교섭결렬 선포하면 바로 징계위가 발동이 될 거다. 그렇게 되면 현장위원, 대의원, 각 조장들까지 징계가 떨어질 것 같다. 대의원이나 좀 많이 활동한 현장위원까지는 당연히 해고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고. 일반 조합원 징계도 (정직) 3월, 2개월, 1개월 이런 식으로 수위를 따질 것 같다. 거기에 대해 우리 지도부의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해고가 된 상태에서 밖에서 활동하는 것도 상당히 어렵다.
사측에서 다음 주부터 교섭결렬 선포라든지 연장투쟁이 발생할 즉시 정리를 하겠다 이런 식으로 돼있는 상태다. 그래서 이번 상경투쟁 갔다 와서 다음 주부터는 많은 파국이랄까 시끄러운 사태가 많이 벌어지지 싶다.
이 : (2005년 불파투쟁) 당시에는 파업권을 한 번은 얻었다. 이번 같은 경우에는 파업권이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들어갔으니까 아무래도 후폭풍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차이점이 있지만 조합원들이 정규직에 대한 열망이 7월22일 이후로 높아졌기 때문에 그것을 힘의 원천으로 해서 버티고 올 수 있었는데 사측의 탄압이 정말 하늘을 찌를 듯하다. 오죽하면 황인화 동지가 그런 결심을 했고, 류기혁 열사도 있었고. 내가 오늘 곰곰이 일을 하면서 생각해보니까 정말 사측이 사람 몇 명을 죽이지 않나, 그런 생각까지 했다. 아마 다음 주부터는 대놓고 노골적으로, 현장 안이니까 그런 탄압을 100% 할 것 같다.

 

정규직노조인 현대차지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 :
솔직하게 얘기해서 이경훈 지부장이 잘못한 게 거의 없다. 왜? 이경훈 지부장님은 처음부터 중도실리를 표방하고 나오셨고 그리고 말은 안했지만 조합원들 사이에서 어용이다, 어용이다라는 말은 수차례 들었고. 그 분은 TV에도 나왔지만 자기는 노조활동가지 노동운동가가 아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했다고 생각한다.
단지 기분 나쁜 건, 슬픈 건 자기가 우리보다 노동운동의 선배라면 그런 모습은 안 보였으면 싶었는데 자기는 마치 진정한 중도실리의 표상이라고 그렇게 나온 거다. 때문에 중도실리에 맞는 합의문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회사한테도 욕 안 들어먹고 여기에도 욕 안 들어먹는 그런 애매모호한 이상한 합의서. 아 여기서는 욕 들어먹는다.
정 : 그걸 알면서 뽑아줬던 정규직 조합원들이 문제가 있다. 정규직들이 생각하는 게 얘네(비정규직)들이 있음으로 내가 잘려나갈 때 얘들이 먼저 잘려나가야 된다, 우리 보호막이라는 인식을 가진 정규직들이 대다수다. 거의 열 명 중에 아홉 명 정도는 그런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당연히 우리 쪽을 못 도와주고.
지금 나 같은 경우는 자재를 갖다 대주는 일을 하고 있는데 98년도 IMF때 많은 정규직이 해고되면서 희망퇴직이나 그만두면서 들어온 자리다. 근데 빠진 자리 그대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두 사람 자리에 한 사람 메우는 식으로.
우리는 오른쪽 왼쪽 있으면 혼자 다했는데 자기들(정규직)은 ‘오른쪽은 니하고 왼쪽은 내 할게’  이러면서 두 명이서 한다든지. 실질적으로 몇 사람분의 일을 하는데 임금을 더 줬으면 더 줘야 하는데 훨씬 더 적게 받고. 그런 자리도 없어가지고 제발 좀 뺏어가지 말라고 하는 게 현재 비정규직 상태다. 임금은 언론 상에는 4천만 원 5천만 원 하던데 택도 없다. 내가 10년차인데 이제 3천만 원 겨우 넘는다. 또 모듈화 돼서 인원이 빠지게 되면 우리(비정규직)들을 빼서 (정규직이) 우리 자리에 들어오는데 그럼 우리가 해고되는 거다.
지부도 문제고. 현대자동차지부가 지금 큰 엄청난 키를 지부가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데 지부가 저렇게 발을 빼고 있으니. 근데 이경훈 집행부를 욕할 게 아니고, 물론 어차피 우리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았고, 어차피 우리 투쟁인데 지금 단지 힘들다 그뿐이지.
그리고 금속노조도 마찬가지지만. 허울 좋은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항상 끝까지 연대해주겠다고 우리 25일 점거투쟁 할 적에도 야4당 대표들도 와서 그렇게 약속을 해놓고 이렇게 내려와서는 ‘너희는 어찌돼도 우리는 모르겠다’는 식으로 발을 다 빼버린 상태니까 너무 한심스럽고 진짜 사람 믿을 게 못 되는 구나 함부로, 그런 생각도 들고, 배신감도 들고.

 

이 투쟁의 형식적인 결과가 전원 정규직화가 될 수도 있고, 해고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사이에 많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투쟁이 현장에 어떠한 것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 :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너무 교과서적인 대답을 해버리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당연히 이 땅의 비정규직은 철폐되어야 된다, 이런 대답은 너무 고착화되어 있고 뻔한 대답이다.
이 싸움은 당연히 전국에 있는 비정규직한테 희망이 되어야 한다. 일단 우리 당사자들이, 싸우고 있는 우리들이 현대자동차 안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이기적인 생각일 수도 있는데 우리가 실패하고 우리가 끝나버리면 또다시 그냥 노동 책이라든가 이런 노동신문에는 영웅적인 투쟁이었다고만 나오지. 거기에서 배워야 할 점, 이렇게 하면 투쟁이 깨지기 때문에 저렇게 하자 이러고 싶진 않다.
왜냐하면 분명히 우리의 목표는 뚜렷이 있었는데 투쟁하는 과정만 영웅적이었고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 이러면 그거는 그냥 아무 성과도 아니다.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와야 된다.
우리가 25일 동안 (점거파업)했을 때 무언가는 나왔어야 했다. 정말 힘든 투쟁이었는데 도대체 이상한 옆에 있는 지부와 우리 노동 선배님들이 만들어낸 지부, 그 옛날 98년도와 87년도에 대투쟁을 이끌었던 선배님들이 만들어놓은 합의안, 그리고 야5당 그리고 금속노조. 눈앞에서 버젓이 황인화 동지가 몸에 불을 붙이는 걸 봐 놓고도 이런 합의서를 만든다는 게 참 대단하다.
우리끼리만 영웅적 투쟁이었지 일반 시민, 현대자동차나 비정규직과 관계없는 자영업자,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봤을 때 ‘거 봐라, 안 되지’ 이런 인상만 주고. 차라리 그 (점거)투쟁이 끝나고 난 다음에 몇 십 명이라도 (정규직) 됐으면 그래도 성과가 있었다고 얘기할 수 있는데. 단 한 명도 된 사람은 없고 오히려 해고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고 탄압에 시달리고 있으니 과연 이게 맞냐 이거지.
그러니까 이 투쟁의 의의를 광범위하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일단 노동의 대의는 벗어날지 몰라도 우리가 성과가 있어야 그 다음을 바라볼 수가 있고 그 다음을 바라봐야 전국에 있는 비정규직이 ‘아 됐네!’ 라고 하지, 투쟁이 끝나버리고 실패하면 ‘어 해도 안 되네’라는 인식밖에는 심어줄 수가 없다. 
정 : 내가 생각해도 진짜 노동운동 역사상 엄청난 투쟁이고 일대 획을 긋는 것이다. 근데 물론 현대자동차도 (정규직) 시켜줄 수 있겠지만 정계쪽 하고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하나만은 확실하다. 이 투쟁은 위대한 투쟁이라는 것은 확신한다. 그만큼 잘해서, 전 노동자들이 우리만 보고 있는데 좋은 결과로 마무리되면 좋겠다.
이 : 난 안 봤으면 좋겠다. 안 봤으면 좋겠다는 게 우리가 정규직이 되냐 안되냐를 좀 안 봤으면 좋겠고 단지 우리가 투쟁을 하고 있으니까 지지를 해달라는 거지, 저 사람들이 정규직이 되나 안 되나 이걸 보라는 건 아니다. 이 투쟁의 과정, 지지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달라는 거지, 가만히 앉아가지고 저것들이 될까 안 될까 재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리│이서윤 (cdbb@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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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현자인터뷰2]‘여성’이 아닌 같은 ‘조합원’이다. 같이 맞고 같이 싸우자!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3/02 15:17
  • 수정일
    2011/03/02 15:45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여성’이 아닌 같은 ‘조합원’이다.  같이 맞고 같이 싸우자!

_4공장 조미선 현장위원
 

사용자 삽입 이미지파기환송심에서 승소한 것에 대해 조합원들 반응은 어떠한가
전 공장차원에서는 잘 모르겠는데 4공장 같은 경우에는 최병승 판결도 있고, 승소도 받아서 이거 가능성이 있구나, 우리가 상경투쟁으로 가야 된다 이렇게 말한다. 비조합원 같은 경우는 최병승 판결 어떻게 났냐 물어본다. 근데 판결났는데 자동차에서는 왜 인정 안 해주냐, 그러면서 많이 궁금해 한다.
 
12일 상경투쟁을 조직하는데 공장별로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다
맞다. 우리 지역 같은 경우에는 거의 한 90%는 다 올라간다. 그런데 다른 공장 같은 경우는 들어보니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는 곳도 있다. 우리가 11월15일부터 25일 동안 올라가서 점거파업을 할 때 이 싸움이 정말 큰 싸움이라고 보고 싸웠다. 우리가 아무런 (중재)안도 받지 않고 교섭권을 현대지부에 넘기고 내려왔는데 평화기간에 아무런 교섭도 안하고 계속 미루고 하니까 사기가 많이 꺾인 시기다.
이 싸움이 역사적으로 길이길이 남을 것인데 1공장 CTS 내려왔다 해서 이거 하나만 보고 끝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우리가 25일 동안 너무나 큰 싸움을 했는데 원해서 내려간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아마 우리와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대화나 토론을 할 수 있게 한자리에 모여서 얘기했다면 25일이 아니라 한 달이든 두 달이든 하고 내려왔을 거라는 거다. 우리는 밖에서 이렇게 싸웠는데 너희는 안에서 그거 하나 해결 못하고 내려왔냐고 실망하는 게 아니라, 잘했구나 격려해주고 끝난 게 아니니까 다시 정비해가지고 이거보다 더 큰 싸움으로 만들어서 우리가 원하는 정규직 쟁취를 위해서 싸워나가야 한다.
이 싸움은 자기 자신을 한 단계 넘어서야 한다. 지금 시기가 점거 내려오면서 교섭안건을 아무것도 내놓지도 못하고 서울상경 얘기했다가 취소되고 얘기했다가 취소되고 그러니까 못 믿는 거다. 그럼 봐서 하자 이런 마음들이 많다. 지금은 지회가 아니라 우리 싸움이다. 우리 조합원이 하나하나 모여서 단결된 모습으로 싸우면 이기는 싸움이라고 본다. 사람들한테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지회가입은 언제 하셨나
7월22일 대법원 판결 전에 조합이 가입하라고 하니까 나섰다. 그런데 예전에도 한 번 가입했었다. 06년도인가 05년도에 가입해서 6개월 동안 집회 몇 번 왔다갔다 했다. 당시에 우리 기업에 거의 반 이상, 70~80%가 가입을 다했다. 그런데 회사에서 이거 가입하면 너희 해고다, 막 탄압을 하니까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나갔다. 결국에는 나와 남자 조합원 두 사람 밖에 안 남았는데 남자는 탈퇴해버리고 나는 남아 있다가 결국에는 나도 탈퇴해버렸다.
 
그러면 작년 대법판결 이후에 다시 조합원이 늘어나게 된 것인가
그렇다. 그런데 또 같은 일이 있었다. 가입할 때 조장이나 이런 사람도 똑같이 가입하자. 반장도 우리 이번에는 가입 같이하자. 그래놓고서는 나중에 담당부장이랑 다 빠져버리고. 가입했던 사람도 회사에서 두 시간씩 잡아가지고 면담하니 탈퇴하기도 했다.

 

점거해제 이후에 현장탄압이나 달라진 점은 없나
우리 지역 같은 경우에는 (탄압이) 별로 없다. 분위기 자체가 정말 달라졌다. 예전에는 우리가 환경에 대해서 개선해야 된다, 해주세요 해주세요 하면 안 해줬다. 요즘에는 달라졌다. 뭐가 달라졌냐면 너무 잘 해준다.
우리가 (노조) 활동하기 전에는 이게 정당한 건지 아닌 건지를 몰랐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는데, 노조가입하고서 알고 난 뒤에는 우리가 얘기를 하면 다 들어준다. 그만큼 힘이 생긴 거다.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바꾸었다는 것을 비조합원들한테 얘기를 한다. ‘아,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다’.
 
11월15일 점거농성 과정에서 여성조합원들은 어떻게 참여했나
우리 4공장 같은 경우에는 여성이 많이 없다. 남성분들이 많고 여성이 4공장에 딱 4명 있다. 1차 파업했을 때 여성이 정말 많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여성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보고. 여성조합원이 이렇게 많은데, 이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만약에 내가 많이 알았으면 이 여성들을 모아서 뭔가를 좀 해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피켓을 들고 11월15일에 올라갔을 때 여성들은 위험하니까 내려가라고 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정말 힘들었다. 처음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그래서 아는 사람 도움으로 피켓을 만들고, 선전물을 만들고 그런 것을 시작했다.
11월30일날 현장파업 할 때 아줌마들 정말 대단했다. 우리 조합원이 폭행당하거나 끌려갔을 때 큰 목소리, 소리를 지르며 함께 싸웠다. 역시 지지않는 어머니의 힘을 보았다.
파업하는데 여성이니까 밥 같은 거, 밥을 올려주고 이런 것을 하자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는 단지 여성이라서 밥이 일이 아니라, 밥은 얼마든지 있지 않나. 주문해서 올려줄 수도 있는 거고 김밥을 올려줄 수도 있는 문제인데. 우리 여성도 같은 파업, 파업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밥을 하는 게 아니라 피켓을 들고 얘기를 하고 선전물을 돌리고 이런 것을 하고 싶었지만 잘 안 된다는 게 참 가슴이 아팠다.
 
여성조합원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 후에 같이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했다고 하셨다. 그러면 지금 여성노동자들이 같이 모이는 그런 것은 없나
그건 못했다. 다른 공장에 아는 분과 연락은 계속한다. 우리가 1차파업 끝나고 2차파업을 위해서 뭔가를 준비해야 되니까 과정에서 ‘언니, 우리가 2차 파업을 위해가지고 뭔가 여성을 위해서 뭔가 한번 만들어보자’ 했지만 앞에 나서는 것을 많이 두려워한다. 대신 우리가 2차파업에 돌입했을 때는 앞에서가 아니라 뒤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내가 너무 앞서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농성장에 있다가 충돌도 잦아지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여성조합원들을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고 들었는데 그 결정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나
나도 (농성장에) 몇 번 올라갔다. 가서 거기 비닐 깔고 누워도 내 집처럼 편하게 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침탈이 들어오면 남성들이 싸우는데 여성이 있으면 보호본능이 있으니까 너희들이 못 싸운다 이런 말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그랬다. ‘아니, 여성이 아니라 같은 조합원으로 보면 안 되겠냐’. 계속 그랬다.
결국에는 내려갔는데, 내려오면서도 서운한 감정이 많으니까 내가 많이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들한테 ‘정말 그때 서운했다. 왜 여성남성 차별하느냐. 평등하지 않냐. 같이 맞고 같이 싸우면 되는 건데도 여성이니까 내려가라 이런 게 아니라 같이 싸워야지’.
우리가 천막에 있을 때도 그랬다. ‘1공장 CTS 심장부가 있으면 우리가 천막을 쳐서 역할을 하자’ 그래서 4공장에 천막을 쳤다. 천막을 지키려면 잠을 자야하지 않나. 여성이 4명인데 결혼하신 분들도 있으니까 집에 가야되지만, 나와 내 동생 같은 경우는 결혼을 안 했으니까 상주를 하겠다 했는데 친구들 반응이 ‘안 된다, 여성이니까 너희는 안 된다, 자고 내일 아침에 일찍 와라’ 이런 게 좀 있었다. 너무 화가 나가지고 ‘여성 차별하지 마라’. 근데 그래서 나도 잤다 한 날은. 우리 잘 수 있다, (웃음) 아무 일도 없는데.
 
문제제기를 하면 간부들이나 남성동지들이 잘 안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렇다. 이런 게 많다. 우리 기업에 (현장위원이) 남성 현장위원이랑 저랑 이렇게 둘이 있다. 근데 나는 활동가고 현장위원이고 그런데 내 동생조차도 이런 게 있다. 같은 식구이고 언니가 이렇게 이렇게 이야기하면 따라야지 이런 게 맞는 이야기인데, 이게 좀 반대이다. 우리 조합원들도 그렇고 여성이니까 무시하는 경향이 좀 있는 거 같다. 남성을 따른다. 여자는 연약하니까 뭐 그런 거.


이번 투쟁이 현장에 어떠한 성과로 남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나
지금으로 봤을 때는 노동조합도 일단은 힘이 있어야 되고 우리가 정규직화되어야 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정규직 쟁취하는 게 어려운 거다.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 대법원 판결도 났는데 회사에서 안 해주니까 이게 어려운 문제구나.
지금 이경훈이 하는 얘기가 신규채용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신규채용이란 게, 원래 각 사업부별로 뽑아야 되는데 그것도 안 해주는 사람들이 우리 정규직화시켜주나. 예를 들어 10명의 조합가입해서 싸운 사람이 있다. 그런데 회사에서 2명만 (정규직화) 해 주겠다 그러면 어떻게 할 거냐. 2명만 하고 나머지는 비정규직으로 그렇게 살 거냐? 그러면 아 그건 아니지. 하려면 몇 명이 아니라 다 같이 전부다 싸워야 되는 문제니까 같이 가야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해 달라
7월22일 대법원 판결과 2월10일 최병승 판결이 났다. 우리의 투쟁은 사기는 커지고 정확한 명분이 있다. 12일 상경투쟁에 대한 반응도 좋았고 우리 대오는 한 치 흔들림이 없었다. 11월15일 1공장 CTS 점거농성 시작으로 12월9일 파업을 중단했지만 역사에 남을 싸움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12월10일 사측은 평화가간, 성실교섭이라고 말해놓고 헌법재판소에 옛 파견법은 위헌이라고 신청했다. 한마디로 결렬선언 했다. 그래놓고선 지회가 4대안을 받지 않았다고 우리 조합원에게 바지사장을 앞세워 징계를 내리고 있다.
우리는 법률정당성을 갖고 있다. 2월17일 1공장 이미나 동지 해고, 2월18일 엔진변속기 그리고 3공장 징계가 개최 되었다. 바지사장은 그러할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우리는 단 한명의 징계해고도  절대 용납할 수 없고 이 부당징계가 2차 파업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부당징계와 정규직쟁취 요구해야 한다.
조합원 동지들에게 “2차투쟁을 알리는 부당징계에 맞선 확실한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는 정규직화 쟁취투쟁을 합시다. 1차 파업처럼 우리의 사기의 두 배 열 배로 앞으로 달려갑시다. 저 또한 동지들 그리고 지회가 더 끈끈하게 하나로 뭉쳐서 가열찬 투쟁으로 만들어 가봅시다”라고 말하고 싶다.

 

정리│이서윤 (cdbb@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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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월호][현자인터뷰1]노동자로서 눈을 떴을 때 이 싸움이 시작되었다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3/02 15:06
  • 수정일
    2011/03/02 15:45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노동자로서 눈을 떴을 때  이 싸움이 시작되었다

_시트사업부 김응효 대표

 

사용자 삽입 이미지점거해제 이후 상황은 어떠한가
비정규직이 25일 동안 공장잡고 점거한다는 게 보면 힘든 일인데 자부심은 대단히 많이 갖고 있다. 다만 농성해제하고 내려오기 전에 몇 가지 안건들, 사측과 교섭을 하는 차원이 아니고, 몇 가지 조항들은 마무리 짓고 나서 내려왔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아쉬움들을 조합원들이 얘기했다.  우리가 25일 동안 하면서 사측이 무서워서 겁먹었던 게 아니고, 그것보다 더 큰 벽이 있어서, 실질적인 압박들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25일 (농성)하고 내려와서 교섭을 하게 되면서  처음엔 교섭을 일주일에 두 번 하기로 했다가 그 다음에 일주일에 한 번, 2주에 한 번 하는 행태들이 벌어졌고, 통장가압류라든가 손배·고소고발 이런 것들이 계속적으로 자행되면서 조합원들끼리 2차투쟁을 해야 되는 거 아니냐, 해야 된다, 이런 얘기들이 많이 나왔다. 힘들게 잡은 교섭인데 지켜봐야 되는 거 아니냐 하는 얘기들도 있어서 지금까지 교섭을 계속 보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2공장 해고자들과 (동성기업) 미복귀자들은 교섭내용에서 실질적으로 확실하게 나온 안건이 없다. 4대의제 중에 들어간 것은 농성해제 하면서 전원 다 복귀를 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는데 우리 23명이 지금 미복귀를 한 상태고, 2공장 해고자 동지들 얘기는 전혀 어떤 얘기도 나오지 않고. 그래서 (2차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가만히 있기만 한다면, 처음 취지가 아닌, 그걸 왜곡한 내용들만 의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취지의 내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그런 교섭으로 접어들고 있더라. 처음 8대 요구안에서 요구안으로 축소됐는데, 4대 요구안마저도 더 축소가 돼서 손배가압류 이런 문제를 최소화하자, 그런 내용의 교섭으로 줄어드는 형태가 돼서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다.

 

그렇다면 집회신고 투쟁은 동성기업과 2공장 동지들이 주축이 되어 계획했나
그렇다. 우리가 양재동을 올라가겠다, 집회신고를 하겠다, 이런 제안을 했다. 2차 투쟁의 첫 시발점을 만들자는 의지가 있어서 ‘집회신고 투쟁을 해 보자’ 이렇게 제안을 했다. 근데 잠시 기다려보자 이런 의견이 있었다. 그러다 쟁대위에서 결정을 내렸다. ‘좋다, 양재동 필요하다 올라가라’ 그런 결정이 났는데, 그 시기가 언제냐로 고민을 했다.
근데 또 지부에서 ‘간담회를 한 번 하자’고 했다. 그래서 2공장 동지들이 간담회를 한 번 가졌는데, 거기서 어느 정도의 실마리를 좀 잡았다가 그 다음날 또 말을 바꾸는 그런 과정들이 있었다. 2공장 동지들이 ‘교섭이 좋게 바뀔 거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그래도 한 번 들어보자’고 의견을 내서 (지부의 의견을) 들어봤는데 역시나 또 전혀 좋은 얘기들이 안 나오더라. 말을 계속 바꿔버리니까. 이런 것들 때문에 (상경투쟁이) 조금씩 뒤로 밀렸다. 밀리다가 간담회를 듣고 나서도 기존과 똑같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회사랑 지부에서는 우리가 양재동 올라오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 한다. 어떻게 보면 조금 안 올라왔으면 하는 그런 것들 때문에 ‘사탕발림을 해서 잡아보자’ 이런 게 좀 많았다. 저번에도 그렇게 간담회를 얘기했었고. 우리가 그래도 한번 더들어보자 했었는데, 별반 내용이 다르지 않았다.

 

집회신고로 확보된 시간이 2월25일부터 3월1일까지인가
그렇다. 5일 동안을 확보했다. 그리고 서초서 여기도 집회신고가 나 있다. 여기 이제  뒤에 보시다시피 용역들이 되게 많은데 오늘도 시비가 있었다. 그건 회사에서 지시를 내려서 이렇게 얘기를 하라 한 것도 있겠지만 한 사람이 하루밖에 (신고를) 못한다. 이쪽이 밀집지역, 경쟁 집회장소, 삼성하고 현대하고 포함해서 세 군데가 이쪽에서밖에 못 낸다고 하더라 원래 인원접수 하는 곳도 안에 있었는데 옛날 동희오토 동지들의 사이 있어서 바깥으로 뺐다고 하더라. 회사 측에서 좀 당황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전에는 양재동에서 집회를 할 수 없었는데 우리가 어제 2월 25일부터 3월 1일까지의 시간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해고자나 미복귀자들과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 공장별 사업부별로 안에 있는 동지들과 접촉면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고 있나
우리가 밖에 나와 있다 보니까 우리 시트사업부 내에서도 동지들하고 소통이 좀 안 됐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와 있고, 공장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그래서 소통이 잘 안됐었는데 요번에 재정비를 하고 다시 추스르면서 간부회의를 소집을 해서 안과 밖이 소통을 하면서 계획의 수위를 높여가야 되는 것 아니냐고 얘기를 했고, 조합원들한테까지 그 얘기들이 다 전달돼서 안과 밖이 자주 만나서 이런 것들을 논의하자, 우리 사업부는 그렇게 일단 회의를 했다.
그리고 그 동안 쟁대위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회사에서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 많아서. 또 수요일 집회를 매번 한다. 매주 계속 끊임없이. 처음에 우리가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파업기간 이후에 계속적으로 수요일 집회를 통해서 소통을 많이 하고 있다. 안과 밖이 만나는 것은 공장, 사업부별로 편차는 있겠지만, 아마 사업부별로 그런 것들을 잡아나갈 것이다. 사업부 특성이 좀 있기 때문에 전체 사업부별로 조합원들이 다 만나서 얘기할 기회는 수요일밖에 없지만 우리 사업부 문제도 있고 각 공장별로 또 고민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 조합원이 주로 1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2·3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활동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고 있나
지회에서 1차만 노조활동을 해야 된다 이런 관점은 아니다. 우리 자동차 일 하는 비정규직 동지들이 다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것이 어떤 시각의 면은 아니고. 탄압이 1차는 더 심하다. 3차 같은 경우는 인원이 되게 멀리 떨어져 있다. 한 명 한 명 떨어져 있어서 실질적으로 그들이 고민하고 있다. 가입을 해도 탄압이 왔을 때 어디다 얘기를 하기가 벅찬 거다. 그렇다고 그들이 가입한다고 해서 가입하지마라 안 된다 이런 얘기는 한 적이 없다. 왜냐, 같은 동지이기 때문에. 근데 그들이, 우리 동지들이 부담감을 많이 느끼는 것이다.

 

2·3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상황 때문에 노조가입이 어렵다는 건가
그렇다. 우리는 노동조합에 가입한 우리 동지들, 소송하고 있는 동지들만의 문제로 풀어가진 않고 있다. 우리가 목표했던 것은 현대자동차에 있는 모든 동지들을 정규직화 시켜라, 시켜야 한다 이런 얘기이다. 그런데 사측에서는 의무가 있고, 의제가 있다 이런 식으로 갈라치기를 하고 있지만 우리의 목표와 기조는 똑같다. 똑같은 비정규직, 거기서 마저도 우리 스스로들이 갈라놓는다면, 1차다, 3차다 하는데 그건 우리가 얘기한 게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1차라고 얘기 안 한다, 비정규직이라고 얘기하지. 1차다 2차다 3차다 이런 얘기들은 회사에서 얘기하는 거지 우리 스스로는 동지라고 얘기를 하고 같은 비정규직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같이 가는 게 맞고 당연히 맞는 거다. 그렇게 하면 1차는 왼쪽 문 달고, 2차는 오른쪽 문 달고 똑같은 상황이다.
지금 2차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면에 2차 조직화사업을 한다는 큰 목표, 기조가 잡혀 있다. 단지 2차소송이 1차에 안 했던 동지들과 나중에 노조에 가입한 동지들 때문에 2차소송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아시겠지만 회사에도 사측의 바지 사장들과 연관돼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친인척, 자기 고모부나 누가 정규직 관리자다 이런 것들이 있어서 2차 조직화 사업을 하는 게 힘드나, 어쨌든 나 같은 경우 사업부에 (2차 조직화해야 한다고) 얘기를 했고 다른 데도 마찬가지다. 다 돌아다니면서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거다. 그래서 2월10일날 판결이 되게 중요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 판결을 보고나서 아직 가입 안 하고 있는 우리 동지들이 더 그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있지 않겠나. 그래서 2차준비는 2차 조직화사업도 같이, 더 큰 뜻으로 조직화사업이 같이 담겨져 있다.

 

2005년 불파투쟁에 참여했나 
동참하지 못했다. 현장에 그런 분위기들이 많이 올라왔었다. 우리도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관심이 되게 많았고, 공장 안에서 일을 하면서도 다른 공장에 있는 우리 동지들은 (투쟁) 하고 있는데 우린 일하고 있으려니 기분이 많이 그랬다. 그러면서 아, 뭐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우리 동지들이 저렇게 맞고 있고 끌려나가는데 우리 해야 되는 거 아니냐 분위기들이 한참 고조됐었다.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는데, 지회에서 노조가입원서를 갖고 올라왔는데 출입구에서 제재를 당했다. 그 때 당시에 바지 사장들의 협박도 있었고 한 명이라도 가입하면 가입하는 사람 잘라버리겠다 이런 협박도 있어가지고 그 벽을 넘지 못했다. 그 때는 겁을 많이 먹었다.
그 때 허비한 시간이 지금 돌이켜보면 (아깝다.) 근데 그러고 조용히 시간을 흘려서 보내고 있다가 몇 년에 걸쳐 탄압당하는 것을 많이 보면서 같이 옆에 일하고 있는 동료들이 나가는 것을 많이 봤다. 많이 참고 견뎌왔었는데 마침 7월22일날 대법원 판결이 났고, 우리가 늦었지만 지금 아니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우리 시트사업부도 조직을 더 가열차게 했고, 늦게 한 만큼 더 열심히 하자고 해서 좀 빠르게 진행을 했다. 그래서 신생이면서도 건방지게 깝치는 그런 것들을 많이 했지만, 어쨌든 우리가 늦게 시작한 만큼 늦게 시작한 마음들을 갖고 더 힘차게 했던 것 같다.
내가 노동자로 눈을 안 떴을 때는 이 싸움이 끝났다고 포기하고 있었다. 노조활동을 못하고 있었던 그 시간이 아마 포기를 하고 있었던 시간이 아닐까. 근데 노동자로서 눈을 떴을 때 ‘아, 이 싸움이 시작이구나, 끝이 아니구나’ 이걸 알고 나니까 그 전에 했던 우리 조합원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가를 알게 되고 반성하게 되고.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 말씀하실 때 투쟁하는 과정에서 사측과 싸우는 것도 힘들지만 좀 더 큰 벽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것은 정규직지부를 말하는 것인가
사측과 싸우는 것은 충분히 싸울 수가 있다. 힘차게 싸웠고. 젊은 친구들이 많아서 그날그날 (일과를) 찍어서 비지회 게시판에 올렸다. 분통터지는 것도 많았는데.
그렇게 투쟁하면서 진짜 힘들었던 것은 지부의 중재적인 역할이었다. 민감한 얘긴데, 지부에서 처음에 압박을 많이 했다. 금속(본조)도 그랬고. 금속에서도 처음엔 같이 이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태도로 얘기했었는데 이경훈 지부장의 벽을 넘지 못했다. 금속도 나중에는 말을 바꿔서 얘기를 했다.
벽이라는 게 밖에서 연대를 안 해줘서 힘들었던 게 아니고 그보다 더 가까운 내부의 벽 때문에, 그것을 뛰어넘지 못해서 힘들었다. 처음부터 정규직 동지들의 연대를 바라고 시작한 것은 아니나 어쨌든 파업을 하면서 압박들, 벽들을 넘지 못했다. 1차파업을 졌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더 확고하게 강력하게 했으면 지금의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2차투쟁을 다시 결의해서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지만, 그래도 2차투쟁을 계획하고 있고, 2차투쟁을 다시 계획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들의 의지가 아직 꺾이지 않았다는 거다. 그리고 2차투쟁은 더 강력하게 할 계획이다. 아마 이번 2차투쟁을 한다고 하면 지부의 벽도 넘어설 각오를 하고 하지 않을까.

 

방금 말씀하셨던 내용이 동지뿐만 아니라 다른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다 같이 얘기가 된 것인가
그렇다. 내가 이렇게 얘기했을 때 다른 동지들이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내 판단에서는 그런 것 같다. 2차투쟁을 하면 전체 우리 조합원들 중 반 이상은 할 거다. 우리 조합원 수가 7월22일 이후에 1900명, 2천명 가까이 육박했었는데 실질적으로 파업에 돌입했을 때는 많이 떨어져 나갔었다. 그리고 파업하는 과정 속에서도 많이 떨어져나갔고. 투쟁에 돌입을 했을 때 얼마만큼 참가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3분의2정도는 될 것이다. 지회 싸이트를 통해서 댓글 다는 걸 보면 조합원들이 무슨 교섭이냐 교섭해서 아무 내용도 없고 한데 (투쟁) 하자 이런 댓글들이 많다. 그런 정서를 봐서도, 수요일 집회 때 나오는 인원들은 2차투쟁을 했을 때 다 동참을 하지 않을까.

 

2005년에 자동차 비정규직노조들이 생기고, 투쟁력을 갖게 되면서 지금의 상황과 비슷하게 정규직 운동질서에 의해 통제를 당하는 과정에서 독자적인 결정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정규직지부한테 방해를 받는다고 할까. 그런 과정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가
내 생각인데, 지부에서 들으면 상당히 껄끄러운 얘기일 것 같은데 2차투쟁에 있어서는 우리 독자적으로 할 것 같다. 왜냐하면 1차 투쟁하면서 지부의 간섭이라고나 할까, 회유 이런 게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부의 힘을 빌어서 파업을 했던 것을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2차투쟁에 있어서는 아마 그런 결단을 하고 2차투쟁을 할 거다. 2차투쟁을 하는 것도 지부에서는 되게 싫어한다. 그래서 설 이전에 모든 걸 마무리하고 그렇게 할 계획을 잡고 있다. 지부에서 가지 말라고 했다, 여기 우리 올라올 때도. 근데 올라와서 집회신고 했다. 그것만 보더라도 2차투쟁에서는 지부를 배제하고 우리 독자적으로 끝장을 낼 거다.

 

방금 말씀하신 내용에 공감한다. 그러나 점거 파업 때 밖에서 보기에는 비정규직지회 쟁대위가 정규직지부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쟁대위 자체에 그런 압박이 있다. 왜냐하면 쟁대위 자체가 지금 다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있는 상태고 공장안에서만 신변보장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정규직 대의원들이 와서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할 거다. 가깝게 공장 안에 있기 때문에 와서 이렇게 하자, 해봐라 저렇게 해 봐라, 질질 끌고 가고 있는 상황이고.
우리 올라온 것도 쟁대위에서 결정은 내렸지만 어쨌든 우리가 올라가겠다는 요구를 많이 했었다. 조합원들이 한다고 하는데 쟁대위에서 굳이 막는다면 그들이 파업파괴행위를 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그래서 우리가 뭔가 한다고 했을 때 쟁대위에서 그걸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만약에 지도부가 정신을 못 차린다고 하면 그걸 바로잡을 수 있는 조합원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집행부 똑바로 해라 하는 목소리를 내는 조합원들이 아직까지 있다. 비록 지도부가 마치 교섭이라는 국면에 접어들어서 이것을 잘 풀어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조합원들이 그것을 가만히 놔두진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그 부분에 있어서는 우려를 하지 않는다.

 

지회 쟁대위에서 2차투쟁 계획을 어떻게 세우고 있나
극비사항이 많아서 자세하게는 말씀 못 드리지만 2차투쟁에 대한 모든 내용을 쟁대위에서 다 결정한다고 보면 되는 게 아니다. 대의원자체는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내서 대표로써 전달하는 차원이다. 조합원들이 대표한테 얘기를 하면 대표들은 대표들끼리 모여서 조합원들의 정서가 이렇고,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조합원들이 이렇기 때문에 할 수 밖에 없다, 쟁대위 자체도 조합원들이 이끌어가는 것이다. 집행부가 조합원들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고, 조합원들이 쟁대위, 그리고 집행부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쟁대위도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한다.

 

정리 │김재영 (hedwig@jinbo.net)
이서윤 (cdbb@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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