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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원 1주기 추모제...먼저 간 자식 영정에 잔 올린 부모

부인 오은주 씨 "더이상 억울한 죽음이 나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원래 많은 사람과 함께 하려 했던 추모제는 유족과 추모제를 주관한 조계종 노동사회위원회의 스님들을 중심으로 조촐하게 치러졌다. 거리두기 2단계 방역 지침 때문이었다.

 

6명의 스님이 문 기수의 영정 앞에 앉아 목탁을 두드리며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기도를 했다. 부인 오은주 씨, 아버지 문군옥 씨, 어머니 김혜숙 씨가 그 뒤에 자리를 잡았다. 문 기수 싸움을 함께 했던 활동가 몇몇이 얼마간 거리를 두고 근처에 섰다.


 

▲ 문중원 기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발원 기도를 하고 있는 스님과 뒤편에 앉아 있는 유족들. ⓒ프레시안(최형락)

발원 기도가 진행되는 동안 조용히 눈물을 훔치던 유족은 문 기수의 영정에 잔을 올릴 때 오열했다.

 

유족들은 문 기수 죽음의 책임자 처벌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싸움을 함께한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부인 오 씨는 "아버님 어머님께서 자식을 먼저 앞세우고 앞에서 절을 하시는 모습이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이렇게 한 사람의 생명은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남편이고 누구의 아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이상 이렇게 억울한 죽음이 나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아버지 문 씨는 "우리 중원이가 마사회 갑질과 비리를 폭로하고 잘못된 구조와 제도가 고쳐져 나를 아는 모든 분들은 행복하길 바란다는 유서를 남기며 목숨을 끊은지 1년이 된 오늘 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며 "함께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죽는 날까지 이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문 기수 싸움을 함께한 공공운수노조와 시민사회단체를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진기영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문 기수가 하늘에서 편히 쉬기를 기원하며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마사회를 더는 억울한 죽음이 일어나지 않는 곳으로 개혁하겠다고 다짐했다. 

발언이 끝난 뒤에는 가수 박준 씨의 추모 공연이 이어졌다. 박 씨는 <전태일 다리에 서서>와 <힘들지요>를 불렀다.

 

추모제의 마지막 순서는 추모제가 열린 세종로 공원에서 정부 서울청사 옆 문 기수의 운구차가 대져있던 곳까지 갔다 돌아오는 것이었다. 문 기수의 영정이 맨 앞에 섰고, 그 뒤를 스님들과 부인 오 씨, 어머니 김 씨가 따랐다.

 

▲ 울고 있는 문중원 기수의 유족들. ⓒ프레시안(최형락)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12416192228195#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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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윤석열 직무 배제…“심각하고 중대한 비위 다수 확인”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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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0/11/25 09:21
  • 수정일
    2020/11/25 09:2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강경훈 기자 qa@vop.co.kr
발행 2020-11-24 18:12:07
수정 2020-11-24 18:29:44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윤석열 검찰총장ⓒ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결과 심각하고 중대한 비위 혐의를 다수 확인했다며, 윤 총장의 징계를 청구함과 동시에 직무 배제 조치한다고 24일 밝혔다.

추 장관은 이날 오후 6시께 브리핑을 열고, “법무부는 윤 총장과 관련된 진정 및 비위 사건에 대한 감찰담당관실의 감찰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금일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고, 징계 혐의자인 검찰총장에게 직무집행의 정지를 명했다”고 밝혔다.

감찰 결과 확인된 징계 대상 혐의는 ▲서울중앙지검장 재직시 사건관계자인 중앙일보 사주와 부적절한 만남을 가진 혐의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실로 하여금 주요사건 재판부 판사들의 개인정보 및 성향 자료를 불법수집·활용하게 한 혐의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대검 감찰부의 감찰 착수보고를 받고 정당한 이유 없이 감찰을 중단하게 한 혐의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방해 목적으로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강행해 수사지휘권을 부당하게 행사한 혐의 등이다.

이밖에 ▲한명숙 전 총리 사건 수사검사들에 대한 감찰을 방해하고, 허위 기재한 서류를 서울중앙지검에 송부하도록 한 혐의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감찰 착수 사실을 외부에 알려 언론에 보도되게 해 감찰을 방해한 혐의 ▲대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퇴임 후 정치 시사 발언을 해 검사로서 정치적 중립에 관한 위신 손상 ▲감찰 대상자로서 협조 의무를 위반하고 감찰을 방해한 혐의도 특정됐다.

추 장관은 “비위혐의자인 검찰총장이 방문조사 거부 의사를 명확히 표시함에 따라 대면조사를 실시하지는 못했으나, 이미 확보된 다수의 객관적 증거자료와 이에 부합하는 참고인들의 명확한 진수 등에 의해 검찰총장에 대한 비위혐의를 확인했다”며 “향후 법무부는 검사징계법이 정한 원칙과 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징계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경훈 기자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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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유물, 가짜 ‘유엔사’ 하루속히 사라져야”

가짜 ‘유엔사’ 국제캠페인, 이재강 평화부지사 사건 규탄기자회견 (전문)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0.11.24 12:56
  •  
  •  수정 2020.11.24 13:04
  •  
  •  댓글 0
 
은 24일 오전 통일대교 앞에서 “가짜 ‘유엔사’의 주권침해 규탄 기자회견”를 열었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은 24일 오전 통일대교 앞에서 “가짜 ‘유엔사’의 주권침해 규탄 기자회견”를 열었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경기도 이재강 평화부지사의 도라전망대 현장집무실 설치가 유엔군사령부(유엔사)의 반대로 무산되자 민간단체들도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이하 국제캠페인)은 24일 오전 11시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앞에서 “가짜 ‘유엔사’의 주권침해 규탄 기자회견”를 열고 유엔사 깃발을 내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류경완 (사)코리아국제평화포럼 공동대표의 사회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SOFA개정국민행동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이장희 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유엔사는 유엔의 하부기구도 아니고 유엔과 아무 관계가 없는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이름으로 이 땅에 한반도의 평화프로세스를 가로막고 대한민국의 주권을 지금 침해하고 있다”고 법적 근거를 문제삼았다.

권영길 평화철도 이사장은 “경기도 이재강 평화부지사가 남북간의 개성공단 재개를 호소하고 실제적인 경기도 평화부지사 업무를 보기 위해서 집무실을 저 뒤에 도라산전망대에 설치하려고 했더니 유엔사라는 단체가 그것을 가로막았다고 한다”며 “유엔사가 우리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선도하는 그런 유엔사인줄 알았더니 그 유엔사가 오히려 평화를 염원하고 평화를 만들어가는 우리 한국 국민들과 이재강 평화 부지사의 그 걸어가는 길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이 자리에서 유엔사가 실질적으로 유엔의 법적 권한이 없이 이러한 행위를 해왔음을 고발한다”면서 “우리 함께 진정한 평화를 만들고 우리들 염원하는 현안의 문제인 개성공단이 재개되고 금강산관광이 열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조원호 통일의길 공동대표는 “우리들은 ‘미국은 들어라 시민행동’이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미국 대사관 앞에서 현재 24차까지 시민행동을 진행하고 있다”며 “우리는 미국의 우리 한국에 대한 국가주권을 침해하는 미국의 행태를 비판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미대사관 앞 시민행동에서 유엔사 문제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주둔 문제, △환경오염 문제, △남북관계를 방해하는 문제, △북한정권을 위협하는 문제 등을 제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사)코리아국제평화포럼 리미일 이사, ‘Action OneKorea 한국’ 정연진 상임대표가 공동낭독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우리는 오늘 파주 임진각 바람의 언덕에 설치된 경기도 이재강 평화부지사의 집무실을 지지 방문하였다”면서 “주권자의 당연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경기도와 함께 개성공단 재개를 비롯한 남북 교류, 협력의 시대를 열기 위해 힘을 합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소위 ‘유엔사령부’라는 것은 미국이 70년 간 유엔의 이름을 도용하고 유엔의 외피를 씌워 국제기구 행세를 시킨 미국의 군사기구에 불과하다”며 “우리는 ‘유엔사’를 가짜라고 규정하였으며 해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나아가 “미국은 더 이상 ‘유엔사’의 가면을 쓰고 벌이는 비겁한 남북 이간질을 그만두어야 한다. 또한 국제기구로 포장된 가짜 ‘유엔사’의 허세를 이용해 한국정부와 군대를 협박하는 사기행각도 중단해야 한다”며 “우리 민족의 결정과 계획을 방해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으며 우리가 그것을 승인받아야 할 대상도 이유도 없다”고 분명히 했다.

이들은 “평화와 번영, 통일의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냉전의 유물, 가짜 ‘유엔사’는 하루속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면서 “우리는 앞으로도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적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문 낭독을 마치고 유엔사 해체를 주장해온 이시우 사진가 등은 유엔사 깃발을 내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기자회견문 낭독을 마치고 유엔사 해체를 주장해온 이시우 사진가 등은 유엔사 깃발을 내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기자회견문 낭독을 마치고 유엔사 해체를 주장해온 이시우 사진가 등은 유엔사 깃발을 내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기자회견문(전문)]
가짜 ‘유엔사령부’의 주권침해를 규탄한다

우리는 오늘 파주 임진각 바람의 언덕에 설치된 경기도 이재강 평화부지사의 집무실을 지지 방문하였습니다.

경기도는 그동안 남북이 합의한 평화번영의 협력사업을 하루속히 재개하여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충심 어린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당면해서는 개성공단 재개를 염원하는 각계각층의 요구를 대변하여 도라전망대에 평화부지사 사무실을 설치하고자 했으나 소위 ‘유엔사’의 불허라는 해괴망측한 조치에 가로막혔습니다.

우리의 땅에서, 통일을 이루기 위한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 정체불명의 외부세력에 의해 제지당하는 대형사건이 너무도 버젓이 벌어진 것입니다.

70년 간 이어져왔으며 2018년 판문점 선언 이후 더욱 노골화된 소위 ‘유엔사’의 남북협력 차단, 주권침해 행위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비정상적인 범죄행위를 수수방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위 ‘유엔사령부’라는 것은 미국이 70년 간 유엔의 이름을 도용하고 유엔의 외피를 씌워 국제기구 행세를 시킨 미국의 군사기구에 불과합니다. 미국이 ‘유엔사’라는 간판 뒤에 숨어서 남북관계를 훼방하고 한국정부와 군대를 농락해온 것이 소위 ‘유엔사’ 70년의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유엔사’를 가짜라고 규정하였으며 해체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은 더 이상 ‘유엔사’의 가면을 쓰고 벌이는 비겁한 남북 이간질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또한 국제기구로 포장된 가짜 ‘유엔사’의 허세를 이용해 한국정부와 군대를 협박하는 사기행각도 중단해야 합니다.

남과 북은 이미 한반도에 영원히 전쟁이 없을 것이며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평화와 번영, 통일을 이루겠다는 것을 온 세상에 선포하였습니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결정과 계획을 방해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으며 우리가 그것을 승인받아야 할 대상도 이유도 없습니다.

평화와 번영, 통일의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냉전의 유물, 가짜 ‘유엔사’는 하루속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적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갈 것입니다. 또한 주권자의 당연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경기도와 함께 개성공단 재개를 비롯한 남북 교류, 협력의 시대를 열기 위해 힘을 합쳐나갈 것입니다.

2020년 11월 24일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 / 사단법인 평화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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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이 시점’에 더불어민주당을 찾아가는 이유

  • 기자명 조혜정 기자
  •  
  •  승인 2020.11.24 14:57
  •  
  •  댓글 0
 
 

“‘왜 이 시점에?’ 라고 묻지 말고 왜 이 시점에 노동자들이 파업을 진행하며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가 돌아보기 바란다.”

민주노총이 예고했던 총파업·총력투쟁을 선포했다.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을 빌미로 노동법 개악을 밀어붙이고 있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정치권이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한 노동개악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25일 서울지역 더불어민주당 의원사무소 곳곳에서 총파업 서울대회를 연다. 각 지역에서도 총파업 대회가 벌어질 예정이다.

▲ 민주노총이 24일, ‘민주노총 총파업-총력투쟁 선포 및 대정부, 대국민 제안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 뉴시스]
▲ 민주노총이 24일, ‘민주노총 총파업-총력투쟁 선포 및 대정부, 대국민 제안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 뉴시스]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인한 방역지침이 격상된 ‘이 시점’에 총파업 대회를 열 수밖에 없는 입장을 민주노총은 여러차례 밝혀왔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목소리에 깊은 관심을 두지 않던 보수언론들이 코로나가 다시 확산하는 ‘이 시점’에 무슨 총파업이냐고 떠들고 있다. 코로나19의 대대적인 확산에 일조할 것이라는 결론으로 기사를 써내고 있다. “이 와중에 모여야 하나”, “지금 꼭 모여야 하나” 등으로 국민의 불안감을 조장하고, 민주노총 입장은 큰 관심도 두지 않은 채 ‘명분없는 집회’라고 여론몰이를 한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등은 앞다퉈 “철저히 단속하라”는 주문을 내뱉고 있다.

오는 30일 ILO 핵심협약 비준에 따른 노동법 개정안을 다루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고용노동소위가 열린다. 12월3일 환노위 전체회의와 9일 국회 본회의도 예정돼 있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총력투쟁 결심을 꺾을 수 없는 이유, 항의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명분과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민주노총은 23일, 노조법 개악 저지 총파업·총력투쟁 돌입에 앞서 입장문을 내고 ‘총파업 총력투쟁에 나서는 상황과 입장’에 대해 밝혔다. “100만 조합원과 2500만 노동자 그리고 모든 국민의 삶을 지탱할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서다.

“코로나19가 창궐하고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은 노동조합 밖에 있는 미조직, 비정규,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강제무급휴직도 모자라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에서 잘려나간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는 사이 결과적으로 재벌 대기업과 가진 자들의 곳간은 가득 차다 못해 넘쳐났다.”

“이 지옥같은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뭉쳐 임금과 고용, 삶의 근간을 지켜냈고 위기의 시대를 극복하는 가장 커다란 힘은 노동조합으로 뭉쳐 싸우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이런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려고 한다. 아니 아예 노동조합을 하지 말라고 한다.”

▲ 김재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이 총파업·총력투쟁의 결의를 밝히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김재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이 총파업·총력투쟁의 결의를 밝히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정부가 제출한 노조법 개정안은 해고자·실업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고 있지만 노조활동에 제약을 두고, 산별노동조합 활동에도 제약을 두는 것뿐만 아니라, 소수노조의 노조할 권리와 교섭할 권리 등 단체교섭권 무력화, 파업 시 직장점거 금지 등으로 단체행동권 무력화의 내용을 담고 있다.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의 보호에 관한 협약’, 98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대한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을 비준하겠다며 내놓은 노조법 개정안임에도 ILO가 권고하지도 않는 내용으로 개정해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국제노총(ITUC)도 17일 박병석 국회의장, 송옥주 환노위원장, 송영길 외통위원장 앞으로 서한을 보내 “결사의 자유 원칙에 반하는 정부 제출 노조법 개정안 폐기돼야 한다”고 경고하며 “ILO 협약 87호, 98호, 29호의 비준이 더 이상 지체없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정부와 정치권이 개악하려는 노조법 개정안은 민주노총이 10만 국민의 동의를 얻어 발의한 전태일 3법(근로기준법 11조·노조법 2조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담고 있는 ‘노조할 권리’에도 반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더해 더불어민주당은 노동법 개악엔 힘을 쏟으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엔 좌고우면 하고 있다. 취임 이후 줄곧 ‘산재사망 사고를 줄이겠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강조해오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최근 당과 함께 입법에 소극적인 태도다.

▲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23일 “더불어민주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당론으로 채택하라! 전태일3법을 제정하라!” 요구를 내걸고 더불어민주당 전국 광역시·도당사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사진 : 건설노조]
▲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23일 “더불어민주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당론으로 채택하라! 전태일3법을 제정하라!” 요구를 내걸고 더불어민주당 전국 광역시·도당사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사진 : 건설노조]

“왜 이 시점에 노동자들의 저항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가?”, “왜 이 시점에 정부는 고용노동부를 앞세워 거짓말을 하며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가?”는가 되레 민주노총이 따져 물어야 할 형국이다.

민주노총은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다음날 총파업·총력투쟁을 선포하면서 “코로나19를 핑계삼아 일방적 비난과 정치적 수사를 동원해 민주노총과 노동자를 공격하며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요구”를 밝혔다.

코로나19의 재창궐이 시작되는 이 시점에 ‘정부와 국회의 노동개악 기도 중단 등’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요구를 내놨다. “▲정부와 정치권은 추진 중인 노동개악 국회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 ▲10만의 발의로 상정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전태일 3법’을 조속히 온전하게 입법하라 ▲코로나19 재창궐에 맞게 필수노동자의 범위를 넓히고 인원 및 일자리를 대폭 확대하라. 필수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보호장치를 마련하라 ▲성공적 방역을 위해 모든 일터에 시차제 출퇴근 전면 시행, 나아가 출근인원 조정, 이로 인해 발생하는 휴무인력에 대해 유급휴가 진행하라 ▲업무의 특성을 고려해 시행가능한 업종에 대해 유급재택근무 시행하라”는 게 민주노총의 요구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은 25일 방역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다수가 모이는 집회 대신 더불어민주당 지역구의원 사무실 앞을 찾아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고 항의행동을 하는 총파업 대회를 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종료 시까지 국회, 민주당사, 환노위 소속 의원 사무실 등에서 농성, 선전전, 항의행동, 문화제 등도 이어갈 예정이다.

민주노총은 코로나 확산 저지의 결심도, 총파업·총력투쟁의 결심도 이미 마쳤다. 정치권은 코로나 확산 시기 민주노총 총파업에 대해 우려를 표하지만, 누가 누굴 우려할 때가 아니다. 이제 정부와 정치권이 노동자와 국민의 우려에 대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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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경복궁 불을 밤새 밝힌 까닭···'심야 변란이 무서워서'

[이기환의 Hi-story]고종이 경복궁 불을 밤새 밝힌 까닭···'심야 변란이 무서워서'

이기환 경향신문 선임 기자 lkh@kyunghyang.com

입력 : 2020.11.24 06:00 수정 : 2020.11.24 09:49

 

어떤 이들은 조선을 두고 시대착오적인 쇄국정책으로 근대화가 늦어진 나머지 망국을 초래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유독 한 분야에 관한 한 중국 및 일본보다 앞서 서구문물을 받아들인 예가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바로 전깃불입니다. 그 유명한 토마스 에디슨(1847~1931)이 인류 역사상 위대한 백열전구를 발명한 것은 1879년 10월이었습니다.

1887년 1~3월 사이 조선의 정궁 경복궁에서도 가장 깊숙한 건청궁에 전등을 설치하고 불을 밝혔다. 전등 설치에 관한한 중국과 일본보다 2년이나 빠른 것이었다. |한국전력 전기박물관 홈페이지

1887년 1~3월 사이 조선의 정궁 경복궁에서도 가장 깊숙한 건청궁에 전등을 설치하고 불을 밝혔다. 전등 설치에 관한한 중국과 일본보다 2년이나 빠른 것이었다. |한국전력 전기박물관 홈페이지

 

■1887년 1~3월 경복궁을 환하게 밝힌 전등불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7년 여가 지난 1887년(고종 24년) 1~3월 사이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의 가장 깊숙한 건청궁(고중 부처의 생활공간)에 전등불을 환하게 밝혔답니다. 이것은 중국 베이징(北京)의 자금성은 물론, 일본의 궁성보다 약 2년 앞지른 선구적인 사업이었습니다. 조선의 고종은 ‘전깃불에 관한 한 얼리어댑터’였던 셈이죠. 사상 처음으로 전등불이 켜지는 모습을 보려고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하는데요. 당시 이 모습을 숨어서 지켜봤다는 어느 상궁(안상궁·1936년)의 회고담이 재미있습니다.

“건청궁 앞 연못에 설치된 쇳덩이(기계)를 서양인이 움직였는데 연못의 물을 빨아올려 물끓는 소리와 우레와 같은 굉음이 났다. 얼마 뒤 궁전 내의 가지 모양의 유리에 휘황찬란한 불빛이 대낮같이 점화됐다.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건청궁 내에 설치된 발전설비는 16촉광의 전구 750개를 켤 수 있는 시설이었다니 대단하죠.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아니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부모가 물려주신 것이라며 자르기를 거부했던 조선 땅에서 왜 전깃불은 그토록 빨리 도입했을까요. 그것도 중국·일본보다 더 빨리….

전등불로 대낮같이 밝아진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궁궐 안에는 고종을 비롯한 대소신료들이, 궁궐 주변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전기박물관 제공

전등불로 대낮같이 밝아진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궁궐 안에는 고종을 비롯한 대소신료들이, 궁궐 주변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전기박물관 제공

■조선사절단이 뉴욕거리에서 겪은 신기한 경험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1882년(고종 19년) 5월 서구열강 가운데는 처음으로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조선은 이듬해(1883년) 9월 보빙사라는 이름의 사절단을 미국에 파견합니다. 민영익(1860~1914)을 전권대사로 한 사절단 11명은 당시 미국의 체스터 아서 대통령(1829~1886·재임 1881~1885)에게 국서를 전달했습니다. 당시 아서 대통령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조선 보빙사가 큰 절을 올렸다는 사실이 화제를 뿌렸죠. 그런데 보빙사는 미국 체류 기간 중 아주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에디슨이 전등불을 발명한 지 불과 4년 만인데요. 진깃불이 뉴욕과 보스턴의 밤거리를 비추는 희한한 장면을 목격한 겁니다.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신문물을 눈 앞에서 보게 된 겁니다.

초창기 건청궁 옥호루 앞마당에 설치된 가로등. 당시 발전규모는 16촉광의 백열등 750개를 점등할 수 있는 설비였다.|전기박물관 제공

초창기 건청궁 옥호루 앞마당에 설치된 가로등. 당시 발전규모는 16촉광의 백열등 750개를 점등할 수 있는 설비였다.|전기박물관 제공

1883년(고종 20년) 9월24일 뉴욕의 에퀴타블 빌딩을 방문해서 발전기에서부터 전기불이 켜지는 과정을 지켜본 유길준(1856~1914)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악마의 힘으로 불이 켜진다고 생각했다”고 경악했습니다. 유길준은 “편리할 뿐 아니라 안전하게 조작하는 방법도 알게 됐다”면서 “더이상 검증할 필요도 없으니 조선에서 이 전기를 사용하고 싶다”는 열망을 감추지 못했습니다.(<서유견문>)

고종은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보빙사의 강력한 추천에 전기 도입을 서둘렀던 것 같습니다. 미국의 에디슨 측도 조선을 동양진출의 교두로 삼았답니다.

당시 에디슨램프사의 총지배인(프란시스 업튼)이 1887년 4월18일자로 사장(에디슨)에게 보낸 업무연락서는 “경복궁의 전등시설은 에디슨 제품의 동양 판촉을 위해 시범케이스로 시공됐다”면서 “향후 일본 궁성에 설비될 시설과 함께 동양에서는 유일한 시설”(미국 국립에디슨유적지 기념관 자료)이라고 했습니다. ‘윈윈’이었던게지요.

경복궁 건청궁에 전등을 도입한 후 궁중에 설치된 등갓.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문양이 선명하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경복궁 건청궁에 전등을 도입한 후 궁중에 설치된 등갓.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문양이 선명하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외국인을 호위대장으로 임명한 고종

고종이 전기도입을 더욱 서두르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임오군란(1882년)과 갑신정변(1884년)입니다.

우국지사 황현(1855~1910)의 <매천야록> 1888년조를 보면 심상치않은 언급이 있습니다.

“고종은 임오군란·갑신정변 이래 가까이서 변란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 하여 미리 피란하려고 가마꾼 20명에게 후한 월급을 주고 궁성 북문에 대기시켜 반 발자국도 떠나지 못하게 했다. 또 밤에 변란이 많이 일어나니 궁궐 내에 전등을 많이 켜서 새벽까지 훤하게 밝히도록 명했다.”

보빙사의 일원이던 유길준(오른쪽)은 미국의 각 도시에 켜진 전등불(왼쪽)을 보고 ‘악마의 힘으로 켜진 불’이라고 경악했다.

보빙사의 일원이던 유길준(오른쪽)은 미국의 각 도시에 켜진 전등불(왼쪽)을 보고 ‘악마의 힘으로 켜진 불’이라고 경악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요. 고종이 야밤에 일어나는 변란이 두려워 전전긍긍했고, 또 그 때문에 불을 훤히 밝히려 했다는 말 아닙니까. 고종의 불안은 1894년(고종 31년) 7월23일 일본군의 ‘경복궁 무력 점령 사건’까지 일어나자 더욱 격심해졌다고 합니다. 일본군의 감시 속에 언제 화를 입을 지 몰라 전전긍긍했던 고종은 아예 외국인들은 시위대장과 부대장으로 임명합니다. 그들이 미국인 예비역 대령인 윌리엄 맥엔트리 다이(1831~1899)와 러시아 건축가인 아파나시 세레딘 사바틴(1860~1921)이었습니다.

뭐 예비역 대령인 다이는 그렇다칩시다. 그러나 건축가를 호위대 부대장으로 기용하다니요. 외국인이라면 일본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여겨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으로 건축가에게까지 호위를 맡긴 것이겠죠. 어쨌든 시위부대장을 맡은 사바틴은 고종의 명에 따라 1894년 9월 1일부터 일주일에 나흘씩 저녁 7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에 퇴근하는 일을 반복했다고 합니다.(김영수의 <명성황후 최후의 날(서양인 사바찐이 목격한 을미사변, 그 하루의 기억>, 말글빛냄, 2014에서)

에디슨램프사의총지배인이 1887년 4월18일자로 사장(에디슨)에게 보낸 업무연락서. “경복궁의 전등시설은 에디슨 제품의 동양 판촉을 위해 시범케이스로 시공됐다”고 밝혔다.(출처:미국 국립에디슨유적지 기념관)

에디슨램프사의총지배인이 1887년 4월18일자로 사장(에디슨)에게 보낸 업무연락서. “경복궁의 전등시설은 에디슨 제품의 동양 판촉을 위해 시범케이스로 시공됐다”고 밝혔다.(출처:미국 국립에디슨유적지 기념관)

■낮에 자고 새벽까지 일한 고종

그런 탓일까요. 고종은 낮에는 자고 전등을 환하게 켠채 야밤에 정무를 돌보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고종의 주치의를 지낸 독일인 리하르트 뷘쉬(1869~1915)는 “황제는 낮에 자고 오후 3시에 일어나 다음날 새벽 3~4시까지 일했으며…마당을 가로질러 이 건물 저 건물을 다닌다”고 회고했답니다.(리하르트 분쉬의 <대한제국을 사랑한 독일인 의사 분쉬>, 김종대 옮김, 코람데오, 2014) 윤치호(1866~1945)의 영문일기에도 고종을 알현한 뒤 새벽 2시에 귀가했다느니 대궐내에서 등불놀이를 본 뒤 밤 3시 무렵에 돌아왔다느니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윤치호의 <영문일기>, 박미경 옮김, 국사편찬위, 2015)

고종은 1894년 일본군의 경복궁 무력점령사건이 일어나자 전전긍긍했으며, 결국 미국인 다이(위의 오른쪽)와 러시아인 사바틴(왼쪽)을 시위대장과 부대장으로 임명했다.

고종은 1894년 일본군의 경복궁 무력점령사건이 일어나자 전전긍긍했으며, 결국 미국인 다이(위의 오른쪽)와 러시아인 사바틴(왼쪽)을 시위대장과 부대장으로 임명했다.

그런데 문제는 경복궁의 불을 환하게 밝히는데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들었다는 겁니다. 맨처음 설비투자에만 무려 2만4524달러를 썼답니다. 게다가 밤새도록 켜놓았으니 운용비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황현 같은 이는 “전등 한 개를 하룻밤 밝히는데 엽전 1000꾸러미의 비용이 든다”(<매천야록>)고 꼬집었습니다. 이 뿐이 아니라 훗날 종두법을 시행한 지석영(1855~1935)이 사헌부 장령(정4품) 시절 “날이 밝은 시각에도 불필요하게 전등을 켠다”(<고종실록> 1887년 3월29일)는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궁궐을 훤히 밝힌 전등불을 둘러싸고 곱지않은 시선이 많았다는 얘기죠. 아닌게 아니라 “고종이 매일 밤 전등을 켜놓고 악공들에게 ‘아리랑타령’을 부르게 했다”느니, “불빛이 낮처럼 환한 가운데 수십명이 음탕하고 비루한 가사를 부르자 명성왕후가 무릎을 치며 ‘그렇지 그렇지’ 했다”(<매천야록>)느니 하는 기록이 보입니다.

최근에 발굴된 건청궁 내 전기발상지인 향원정(연못)을 포함한 전기등소터. 증기기관의 냉각용수가 열탕이 되어 뜨거운 증기수가 역류하는 바람에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

최근에 발굴된 건청궁 내 전기발상지인 향원정(연못)을 포함한 전기등소터. 증기기관의 냉각용수가 열탕이 되어 뜨거운 증기수가 역류하는 바람에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

■건달불, 증어망국…

그런 탓일까요. 경복궁을 환하게 밝힌 전등은 여론은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때 설치된 발전기가 증기동력이었기 때문에 증기기관의 냉각용수가 열탕이 되었는데요. 때문에 경복궁 향원정의 연못에 뜨거운 증기수가 역류되어서 연못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증어망국(烝魚亡國)’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또 전기등이 건들거리면서 자주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한다 해서 ‘건달불(乾達火)’이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심야의 변란을 우려해서 갖가지 비판여론에서 경복궁 내를 낮처럼 환히 밝혔지만 침략야욕에 눈이 먼 일본의 만행은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1895년(고종 32년) 10월 8월 전등불이 설치되고 외국인들이 호위를 맡은 건청궁을 짓밟아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으니 말입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고종의 침전에는 호머 헐버트(1863~1949)와 호러스 언더우드(1859~1916) 등 외국인들이 3인 1개조로 불침번을 서야 겨우 안심했다고 합니다.(김동진의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참좋은친구, 201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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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은 <매천야록>에서 “경복궁 내의 전등 한 개를 하룻밤 밝히는데 엽전 1000꾸러미의 비용이 든다”고 비판했다.

그러고보면 경복궁 건청궁에 설치된 전등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고종은 분명 서구문물을 받아들여 꺼져가는 왕국의 불빛을 되살리려고 했을 겁니다. 그래서 궁궐의 불을 밝혔을 겁니다. 하지만 경복궁 무단점령사건(1894년)에 이은 천인공노할 명성황후 시해사건(1895년) 등 거리낌없는 일본의 ‘묻지마!’ 도발과 침략에 결국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동양 3국 중 가장 먼저 전등불을 켠 바로 그 건청궁 내에서…. 그리고 궁궐에 전등불을 단지 불과 23년만에 한일병합이라는 치욕을 겪게 됩니다.


‘아니 왜 이러한 가슴 아픈 역사를 소개하느냐’고 못마땅해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늘 좋은 역사만 배울 수는 없습니다.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될 역사, 결코 잊지말아야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고자 하여 이 쓰라린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1240600001&code=960100#csidx0d71c7ee04e00628131a7c1400ff1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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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용노조, 유령노조, 위성노조의 역습

[복수노조 제도 10년 ③] 진짜 노조 잡는 가짜 노조 사용설명서가 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10년 전 이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린 노동조합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원하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자유롭게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것. 내가 맘에 드는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그 노동조합을 통해 내가 바라는 일터를 만드는 것.

 

그런데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일터를 노동조합들의 전쟁터로 만들어버렸다. 노동조합 할 자유가 아니라 노동조합 간의 경쟁. 단체교섭권을 얻지 못하면 노동조합도, 노동조합을 택한 노동자도 더이상 회사에서 발 붙힐 수 없게 될 수 있다.

 

부당한 해고로부터, 기간제 계약으로 변경하려는 시도로부터, 초과임금을 주지 않겠다고 포괄임금약정에 서명하라는 사용자의 요구로부터, 노동조합이라는 우산은 온전한 노동3권을 가질 때 가능하다.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노동자들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드는 순간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행동을 할 자유도 빼앗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다) - 노동조합 잡는 어용노조


 

이제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면, 제일 먼저 대비해야 하는 일이 어용노조다.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 도입 이후 노동조합이 없었던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생기면 곧장 제2의 노동조합이 생기는 게 다반사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교섭을 하기 위해서는 교섭창구단일화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사용자는 노동조합이 교섭을 요구한 사실을 바로 사업장 내에 공고해야 하지만 이를 미루면서 제2의 노동조합을 만든다. 조합원수가 1명이라도 많으면 제1노조의 교섭권을 뺏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 창립 이래 노동조합이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노동조합을 만들자 당장 하루만에 노동조합이 생긴거죠."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조심스럽게 동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교섭요구를 하기 전날 막판 쉬는 시간에도 가입원서를 받기 시작했다. 회사관리자가 노동조합 설립 사실을 알게 되자 갑자기 상무의 집으로 호출을 받았다. 노동조합을 포기하라는 회유였다. 이미 200명 넘는 동료들에게서 가입원서를 받았다. 안될 말이었다. 싫다고 했다. 앞으로 노사간에 잘 대화를 해보자고 하고 돌아 나왔다. 다음날 회사는 제2노조를 만들었다고 했다. 교섭요구를 하고 사흘이 지났을까. 관리직들이 개별면담을 하기 시작했고 어용노조는 조합원이 800명이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수노조의 길로 들어섰다(인천의 **타이어휠 제조업체).


 

수년동안 노동조합이 없던 회사에 노동조합이 생기자마자 연달아 노동조합이 생긴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보통 제2노조가 자주적으로 설립된다는 건 기존 노동조합의 어용화에 대한 비판이나 노조 내부 구성원들 간의 불화 등이 원인이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창사 이래 노동조합이 실제 활동했던 적 없던 회사에서 신규노조가 막 설립되었는데, 제대로 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제2노조가 설립된다는 것은 자주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왜냐면 그동안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았던 사업장에 처음 만들어진 노동조합은 아직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고 제대로 보호해줄 단체협약도 없기 때문에 한 노동조합 아래 단결하지 않고 제2노조를 만들어 노동조합 간에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인 행동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업장 내에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설립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의 구체적인 활동이나 운영방식이 정해진 게 없으니 노동조합 활동을 자주적으로 원하는 노동자들이라면 막 만들어진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자신이 원하는 노동조합으로 만들어가는데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신규노조가 설립되는 사업장에는 거의 당연한 수순처럼 제2노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사용자의 공공연한 비호를 받으면 조합원을 순식간에 만들고 단체협약도 없는데 조합비 일괄공제도 해주고 노조사무실도 내준다.

 

"우리가 노조를 만들고 노조사무실을 달라고 그렇게 요구해도 듣는 체도 안했는데"

 

어용노조는 설립 직후 노조사무실을 받았다. 어용노조 위원장까지 3명은 노조사무실에 상주하고 있고 이제 현장일도 아예 안한다. 아직 단체교섭도 시작하기 전이고 단체협약도 없는데도 말이다. 어용노조는 노동조합이 아니라 그냥 회사가 새로 만든 한 부서처럼 그렇게 생겼다. 노동위원회에서 사용자의 차별행위에 대해 부당노동행위와 공정대표의무 위반으로 인정받다. 어용노조가 생긴지 이미 6개월이 지난 뒤였다. 사용자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결정이 유지되었다. 사용자는 마치못해 우리와 노조사무실 제공과 근로시간면제시간에 대해 협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사용자는 절대 회사 내에는 사무실을 줄 수 없다고 했다(인천의 **타이어휠제조업체).

 

"어용노조의 조합비를 모두 회사 돈으로 총무실에서 냈더라구요."


 

노동조합을 만들자마자 인사관리부서의 과장이 제2노조를 만들었다. 감쪽같이 조합원수를 불렸고 우리 조합원들에게도 노조가입원서에 서명을 강요받았다. 몇몇은 견디지 못하고 서명을 했다. 어용노조를 이용해 조합원들의 탈퇴를 종용하는데 사용자의 개입을 밝히기 쉽지 않았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과반수노조를 판단하면서 어용노조의 조합비를 사용자의 돈으로 일괄공제를 했다는 사실이 인정되어 과반수노조 지위를 되찾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조합원을 잃고 난 뒤였다(제주의 **대학교).


 

당연히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노동위원회나 법원을 통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을 받아도 이미 그때는 수개월 뒤, 조합원을 빼앗기고 교섭권과 쟁의권도 모두 잃은 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규노조의 설립 이후 제2노조가 만들어지면 이미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가능성을 의심해야 하고 적극적인 근로감독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상한 제2노조의 설립은 단결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된다.


 

▲ 지난 4월 2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위헌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잠자고 있던 유령노조의 부활


 

분명 노동조합이 없었는데 노동조합만 만들면 고대 유물처럼 숨어있던 유령노조가 기지개를 편다. 본 적도 없는 단체협약도 체결되어 있어서 교섭요구조차 못하도록 막기도 한다. 유령노조가 실제 노동조합을 활동하지 않는 서류상 조직에 불과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노조법에는 휴면노조 해산절차를 두고 있지만 이는 이러한 유령노조를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복수노조가 금지되었던 시절, 노동조합을 만들었으나 활동을 하지 않는 휴면노조를 정리해주지 않으면 다른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임원이 없고 1년 이상 활동을 하지 않아 노동조합 스스로 해산신고를 할 수 없는 경우 서류상 해산처리를 하는 제도이다. 노동조합의 활동을 막기 위해 서류상만들어져 있는 페이퍼노조는 노동조합으로서의 외관은 다 갖춰두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임원이 없는 경우는 없다. 이른바 바지 노조위원장이 있다. 페이퍼노조를 휴면노조 해산을 통해 없애려면 외관상의 노조 임원이 민주적 절차에 의하여 선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한다.


 

"휴면노조 해산까지 3개월, 정말 007작전을 방불케 했어요"


 

노동조합을 설립하기 전 1년 가까이 노동조합 설립 후 발생될 수 있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대응을 준비했다. 그런데 회사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몰랐다. 유령노조로부터 노동조합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회사 내 생산직 노동자들을 거의 95% 이상 조직하고 노동조합을 출범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심지어 페이퍼노조와 사용자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시청에 단체협약 신고도 해두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당황스러움은 잊을 수 없다. 그런데 단체협약을 우리에게는 보여줄 수 없단다. 정보공개신청을 해두고 페이퍼노조의 위원장을 찾아가 어떻게 선출되었는지, 단체협약 체결과정을 추궁해서 사용자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노동지청의 부당노동행위 근로감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단체협약상 위원장이 될 수 없는 직책이라는 점이 확인되고, 시청에서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노조위원장이 아니라는 사실이 받아들여져서 유령노조를 해산시킬 수 있었지만 정보공개를 통해 단체협약을 받는데 2개월이 넘게 걸렸다. 조합원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했다면 정보공개신청으로 단체협약을 받기도 전에 조합원을 다 잃을 수도 있다(경기의 **기계부품 제조업체).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제도 이후 노동조합의 설립을 막기 위해 보다 진화된 형태의 유령노조가 생겨났다. 서류상 임원뿐 아니라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 바로 대항하여 노조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일정수의 조합원을 조직해둔다. 그래서 노동조합 설립 사실이 알려지면 곧장 노동조합 총회를 개최하고 실제 노동조합 활동이 존재하는 것처럼 전열을 정비하기 때문에 휴면노조 해산도 불가능해진다.


 

조합원 뺏어가는 위성노조의 페이크(fake) 전략


 

유령노조를 만들어두는 것만으로도 불안했을까. 노동조합 활동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누가봐도 유령노조는 어용노조다. 사용자가 개입하지 않으면 조합원수를 늘리는 것이 쉽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 신규 노동조합의 조직화를 방해하기 위한 위성노조를 만드는 경우도 생겨났다. 주로 전국단위로 다수의 사업장이 존재하거나 직종별 특성에 따라 조직화가 용이하지 않는 경우에 위성노조, 즉 복수의 어용노조를 활용하는 것이다.


 

"페이퍼노조는 사무직을 조직하고, 제3의 노조를 만들어 우리 노조를 비방하면서 생산직, 영업직 노동자들의 가입을 가로막았어요."


 

노동조합을 설립하자마자 페이퍼노조(제1노조)가 노조 총회를 했다. 우리노조(제2노조)의 주력인 지역 지점 영업소에서 조합원 가입이 쉽지 않자, 제3노조는 우리노조가 민주노총이라 강성이라고 절대 회사가 우리노조와는 교섭 안할꺼라고 공포를 조장하고 다녔다. 3개 노조 중 과반수노조가 없었고 페이퍼노조는 자율적 교섭대표노조 결정기간 14일동안 교섭대표노조 협의를 하자고 하면서, 노조를 없애고 제1노조로 들어오면 노조 임원도 시켜주고 실제 노동조합 활동도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민주노총만 아니면 된다고. 거부했더니 제1노조와 제3노조가 자율적 교섭대표노조 결정기간에 조합원수를 계속 늘리더니, 우리노조를 제외하고 연합을 통한 과반수노조 통지를 했다. 확정공고일 이후의 조합원수는 산정하면 안되도록 정해져 있지만 조합원 가입시점을 입증할 방법이 없으니 눈뜬 채 교섭권을 빼앗겼다. 곧바로 제3노조는 제1노조로 통합되었다(전국단위 **엘리베이터 제조판매업체).


 

가짜 노동조합, 그건 그냥 범죄잖아요.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 노동조합들, 이들은 엄밀히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없다.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범죄행위에 이용된 도구에 불과하다. 사용자가 아니라도 사실상 사용자가 어용노동조합의 설립·운영에 관여·주도·지배개입하였다면 어용노동조합을 조직하는 행위 자체도 부당노동행위이고, 어용노동조합 조직에 관여한 노조 임원도 공동정범으로 부당노동행위의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어용노조의 임원뿐 아니라 어용노조를 주도한 사용자가 제대로 처벌받는 경우는 드물다. 노동조합으로서 실질성이 인정되지 않아 설립필증을 취소해도 이름만 바꿔 제3, 제4의 어용노조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노동조합의 자유로운 교섭권과 쟁의권을 원천적으로 가로막을 수 있도록 하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제도 하에서는 노동조합을 이용하여 노동조합 활동을 가로막는 부당노동행위는 근절될 수 없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제도 자체가 복수노조 상황을 악용하여 배타적으로 노동조합의 권리를 박탈할 수 있도록 부당노동행위 안내서 역할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11912174912711#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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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아들이 나타났다, 죽은 채로

[청죽통한사 ⑥] 김주열20.11.24 08:29l최종 업데이트 20.11.24 08:43l신다임 안치용(sustainability)

 

청년이 있었다. 그는 어른과 아이의 경계, 생존과 꿈의 경계에 섰다. 같은 경계선을 무난히 혹은 우여곡절을 거쳐 넘은, 같은 시대에 던져진 다른 많은 이들과 달리 그는 경계선을 넘지 못했다. 세계의 폭력에 의해서든, 피하고 싶었지만 피하지 못한 불운에 의해서든 그의 죽음은 역사의 기록이자 시대의 고발이다. 

해방을 앞두고 이역에서 숨을 거둔 윤동주부터 2020년의 어느 청년에 이르기까지, 지속가능바람 저널리스트들은 청죽통한사(청년의 죽음으로 통찰하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청년의 죽음을 취재했다. 청년의 시각에서 새롭게 작성한 '청년의 죽음'은, 그 죽음의 애도이자 더 나은 세상의 모색이다.[편집자말]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고 타지로 간 아들이 하루아침에 연락이 끊겼다. 전라북도 남원에서 한달음에 경상남도 마산으로 달려간 어머니는 아들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그 소식은 언론을 타고 전국에 퍼졌다. 한 달 가까이 찾아다녔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하는 수 없이 어머니가 귀향하던 그 시간에 아들이 나타났다. 죽은 채로. 

어머니가 애타게 찾아 헤맨 아들은 1960년 4월 11일 경상남도 마산 앞바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실종된 지 27일 만이었다.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혀 있었다.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한 달 동안 어머니가 마산을 떠돌며 아들을 찾아다녔기에 많은 마산 시민이 아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주열이었다.

합격자 발표 하루 앞두고       
 

 김주열 의사의 가족
▲  김주열 의사의 가족
ⓒ 3.15의거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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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열은 1944년 10월 7일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서 태어났다. 성격이 온순하여 공부와 일밖에 몰랐고 친구들이 싸움해도 참견할 줄 모르는 무던한 아이였다. 아버지 김재계는 천석꾼의 부농이었지만 병환이 깊어져 가세가 기울었다. 주열은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키겠다는 야무진 꿈을 안고 은행원이 되기 위해 마산상업고등학교에 지원했다.

 마산상업고등학교의 합격자 발표일은 원래 1960년 3월 14일이었다. 주열은 형과 함께 마산으로 향했고 공고한 발표일인 14일엔 이미 마산에 도착해 이모할머니 집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1960년 3월 15일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군중이 모이는 것을 염려한 교육청에서 합격자 발표의 연기를 종용하자 발표일이 16일로 연기되었다. 계획대로 합격자를 발표했다면 주열은 아마 15일 새벽에 마산에서 출발해 고향 남원으로 돌아가고 있을 터였다.


3월 15일의 선거는 부정과 비리, 억압으로 점철되었다. 선거에 익숙하지 않은 국민을 지도한다는 명목으로 3인조, 5인조의 공개투표가 실시됐다. 각 조의 조장은 자유당 후보를 찍도록 유도하고 기표를 확인했다. 민주당 지지자로 판단되는 사람에게는 투표 통지표를 배부하지 않았다. 또 사전에 금전으로 매수하여 만든 기권과 자연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권 등을 모두 자유당을 지지한 것으로 만들어 미리 투표함에 넣어두었는데 이게 대략 전체 유권자의 40% 정도였다.

열렬한 민주당 당원이던 주열의 이모할머니는 투표 통지표가 전달되지 않자 종일 울분을 터트렸다. 그러던 중 마산에서 부정 선거가 들통났고, 분개한 학생과 시민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시위를 목격한 이모할머니가 집에 와 주열 형제에게 시내에 나가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형제는 시위대에 합류했다. 그러나 형과 달리 주열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나이 17살, 마산상업고등학교 합격자 발표를 하루 앞둔 때였다.

대구 2·28 시위

1959년 11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조병옥이 대통령 후보로, 장면이 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2월 15일 조병옥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대통령 후보 없이 장면 부통령 후보만으로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기붕을 자유당 후보로 정한 상황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공석이 되자 이승만은 사실상 대통령을 확정지었고, 따라서 장면과 이기붕 중 누가 부통령으로 당선되는가가 선거의 가장 큰 쟁점으로 바뀐다. 양 당에서는 각각 자기 당의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자유당 정권은 여당 후보의 선거운동에는 적극적으로 군중을 동원하고 야당 후보의 선거운동에는 방해 공작을 펼쳤다. 자유당은 대구 유세 날인 1960년 2월 27일 토요일에 청중을 최대한 끌어모았다. 오후 1시로 예정된 자유당 유세 강연에 늦지 않도록 각 기관, 업소는 낮 12시까지 업무를 끝내야 했다. 반면 다음 날인 28일 일요일에 열리는 민주당 유세에는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청중이 참석하지 못 하도록 막고자 하였다.

강구해낸 묘책은 일요 등교령이었다. 학생들이 민주당 유세장에 가는 것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일요일에 각종 행사를 개최하거나 학생들을 등교시키라는 방침이 전달되었다. 경북고는 학기말 시험, 대구고는 토끼사냥, 대구 상고는 졸업생 송별회, 경북대 사대부고는 임시수업 등의 명목으로 고교마다 빠짐없이 학생들에게 등교 지시가 내려졌다. 자유당 정권의 이와 같은 부당한 조치에 항거하여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궐기한 것이 바로 대구의 2·28 시위였다.

마산으로 불길이 번지다

대구에서 지핀 불길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로 번져갔다. 하지만 간헐적인 가두시위에도 불구하고 1960년 3월 15일에 불법 선거가 자행됐다. 선거 당일 아침, 마산 장군동 제1투표소에서 민주당 참관인과 자유당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참관인이 투표함을 엎어버리자 그 투표함에서 부정선거의 실체가 드러났다. 투표 전에 이미 투표함에 자유당 지지로 표시되어 들어있던 투표용지가 발견된 것이다.

성난 시민은 마산 시내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했다. 오전 10시 30분 민주당 마산시당은 자유당이 갖은 불법과 탈법 선거를 자행함에 따라 공명선거를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사태에 처하였음을 지적하며 전국 최초로 독자적인 선거 포기를 선언하였다.

"협잡 선거 물리치자!"

오후 3시 30분경 민주당 마산시당 간부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표어를 쓴 띠를 머리에 맨 채 거리에 뛰쳐나감으로써 마산 시위가 시작되었다. 오후 4시경 마산 시내 중심가에 1천여 명의 학생과 시민이 부정선거 무효를 주장하는 시위행진에 돌입했다. 경찰과 녹색 제복을 입은 반공청년단원들이 학생과 시민들을 몽둥이로 무차별 폭행하자 1차 마산의거가 일어났다.
 
 제2차 마산의거 당시 남성동파출소 앞에서 가두 시위하는 시민들
▲  남성동파출소 앞에서 가두 시위하는 시민들
ⓒ 3.15의거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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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표를 내놔라!"
"부정선거 다시 하라!"

시위대는 오후 7시 남성동 파출소를 포위하고 "부정선거를 즉시 중지하라"라고 외치며 돌을 던졌다. 1만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개표장인 마산 시청으로 이동하면서 구호를 외치고 경찰과 대치했다.

밤이 되자 학생과 시민이 개표장인 시청에 모여들었다. 일부는 마산의 중심가였던 남성동 파출소로 향했다. 시위는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경찰은 소방차를 동원해 물을 뿌려서 시위대를 해산하려고 했고 시위대는 이에 대항하여 돌을 던졌다.

날아오는 돌에 놀란 소방차 운전사는 황급히 차에서 뛰어내렸다. 그 바람에 소방차는 무학초등학교 앞 전신주를 들이받았다. '펑'하는 굉음과 함께 정전이 되며 시내 전체가 어둠에 잠겼다. 오후 8시 무렵 경찰은 어둠 속에서 시위대에 총격을 가했다. 분노한 시위대는 자정 무렵까지 마산의 관공서, 경찰서 및 파출소, 자유당사 등을 습격하며 저항했다. 8명이 사망하고 70여 명이 다쳤다. 이날 거리 곳곳에서 붉은 피를 흘린 사람 중에 주열이 있었다.

김주열이 돌아오다

1960년 4월 11일 오전 11시 30분 마산 중앙 부두 앞바다에 시신 한 구가 떠올랐다. 오른쪽 눈에 박힌 쇠붙이가 머리를 관통한 처참한 모습이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 쇠붙이는 탄피가 알루미늄으로 된 직경 5cm, 길이 20cm 크기의 미제 고성능 최루탄으로, 꼬리 부분에 프로펠러가 달려있고 벽을 뚫고 들어가 폭발하게끔 설계되어 있었다. 겉면에는 'Don't use on the crowd(군중을 향해 사용하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이 표기되어 있었다.

"김주열이다!"

빡빡 깎은 머리, 시신 유기를 위해 몸에 묶은 돌. 모여 있던 사람들은 단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봤다. 전술한 대로 한 달 동안 그의 어머니가 마산을 떠돌아다니며 아들을 찾아다녔기에 많은 사람이 그의 이름을 알았다. 근처 다방에 있던 부산일보 허종 기자가 주열의 사진을 찍어 다음날인 12일 부산일보 1면에 대서특필했다. 이어 국내 언론은 물론 외신도 주열의 처참한 사진을 보도했다.
 
 3·15의거에 참여했다 얼굴에 최루탄이 박혀 숨진 채 바다에 떠오른 김주열 열사의 사진을 특종 보도해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1960년 4월 12일자 부산일보 지면
▲  3·15의거에 참여했다 얼굴에 최루탄이 박혀 숨진 채 바다에 떠오른 김주열 열사의 사진을 특종 보도해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1960년 4월 12일자 부산일보 지면
ⓒ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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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중앙부두 앞에 떠오른 처참한 김주열 의사의 시신
▲  마산중앙부두 앞에 떠오른 처참한 김주열 의사의 시신
ⓒ 3.15의거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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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열의 시신이 떠오르면서 무력진압으로 잠시 주춤했던 시위는 다시 들불처럼 타올랐다. 주열의 소식이 삽시간에 마산 시내에 퍼졌고 시민들은 다시 거리로 나섰다. 검시가 이루어졌으나 결과가 발표되지 않자 시민들은 시신이 안치된 도립 마산병원으로 몰려들어 눈에서 뒷머리까지 최루탄이 박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승만 정권 물러가라!"
"학살 경관 처단하라!"

오후 6시 15분 도립 마산병원 앞길에서 제2차 마산 시위가 시작되었다. 2만여 명이 참여해 1차 시위보다 규모가 컸다. 학생들은 구호를 외쳤고 일부는 마산 경찰서와 시청 등 관공서에 들어가 집기를 파괴하였다. 시위대 선두에 주열의 친척 누이동생이 나서서 "오빠의 원수를 갚아 달라"라며 군중에 호소했다. 마산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다. 민주당의 집회나 시위가 아닌 일반 학생과 시민의 시위에서 이승만 퇴진 구호가 등장한 것은 2차 마산의거가 처음이었다.

애국가, 전우가, 해방가, 3·1절 노래 등을 부르며 마산 경찰서 앞에 모인 시위대는 경찰서 마당에 세워 놓은 서장 지프차에 불을 질렀다. 경찰서 무기고를 부수고 수류탄 13개를 들고 나와 그중 한 개를 경찰서 건물에 던졌다. 밤 9시 30분경 경찰에 카빈 소총이 지급되었다.
 
 제1차 마산의거 당시 시위대와 경찰 간 투석전으로 어지럽혀진 마산시청 앞
▲  시위대와 경찰 간 투석전으로 어지럽혀진 마산시청 앞
ⓒ 3.15의거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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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과 13일에도 시위가 이어졌다.

12일 날이 밝자 마산 시민들은 경찰서·시청·도립병원 등으로 몰려들었다. 오전 10시경 마산공고 학생들이 교문을 나섰고, 뒤이어 창신고·마산여고·마산고와 여러 여학교 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도립병원 영안실로 행진해 가서 주열의 시신에 조의를 표한 뒤 자진 해산했다.

그러나 경찰이 전날 시위의 주동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학생·시민을 연행하자 다시 시위가 벌어졌다. 1만여 명의 시위대가 경찰서에 돌을 던졌고, 밤 9시경 경찰이 발포하기 시작하여 밤 11시경 시위대가 해산될 때까지 총성이 계속되었다. 

13일 해인대 학생과 마산여중고·성지여중고·마산제일여고 학생 1천여 명이 시위에 나섰다. 여학생들은 김주열의 시신에 덮어주겠다며 꽃다발을 들고 시위에 참여했다. 경찰은 소방 호스로 붉은 물감을 탄 진화용 물을 퍼부었다. 상가는 전날에 이어 철시했고 관공서의 행정사무도 마비되었다.

홍진기 내무장관과 신언한 법무차관은 "적색마수(赤色魔手)가 배후에 개재된 혐의가 있다"라며 3.15마산 의거를 공산주의자의 선동에 의한 소요로 몰아갔다. 4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은 특별담화문을 통해 마산 시위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고무되고 조종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4월 17일 한옥신 부장검사가 "공산당 개입은 속단할 수 없다"라고 발표함으로써 마산 시위에 대한 이승만 정권의 색깔 씌우기 계획은 좌절되었다.

피의 화요일

"데모가 이적이냐 폭정이 이적이냐"
"3.15선거를 불법으로 감행한 책임자를 이 자리에 불러내자!"

시위의 불길은 빠르게 번졌다. 이웃한 부산은 물론이고 전주-청주-인천 등지로 번져간 불길은 마침내 서울까지 올라갔다. 주열의 주검이 발견된 지 일주일이 지난 4월 18일 그동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대학생들이 시위에 합류했다. 시위에 나선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오다가 정치 깡패들의 습격을 받자 분노한 대학생들은 4월 19일 대거 거리로 나섰다.

시위대는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향했다. 시위 인원은 고등학생, 일반 시민, 심지어는 어린아이까지 합세하여 10만 명에 육박했다. 일부 사람들이 "이승만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쳤지만 시위 참여자 대부분이 공유하고 반복해서 외친 구호는 아니었다. 마침내 시위대가 경무대 바로 앞까지 도달하자 경찰은 실탄을 발사하였다. 이날 서울에서만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부산과 광주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4월 19일 이승만 정부는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 등 5대 도시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를 막았다.

4월 19일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하자 이때부터 각종 시위에서 정권 퇴진 구호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폭력을 행사한 집권세력에 책임을 물은 것이다. 마산에서도 본격적으로 '이승만 퇴진'을 외치는 시위가 시작되었다. 4월 24일 마산의 할아버지들이 "책임지고 물러가라, 가라치울 때(갈아치울 때)는 왔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다음 날인 25일에는 마산의 할머니들이 "죽은 학생 책임지고 리 대통령은 물러가라"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전개하였다.

같은 날 서울에서는 대학교수단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시국 선언문을 발표하고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국회의사당까지 행진했다. 이때 학생과 시민이 몰려들어 "이승만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날 시위는 사실상 철야로 진행되었고 4월 26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시위대가 광화문과 종로거리를 메웠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발표하였다.

3·15 부정 선거는 한국 헌정사에서 국회 의결을 통해 정식으로 무효 처리된 유일한 선거로 남았고, 4월 혁명은 독재에 항거한 국민들이 대통령을 끌어내린 최초의 혁명으로 기록됐다.
 
마산 앞바다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3.15 의거 과정에서 실종된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은 바로 이곳에서 시신으로 떠올랐다. 1960년 4월 10일 발견 당시 김주열 열사는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이었다. 4월 11일 폭발한 마산 시민의 분노는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된 지 보름만에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4월 혁명이 시작된 곳”이라는 글이 이곳에 새겨져 있다.
▲  마산 앞바다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4월 혁명이 시작된 곳”이라는 글이 이곳에 새겨져 있다.
ⓒ 백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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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열 시신 인양지. '4월 혁명이 시작된 곳'이라고 써있다.
▲  김주열 시신 인양지. "4월 혁명이 시작된 곳"이라고 써있다.
ⓒ 창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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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혁명은 자유와 민주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시민투쟁이자,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다. 혁명의 주도세력은 주열 또래의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교문을 박차고 나와 제일 먼저 거리에 나섰고, 일반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저항의 공간을 열었다. 지도자 없이 시위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주열은 시위 전개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혹한 전쟁이 끝난 지 불과 7년, 최빈국에서 빵이 아닌 자유와 민주를 외쳤다. 주열은 고향인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 안장됐다. 아울러 서울 4·19 민주묘지와 마산 3·15 민주묘지에 각각 가묘가 조성돼 그를 기리고 있다. 주열은 주검으로 떠오른 지 35년 만인 1995년 4월 11일 모교인 마산상업고등학교에서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그의 장례는 50년 만인 2010년 4월 11일 정부 지원 없이 후원금과 성금만으로 치러졌다(관련기사: "50년 만의 장례식, 부끄럽다" http://bit.ly/apaVmY).



- 신다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졸업. 살아있는 모든 것에 애정이 있지만 요즘은 특히 식물에 빠져 몬스테라 키우기에 열심이다. 글로써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하는 기자 지망생이다.

- 안치용: 청년협동조합지속가능바람 이사장. 사회책임과 지속가능성 의제화와 영화·문학·신학이 관심사다. 바람저널리스트들과 청죽통한사를 함께 진행한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1. 조운찬, "1960년 5월8일 김주열 어머니의 편지", 『경향신문』, 2014년 4월 17일자.

2. 김수자, 「대한민국 제1공화국의 지배와 저항담론의 불협화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64,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0.

3. 유명철, 「2·28민주운동, 3·15 1차 마산의거와 4·11-13 2차 마산의거, 4·19혁명 : 그 '연관성'에 대한 내용 지도의 필요성」, 『사회과교육』 57, 한국사회과교육연구학회, 2018.

4. 배규성, 「대구 2․28민주운동: 지역적 의미와 계승」, 『영남국제정치학회보』 14, 동아시아국제정치학회, 2011.

5. 정주신, 「마산의 민주화운동 비교 분석: 1960년 3·15의거와 1979년 10·18부마항쟁」, 『한국과 국제사회』 3, 한국정치사회연구소, 2019.

6. 이완범, 「4·19 전조(前兆)로서의 1960년 초봄 지역 시민운동 : '4·19'의 '대학생-서울' 중심사관을 넘어서」, 『한국정치외교사논총』 34, 한국정치외교사학회, 2013.

7. 홍석률, 「4월혁명의 다양성」, 『지식의 지평』 28, 대우재단, 2020.

8. 서중석, 『이승만과 제1공화국』, 역사비평사, 2007.

김영현, "3.15부정선거 - 마산에서 시작된 혁명의 불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2016년 01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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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새로운 남북관계, 남북연락사무소 재개에서 시작될 것"

국회 한반도평화포럼 주관 토론회...'최선은 서울·평양 대표부'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0.11.23 14:55
  •  
  •  수정 2020.11.23 1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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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통일부장관은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남북연락·협의가구 발전적 재개방안 국회토론회' 축사를 통해 '새로운 남북관계의변화는 바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통신재개로부터 시작될 것'이라며, 남북연락사무소 재개에 대한 희망을 밝혔다. [사진제공-이용선 국회의원실]
이인영 통일부장관은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남북연락·협의가구 발전적 재개방안 국회토론회' 축사를 통해 '새로운 남북관계의변화는 바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통신재개로부터 시작될 것'이라며, 남북연락사무소 재개에 대한 희망을 밝혔다. [사진제공-이용선 국회의원실]

"새로운 남북관계의 변화는 바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통신 재개로부터 시작될 것"

이인영 통일부장관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남북연락·협의기구 발전적 재개방안 국회토론회' 축사를 통해 "남북의 상시적 연락선의 복구는 '평화의 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남북연락사무소 재개에 대한 희망을 밝혔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서울·평양 대표부를 비롯해 개성, 신의주, 나진, 선봉 지역에 연락소와 무역대표부 설치도 소망"한다며, "남북관계에 있어 더욱 지속가능하고 국민이 공감하며, 북측도 호응할 수 있는 해답을 찾는 것이 우리 앞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앞으로도 북측과 합의한 ‘한반도 평화의 약속’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지켜나가겠다. 우리가 먼저 약속을 지켜 북도 반드시 약속과 협력의 장으로 나오는 길을 먼저 열어내겠다"고 강조했다.

권택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신안보실장은 발제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평양·서울 상주대표부 설치를 목표로 하되, 우선 판문점선언의 상징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재개 및 기능회복을 당면목표로 삼아 성사에 주력"해야하며, "남북관계가 정체된 국면에서 연락사무소만 재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으므로 먼저 전반적인 남북관계 개선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공식적 연락기능의 복원·발전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접근"할 것을 제안했다.

기존 연락사무소 기능을 대폭 확대해 서울과 평양에 상주대표부를 신설하는 방안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상주대표부의 기본방향과 구성·운영 세부사항에 대한 합의, 신임장 제정 및 운영까지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는 점이 현실적 제약으로 지적되었다.

토론자로 나선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부총장도 현재 남북간 모든 통신선이 두절된 상황이기 때문에 우선 연락기능 재가동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도 "앞으로 협의기구를 다시 재가동시킨다면 개성 공동연락사무소가 아니라 한차례 격상된 서울과 평양의 상주대표부 형식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공동연락사무소가 남북 정상간 합의사항이었으므로 이의 재개 역시 남북 정상이 합의해야 한다"며, 미국 바이든 정부 출범이후 내년 중 4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 정상간 합의를 넘어 남북기본협정을 추진하고 1순위로 상주대표부 설치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의 경우,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상의 핵심조항으로 각기 수도에 상주대표부 설치를 명문화했다고 한다.

권 실장과 양 부총장 모두 서울·평양 상주대표부를 최선의 모델로 생각했지만 단계적인 접근이 불가피할 경우, 개성공단 내 재가동, 판문점 또는 비무장지대(DMZ) 내 설치 방안 등에 대해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제공-이용선 국회의원실]
토론회에서는 기존 남북연락사무소 기능을 대폭 확대해 서울과 평양에 상주대표부를 신설하는 방안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남북관계 전반적 환경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사진제공-이용선 국회의원실]

강영식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회장은 "남북간 연락·협의기구는 개성연락사무소와 같이 당국간 공식통로를 기본으로 하지만 민간단체와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 다양한 교류협력 주체들의 연락채널과 분야별 협력기구 운영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며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을 통한 '남북교류협력재단(혹은 공단)', '남북경협공사' 등 민관협력의 공적 기관 설립 필요성을 제기했다.

또 단기적으로 이뤄질 코로나19 방역·진단·치료에 대한 전반적 지원협력은 그에 그치지 않고 '한반도 감염병 관리기구' 공동 설립으로 발전시켜 남북 보건의료 협력의 제도화를 추진하는 등의 발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식량과 영양안보, 사회개발, 재해 및 기후변화 등 남북이 협력해야 할 주요영역별 남북 공동협력기구를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안정적인 경제협력 추진 위해 북측의 단일화된 '민경련' 창구와 대응할 수 있는 남측 기구를 개성 또는 중국 단둥 등에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자체와 민간단체의 연락사무소 기능은 남북 당국간 연락사무소의 별도, 또는 독립적인 파트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교류협력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는 제3국 현지에 별도의 사무소를 설치,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수득 코트라 경제통상협력본부장은 과거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와 먼저 양국간 무역사무소를 상호개설하고 수교로 이어진 프로세스를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유엔 대북제재 해제 이전에는 연락·협의기구 운영이 불가피하게 인도주의적 지원업무를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국제적 여건이 성숙되는데 북측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프라구축 지원 등으로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구체적으로는 북측 주민을 대상으로 창업과 경영에 필요한 브랜딩 전략, 마케팅 전략, 회계 등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육성교육, 해외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 FDI) 관련 국제기준의 회계, 법률, 협상 등 외자유치 전문가 양성교육 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과거 북한과 미국의 평화 기류가 연출됐던 상황을 살펴보면 그 기저에는 우리 정부의 끊임없는 설득과정이 있었다”며 “현 시점에서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북한에 출구를 마련해 주고 대화의 장으로 이끈다면 남북관계의 개선뿐 아니라 북미 관계의 진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까지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연락협의기구의 발전적 재개를 위한 길에 정부와 21대 국회의원 모두가 발벗고 나서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을 좌장으로 진행됐으며, 박진원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무처장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634일에 대한 보고를, 전 동독주재 서독 상주대표부 에카르트 슈렘(Eckart Schlemm)국장이 동서독 상주대표부의 설치·운영 경험을 영상으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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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물류법 ‘택배지옥’ 멈출까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11/24 08:57
  • 수정일
    2020/11/24 08:5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택배기사 보호 대책 첫걸음, 택배·배달대행 등 생활물류 서비스 제도화·육성 지원

홍민철 기자 plusjr0512@vop.co.kr
발행 2020-11-23 17:11:28
수정 2020-11-23 17: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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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에서 롯데택배 비노조원을 비롯한 택배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에서 롯데택배 비노조원을 비롯한 택배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뉴시스  
 
국회가 ‘택배법’을 논의 중이다. 20대 국회에서 야당 반대로 끝내 무산됐던 법안에 다시 시동이 걸렸다. 여당은 ‘이번엔 반드시 처리한다’고 벼르고 있다. 지난 국회에서 법이 통과됐다면, ‘택배지옥’에서 고통받던 13명의 택배기사님 목숨을 구했을 지 모른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택배법’,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안을 살펴봤다.

비정상 택배비 정상화
표준계약서, 계약갱신권 등
‘최소한의 안전판’ 될 듯

생활물류법은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렸던 택배기사들에게 ‘최소한의 안전판’ 구실을 하게 된다. 대형 택배사와 쇼핑몰, 대리점에 치여 ‘갑·을·병도 아닌 정’ 취급받았던 택배노동자들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다.

택배 요금 정상화가 명문화 된다. 택배사들이 경쟁적으로 벌이는 출혈경쟁, 이를 약삭빠르게 이용한 대형 쇼핑몰들의 ‘백마진(고객이 계산한 택배비 중 일부를 판매자가 돌려받는 일)’ 관행 등으로 택배 배송비가 점점 낮아지는 비정상을 개선한다.

택배 단가는 꾸준히 내려왔다. 소비자들은 부담을 덜었으나, 전국민이 덜어낸 부담은 고스란히 택배기사에 전가됐다. 2012년 2,506원이었던 평균 택배비는 지난해엔 2,229원이 됐다. 택배기사 입장에선 8년간 소득이 10%가량 줄어든 셈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택배기사는 장시간 노동에 자신을 내던졌다. 참고로, 일본 야마토택배의 최소 배송기준 단가는 9,300원(930엔), 한국의 5배에 육박한다.

 

생활물류법 43조는 ‘택배 요금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당하게 화주, 다른 사업자에게 되돌려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이른바 ‘백마진’을 금지해 소비자가 낸 택배비가 택배기사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대리점별로 천차만별인 ‘계약 조건’도 표준화된다. 대리점은 배달 박스 한개 당 수수료를 떼서 수익을 올린다. 수수료는 대리점별로 다르다. 박스당 5%를 떼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이보다 6배가 많은 박스당 30%를 수수료로 챙기는 곳도 있다. 생활물류법은 수수료를 표준화하도록 한다. 대리점이 택배기사와 계약을 맺을 때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하도록 하는 ‘표준계약서’를 마련토록 했다. 표준계약서만 확립돼도 택배기사들은 수수료 폭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리점 소장에게 밉보이면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 상시적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노조에 가입했다’거나 ‘소장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택배기사는 일터에서 쫓겨난다. 생활물류법은 ‘최초 계약일로부터 6년간 계약갱신 청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근무 태만 등 택배기사들의 명백한 귀책 사유가 없다면 최소 6년의 일자리가 안정적으로 보장된다.

6년 뒤에도 ‘택배기사 지위 보호 등을 고려하여 계약 갱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대리점이 마음대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계약을 해지 하려면 ‘위반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위반 사유를 적어 2차례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부당한 계약 해지를 방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택배 노동자들은 생활물류법을 ‘과로사 방지법’이라고 규정한다. 택배기사를 장시간 노동으로 내모는 ‘분류작업’이 택배기사 몫이 아니라는 점을 명문화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생활물류법은 택배노동자를 ‘택배서비스종사자’로 명명했다. 택배서비스종사자란 ‘계약을 통해 화물의 집화, 배송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택배기사는 생산자에게 물건을 가져와(집화) 주문한 소비자에게 전달(배송)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지 이를 ‘분류’하는 것은 택배기사 몫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만, 문구에 ‘’이 들어가 있어 해석이 갈린다. 택배사는 ‘등’ 안에 분류도 들어 있다고 주장하고, 택배기사는 분류업무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다. 택배노조측은 법안 최종 문구에 이 ‘등’을 빼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생활물류법 내용 정리
생활물류법 내용 정리ⓒ민중의소리

더 큰 목적은 생활물류서비스 자체
제도화·육성 지원책

생활물류법은 전통물류와 대비되는 생활물류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자는 의지를 담았다.

그간 물류는 전통적 화물운송, 기업이 생산에 필요한 원료나 부품 등을 다른 생산 기업으로부터 배송받는 산업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현대제철이 철판을 생산해 현대자동차에 배송하거나, 삼표시멘트가 현대건설에 시멘트를 가져다주는 일이 그간 정부 당국이 ‘물류’를 바라보는 전통적 시각이었다.

최근엔 기업이 개인에 보내는 화물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에 따르면 10년 전, 국민 한명이 1년간 이용하는 택배는 25 박스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53.8박스로 2배가 넘게 늘었다. 올해는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60회를 상회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택배 물량만 30억개를 넘어설 전망이다. 배달대행시장은 택배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있다. 최근 3년 동안 ‘배달의 민족’ 같은 배달 시장은 4배로 커졌고 전문가들은 올해 거래액이 12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택배와 배달업을 규율하는 법안은 전무한 실정이다. 얼마 전, 국토교통부는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대책’을 발표한 바 있는데, 대책 대부분은 ‘법안 개정을 통해 시급히 달성하겠다’는 선언적 구호였다. ‘관련 법이 없으니 이제 만들겠다’는 뜻이다. 대책에 포함된 실질적 방안은 주무부처 명령이나 사업자에게 내리는 주의 조치가 아닌 택배사 선의를 권유하거나 요청하는 것에 가까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1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선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 재정 공청회가 열렸는데, 위원과 국토교통부 관계자와의 대화 내용이 상징적이다.

“국토교통부 교통물류실장 나와보세요”
교통물류실장 답변대로 이동.
“택배기사 관련 주무 부처가 국토부 맞지요?”

“예”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해 국토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있습니까?”
“현재 제도상으로는 한계가 많이…”
“아무런 권한이 없죠?”
“…(고개 숙이며 끄덕)”
“법이 있어야 정부가 일할 것 아닙니까”

생활물류법의 정식 명칭이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인 이유는 그간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던 생활물류를 제도권 내로 흡수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플레이어인 택배사와 대리점, 택배기사, 배달원, 플랫폼업체에 더해 정부와 자치단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법안은 산업 실태를 조사하고 통계를 작성해 정부나 자치단체가 생활물류업에 대한 정책 수립 시 참고 할 수 있도록 했다. 업계가 부족을 호소하는 물류센터 등을 신설할 때 각종 보조금과 시설 부지 등을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 관계자는 “매년 증가하는 인프라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부지확보 등을 노력하고 있지만 비용과 인허가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생활물류법이 제정되면 어려움이 일정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택배사에 과도한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택배서비스를 일반 물류업 중 하나가 아닌 ‘준 기간산업’으로 봐야한다는 견해도 있다. 하헌구 인하대학교 물류전문대학원 교수는 “생활물류는 국민 삶에 꼭 필요한 필수서비스기 되고 있다. 인프라 구축과 제도 개선, 통계 작성 등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법률로 뒷받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존 산업과 역차별 논란이 있다. 택배와 같은 1톤 트럭으로 영업하는 화물운송사업자들에겐 택배업 확산이 곧 일자리 축소다. 기존 화물에서 택배로 넘어가는 소비자나 기업이 가뜩이나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생활물류법이 이를 부추긴다고 보는 것이다. 정부 규제를 통해 화물운송 ‘번호판’ 수급 규제를 받고 있는데 반해 택배업만 따로 떼어내 새로운 제도의 틀에 담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논란이다. 이른바 ‘번호판’의 가격하락 우려도 크다.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관계자는 “생활물류와 일반물류를 구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법을 따로 만들기보다는 기존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틀 내에서 제도를 설계하는 편이 갈등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생활물류법이 근로기준법이나 공정거래법, 하도급법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생활물류법에서 규정하는 ‘종사자의 권익증진’이나 ‘휴식시간·휴게시설 설치’ 등의 일부 항목이 관련법과 상충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다.

현행법상 택배기사가 자영업자(특수고용직노동자)라는 태생적 불합리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택배기사들만 관련법을 만들어 보호하면 나머지 특고 노동자와의 법적 균형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부에선 택배기사를 자영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으로 택배기사 문제를 해결하자는 원론적 주장도 제기된다.

진경호 전국택배연대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생활물류법 제정으로 택배노동자 문제가 일거에 해소되지 않는 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러 측면에서 근본적 해법으로는 부족한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법과 제도’가 없는 지금 상황에서 발생하는 택배노동자들의 피해는 너무 심각한 상황이라 법 재정이 개선의 첫 걸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원문 보기]

분류작업을 진행 중인 택배노동자
분류작업을 진행 중인 택배노동자ⓒ민중의소리  
 

홍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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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여야 모두 여성이 1위, 박영선·나경원 각각 ‘선두’

입력 : 2020.11.23 10:27 수정 : 2020.11.23 10:44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 여야 모두 여성 후보가 1위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가 23일 나왔다. 여권에서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야권에서는 나경원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각각 1위에 오르면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CBS 의뢰로 지난 20~21일 서울시 10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 조사 결과를 보면 박영선 장관은 18.3%.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17.9%였다. 이어 박주민 민주당 의원(10.8%), 우상호 민주당 의원(6.3%), 금태섭 전 의원(6.1%), 조은희 서초구청장(6.1%),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5.9%) 순이었다. 이혜훈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의원 3.8%,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1.0%를 각각 기록했다. ‘기타 다른 후보’는 7.9%, ‘적합한 후보가 없다’ 응답은 9.2%였다.

여권 후보들만 조사한 결과 박 장관은 23.6%를 기록해 1위에 올랐고, 박주민 의원(14.0%)이 뒤를 이었다. 우상호 의원은 9.0%, 전현희 위원장은 2.9%였다. 다만 ‘적합한 후보가 없다’는 응답은 35.6%였다.

야권 후보들만 조사한 결과 나 전 원내대표가 20.2%로 1위에 올랐고, 조은희 구청장이 11.4%로 뒤를 이었다. 금태섭 전 의원은 9.5%, 이혜훈 전 의원 7.9%, 윤희숙 의원 7.6% 순이다. ‘적합한 후보다 없다’는 응답은 27.3%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 ±3.1%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 나경원 전 원내대표. 연합뉴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 나경원 전 원내대표. 연합뉴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1231027001&code=910402#csidxc31c5917536bed7be4e4faa0eaccff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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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분노, 벌써 거두셨나요? 디지털성범죄 아카이브 엽니다

등록 :2020-11-23 04:59수정 :2020-11-23 09:56

 

[n번방 보도 1년]

<한겨레21> 디지털성범죄 아카이브 오픈

오연서 기자가 피해자 고통 지켜본 1년
박사방과 n(엔)번방 등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세계(<한겨레> 2019년 11월25일치)를 들춰낸 지 1년, 〈한겨레21〉은 11월23일 그동안 밝혀진 디지털성범죄 세계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기록을 저장할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 아카이브(stopn.hani.co.kr)를 연다. ‘n개의 범죄’(가해자 조직도), ‘n번의 오판’(디지털성범죄 판결문 분석), ‘n명의 추적’(연대의 역사), ‘n번방 너머n’(성교육 자료), 그리고 기록(기사 모음)을 담았다. ‘가해자의 n’이 ‘연대의 n’으로 바뀌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10월22일 1심 구형을 앞두고 법정에 선 ‘박사’ 조주빈은 말했다. “악인의 삶에 마침표를 찍겠다.” 삭제 버튼 한 번 누르는 것으로 접속 기록까지 지울 수 있는 텔레그램 세계처럼 단번에 모든 걸 마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그 반대편, 조주빈 그리고 ‘박사방 사건’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피해자 곁에서 1년을 보냈다. 그들은 여전히 쉽게 마침표 찍을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다.2019년 11월 기획보도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에서 취재하고 기사 쓰며 처음 피해자들과 만났다. 기사를 보고 또 몇몇 피해자가 연락해왔다. 경찰 신고를 돕고, 텔레그램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같은 피해자 지원 단체를 소개했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저 옆에 있었다. ㄱ도 그런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다.조주빈이 법정에서 ‘마침표를 찍겠다’고 말하기 며칠 전 ㄱ한테서 전화가 왔다. 불안을 담은 의문을 쏟아냈다. “왜 조주빈에게 사형을 구형할 수 없는 건가요? 만약 모범수로 풀려나면 어떻게 하죠?” ㄱ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잇는다. “아직 신고도 못 하고, 엄벌 탄원서를 내는 것도 무서워하는 피해자가 많다고 들었어요. 당연해요. 그래서 내가 먼저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 ㄱ은 어느덧 자기 고통을 쥐고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지니게 됐다. “많은 피해자가 아직 고통 속에 있다는 걸 세상이 모른 채로 사건이 끝나면 안 되니까요.”1년 전 취재를 시작했을 무렵 느꼈던 충격이 떠올랐다. 피해자와 통화한 그날 밤, 박사방에 그 피해자의 성착취물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걸 봤다. 피해자의 주소, 연락처 같은 개인정보가 수많은 가해자에게 공개됐다. 대화창을 넘기던 손가락이 멈췄다. 메스꺼움이 느껴지고 죄책감이 몰려왔다. 이것이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의 100분의 1이라도 될까. 기획보도가 나갔지만 ‘박사’가 잡히지 않았다. 쉽게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국외 공조가 잘 안되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디지털성범죄 수사가 잘 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 어렵게 가해자가 잡혀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무엇보다 ‘박사’는 그 어떤 가해자보다 악랄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혹시나 피해자들이 “인터뷰를 괜히 했다”고 후회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가해자는 여전히 활개 치고 있었다. <한겨레> 텔레그램 제보 계정으로는 “제 방도 소개해달라”는 또 다른 가해자의 메시지, 심지어 “대화 좀 하자”는 박사의 조롱 섞인 메시지가 왔다. <한겨레>가 텔레그램 성착취방을 홍보한 꼴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 고통스러웠다. 취재를 이어가면서 몇번이나 박사가 붙잡히는 꿈을 꿨다. 주변 권유로 심리상담을 받았다. “취재에서 빠져나오라”는 상담사의 말에 성착취방 모니터링을 멈췄다.기사를 쓴 지 넉 달이 지난 2020년 3월 박사가 붙잡혔다. 조주빈이란 이름의 24살 남성. 체포 소식을 듣고 피해자에게 전화했다. ㄱ의 반응은 의외였다. “‘차라리 잡히지 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ㄱ은 조주빈을 다룬 뉴스를 볼 때마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뛴다고 했다. 다시 그때 일이 떠오르기 때문이다.다시 시간은 흘렀다. 조주빈을 붙잡고 세상은 조금씩 변했다. 성범죄자로는 처음으로 수사 단계에서 조주빈을 비롯한 6명의 신상이 공개됐다. 디지털성범죄의 법정형을 높이는 내용을 담은 ‘n번방 방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런 소식을 피해자들한테 알리며 “모두 용기 있게 나서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여전히 소셜미디어에서 재유포되는 성착취물을 일일이 직접 삭제하러 다니고 있었다. 삭제 속도가 유포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지난여름 또 다른 피해자 ㄴ과 저녁을 먹었다. 헤어지자마자 ㄴ은 대뜸 “내가 없어도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ㄴ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 잘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절망스러워 같이 엉엉 울었다. ㄴ은 자해했다가 “다시 잘 살겠다”고 다짐하는 일을 반복했다. 영원히 이 끔찍했던 시간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듯한 불안, 조주빈이 혹시 사회로 나와 자신을 해할 수 있다는 공포가 그를 괴롭혔다. ㄴ에게는 경제적 문제도 있었다. 박사방에 주소가 공개되고, 오프라인 협박 위협까지 당한 피해자들에게 가장 긴급한 지원은 안전한 집이었지만 ㄴ에게는 집을 구할 보증금이 없었다. ㄴ은 고시원과 친구 집을 전전했다.피해자들은 여전히 이 사건을 ‘특별하고 엽기적인 괴담’ 정도로 생각하는 시선으로부터도 상처받는다. 피해자 직업을 앞세운 언론 보도, 피해자 나이나 자극적인 범죄 사실을 구체적으로 늘어놓은 기사나 소셜미디어 글을 보며 피해자들은 “마치 또 다른 조주빈들이 옥죄는 것 같다”고 했다.마치는 일은 조주빈의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가해자에 대한 무거운 처벌이 있어야 하고, 피해자가 두려움 없이 피해를 말하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세상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 나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지난 1년. 피해자는 삶의 의지를 놓기 직전까지 갔다가, 열심히 살겠다는 의지를 다지다가, 사람을 극도로 경계하다가 또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지 않았는가.이 글을 읽는 피해자들이 지금 당장 힘듦으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든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고, 절망스러운 오늘과 다른 내일이 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피해자의 고통이 멎고 마치는 순간 비로소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끝날 수 있다. 우리의 분노와 연대는 그때까지 식지 않아야 한다.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 아카이브 엽니다
한겨레의 연대 프로젝트… 누리집 주소 stopn.hani.co.kr2019년 7월 20대 대학생 추적단 불꽃은 ‘n번방 자료’가 유통되는 숱한 텔레그램 방을 발견합니다. 2019년 11월25일 <한겨레>는 ‘디지털 성착취’라는 단어를 1면(기획보도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에 싣습니다.1년이 흘렀습니다. ‘박사’ 조주빈은 붙잡혀 1심 선고(11월26일)를 앞두고 있습니다. ‘성착취물’은 이제 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쓰는 단어입니다. 성 풍속이 아니라 피해자를 중심에 두고 성착취물을 다루기 시작합니다.<한겨레21>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너머n)은 발견과 공분 이후에도 멈출 수 없는 질문을 이어가고 그 흔적을 쌓아두는 취재 프로젝트입니다. 알고도 모르는 체 묵혀온 우리 주변의 ‘지옥’은 여전히 너무 깊지만, 그래도 많은 연대자와 함께 “끝장내겠다”고 다짐합니다. 고민하고, 성찰하고, 무엇보다 피해자 편에서 연대하면 끝이 오리라 믿습니다.텔레그램 성착취 기획보도 1년을 맞아 너머n은 두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먼저 지난 1년간 밝혀진 디지털성범죄 세계를 정리하고, 앞으로 기록을 꾸준히 저장할 아카이브(stopn.hani.co.kr)를 엽니다. ‘n개의 범죄’(가해자와 조직적인 범죄 내용), ‘n번의 오판’(디지털성범죄 판결문 분석), ‘n명의 추적’(연대의 역사), ‘n번방 너머n’(성교육 자료와 만화), 그리고 기록(디지털성범죄 기사 모음)을 담았습니다. ‘가해자의 n’이 ‘연대의 n’으로 변해온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11월27일 펴내는 <한겨레21> 1340호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일궈온 성과와 성찰,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고민으로만 채웁니다. 피해자는 가해자와 연대자에게 편지를 적습니다. 연대해온 여성들은 서로가 서로를 인터뷰합니다. ‘박사’ 조주빈 추적기, 디지털성범죄 바탕에 있는 남성 문화, 기술과 플랫폼 문제까지. 지금, 2020년 11월,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디지털성범죄의 모든 것을 담습니다.디지털성범죄의 끝장을 바라는 연대자들의 메시지를 받습니다. <한겨레> 트위터에 멘션을 보내거나 페이스북에 댓글을 달면 됩니다. 응원 메시지는 <한겨레21> 1340호에 싣습니다.방준호 <한겨레21> 기자 whoru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women/971023.html?_fr=mt1#csidx82932cd58c49bafb39290e006dff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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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개벽예감 420]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11/23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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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전쟁관념 바꿔놓은 포격전

2. 서서남방 4.8km 해상은 어느 쪽이 관할하는가?

3. 전파교란으로 시작된 선제타격

4. 경고사격 120발, 응징사격 240발

5. 155mm 자주포와 85mm 고사포가 충돌한 격전

6. 국지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위험

 

 

1. 전쟁관념 바꿔놓은 포격전

 

오늘 2020년 11월 23일은 연평도 포격전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연평도 포격전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사상 처음으로 조선인민군이 한국군 전투부대에 선제화력타격을 가한 사건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일어났던 연평도 포격전을 다시 고찰하는 까닭은, 그 포격전 경험에서 한국군의 전투준비태세와 조선인민군의 전투준비태세가 각각 어떠한지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나타난 작전적 우월성과 결함을 분석한 조선인민군은 지난 10년 동안 작전적 우월성을 발전시키고, 작전적 결함을 극복하면서 전투준비태세를 강화해왔다. 그리하여 202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야간열병식에서 과시한 것처럼, 오늘 조선인민군의 전투준비태세는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그에 비해, 연평도 포격전에서 교훈을 찾지 못한 한국군은 지난 10년 동안 전투준비태세를 그닥 강화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연평도 포격전에서 한국군이 사용했던 K-9 자주포가 지난 10년 동안 각종 크고 적은 사고를 일으켰고, 결국 인명손실참사까지 불러왔다. 2015년 8월 13일 한국국방과학연구소가 안흥시험장에서 K-9 자주포 시험발사를 진행하는 중에 K-9 자주포 폐쇄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불기둥이 10m 상공으로 치솟는 화재가 발생했다. 그러나 한국국방과학연구소는 사고원인을 부실하게 조사하고, 사고 자체를 은폐하고 넘어갔다. 부실조사는 2년 뒤 참사를 불러왔다. 2017년 8월 18일 강원도 철원군 사격장에서 실탄사격훈련을 하던 K-9 자주포 포탑에서 폭발이 일어나 자주포에 탑승한 포병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폭발사고로 K-9 자주포 실탄사격훈련이 전면 중지되었는데, 폭발사고 이후 다섯 달이 지난 2018년 1월 18일 실탄사격훈련을 재개하기에 앞서 시험사격을 해보았으나 약실에서 화약이 타고 남은 찌꺼기가 발견되는 바람에 시험사격을 중지했다.

 

연평도 포격전이 가르쳐주는 또 다른 교훈은, 평소에 전투준비태세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군대는 실전에서 패배하는 반면, 전투준비태세를 잘 갖춘 군대는 실전에서 승리한다는 것이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나타난 남측과 북측의 대비적인 결과가 그런 사실을 입증해주었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남측은 매우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북측은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남측이 입은 인명피해는 군인 사망자 2명, 군인 중경상자 16명, 민간인 사망자 2명, 민간인 중경상자 44명이었다. 또한 남측 민간부문이 입은 물적 피해를 보면, 주택 159동과 시설 31동이 파손되었고, 주민거주지역 하수도시설 1,150m가 파손되었고, 연평도 전체 임야의 4.5%에 이르는 25ha가 불탔다. 연평부대도 엄청난 물적 피해를 입었지만, 국방부는 군사장비 및 군사시설 피해상황을 공개하지 않았다. 

 

북측도 피해상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상업위성사진을 분석하면 인명피해는 없었고, 경미한 물적 피해만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논한다. 

 

조선외무성은 연평도 포격전 다음 날인 2010년 11월 24일 대변인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 며칠 전부터 북측은 남측에 “우리측 령해에 한 발의 포탄이라도 떨어지는 경우 즉시 대응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하였”으며, 연평도 포격전 당일 오전 8시에는 “예민한 지점인 연평도 일대에서 포사격계획을 중지할 것을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하는 전화통지문을 보내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군 수뇌부는 상황을 오판했다. 2010년 12월 29일 <프레시안>에 실린 대담기사에 따르면, 한민구 당시 한국군 합참의장은 연평도 포격전 당일 오전 9시에 연평부대 부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있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명령하고, 실탄사격훈련을 예정대로 강행했다고 한다. 무력충돌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한국군 합참의장은 연평부대에 대비명령을 내린 것인데, 그의 대비명령은 연평부대가 보유한 K-9 자주포 6문 가운데서 4문만 실탄사격훈련에 동원하고, 나머지 2문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사격준비태세를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사격준비태세를 취하고 있던 K-9 자주포 2문은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의 선제타격을 받고 무용지물로 되었다. <사진 1> 

 

▲ <사진 1> 2010년 11월 23일에 일어난 연평도 포격전은 한국군 연평부대가 실탄사격훈련을 강행하고 그에 대응한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선제타격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위의 사진은 집중포격을 당해 불타는 연평도의 모습이다.  


 

2. 서서남방 4.8km 해상은 어느 쪽이 관할하는가?

 

오전 10시 연평부대는 합참의장의 명령에 따라 실탄사격훈련을 시작했다. K-9 155mm 자주포가 등장했다. 이 포는 사거리가 약 45km에 이르는 곡사포다. 2010년 11월 26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K-9 자주포의 탄착구역은 연평도 서서남방 4.8km 해상이었다고 한다. 서서남방은 정서쪽에서 약간 남쪽으로 휘어진 방위를 뜻하므로, 연평도 서쪽 4.8km 해상에 탄착구역이 정해진 셈이다. 탄착구역으로 정해진 해상은 남측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해역으로 주장하는 곳이지만, 북측은 1953년 정전 직후 미국군사령관이 북측과 합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북방한계선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전협정 제2조 13항에 따르면, 북측 관할구역은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경계선 북쪽과 서쪽에서 정전 당시 미국군이 점령하고 있었던 백령도와 연평도를 비롯한 5개 섬을 제외한 나머지 섬들과 주변 해역이다. 그러므로 이 조항에 따르면, 연평도 주변해역은 전부 북측 관할구역에 속한다. 북측은 정전협정에 따라 자기의 관할구역을 표시하는 해상군사분계선을 그어놓았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한국군이 탄착구역으로 정한 연평도 서쪽 4.8km 해상은 북측 해상군사분계선 안쪽에 위치하는 것이며, 연평부대는 북측이 그어놓은 해상군사분계선 안쪽으로 K-9 자주포를 사격했던 것이다.  

 

정전협정이 뭔지 모르고, 북측 해상군사분계선도 뭔지 모르는 연평부대 부대장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사격명령을 내렸다. 2010년 12월 29일 <프레시안>에 실린 대담기사에 따르면, 연평부대 포병들이 쏜 155mm 포탄들이 탄착구역에 떨어져 바닷물이 튀는 것이 (북측에서도) 보일 정도로 근접사격을 했다고 한다. 북은 격노했다.  

 

포격전이 끝난 직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우리 군대는 빈말을 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긴급보도문을 발표했다. 보도문에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우리측 령해에 쏘아댄 괴뢰들의 포탄은 무려 수십발에 달한다”고 지적하면서 “조선서해에는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만이 존재할 것”이라고 언명했다. 

 

만일 한국군 수뇌부가 북측에서 관측할 수 없는 연평도 남쪽 해상에 탄착구역을 정하고, 그곳으로 K-9 자주포를 쏘라고 명령했더라면, 연평도 포격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을 오판한 한국군 수뇌부는 북측에서 육안으로 뻔히 보이는 연평도 서쪽 해상으로 사격해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안이하게 판단했다. 한국군 수뇌부의 오판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2012년 12월 14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정보참모부는 연평도 포격전이 시작되기 3시간 전인 당일 오전 11시 30분 “접적해역 일대에 화력도발가능성”이 있다고 하면서 “북의 탄약차량 움직임을 포착했고, 레이더와 필수통신망이 활동하고 있으며 지휘관이 현장에서 지휘하고 있다”는 정황을 보고했지만, 한국군 수뇌부는 그것을 통상적인 활동으로 여기고 무시해버렸다고 한다. 한국군 수뇌부는 선제타격징후에 관한 긴급보고를 받고서도, 그 징후를 통상적인 군사활동으로 오판했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군 수뇌부가 저지른 두 가지 상황오판은 한국군의 전투준비태세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군 수뇌부가 연평도 포격전 이후 10년이 지난 오늘에도 상황오판을 계속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대규모 한미연합군사훈련을 하지 못해 안달하던 한국군 수뇌부는 2021년 1월 20일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을 좋은 기회로 여기고 엄청나게 큰 규모의 한미연합군사훈련을 2021년 3월 초에 강행할 것이 분명하다. 남북대화와 조미대화가 모두 끊어지고, 정치군사대결이 고조되고 있는 시기에 상황을 오판한 한국군 수뇌부가 북을 극도로 자극하는 대규모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하면 연평도 포격전보다 더 큰 무력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런 무력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면, 조선인민군은 주저 없이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할 것으로 예견된다.  

 

연평도 포격전이 일어나기 이전 남측에는 한국군이 보유한 미국산 무기가 질적으로 매우 우수하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한국군이 이길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었다. 하지만 연평도 포격전은 그런 전쟁관념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깨우쳐주었다. <사진 2> 

 

▲ <사진 2> 연평도 포격전 당일 연평부대 포병들은 K-9 155mm 자주포 4문을 동원한실탄사격훈련을 하고 있었다. 북측에서 자기들의 관할수역으로 낙탄할 것을 우려한나머지 여러 차례 실탄사격훈련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고, 포격전 당일 오전에도 경고했지만, 한국군 수뇌부는 북의 경고를 무시하고 실탄사격훈련을 강행했다. 위의사진은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사격한 122mm 방사포탄에 맞은 연평부대 군사시설이 불타고 있는 장면이다. K-9 자주포로 실탄사격훈련을 하던 포병들은 선제타격을 받고 당황망조하여 방호시설 안으로 긴급대피했다. 그러는 사이에 포탄을 계속날아왔고, 불은 더 크게 번졌다. 이 사진은 연평부대 소속 정훈장교가 실탄사격훈련모습을 기록에 남기려고 사진촬영을 하는 중에 갑자기 포탄이 날아온 순간을 촬영한것이다.  


 

3. 전파교란으로 시작된 선제타격 

 

2010년 11월 23일 연평부대 실탄사격훈련은 당일 오후 2시 45분에 끝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연평부대 포사격훈련이 끝나는 시각을 21분 앞둔 오후 2시 24분 전혀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연평도 전역에 설치된 방범용 폐쇄회로화면(CCTV)이 갑자기 꺼진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전역에 있는 무선통신기지국들이 갑자기 마비되었다고 한다. 방범용 폐쇄회로화면이 꺼지고, 무선통신기지국이 마비된 것은, 조선인민군이 연평도에 강력한 교란전파를 발사한 것으로 하여 일어난 전파교란전 현상이었다. 

 

조선인민군이 불시에 발사한 강력한 교란전파는 연평부대의 ‘시신경’도 마비시켰다. 2010년 11월 26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부대는 포격전 당일 오전 9시부터 대포병레이더 AN/TPQ-37을 가동했는데, 정작 포격전이 일어났을 때 북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전혀 탐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2010년 12월 3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 직전 황해남도 해안에 배치된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가 교란전파를 발사하여 연평부대의 대포병레이더가 ‘먹통’으로 되었다고 한다. 물론 대포병레이더만이 아니라 연평부대의 무선통신장비들도 ‘먹통’으로 되었다. 전시에 전투부대의 눈(레이더)과 귀(무선통신)가 마비되면, 전쟁은 그것으로 끝난다. 

 

이런 놀라운 경험은, 조선인민군이 조국통일대전을 개시하는 경우 전파교란전부터 시작할 것임을 예고한다. 연평도 포격전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는 크고 무거운 전자교란장비를 차량에 탑재하고 황해남도 해안으로 이동하여 교란전파를 발사했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야간열병식에 참가한 전파교란부대의 모습을 보면, 앞으로는 전혀 다른 양상의 전파교란작전이 전개될 것임을 직감할 수 있다. 그날 야간열병식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 전문병들은 자동보총을 들고, 위장무늬전투복과 방탄조끼를 입었으며, 방탄모를 썼는데, 전문병 전원이 검은색 접시처럼 생긴 안테나가 부착된 특수야전배낭을 메고 있었다. 특수야전배낭에 휴대형 전파교란장비가 들어있는 것이 분명하다. 전시에 그들은 달빛 없는 무월광 심야시간에 한미연합군의 반항공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저고도습격기를 타고 남측 후방 곳곳에 침투하여 교전대상에 바짝 접근할 것이고, 침투지점에서 특수야전배낭에 들어있는 전파교란장비를 켜는 순간 한미연합군의 레이더, 무선통신장비, 위성항법체계는 마비될 것이다. <신동아> 2020년 1월호 분석기사에 실린, 한국군이 청와대에 보고한 2014년도 대외비문서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휴대형 전파교란장비를 무려 12종이나 실전배치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동시다발로 전파교란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중앙전파관리소 보고서를 인용한 2017년 9월 24일 <뉴스1>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이 일어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7년 동안 조선인민군은 전파교란작전연습을 네 차례 진행했는데, 남측의 무선통신기지국 2,229개소, 항공기 2,143대, 선박 980척이 전파교란을 당했다고 한다. 

 

최전방 9곳에 설치된 한국군 전파교란감시소들은 항상 북쪽만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저고도습격기를 타고 남하한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 전문병들이 남측 후방 곳곳에 침투하여 휴대형 전파교란장비를 사용하면, 최전방에 배치된 한국군 전파교란감시소들은 자기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후방에서 전파교란작전이 진행되는지 알지 못하고 북쪽만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최근 한국군 수뇌부는 삼성전자가 시판하는 지능전화 ‘갤럭시 S20’을 개조한 군사작전용 지능전화 180대를 2021년 상반기에 한국군 전투원들에 보급하여 작전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전투지휘체계를 구축하려고 한다. 한국군 수뇌부의 상황오판은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사진 3>

 

▲ <사진 3> 연평도 포격전 당시 연평부대는 조선인민군 포병들이 쏜 포탄을 추적할 수있는 대포병레이더 AN/TPQ-37을 보유하고 있었다. 연평도 포격전이 시작되기 직전연평부대는 자기들의 실탄사격훈련 중에 대포병레이더를 가동하고 있었다. 위의 사진은 미국군이 운용하는 대포병레이더 AN/TPQ-37을 촬영한 것이다. 그런데 포격전이 일어났을 때, 연평부대 대포병레이더는 북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전혀 탐지하지못했다. 왜냐하면,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가 강력한 교란전파를 발사하여 연평부대의 모든 전자장비들을 '먹통'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4. 경고사격 120발, 응징사격 240발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연평도 포격전 당일 오후 2시 34분부터 2시 55분까지 21분 동안 1차 사격을 계속했다. 그들은 황해남도 강령군 개머리해안에 있는 진지에서 방사포를 쐈다. 개머리해안에서 연평도까지 거리는 약 12km다. 연평도 포격전이 일어나기 약 1개월 전인 201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65주년 열병행진에 1990년식 122mm 40관 방사포가 등장했는데, 바로 그 방사포가 연평도 포격전에 동원되었다. 4축8륜 차량에 탑재된 이 방사포의 사거리는 20.4km다. 122mm 방사포탄 1발의 탄체중량은 66.3kg이고, 장약중량은 27kg다. 122mm 일반포탄의 장약중량은 3.6kg인데, 122mm 방사포탄의 장약중량은 그보다 8배나 더 무겁다. 이것은 방사포탄의 파괴력이 일반포탄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2010년 11월 26일 <연합뉴스> 보도기사에는 연평도 포격전에 참가한 한국군 연평부대 장병들의 상황진술이 실렸는데, 그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K-9 자주포 4문을 사격위치로부터 서서남방 4.8km 해상으로 쏘는 실탄사격훈련을 했는데, 1문당 15발씩 모두 60발을 쏘았다.  

2) 4번포가 마지막 포탄을 쏘려고 장전했는데, 불발탄이 포신에 끼어 빠지지 않아 당황한 사이에 북에서 포탄들이 날아왔다. 처음에는 포신에 끼어있는 불발탄이 터진 줄로 알았는데, 나중에 그것이 북에서 날아온 포탄인 것을 알았다.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1차 사격에서 몇 발을 쏘았을까?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북에서 포탄을 몇 발 쏘았는지 계산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밤새 분석하고 평가해 현재까지 판단하고 있는 것은 170발 정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2010년 11월 24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소방방재청은 상황보고에서 “북이 200여 발을 쐈다”고 밝혔고, 연평도 주민들의 체험담에 따르면, 포탄 200여 발이 “비오듯 쏟아졌다”고 한다. 포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위급한 순간에 낙탄수를 계산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200여 발이 쏟아졌다는 말은 대피소에 들어간 연평도 주민들이 밖에서 들리는 폭음을 듣고 대충 추산한 것이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조선인민군 방사포중대는 122mm 40관 방사포를 9문씩 보유하고 있었다. 조선인민군 기본전투단위는 중대이므로, 연평도 포격전에 1개 방사포중대가 참가한 것이 분명하다. 1개 방사포중대가 122mm 40관 방사포 9문을 모두 쏘았으므로, 대피소에 들어간 연평도 주민들은 300여 발의 폭음을 들었다고 말했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200여 발의 폭음을 들었다고 했으니, 약 100여 발의 폭음을 듣지 못한 것이다. 왜 폭음을 듣지 못한 것일까?

 

이 의문을 풀어줄 단서는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기사에 들어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연평도 앞바다에 포탄 90여 발이 떨어졌다고 한다. 포탄이 바다에 떨어지면 폭발하지 않기 때문에 폭음이 들리지 않는다.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쏜 122mm 방사포탄 90여 발이 연평도까지 오지 못하고 바다에 떨어진 것을 보고, 당시 남측 언론매체들은 122mm 방사포가 너무 낡아서 오발탄이 90여 발이나 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방사포가 아무리 낡았다고 해도 면적이 6.14㎢나 되는 연평도를 맞추지 못하고, 90여 발을 연속 오발하는 방사포는 있을 수 없다. 더욱이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연평도 포격전에서 사용한 방사포는 포격전이 일어나기 약 1개월 전 조선로동당 창건 65주년 열병행진에 등장한 1990년식 122mm 40관 방사포가 아닌가.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100여 발을 연평도로 쏘지 않고, 의도적으로 연평도 앞바다로 쏘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연평도를 타격하기 전에 앞바다에 120발을 낙탄하는 경고사격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연평부대에게 그런 경고사격이 통할 리 없었다. 연평부대는 실탄사격을 계속했다. 경고사격이 전혀 통하지 않자,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연평도를 향해 응징사격을 시작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122mm 40관 방사포 3문을 동원하여 연평도 앞바다로 120발을 쏘는 경고사격을 한 다음에, 나머지 방사포 6문을 동원하여 연평도로 240발을 쏘는 응징사격을 했던 것이다. 

 

2010년 10월 23일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제1탄은 연평부대 병사생활관에 떨어졌고, 곧이어 연평부대 사무실, 창고, 훈련장, 탄약고 주변 등에 떨어졌다고 한다. 방사포탄 200여 발을 맞은 한국군 연평부대는 오후 2시 49분에 K-9 자주포로 1차 대응사격을 했다. 선제타격을 받고 15분이 지나서 대응사격을 시작한 것이다. 원래 한국군 군사교범에는 선제타격을 받으면 4분 안에 즉각 대응사격을 하도록 규정되었다. K-9 자주포는 사격명령이 떨어지면, 30초 만에 제1탄을 쏠 수 있다. 하지만 방사포탄 200여 발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선제타격을 받은 상황에서는 군사교범의 사격규정이나 자주포의 사격성능 같은 것은 무의미했다. 

 

2010년 11월 26일 <연합뉴스> 보도기사에는 연평포 포격전에 참가한 한국군 연평부대 장병들의 상황진술이 들어있는데 그 진술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 뒤 약 5초 만에 굉음과 함께 파편과 돌이 튀었다. 포(K-9 자주포를 뜻함-옮긴이)에 파편이 부딪히는 소리가 비오듯 들렸고, 포 안에까지 돌덩이가 튀었다. 슝 소리와 함께 굉음이 귀를 울리더니 주변에 포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연기가 자욱하게 깔렸고, 땅을 뒤흔드는 진동이 느껴졌다.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고 모두가 경황이 없었다.”

2) 부대 안에 떨어진 포탄 중에서 1발은 1번포가 위치한 포대 안을 직격했고, 다른 1발은 3번포 포대외벽을 직격했다. 3번포에 붙은 불은 “간신히” 껐지만, 1번포는 화재가 너무 심해 사격하지 못했다.  

3) 피격으로 불이 나면서 K-9 자주포 사격통제장치가 고장이 나서, 하는 수 없이 수동식으로 사격해야 했다.  

4) K-9 자주포 뒤쪽에 놓아둔 잔여장약들에 불이 붙어 폭발하는 바람에 K-9 자주포 2문은 사용하지 못했다. <사진 4>

 

▲ <사진 4> 위쪽 사진은 한국군 연평부대가 보유한 K-9 155mm 자주포가 이동하는 모습이고, 아래쪽 사진은 평양에서 진행된 열병식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의122mm 40관 방사포가 행진하는 모습이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122mm 40관 방사포 3문을 동원하여 연평도 앞바다로 120발을 쏘는 경고사격을 한 다음에, 나머지 방사포 6문을 동원하여 연평도로 240발을 쏘는 응징사격을 했다.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의 교란전파발사로 대포병레이더가 마비되는 바람에방사포 사격원점을 전혀 파악할 수 없었던 한국군 연평부대는 미리 입력된 타격좌표에 따라 무도를 향해 K-9 자주포 3문을 쏘았다.  

 

 

5. 155mm 자주포와 85mm 고사포가 충돌한 격전 

 

2010년 11월 25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오후 2시 49분부터 시작된 1차 대응사격에서 연평부대는 타격좌표가 미리 입력된 무도를 향해 K-9 자주포를 쏘았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황해남도 강령군 개머리해안에서 방사포를 쏘았는데, 대포병레이더가 마비되는 바람에 방사포 사격원점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한국군 연평부대는 미리 입력된 타격좌표에 따라 무도를 향해 K-9 자주포를 쏜 것이다. 당시 연평부대가 무도를 향해 사격한 K-9 자주포는 3문이다. 연평부대는 K-9 자주포 6문 중에서 3문은 선제타격을 받고 무용지물로 된 것이다. 그들은 K-9 자주포 3문을 동원하여 무도를 향해 50여 발을 쏘았다. 2010년 12월 2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연평부대 포병들이 쏜 K-9 자주포 15발이 무도방어대 안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미리 갱도진지에 들어가 대기하고 있었으므로 인명피해가 전혀 없었다. 2010년 11월 26일 <KBS> 텔레비전방송 보도에 따르면, 당일 연평도에서 망원렌즈 촬영기로 무도방어대를 촬영했더니, “북측 해안포는 포신을 연평도 쪽으로 계속 열어놓고 있었고, 포신상태도 멀쩡한 상태였다. 동굴(갱도진지를 뜻함-옮긴이) 곳곳에 배치된 북측 포신들도 똑같이 멀쩡했다. 특히 해안포 근처로 북한군이 한가롭게 돌아다니거나 떼를 지어 어디론가 천천히 향하는 등 긴박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2010년 11월 26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K-9 자주포는 최대발사속도로 1분당 6발을 쏠 수 있지만, 최대발사속도로 계속 쏘면 포신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포탄이 포신 안에서 터질 수 있고, 뜨겁게 달아오른 포신에서 포탄을 쏘면 오발되기 때문에, 처음 6발을 쏜 다음에는 포신의 열을 식히기 위해 일정한 시차를 두고 지속발사속도로 쏘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속발사속도는 이론적으로 분당 2발이라고 하지만, 실전상황에서는 분당 1발밖에 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평부대 포병들은 K-9 자주포를 분당 1발씩 쏘았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연평부대 포병들이 K-9 자주포 50여 발을 사격하기까지 약 12분이 걸렸음을 알 수 있다. 

 

갱도진지에서 사격준비를 갖추고 대기 중이던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한국군 연평부대로부터 불의의 기습타격을 받았으나, 동요하지 않고 연평부대의 사격이 뜸해질 때를 기다리며 반격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연평부대 포병들의 사격은 오후 3시 5분경에 끝났다.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그로부터 5분이 지난 오후 3시 10분 반격에 나섰다. 이것을 2차 사격이라고 부른다. 

 

무도방어대에는 방사포가 없고 85mm 견인고사포만 있다. 사고도가 10.5km인 85mm 견인고사포는 공중으로 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지상목표를 향해 쏘는 곡사포로도 사용하는 2중용도의 포다. 곡사포로 사격할 때, 사거리는 15.65km다. 그러므로 무도방어대에 배치된 85mm 견인고사포는 황해남도 상공으로 내습하는 적기를 격추할 수도 하고, 연평도를 공격할 수도 있다. 85mm 견인고사포는 분당 12발씩 사격하는 매우 빠른 사격속도를 자랑한다.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평소에 타격좌표를 외우고 조준사격연습을 해왔으므로, 즉시 85mm 고사포를 갱도진지에서 끌어내 조준사격을 시작했다.  

 

그런데 연평도 포격전 당일 현장에는 초속 4.4m의 바람이 불었다. 그런 환경에서는 포병들이 탄도를 정확하게 계산해 포를 쏘더라도, 포탄이 비행하는 중에 측풍을 맞으면 풍향에 따른 오차가 발생하므로, 명중사격을 하기 힘들다. 그러나 무도방어대 포병들의 조준사격실력은 놀라웠다. 그들이 쏜 85mm 포탄은 마치 두 눈이 달린 것처럼 연평도 타격대상들에 명중했다. 2010년 11월 24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해안포부대(무도방어대)는 2차 사격에서 연평부대 레이더에 포를 쏘았다고 한다. 한국군 합참본부는 밝히지 않았으나, 연평부대 레이더는 무도방어대 포병들이 쏜 명중탄에 맞아 파괴되었다. 2010년 11월 26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해안포부대(무도방어대)가 쏜 포탄은 유류 20,000리터가 저장된 연평부대 유류저장시설과 연평부대 피복창고에 각각 명중했고, 이전에 헌병대가 쓰던 우체국, 이전에 군사시설로 사용되던 상점, 보건소 등에 각각 명중했다고 한다.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부대 유류저장시설이 폭발하여 산불로 번졌다고 한다. 산불로 연평도 숲의 70%가 불탔다.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오후 3시 10분부터 4시 42분까지 계속된 2차 사격에서 85mm 곡사포 80발을 조준사격하여 연평도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2010년 11월 30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무도방어대 포병들이 2차 사격에 사용한 포탄 1발의 장약중량은 700g인데, 장약에 알류미늄분말을 혼합하여 폭발력을 강화한 포탄이라고 한다. 또한 그들이 쏜 포탄은 표적에 충돌하여 폭발하는 직격탄이 아니라, 근접신관을 장착하고 타격대상 4~7m 앞에서 공중폭발하여 타격효과를 극대화하는 포탄이라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2년 8월 17일 무도방어대를 시찰하면서 연평도 포격전에서 명중탄을 날린 무도방어대에 영웅방어대 칭호를 수여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3년 9월 2일과 2017년 5월 4일에도 무도방어대를 시찰하면서 무도방어대 포병들의 전투준비태세에 만족을 표시했다. 

 

연평부대 포병들도 오후 3시 25분부터 K-9 자주포 사격을 재개했다. 이번에는 사격대상을 바꿔, 무도가 아니라 개머리해안을 향해 쏘았다. 연평부대 포병들은 개머리해안진지로 K-9 155mm 자주포를 쏘고,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연평부대로 85mm 고사포를 쏘는 치렬한 교전이 오후 3시 25분부터 3시 41분까지 계속되었다. 

 

2010년 12월 1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부대 포병들은 개머리해안에 있는 포진지를 향해 K-9 자주포 30발을 쏘았다고 한다.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조선인민군 해안포는 갱도진지에 들어있기 때문에 K-9 자주포로는 타격하기 어려워, 해안포 중대 막사를 타격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2010년 12월 2일 <한겨레> 보도와 2013년 11월 21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으로부터 사흘이 지난 11월 26일에 촬영된 상업위성사진에는 연평부대가 쏜 K-9 자주포 14발이 개머리해안 포진지를 맞추지 못하고 엉뚱하게 포진지 후방으로 90~100m 떨어진 논밭에 떨어진 낙탄흔적을 남겼다고 한다. 2010년 12월 2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상업위성사진을 자세히 판독하였더니, 개머리해안 포진지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K-9 자주포 6발의 낙탄흔적을 추가로 찾아냈다고 한다. 이처럼 어지럽게 흩어진 낙탄흔적은 연평부대 포병들이 개머리해안 포진지를 향해 K-9 자주포 20발을 쏘았으나, 1발도 타격대상을 맞추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무도방어대에서 그러한 것처럼, 개머리해안 포진지에서도 선제타격을 마치고 재빨리 갱도진지 안으로 대피했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없었고, 경미한 물적 피해만 발생했다. 

 

누가 봐도, 무도방어대 85mm 고사포는 연평부대 155mm 자주포의 상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85mm 고사포의 포구경은 155mm 자주포에 비해 70mm나 짧을 뿐 아니라, 85mm 고사포는 수동사격장치로 쏘고, 155mm 자주포는 자동사격장치로 쏘기 때문이다. 또한 85mm 고사포의 사거리는 155mm 자주포에 비해 30km나 짧다. 그러나 실전상황에서는 뜻밖에도 85mm 고사포가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 85mm 고사포는 사격속도가 155mm 자주포에 비해 10배 이상 빨랐다. 연평도 포격전은 현대전의 승패가 공격속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진리를 입증했다.

둘째, 무도방어대 포병들의 높은 사격명중률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되었다. 평소에 명중사격을 연습해온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실전상황에서 사격능력을 남김없이 발휘했다. 연평도 포격전은 현대전의 승패가 정밀타격에 의해 결정된다는 진리를 입증했다. <사진 5> 

 

▲ <사진 5> 위쪽 사진은 2017년 5월 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평도 포격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무도방어대를 시찰하는 장면이다.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연평도 포격전에서 경미한 피해만 입었고, 연평부대에 명중탄을 퍼부어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무도방어대에 영웅방어대 칭호를 수여했다. 위쪽 사진에 보이는 견인포는 연평도 포격전에서 맹활약하여 영웅포 칭호를 수여받은 85mm 견인고사포다. 아래쪽 사진은 로씨야의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85mm 견인고사포 실물이다.85mm 견인고사포의 두 가지 특징은 공중을 방어하는 고사포로도 쓸 수 있고, 적진을 타격하는 곡사포로도 쓸 수 있다는 것과 사격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6. 국지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위험

 

연평도 포격전이 계속되자 조선인민군 수뇌부는 황해남도에 배치된 전투부대들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총공격태세로 전환했다. <연합뉴스> 2020년 11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당일 백령도가 마주보이는 북측 해안포 갱도진지들이 차폐문을 열고 사격준비를 갖추었다고 한다. 2010년 11월 24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서해 5도 분쟁수역 인근의 북측 해안과 섬들에 밀집배치된 해안포는 약 1,000문이라고 한다. 해안포 1,000문이 연평도와 백령도를 조준하여 사격준비태세를 갖춘 것이다. 

 

2010년 11월 27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 중에 조선인민군 서해함대사령부는 황해남도 옹진군 사곶에 배치된 해군 8전대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고, 그에 따라 8전대에 소속된 모든 전투함선들과 전투병력이 총공격태세에 돌입했다고 한다. 당시 해군 8전대가 보유한 고속정과 경비정은 70여 척 이상이었다.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그-23기 5대가 황해남도 황주비행장에서 출격대기상태에 있고, 황해남도 과일비행장과 온천비행장에서도 미그-19기들과 미그-23기들이 출격대기상태에 있다고 한다. 또한 황해남도에 배치된 금성-1 지대함순항미사일들이 발사태세를 취했다고 한다. 금성-1 지대함순항미사일의 사거리는 160km다. 2010년 11월 28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황해남도에 번개-1 지대공미사일이 전진배치되었다고 한다. 번개-1 지대공미사일은 사거리가 45km이고, 요격고도가 25km다. 2014년 2월 24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김태영은 포격전 중에 조선인민군 반항공부대가 SA-5 장거리대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 그가 언급한 SA-5 장거리대공미사일은 사거리가 250km에 이르는 번개-5 반항공미사일이다. 

 

우발적인 국지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위험이 극도로 높아졌다. 그런 사태를 우려한 한국군은 당일 오후 5시 55분 조선인민군에게 사격중지를 촉구하는 전화통지문을 발송했다. 만일 한국군이 사격중지를 촉구하지 않았더라면, 국지충돌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전면전이 일어났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조선인민군 해안포 1,000문이 연평도와 백령도를 향해 불을 뿜었을 것이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연평도에는 한국군 1,200명이 주둔하였고, 백령도에는 한국군 4,000명이 주둔하였는데, 그들은 조선인민군의 집중사격을 받을 급박한 위험에 빠졌던 것이다. 

 

남북대화와 조미대화가 완전히 중단되고 군사대결상태에 들어선 오늘, 한국군 수뇌부는 연평도 포격전에서 뼈아픈 교훈을 찾고, 현 상황을 오판하지 말아야 한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기 전에, 북침전쟁연습을 재개하려는 경거망동을 중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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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 못 넘으면 대규모 유행"…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

24일부터 수도권 2단계, 호남권은 1.5단계 적용

새 단계 적용 하루 전인 23일부터 전국의 모든 공무원과 공공기관, 공기업에는 새 지침이 우선 적용된다. 이에 따라 전 인원의 3분의 1이 재택 근무에 들어간다. 필수적인 모임을 제외한 모든 모임의 취소 또는 연기가 권고되고, 상황에 따라 정부와 지방정부는 구상권도 적용하기로 했다.

 

22일 오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브리핑을 통해 1.5단계 격상 조치를 취한 지 불과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으나, 빠른 속도로 확산하는 코로나19 감염 피해를 막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적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당초 정부는 1.5단계 조치를 2주간 적용한 후, 상황에 따라 추가 격상 여부를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날까지 닷새 연속 전국에서 하루 300명이 넘는 새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상황이 심각해지자 거리두기 단계 수준을 도중에 강화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2주 전(11월 8일~11월 14일) 83명에 머물렀던 수도권의 일평균 지역 발생 확진자는 전주(11월 15일~11월 21일) 들어 175.1명으로 급격히 증가했고, 국내 전체 환자 수는 255명까지 늘어났다. 한 주만에 전주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의 급격한 환자 증가 상황이 이어져 2단계 격상 기준에 다가갔다.


 

기존 정부 지침 상 2단계 격상을 위해서는 1.5단계 기준의 두 배 이상으로 확진자 규모가 커지거나, 2개 이상 권역에서 대규모 유행이 이어지거나, 전국의 확진자 규모가 300명을 넘어서는 상황 중 하나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수도권과 별개로 정부는 호남권에도 거리두기 1.5단계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이미 전남 순천시가 지자체 중 가장 먼저 거리두기 2단계를 적용하고, 광주도 1.5단계 조치에 들어갔으나 여전히 다른 지역으로 감염이 확산하는 양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이번 조치에 따라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기존 3단계에서 5단계 체제로 바꾼 지난 7일 이후 불과 보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 수준이 전체의 중간인 2단계까지 올라왔다.


 

그간 정부는 2단계 격상 시 자영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타격이 워낙 크고, 시민 일상이 무너진다는 점을 들어 1.5단계 기준에서 시민의 협조를 통해 현 감염 상황을 통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일상 공간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추적이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소규모 감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그 같은 대응으로 실효를 거둘 수 없음이 점차 분명해지는 상황이었다.


 

실제 감염병 전문가들은 여러 창구를 통해 한목소리로 빠른 2단계 격상으로 감염 확산 상황을 막는 게 장기적으로는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수도권의 거리두기 수준이 2단계로 격상함에 따라 다시금 소규모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한 경제적 피해 증가는 불가피하게 됐다. 

사회적 거리두기 수준이 2단계로 격상할 경우 클럽, 룸살롱 등 유흥주점과 단란주점, 감성주점, 콜라텍, 헌팅포차 등 중점관리시설 5종이 집합금지 대상이 된다. 아울러 음식점과 카페 영업이 제한되고 대부분 시설에서 실내 모임 인원은 100명 미만으로 제한된다. 목욕탕과 노래방 등의 정상적인 영업도 사실상 어려워진다.


 

특히 등교 수업이 더 강력한 수준으로 제한됨에 따라 학부모들의 고심도 깊어지게 됐다. 2단계 기준에서 등교 수업 밀집도는 학생 정원의 3분의 1 수준으로 제한된다. 다만 고등학교에 한해 1.5단계 기준인 3분의 2 수준이 허용된다.

 

박능후 중대본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앞으로) 유행을 예측할 감염재생산지수가 직전 주 1.1 내외에서 지난 주에는 1.6까지 올라왔고, 일상 생활 공간 곳곳에서 소규모 집단 감염이 연쇄적으로 나타나 최근 2주간 62개의 집단 감염이 발견됐다"고 거리두기 강화 조치가 불가피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3차 유행이 진행 중인 지금이 "대단히 심각하고 엄중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박 장관은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한동안은 확진자 증가 추세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1.5단계 상향 조치의 효과도 적용 최소 열흘이 지나야 나타나는 데, 기존 기준이 적용된 지도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장관은 이 같은 이유로 "이번 주말까지는 계속 유행이 확산하며 신규 환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앞서 방대본은 현 감염재생산지수를 토대로 다음 주에는 일일 신규 확진자 규모가 400명대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박 장관은 "수도권의 거리두기 2단계 적용에 따라 많은 국민이 일상에 불편을 겪고, 특히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 서민 경제에 큰 어려움이 야기될 것"이라며 "진심으로 송구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국내 발생 확진자가 2주 가까이 세자릿수를 기록하고, 최근에는 사흘 연속 300명을 넘는 등 확산세가 진정되지 못하고 있다”며 “대규모 확산의 길에 서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앞서 "이번 고비를 넘지 못하면 세계 각국이 겪는 대규모 재유행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며 "대입 수능시험 이전에 확산세를 꺾고 겨울 대유행을 막으려면 거리두기 단계 조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한 모든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수많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어려움을 더 크게 느끼겠지만 지금 확산세를 꺾지 못하면 우리 의료와 방역 체계가 감당하기 힘들다"며 "유럽이나 미국처럼 통제가 어려운 상태로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 총리는 정부의 백신 확보 계획과 관련해 "조만간 정부의 백신 확보 진행 상황을 보고드리겠다"며 "백신 보급 전까지는 마스크 착용이 최고의 예방책"이라고 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코로나19 확산에 맞서 오는 24일부터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기자가 되면 거지부터 왕까지 누구나 만난다고 들었다. 거지한테 혼나고 왕은 안 만나준다.

이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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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12217445535223#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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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만에 봉안되는 산내골령골 250구의 유해

40여 일간의 유해 발굴 종료, 기자회견과 봉안식 진행

  • 기자명 대전=임재근 객원기자 
  •  
  •  입력 2020.11.23 08:16
  •  
  •  수정 2020.11.23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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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0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는 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 차원의 인권평화공원조성 추진단 구성, 골령골유해발굴조사단 구성을 촉구하였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는 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 차원의 인권평화공원조성 추진단 구성, 골령골유해발굴조사단 구성을 촉구하였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지난 20일 대전 동구 산내 골령골에서 40여 일간 진행되었던 한국전쟁민간인 희생사건 9차 유해 발굴이 종료되어 희생자 봉안식이 진행되었다. 이날 봉안식 전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이하 골령골대책회의)는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 차원의 인권평화공원조성 추진단 구성, 골령골유해발굴조사단 구성을 촉구하였다.

기자회견은 골령골대책회의 대표단을 비롯하여 유족회 회원, 공동조사단, 성미산 학교 학생들이 참여했다. 인사말에 나선 전미경 유족회장은 유해 발굴에 대한 감사 인사와 더불어 “2021년에는 행자부와 대전시, 동구청 전부 일체가 되셔서 모든 유해가 발굴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하였다.

유해 발굴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성미산 학교 학생들은 발언을 통해 “여기 이곳에서 숨겨진 진실을 맞이하고 있다. 고통스러운 과거의 역사를 어떻게 현재화해야 하는지 두려운 진실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대전 골령골의 수많은 죽음을 통해 알아가고 있다”며 “우리는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며 모른 채 지나가고 싶지 않다. 이곳이 역사의 진실을 배울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해발굴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성미산 학교 학생들이 기자회견과 봉안식 전 발굴현장에 “기억의 나무”를 식수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유해발굴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성미산 학교 학생들이 기자회견과 봉안식 전 발굴현장에 “기억의 나무”를 식수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골령골대책회의 박규용 상임대표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정부 차원의 골령골 인권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추진단구성 △‘골령골유해발굴조사단(가칭)’ 구성 △대전시의 조례에 따른 인권평화공원 추진위 구성과 운영 △대전시청-구청 외 주민자치센터까지 진실규명신청서 접수창구 개설을 요구하며 골령골 인권평화공원 조성에 정부와 대전시의 책무를 촉구하였다.

기자회견에 이어 진행된 봉안식은 불교, 원불교, 천주교 등의 추모 종교의식으로 시작되었다. 이어 묵념, 경과보고, 진혼무, 제례, 추도사, 성미산학교 학생들의 추모공연, 내외빈 인사말, 유족 인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내외빈 인사말에는 황인호 대전 동구청장, 장철민 국회의원, 박규용 골령골대책회의 상임대표, 박선주 공동조사단장이 나섰다. 전미경 유족회장은 감사 인사와 함께 “산내 골령골의 살처분”이라는 자작시를 읊으며 슬픔과 원통함을 전했다.

금비예술단 전연순 대표가 진혼무를 통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금비예술단 전연순 대표가 진혼무를 통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유해가 담긴 상자를 어루만지며 오열하는 유족.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유해가 담긴 상자를 어루만지며 오열하는 유족.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봉안식을 마친 뒤 250여 구의 유해를 담은 75개의 상자가 유족 및 참가자들의 운구로 5대의 리무진 운구차에 실려 세종시 추모의 집으로 향했다. 세종시 추모의 집은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관이 있는 곳으로 골령골에 인권평화공원이 건립되기 전까지 유해들이 임시 봉안되는 장소다.

유해 발굴은 2021년에도 계속될 예정이며 유족회, 공동조사단, 골령골대책회의는 내년의 발굴은 기존과 다르게 대전 산내 골령골에 산재한 여러 학살지 구역을 동시에 발굴하여 유해 전부를 신속히 발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세종시 추모의 집에서 유해가 담긴 상자를 운구하는 유족회 전미경 회장.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세종시 추모의 집에서 유해가 담긴 상자를 운구하는 유족회 전미경 회장.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인권평화공원이 건립 전까지 이곳 세종시 추모의 집에 임시 봉안된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인권평화공원이 건립 전까지 이곳 세종시 추모의 집에 임시 봉안된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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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갑질에 우는 ‘병’ 두번 울린 김앤장의 법률 자문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11/22 11:24
  • 수정일
    2020/11/22 11:2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등록 :2020-11-22 08:55수정 :2020-11-22 09:44

 

공갈죄로 몰린 현대차 2차 협력사의 비명

현대자동차 1차 하청 한온시스템
2차 대진에 납품단가 인하 ‘압박’
못 견딘 대진 사장, 공장 인수 요구
1200억에 인수한 한온, 공갈죄 고소
대진 사장은 법정 구속돼 6년형

그 과정에서 김앤장의 법률 조력
공갈죄 고소까지 대리하는 상황
서연이화-태광공업 사건도 비슷
2차 협력사 옭아맨 ‘공식’인가
자동차산업 불공정 생태계 심화
정의당 추혜선 의원과 ‘자동차산업 중소협력업체 피해자협의회’가 지난해 2월2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하청업체들이 부도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불가피하게 납품을 중단할 시 형사처벌을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하청업체 납품중단 시 형사처벌 금지 입법 청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정의당 추혜선 의원과 ‘자동차산업 중소협력업체 피해자협의회’가 지난해 2월2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하청업체들이 부도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불가피하게 납품을 중단할 시 형사처벌을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하청업체 납품중단 시 형사처벌 금지 입법 청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 자동차 원청의 1차 협력사가 2차 협력사들을 상대로 갑질을 한 뒤,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2차 협력사가 손실보상이나 기업 인수를 요구하면 이를 구실 삼아 2차 협력사 사장을 공갈죄로 고소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그 뒤에는 김앤장 등 국내 대형 로펌의 자문이 있다. 1차 협력사의 갑질과 로펌의 법률 자문이 결합해 자동차산업의 불공정 생태계를 심화하는 현실을 들여다봤다.“한온(현대차 1차 협력업체)이 협력사 대표인 나를 깔아뭉갰어요. 한온이 갑질을 해서 작년(2015년)에 협력업체로부터 뜯어낸 돈이 1300억원이에요. 제 평생을 다 걸고 한 회사를 한온에 팔려고 생각합니다. 사가십시오. 다른 협상은 없습니다.”(2017년 12월 1심 판결문 중)
 

한온시스템(한온)과 ‘전속거래’(원청과 하청 업체가 10년 이상 맺는 장기 계약으로 특정 원청과만 거래하도록 구속하는 불공정 거래로 이어지기 쉽다)를 해온 2차 협력사 대진유니텍(대진)의 송아무개 사장이 2016년 4월 한온 임원에게 악에 받친 듯 말했다. 한온의 경영진이 바뀐 뒤 심해진 ‘갑질’에 내몰린 송 사장은 공장 매각이라는 극약 처방을 택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수년간의 수사와 재판에 따른 고통뿐이었다. 

 

송 사장의 경우는 전속거래 방식으로 상위 사업자에 대한 의존도가 큰 자동차 업계의 고질적인 피해 사례다. 현대자동차 등 원청이 비용을 아끼려고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면 1차 협력사는 2차 협력사에 그 부담을 전가한다. ‘쥐어짜기’로 경영난에 시달린 2차 협력사가 1차 협력사에 회사를 넘기기도 하는데 이때부턴 또 다른 분쟁이 시작된다. 1차 협력사가 ‘협박에 못 이겨 매각대금을 과도하게 줬다’며 2차 협력사 대표를 공갈죄로 고소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엔 매각대금의 상당액을 받아내면서 ‘병’에 대한 ‘을’의 승리가 굳어지는데 국내 최대 규모 로펌의 조력은 필수적이다. 원청이 고안한 ‘직서열 생산’ 구조에서 갑과 을을 향한 병의 항변은 엄청난 후과를 각오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1200억에 회사 인수…900억 뜯겼다?
현대차의 2차 협력사인 대진은 1985년부터 차량용 냉각팬과 금형, 플라스틱 신소재를 생산했다. 1차 협력사인 한온은 대진으로부터 받은 부품으로 공조장치를 완성한 뒤 현대차에 공급한다. 대진은 한온에만 부품을 납품하는 전속거래처다. 그러나 2013년 한온이 금형 발주 물량을 줄이고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면서 두 회사 간 갈등이 시작됐다. 당기순이익률이 1%를 넘지 못하고 부채만 늘어나는 상황에서 2016년 4월18일, 대진의 송 사장은 거래 중단을 선언하며 한온에 “대진을 인수하지 않으면 생산라인을 재개하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요구한 매각대금은 1300억원이었다. 이틀 뒤 한온은 대진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한온은 1년 전부터 관계를 맺은 김앤장의 법률자문을 받아 대진의 부채 등을 감안해 송 사장이 요구한 가격보다 100억원 저렴한 1200억원에 회사를 인수하기로 했다. 한온은 계약 성사 직후인 2016년 4월21일 이사회를 열어 대진 인수 안건을 의결했다.그러나 한온과 김앤장은 매각대금이 모두 건너간 날로부터 6일 뒤인 2016년 4월29일, 송 사장을 공갈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한온과 김앤장은 ‘대진의 기업가치가 300억원에 불과한데 송 사장의 협박에 못 이겨 900억원을 갈취당했다’고 고소장에 적었다.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의 법률자문을 받고 있던 한온은 어떻게 900억원이라는 거액을 ‘뜯기게’ 된 걸까. 한온은 “대진의 부품 납품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현대·기아차의 완성차 생산라인 가동이 멈춰버리고, 10만 협력업체도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며 송 사장이 부품 공급 중단을 무기로 무리한 회사 인수를 요구해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송 사장이 한온에 최후통첩을 한 당일, 공장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하라고 지시한 정황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 송 사장에게 불리하게 작용되기도 했다.한온은 김앤장의 법률자문을 받아 대진을 12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한온의 주장대로라면 당시 연매출 6조원에 이르던 거대 기업이 하청업체의 ‘협박’에 못 이겨 적정가치의 4배를 주고 회사를 인수하게 됐으니 결과적으로 이를 계약 과정에서 면밀히 챙기지 못한 책임이 김앤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온은 김앤장의 손을 놓지 않았고 송 사장을 공갈죄로 고소하는 사건까지 맡겼다.2016년 4월29일 고소장이 접수된 뒤 검찰 수사가 신속하게 진행돼 그해 7월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은 송 사장을 공갈죄로 불구속 기소했다. 1심에서 송 사장의 공갈죄가 유죄로 인정된 뒤 한온은 민사소송도 냈다. 공갈죄가 인정된 이상 한온이 건넨 매각 대금은 송 사장이 얻은 ‘부당이득금’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돌려달라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이 된 매각 계약서 작성에 관여한 김앤장 ㄱ변호사는 공갈죄 고소 사건도 함께 대리했다.
‘계약 책임’ 김앤장이 형사고소까지
송 사장 쪽은 민형사 재판 과정에서 한온과 김앤장이 고소를 예정하고 양수도 계약을 맺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김앤장은 송 사장이 최후통첩을 한 바로 다음날인 2016년 4월19일 오후, 한온으로부터 급하게 대진 인수 관련 법률 자문을 의뢰받았다고 설명했다. “상황의 급박성으로 사업 양수도 이전의 자문은 (부품) 공급재개 방안에 초점이 맞춰졌고, 형사고소 가능성에 대한 자문은 26일에야 이뤄졌다”는 것이다. 매각 계약 3일 뒤에 형사고소를 검토하게 된 것도 “(한온으로부터) 향후 대응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공갈죄를 인정하고 실형을 선고한 판결을 여러 개 찾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온 쪽은 법정에서 매각 계약 직후에 공갈죄 고소를 검토한 이유에 대해 “회사 임원 중 1명이 태평양 변호사와 친분이 있는데, 그로부터 형사고소 가능성을 듣고 고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접적으로 양수도 계약 소식을 전해 들은 태평양 변호사는 상대방의 공갈 혐의를 인지했는데 계약을 위한 법률자문에까지 참여한 김앤장 변호사는 이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얘기다.송 사장은 매각 계약 직후의 공갈죄 고소 등이 석연찮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1부(재판장 윤도근)는 “(김앤장) 변호사들은 대진 인수대금이 송 사장이 지정한 1300억원이라는 전제하에 계약 조건과 대금 지급 방법만을 의논한 것에 불과하다”고 ‘기획고소 의혹’을 일축했다. 이어 “한온은 (납품단가 인하, 납품 금형 생산시간 단축 및 그에 따른 비용 부담 전가 등의) ‘갑질’을 통해 장기간 자동차부품업에 전념해온 송 사장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하고 운신의 폭을 좁게 해 범행을 자초한 면이 있다”며 이를 양형에 고려했다고 했지만 징역 9년의 중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송 사장은 항소심에서 6년형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현재 복역 중이다.현대차 협력사 간 갈등→인수 계약→공갈죄 고소로 이어진 패턴은 송 사장에 대한 1심 형사 재판이 한창이던 2017년 4월 서연이화(1차)-태광공업(2차) 사건에서도 그대로 반복됐다. 현대차 1차 협력사인 서연이화는 2차 협력사인 태광공업 손영태 전 회장이 보유한 회사 주식 전량을 50억원에 인수하고, 태광 부채 463억원에 대한 연대보증 책임을 승계하기로 하는 양수도 계약을 2017년 4월28일에 맺었다. 그러나 나흘 뒤 서연이화는 ‘계약무효 및 연대보증 인수 거부’ 방침을 통보하면서 손 전 회장 부자의 협박으로 회사를 인수한 것이라며 이들을 공갈 혐의로 고소했다. 결국 손 전 회장은 징역 2년6개월, 아들인 손정우 전 사장은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서연이화가 태광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도 진행 중이다. 한온-대진 사건과 판박이다. 서연이화를 대리해 인수 계약을 맺고 공갈죄로 고소해 대금을 다시 받아내는 과정의 법률 대리인이 김앤장이라는 점도 같다. 한온-대진 사건에서 계약 및 형사 소송에 모두 관여한 ㄱ변호사도 서연이화 쪽에 자문해주는 등 사건에 개입했다.태광공업 쪽을 대리했던 오영중 변호사는 “이사회를 통과하고 변호사들이 나서서 계약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했다는 것은 나중에 돈을 되돌려받으리란 확신이 서지 않는 한 기업으로선 할 수 없는 일”이라며 “2차 협력사가 납품을 중단하며 협박하면 1차 협력사는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는 식으로 공갈죄를 적용시킬 핵심 수단을 대형 로펌이 만들고 이런 논리를 사법부가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공정 생태계에 묻히는 병·정들 목소리
대진이나 태광공업 사례처럼 2차 협력사의 ‘납품 중단’ 절규가 형사처벌 대상으로 전락하는 건 자동차산업의 고질적인 전속거래 구조에서 비롯됐다는 지적(2017년 8월12일 기사 ‘갑과 을이 힘 합쳐서 병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냐’)은 꾸준히 제기됐다. 원청이 비용과 재고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직서열 생산방식’(부품 업체들로부터 실시간으로 필요한 부품을 공급받는 현대차 생산 방식)이 협력사를 향한 압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직서열 방식에서 현대차는 모든 부품을 적시에 공급받을 수 있다. 부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현대차는 하청업체에 ‘벌금’도 매긴다. 1차 협력사는 이를 면하려고 재고 보유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이 과정에서 하위 협력업체에 재고·비용 부담을 떠넘기게 된다. 갑질과 을질의 연쇄반응이다.송 사장 공갈 혐의 재판에서 한온 쪽은 “(송 사장)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재고품의 여유가 없어 우리도 생산을 중단하게 되고 그 여파로 현대·기아차의 생산마저 멈추게 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일대일 전속거래 구조 현실에서 사실상 유일한 거래 대상인 원청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는 협력업체로선 일방적인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못 이겨 ‘납품 중단’을 무기로 꺼내 보지만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를 공갈죄로 처벌한다.송 사장 형사 사건 1심 재판부는 “대진의 일방적인 공급 중단으로 재고품 여유가 없는 한온의 생산라인을 중단하게 하고, 그 여파로 현대차의 생산마저 멈추게 하면 (한온이) 손해배상책임 등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한온의 다급한 사정을 이용해 인수를 요구했다”며 “공갈 범행은 다수 협력업체와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는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전반의 안정적인 운영에 막대한 악영향을 야기할 수 있어 그 죄질이 매우 좋지 못하다”고 밝혔다. 현대차의 생산 생태계에 편입된 뒤 갑질과 을질에 시달리다가 ‘이럴 거면 차라리 회사를 사가라. 안 그러면 부품 생산 않겠다’는 항변이 협박으로 간주되고 사법부의 판단도 ‘자동차산업 전반의 안정적인 운영’이라는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공장 매각 계약과 공갈죄 고소 건을 동시에 대리하는 ‘패턴’은 더이상 김앤장만의 ‘사업 스킬’은 아니다. 현대차 1차 협력사인 두올산업은 2018년 6월 2차 협력사였던 ‘미래텍’의 김아무개 대표가 발주량 축소나 단가 인하 갑질에 못 이겨 보상을 요구하자 그렇게 하기로 약속한 뒤 김 대표를 공갈죄로 고소한 뒤 민사소송을 걸었다. 이때 두올산업을 대리한 법무법인이 ‘화우’였다. 화우는 2017년 대진 송 사장의 공갈죄 사건에서 송 사장을 대리한 경험도 있었다. 당시 김 대표 쪽을 대리했던 한 변호사는 “미래텍 사건 재판 증인신문 당시 두올산업의 전 대표가 ‘화우에서 조력을 받아 공갈로 엮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고도 했다. 2차 협력사를 옭아매는 이런 방식은 변호사 업계에서도 하나의 ‘공식’처럼 활용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이항구 한국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진 사건 등은) 외환위기 이후 자동차산업이 독점구조로 바뀌면서 만들어진 결과”라며 “독점구조가 만든 약육강식의 산업 생태계에서 변호사도 의뢰인(1차 협력업체)의 승리를 위해 2차·3차 협력업체를 고소·고발하지만 법원은 이러한 구조를 모른 채 판결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0910.html?_fr=mt1#csidx9ab07060783396b9ac1b8ec2baf39f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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