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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유령 아니다" 방송사 비정규직 방송의날 행사 기습시위

  • 김예리 기자 
  •  
  •  입력 2023.09.01 21:05
  •  
  •  댓글 1



 

 

39개 지상파 방송사 가입한 방송협회 방송의날 찾아 시위

방송 비정규직 당사자 노동인권단체 엔딩크레딧 출범 알려

“우리는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을 대표해 오늘 방송의날 행사에 왔다.” “우리는 올빼미가 아니다!” “우리는 욕받이가 아니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하라!”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이날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2층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방송협회 행사장에서 피에로 가면을 쓰고 피켓을 든 채 “방송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는 방송사를 규탄한다. 방송을 만드는 진짜 주인공은 비정규직”이라고 외쳤다.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행사장을 지키던 경호원 5명은 이들에게 출입을 위해 사전 등록 확인을 요구하다, 이들이 일렬로 서서 시위를 시작하자 “나가세요”라며 제지했다. “준비할 시간을 줄 테니 5분이면 되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구호를 계속 외치자 이들을 마주보고 일렬로 섰다. 소리를 듣고 일부 행사 참가자들이 나와 지켜보는 등 관심을 보였다. 경호원들이 시위 중인 활동가들 사진을 채증했다가 활동가들이 ‘경찰도 정해진 기준과 지침에 따라서만 채증할 수 있다’고 항의해 사진을 삭제하기도 했다.

기습시위를 마친 뒤 같은 장소에서 방송노동자 당사자를 중심으로 조직된 노동인권단체 ‘엔딩크레딧’이 방송사들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엔딩크레딧엔 방송비정규직 노동자 당사자와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 샛별노무사사무소,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직장갑질119 등이 참여하고 있다. 회견 무렵엔 경호원들이 15명가량으로 늘어났다.

고 이재학 PD 동생 이대로씨는 여는 발언에서 “우리 사회에서 노동 문제를 이야기하면, 특히 차별 받는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얘길 하면 선입견을 갖고 심지어 그들을 탓한다”라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그나마 비판하고 이야기한 곳이 있다. 방송사들”이라고 했다.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인 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노지민 기자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인 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노지민 기자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인 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사진=노지민 기자

이씨는 이 자리에서 “방송사들이 과연 (비정규직 문제가 있는 기업을 비판할) 자격이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들이 비판하는 그 어떤 기업, 기관보다도 속은 썩어있고 곯아있는 곳이 바로 방송사 자신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방송사 노동자 절반 넘는 비율이 비정규직이고 이를 방관하다 못해 그들의 권리를 빼앗고 노동자 개인 인생과 목숨까지 빼앗는 곳이 방송사”라며 “방송사는 말 그대로 비정규직 백화점, 비정규직의 무덤”이라고 했다.

이씨는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노동 문제와 사건 사고들이 방송사와 제작사들의 만행으로 벌어졌는데도 (방송사들은) 여전히 이 문제를 숨기기 급급하다. 방송사는 더 이상 스스로 정화할 능력과 의지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이제 우리 당사자들이 직접 나선다. 늘 접하는 미디어 속 화려한 영상과 연예인, 그 뒤엔 피와 땀을 녹여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진짜 주인공들이 따로 있다. 바로 이들이 방송의날 주인공”이라고 했다.

이용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은 “방송사의 60%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방송의날 행사에서조차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방송의날에 참석하는 여러 관계자들이 정확하게 한번 들여다봤으면 좋겠다”며 “엔딩크레딧은 작지만 아주 강력한 뜻을 모아 향후 여러 활동을 통해 비정규직 현실을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인 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노지민 기자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인 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인 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엔딩크레딧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 소수의 정규직이 아니다. 비록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하지만 카메라 뒤에서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땀과 희생 없이 방송 산업은 성장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들 권리는 수십 년간 철저히 박탈 당했다”고 했다.

이들은 “(방송계갑질119, 방송스태프지부와 고 이재학 PD 사망 이후 결성된 대책위원회 등) 노동자들의 선명한 저항 이후 사용자 방송사들의 비정상적 맞대응도 뚜렷해졌다”며 “방송 제작 현장의 불법과 부당한 처우, 차별의 ‘엔딩’을 위해 내딛는 첫 걸음을 통해 새로운 길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앞으로 주요 활동으로 △개별 법률 투쟁 성과에 매몰되지 않는 더 폭넓은 대응 △전국에 흩어진 방송비정규직 연결고리 구축 △정규직-비정규직 간, 직종 간 벽을 넘어선 연대 등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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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간토의 조선인 희생자들에게 영혼의 안식을...

日 요코아미초 추도비 앞 동포, 한일시민사회 간토 조선인학살 100주기 추도제

  • 기자명 일본 도쿄=이승현 기자 
  •  
  •  입력 2023.09.01 17:59
  •  
  •  수정 2023.09.01 23:40
  •  
  •  댓글 0
 
9월 1일 일본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 추도비 앞에서 재일 도쿄 동포들이 주관한 '간또대진재조선인학살 100년 도쿄동포추도모임'이 거행됐다. [사진-이승현 통일뉴스 기자]
9월 1일 일본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 추도비 앞에서 재일 도쿄 동포들이 주관한 '간또대진재조선인학살 100년 도쿄동포추도모임'이 거행됐다. [사진-이승현 통일뉴스 기자]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를 맞아 9월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의 요코아미초 공원 추도비 앞에서 일조협회와 재일 도쿄 동포들이 주관한 추도모임이 거행됐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동경도본부와 동경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이 주최한 '간또대진재조선인학살 100년 도쿄동포추도모임'은 100년전 지진 발생시각인 오전 11시 58분에 시작했으나 100주기인 올해는 일조협회가 주축이 된 '9.1관동대진재조선인희생자추도식전실행위원회'의 추도식이 끝난 오후 1시 30분부터 진행됐다.

추도모임은 희생된 동포들을 위해 도쿄조선가무단의 가수가 낯익은 선율의 아리랑을 부르면서 시작됐다.

100년전 그날과 달리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날씨에 유난히 많은 인파가 요코아미초 공원을 찾아 간토대지진 희생자들의 영령을 추도했다.

도쿄도지사의 추도사도 없었고, 우려했던 우익단체의 소란도 경찰 통제탓인지 찾아볼 수 없었다.

추도사를 하는 고덕우 총련 도쿄도본부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추도사를 하는 고덕우 총련 도쿄도본부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고덕우 총련 도쿄도본부 위원장은 추도사에서 "1923년 9월 1일 도쿄를 비롯한 간토지방을 뒤흔들어 놓은 미증유의 대지진과 대화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갔으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주민들을 죽음의 공포와 불안으로 떨게 하였다"며, "엄청난 자연재해와 사회적 혼란속에서, 일본정부는 무능하고 속수무책이었던 자기들에게 향한 민중의 불만과 비난을 억누르고 무마해보려고, 조선인 탄압을 그 더러운 수작으로 정하였다"며 일본정부의 조선인학살 책임을 분명히 밝혔다.

"열흘 남짓한 기간에 6천600여명의 무고한 우리 동포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범죄를 저지른, 일제에 의한 간토대진재 조선인학살은 국제법이 엄금하고 있는 집단학살, 제노사이드"라고 딱부러지게 말했다.

그는 지난달 9일 총련측에서 일본 정부에 간토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항의 요청을 했으나 도쿄도지사가 이를 거절했다고 하면서 "10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서도 억울하게 학살당한 조선인 희생자들을 모욕하고, 역사적사실을 은폐 왜곡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100년전 대진재를 당해 일본 당국이 무능한 대응을 무마하기 위해 자행한 조선인 학살과 오늘날 일본 정부가 코로나 대응 실패, 경제생활난을 막기 위한 실책을 무마하기 위해 더욱 더 국책을 극우로 몰아가면서 재일 조선인들과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 박해를 비열하게 감행하고 있는 사실이 너무도 유사하다"고 하면서 "이제라도 일본은 간토대지진 학살 만행을 스스로 진상 규명하고 희생자들의 영혼앞에 용서를 빌고 배상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식민지 범죄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고, 평양선언의 정신에 따라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조일관계 정상화를 조속히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 도지사에 대한 비판은 여러 차례 발언에서 계속 나왔다.

니시자오 기요시 도쿄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일본측 대표는 올해 100주기를 맞아 도쿄도지사에게 처음으로 '추도비문' 정신 실현을 요청했으나 지난 지난달 14일 "대지진 피해자와 지진에서 살아남았지만 극도의 혼란속에서 발생한 희생자가 많다. 별도의 추도문은 보내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전하고는 "많은 희생자를 낸 조선인 후손들의 추도식에 참석해달라, 추도문을 보내달라고 한 매우 정중한 요청에 대해 '대법요'에서 한다는 이유로 거절한 것은 예의가 결여된 잘못된 태도"라고 비판했다.

이날 100주기 추도식에는 허종만 총련 중앙 상임위원회 의장이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허 의장은 별도 발언을 하지는 않았는데, 양쪽으로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걸음을 떼면서도 추도비에 헌화하고 묵상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북측 '조선인강제연행피해자, 유가족협회'에서도 추도문을 보내와 "희생자들의 상주가 되고 혈육이 되어 이국의 찬바람으로부터 그들의 넋을 지켜주고 위로"해 주었다며, 총련 조직과 재일동포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하고 "민족의 수난자들을 마음에 안고사는 조국 인민들과 재일동포들, 인륜을 귀중히 여기는 모든 이들의 위로속에 간또대지진 조선인희생자들의 영혼들이 부디 안식을 찾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서울에서 발족한 '간토학살100주기 추도사업 추진위원회' 대표단도 추도모임에 함께 참석했다. 

이들은 연대 인사를 겸한 추도사에서 "일본 정부는 100년간의 기만을 멈추고 역사정의를 바로 세워 아시아의 공동번영을 향해 함께 나아가자"고 입장을 밝혔다.

이날 저녁 '조선인학살희생자추도와 책임 추궁을 위한 집회'에서 이홍정 6.15공동선언남측위원회 대표상임의장이 낭독하기도 한 추도사에서 이들은 "(간토대진 당시)허위사실로 계엄령을 발동하여 조직적으로 (조선인을)학살하였음에도 피해사실을 조사할 계획도, 유감을 표시할 의지도 없다고 밝히는 것이 일본정부의 공식입장이라면 이 얼마나 반인도적이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태인가"라고 개탄했다.

"더욱이 일본 정부는 여전히 한반도 불법강점과 식민지지배, 강제동원과 일본군 성노예제 등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거부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며 평화헌법의 전수방위 원칙을 무력화하여 다시 '전쟁하는 국가', '군국주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고 과거사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본의 행태를 비판했다.

이에 한일 양국간 화해와 협력을 바라는 마음으로 △일본정부는 더 이상 간토학살의 국가책임을 회피하지 말라 △간토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라. △일제식민지 전쟁범죄의 진실을 교과서에 올바로 기술하고 교육하라. △전쟁하는 국가로 다시 돌아가려는 군사대국화 정책을 당장 멈춰라.△평화롭고 평등하며 공존 공생의 한일관계를 위해 적극 노력하라고 촉구했다.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보존회 일본 도쿄 지부장인 김순자 한국전통무용가가 일조협회 추도식에서 조선인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는 진혼무를 공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보존회 일본 도쿄 지부장인 김순자 한국전통무용가가 일조협회 추도식에서 조선인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는 진혼무를 공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에 앞서 일조협회가 주축이 된 '9.1관동대진재조선인희생자추도식전실행위원회'는 오전 11시부터 역사적인 100주기 추도제를 시작했다.

추도제에는 12시 40분까지 2시간 가까이 일본의 측 각계 인사들이 추도사를 하고 요코아미초 위령당과 위령공원을 찾은 많은 인파가 긴 행렬을 이루며 헌화했다.

유난히 많은 인파의 헌화, 참배행렬이 이어졌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유난히 많은 인파의 헌화, 참배행렬이 이어졌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00년전 지진 발생 당시의 시간에 맞춰 정오를 2분 앞두고 울린 사이렌 소리와 함께 공원내 모든 사람들이 진혼을 위한 추모의 묵상에 들었다. 

기쿠치 이사오(菊地功) 가톨릭 됴코 대주교는 이날 "100년전에 일어난 생명에 대한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행동의 역사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고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미래를 향해 힘을 합쳐 생명을 지키는 것을 맹세하고 세계의 평화, 특히 동아시아의 평화가 유지되도록 하나님께 기도를 바친다"는 추도문을 보내왔다.

호세이대학 교수인 나카자와 케이 작가는 "매년 9월 1일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백년전의 참극이 떠오른다"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기원했다.

또 "백년의 시간이 쌓이는 동안 한반도와 일본 사이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은 매일 평화롭고 풍요로운 소망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렇지 못했던 현실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100년간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이 서로 존중하며 사는 시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카지마 쿄코 소설가는 "차별이 일상화된 가운데, 차별받았던 이들로부터 복수당할 것이라는 공포가 최악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100년전 간토학살을 기억했다.

"일본사회에는 차별의식과 표리일체된 외국인에 대한 공포가 지금도 존재한다. 외국인은 '범죄예비군'이라는 편견은 국가 행정이나 법의 이면에조차 숨어있다"며, "이 편견을 극복하지 않는 한 백년전의 학살을 과거의 일로 묘비에 담을 수 없다. 여러번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맹세가 필요하다. 9월 1일은 그런 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일본내 양심적 지식인의 고백을 들려주었다.

야스다 나츠키 '사람들을 위한 대화'(Dialogue for People)부대표는 "100년의 지평에 서서 현재의 (일본)사회를 바라보았을 때 단지 모호하게 '추도'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통감한다"며, "애도와 함께 도쿄도를 비롯한 일본 정부당국이 역사를 직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일본 각지에서 재해가 반복될 때마다 외국인을 비롯한 마이너리티를 가해자로 모는 사실무근의 '소문'이 돌아다닌다. 같은 폭력이 언제 반복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위기감이 흐르고 있다"고 하면서, 이는 "가해의 역사를 외면하는 권력의 태도는 생명을 모독하는 것이고,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생명도 경시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고 지적했다.

요코아미초 공원 내 위령당.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요코아미초 공원 내 위령당.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위령당 내 추모의식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위령당 내 추모의식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요코아미초 공원 정문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요코아미초 공원 정문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금도 요코아미쵸 공원은 지진 발생시 집합장소로 사용된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금도 요코아미쵸 공원은 지진 발생시 집합장소로 사용된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추도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기자]
추도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기자]

한편, 오코아미초 도쿄 도립공원은 1923년 간토대지진 발생 한해전 육군 피복창이 있던 곳으로 당시 많은 지진 피해자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왔다가 때마쳐 불어온 강풍으로 많은 사람들이 불에 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간토대지진 피해자 위령당을 만들고 이후 도쿄 대공습(1945.3.10) 희생자들을 안치해 위령공원이 되었다.

1973년 도쿄도 의회의 찬성으로 '조선인 희생자 추도행사 실행위원회'가 처음으로 이곳에서 공식적으로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 조선인에 대한 추도행사를 진행했고 추도비도 이때 세워졌다. 

추도사(전문)

그때로부터 1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고모는 25살때 작은 삼촌을 가슴에 안고 이곳에서 불길에 휩싸여 죽었습니다.

그리고 몇시간 후 '지진에서 살아남은 조선인'들이 수 많이 일본인들에게 학살당했습니다.

당시 11살이였던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고이시카와 방면으로 도망쳐 오른쪽 반신에 화상을 입으면서도 살아남았습니다.

아버지는 지진 당시의 학살사건에 대하여 '너무하다. '요꼬하마에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어 공객해온다'고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있어. 정말 끔찍한 일이다. 인간이란 무서운 존재다'라고 죽을 때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로부터 100년이 지났습니다.

희생자 여러분, 그리고 추도비건립에 노력하신 여러분, 오늘은 기쁜 일이 있습니다.

제가 기다리던 많은 '일본인 동지'들의 참여입니다. 평화포럼이 실행위원회를 조직하여 년초부터 학습을 거듭하여 오늘 참가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0년전인 1973년에 이곳 위령비가 세워졌습니다. 도립고등학교 교원이였던 저는 조합역원으로서 당시 미노베도정을 지지하고 운동했습니다.

조선인학살은 현실이고,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당시 목격자, 경험자는 우리 주변에 수십만명이 있었습니다. 만약 력사수정주의자가 당시 '학살은 거짓말'이라고 했다면 '거짓말쟁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일본인에 의한 조선인학살'은 과학적으로 말하면 '공리'였던 것입니다.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일본인의 립장과 결의를 표현한 것이 위령비의 비문입니다.

이에 따라 도지사는 매년 '많은 재일조선인이 말못할 피해를 입고 희생된 사건은 우리나라 력사에서도 보기 드문 참으로 가슴 아픈 사건'이라며 비문정신의 실현을 위한 결의를 다짐해왔습니다.

주최측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 진상조사단도 운동단체로서 그 당시 전국적으로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100년을 맞이한 우리는 도쿄도지사에게 '처음으로 요청'을 했고, 14일에 답변이 왔습니다. 거기에는 고모와 같은 '대지진 피해자'와 지진에서 살아남았지만 '극도의 혼란속에 있는 피해자'가 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극도의 혼란속의 희생자'는 '학살당한 조선인'외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추도문을 '보내지 않는다'고 한 것은 잘못입니다.

'많은 학살 희생자'를 낸 '조선인 후손들의 추도식'에 '참석해달라', '추도문을 보내달라'는 매우 정중한 요청에 대해 '대법요'에서 한다는 리유로 거절해 온 태도는 례의가 결여된 잘못된 태도입니다.

8월 15일의 '종전기념일'에 일본무도관에서 '전몰자 위령제'가 열리고, 많은 분들이 참석합니다. 그 자리에서 천황이 '추도 및 위령의 말씀'을 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전쟁희생자들에 대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황 부부는 각지를 돌며 사이판까지 위령의 려정을 통해 전쟁희생자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왔습니다.

유족의 곁에 다가가서 희생자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추모의 뜻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간또대진재 100년을 계기로 앞으로의 운동의 중심을 '사태의 발생을 막지 못한 국가(당시 군대, 국가경찰)와 그 잘못을 뉘우치지 못한 일본인의 책임, 특히 자경단의 정체와 죄, 식민지배에서 비롯된 사건의 본절을 밝혀내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를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선 '극도의 혼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꾜도에 명확히 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학살'의 원인의 뿌리에 있는 식민지지배의 실체, 에도시대와는 다른 메이지정부의 아시아·주변국 멸시의 정책, 학살시의 국제정세와 일본정부의 태도, 마을회란 무엇인가, 자경단을 '선량'으로 규정한 것은 무엇인가, 학살사건에 대한 정당의 움직임, 조선에 대한 정당의 태도 등을 다면적으로 추구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평화, 다문화공생, 인권존중 등의 길을 모색하자고 합니다.

저는 지난해에 피해자 여러분에게 '용기와 힘을 주고 지켜봐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올해부터는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그리고 일체화된 운동을 추진하고 싶다'고 말하겠습니다. 생사를 넘어 서로 손을 굳게 잡고 나갑시다.


[추모비 명문]
추모비에는 문학가 후지모리 나루요시(藤森成吉)씨의 '이 력사를 영원히 잊지 않고 재일 조선인과굳게 손을 잡고 아시아평화를 이루자'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1923년 9월에 발생한 간또대진재의 혼란속에서 잘못된 책동과 유언비어 때문에 6천여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고귀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대지진 50주년을 맞이하여 조선인 희생자들을 진심으로 추모합니다.

이 사건의 진실을 아는 것이 불행한 력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민족차별을 없애고 인권을 존중하며 선린우호와 평화의 길을 여는 초석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사상, 신념의 차이를 넘어 이 비석 건립에 보내주신 일본인의 정성과 헌신이 일본과 조선 량 민족의 영원한 우호의 가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라고 새겨져 있으며, 도의회 각 정당의 간사장, 로동조합 대표와 센다 코레야 씨 등으로 구성된 건립실행위원회의 '학살당한 조선인들에 대한 맹세문'이 있습니다.

2023년 9월 1일

도꾜조선인강제련행진상조사단 일본측대표 니시자와 기요시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 유가족협회 추도사 (전문)

간또대지진 100년 조선인학살희생자추도모임 앞

장장 한세기, 선뜻 헤여보기도 저어되는 세월의 년륜속에 진하게 슴배여있는 간또대지진 조선인희생자들의 눈물과 한숨을 가슴에 안아 보며 조국의 유가족들과 인민들은 희생자들의 령전에 삼가 머리숙여 추모의 인사를 드립니다.

100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우리 유가족들도 몇번이나 대가 바뀌고 억울하게 숨진 선조들의 모색조차 희미해졌지만 우리의 마음에는 그날의 참화가 결코 지나간 옛일이 아닙니다.

살길을 찾아간 땅에서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생죽음을 당한 우리 선조들의 원한이, 간또땅 그 어딘가에 묻혀있을 혈육을 부르며 눈을 감지 못하던 부모들의 슬픔이 우리의 가슴에 피멍으로 맺혀있습니다.

어찌 유가족들뿐이겠습니까.

온 조선민족이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마저 조선민족 말살에 악용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잔인성에 치를 떨며 수난자들의 원한을 풀지 못해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분노를 더욱 더 끓게 하는 것은 일제가 패망한지도 80년이 가까워오는 오늘까지 억울하게 살해된 수만명의 조선사람들의 령혼을 향해 일본의 당국자들이 단 한번도 사죄나 추모의 인사를 드린 적 없고 오히려 그 유가족들인 재일조선인들을 그때처럼 차별하고 박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제국주의의 피해국이고 피해자들인 우리 나라와 우리 인민을 함부로 모독하며 파렴치한 반공화국적대시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해도 일본은 저들이 지은 죄악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제 또 다시 100년이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뀐다고 해도 민족수난의 력사를 잊지 않고 그 피값을 기어이 받아내려는 우리 유가족들, 우리 인민의 의지는 추호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일본당국은 간또대지진 조선인희생자들은 물론 히로시마와 나가사끼, 혹가이도와 마쯔시로 일본땅 곳곳에 쓰러진 수천 수천만명의 조선사람들의 원혼이 온 일본땅을 뒤덮고 있으며 수십년 세월 쌓이고 쌓인 우리 유가족들의 저주와 징벌이 일본땅을 노려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기회에 희생자들의 상주가 되고 혈육이 되여 이국의 찬바람으로부터 그들의 넋을 지켜주고 위로해 준 총련 조직과 재일동포 여러분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외롭고 억울한 희생자들에게 있어서 여러분의 따뜻한 보살핌은 조국과 고향의 정든 손길로, 혈육의 사랑과 정으로 간직되였을 것입니다.

정의와 민족을 사랑하는 여러분의 마음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면서 민족의 수난자들을 마음에 안고 사는 조국 인민들과 재일동포들, 인륜을 귀중히 여기는 모든 이들의 위로속에 간또대지진 조선인희생자들의 령혼들이 부디 안식을 찾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조국의 간또대지진 조선인희생자 유가족들의 이름으로.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 유가족협회


주체 112(2023)년 9월 1일

 

일본 정부는 100년 간의 기만을 멈추고, 역사정의 바로 세워 아시아의 공동번영을 향해 함께 나아가자! (전문)

1923년 9월 1일 간토 대지진으로 일본 지진 사상 최대의 피해가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조작된 ‘조선인 습격설’을 확산시키면서 계엄군을 출동시켰다. 

1923년의 계엄령 발동은 허위사실에 근거한 국가명령이었고, 조선인과 중국인은 그 계엄령에 의해 학살당한 것이다. 1923년 국가책임을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 당시 총리는 ‘지금 조사 중’이란 말로 즉답을 회피했다. 

2015년 이후 계속되는 의원들의 질의에는 ‘정부 내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도쿄도 공문관에 소장되어 있는 "간토계엄사령부 상보" 외 관련 기록들에 의하면 당시 군대나 경찰, 신문 등이 유언비어 전달에 기여해 혼란을 증폭시킨 점, 화재로 인한 폭발이나 우물물이 탁해진 일이 생긴 것에 대해 폭탄투척, 독 투척 등 테러 행위에 의한 것으로 오인한 점, 군대나 경찰에 의한 무기사용이나 보호를 위한 연행 등이 유언비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오인하였음을 의원들의 질의과정에서 정부관료가 확인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국가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 정부내 자료가 없다는 말을 계속 되풀이’하며 의회와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더구나 허위사실로 계엄령을 발동하여 군*관*민을 동원하여 조직적으로 학살하였음에도 일본 자경단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며, 피해사실을 조사할 계획도, 유감을 표명할 의지도 없다고 밝히는 것이 일본 정부의 공식입장이라면 이 얼마나 반인도적이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태란 말인가?

더우기 일본 정부는 여전히 한반도 불법강점과 식민지 지배, 강제동원과 일본군 성노예제 등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거부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며, 평화헌법의 전수방위 원칙을 무력화하여 다시 ‘전쟁하는 국가’, ‘군국주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간토 학살의 바탕에 깔려 있던 식민지 조선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 역시 오늘날 재일조선인에 대한 국가 차원의 차별과 폭력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또한 한일 정부는 역사정의와 평화를 향한 양국 시민들의 노력과 열망을 짓밟고 한일군사협력,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에 박차를 가하며 주변국과의 적대를 강요하기까지 하고 있다. 

진정한 화해와 평화는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식민주의의 극복과 역사정의 회복이 전제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역사부정과 왜곡은 또 다른 갈등과 적대를 부추기며 침략과 분쟁의 역사로 되풀이될 수 있다.

한일 양국 간 화해와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일본 정부는 더 이상 간토학살의 국가책임을 회피하지 말라. 
1. 일본 정부는 간토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라. 
1. 일본 정부는 한반도 불법강점과 간토학살, 강제동원, 일본군 성노예제 등 일제 식민지•전쟁 범죄의 진실을 교과서에 올바로 기술하고 교육하라.
1. 일본 정부는 ‘전쟁하는 국가’로 다시 되돌아가려는 군사대국화 정책을 당장 멈춰라. 
1. 일본 정부는 평화롭고 평등하며 공존·공생의 한일 관계를 위해 적극 노력하라.


2023년 8월 23일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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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이재명 단식에 "사법리스크에서 여론 관심 돌리려는 꼼수 시선 적지 않아"

  •  김예리 기자 
  •  
  •  입력 2023.09.01 08:14
  •  
  •  댓글 0



 

[아침신문 솎아보기] 생산·소비·투자 ‘뒷걸음질’에 “정부 전망 장밋빛”

실질임금 역주행, 통계 이래 첫 ‘마이너스 기록’…정부여당 ‘처리수’ 주장

실물경기 동향을 나타내는 생산, 소비, 투자 3대 지표가 7월 일제히 하락했다. 1일 아침신문은 일제히 정부 전망과 달리 하반기 첫 달부터 경기 지표가 1월 이후 6개월 만의 ‘트리플 감소’를 기록하면서 ‘상저하고’ 가능성은 더 멀어졌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현재도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할 것이라는 상저하고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지난 7월 전산업 생산(계절조정)은 전월보다 0.7% 줄었다. 산업 생산은 지난 4월(0.9%) 감소한 뒤 5월(0.7%)과 6월(0.0%) 증가 또는 보합을 보였다. 소비와 투자도 크게 위축됐다. 7월 소비는 전월보다 3.2% 감소해 2020년 7월 이후 3년 만에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설비투자 감소폭은 전월보다 8.9% 감소했고 11년 만에 가장 큰 폭이다.

▲1일 아침신문 1면

▲1일 경향신문

국민일보 “상저하고 흐름에 빨간불”, 서울신문 “빗나간 ‘하고(下高) 전망”, 조선일보 “상저하고 전망 흔들” 등 다수 신문이 경기가 하반기부터 반등하리란 정부 전망이 깨졌다고 했다.

정부는 계절 요인이 크게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예년에 비해 강수 일수와 강수량이 많아 외부 활동이 힘들었다”는 것이다. 또 “중국 경제가 살아나지 않아 수출이 6월보다 7월에 부진했다”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7월 산업생산이 전월 대비 0.7% 감소했지만 월별 변동성이 큰 공공행정을 제외할 때 보합 수준”이라며 소매판매와 설비투자 역시 “기상악화와 차량 개별소비세 변동 등에 따른 일시적 요인에 상당 부분 기인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1일 국민일보

▲1일 조선일보

여러 신문이 이 같은 정부 시각에 우려를 표했다. 민간 연구기관들은 지속적으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1.8%)보다 0.6%포인트나 낮췄다. 한국은행(1.4%), 기재부(1.6%), 한국개발연구원(1.5%), 경제협력개발기구(1.5%), 국제통화기금(1.5%) 등 국내외 주요 기관 전망치와 비교했을 때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했다. “하반기 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민간의 분석과는 적지 않은 괴리감을 가진 ‘장밋빛’ 관측”이라는 지적이다.

▲1일 경향신문

중앙일보는 “일각에선 정부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며 “경기가 상승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는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 말을 전했다. 한국일보는 “경기 반등 열쇠를 쥔 중국경제의 침체 우려가 커지는 데다 주력품목 반도체 수출 회복도 미진”하다고 했다.

 

▲1일 중앙일보

▲1일 한겨레

월급 역주행 “첫 마이너스 기록”

올해 상반기 물가수준을 반영한 실질임금이 전년 동기 대비 1.5% 감소했다. 같은 기준으로 통계를 낸 2012년 이후 처음으로 낸 ‘마이너스’ 기록이다.

고용노동부가 31일 발표한 ‘7월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노동자 1인당 평균 실질임금은 지난 1~6월 월 355만8000원으로 지난해 동기(361만3000원) 대비 1.5% 감소했다. 명목임금이 2.4%(9만2000원) 올랐지만 물가인상 때문에 실질임금이 되레 줄어든 것이다. 9개 신문 중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한겨레가 이 소식을 다뤘다.

상용직과 임시·일용직의 임금 격차도 눈에 띈다. 한겨레는 1·2면, 조선일보는 13면에서 상용직 노동자는 396만 3000원으로 지난해보다 2.5% 늘었지만 임시·일용 노동자는 174만 7000원으로 0.2% 감소했다고 했다.

▲1일 한겨레

▲1일 조선일보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소장은 한겨레에 “실질임금 감소는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이 소폭 오른데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등 외적인 환경 변화에 노동자 임금 상승이 따라가지 못한 결과”라며 “고용구조로는 일용직·초단시간 노동자 등이 늘면 전반적인 실질임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비자발적 이직의 경우엔 임시·일용직이 87%가량을 차지하는 반면, 자발적 이직은 상용직이 83.7%를 차지해 일자리 안정성에 따른 차이가 뚜렷했다”고도 했다.

경향신문은 3면 기사에서 “노동자들 사이에선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지만 내년 최저임금(9860원)은 올해 9620원보다 2.5% 오르는 데 그쳤다. 이는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인상률”이라고 짚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단식에 “당황” “명분 의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부터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한 데 대해 다수 신문이 ‘명분’을 되물었다. 민주당이 국민 지지를 얻지 못한 핵심에 이재명 대표가 있다고 지적했고 일부는 체포동의안 처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배경이 의심된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31일 취임 1주년을 맞은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권의 퇴행적 집권과 민주주의 파괴를 막지 못한 제 책임이 크다. 사즉생의 각오로 국민항쟁을 시작하겠다”고 밝히고 국회 본관 앞 천막에서 단식에 돌입했다. 또 △민생 파괴,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국민 사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 천명 및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 쇄신과 개각을 윤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1일 세계일보

▲1일 세계일보

다수 신문이 이를 두고 ‘리더십 문제 타개 카드’라고 했다. 세계일보는 “김은경 혁신위원회 조기 좌초와 김남국 제명안 부결, 총선 위기론 부상 등에 따른 리더십 위기를 타개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취임 1년을 맞아 제기된 리더십 문제를 ‘대여 투쟁 강화’로 돌파하기 위한 수”라며 “사법 리스크에서 여론의 관심을 돌리려는 꼼수라는 시선이 적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육체적 고통이 따르는 단식에 들어간 당대표에게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기는 부담스럽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1일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이 대표 단식을 두고 기사 제목에 “3중 방탄 단식”이라고 했다. “검찰 수사·당내 사퇴론·국회 체포안” 방어를 위해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사설에선 “이 대표는 자신이 만든 민주당 혁신위 요구도 듣지 않았으면서 남에겐 쇄신을 요구할 수 있나”라고 했다.

한겨레는 “다만 이날 단식 선언을 두고 ‘사법 리스크’ 국면 전환용이라는 말이 나오는 건 피할 수 없었다”며 “지난 1년간 민주당이 대안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의 핵심에는 이 대표가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방탄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논란’과 김남국 의원 가상자산 보유 파문 등에도 미온적 태도로 일관했다. 윤석열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지지율이 낮음에도, 민주당에 국민 지지가 모이지 않는 것에는 이런 점들이 작동한 탓”이라고 했다.

▲1일 한겨레 사설

국민일보는 이 대표의 갑작스러운 단식 투재이 “당황스럽다”며 “야당 대표가 단식으로 국정 쇄신과 개각을 요구하는 것도 이상한 풍경이다. 단식 명분이 설득력이 떨어지다 보니 여권에서 ‘개인 비리 수사에 단식으로 맞서는 것’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1일 국민일보

한국일보도 “이틀 전 검찰 소환을 거부한 이 대표는 11일 이후 출석 입장을 밝혔지만, 검찰은 다시 4일 소환을 통보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무기한 단식으로 이 대표 건강이 악화된다면, 검찰은 소환 조사나 구속영장 청구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며 “문제는 이 대표가 자신의 사법리스크를 당 전체와 연결시킨다는 점”이라고 했다.

▲1일 한국일보 사설

일 오염수를 처리수로 하자는 여권

정부와 국민의힘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출되고 있는 ‘오염수’를 ‘오염 처리수’로 바꿔 부르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우리바다지키기 검증 TF’ 성일종 위원장은 지난 30일 “정치 공세를 위해 오염수라 부르고, 핵 폐수라 부르는 것”이라며 용어 변경을 공식화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30일 국회 답변에서 “알프스(ALPS·다핵종제거설비)를 거쳐서 ‘처리된 오염수’가 과학적으로 맞는 표현”이라며 “용어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3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오염수를 처리하기 전의 오염수와 처리한 다음의 오염수는 방사성 물질 등 여러 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구별해서 부르는 것이 보다 과학적”이라고 했다.

▲1일 한국일보

경향신문과 한겨레, 동아일보, 한국일보 등이 이 사안을 다뤘다. 한국일보는 이를 두고 “방류 전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라며 “일본의 방류에 면죄부를 준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제해사기구(IMO) 런던협약·의정서 총회’에서 일본의 협약 위반 여부를 다퉈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폐기물 투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중재절차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장관은 “현재로는 해양 투기로 보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일본 정부도 그런(희석했다는) 이유로 ‘처리수’ 또는 ‘오염 처리수’라고 쓰고 있긴 하다. 오염수라는 용어가 수산물 기피 심리를 과도하게 자극하는 면이 있다면 수산업 종사자들의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명칭을 변경할 수도 있다”며 “그러나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일본의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방류로 인해 우리 국민 피해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수산물 소비 감소로 판로가 끊기면서 생계를 위협받는 국민이 늘고 있는데, 방류가 언제 끝난다는 기약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일본 정부에 추가 안전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게 맞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까지 수산업계 피해가 ‘가짜 뉴스와 허위 선동’ 때문이라며 야당과 언론에만 화살을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이날 예비비 800억원을 긴급 투입하는 피해 구제 대책을 내놓은 것을 두고 “방류 기간은 30년 이상이다. ‘일본 정부가 끼친 피해를 왜 우리 국민 세금으로 언제까지 메워야 하느냐’는 비판이 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1일 경향신문

경향신문은 “한국 정부가 방류 1주일 만에 처리수로 방향을 트는 것은 독단적이고 성급하다. 향후 수십년간 이어질 원전 폐로와 오염수 방류에 대해 그나마 인접국이 쥐고 있던 ‘제한적인 발언권’마저 포기하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도쿄전력이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지 않았다면 애초 생겨나지 않았을 불안감이다. 그런 불안감엔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했다.

▲1일 조선일보

한편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반일이 곧 정의’이며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는 악의 산물’이라는 믿음 때문에 수산업계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라며 처리수라는 단어를 썼는데, 조선일보는 8면 <尹, 우럭탕 싹 비우고 ‘국물 추가’> 보도에서 이를 인용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의 방문을 두고 “대통령의 노량진수산시장 방문은 1927년 경성수산 개장 이래 96년 만에 처음”이라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한 불안감을 해소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김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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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홍범도함 논란’ 질문하는 야당 의원에 사상 검증 역공

한덕수, 기동민 의원에게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 빼려는 거 아니죠? 아니시죠?”

기동민 의원 질의에 답하는 한덕수 국무총리 ⓒ국회방송 화면 갈뮐

 

홍범도 장군

홍범도 장군이 봉오동전투 등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뒤, 일본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독립군은 물론이고, 민간인까지 무차별로 살해했다. 홍 장군은 수천 명이 죽는 간도참변을 겪은 후 러시아로 향했다. 타국에서 한인사회를 건설하여 독립운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소련 공산당에 입당해야 했다. 그는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다. 하지만 레닌 이후 최고지도자가 된 스탈린은 한인들을 반사막지대인 지금의 카자흐스탄으로 쫓아냈다. 홍 장군은 1943년 10월 일본 패망과 독립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홍 장군의 공산당 입당은 소위 ‘친일파’로 거론되는 이들처럼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독립과 한인사회 건설을 위한 일이었다. (▶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무장독립투쟁의 전환기’와 ‘강제이주와 쓸쓸한 말년’ 참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입당 경력을 문제 삼아 해군 잠수함인 ‘홍범도함’의 함명 변경을 시사했다. “극우적 역사관에서 기인한 것 아니냐”라고 비판하는 야당 국회의원에게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고자 하는 것 아니냐?”라며 사상을 검증하려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한 총리는 3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국체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야당의원 사상검증
“자유 빼려는 거 아니지?”


이날 예결위에서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홍범도함 개명 논란에 관해 질문했다.

홍범도함은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건조된 신형 잠수함이다. 그런데 최근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등 독립전쟁 영웅 흉상 철거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데 이어, 홍범도함 함명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이 과거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었다는 이유를 문제 삼았다.

이날도 한 총리는 당연히 잠수함의 함명을 변경해야 한다는 취지로 강변했다.

▷ 기동민 : 정부 입장에서 홍범도 잠수함 개명 문제 검토하고 있습니까?
▶ 한덕수 : 국방부에서 검토하리라 생각하고요. 군함에다가 그 전 소련에 공산당원의 자격을 가진 사람을 ... 저는 그거는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기동민 :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잠수함을 개명한 사례가 있습니까?
▶ 한덕수 : 글쎄요. 전 세계 사례가 어떤지는 저희한테 중요할 게 없습니다.
▷ 기동민 : 중요하죠.
▶ 한덕수 : 우리의 주적과 전투해야 하는 그 군함을 상징하는 ..
▷ 기동민 : 사례가 두 가지가 있는데, 나라가 망했거나, 히틀러 같은 독재자들이 마음대로 잠수함의 명칭을 개명하는 거죠. 대한민국이 망했습니까?
 

한덕수 국무총리가 31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8.31. ⓒ뉴스1


‘민생을 챙겨야 할 시기에 극우적 역사관으로 이념문제를 전면에 내세워야 하느냐’는 취지의 질문에는 “우리 국가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독립전쟁 영웅 흉상 철거와 홍범도함 개명 등을 검토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역사관과 이념이 “우리의 국체”라며, “어떻게 국체를 극우라고 표현할 수 있느냐”고 반발했다.

▷ 기동민 : 국방부 설명에 의하면 창군 이후 사람들로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1910년 돌아가신 안중근 의사의 탑이 거기 세워져 있어요. 어제 운영위에서도 논란됐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논란과 지적이 반복될 때마다 기준이 추가돼요. 전향됐기에 상관없다, 경제발전에 이바지했기에 상관없다, 도대체 무엇이 윤석열 정부의 기준입니까?
▶ 한덕수 :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확한 국체는 자유민주적기본질서입니다. 그렇게 봤을 때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헌법 제1조에 의한 민주공화국에 맞지 않는 일은 당연히 고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제 대답입니다
▷ 기동민 : 그게 기본신념에 맞지 않는다?
▶ 한덕수 : 주적과 싸워야 하는 군함이!
▷ 기동민 : 한쪽의 지극히 편협한 보수적이지 못해 극우적 역사관에 기인하는 겁니다. 왜 그걸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내각을 총괄하는 총리까지 그런 극우적 인식을 국민에게 설파하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 한덕수 : 그걸, 대한민국의 기본적인 우리의 국체를 어떻게 해서 도대체 극우라고 표현하는 겁니까!?

한 총리는 기 의원에게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고자 하는 것이냐?”라고 반문하며, 기 의원의 사상을 검증하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 기동민 : 독립투사 5인에 대한 흉상을 이전할 것인가 철거할 것인가 이런 걸 당장 백지화하는 게 맞습니다. 건의도 총리가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 한덕수 : 의원님 질문 들으면서,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고자 하는 그런
▷ 기동민 : 전혀 그런 말씀 드린 적도 없고요.
▶ 한덕수 : 그건 아니죠? 그건 아니시죠? 자유를 빼고자 하는 건 아니죠~?
▷ 기동민 : 다시 질문드립니다. 민생이 중요한데, 국민을 이념 대립의 논쟁으로 비화시키는 잘못된 논쟁에 대해 백지화를 선언할 혹은 대통령에게 건의할 의향 있습니까?
▶ 한덕수 : 우리의 국체를 지키는 일이라면, 그런 건 거의 할 생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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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그런 식이면 농업정책 파탄’…이균용, 해명과 정반대 판결했다



등록 2023-09-01 05:01

수정 2023-09-01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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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농지법(농지개혁법) 위반 의혹에 대해 이균용(61) 대법원장 후보자가 ‘취득 당시 잡종지처럼 쓰여 법 위반’은 없었다고 해명한 가운데, 과거 이 후보자가 해명과 반대되는 판결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 후보자는 “농지로 회복 가능한 땅은 농지로 봐야한다”고 판결했는데, 이 후보자가 ‘잡종지’라고 주장한 땅은 원상회복이 가능한 땅이었다.

31일 한겨레가 확인한 2011년 서울고법 판결문을 보면, 2011년 서울고법 민사26부 재판장이었던 이 후보자는 “지목(땅의 용도)이 전(밭)인 토지의 경우에, 농지로 쓰이지 않더라도 그 변경 상태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고 농지로서의 원상회복이 이뤄질 수 있다면 그 토지는 여전히 농지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개인과 재단법인이 밭 증여로 놓고 벌인 ‘소유권이전 등기 등’ 소송으로, 재단법인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느냐가 쟁점이었다. 이 후보자는 해당 땅을 농지로 보고 개인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이 토지에 농작물 경작 흔적은 없었고 경사가 있어 밭으로 이용하기 어려웠지만 나물류 등을 재배할 수 있고 나무가 자라던 상황이었다.

이 후보자는 ㄷ씨 쪽의 손을 들어줬는데, 당시 이 후보자는 “옛 농지개혁법에 따르면 어떤 토지가 ‘농지’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토지의 사실상의 현상을 기준으로 정해야 하지만, 이 같은 현황주의를 철저하게 하면 실력으로 비농지를 만들어 국가의 농업정책에 파탄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판결내용대로라면, 이 후보자가 1987년 구입한 땅은 ‘농지’라는데 무게가 실린다. 이 후보자는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1987년 장인과 처남 등 3명과 함께 지분 4분의 1씩 나눠 부산 동래구 명장동 530-2번지 땅을 구입했는데, 땅의 지목은 ‘답’(논)으로, ‘농지’였다. 국토교통부의 국토정보 플랫폼 항공사진을 보면, 1996년 부산 동래구 명장동 530-2번지 땅은 나무나 숲이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이었다. 건물이 올라가는 등 농지로 원상회복이 불가한 상태가 아니었다.

대법원의 최근 판례도 지목이 농지인 땅이 다른 용도로 쓰인다고 해서 농지가 아니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2021년 대법원은 “법적 지목과 관계없이 실제 경작에 사용하는 토지의 현황에 따라 판단하도록 한 농지개혁법, 농지법의 취지는 농지를 보전하고 그 이용을 증진하고자 하는 것이지, 농지가 불법 전용돼 다른 용도로 이용된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농지에서 제외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 땅의 상태에 따라 농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힌 이 후보자의 판결도 있었다. 농지법에 따라 농지를 살 수 없는 법인이 직원 명의로 농지를 구매했다가 부동산실명법 위반으로 과징금을 물게 된 사건에서, 이 후보자는 “농지로서의 현상을 상실했고 그 상실 상태도 일시적이라고 볼 수 없어 이를 농지법에서 정한 농지라고 할 수 없다”며 “이 토지에 농지법이 적용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이 땅과 관련한 농지법 위반 혐의 수사를 했던 검찰은 땅에 쓰레기가 매립돼 있어 농지로서의 기능이 완전히 상실됐다고 판단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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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제르 쿠데타, 반프랑스 민중항쟁 촉발

  • 장창준 객원기자
  •  
  •  승인 2023.08.31 22:27
  •  
  •  댓글 0
  •  
  • 

    우리 사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연출되고 있다. 니제르 군부가 프랑스를 반대하는 민중의 시위를 엄호하며 반프랑스 투쟁을 함께 하고 있는 것. 미국을 반대하는 민중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군·경이 동원되었던 우리 사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지난 7월 26일 니제르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모하메드 바줌(Mohamed Bazoum) 대통령을 축출했다. 바줌은 현재 군부에 의해 구금된 것으로 전해진다.

    2021년 출범한 바줌 정권은 친프랑스 정책을 추진했다. 바줌 정권은 프랑스를 반대하는 니제르 민중의 시위를 진압하고, 더 많은 프랑스 군인을 ‘초청’함으로써 프랑스 꼭두각시라고 불려 왔던 인물이다.

    바줌을 추출하는 쿠데타의 주역은 바줌의 경호 대장 압두라흐마네 치아니(Abdourhmane tchiani)이다. 치아니는 바줌 축출 이후 국가수호위원회(CNSP) 의장이 되어 정권을 장악했다.

     

    니제르 민중, 쿠데타 지지하며 반프랑스 운동 활발히 전개

    쿠데타가 발생하자 반프랑스 운동을 전개했던 니제르 민중은 쿠데타 지지를 선언하며 반프랑스 투쟁을 적극화하고 있다. 쿠데타 발생 직후부터 수도 니아메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 앞에 모여 쿠데타를 지지하는 한편, 프랑스 국기를 불로 태우면서 “프랑스를 타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 개최된 쿠데타 지지 시위. 한 참석자가 "프랑스 타도, CNSP 만세" 피켓을 들고 있다.

    8월에 접어들면서 이들의 시위는 더욱 격화되었다. 프랑스 대사관에 이어 시위대가 향한 곳은 프랑스 군대 기지였다. 니아메 외곽에 위치한 프랑스군 기지에 연일 수천 명의 인원이 모여들어 프랑스 군대 철수를 주장했다. 쿠데타 이후 사실상 반프랑스 민중항쟁이 진행되고 있는 셈.

    1904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던 니제르는 1960년에 독립했다. 비록 독립국이었지만, 니제르는 프랑스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그 결과 오랫동안 친프랑스 세력이 니제르 정치를 주도했으며, 니제르 민중들은 반프랑스 운동을 오랫동안 전개해 왔다.

    우리 언론은 관심을 두지 않지만, 현지 상황을 보도하는 외신은 아래와 같은 니제르 민중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들은 우리 말을 들어야 한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저항할 것이다.”

    "우리는 프랑스군이 니제르에 주둔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형제, 우리 아버지, 우리 아이들을 죽였다. 프랑스인들은 떠나야 한다."

    치아니 정권, 프랑스에 수출 금지령 내리고 프랑스 대사관 추방 결정

    그렇다면 쿠데타에 성공하여 집권한 치아니 군부 정권은 이들 니제르 민중에 어떤 조처를 했을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은 집권 군부가 반프랑스 민중항쟁을 탄압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치아나 정권은 그들을 탄압하지 않았고, 오히려 프랑스를 니제르에서 몰아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군부 쿠데타 성공 이후 치아니 정권이 처음 취한 조치는 축출된 바줌 정권이 프랑스와 체결한 모든 군사 협약을 파기한다는 선언이었다. 프랑스는 1,500명 정도의 군대를 니제르에 주둔시키고 있고, 그 기지에는 1,100명의 미군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치아니 정권의 요구는 표면적으로 프랑스 군대 철수이지만 이는 미군 철수가 수반되는 조치인 셈이다.

    ▲ 니제르 군부의 반프랑스 정책은 니제르 민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 8월 6일 쿠데타의 주역 치아니가 지지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치아니 정권이 취한 다음 조치는 프랑스에 대한 수출 금지령이었다. 7월 31일 새로운 정권은 프랑스에 대한 우라늄과 금의 수출을 금지했다. 니제르는 세계 최대 우라늄과 금 생산국 중 하나이다. 프랑스는 니제르 경제를 장악하여 이들 광물 자원을 통제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우라늄, 석유, 금 등 우리나라의 모든 부를 착취했다”, “니제르 국민들이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없는 것은 프랑스 때문”이라는 니제르 민중의 성토가 외신에 보도되기도 했다.

    다음으로 취해진 조치는 니제르 주재 프랑스 대사관 추방령. 그러나 프랑스는 치아니 정권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추방령을 거부했다. 결국 치아니 정권은 8월 27일 프랑스 대사관에 전기와 물 공급을 차단했다. 프랑스 대사관과 군사 기지에 물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사람도 “주권 국민의 적”으로 취급할 것이라는 입장도 발표했다.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정권이 민중과 함께 반외세 자주화 투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반제 자주 세력과 제국주의와의 전쟁 위기 고조

    제국주의자들이 제국주의 지배에 부역했던 현지 정치세력을 앞세워 반외세 자주화 투쟁을 억압하고 진압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법칙이다. 프랑스와 미국은 치아니 정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이미 피력했고, 군사 개입을 시사했다. 과거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15개 나라로 구성된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역시 군대 동원을 언급하며, 니제르 쿠데타 세력을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 8월 3일 미 국무장관 블링컨은 축출된 바줌 정권의 복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트윗을 올렸다.

    미국과 프랑스의 지원을 받는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 국가수반들은 8월 10일 “연합대기군 배치”를 명령하고 자기 나라 참모총장들에게 “즉시 기동”을 지시했다. 연합군 지휘관들은 군사 기동을 위해 8월 12일 회의를 가질 예정이었다. 아프리카에서의 전쟁이 임박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 회의는 무기한 연기되었다.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 소속 일부 국가들이 군사 개입과 지원을 거부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가나에서 대규모 반전 집회가 일어났고 가나 의회는 병력 배치를 반대했다.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나이지리아에서도 반전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나이지리아 의회에서 군대 배치 계획을 거부했으며, 나이지리아 시민들도 반전 시위에 나섰다. 나이지리아 반전 시위대는 “니제르인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니제르 침공은 서방 군의 음모(a plot by Western forces)”라고 주장했다.

    니제르 접경국들은 군사 개입을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니제르와 함께 반제국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니제르 접경국들은 최근 쿠데타에 성공하여 새로운 정권이 등장한 나라들이다. 말리는 2020년에, 기니는 2021년에, 부르키나파소는 2022년에 군부 쿠데타가 발생해 각각 외세 추종 정권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이들 삼국과 니제르는 서아프리카에서 강력한 ‘반제국주의 벨트’를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 빨간색 표시 국가는 '반제 연대'를 구축하는 니제르, 말리, 기니, 부르키노파소. 회색 표시는 니제르 군사개입을 시도하는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 소속 국가.

    이들의 ‘반제 연대’는 상당히 견고해 보인다. 미국과 프랑스 그리고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 국가들이 군사 개입을 모색하자 니제르 군부 정권은 8월 25일 “대규모 기습을 피하기 위해” 니제르군에 “최대 경보”를 발령했다. 전쟁 불사를 천명한 셈이다.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정권은 “니제르에 대한 무력 개입을 거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니제르 실권자가 된 치아니는 부르키나파소와 말리의 군대가 나이지리아 영토에 개입할 수 있는 조치를 승인했다. 부르키나파소와 말리 군대가 나이지리아를 공격하기 위해 니제르 영토를 통과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다. 치아니는 8월 26일(현지시각) 토요일 “우리에 대한 공격이 가해지면 (상황은) 공원 산책이 아닐 것”이라며 격렬한 군사적 대응이 시작될 것임을 암시했다.

    니제르 쿠데타로 촉발된 아프리카의 위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 쿠데타 이전으로 돌리려고 하는 외세의 군사적 개입을 ‘반제국주의 벨트 역량’이 억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언제 아프리카에서 대규모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아프리카 전쟁 위기는 서아프리카에서 제국주의 세력을 축출하려는 반외세 자주 세력과 제국주의 세력 간의 치열한 정치·군사적 대결의 성격을 띠면서 고조되고 있다.

     

    니제르 시위 현장에 나부끼는 러시아 국기와 인공기

    프랑스를 타도하자는 구호가 외쳐지는 시위 현장에 러시아 국기가 휘날리고, “푸틴 만세”라는 피켓이 등장하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아프리카를 침략했던 국가와 달리 아프리카에 우호적인 접근을 하는 러시아에 대한 호감이 표현된 것으로 해석된다. 러시아는 최근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힘을 쏟아 왔다. 지난 7월 말 러시아는 아프리카 50여 개 국가와 정상회의를 진행한 바 있으며, 남아공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푸틴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식량 공급을 늘리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 니제르 시위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러시아 국기와 "푸틴 만세" 피켓.

    한편 최근 북 인공기가 니제르 시위 현장에서 펄럭이는 장면이 포착되어 눈길을 끌었다. 8월 28일 니제르 시위 현장을 소개하는 한 영상이 트윗에 올라왔다. 24초 분량의 이 영상 초반에 니제르인이 인공기를 들고 있는 장면이 스치듯 지나간다. 그 배경은 아직 확인되지 않지만, 미 제국주의에 맞서 정치·군사적 대결을 펼치고 있는 북에 대한 연대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 니제르 시위대가 들고 있는 북 인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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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해병대 수사관들, '이첩 보류' 부당한 외압으로 인식했다

'외압' 들어오자 오히려 사단장 수사내용 100페이지 이상 보강...'VIP 격노' 발언도 공유한 듯

23.08.31 15:46l최종 업데이트 23.09.01 00:03l
큰사진보기박정훈 해병대 전 수사단장이 8월 28일 오후 항명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에 출석 하기 위해 변호인과 함께 도착하고 있다. 박 전 수사단장은 지난 7월 경북 예천에서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중 숨진 해병대 채 모 상병 관련 수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지 말고 보류하라는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혐의(군형법상 항명)로 입건됐다.
▲  박정훈 해병대 전 수사단장이 8월 28일 오후 항명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에 출석 하기 위해 변호인과 함께 도착하고 있다. 박 전 수사단장은 지난 7월 경북 예천에서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중 숨진 해병대 채 모 상병 관련 수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지 말고 보류하라는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혐의(군형법상 항명)로 입건됐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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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대령 이외에 해병대 수사단 다른 구성원 역시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외압이 있었음을 파악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의 경찰 이첩 보류 지시가 있었던 7월 31일 직후부터 해병대 수사단은 'VIP 지시'를 부당하다고 판단하고 혐의자에서 임성근 해병1사단장을 빼지 못하도록 수사내용을 100페이지에 걸쳐 보강했다는 것이다. 

박 대령의 법률대리인 김정민 변호사에 따르면 박 대령은 '지난 7월 31일 오전 대통령 주재 비공개 회의 도중 수사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윤 대통령)가 격노하면서 특정인을 혐의자에서 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취지의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의 언급을 다른 수사관들과 공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광역수사대 수사관, 이첩 보류 지시 후 사단장 혐의 보강"

<오마이뉴스>가 31일 입수한 박 대령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의 내용 중에는 "특히 1광역수사대 수사관 OO OOO은 '사령관으로부터 VIP에서 국방부장관에게 말하여 피혐의자에서 1사단장을 빼라고 지시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피혐의자에서 1사단장을 제외하지 못하도록 이첩 보류 지시가 있었던 2023. 7. 31 이후인 2023. 8. 1에 사단장의 혐의와 관련된 내용들을 100페이지 이상 보강한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다"는 설명이 있다. 

영장의 이 내용은 국방부 검찰단이 박 대령의 항명 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해병대 수사단 수사관의 진술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첩을 강행하기까지 수사관들의 행동 이유와 배경을 설명한 것.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첩 보류 직후부터 박 대령을 포함한 해병대 수사단이 'VIP 지시'를 기정사실화 할 만큼의 정황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점이다. 

한 가지 더 분명한 것은, 'VIP 지시'에 맞서는 걸 무릅쓰면서까지 보강조사를 벌일만큼 1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지시가 부당하다고 해병대 수사단 구성원들이 판단했다는 점이다.   

보강조사는 장관 결재 이틀 뒤인 지난 1일에 진행됐다. 이날은 해병대 수사단의 사건 처리 보고서 경찰 이첩 보류 여부와 보고서에 적시할 혐의자, 혐의 내용 등을 두고 국방부와 해병대 수사단의 실랑이가 한창 벌어지던 때였다.  

해병대수사단은 임성근 해병1사단장을 빼라는 지시에 맞서 오히려 혐의를 보강하기 위해 보강조사를 벌였고, 이 서류들은 지난 2일 경북경찰청으로 이첩됐다.

김 변호사는 최초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결재받은 보고서만으로도 해병대 1사단장에 대한 과실치사 혐의가 충분했지만, 상부에서 해병대 1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라는 압력이 계속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뺄 수 없다는 점을 보강하기 위해서 해병대 수사단이 보강조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군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해병대 수사단 수사관들이 경찰 이첩 보류 지시를 부당한 외압으로 인식했다는 정황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변호사는 "이첩의 주체인 해병대 O광수대장은 '만약 수사단장이 이첩을 보류하라'고 해도 나는 그 명령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부당한 이첩보류 지시는 결코 듣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군 검찰에 진술했다고 전했다.

군 형법상 항명 혐의를 받고 있는 박 대령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오는 9월 1일 오전 10시 용산 국방부 영내 군사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박 대령은 피의자 심문을 하루 앞둔 이날 국방부 검찰단의 사전구속영장 청구가 정당한지를 판단해달라며 군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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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P가 '쾅쾅쾅쾅'했다고..." 박정훈 대령 육성 녹취 공개  https://omn.kr/25f2u
- 박 대령 측 "외압 증거 녹음 틀자 군 검사가 당황해 제지" https://omn.kr/25e2c 
- [단독] 박 대령이 "정말 VIP가 맞느냐" 묻자, 해병대사령관은 고개 끄덕였다 https://omn.kr/25e7i
 
태그:#박정훈 대령#고 채 상병#VIP#해병대 수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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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과 룰라가 갈등?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벌어진 일들

브릭스의 다양한 목소리, 다극화의 징표

8월 22일부터 남아공에서 브릭스 정상회의가 열렸다. 지난 6월 일본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비해 우리 언론은 그다지 비중 있게 보도하지 않았다.

그나마 언론이 보도한 것은 브릭스의 ‘균열’ 양상. 시진핑이 반미, 반서방 전선 강화를 위해 브릭스 회원국 확대를 강조했지만, 브라질과 인도 정상은 미국과 서방의 관계를 중시하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 우리 언론은 브릭스 '균열상'을 보도하는 데 급급했다.

균열 아닌 다양성, 다극화의 징표

브릭스 정상들이 하나의 일치된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과 전략 대결을 펼치고 있는 중국의 시진핑은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을 제멋대로 탄압”하는 미국을 지칭하며 반미 연대를 강조했다. 이에 반해 자국 경제 성장을 우선하는 브라질 룰라 대통령과 인도 무디 총리는 미국과의 협력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발언을 했다. 룰라는 취임 후 미국과의 관계 회복에 나섰고, 인도는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 가입국이다. 이 국가들이 미국에 대한 시각과 입장이 같을 수 없다.

▲ 8월 22~24일(현지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제15차 브릭스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문제는 이런 시각 차이가 브릭스 공동가치인 ‘탈달러’, ‘다극화’와 충돌하는가에 있다. 브릭스 정상들은 이번 회의에서 6개국을 신규 회원국으로 승인하고, 회원국 화폐 사용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이견이 공동가치와 충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의장국이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 라마포사 대통령이 언론 브리핑에서 언급한 것처럼, 브릭스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지만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비전을 공유하는 국가들의 동등한 파트너십”이다.

요약하자면 반제·반패권에서는 일정한 의견 차이가 있지만, 탈달러화, 다극화에 대해서는 거의 일치된 견해를 갖는다. 브라질 룰라 역시 정상회의에서 “브릭스는 역내 경제를 달러화로부터 디커플링 하기 위해 역내 협력을 늘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일극 패권을 거머쥐고 있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서 ‘이견’은 허용되지 않았고, 이견의 표출은 곧 ‘균열’로 해석되었다. 우리가 익히 보아온 한미,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은 동일한 목소리를 내야만 했다.

그러나 브릭스가 추구하는 다자주의에서 이견은 하나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견이 곧 균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견의 존재는 다양성의 징표이다. 다양성은 다자주의의 전제이다. 우리 언론이 부각하는 시진핑과 룰라의 이견은 그 자체로 브릭스가 다자주의를 추구하고 있다는 징표가 된다.

탈달러, 다극화로 전진하는 브릭스: 요하네스버그 선언의 주요 내용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요하네스버그 선언은 브릭스 국가가 탈달러, 다극화로 전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에 채택된 요하네스버그 선언은 서문과 포용적 다자주의를 위한 파트너십, 평화와 발전을 위한 환경 조성, 동반 성장을 위한 파트너십,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파트너십, 인적교류 심화, 제도의 발전을 주제로 다룬 6개 분야에 대한 합의 내용이 담겨있다.

선언은 서문에서 브릭스 정신을 강조했다. “상호존중, 이해, 주권평등, 연대, 민주주의, 개방, 포용, 협력 그리고 합의”라는 내용을 가진 브릭스 정신에 따라 “정치와 안보, 경제와 금융, 문화와 인적교류의 세 가지 기둥 아래 브릭스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평화, 공정한 국제질서, 활력 넘치는 다자시스템 그리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증진하기 위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6개 분야의 세부 합의가 지향하는 것은 다자주의와 탈탈러였다. 그 대표적인 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선언은 다자주의에 대한 강력한 지향이 담겨있다. 브릭스 정상들은 평등과 상호존중의 원칙에 따라 공동 이익에 대해 협력을 강화하고 특히 안전보장이사회를 포함한 유엔의 포괄적 개혁을 지지한다고 표명했다.

또한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다자주의와 유엔의 중심적 역할을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거부하고, 모든 국가가 평등하게 권리를 행사하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추구하는 브릭스의 의지가 피력된 것이다.

경제, 사회 영역에서도 다자주의가 강조되었다. 선언은 다자간 금융기관과 국제기구를 장려하며, 기후변화에 대한 다자간 대응을 강조했다. 이번 선언에 다자(multi)라는 단어는 18번 등장한다.

선언은 다음으로 브릭스 국가 간 협력의 구체적 방안을 피력했다. 이 대목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브릭스 국가 간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공급망과 결제 시스템을 서로 연결하고, 더욱 효율적인 결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대화를 지속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브릭스 정상들은 통화와 결제 시스템에 대한 보고서를 다음 정상회의까지 보고하도록 각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농업 협력을 강조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선언은 브릭스가 세계 식량의 1/3을 생산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탄력적인 식량 공급망 구축을 위해 협력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면서 식량 공급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는 현실에서 아프리카 등 식량 부족 국가들은 이들의 농업 협력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될 것이다.

▲ 15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요하네스버그 선언의 주요 내용. 이 선언은 총 94개 항으로 이뤄져있다.

브릭스 도외시, 윤석열 정부의 패착

브릭스의 규모는 더 확대될 것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5개국은 브릭스 파트너 국가의 모델과 파트너 국가 목록을 작성하고, 이것을 내년 16차 정상회의 때 보고 하도록 외무장관들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신규 회원국 확대에 대한 브릭스 국가들의 의견 차이는 이 과정을 통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40여 개국이 브릭스 가입을 신청하거나 가입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6개국이 가입 승인이 났으니, 회원가입 후보국은 여전히 30여 개국에 이른다. 그리고 이번 남아공 정상회의에 50개 가까운 아프리카 국가들이 참관했다는 점에서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새롭게 회원 가입 의사를 피력할 가능성도 있다.

브릭스의 영향력 또한 커질 것이다. 이미 브릭스 5개국이 세계 GDP의 1/3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회원국의 확대는 브릭스 국가들의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은 더욱 커질 것이다. 구매력 기준 GDP 총합에서 브릭스는 이미 G7을 따돌렸다. 브릭스 국가와 G7 국가 사이의 GDP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 세계은행이 2022년에 발표한 각국의 실질GDP 추정치로 브릭스 5개국과 G7의 실질 GDP 총액을 비교한 결과, 브릭스가 G7을 6조 달러 앞섰다.

브릭스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커지는 속도에 따라 탈달러와 다극화의 속도 역시 빨라질 것은 자명하다. 정치·경제적으로 혼란과 불확실성이 증대하고 있는 현실은 브릭스 국가와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이들과의 정치·경제적 협력을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신냉전의 늪에 빠져 미국·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며, 브릭스와의 관계는 등한시한다. 브릭스 협력이 강화할수록 윤석열 정부의 시대착오적 정책이 실패로 귀결되는 시간은 앞당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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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홍범도 흉상 이전에 어리둥절해 하는 국민 적지 않다"

  • 박서연 기자 
  •  
  •  입력 2023.08.31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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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0



 

[아침신문 솎아보기] 조선일보 “홍범도 흉상 문제 평지풍파는 국정에 도움 안 돼”

김의철 KBS 사장 해임제청안 상정에 경향 “이동관표 폭주 시작”

거액의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 논란에 휩싸인 김남국 무소속 의원이 제명을 면했다. 30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소위원회는 김남국 무소속 의원 제명 징계안을 두고 투표했다. 이날 오후 이양수 국회 윤리특위 제1소위원장은 소위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김남국 의원 제명 징계안에 대해 가결 3표, 부결 3표로 동수가 나왔다. 과반이 되지 않아 김 의원에 대한 제명안은 부결됐다”고 밝혔다. 윤리특위 소위는 여야 의원 각각 3명씩 6명으로 구성되는데, 징계안은 4명 이상 찬성해야 전체회의로 넘어갈 수 있다.

31일 아침 신문들은 대부분 이 소식을 1면에 다뤘다. 또 사설로 민주당을 향해 ‘제 식구 감싸기’ ‘공당 자격이 있느냐’ 등의 비판을 했다. 한겨레는 민주당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국민의 대표를 국회가 제명하는 것은 조심스럽게 접근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31일 아침 신문들 1면.

 

민주당 반대 김남국 제명안 부결에 한겨레 “조심스레 접근해야”

앞서 지난 22일 윤리특위 소위는 김남국 의원의 징계 수위를 결정하려 했다. 그러나 김 의원이 소위 개회 30분 전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이 소식을 들은 민주당이 표결을 한 차례 미뤘다.

한겨레는 5면 <김남국 제명안 결국 부결... 민주당 또 ‘제 식구 감싸기’> 기사에서 “표결은 무기명으로 이뤄졌으나, 부결표는 김 의원이 원래 소속돼 있던 민주당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윤리특위 야당 간사인 송기헌 민주당 의원은 ‘의원들 논의에서 유권자들이 뽑은 선출직의 특성상 제명하기엔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정치적인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점도 참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31일 한겨레 5면.

▲31일 조선일보 8면.

한겨레는 “비이재명계에선 김 의원 제명안 부결이 ‘또 다시 온정주의가 발동한 결과’라는 비판이 나왔다. 한 비명계 의원은 ‘김 의원이 당 차원의 징계를 피해 탈당하는 것도 막지 못했는데, 징계안까지 유야무야시키는 모습이 국민 눈에는 어떻게 비치겠냐’고 했다”고 보도했다.

 

신문들은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김남국 제명안 부결, 민주당은 이번에도 ‘제 식구 감싸기’> 사설에서 “김 의원을 엄중하게 징계해 국회와 정치권의 윤리적 잣대를 바로세우고, 이해충돌 제도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했다. 400회 이상 코인 거래를 했다는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 징계안도 뒤이어 논의될 문제였다. 특히 민주당은 김 의원의 ‘꼼수 탈당’을 방관하더니 도덕성 회복 약속마저 저버렸다. ‘유권자가 뽑은 선출직 특성상 제명이 적절치 않다’는 말은 구차하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도 <김남국 제명도 부결시킨 민주당, ‘기본 윤리의 파산’ 개탄한다> 사설에서 “불출마한다는 이유로 민주당은 그의 제명안을 부결시켰다. 불출마하면 어떤 비위도 징계하지 않고 면책한다는 것은 민주당식 윤리인가. 김 의원 같은 사람도 제명하지 않는다면 국회의원 제명 제도 자체를 없애는 것이 옳다”며 “민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한 민주당 출신 의원에 대해서는 앞으로 그 어떤 징계도, 체포도 불가능하다. 김 의원이 의원 자격이 없다고 믿는 국민은 이런 민주당이 공당의 자격이 있는지 다음 선거에서 물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31일 조선일보 사설.

▲31일 한겨레 사설.

그러나 한겨레는 <김남국 징계안 부결, 민주당의 ‘내 식구 감싸기’> 사설에서 “민주당에 치명적 타격을 입힌 사안인데도, ‘내 편’에 관대한 민주당의 온정주의에 대한 비판이 만만치 않다”면서도 “물론 김 의원의 잘못이 크지만, 국민의 대표를 국회가 제명하는 것은 조심스럽게 접근할 사안이다. 현재 국회법상 국회의원 징계는 최고 수위인 제명을 제외하곤 30일 출석정지, 사과, 경고 등 네 가지뿐이다. 이참에 국회 윤리특위가 제구실을 할 수 있도록 규정을 손질해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홍범도 흉상 문제 평지풍파는 국정에 도움 안 돼”

30일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 홍범도 장군 흉상을 독립기념관 등 학교 밖으로 이전하는 방침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8일 국방부는 기자들에게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관련 국방부 입장’ 자료를 보내 “육사의 전통과 정체성, 사관생도 교육을 고려할 때 소련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논란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사관생도 교육의 상징적 건물인 충무관 중앙현관에 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있어 왔다”고 밝혔다.

국방부의 입장 발표에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 역사를 지우고 과도한 색깔론을 입히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이전하기로 했다.

▲31일 조선일보 5면.

▲31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5면 <홍범도 장군 흉상, 육사 밖으로 이전하기로> 기사에서 “홍 장군과 함께 설치된 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 등 독립운동가 흉상은 육사 내 육군 박물관으로 이전한다. 국방부와 육사는 이런 내용의 흉상 이전 방향을 확정하고 육사 전체 조경 계획을 수립하는 대로 흉상을 이전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지금 홍범도 흉상 갖고 논란 벌일 때는 아니지 않은가> 사설에서 “ 느닷없이 나온 홍범도 등의 흉상 이전에 어리둥절해 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밀어붙이기보다는 시간을 갖고 검토하는 게 불필요한 분란을 막는 길”이라며 “흉상 문제 평지풍파는 국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김의철 KBS 사장 해임제청안 상정에 경향 “이동관표 폭주 시작”

30일 KBS이사회(서기석 이사장)가 서울 영등포구 KBS본관에서 이사회를 열고 여권 이사 5명이 제안한 김의철 사장 해임제청안을 상정했다. 해임제청안을 두고 표결이 진행됐고, 찬성 6인(여권 전원), 반대 4인, 기권 1인으로 안건이 상정됐다.

KBS이사회는 총 11명으로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 여야 4:7 구도였다. 그러나 2020년 TV조선 재승인 점수변경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년 전 이사와 KBS 부실경영 관리·감독 소홀 및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빚은 남영진 전 KBS 이사장이 해임됨에 따라 여야 6:5 구도로 재편됐다.

▲31일 경향신문 사설.

이사들은 다음 날 6일 사장 해임제청안에 대한 찬반 토론을 진행하고, 12일 오전 9시 김의철 사장 청문을 진행한다.

경향신문은 <KBS 사장 해임안 상정, ‘이동관표 폭주’ 시작인가> 사설에서 “방통위가 2주 전 이사장·이사를 해임해 이사회를 재편한 뒤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며 “이동관 위원장이 지휘하는 방통위는 공영방송을 정조준했다. KBS 사장 교체는 시작이다. 방문진도 김기중 이사 해임을 내달 완료하면 여야 5 대 4 구도로 바뀌면서 MBC 사장 교체에 나설 걸로 관측된다. 김효재 위원장 대행 체제에서 방통위가 공영방송 이사장과 이사들을 줄줄이 쫓아내놓고, 이제 일사천리로 사장 교체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빚는 무리한 결정이 줄 잇는 이유는 뻔하다. 이 위원장 주도로 언론 통제·장악에 박차를 가하려는 것이다. 비판 여론에 귀를 닫고 공영방송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방송을 좌지우지하려는 시도는 국론 분열과 극한 정쟁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즉각 멈춰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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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걱정한 뉴질랜드 전직 총리 "그건 끔찍한 일"

[정치신대륙을 찾아서①-1] 선거개혁 이정표 세운 제프리 파머 "민주주의 계속 고쳐야...참여하라"대결을 넘어 전쟁으로 치닫는 한국 정치는 어떻게 해야 달라질까요? <오마이뉴스>는 그 답을 찾기 위해 국민투표로 선거제도를 바꾼 뉴질랜드, 선호투표제로 사표를 막는 호주 두 '정치신대륙' 탐방에 나섰습니다. [편집자말]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에 위치한 국회의사당. 뉴질랜드 총선은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국의 총선처럼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는 '제1투표'와 지지 정당을 뽑는 '제2투표'로 1인 2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지역구 72석(지역 65석+마오리족 대표 7석), 비례대표 48석으로 의회를 구성한다. 다만 선거 결과에 따라 초과의석이 발생할 수도 있다. ⓒ 유성호

아오테아로아(Aotearoa), 길고 하얀 구름의 땅이라는 뜻으로 뉴질랜드를 가리키는 마오리어다. 1642년 이곳에 처음 도착한 유럽인들은 여느 정복자들처럼 선주민과 갈등을 겪었다. 하지만 오랜 충돌 끝에 1840년 와이탕이 조약(Treaty of Waitangi)이 맺어지면서 백인과 마오리족은 불완전하게나마 손을 잡는다. 그 정신은 공공장소 어디에나 있는 '영어-마오리어' 병기에서도 느낄 수 있다.

통합과 관용의 정신은 선거제도에도 담겨있다. 현재 뉴질랜드는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Mixed-member proportional representation, MMP)에 따라 120명(지역구 65명+마오리족 대표 7명+비례대표 48명, 선거 결과에 따라 초과의석 발생)으로 의회를 구성한다. 유권자가 한 표는 정당에, 다른 한 표는 후보에게 투표하면 득표율에 연동해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다. 가령 A당이 30%를 득표했을 경우 이 정당이 지역구에서 24석만 확보했다면 A당은 추가로 비례대표 12석을 가져간다. 다만 전국 득표율이 5% 미만이거나 지역구 당선자가 없으면 비례의석을 할당받지 못한다.

그런데 뉴질랜드는 1990년대에서야 MMP를 도입했다. 이전까지는 1표라도 많은 후보가 당선하는 단순다수대표제였고, 그 결과 의사당 안에는 사실상 국민당과 노동당만 존재했다. 1978년 사회신용당은 16%를 득표했지만 의석은 겨우 하나뿐이었다. 1984년 12%의 지지를 받은 뉴질랜드당은 아예 한 석도 가져가지 못했다. 거대정당인 노동당 또한 국민당보다 더 많이 득표하고도 더 적은 의석을 차지하는 일을 겪었다. 유권자들은 자신들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는 정치에 분노했다.

하지만 개혁을 향한 열망이 '끓는 점'에 쉽게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 <오마이뉴스>는 늘 '선거제도 개혁의 모범사례'로 꼽히며 매년 '선진민주국가'로 평가받는 뉴질랜드가 어떻게 100℃를 넘겼는지 알기 위해 전직 총리, 제프리 파머(Geoffrey Palmer)를 한국 언론 최초로 만났다.

 
의회 무력화, 거대 양당 독점... "우리도 똑같았다"
 

제프리 파머 전 뉴질랜드 총리. 법학교수 시절 선거제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던 그는 정치에 입문한 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왕립위원회(The Royal Commission on the Electoral System)' 설립을 주도, 뉴질랜드가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논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 유성호

"정말인가? 흠, 과거 뉴질랜드 상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7월 4일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에 위치한 빅토리아대학교의 한 연구실, 백발이 성성한 파머 전 총리가 '한국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지만 다들 무관심하다'는 기자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1979년 저서 <무소불위의 권력?(Unbridled Power?)>에서 왜곡된 선거 결과가 의회의 행정부 견제를 무력화했고, 거대 양당만 의석을 독식하게끔 했다고 비판했다. 이후 파머 전 총리는 크라이스트처치 지역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 부총리 겸 법무부 장관을 거쳐 1989~1990년 총리를 지냈다.

노동당은 1978년과 1981년 선거 모두 득표율로는 1위였지만 국민당에 의석 수로 밀렸다. 단순다수대표제의 피해자였던 이들은 1984년 총선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약속했고, 선거 승리 후 법무부 장관이 된 파머는 그간 주장해온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왕립위원회(The Royal Commission on the Electoral System)' 구성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서 있는 곳이 달라지자 노동당 역시 입장이 달라졌다. 당 내부에선 '위원회를 꼭 꾸려야 한다면 전직 의원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파머 전 총리는 위원회가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으리라고 봤다. 그는 내각에서 추천한 이들을 거부했다. 그 덕에 위원회는 존 월러스(John Wallace) 판사, 정치학자 리처드 멀건(Richard Mulgan) 교수, 헌법을 전공한 케네스 키스(Kenneth Keith) 교수, 전직 정부 통계학자 존 다윈(John Darwin) 박사, 마오리족 대표인 여성 훼투마라마 훼레타(Whetumarama Wereta) 등 독립성과 다양성을 갖춘 위원들로 꾸려져 1985년 출범한다.

1986년 12월 왕립위원회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하여(Toward a Better Democracy)>라는 보고서를 내며 ①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② 의석 수 확대(99석→120석) 여부를 ③ 국민투표로 정하자고 제안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반대했다. 파머 전 총리는 "노동당 의원 중 찬성하는 이들은 8, 9명 정도였다"며 "1987~1990년 사이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노동당은 1989년 '의석 수 확대를 위한 국민투표 실시 반대'라는 입장도 정했다. 국민당도 다르지 않았다.

 
개혁 외면한 정치인, 꼼수 거부한 국민

 

뉴질랜드는 1893년 세계에서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했고, 여성의 정치 진출이 활발한 나라이다. 지난 2022년 뉴질랜드 하원의원 성별 구성이 여성 60명, 남성 59명으로 여성 과반이 됐다. ⓒ 뉴질랜드 의회 홈페이지 갈무리

개혁을 외면한 정치인들과 달리 유권자들은 개혁의 필요성을 직시했다. 왕립위원회 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뉴질랜드 사회에선 선거제도 개혁을 주제로 하는 토론에 불이 붙었다.
 
"사람들이 '빛'을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공론화가 이뤄지자 전환점이 생겼다. (대중에게) 의제를 던져 (그들이) 토론하게끔 해야 한다. 또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꽤 좋은 논거가 있어야 하는데, 왕립위원회 보고서에는 명료한 논거들이 담겨 있었다. 이 보고서가 없었다면 개혁은 불가능했다."

뉴질랜드 선거개혁의 또 다른 특징은 '국민투표'다. 한국의 선거제도 개편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을 제외하면 대부분 정치인의 손에 이뤄졌다. 파머 전 총리는 "대부분의 나라가 그럴 텐데, 뉴질랜드는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라며 "1857년부터 의원내각제이고, 1879년 모든 남성에게,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국민들이 투표해야 하고, 그래야 정부가 정당성을 갖는다"며 "이것이 뉴질랜드의 전통"이라고 덧붙였다.

왕립위원회도 이에 따라 국민투표를 거쳐 선거제도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파머는 "선거제도 개혁은 큰 변화라 대리인(정치인)이 아닌 유권자들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며 "그게 더 민주적"이라고 설명했다. 양당은 여전히 미적지근했다. 하지만 노동당 데이비드 랑이(David Lange) 총리가 1987년 총선 과정에서 '재집권하면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원고를 잘못 읽고, 국민당이 노동당 견제를 위해 1990년 국민투표 실시 공약을 내걸면서 국민투표는 양당의 약속이 됐다. 그러나 집권 후 국민당 역시 돌변했다. 어렵게 이 사안을 끌고 온 파머 전 총리마저 정계를 떠난 상태였다.

꺼져가던 개혁의 불씨를 되살린 이들은 시민이었다. 1986년 출범한 시민단체 'ERC(Electoral Reform Coalition)'도 그 중 하나다. 파머 전 총리는 "ERC는 변화를 원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분위기를 바꿨다"며 "아주 좋은 캠페인을 벌였다"고 말했다. 결국 국민당 정부는 여론을 수용했다. 하지만 1992년 선거제도 개혁 찬성 여부와 어떤 대안을 원하는지를 묻고, 1993년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MMP와 기존 선거제도 중 선택하라는 식으로 투표를 복잡하게 설계했다.

국민들은 '꼼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1차 국민투표 결과 선거제도 개혁 찬성 의견은 84.7%, 선호하는 투표제도 1위는 70.5%의 지지를 받은 MMP였다. 이듬해 2차 투표에선 MMP는 유권자 53.9%의 선택을 받았다. 1차 투표 당시 55.2%였던 투표율도 2차 때는 85.2%로 치솟았다. 2011년 국민당 정부는 또다시 MMP를 흔들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번에도 MMP를 택했다. 'MMP를 위한 캠페인'으로 재출범한 ERC도 거들었다.
 
"당시 MMP를 포기했다면, 우리는 '무소불위의 권력' 시대로 퇴행했을 것이다. …(중략)… MMP는 거대양당의 독점체제를 타파했다. 이제 권력은 과거보다 더 많이 나눠지고 있으며, 주요 정책을 채택하기 전에는 더 많은 토론과 협상이 있어야 한다." - 제프리 파머, 2013년 발간한 회고록 <개혁(Reform)> 중에서


 
"무관심은 재앙으로... 참여가 민주주의 본질"

 

제프리 파머 전 뉴질랜드 총리가 7월 4일 뉴질랜드 웰링턴에 위치한 빅토리아대학교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난 1993년 국민투표를 통한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 도입 과정과 선거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10년이 흘렀지만 그의 생각은 변함없다. 파머 전 총리는 "제가 의원이 됐을 때만해도 백인 중년 남성들이 의회를 지배했다"며 "선거제도가 바뀌면서 더 다양한 목소리가 의회 안에 존재하고 소수자들이 더 대표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제도가 바뀐 뒤 뉴질랜드에선 꽤 오랫동안 과반을 넘긴 정당이 나오지 않다가 2020년 처음으로 노동당이 단독집권에 성공했다. 현재 의회는 노동당 64석, 국민당 34석, 녹색당 10석, 뉴질랜드 행동당 10석, 마오리당 2석으로 이뤄져 있다.

그럼에도 파머 전 총리는 "뉴질랜드 민주주의 또한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며 "민주주의를 유지하려면, 민주주의를 계속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뉴질랜드는 이슬람사원 테러, 코로나19 등을 겪었다. 우리는 이 모든 도전을 뚫고 나갈 정부를 필요로 하는데 이 일은 선거제도에 달려 있다"며 "선거제도는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또 "뉴질랜드와 한국은 다르다"면서도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MMP는 단순다수대표제보다 대표성 면에서 월등히 나은 제도"라고 얘기했다.

1942년생 파머는 여전히 개혁을, 더 나은 민주주의를 꿈꾼다. 그는 지난해 손녀와 함께 <뉴질랜드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otearoa New Zealand, Aotearoa는 뉴질랜드 지명을 뜻하는 마오리어)>란 책을 썼다. "사람들에게 정부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다"는 이유였다. 파머 전 총리는 "민주주의 안에서 살아남으려면(To survive in democracy)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하고,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결국 사람들을 재앙으로 이끈다. 끔찍한 일이다. 참여해야 한다. 동네 국회의원 사무실에 가서 당신이 원하는 것 또는 싫어하는 것을, '내가 유권자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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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이 임명한 인권위 상임위원의 ‘수상한 행각’과 ‘앞뒤 다른 답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3/08/31 07:29
  • 수정일
    2023/08/31 07:2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군인권보호위 개최 보름 미루고 상임위도 불참한 군인권보호관, ‘외압 있었나’ “천만의 말씀이다”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3.08.30. ⓒ뉴시스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위원회는 이달 9일 경찰에 이첩된 ‘해병대수사단의 해병대원 사망사건 조사결과’를 국방부검찰단이 도로 회수한 행위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또 이 성명에서, 군인권보호위원회는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에 대한 항명죄 수사 등은 즉각 보류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런데도, 국방부검찰단은 박 전 수사단장에 대한 수사 등을 강행했다.

이에 군인권센터는 지난 9일 인권위 성명과 같은 내용으로 인권위에 박 전 수사단장에 대한 긴급구제조치를 신청했는데, 군인권보호위원회가 보름동안 열리지 않아 논란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임명한 김용원 군인권보호관은 동료 위원의 일정을 핑계로 군인권보호위원회 개최를 보름가량 미루고, 지난 29일에야 개최한 회의에서 기각을 결정했다. 보름가량 시간을 허비해 놓고, 그 사이에 이미 인권침해가 발생했으니 구제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또 긴급구제 건 처리가 미뤄지는 동안 해당 안건의 긴급성을 고려해 상정될 예정이었던 상임위원회에도 불참했다. 그런 뒤 상임위에 긴급구제 안건을 상정한 군인권조사과장 등에 대해 조사 및 중징계를 요구했다.

30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김 보호관의 이 같은 행위에 대한 질의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김용원
긴급한 사안인데...
군인권보호위 미루고, 상임위 불참
“건강 때문에”, “일정 때문에”

 

한덕수 국무총리가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차관(급) 임명장 수여식에서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2023.02.20. ⓒ뉴시스

논란이 된 김용원 군인권보호관은 윤 대통령이 올해 2월 3일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임명했다. 김 보호관도 윤 대통령처럼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고, 검사 출신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대선 당시 윤 대통령 지지 단체에 이름을 올렸다.

이날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 보호관에게 박 전 수사단장의 긴급구제 건을 보고받고도 군인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하지 않고, 상임위에도 불참한 이유를 물었다. 김 보호관은 건강과 다른 위원 일정 등을 이유로 들었다.

 

 

 

민병덕 의원과 김용원 보호관

▷ 민병덕 : 군인권보호위원회 소집을 왜 하지 않았나?
▶ 김용원 : 위원 중 한 분이 다른 일정을 이유로 참석하기 어렵다고 했다.
▷ 민병덕 : 그분이 누군가?
▶ 김용원 : 위원 중 한 분이다.
▷ 민병덕 : (군인권보호위가 열리지 않아서) 18일 상임위가 있었는데, 보호관이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
▶ 김용원 : 상임위에서 다룰 사안인지, 군인권보호위에서 다룰 사안인지에 관해서 국가인권위원장 측과 이견이 있었다. ...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다. 군인권보호위원회 소관업무를 상임위가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그래서 내가 참석하더라도 같은 이유로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두 번째는 그 주 동안 내 건강 상태가 매우 나빴다. ... 그래서 8월 18일 임시상임위를 개최하더라도 거기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목요일 오후 5시에 퇴근했다.


박 전 수사단장의 긴급구제신청에도 불구하고 몇날며칠 동안 군인권보호위원회가 열리지 않자, 인권위는 사안의 긴급성을 고려해 상임위를 열고 해당 안건을 다루려고 했는데, 김 보호관은 이곳에도 불참했다. 김 보호관은, 해당 사안은 군인권보호위원회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라며 상임위에서 다루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송두환 인권위원장은 상임위에서도 다룰 수 있다고 봤다. 고영인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송 위원장은 이같이 답했다.

 

 

 

고영인 의원과 송두환 인권위원장

▷ 고영인 : (위원장은) 긴급구제신청 건을 상임위에서 논의 가능하다고 판단했는데, 딱 한마디로 왜 상임위에서 가능하다고 판단했나?
▶ 송두환 : 인권위원회 법과 거기에 근거한 우리 인권위 운영규칙을 보면...
▷ 고영인 : 법률상도 그렇고 시기적으로 급하다 생각했나?
▶ 송두환 : 그렇다. 그렇게 생각했다.

 

긴급구제 건 보름 미뤄놓고
상임위에 안건 상정하자
조사 및 중징계 요구
“무조건적인 중징계는 아니다”


김 보호관은 군인권보호위원회 소집을 보름가량 미루고 상임위 참여도 불참한 점에 대해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공직자는 법령에 정한 바에 따라 공직을 수행해야”하기에 문제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또 그는 긴급구제 안건을 상임위에 상정한 인권위 사무총장과 군인권조사과장에 대해 조사와 중징계를 요구했는데, 김 보호관은 이에 대해서도 정당한 조처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고영인 의원과 김용원 군인권보호관

▷ 고영인 : (김 군인권보호관은) 8월 18일 상임위 회의 참여를 거절했다. 지금 여러 가지 요구가 긴급하게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긴급구제에 대해 (인권위가) 답변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까 몸도 아팠다 그런 얘기를 했는데, 지금 이것이 어떤 직급에서 필요한지 아닌지 따지기 전에, 박 전 해병대수사단장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참여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 김용원 : ...
▷ 고영인 : 참여해야 했다고 생각하지 않나?
▶ 김용원 : 공직자는 법령에 정한 바에 따라 공직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고영인 : (상임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박 전 수사단장 보호 진정성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 그 결과가 다르다 하더라도, 서로 인권을 위해서 상호 경쟁할 수는 있다. 서로의 역할과 부처에 따라서. 그런데, 인권위 사무총장과 군인권조사과장에 대해 중징계를 요구했다.
▶ 김용원 : 무조건적인 중징계를 요구한 게 아니다.
▷ 고영인 : 무조건이 아니면 뭔가? 무슨 조건인가?
▶ 김용원 : 엄정한 조사결과를 거쳐서 잘못이 드러날 경우에...

 

김용원 보호관에게 질의하는 고영인 의원 ⓒ국회 의사중계시스템 화면 갈무리

 

심경변화 있었나?
“천만의 말씀이다”


9일 성명을 발표한 뒤 29일 성명과 정반대 취지의 기각을 결정하기까지 “심경의 변화가 있었느냐”는 질문 등에는 “천만의 말씀”이라며, 다소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고영인 의원과 김용원 군인권보호관

▷ 고영인 : (9일) 성명과 (29일) 기각 사이의 모순, (상임위) 불참, 중징계 요구 등 이 세 가지는 본인 임무, 취지와 완전 모순된다. 중간에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아닌가?
▶ 김용원 : 천만의 말씀이다.
▷ 고영인 : 중간에 외압이 있었나?
▶ 김용원 : 천만의 말씀이다.
▷ 고영인 : 그런데 왜 이런 모순된 행위를 했나?
▶ 김용원 : 지금 겉으로 드러난 일만 가지고 피상적으로 보고 ...
▷ 고영인 : 없는 사실을 가지고 말하나? 분명히 논거를 제시했다. (9일 군인권보호위원회) 성명의 내용 취지에 입각하면, 그런 행위들이 상식적인 판단에서 모순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긴급구제건 보름 지나 기각해 놓고
“항명죄 수사, 이첩서류 회수 등은 부적절”
앞뒤 다른 답변에 혼란


김 보호관은 그러면서도 9일 군인권보호관 명의로 발표한 성명 내용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았다.

지난 9일 성명에 대한 의견을 묻는 오기형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그는 지금도 같은 생각이라고 답했다. 그는 박 전 해병대수사단장에 대한 국방부검찰단의 항명죄 수사 등은 부적절하고, 해병대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한 서류를 국방부검찰단이 회수한 행위 또한 “부적절한 조치”라며 기각 결정과 상충되는 답변으로 의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오기형 의원과 김용원 군인권보호관

▷ 오기형 : 이번에 8월 9일 군인권보호위원회 성명에서, 해병대수사단장이 경찰에 이첩했던 서류를 회수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절하지 못하다 이런 입장을 표명했다. 지금도 회수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나?
▶ 김용원 : 그렇다.
▷ 오기형 : 해병대 수사단이 부대지휘관의 범죄를 인지했다고 명시할 당위성이 있었다, 이것도 공감하는 건가?
▶ 김용원 : 그렇다.
▷ 오기형 : 해병대수사단장에 대한 보직해임, 집단항명죄 수사가 오히려 문제가 있다, 즉각 보류되어야 한다, 이런 입장도 지금도 적절하다 보는 건가?
▶ 김용원 :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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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간토 조선인 대학살’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 특집 ⑥ 특별기고-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 기자명 이만열 
  •  
  •  입력 2023.08.31 00:00
  •  
  •  수정 2023.08.31 01:12
  •  
  •  댓글 0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 특집 연재 순서


① 개괄-잊혀진 통한의 100년
② 기록으로 본 간토대지진과 조선인학살
③ 자료와 증언-일제는 조선인을 어떻게 학살했나
④ 北은 간토대학살을 어떻게 보고 있나
⑤ 강요된 망각과 시무(時務)의 역사연구
⑥ 특별기고-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들어가는 말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통일뉴스 자료사진]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통일뉴스 자료사진]

‘간토(關東) 조선인 대학살’이 있은 지 올해가 100년이다.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군경은 애써 이를 외면하고 있으며, 피해자측에서도 정부나 국회 모두 이에 대한 역사적인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간혹 한일관계의 아픈 상처를 씻어내야 한다고 양념삼아 들먹이고는 있지만, 두 나라 사이에는 이 문제를 정식 의제로 상정하여 이 큰 상처를 풀어보려고 하는 의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도 역사의식이 있는 한일 양국의 인민들 가운데는 저 비극의 역사를 그냥 방치해 둘 수 없다고 하면서 그 비극의 실상을 밝히고 역사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온 이들이 있다. 1963년 재일사학자 강덕상(姜德相)과 금병동(琴秉洞)이 <현대사 자료 6: 간토대진재와 조선인>을 출간, 이 문제에 대한 학문적인 정리에 힘썼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을 규명하려는 한국측 시민운동과 관련해서는 김종수가 언급한 것이 있다. 일본의 시민단체도 간토지역에서 자행된 조선인 학살을 잊어서는 안된다면서 추도행사를 계속하는 이도 있다. 일본 시민단체들도 관심을 갖고 추모행사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조협회는 1973년 9월 1일, 도쿄 요코아미쵸 공원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세우고 50년 동안 추도식을 열고 있으며, 니시자키 마사오 봉선화 이사는 1982년 이래 학살 장소인 아라카와 강변에 자리잡고 진상규명과 추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비극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일본 시민과 단체들에 대해 감사의 말을 먼저 전하지 않을 수 없다. 

간토조선인학살은 그것을 치유하지 않는 한 언제나 간헐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아픈 상처다. 그 비극이 일어난 지 100년을 맞아서도 일본은 이 상처를 아물게 할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하지 않는다. 동양에서 가장 일찍이 근대국가로 발돋음했다는 일본이 왜 이 야만적인 ‘제노사이드’를 없는 듯이 방치해 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탈아입구(脫亞入歐)의 호기를 부리며 자기들은 동양의 야만인들과는 다르다고 하면서, 유럽인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를 상대로 야수적인 학살을 자행했던 것과 같이, 이같은 학살행위를 국가 공인 하에 거리낌 없이 자행했던 것일까. 

일본이 간토대학살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보여준 자세는 근대국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야수적이었다.

그 동안 간토대지진 때의 ‘조선인대학살’에 대해서는 당시 일본 정부나 조선총독부가 이를 정직하게 밝힌 바 없다. 그 원인이나 진행과정, 가해자와 희생자들, 특히 당시 일본의 군․경․민(自警團)에 의해 희생된 이들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공식적으로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는 그 사건의 전말과 관여자 및 희생자들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을 일본 정부가 제대로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1923년 9월, ‘간토대진재(關東大震災)를 계기로 ‘조선인대학살’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중국인, '류구인'(琉球人, 오키나와인)에 대한 학살도 있었고, ‘대역(大逆) 사건’이라 하여 무정부주의자(혹은 공산주의자)들을 소탕하려는 계획도 있었다. 박열과 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와 관련된 사건도 이 때 일어났다. 여기서는 <간토 조선인 대학살>에 국한해서 언급하겠다.

 

간토대지진 전체 지역 조감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특별전 재촬영]
간토대지진 전체 지역 조감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특별전 재촬영]

1. 1923년 ‘간토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

1923년 9월 1일 토요일 11시 58분, 도쿄(東京)를 중심으로 한 간토 일대에 진도 7.9의 대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원지는 가나가와(神奈川) 현 앞바다인 사가미(相模) 만에서부터 도쿄 만, 지바(千葉) 현이 있는 보소(房總) 반도까지 간토 지역 남쪽 바다를 아우르는 넓은 지역이었다. 이 지진은 간토 지역의 1부(府), 6현(縣)에 걸쳐 있었으며 이로 인해 99,331명이 사망하였다. 가옥 파괴로는, 128,266 가옥이 전파되었고 126,233 가옥이 반파되었으며, 소실된 가옥 수는 447,128호에 달했다.(피해규모는 여러 형태로 알려져 있어서 그 숫자는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수치에 차이가 있지만 2015년에 번역된 가토 나오키(加藤直樹)의 『구월, 도쿄의 거리에서』-1923년 간토대지진 대량학살의 잔향-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썼다.

“도심은 거의 괴멸상태였다. 지진이 점심 무렵 일어난 탓에 화재 피해는 더 컸다. 무너진 가옥에서 새어 나온 불길이 동시다발적인 화재를 일으키며 강풍을 타고 퍼져 나갔다. 화재는 9월 3일 아침에야 완전히 진압되었다. 도쿄 시의 약 44%가 소실되었고, 요코시마의 경우 80%에 달하는 지역이 소실되었다. 도심의 광범위한 지역이 불타 허허벌판이 된 탓에 다음 날, 구단자카 언덕 위에 서면 도쿄 만이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파괴된 가옥은 약 29만 3천동,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는 10만 오천명을 넘었다. 피해 총액은 당시 국가 예산의 3.4배에 달했다.”    

그 무렵 오산을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나섰던 함석헌은 지진 당일 ‘간토대지진’을 경험하고 뒷날 「내가 겪은 관동대지진」(함석헌전집 6, 255-296)이란 긴 글을 남켰다. 당시 그는 정주 오산학교를 마치고 유학차 도쿄 유시마(湯島)에 하숙하면서 간다(神田)에 있는 세이소쿠(正則)학교에 다니다가 그 무렵 하숙집을 혼고구(本鄕區) 사카나마치(肴町)로 옮겼다. 그는 9월 1일 아침, 유시마에 있는 지인 함덕일(咸德一)을 만나러 갔다가 그곳에서 지진을 당하게 되었다. 함석헌은 그 때 직접 경험한 간토대지진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만세 부르고 헤어진 후 못만나고 있던 그[함덕일]를 5년만에 여기서 만나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동안에 정오가 거의 다 됐습니다. 그래 시계를 끄집어내 보며 일어서 가려고 하니 덕일이가 붙잡으며 점심 때가 됐으니 점심을 먹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앉을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 갑자기 우르르 하고 진동이 왔습니다. 입에서마다 ‘지진이다!’하고 외침이 나왔습니다.…그래 우리도 첨엔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지진이다’ 하면서도 나가려고는 아니 했습니다. 그러나 웬걸, 조금 있다간 흔들흔들 또 조금 있다간 흔들흔들 점점 심하게 오는데 보통이 아닙니다. 순간 겁이 번개같이 머리들을 스쳤습니다. ‘나가야 한다!’…황급히 층계를 달려내려와 현관을 썩 나서니 지붕에서 떨어지는 기왓장이 비오듯 합니다. 빈 곳으로 달려가려 하니 어찌 심이 흔들리는지 걸음을 옮겨놓을 수가 없습니다. 전신주를 바라보니 노대(태풍) 만난 뱃대처럼 누웠다 일어났다 합니다.…조금 뜸해지는 것을 타서 사방을 바라보니 사람마다 집앞에 서서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오 가미사마(神樣), 오 가미사마’ 하고 부르는 것입니다.…조금 있노라니 사람들이 모두 이삿짐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첨에는 무슨 영문인지를 몰랐습니다. 후에 들으니 지진이 심하면 반드시 화재가 난답니다.…후에야 안 일이지만 그때가 바로 정오 직전 모든 집에서 점심 준비를 하고 있던 때이므로 불을 많이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한 지진이 왔기 때문에 모두 집이 무너지고 치어 죽을 생각만 하고, 미처 불을 끌 생각을 못하고 그냥 놓고 달려나갔기 때문에 사방에서 불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지진으로 수도관이 모두 끊어진 데가 많기 때문에 불끌 물을 구할 수가 없어져서 더 심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의 전 시가 다 타버렸습니다.”(함석헌전집6 268-270)

함석헌의 술회는 더 계속된다. 그는 자기 하숙으로 돌아오지 않고 친구와 함께 간다쿠(神田區)가 활활 붙타는 것을 보면서 우에노(上野) 공원으로 가서 거기에 있는 시노바츠노이케(不忍池)라는 넓은 연못을 의지, 불길을 피하면서 수많은 사람과 함께 몇 시간 동안 피난하다가 자기 하숙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밤에 바람이 연못 쪽으로 불어 불길이 연못가의 피난민들을 덮치게 되자, 연못가의 피난민들은 불길을 피하려다 대부분 연못에 빠져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함석헌은 자기 하숙으로 돌아와 생명을 건졌지만 그 뒤 ‘이제 진짜다!’라고 표현한 조선인 사냥, 즉 조선인 학살을 경험하게 되었다.

‘간토대지진’은 45만여의 가옥을 파괴했고 10여만명의 이재민을 냈다. 대지진은 생명과 주거를 잃은 민중들의 이성을 마비시켰고, 이를 수습해야 할 정부는 책임전가를 위한 유설(流說)을 퍼뜨렸다. 책임전가 음모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라고 밖에는 해석될 수 없는 유언비어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조선인이 방화하고 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풀고 있다’, ‘조선인이 부녀자를 강간하고 있다’는 등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내용이었다. 자연재해에 의한 사회불안을 인위적으로 그 사회의 약자에게 전가시키려는 수작이었다. 이 내용이 조선인과 관련된 것이 많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는 이 엄청난 자연재해에 대한 희생양을 찾았던 것이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라 할 조선인이 주 타깃이 되고 ‘지나’(중국)인과 류구인, 공산주의자들도 희생 대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치안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계엄령을 발포, 도쿄부 전 지역과 가나가와 현으로까지 확대시켰다. 일본 헌법 제 8조에 규정되어 있는 계엄령은 전쟁 또는 사변시에 대외방비를 목적으로 일반 행정권을 정지시키고 군에 의해 국민생활을 통제하도록 한 것이다. 계엄령법 제 1조는 “계엄령은 전시 혹은 사변 시의 병비(兵備)로서 전국 혹은 한 지방을 경계하는 법이다”라고 명시하여 전쟁 또는 사변이 일어났을 때에 발하는 것이다. 그 전에는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 등 모두 전시하에서 선포되었던 것이다. 강효숙은 당시 발포된 계엄령이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 발포되어 계엄법을 따르지 않았고 추밀원 고문의 자문도 받지 않아 절차상의 하자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엄령이 발포됨으로 계엄령이 아니면 다스리지 못할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는 잘못된 신호를 일본 사회에 주고 있었다.

계엄령을 유발한 ‘유언비어’에 대해서는 그 진원지를 두고 내각설, 군벌설, 경시청설, 사회주의자설 등이 있다. 당시 도쿄의 히비야(日比谷)공원이나 궁성 앞에 50만, 우에노(上野)공원및 야스쿠니(靖國) 신사 등에 10여만명 등이 모여 극도의 혼란과 사회불안이 조성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水野鍊太郞)와 내무성 경보국장 고토 후미오(後藤文大), 경시총감 아카이케 미노루(赤池濃) 등이 사실상 치안대책을 총괄하면서 비상수단으로 계엄령 선포를 논의했고 군 당국자에 대해서도 군대의 출병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가 9월 1일 오후 2시경이었다. 

문제는 전시나 내란에만 선포토록 된 계엄령을 선포할 명분이었다. 당시 내무대신이었던 미즈노 렌타로는 계엄 선포이유를 ‘조선인 내습’이라는 폭동설 때문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9월 2일 오후 6시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 무렵이면 일본 정부가 조선인 폭동에 대한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유포하고 있었다.

강덕상은 간토대학살 당시 계엄사령부에 관련된 인사들 중에는 식민지 조선에서 활동한 이들이 많았다고 지적한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내무장관이었던 미즈노 렌타로는 조선 정무총감으로 있다가 영전해 왔으며, 조선의 내무장관을 역임한 우사미 가쓰오(宇佐美勝夫)는 지진 당시 동경부지사였다. 관동대지진 당시 군사참의관 4명 중 가장 우수한 우쓰노미야 미야타로(宇都宮太郞)는 3.1운동 당시 조선주둔군 사령관으로 7천 수백명을 살해했고, 오바 지로(大庭二郞)는 3천 수백명을 죽인 간도사건 침공군 총사령관이었다. 간토대지진 때 도쿄 주둔의 제1사단장 미시미쓰 나오미(石光眞臣)는 3.1운동 당시 헌병사령관이었고, 간토대지진 때 계엄사령부 참모장인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는 뒤에 조선 총독이 되었다. 

따라서 강덕상은 이 때 계엄령을 발동한 원인으로 “식민지 반란과 사회주의적 항일세력의 출현, 시베리아 출병과 패배, 청산리전투의 대패 등에 따른 위기감”과 관련시켜 설명했다. 강덕상, 「한일관계에서 본 관동대지진」『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33-35, (동북아역사재단, 2013) 

일본에서도 계엄령 선포는 전쟁 또는 사변을 전제로 한 것으로 대외 방어를 위해 행정권을 정지시키고 군이 국민생활을 통활토록 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군의 통활 하에서 이뤄진 조선인 학살은 ‘일본 내에서 발생한 일본 민족과 조선민족 사이에 발생한 민족전쟁’과 다를 바가 없었다. 

눈여겨볼 것은 계엄령이 발포되기 전에 군대가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군 보병여단 제1연대가 9월 1일 밤 10시에 출병했을 때는 계엄령 반포 전이었다. 피난민 구호가 출병목적이었다고 하지만 그들이 치바현 나라시노(習志野)와 이치가와(市川)의 고노다이(国府台)에서 도쿄로 진군한 후 9월 2일 오전 9시경부터는 도쿄 고토(江東)지역 거주 조선인 학살로 그 목적이 변경되어 있었다. 재일조선인은 단지 조선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유 없이 일본군에게 일방적으로 학살당한 것이다.

당시 경시청 자료에서도 ”유언비어가 처음 관내에 유포된 것은 9월 1일 오후 1시경인 것같고, 2일부터 3일에 걸쳐 가장 심했으며, 그 종류도 또한 다종다양하였다”, “조선인 폭동의 비화(蜚話)는 홀연히 사방으로 전파되어 그 유포 범위 또한 대단히 넓었다”. 뒷날 일본 변협이 보고서를 통해 적절하게 지적한 바와 같이, “당초 조선인이 방화, 폭탄소지 및 투척, 우물에 독물투입 등의 ‘불령행위’를 했다는 선전은 객관적 사실이 아닌 유언비어“였다. 

조선인이 음해를 가하고 있다는 비화 혹은 유언은 대지진 발생 후 한 시간 정도 후인 1시경부터였는데, 도쿄 지역에서는 이미 유언비어가 퍼져가고 있었고, 경시청도 “조선인 폭동”, “불령행위” 등의 언설이 적어도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점은 당시 자료에 “비화” 혹은 “유언”이라는 말로 기술되어 있다는 것이 당시 경시청조차도 “조선인 폭동”, “불령행위” 등을 객관적 사실로 보지 않았음을 보여줄 뿐아니라 경시청 관내의 각 경찰서가 조선인에 대한 살해 등에 대해 상세히 기록한 자료인 「대정대진화재지초」(大正大震火災誌抄)에도 “조선인 폭동에 대한 유언이 기세 좋게 퍼져”, “조선인 폭거 유언이 퍼져”, “유언비어가 처음으로 관내에 전파되어” 등으로 기재되어 있다는 데서도 확인된다. 

이처럼 자료에 일관되게 '유언'이란 표현으로 기술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경시청도 이미 조선인의 '폭동' 등이 유언비어임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확인시켜 준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조선인 폭동의 실체가 의심스러웠지만, 9월 5일 임시진재사무국 경비부에 각계 관리들이 모여 선인(鮮人)문제에 대한 다음과 같은 결정을 했다. “조선인 폭행 또는 폭행하려고 한 사실을 적극 조사해서 긍정적으로 노력할 것. 동시에 아래 사항에 대해서 노력할 것. 1. 풍설(風說)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이를 사실로 할 수 있는 한 긍정할 수 있도록 힘쓸 것. 2. 풍설선전의 근거를 충분히 조사할 것” 등이었다. 이렇게 진재 관리를 맡은 관청이 풍설의 근거 없음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철저히 조사하라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지만, 조선인에 대한 학살은 지진 당일부터 시작되었다. 

일본 사법관청이 ‘불령선인’에 대한 범죄여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는 이 해 10월 20일 사법성의 발표에서 보인다. 지진이 있은 지 한참 후에 발표된 것은 아마도 사법적 절차를 밟은 후에 이뤄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법성은 “금회의 변재(變災)에 즈음하여 조선인에게 불법행위를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널리 알려졌는데, 지금 그 진상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반 조선인은 대체로 양순하다고 인정되지만, 일부 불량 조선인 무리들이 있어 일정 범죄를 저지르고 그 사실이 유도되기에 이른 결과, 변재로 인한 민심 불안에서 공포와 흥분이 극에 달해 왕왕 무고한 조선인 혹은 내지인을 불령조선인으로 오인하여 자위의 수단으로 위해를 가한 사범이 생겼기 때문에 당국은 이에 대해서도 엄밀히 조사하고 이미 기소된 것이 수십건에 이르고 있다. 요컨대 일부 불량조선인이 범죄를 일으켰기 때문에 오살(誤殺)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들의 조사에서도 조선인들은 양순하지만 ‘일부 불량조선인 무리들’이라고 함으로써 이미 저지른 그들의 조선인 학살을 정당화하고 있다. 사법성 조사에 따른 관동대지진시 조선인 ‘범죄’의 신빙성 분석표에 따르면, 범죄 유형은 유언비어, 방화, 협박, 강간, 강도, 상해, 강도살인, 강간살인, 교량파괴, 절도, 독살예비, 절도, 횡령, 절도횡령, 장물운반 등이었다. 

여러가지 정황에 비춰볼 때, 당시 정부 당국은 근거없이 떠도는 조선인에 대한 악의적인 비난들이 ‘유언비어’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당국은,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천재지변에서 오는 국민들의 좌절감을 카타르시스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다. 조선인을 포함한 중국인 유구인 등이 유언비어의 대상이 되었을 때 그들은 방조하거나 더 부추겼고 조선인 희생자가 나타났을 때 오히려 이를 방치함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제노사이드가 자행되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정부 당국의 직접적인 통제하에 있는 군대와 경찰, 그리고 관청의 방조하에 조직 활동한 자경단(自警團)이 있었다.   

 

계엄령 공포와 조선인 학살 명령을 내린 주범으로 꼽히는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왼쪽)과 아카이케 아쓰시 도쿄 경시총감. 3.1운동 당시 각각 조선총독부 정무총감과 경무총감의 지위에 있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특별전 재촬영] 
계엄령 공포와 조선인 학살 명령을 내린 주범으로 꼽히는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왼쪽)과 아카이케 아쓰시 도쿄 경시총감. 3.1운동 당시 각각 조선총독부 정무총감과 경무총감의 지위에 있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특별전 재촬영] 

2. 조선인 학살의 양상과 규모

일본 정부의 방조하에 생산된 유언비어는, 간토대지진의 혼란을 틈타 조선 사람들이 폭행, 약탈, 방화, 폭탄투척, 집단습격, 부인능욕 및 우물에 독극물을 투입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조선인들이 내습하여 일종의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는 일본 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유포되었고, 일본 언론들 또한 이 근거없는 유언비어를 확인 절차 없이 보도했다. 일본 정부의 고지(告知)와 신문들의 허위 보도에 흥분한 일본 민중은 9월 1일 저녁부터 조선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고 학살이 본격화된 것은 4일 전후해서다. 일본의 군과 경찰은 물론 흥분한 민간인들도 관청의 묵인 하에 자경단을 조직, 조선인들을 학살하였다. 

그러니까 이 학살사건은 관동대지진을 빌미로 일본 정부의 유언비어 방관에 일본 민족이 현혹되어 저지른 일종의 집단학살 제노사이드라고 할 것이다. 

조선인을 학살하는 과정에서 일본인과 혼동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체포된 사람들 중에서 자신은 일본인이라고 항변해도 구출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를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일본정부는 식민지 초기(1913)부터 전국 경찰서나 관청에서 조선인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조선인 식별 자료에 관한 건(朝鮮人識別資料に関する件)」이라는 일종의 메뉴얼을 내무성 경보국(警保局)에서 작성한 바 있다. 이 중 언어 부분이 특히 강조되어 있는데 조선인은 “탁음 발음이 곤란하다”든가, 발음할 때 일본어의 ‘라행(ラ行)’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것을 들었다. 

예를 들면 당시 조선인이 일본의 탁음 발음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자경단원들도 통행인을 검문하면서 ‘15엔 55센’(쥬고엔 고쥬고센)을 연속으로 말해보라고 하고 탁음 발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조선인으로 간주, 그 장소에서 살해되곤 했다. 조선인은 탁음이 없기 때문에 ‘쥬고엔 고쮸 고센’으로밖에는 발음이 되지 않았다. 또 ‘라행(ラ行)’을 발음하도록 유도했는데 그들은 한국인이 라(ラ)는 나(ナ), 리(リ)는 이(イ)로 발음한다는 것을 알고 조선인들에게 “라리루레로를 해보라”고 반복적으로 유도하여 발음이 의심스러우면 처단했던 것이다.  

간토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에 대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피살된 조선인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아직도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일본 당국과 조선총독부가 강력한 언론통제를 시행했기 때문에 실상이 밝혀질 수가 없었다. 때문에 학살 당시의 일제 당국의 발표는 축소지향적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는 간토 지방에 살고 있는 조선인은 노동자 3천명, 학생 3천명 도합 6천명인데 조사 결과 조선인 피살자는 2명 뿐이라 했고, 일본 정부도 1923년 11월 13일 현재 조선인 피살자 233명, 중상 15명 경상 27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까지 밝혀진 것은 당시의 발표가 얼마나 허구였는가를 보여준다. 최근에 간행된 가토 나오키(加藤直樹)의 『구월, 도쿄의 거리에서』-1923년 간토대지진 대량학살의 잔향-는 공공 기록은 아니지만 민간 기록들에서 밝혀진 학살상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이 책 앞부분에 제시된 몇 몇 사례들만을 예시코자 한다. 

▶지진이 발생한 9월 1일 저녁, 오이마치 거리에는 이미 일본도나 도비구치, 톱 따위를 든 사람들이 나타나 ‘조선인을 죽여라’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37쪽, 전석필) 

▶ 그리하여 자경단이 통행인을 붙들고 “‘바 비 부 베 보’라고 말해 보라”거나 “‘15엔 50센’이라고 말해 봐”라며 조선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말을 시키고 힐문하는 광경이 각처에서 벌어졌다. (40쪽)    

▶ 요쓰기바시 다리를 건너는데 거기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 셋을 두들겨 패 죽이고 있더라구. 우리는 그걸 곁눈질로 보면서 다리를 건넜어.(41쪽, 조인승)…스무 명에서 서른 명의 사람들이 소총이나 칼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것이다.(44쪽)

▶ 도쿄 부 내에만 그 수가 1천개 이상이었던 자경단은, 거리 모퉁이에서 길가는 사람을 붙들어 신분을 조사하고 조선인으로 의심되는 경우 마구 폭행을 저지른 후 맘에 내키는 대로 죽이거나 경찰에 넘기거나 했다.(48쪽) 경찰이 자경단과 함께 조선인을 뒤쫓는 경우마저 있었다고 한다.…경시청 간부들도 수많은 보고가 밀어닥치자 점점 유언비어를 믿게 된다.(51쪽)

▶ 하지만 도쿄로 습격하러 온다던 선(조선)인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10시쯤이 되어서는 그 정보가 허위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50쪽, 쇼리키 마쓰다로 正力松太郞)  

▶ 유언비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명령을 내린 경시청이었지만, 2일 밤과 다음날인 3일에 이르러서는 조선인 폭동이 과연 실재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조사를 해 봐도 유언비어를 뒷받침할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어었다.(54쪽)

▶ 가메이도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쯤이었다.…그 안에 섞인 조선인은 모두 끌려내려왔다. 그리고는 즉시 칼과 총검 아래 차례차례 쓰러져갔다. 일본인 피난민 속에서 만세를 외치고 환호하는 소리가 폭풍우처럼 끓어나왔다. “나라의 원수! 조선인은 모두 죽여라!”그들을 첫 제물로 삼아 우리 연대는 그날 저녁부터 밤에 걸쳐 본격적인 조선인 사냥을 시작했다.(56쪽, 엣추야 리이치 越中谷利一)

▶ 아마도 3일 점심때였어. 아라카와 강의 요쓰기바시 하류에 자경단들이 줄에 묶인 조선인 몇명을 끌고 와서 죽였지, 정말 잔인했어. 일본도로 자르거나 죽창이나 쇠막대기로 찌르거나 해서 죽였어. 여자, 그 중에는 배부른 사람도 있었지만 다 죽였어. 내가 본 것만 30명 정도 죽였어.(67-68쪽, 아오키-가명)[이하 268쪽까지는 생략]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자들의 수가 얼마나 되었을까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견해를 밝혔으나 아직도 그 정확한 수자를 알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처음에는 2명, 나중에는 813명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일본 사법성이 230명을 발표했으나 그것은 터무니 없는 수자이며 그 무렵 일본 신문들은 40여명으로 추산하고 있었다. 일본인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가 처음에는 724명, 뒤에는 2,613명을 발표한 바 있고, 재일본 관동지방 이재조선동포위문단 조사발표에서도 1,781명이라고 발표한 바가 있었다. 

‘간토대학살’이 일어나자 당시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여기에 가장 깊은 관심을 보였다. 임정은 그 기관지 『독립신문』(1923년 12월 5일)에서 6,661명을 제시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으나 현재 한국사 개설서나 고등학교 교과서 등에서는 6천여명이 희생되었다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장세윤의 「관동대진재시 한인학살에 대한 『독립신문』의 보도와  최근 연구동향」(『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에 밝힌 바 있어서 이를 중심으로 간단히 소개하겠다. 

'관동대학살’ 당시 독립신문사 사장은 김승학. 그의 술회에 의하면 학살 소식을 듣고 그는 나고야(名古屋)에 있던 한세복을 도쿄로 파견, 조선인 학살의 진상을 보고토록 했다. 한세복의 활동은 ‘재일본관동지방 이재조선동포위문반‘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이 해 10월 5일에는 상해거류 한인들이 독립신문 사장 김승학과 윤기섭, 여운형 등 7명을 집행위원으로 선정했다. 그 뒤 『독립신문』에는 조선인학살과 관련된 기사들이 오르는데, 기사의 정확도에는 문제가 있으나 기사화된 사항 중 몇 개를 소개한다. 

▶ 1923.9.19: 천재지변의 화를 조선인에게 전가, 군경(軍警)에 수금된 한인 1만5천명이 조선인 참살(慘殺) 등 항의, 1만 5천 조선인 석방 

▶ 1923,10.13: 군에서 동포 13,000인 별도 수용 후, 기관총으로 사살 조선인 사망자 6,7천인 

▶ 1923.11.10: 우리 동포 수천명이 학살되었는데 그 원인은 일본 당국이 일본인들의 민원을 한인 동포들에게 전가한 데 있다고 파악, 보도함

▶ 1923.12.5: 본사 피학살교일(僑日)동포 특파조사원 제 1신 <1만의 희생자>, 각 지역의 희생자 통계를 적시하고 합계 6,661명이 피살되었다고 보도함

▶ 1923.12.26: “적에게 희생된 동포 횡빈(橫濱)에만 1만 5천”-총계 2만 1천 6백여명/ 독일인 부르크하르트 박사의 증언을 토대로 2만1,600여명 피살로 종합 보도 

12월 26일자 기사에서 “'덕국'(德國, 독일) 뿌 박사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횡빈(橫濱, 요코하마)에서만 1만 5천의 학살이 잇섯다 한즉 본사 특파원이 조사한 바는 횡빈의 분(分)이 포함되지 아니한 모양이니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보도되는 바를 종합하면 전부 2만여명이라는 가경(可驚)할 다수로 산정되더라”는 기사가 있다. 이는 그동안 연구자들이 놓치고 있던 부분이다. 

부르크하르트(Dr.Otto Bruchardt)는 동양미술 전공자로 1923년 9월 1일부터 8일까지 일본에 체류했는데 이 때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참살당하는 것을 보았고, 이 해 10월 9일자로 [Vossiche Zeitung]지에 'Japanische Blutherrschaft in Korea'(한인에 대한 일본의 대량학살)이라는 글을 썼다. 또 상해의 [독립신문](1923년 12월 26일)은 부르크하르트가 귀국한 후 그를 방문한 한국유학생 고일청(高一淸) 황진남(黃鎭南)에게 “이 참상은 나만 보고 들을 뿐아니라 일본이 발표한 영자보(英字報)에 공보(公報)로 발포한 것이 있고 '서서국'(瑞西國, 스위스) 친구 한 사람은 나보다 더 자세히 보았습니다,”라고 보도했다. 부르크하르트가 독일 신문에 기고한 것을 본 한인 유학생들은 <유덕(留德)고려학우회> 이름으로 10월 12일 ‘한인학살’과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한다. 부르크하르트의 목격과 관련된 부분은 그 동안 학계에서 놓친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서 당시 간행되고 있던 국내 민족지로 출발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관동대진재 시기의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서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9월 1일부터 11일까지 학살사건과 관련해서는 게재금지 602건, 18건의 차압조치를 당했다. 당시 언론의 노력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할 수 없으나 여기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다.

간토대학살 때 희생된 조선인들의 숫자가 독립신문에 발표된 6,661명설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와 관련, 강덕상의 연구를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그는 조선인대학살 당시 간토(關東)지방에 약 2만명의 조선인이 살았는데, 간토대진재 때 일본 관헌이 조선인을 강제수용한 숫자는 1만1천여명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1만 1천명 이외의 9천여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의문을 제시할 수 있다. 그 차이 9천명이 모두 살해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로 보아 6천 6백이란 숫자가 근거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6천여명 설은 소홀하게 생각할 수 없다고 본다. 

또 앞서 언급한 독일인 부르크하르트가 제기한 문제를 좀 더 조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는 제 3자적 위치에 있던 학자로서 근거없이 요코하마(橫濱)에서만 1만 5천여명이 희생되었다고 언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북한에서 1980년대 초반에 2만 3천여명 피살설(『조선전사』 연표, 1983, 478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 수치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아마도 [독립신문]등에 나타난 부르크하르트의 기록을 참고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당시 관동지방에 거류했던 조선인들의 숫자가 적게는 6천여명에서 많게는 2~3만명이었다는 세론이 있었던 만큼, 여러 자료를 이용하여 좀 더 면밀하게 조사가 진행된다면 조선인 학살 상황도 더 정확한 수치에 이를 것으로 본다.

 

지난 28일 열린 간토학살100주기 추도문화제에서 한일 시민들은 일본 정부에 더 이상 국가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간토학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에게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 28일 열린 간토학살100주기 추도문화제에서 한일 시민들은 일본 정부에 더 이상 국가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간토학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에게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나가는 말

‘간토대지진’과 ‘조선인학살’은 1923년 9월 1일부터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간토대지진’으로 불안감을 갖고 방황하던 일본인에게,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는 그들의 허탈감을 카타르시스시켜주는 효과를 가져왔을 지도 모른다. 일본 정부는 군․경과 자경단의 조선인 학살을 방조하고 있었다. 명백한 제노사이드였다. 일본 정부는 풍설을 조장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군․경․민이 합심하여 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었다. 의도적인 것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이같은 대학살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어가는 데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표명이 없다. 그러나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이 문제를 제기했던 것은 고무적이다. 그들은 2003년 8월 25일자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에게 “국가는 관동대지진 직후에 조선인과 중국인에 대한 학살사건에 관해 군대에 학살된 피해자와 유족, 허위사실의 전달 등 국가의 행위로 자경단에게 학살된 피해자와 유족에 대해 그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지진을 틈타 ‘불온한 조선인’에 의한 방화, 폭탄투척, 우물에 독극물 투입 등의 불법행위와 폭동이 있었다는 잘못된 정보를 내무성이라는 경비당국의 견해로 전달하고 인식시켰다”면서 이런 허위사실과 유언비어의 전달에 대해 “국가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런 권고를 외면하고 있다. 간토대지진의 발생과정이나 그 피해에 관한 통계는 일본의 중앙방재회의에서 2006년부터 공식보고서를 간행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 남북한 당국이나 인민을 향해 사죄하는 것이 낯부끄러운 일이라면 굳이 한국 인민을 향해서가 아니라도 좋다.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역사 앞에라도 솔직하게 고백하고 사죄받아야 한다.

1923년 9월 간토대진재 때에 조선인 학살 문제와 관련하여 부끄러운 것은 남북한 정부와 국회다. 남북한 정부가 ‘간토조선인대학살’에 대해 그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간토대학살이 자행된 때가 국권이 상실된 때였기 때문이라는 변명이 가능할 듯하지만 이런 제노사이드는 천부적인 인권사상에 의해서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오히려 남북한 정부가 그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또 1965년 6월 22일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 제 2조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임을 확인한다”는 조문에 의거해서라도, 비록 그 조문의 ‘이미 무효’라는 시기를 양국이 달리 해석하고 있지만, 정부는 일본에 대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는 어떤 노력을 했는가. 만시지탄이 없지 않지만, 19대 국회에서 유기홍 의원 등 103인이 2014년 4월에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제출한 적이 있다. 그러나 19대 국회는 이 문제를 처리하지 않고 미적거리다가 2016년 5월 29일 19대 국회가 임기만료됨에 따라 이 법안은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19대 국회에서는 또 2015년 3월, 이명수 의원 등 11인이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안되었으나 이 역시 2016년 5월 19대 국회의 임기만료로 폐기되었다. 

20대 국회에 들어와서도 이명수 의원 등 10인이 2016년 9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조차도 2020년 5월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되고 말았다. 국회가 이렇게 몇 번 시도했지만 법률로써 성사시키지 못한 이 현실, 이게 대한민국 국회의 민낯이다. 

간토대학살 100주년을 맞아 올해도 여야 의원 100명의 이름으로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제출했으나 언제 의결될 것인지 부지하세월이다. 간토조선인대학살 100주년을 맞아 정부와 국회가 이 지경이라면 시민단체라도 이 문제에 적극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올해 9월이면 ‘간토조선인대학살’이 있은지 꼭 100년이다. 우선 한일 양국민은 그 실체를 알아야 한다. 

‘민족적인 차별로’ 다른 민족을 대량학살한, 문명인으로서는 해서는 안될 야만적인 행위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앞서 자행된 이민족 대학살 제노사이드다. 우리는 먼저 그 만행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실체에 대한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용서와 화해는 책임을 통감한 데서 가능하다. 

이 문제로 한일 양국이 언제까지 적대시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이런 껄그러운 과거를 도외시한 채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화해와 용서가 이뤄지면 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도 열릴 것이다. 이 또한 양국민의 몫이다. 우리는 이 수치스런 유산을 후세에 물려주어 그들의 짐이 되게 해서는 안된다. 양국은 정부든 민간단체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정직해져야 한다. 아직도 제 본향을 찾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는 혼령들에게 한일 공동의 이름으로 안식처를 마련해 주는 것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 글은 2021년 9월 6일(월) 오후 1시, 국회 의원회관 제1간담회의실에서 개최된 학술회의 -1923년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학술토론회: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과 ‘대역사건’-의 기조발제를 보완한 것이다.

*이 글은 일일이 그 참고문헌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다음의 책과 논문들을 주로 참고했음을 밝힌다.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동북아역사재단, 2013)/ 가토 나오키(加藤直樹),『구월, 도쿄의 거리에서』-1923년 간토재지진 대량학살의 잔향-(갈무리, 2015)/ 강효숙, 「1923년 관동지역 조선인학살 관련 향후 연구에 대한 고찰-일변협(日辯協)의 보고서를 중심으로-」 『전북사학 제 47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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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부활’에 실종된 '정경유착' 질문을 찾습니다

  • 박재령 기자 
  •  
  •  입력 2023.08.30 00:05
  •  
  •  댓글 0



전경련, ‘한경협’ 이름 변경하며 삼성·SK 등 4대 그룹 재가입

회장 직무대행 맡았던 김병준 전 상임선대위원장 상임고문으로

“정경유착 그림자” 지적 나오지만 다수 언론 “싱크탱크 역할 기대”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4대 그룹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이후 7년 만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재가입했다. 재가입 배후에 정권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전경련을 놓고 ‘정경유착’ 고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다. 사실상 기업들이 7년 전 입장을 번복한 상황에서 다수 신문은 새로운 경제단체의 역할을 기대·환영한다는 논조의 기사들을 냈다. 진정으로 정경유착이 끊어졌는지, 진정한 경제단체의 역할이 무엇인지 등의 질문은 잘 보이지 않았다.

▲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련 회관 모습. ⓒ연합뉴스

전경련은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새 회장으로 선임하면서 이름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변경했다. 동시에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해 4대 그룹의 15개 계열사가 한경협에 가입하게 됐다. 한경연 회원사였던 삼성증권을 제외하곤 모두 한경협 회원이 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4대 그룹의 주요 계열사 대부분 ‘전경련 부활’에 참여한 것이다.

전경련과 4대 그룹은 2016년 박근혜 정부 요구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해 ‘정경유착’ 비판을 받았다. 그해 12월, 4대 그룹이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전경련 해체 수순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기류가 바뀌었다.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병준 교수가 지난 2월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에 취임했고, 이후 각종 해외 행사에 4대 그룹 총수가 동행했다. 김병준 전 직무대행은 현재 전경련 상임고문에 선임됐다.

▲ 지난 22일 전경련 회관 앞에서 4대 그룹 재가입을 규탄하고 있는 시민단체. 사진=참여연대

전경련 부활을 놓고 “윤석열 정부 작품”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겨레는 <꼼수로 간판만 바꾼 전경련, 정경유착 회귀 우려한다> 사설에서 “당선자 시절 윤 대통령은 경제단체장들과의 오찬을 전경련이 주선하게 했다. 전경련도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여론조사를 벌여 ‘국민 지지가 높다’는 자료를 발표하는 등 윤 대통령 지원에 적극 나섰다”며 “지난 2월엔 윤석열 후보 캠프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낸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이 회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조직 부활을 이끈 김 직무대행은 상임고문으로 남는다고 한다. 누가 봐도 독립한 경제단체의 모습은 아니다. 정경유착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전경련 회귀로 비친다”고 지적했다.

정경유착 고리가 여전히 있다는 지적은 시민사회에서도 나온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지난 22일 전경련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경련 즉각 해산을 요구했다. 2016년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뇌물죄, 제3자뇌물공여죄 등으로 고발했던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회장 등은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법의 심판을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 화합, 경제살리기 명목으로 모두 특별사면을 받았다”며 “4대 재벌대기업의 전경련 재가입은 재벌공화국으로의 회귀를 공식화한 것이자 반성 없이 국정농단 이전으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라고 했다.

▲ 23일자 조선 경제B 1면.

▲ 23일자 중앙일보 10면.

사실상 기업들의 7년 전 약속이 무색해진 상황이지만 이를 지적하는 언론은 소수다. 오히려 한경협이 내건 ‘싱크탱크’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목소리가 빈번했다. 일간지 중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세계일보 등이 한경협 출범 소식을 알리며 ‘미국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정책 싱크탱크’ 등을 제목으로 달았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성명이 비중 있게 담긴 곳은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뿐이었다. 경향신문은 “한경연의 경우 박사급 인력이 25명에서 6명으로 줄어 기존 인력만 갖고 글로벌 싱크탱크가 되기엔 역부족”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지난 9일 <전경련서 한경협으로… ‘기업가 정신’ 되살리는 주역 돼야> 사설에서 “이번 류 회장 체제 출범은 6년 넘게 난항을 겪어온 전경련의 정상 궤도 복귀 신호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위상 추락의 주원인인 정경유착의 폐습을 철저히 털어내고, 재발 방지를 위한 내부 통제 장치를 만드는 게 급선무다. 대기업 이익만 대변하는 모습, 정치권력과 기업의 물밑 소통채널 역할에서 탈피해 자유시장경제를 지키는 ‘싱크탱크’로 새 출발을 하겠다는 약속도 차질 없이 이행돼야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도 지난 9일 <‘뉴 전경련’ 류진 한경협 회장에게 기대한다> 사설에서 “이와 함께 한경협이 재계의 이익단체를 넘어 기업가 정신과 자유시장 경제를 옹호하는 힘 있는 싱크탱크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도 미국기업연구소(AEI)나 헤리티지재단처럼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싱크탱크가 나올 때가 됐다”고 했고 세계일보는 지난 18일 <삼성 복귀 수순 밟는 전경련, 새 출발해 경제위기 극복하길> 사설에서 “한경협은 초심을 되살려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는 주역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고 했다.

▲ 23일자 한국경제 사설.

▲ 22일자 매일경제 사설.

경제신문도 같은 논조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구성의 사설을 잇따라 냈다. 한국경제는 지난 23일 <새 출발 한경협, 굳건한 자유시장경제 파수꾼 돼라> 사설을 냈고, 매일경제는 지난 22일 <새출발하는 한경협, 자유시장경제 지킬 주역으로 거듭나라> 사설을 냈다. 서울경제의 23일 사설 또한 <한경협, ‘민간 주도 역동적 경제’ 위한 싱크탱크단체로 거듭나라>이다.

결국, 전경련이 진정으로 ‘정경유착’을 끊어냈는지 질문은 흐려진 상황이다. 한국경제는 지난 18일 <정경유착이라는 낡은 프레임> 칼럼에서 “대기업집단을 대하는 정치적 프레임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4대 그룹의 전경련 재가입을 둘러싼 정치 공방이 단적인 예”라며 “무엇보다 재벌과 특혜, 정경유착으로 연결되는 과거의 프레임으로 기업을 엮기에는 우리 경제가 직면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 전경련의 환골탈태 못지않게 과거의 왜곡된 잣대로 기업을 재단하려는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 그게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했다.

진정한 경제단체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이창곤 한겨레 기자는 지난 1일 칼럼에서 “우리가 짚어야 할 서구와는 다른 한국 사용자단체의 특성이 있다. 배타적 경영권주의와 기업별 노동조합주의에 대한 강한 집착”이라며 “주요 단체에 대기업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란 점도 있다. 사용자단체가 처음 출현한 이래 거의 바뀌지 않은 데다 사용자단체 스스로 바꿀 수 없는 특성이다. 이는 국내의 사용자단체가 권한과 책임 간의 균형을 취하고, 또 기업별 교섭보다는 초기업별 단체교섭이 활성화하도록 하는 데는 강한 사회적 압력 없이는 절대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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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정치세력화’ 선언 5천 돌파.. 민주노총, 다음달 14일 대의원대회

  • 조혜정 기자
  •  
  •  승인 2023.08.2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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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정치방침과 총선방침을 논의할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대대)가 다음 달 14일 경기 일산 킨텍스 전시장에서 열린다.

민주노총은 대대에 앞서, 다음 달 5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대대에 성안할 방침 안건을 논의할 예정이다.

▲ 지난 4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노총 76차 임시대의원대회 ⓒ김준 기자

내년 총선이 220여 일을 앞둔 가운데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열망이 현장 곳곳으로 확산하고 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정치·총선 방침을 반드시 수립해야 한다”는 ‘현장노동자 정치선언’ 운동이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5천 명을 돌파했다.

정치선언엔 “민주노총이 ▲9월 대의원대회를 통해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분명한 방침(정치·총선방침)을 반드시 결정하고 ▲투쟁의 힘과 정치적 힘을 쥐고 반노동, 반민주 윤석열 정권을 퇴진시켜야 하며 ▲2024년 4월 총선에서 노동중심 대안정치 세력의 등장으로 기득권 양당정치를 끝내고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갈라진 진보정치를 단결시켜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와 결심이 담겨있다.

이 정치선언 운동은 대대가 열리기 전까지 계속되며, 선언 명단을 모아 대의원들에게 제출할 예정이다. 현재의 가파른 참여 속도로 봤을 때 선언운동 참가자가 얼마나 될지는 쉬이 짐작할 수 없다.

▲ ‘노동자 정치세력화’ 요구를 담은 조합원 인증샷 ⓒ마트노조 부산본부

또, 각 단위 노조에서도 자체 선언운동이 준비되는 등 정치·총선방침을 수립하자는 현장 움직임은 다양하게 벌어지는 중이다. 지역에서도 선언운동이 예고되어 있다.

‘절박하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등의 문구가 담긴 팻말을 들고 인증샷을 촬영해 SNS에 올리는 등 대대를 앞두고 정치세력화에 대한 현장 요구는 더욱 빗발칠 예정이다.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총이 10년 넘게 미뤄온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길을 열게 될지 민주노총 대대에 관심이 쏠린다.

‘120만 민주노총 현장노동자 정치선언’ 보기

조혜정 기자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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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팽개친 정부, 내년 예산 역대 최소폭 증가…R&D 17% 삭감

657조 긴축 예산 편성에도 재정적자 더 커져

이대희 기자  |  기사입력 2023.08.29. 16:52:59

 

내년도 예산안이 근래 가장 낮은 폭으로 증가한 채 편성됐다. "민생을 내팽개쳤다"는 질타가 곧바로 쏟아졌다.

 

29일 정부는 내년 예산 총지출을 전년 대비 2.8%(18조2000억 원) 증가한 656조9000억 원으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정부 예산 총지출 2005년 이후 최소 증가

 

이는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20년 만에 최소 증가 폭이다. 올 6월 말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재정전략회의에서 논의된 긴축안보다 증가율이 낮다.

 

당시 4% 중반대 증가율이 반영된 예산안이 오르자 기획재정부는 각 부처에 내년도 예산을 다시 짜 올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이는 "예산을 얼마나 많이 합리화하고 줄였는지에 따라 각 부처 혁신 마인드가 평가될 것"이라던 윤석열 대통령의 회의 발언에 따라 결정된 조치다. 그 같은 요구안이 이번 '짠돌이 예산안'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내년 한국의 경상 성장률을 4.9%로 잡은 만큼, 이에도 미치지 못하는 '역대급 긴축 재정'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줄곧 강조해 온 재정 긴축 기조가 내년에도 이어지는 셈이다. 정부는 "국채 발행으로 지출 규모를 크게 늘리기보다 강도 높은 재정 정상화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편성 이유를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문재인 정부가 연 7~9%대 총지출 증가율을 기록하며 짠 예산안과 크게 대비된다.

 

▲내년도 예산안. ⓒ기획재정부
 

총수입 612.1조 원… 통합재정수지 적자 44.8조 원

 

내년 총수입은 전년 대비 2.2%(-13조6000억 원) 줄어든 612조1000억 원으로 편성됐다. 국세수입을 올해 예산 대비 33조1000억 원 줄어든 367조4000억 원으로 잡고, 국세외수입에서 19조5000억 원이 증가하는 것으로 정부는 편성했다.

 

올해의 경기 둔화와 자산시장 침체로 인해 국세 수입이 적게 걷히는 상황을 반영한 결과다.

 

이에 따라 내년 예산은 총지출(656조9000억 원)이 총수입(612조1000억 원)을 웃도는 적자재정으로 편성됐다. 그만큼 재정수지 악화가 발생하게 됐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올해 58조2000억 원에서 33조8000억 원 증가한 92조 원으로 잡혔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9%로 불어나 정부 재정준칙 한도(3.0%)를 넘어서게 됐다. 정부가 재정 졸라매기를 했음에도 재정 악화가 일어났다. 이에 관한 비판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채무는 올해 1134조4000억 원에서 61조8000억 원 증가한 1196조2000억 원이 됐다. 이에 따른 내년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보다 0.6%포인트 오른 51.0%로 잡혔다. 즉 재정 지출을 줄이면서 국가채무 비율은 더 올라간 셈이다. 

 

한편 이를 반영한 내년도 통합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올해 13조1000억 원 대비 31조7000억 원 증가한 44조8000억 원이 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사전브리핑에서 "그간 확대된 재정수지 적자와 누적된 국가채무로 재정 상황이 어려운 데다 올해와 내년 세수 상황이 녹록지 않다"며 "경제 상황, 민생, 국민 안전을 위한 재정 소요를 감안하면서도 건전재정 기조를 놓지 않는 지점이 어디일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건전재정 집착 결과…민생 희생 선언" 

 

정부의 이번 예산안이 발표된 후 시민사회에서는 곧바로 강력한 비판이 제기됐다. 

 

참여연대는 이날 배포한 논평에서 "거듭된 세수 부족 사태에도 감세로 점철된 세법 개정안을 내놓은 윤석열 정부는 예상대로 2024년 총지출을 2005년 이후 역대 최저 증가율인 2.8% 증가한 656.9조 원으로 편성했다"며 "지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밝힌 내년도 경상성장률 4.7%(실질성장률 2.4%, 소비자물가상승률 2.3%)를 감안하면 사실상 지출을 크게 줄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한국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 경제가 가라앉는 마당에 "재정지출까지 이렇게 줄이는 것이 적정한지 우려된다"며 "이는 결국 상반기에만 40조 원 발생한 역대급 세수결손과 건전재정 집착이 결합된 결과"라고 촌평했다.

 

참여연대는 "경제위기 시 정부가 긴축에 나설수록 경제는 악화될 우려가 크기 때문에 이는 결국 재정만 고려해서 민생을 희생시키겠다는 것과 같다"며 "재정지출 감소로 민생이 악화되고 이는 다시 세수 부족으로 이어지고, 재정은 더 위축되는 악순환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재정 정상화로 포장된 재정 역할 포기 선언과도 같은 내년도 예산안으로 인구변화의 구조적 위기, 경제위기, 기후위기 등 복합적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며 참여연대는 "적극적 재정운용 기조로의 전환과 이를 위한 국회의 역할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처럼 삭감된 예산안이 나옴에 따라 야당은 물론, 한 표가 아쉬운 처지인 여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구개발 예산 큰 폭 감소내년 예산 어디 쓰이나 

 

정부 예산의 분야별 재정 편성 내역을 보면, 보건·복지·고용에 올해(226조 원) 대비 16조9000억 원(7.5%) 증가한 242조9000억 원이 편성됐다. 

 

일반·지방행정에는 올해 112조2000억 원 대비 9000억 원 감소(-0.8%)한 111조3000억 원이 잡혔다.

 

다음으로 덩치가 큰 교육 예산은 올해(96조3000억 원) 대비 6조6000억 원(-6.9%) 줄어든 89조7000억 원이 배정됐다. 

가장 큰 폭의 예산 감소가 일어난 부문은 연구개발(R&D) 분야다. 올해 31조1000억 원 대비 5조2000억 원이 줄어든 25조9000억 원이 됐다. 예산안 감소 폭이 16.6%에 달한다. 

 

이에 관해 정부는 "그간 R&D 투자가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시적 성과 도출에는 미흡했다"며 "도전과제 대신 나눠먹기식 소규모 R&D 사업이 난립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지난 2018년(19조7000억 원) 이후 올해(31조1000억 원)까지 연평균 R&D 예산 증가율은 10.9%였다.

 

정부는 이에 "나눠먹기·관행적 지원 사업 등 비효율적인 R&D는 구조조정하고, 도전적·성과창출형 R&D에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고 이번 예산안을 설명했다. 관련해 바이오 분야 연구 프로젝트(KARPA-H)dp 495억 원이, 민간 발사장과 우주환경시험시설 및 특화지구별 거점센터 구축에 100억 원이, 반도체 첨단패키징과 차세대 이차전지 관련 지원에 600억 원이 각각 신규 책정됐다. 

 

하지만 이에 관한 과학계와 기술계 반발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 한국 기술 경쟁력의 바탕이 될 과학분야에 가장 큰 폭의 삭감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의 격변이 이뤄져 기술 격차가 곧 국가 경쟁력이 될 시대에 과학 분야 투자가 줄어드는 데 따르는 과학계 우려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환경(2.5%)에는 올해보다 1000억 원 증가한 8조7000억 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부문에는 올해 대비 1조3000억 원(4.9%) 증가한 27조3000억 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사회간접자본(SOC)에는 올해 대비 1조1000억 원(4.6%) 증가한 26조1000억 원의 예산이 잡혔다. 

 

국방 예산은 올해(57조 원) 대비 2조6000억 원(4.5%) 증가한 59조6000억 원으로 책정됐다.

 

▲내년도 분야별 예산. ⓒ기획재정부

 

내년에도 "건전재정 기조 견지" 

 

정부는 "건전재정 기조를 견지하고 재정을 정상화해 예산의 체질 개선"에 나서겠다고 이번 예산 편성 취지를 밝혔다. 아울러 "정부가 해야 할 일에는 제대로 과감하게 투자"하겠다고 강조했다. 

 

관련해 내년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생계급여액은 올해 대비 4인가구 기준 21만3000원 인상된 183만4000원으로 잡혔다. 이는 최근 5년간(17~22년) 총 인상액 19만6000원보다 많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주거급여 선정기준은 종전 중위소득 47%에서 48%로 상향해 2만 가구를 추가 지원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장애인 취업 지원을 위해 조기취업수당이 신규 도입되는 것도 변화다. 장애인 연금은 월 최대 40만3000원에서 41만4000원으로 인상됐다. 

 

특히 최근 들어 크게 증가한 노인일자리 부문에는 관련 수당을 6년 만에 2~4만 원가량 인상하기로 했다. 종전 88만3000명 수준이던 노인일자리는 103만 명으로 증가한다. 14만7000명이 늘어나 역대 최대로 노인 일자리가 늘어나게 됐다. 

 

소상공인 대상 새출발기금은 올해 2800억 원에서 내년 7600억 원으로 확대된다. 소상공인의 경영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고효율 냉난방기(6만4000대)와 식품매장 문달기(1만5000대)에는 1100억 원의 예산이 신규 책정됐다.

 

소상공인 융자 총액은 올해 3조 원에서 내년 3조8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니트(NEET, 무직이면서 취업 활동을 하지 않는 이)족 청년을 대상으로는 발굴‧심리상담‧교육‧온보딩 종합지원 플랫폼(10개소)과 특화형 일경험 프로그램이 신규 지원된다. 대상자 규모는 6000명이다. 

 

저소득 대학생을 대상으로 국가장학금 지원한도와 대상을 확대하고 대중교통요금 할인을 지원하는 '케이-패스(K-pass)를 신규 도입하기로 했다. 적용 대상자는 177만 명 규모다. 

 

모든 기초생활수급가구 아동은 출생시부터 17세까지 디딤씨앗통장 가입을 지원받게 된다.

 

에너지 바우처 지원대상 확대 

 

급등하는 에너지 비용에 관한 대응책으로 올해 85만7000가구이던 에너지 바우처 지원대상이 내년에는 115만 가구로 증가한다. 지원단가는 올해 19만5000원에서 내년 36만7000원으로 늘어난다. 

 

중소기업 대상으로 에너지 효율진단 지원이 확대되고 일반가구의 경우 탄소포인트 지원 대상이 250만에서 260만 가구로 증가한다. 

 

정부는 아울러 에너지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주요 광물과 석유 등의 공공비축을 확대하고 국내유전과 해외자원 개발 투자와 융자를 강화하기로 했다. 

 

원전과 관련해서는 원전 생태계 조기복원을 위해 2000억 원 규모의 저리융자와 보증지원이 이뤄진다.

 

출산율 정책으로는 신생아 출산 가구(출산 2년 내, 23년 이후 출생아)에 총 2조1000억 원 규모의 주택 구입, 전세자금 융자 및 주택 우선공급 지원이 이뤄진다. 신생아 출산 가구의 디딤돌·버팀목 대출 소득요건은 연 소득 7000만 원 이하에서 1억3000만 원 이하로 줄어든다. 

 

자녀 돌봄을 위한 유급 육아휴직 기간은 6개월 연장하고 영아기 맞돌봄 특례 기간은 3개월에서 6개월로, 급여는 상한 300만 원에서 450만 원으로 각각 확대된다. 

 

아빠의 돌봄 휴가 문화 정착을 위해 중소기업 노동자의 배우자 출산휴가 급여기간은 종전 5일에서 10일로 확대된다.

 

안정적인 보육지원이 가능하도록 정원에 미달하는 어린이집 영아반(0~2세)에는 미달 1명당 62만9000원~23만2000원가량의 보육료가 추가 지원된다. 

 

난임가구에는 남녀 필수 가임력 검진비, 난임시술, 난임휴가 등의 신규 지원이 이뤄진다.

 

정부가 주도하는 이른바 '노동시장 합리화'를 위해서는 우선 대기업과 하청기업 노동자 간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 원·하청 공동복지기금이 종전 10억 원에서 20억 원으로 증가 책정되고 2, 3차 협력사를 대상으로 50억 원 규모의 상생연대기금이 신설됐다. 

 

총 167개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주 2시간 이상 실근로시간을 단축할 경우 월 30만 원의 단축장려금이 신규 지원된다.

 

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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