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탄핵 범국민운동본부(탄핵운동본부)는 21대 국회의원 전원에게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공개 질의서를 15일 보냈다.
탄핵운동본부는 공개 질의서에서 “대통령 직무상 헌법과 법률위반 사례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국정 농단과 국정 파탄 사례가 계속 쌓이면서 국민의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다”라며 “여야를 떠나 이 문제(윤 대통령 탄핵)는 국민의 편에서 판단하고 결단을 내려야 할 문제이다. 헌법기관으로서 국회에 주어진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밝혀야 하는 중대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공개 질의서는 여론조사형 질문이 아니라 국민의 명령이라는 차원에서 발송한다”라며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우리 국민은 그 근본적인 원인인 윤석열 정권 탄핵을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탄핵운동본부는 윤 대통령의 탄핵 사유를 아래의 다섯 가지로 제시했다.
① 후쿠시마 핵 폐수 해양투기 방조: 국가와 국민의 생명 안전권 침해
② 해병대 박정훈 수사단장에 대한 외압행사: 군사법원법 위반
③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조작: 윤석열-김건희 일가의 국정농단
④ 일본 강제징용 친일 해법 강행: 대법원판결 부정
⑤ 전쟁 위기 조장: 평화통일 의무 위반
탄핵운동본부는 국회의원들에게 각각의 사례가 대통령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지와 대통령 탄핵 발의안에 동참할 것인지를 질의했다. 오는 24일까지 답변을 요구했고, 답변 여부와 내용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탄핵운동본부는 ‘윤석열 탄핵’에 동참하는 정당과 시민단체로 구성됐으며, 오는 18일 오후 3시 국회 앞에서 열리는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전국 집중 촛불대행진’에서 발족을 선포한다.
미국 바이든(J. Biden) 정부의 대외정책 독트린은 무엇인가? 9월 말 미국의 한 시사 저널의 행사에서 국가안보보좌관 설리번(J. Sullivan)은 자강, 동맹, 글로벌 사우스에서 미국 리더십의 강화, 그리고 절제된(disciplined) 군사력 운용방식이라는 네가지 주요한 수단을 통해서 상호의존 시대의 지정학 경쟁을 펼치는 것이라고 답했다(“National security adviser Jake Sullivan delivers remarks on threats to democracy,” PBS NewsHour 2023.9.30).
미국의 '절제된 방식'의 대표적 성과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면서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끄(크)라이나를 지원할 여력을 확보한 점, 가자지구의 긴장완화를 포함한 예멘 내전의 휴전 등으로 중동을 9·11 테러 이래 가장 조용하게 관리한 점이었다. 그 효과로 "다른 지구적 중점 과제들을 위한 자원을 확보하고 중동의 새로운 갈등 위험을 줄이고 미국의 이익이 훨씬 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보호되었다." 10월 2일 설리번은 이러한 주장을 담은 '미국 힘의 원천'이라는 제목의 원고를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했다(“The Sources of American Power,” Foreign Affairs 2023년 11-12월호).
중동의 안정이 깨지고 미국 힘의 한계가 드러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0월 7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영내에 침입하여 1200명을 살해하고 240명을 납치하는 전대미문의 테러공격을 감행하였다. 이스라엘은 즉시 하마스 절멸을 목표로 천명하며 가자지구에 대한 전기, 식량, 연료, 물 공급을 끊고 대규모 공습을 시작했고, 27일부터는 가자지구에서 지상전을 전개했다. 한달 만에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1만 명을 넘어섰고, 그중 4000명이 어린아이들이었다.
10월 18일 바이든의 이스라엘 방문 이후 설리번은 「미국 힘의 원천」의 웹 버전에서 중동 관련 내용을 수정하였다. 중동의 안정에 대한 선전은 삭제되었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해법으로 2국가론이 언급되었으며, 이스라엘에 대한 일방적 지원과 함께 가자지구의 인도적 지원에 힘쓰고 있는 바이든 정부는 여전히 '절제된 접근'을 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 10월 31일(현지시각) 미 상원 세출위원회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휴전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맨 앞) 뒤로 시위 참가자들이 빨간색 손을 들면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EPA=연합뉴스
바이든 정부의 대응은 절제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엔의 공식명칭이기도 한 '(이스라엘에 의해서) 점령된 팔레스타인 땅'(The Occupied Palestine Territory)의 비극을 전혀 대변하지 않은 채 하마스를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방공망과 탄약 등을 긴급 지원하면서 오스틴(L. Austin) 국방장관은 미국의 군사지원이 무조건적이며, 이스라엘은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는 모든 것을 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인도적 지원 단체들과 아랍, 그리고 국제사회 전체가 비판한 연료와 식량 등의 금수 조치를 통한 가자 포위(seizure)나 대규모 민간인 피해를 수반하는 공습과 지상전이 모두 하마스의 절멸을 목표로 한 이스라엘의 자위권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구떼흐스(A.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처럼 하마스의 테러가 진공상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님을 지적하지 않은 채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인정한 바이든 정부는 뒤늦게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소규모 정밀포격 등을 조언하고, 인도적 교전중지를 제안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휴전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미국의 ‘조용한 외교’에 대해서는 2차대전 중 미국이 독일과 일본의 도시들을 폭격한 사례, 특히 핵무기를 사용한 것을 자위권의 전례로 일깨워주며 제한적으로만 인도적 교전중단에 합의하고 있다.
미국은 결과적으로, 하마스가 기지로 사용하고 있다며 사원과 병원, 난민촌 등을 자위권을 명분으로 거침없이 폭격한 이스라엘의 '살육극 공범'이 되었다. 그 후과로 중동의 갈등에 다시 발목이 잡히면서, 대내외적 중점 과제에 투자할 도덕적·물질적 자원을 확보하는 데 장애가 발생했다. 가장 직접적으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중동 전체로 확산되지 않더라도, 바이든 정부가 추진했던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 인도에서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연결되는 경제회랑 건설 등은 적어도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이 진행되는 동안은 실현 불가능하다. 도덕적 권위에 대한 타격도 심대하다. 요르단 등이 제한한 휴전결의안은 유엔총회에서 압도적인 찬성(120개국)으로 통과되었는데, 미국은 소수의 반대국가(14개국) 중 하나였다. 국제사회, 특히 글로벌 사우스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중국이나 러시아 등과 비교해서 지니는 대안적인 가치(value proposition)를 제고하고자 했던 설리번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바이든이 이스라엘을 방문해 글로벌 사우스의 반발을 사는 동안 뿌찐(V. Putin)이 시 진핑(習近平)이 주재하는 중국의 일대일로 회의에 참석한 것은 대단히 시사적인, 미국의 고난을 상징하는 국제적 풍경이다.
설리번이 미국외교의 주요 수단으로 제시한 자강과 동맹에 미치는 파장은 비록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결코 간단치 않다. 러시아의 우끄라이나 침공에 맞서 바이든 정부가 주요 7개국과 우끄라이나의 대응을 조율하면서 나토(NATO)의 확장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것과 달리,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에서 바이든 정부는 G7과 서구 전반은 물론 미국 내부적으로도 단합된 대응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서구 전반의 이념적, 종교적, 정치적 분열의 이슈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석유 의존 등으로 중동문제 전반에서 여타 G7과 궤를 달리해온 전통을 유지하고 있고, 프랑스는 미국의 동맹국들이 대부분 유엔총회 휴전결의안에 기권한 것과 달리 찬성을 하며 팔레스타인의 인도주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유럽연합 관료조직 내부에서 폰데어라이엔(U. von der Leyen) 집행위원장의 친이스라엘 편향에 대한 반발도 심각한 상황이다. 나토와 인도·태평양지역의 동맹을 현대화하고 서로 연계한다는 바이든 정부의 동맹정책 이상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해서는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정치의 분열과 기능장애는 10월 7일 하마스의 테러 직전에도 하원의장 축출로 계속 악화일로에 있었다. 바이든 정부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러시아-우끄라이나 전쟁, 그리고 중국의 도전을 연계시키며,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필수국가' 미국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우끄라이나에 대한 지원과 중국 대응 명목 등으로 1060억 달러의 긴급 대외원조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관성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면서 인도적 위기를 초래했다며 국무부 고위 관료가 공개적으로 사직을 발표하기도 했고, 미국이 제공한 무기가 민간인 살상에 이용되는지를 살펴보겠다는 국무부 정책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데 대한 반발과 비판도 제기된다. 이스라엘 지원으로 아랍 유권자와 청년세대의 반발이 거세어 바이든의 범민주연합에 균열이 생기고 있으며, 공화당과 트럼프(D. Trump)의 미국우선주의 추종세력은 우끄라이나에 대한 추가 원조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고, 민주당 내 진보진영은 즉각 휴전을 요구하며 이스라엘 지원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스라엘 지원을 찬성하는 중도파 민주당 의원들도 이스라엘에 지원되는 무기 내역을 의회에 공개하지 않는 바이든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설리번은 중산층 재건과 경제안보, 그리고 군비증강을 자강의 주요 정책으로 제시했는데, 이들을 위한 예산을 어떻게 확보하고 분배할 것인지에 관한 기존 대립구도에 더해 대외원조 전반에서의 제정파들 간 대립이 착종되고 있는 것이다.
13일 오전 9시, 여느 때처럼 라디오 방송 <주진우 라이브>를 위해 KBS에 출근하던 주진우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KBS 라디오 신임 간부의 '하차 통보' 전화였다. 그 간부는 주 기자에게 'KBS에 오지 마라, 방송은 끝났다'고 통지했다. '청취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할 기회를 달라'는 주 기자의 간절한 요청도 단칼에 거절당했다.
주 기자는 "순간 멍했다"고 했다. KBS 주차장에 막 도착한 그는 다시 주차장을 빠져나가야 했다. 2020년 5월부터 3년 6개월간 이어온 KBS '주진우 라이브'는 그렇게 허망하게 막을 내렸다. 지난 10일 금요일, '주진우 라이브' 방송 끝머리에서 그가 했던 말, "월요일 오후 5시 5분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청취자와의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15일 서울 충정로역 인근에서 만난 주 기자는 아직 마음의 정리가 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짤린 지 이틀"이라는 말을 반복했고, 라디오 이야기를 꺼낼 때는 눈가에 잠시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주 기자는 "무지하고 무례한 시대라는 걸 알아서 다행이다"라며 말을 꺼냈다. 강제 하차에 대해 주 기자는 "당장 오지 말라는데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난다, 폭력적으로 느껴진다"며 "(지난해 말 TBS 라디오 하차할 때) 그때는 숨도 못 쉬게 하는 압박이었다면, 이번에는 그냥 단칼로 내려치는 느낌"이라고 했다.
박민 사장이 정치적 편향을 지적해왔다는 말을 꺼내자 주 기자는 "편파적이라고 하는데, 박민(사장이 문화일보 논설위원 당시 쓴) 글을 보라, 윤석열은 '어벤져스', 이재명은 '타노스'라고 얘기하면서 한쪽 진영에 발을 담그고 훈수를 뒀다"라며 "그 사람(박민)이 하는 말은 윤핵관을 어벤져스라고 안했다고, 편향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박민은 언론인으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 기자는 역대 보수 정부의 언론 정책을 "이명박 정부 때가 가장 후졌다"면서도 "윤석열 정부에선 그 후짐이 구체화되고 있다. YTN 민영화 등 이명박 정부 당시 구상들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있고,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프로젝트를 완성하려고 속도를 내는 것"이라고 했다.
- 1년 새 두 번의 강제 하차를 겪었다. 첫 번째는 지난해 12월 TBS 라디오, 이번에는 KBS 라디오다. KBS 하차는 좀더 과격하게 이뤄졌는데, 어떤 생각이 들었나.
"TBS의 경우 돈줄을 말려서 방송을 못하게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는 숨을 못 쉬게 하는 압박이었다면 이번에는 단칼로 내리치는 느낌이다. 쿠데타 같다. 진짜로 그냥 쿠데타 같다. 이별의 순간이 왔다는 것은 예감했지만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그리고 법도 어겨가면서 무리할 이유가 있었나 이런 생각은 계속 든다. 프리랜서지만 라디오 하차 한달 전에는 통보하도록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
지금 '특집'이라고 붙여 놓으면서 꼼수를 쓰는데 자기네들(KBS간부)도 다 안다. 법을 어겼다는 걸. 지난주 금요일에 '월요일 오후 5시 5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얘기했는데, 그래도 마지막이니 한마디는 하고 싶었다. 그 얘기를 못한 게 너무 안타깝다."
- 정확하게 하차 통보를 받은 시점이 언제였나?
"오전 9시 조금 넘어서 전화가 왔다. 부족한 진행자여서 KBS에 일찍 가서 준비도 하고 공부도 한다. 9시쯤 KBS 주차장에 들어섰는데 그때 전화가 왔다. 라디오 간부라는 사람이 자기가 발령을 받았다면서 '오지 말아라, 너의 방송은 끝났다' 이런 얘기를 했다. 사장의 뜻에 의해서 특집 방송으로 대체될 거니까 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차를 돌려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 그간 라디오 프로그램이 국민의힘 측으로부터 지속적인 편향성 비판을 받아왔다. 행정 제재를 많이 받았다는 이유도 포함됐다.
"행정 제재 내용을 살펴봤으면 좋겠다. 대부분이 여론조사를 소개할 때 개요를 일부 빼먹거나, 외국 여론조사를 애기할 때 확률 등에 대해 고지를 안한 게 대부분이다. 편향적이라고 하는데, 가장 최근 사례를 들어보겠다. 강서구청장 선거할 때 우리가 김태우 (국힘) 후보자 측에 인터뷰 요청을 먼저 했다. 여러 번. 그리고 나중에 나오겠다는 답변을 받고 진교훈 (민주당) 후보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국민의힘 측에서 방송통신심의위에 '편파적'이라고 걸었다."
"편파적이라고 하는데 박민 사장(문화일보 논설위원 당시 쓴 사설) 글을 보라. 그게 편향이다. 윤석열은 '어벤져스', 이재명은 '타노스'로 묘사하면서, 한쪽 진영에 발을 담그고 계속해서 훈수를 둔다. 나중에 보면 '나 그쪽으로 가고 싶다'는 추파다. 그래서 사장도 된 거 아닌가.
기레기, 기레기 하는데, 정치 쪽에 편향돼 한발을 담그고 편향적인 글을 쓰다가 자리 얻어 가는 사람들이 전형적인 기레기다. 이 사람은 윤핵관을 어벤져스라고 안했다고, 그걸 편향이라고 얘기하는 거다. 이 사람(박민)은 저널리스트, 언론인으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사과는 그 사람이 해야지, 왜 KBS가 (대국민) 사과를 하나."
- 박민 사장에게 한 마디 전한다면?
"휴가를 가셨으면 좋겠다. 언론의 자존심을 짓밟고, 언론이 해야 할 역할과 정반대의 얘기를 하고 있다. 이거야말로 언론에 대한 타노스(파괴자) 역할이다. 그런데 자기가 칼을 휘둘러야 인정 받는다고 생각하면서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고 있다. 지금이라도 아무 것도 말고 휴가 갔으면 좋겠다."
- 사실 주진우 기자가 보수 정부 입장에선 불편하고 못마땅할 수 있다.
"그동안 나는 이명박과 이명박 주변 사람들이 잘못하는 기사, 박근혜가 잘못하는 기사를 썼다. 권력의 잘못된 점,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기자였다. 그런데 부정부패한 세력들이 다시 복귀해 나를 편향적이라고 얘기한다. 이명박 정부 때도 나를 빨갱이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박근혜 주변 인물을 문제 제기하니 그때는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지금은 (라디오 프로그램 강제 하차 등을 통해) 숨통을 말려 죽이고 있다. 정치적 편향성 공격, 고소고발에 이어 밥줄을 끊는 걸로 진화하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가 가장 후졌다. 윤석열 정부 때는 '이명박 정부의 후짐'이 더 구체화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막 밀어붙이다만 것들, 그때 생각을 지금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이명박 측근들이 정권 바뀔 때마다 왔다갔다 골치아프니 방송사 다 민영화 시켜서 우리 편 만들겠다는 취지로 공공연히 얘기하고 다녔다.
말도 안 되는 언론 장악 프로젝트를 이명박 정부 때 시작해서 지금 완성하려고 속도를 내고 있는 것 같다. YTN 사영화도 그렇고, KBS도 그렇다. 모든 언론을 마비시키는 게 목표처럼 움직인다. 언론이 사라졌으면 하는 사람들, 혹은 독재자들은 지금까지 비참한 말로를 겪었다. 윤석열 정부도 그 길을 가고 있다."
- 현 정부 들어 언론에 대한 압박이 더 거세지고 있다. 그런데 이를 비판하는 언론사도 많지 않고, 시민들도 예전만큼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기자들, 언론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안타깝다. 이동관 패거리가 약한 고리, (기자를 업으로 하는) 생활인들의 약한 고리를 잘 파고들고 있어서, 저널리즘이 계속 위기의 늪에 빠지는 것 같다. 이래라 저래라 할 위치도, 능력도 안 되지만 이 얘기는 남겨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잘 먹고 잘 살자고 기자 하겠다고 한 거 아니지 않나, 세상이 조금 나아지는 데 보탬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기자하겠다고 한 것 아닌가'. 초심으로, 기본으로 돌아가면 그 답은 명쾌하다. 깡패들이 어린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다. 옆에서 소리도 지르고 누구는 신고를 해줘야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은 그 깡패들이 나한테 왔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이동관이 하는 일, 우리(기자)가 잘못됐다고 써야 한다."
-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나.
"아직 경황이 없다, 기사 쓰고 싶은 생각은 많다. 사실 이명박(정부 시절 인사들)이 다시 돌아오리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그대로 다 돌아왔다. (그들에게) 제가 쫓기고 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포스터를 배경으로 이동관, 김효재 등 이명박 정부 때 있었던 사람들 사진을 채우고, 가운데 이명박 사진 대신 윤석열 대통령을 채워넣으면 다 똑같아진다. '(각 인물마다) 커버 스토리가 15개씩 있다, 이거 써야 하는데...' 그런 생각은 조금 있다."
-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어떤 게 가장 기억에 남는가.
"나는 말을 잘 못한다. 말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펜 기자였다. 여러 분야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라디오를 시작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성실하게 살았다. 항상 방송 3~4시간 전에 와서 신문을 다 읽었다. 3년 반 동안 진행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대해 공부도 했고, 다른 의견을 가진 청취자들과 호흡하고, 얘기를 들으면서 진행자로서 굉장히 많이 노력했다. 그렇게 열심히 성실히 살았던 게 기억에 남는다."
- 지금 당장 라디오를 진행한다면 어떤 사람을 초대석에 부르고 싶나.
"첫번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솔직히 부끄러우시죠?'를 첫 질문으로 던질 것 같다. 두 번째는 윤석열 대통령. '왜 그렇게 못하세요?'라고 묻고 싶다."
김명수 합동참모본부의장 후보자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11.15. ⓒ뉴스1 1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명수 합동참모의장 후보자의 무책임한 군 생활이 낱낱이 드러났다.
그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소집된 날 오전 근무시간에 본인의 개인 핸드폰으로 직접 주식거래를 했다. 북한이 ICBM을 발사해 미국과 일본까지 예민하게 반응했던 또 다른 날에는 골프를 치러 갔다. 근무시간에 주식거래를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평일 대낮에 골프를 치러 간 날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게다가 병사와 군무원을 동원해 관사 옆에 개인 골프연습장 등을 설치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국가 위기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에 현직 장성이 주식거래와 골프를 즐기고, 지위를 이용해 군무원과 병사들을 개인적인 취미활동에 동원까지 한 것이다. 이는 청문회에서 단순히 의혹제기로 끝난 사안이 아니라, 당사자인 김 후보자도 대부분 사실이라고 인정한 내용들이다.
이뿐만 아니라, 자녀 학교폭력 문제와 공직자 재산신고 누락 등의 문제까지 불거져 “최악의 인사 참사”라는 탄식이 나왔다. 공격적인 인사청문회도 아니었는데, 의원들 입에서는 한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와중에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우리 후보자님, 군 생활을 한 거 보니까 상당히 모범적으로 잘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북 미사일 발사 3시간 뒤
본인 핸드폰으로 주식거래하기 바빴던 장군
오전 청문회에서 드러난 사례만 두건
김 후보자는 ‘최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주식거래 문자를 보다 논란이 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과 군 인사안을 상의하며 “특출난 인재”로 거론한 인물로 알려졌다. 그리고 지난달 29일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 대장 7명 전원을 교체하는 ‘물갈이’ 인사에서 3성 장군인 김명수 해군작전사령관이 4성 장군 진급과 함께 합참의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현직 대장이 아니라 중장이 합참의장으로 지명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국방부는 이번 인사에 대해 “북한의 지속적인 핵·미사일 위협과 불안정한 국제 안보 정세 속에서 다양한 야전 경험으로 불확실한 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탁월한 전투감각을 보유한 장군, 훌륭한 작전지휘 역량으로 군내 신망이 두터운 장군을 발탁했다”고 발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김 후보자의 군 생활은 질의 순서를 기다리는 의원들 입에서 한숨이 나오게 했다.
윤후덕·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와 김 후보자의 답변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북한이 2022년 1월 5일 오전 8시10분쯤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3시간 뒤인 11시5분쯤 주식을 거래했다. 또 김 후보자는 같은 해 1월 17일 오전 8시50분쯤 북한이 단거리탄도미사일 두 발을 발사하고 3시간이 안 된 11시24분부터 약 45분 동안 주식거래를 했다. 1월 17일 거래한 주식거래 액수는 2천만 원 상당이었고, 방식은 위탁대리도 아닌 직접거래였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NSC가 소집되는 등 국내 안보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해군 장성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근무시간임에도 직접 주식거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김 후보자는 이 같은 사실을 대부분 인정했다.
의원들은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나?”라는 등 다소 충격을 받는 모습이었다.
윤후덕 의원과 김병주 후보자 질답
▷윤후덕 : 2022년 1월 17일 오전 8시 50분에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오전에 NSC가 개최됐다. 아마 그 시간 쯤 후보자는 주식거래를 했다. NSC가 개최되는 중에. 맞느냐?
▶김명수 : 네. 주석거래를 수차례 한 것은 고위공직자로서 부적절했다. (생략)
▷윤후덕 : (생략) 근무시간에 본인이 거래한 것이냐?”
▶김명수 : 네 맞다.
▷윤후덕 : 본인 근무시간에 핸드폰을 가지고 거래했나?
▶김명수 : 네. 모든 금융거래는 스마트폰으로 하고 있다.
▷윤후덕 : 본인의 스마트폰으로 근무시간에, 이를테면 11시30분쯤에 사무실에서 거래를 한 건가?
▶김명수 : 시간을 11시30분으로 확인하셨다면 그게 정확할 것 같다.
▷윤후덕 : 맞다. 자료 제출하지 않았나. 중징계 대상이다. 근데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나? 있을 수 없는 얘기다. 본인이 핸드폰으로 11시30분에 자기 사무실에서 거래했다는 거 아니냐? 나는, (후보자가) 아내한테 얘기해서 어떻게 하라 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본인이 (직접) 핸드폰으로 한 거였다니...
김명수 합동참모본부의장 후보자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하고 있다. 2023.11.15. ⓒ뉴스1
북 미사일 발사한 날 골프 즐긴 장군
주말이든 평일이든 가리지 않았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주식거래만 한 게 아니었다. 김 후보자는 골프도 쳤다.
윤후덕·김병주·설훈 민주당 의원의 질문과 김 후보자의 답변을 종합하면, 김 후보자는 2022년 3월 5일 북한이 ICBM 발사한 날 오후 1시18분쯤 골프를 쳤다. 김 후보자는 같은 해 11월 18일 북한이 ICBM을 발사해 NSC가 소집된 다음 날과 그다음 날에도 골프장을 찾았다. 설훈 의원이 확인한 ‘2022년 9월 3일부터 11월 27일 사이 김 후보자가 골프장을 이용한 날’은 총 17일이었고 이 중 5일은 금요일과 월요일 평일이었다. 지난해 9월부터 12월 사이에는 북한의 해상완충구역 내 포병사격 사건과 연이은 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울릉군에는 공습경보까지 발령된 바 있다. 그런데 이 시기 해군 장성이 시간만 나면 골프를 즐기고, 평일에도 골프를 쳤다는 것이다. 당시 김 후보자는 대한민국 해군 참모차장이었다.
김 후보자는 이 의혹에 대해서도 대부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평일 골프는 “전투휴무” 날이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후보자는 “저희가 큰 훈련 뒤에는 시간 보상을 위해 ‘전투휴무’로 휴일처럼 변경하는 게 있다”며 “그 기간에 장병 총원은 쉬고 운동을 하게 돼 있는데, 그렇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북한 미사일 발사 등 위기가 고조되는 시기에 해군 참모차장이 골프를 치러 다녔다는 점에 대해서는 해명이 전혀 안 되는 분위기였다.
김병주 의원과 김명수 후보자 질답
▷김병주 : 군이 골프장에서 골프를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검토해봤을 때 너무 부적절하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지난해 3월 5일 아침 8시50분에 북한에서 ICBM을 사격했다. 그날 후보자는 오후 1시 18분에 골프를 쳤다. 왜 골프를 사수했나? 이 상황 되면 대부분 군인은 골프를 취소한다.
▶김명수 : 저희도 골프장 갈 때 문제 있느냐 체크하고 가는데, 그때는 특별히 제한이 없었다.
▷김병주 : 누구랑 쳤나?
▶김명수 : 그때 친 인원은 확인 못 했다. (생략)
▷김병주 : (생략) ICBM 도발이면 엄청난 도발이고, NSC도 열리고, 국회 국방위에서도 파악하기 위해 하는데, 이런 것들은 아주 부적절하다 어떻게 생각하나?
▶김명수 : 어쨌든 상황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런 상황이 있었다면 취소하는 게 적절할 거라고 본다.
▷김병주 : ‘있었다면’이 아니라, 있었다. ‘있었다면’인가? 있었다인가? 군인은 말이 명확해야 한다.
병사, 군무원 동원해 개인골프장 설치·수리까지?
“공사구분 못한 권한남용”
김명수 후보자가 1함대사령관일 때 관사에 설치했다는 개인골프연습시설 ⓒ국회방송 화면 갈무리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주식거래, 골프 논란에 이어 김 후보자가 해군 제1함대사령부 사령관일 당시 군무원과 병사를 동원해 자신의 관사 바로 옆에 개인 골프장을 설치하고 부대 비품으로 정자를 설치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해당 의혹을 제기하며 사실인지 물었고, 김 후보자는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새로 만든 것은 아니고, 설치돼 있는 일부를 제가 수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안 의원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군무원과 병사들에게 개인적 일을 지시한 것은 권한남용이고 공사를 구분 못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사령관이 한가롭게 관사 옆에 개인골프장을 짓나?”라며 “그 자리에 (후보자로) 앉아 있을 때가 아니고, 개인골프장 주인으로 앉아 있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안규백 의원과 김명수 후보자 질답
▷안규백 : 김 후보자가 1함대사령관으로 근무할 때 군무원과 병사를 동원해 관사에 개인골프연습장을 설치했고, 또 부대비품을 사용해 마당 앞에 정자를 설치한 사실이 있나?
▶김명수 : 네... 이 부분은 설치를 했고, 수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안규백 : 이와 관련해 상부의 감찰을 받은 적 있나?
▶김명수 : 없다.
▷안규백 : 1함대 인사참모가 감사관에게 감찰을 받았다고 하는데, 받은 적 없나?
▶김명수 :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설명해주시면...
▷안규백 : 인사참모가 감사관에게 여러 감찰을 받았다. 1함대 사령관 관사 내 설치된 골프장은 병사와 군무원을 동원해서 한 게 맞나?
▶김명수 : ....
▷안규백 : 후보자가 말을 안 하는데, 이 사안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군무원과 병사들에게 개인적 일을 지시한 것은 권한남용이고 공사 구분을 못한 것이다. 엄중한 조치가 필요하다. 후보자가 무리하게 지시한 게 맞다면, 책임질 의사가 있나?
▶김명수 : 다시 확인해보겠지만, 제가 지시했다기보다는 수리가 되어서 운영된 것으로 기억한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인 평화통일시민행동(대표 이진호)의 '2023평화통일시민강좌'를 연재합니다.
2023 평화통일시민강좌는 한반도 평화체제, 한미동맹, 북한의 건축과 경제 및 기후위기 대응, 전쟁국가 미국, 미일동맹의 역사를 3월 18일부터 11월 18일까지 신촌에서 진행됩니다. 아래는 지난 10월 21일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이 진행한 강연의 주요 내용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근대 세계질서는 유럽 사람들이 만들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유럽 사람들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착취하면서 만든 자본주의 시대가 지금까지 왔다.
동아시아에서는 1839년 아편전쟁으로 중국이 영국에 무릎을 꿇으면서 조선도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과정들이 있었다. 길게 보면 500년, 짧게 보면 200년 만에 서방 중심의 세계 경제 질서가 이제 종말을 고하고 있다.
세상이 바뀌었다.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해체된 1991년 말부터 '탈냉전' 시대가 시작되었다. 탈냉전은 세계화의 시대였다. 작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모든 사람이 이제 '탈냉전'의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탈냉전의 시대는 세계화의 시대였다. 탈냉전 시대의 종말과 함께 탈세계화의 시대가 오고, 미국 중심의 단일 패권 시대에서 다극화의 시대로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다. 미국 주도 서방 중심의 착취적인 세계 경제 질서가 평등한 경제 질서로 바뀌어 갈 가능성이 크다.
지난 30년의 세계화의 시대에 가장 혜택을 많이 받은 나라가 남한과 중국, 독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1997년 IMF 위기로 위기를 맞았으나 이후 미국과 중국 경제가 협력하는 이른바 '세계화'로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세계화는 이제 끝이 났다. 세계화를 갑자기 끝나게 만든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10월 7일부터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다. 물론 미국 패권 쇠락의 시작은 2001년 9.11부터라 할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의 결과로 미국 패권 쇠락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 ⓒ평화통일시민행동
군사주의 국가 미국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미국을 "역사상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나라"라 불렀고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을 "전쟁광"이라 했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예일대 교수였던 폴 케네디가 1987년 <강대국의 흥망>이라는 책을 냈다. 폴 케네디는 미국은 태어날 때부터 제국이었다고 했다.
1607년 영국인이 버지니아에 상륙했던 그 순간부터 미국은 제국이 되었다. 미국의 유명한 보수주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유럽이 세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도덕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니라 군사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애덤 스미스도 <국부론>에서 포르투갈의 인도양 항로 발견,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교역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엄청난 부를 얻은 이후에는 전쟁을 잘했기 때문에 유럽이 잘살게 되었다고 했다. 유럽은 16세기 종교 개혁 이후 300년 동안 죽도록 전쟁만 했기 때문에 전쟁기술이 발달 되어 있었다.
미국은 전쟁을 통해 태어났다. 자본주의 자체가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속성이 있다. 자본주의는 과잉 생산된 상품을 팔아먹을 식민지가 필요하다. 1776년 독립을 한 미국은 1861년부터 4년간 남북전쟁을 했다. 이 전쟁으로 60만 명의 전사자가 생겼다.
이 전쟁이 끝나자마자 2차 산업혁명으로 철도, 전기, 내연기관 생산이 발달하면서 미국의 경제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1890년대가 되자 도저히 국내 시장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1893년 대공황이 발생하고 미국은 1898년 스페인 전쟁으로 쿠바,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괌을 차지했다. 1898년부터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미국은 팽창하고 패권을 만들어갔다.
미국 대외팽창의 고상한 명분
미국의 대외팽창은 일종의 '미국 이데올로기'로 포장되었다. 1823년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은 미국의 세력권이며 유럽은 간섭하지 말 것을 선언한 '먼로 독트린'이 나왔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으로 스페인이 지면서 1820년대부터 중남미의 스페인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독립했다. 미국이 중남미의 독립한 나라들에 영국과 프랑스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차단하고 자신의 세력권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이 '먼로 독트린'이다.
미국이 독립했을 때는 애팔래치아 산맥 동쪽에 13개의 주가 있었다. 1803년 나폴레옹이 전쟁자금이 부족해지자 루이지애나 땅을 미국에 팔았다. 미국은 뉴올리언스부터 북쪽까지 지금 미국 영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땅을 1500만 달러에 샀다.
1845년 미국은 멕시코 전쟁을 일으켜 현재 미국 서부의 땅을 빼앗았다. 로스엔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는 모두 스페인식 지명이다. 미국은 멕시코 전쟁을 하면서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미국은 신으로부터 인류에게 자유를 선사하기 위한 소명을 갖고 태어났으며 미국의 땅이 넓어지면 그만큼 자유가 넓어진다고 생각했다.
1899년 미국 이데올로기 중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가 나온다. 바로 '문호개방'이다. 역사적으로 1870년부터 1914년까지를 '제국의 시대'라 부른다. 제2차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이 엄청나게 발달하게 되자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은 식민지 쟁탈전을 벌인다. 영국의 식민지는 지구의 4분의 1에 달했다.
미국은 중국을 노렸다. 미국이 말하는 자유는 상업의 자유, 기업의 자유, 경제의 자유였다. 그 당시 세계 최대의 인구를 가진 중국 시장을 차지하면 미국이 1893년부터 겪고 있는 공황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일본이라는 작은 나라가 청일전쟁을 일으켜 중국에 승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은 청국으로부터 자국 예산의 3배에 달하는 배상금을 받아내고 대만과 산동반도까지 차지했다. 그전까지 청나라는 서구 열강과 통상은 했을지언정 영토를 내주지는 않았다. 일본이 산동반도를 차지하게 되자 독일, 러시아, 프랑스가 삼국간섭으로 산동반도를 일본으로부터 빼앗았고 이후 절치부심하던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켜 마침내 조선을 합병할 수 있었다.
서양 강국들이 중국을 찢어 나눠 갖는 것을 보며 미국도 이에 동참하기로 했다. 미국은 1898년 스페인 전쟁으로 필리핀을 빼앗고 하와이도 차지하면서 중국으로 가는 길목을 마련했다.
1899년과 1900년, 미국의 국무장관 존 헤이가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에 문호개방과 관련하여 두 차례에 걸쳐 중국의 영토 주권을 존중하면서 공평하게 무역을 하자고 제안하는 문서를 보냈다. 하지만 미국은 당시에 해군력이 약했기 때문에 문호개방과 관련하여 천명만 했지 강요하지는 못했다.
미국을 세계 최대 채권국으로 만들어준 1차 세계대전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미국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이득을 취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4년 동안 영국과 프랑스에 무기와 전쟁자금을 대줬다.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것도 영국과 프랑스에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였다.
1917년 독일은 서쪽에서는 프랑스와, 동쪽에서는 러시아와 힘든 싸움을 하고 있었다. 독일은 러시아를 약화시키기 위해 스위스에 망명해있던 레닌 등 공산주의 혁명가들을 '봉인열차'에 태워 러시아에 들여보냈다. 그때 러시아는 황제는 이미 쫓겨난 상태이고 이른바 부르주아 민주세력인 케렌스키 정부가 들어선 상태였다.
'봉인열차'는 독일과 핀란드를 거쳐 러시아로 들어갔다. 케렌스키 정부는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당시 러시아 군인들은 너무 지쳐 있었다. 레닌은 1917년 10월 혁명을 일으켜 독일과 평화조약을 맺음으로써 전쟁을 끝냈다.
모든 전쟁을 끝내고 세상을 안전하게 만들겠다며 시작한 1차 세계대전은 실제로는 모든 전쟁을 시작한 전쟁이었다. 1차 세계대전은 1918년 11월 11일 11시에 끝났다. 미국은 1917년 4월에 1차 세계대전에 참전 결정을 했고 군대가 유럽에서 전투를 치른 것은 1918년 5월이었다. 미국은 6개월 정도 전쟁을 한 것이다.
그리고 1919년 베르사유 평화조약을 맺으며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민족자결과 승자 없는 평화를 이야기하고 앞으로의 전쟁을 없애기 위해 국제연맹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당시 일본도 승전국의 일원으로 베르사유 조약에 참여하며 새로운 평화조약에 인종적 차별조항을 없애자고 제안했지만 영국과 미국이 극렬하게 반대하여 이 내용은 들어가지 못했다.
1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은 최대의 채권국이 되었다.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빌려준 전쟁자금을 받으려 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어마어마한 전쟁배상금을 받아내 미국에 대한 채무를 갚고자 했다.
사실, 1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장은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4년 동안 전쟁을 치르면서 15세에서 30세까지의 젊은이 중 절반을 잃었다. 프랑스가 독일에 청구한 배상금 330억 달러는 애초에 프랑스가 요구했던 액수의 5분의 1에 불과했지만 독일이 예상했던 액수의 2배였다.
하지만 독일은 자신을 패전국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전쟁이 나자마자 영국은 막강한 해군력으로 독일을 봉쇄했고 그때 굶어 죽은 독일인이 70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독일 영토 내에서는 전쟁하지 않았다. 미국이 참전했고 윌슨의 발표도 있었으므로 독일은 공정한 평화를 예상하며 '전쟁 종료'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런데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엄청난 배상금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영국 재무성의 수석대표단으로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평화조약 체결 이후 1919년 말에 <평화의 경제적 결과>라는 책을 냈다. 케인스는 전쟁배상금은 독일이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을 해서 갚을 수 있는 돈이 아니며 결국 막대한 배상금 요구는 유럽 경제의 파탄 등 파괴적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했다.
독일은 미국에서 달러를 빌려 전쟁배상금을 냈다. 그 과정에서 1921년 독일은 초인플레이션을 겪기도 했고 1929년에는 대공황이 세계를 휩쓸었다. 독일 사람들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억울했고 가난해졌다. 이러한 배경으로 독일에 히틀러가 등장하게 되고 파시즘의 길을 걷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은 'GOOD WAR'
2차 세계대전으로 유엔, IMF,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가 만들어지고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로 되었다. 미국은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미국의 패권은 완성되었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국방비가 4배로 늘어났고, 전쟁 직후 2년간 무기 생산은 7배로 늘었으며, 유럽에는 나토라는 군사동맹이 형성됐고, 아시아에서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이 미국의 대소련 군사기지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한편 1934년 4월부터 2년간 미 상원 특별조사위에서 1차 세계대전 기간 미국의 기업이 얼마나 많은 이득을 취했는지 조사하였다. 이른바 '죽음의 상인' 위원회다. 미군 200만 명이 참전하고 12만 명이 사망한 1차 세계대전에서 JP모건, 뒤퐁, US 스틸, 록펠러 등의 회사가 평상시보다 10배가 넘는 돈을 벌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때 미국에서는 반전여론이 엄청나게 커졌다.
그런 상황에서 2차 세계대전이 발생했다. 1차 세계대전은 전쟁 책임이 대단히 애매하다. 공식적으로는 독일에 책임을 묻고 있으나 학계에서는 몽유병처럼 영국과 독일이 전쟁으로 끌려들어 갔다고 하고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학자들은 영국이 작심하고 한 것이라 보기도 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은 나치나 일본의 전쟁범죄가 너무나도 잔인했기 때문에 책임이 분명했고 미국은 이런 잔인한 국가들을 쓰러트리는데 대단한 기여를 한 승전국이었다. 미국은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회복한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전쟁을 통해서 대공황을 벗어나게 되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good war'라 부른다.
▲ 1951년 9월 8일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미 국무부
미국의 전후 구상과 중국
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 냉전이 시작되었다. 미국의 전후 구상에서 한 가지 틀어진 것이 있다. 바로 중국이다.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연합국이 최초로 약속한 1943년 카이로 회담에 미국의 루스벨트는 영국 처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장제스를 참가시켰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장제스의 중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하였고 국공내전도 국민당이 이길 것이라 예상했다. 미국은 미국, 영국, 중국, 소련 등 4개국이 전후 세계를 이끌어 가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었지만 중국 공산당의 승리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으로 미국의 전후 세계질서 구상은 차질을 빚게 되었다. 미국은 중국 대신 일본을 동아시아 지역의 파트너로 삼기로 한다.
미국이 보기에 한국 전쟁이나 베트남의 독립은 그 나라의 내전이 아니라 중국 공산세력의 확장이었다. 1954년 봄 베트남의 호찌민 세력이 식민세력인 프랑스를 물리쳤고, 이어 열린 제네바평화회의에서 향후 2년 내 총선을 통한 남북 베트남의 통일 방안이 수립됐지만 미국은 총선 실시를 거부했다. 호찌민이 이끄는 공산세력의 베트남 통일을 막으려 한 것이다.
이후 미국은 1964년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베트남 전쟁을 본격화하게 된다. 하지만 그 막강하다는 미국이 전쟁에서 패했다. 굉장히 큰 사건이었다. 미국의 군사력이 쓸모없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10월 7일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공격을 9.11테러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베트남 전쟁 시기 테트(구정 대공세)라고 보고 싶다. 1968년 1월 말, 구정에 남베트남 전역에서 베트콩들이 미국과 남베트남 정부를 공격했고 군사적으로만 보면 베트콩들이 완패했다.
하지만 미국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 미국은 그전까지 베트남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구정 대공세가 그 믿음을 깨뜨렸다. 결국 1968년 3월 존슨 대통령이 재선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팔레스타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문제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마스의 이번 공격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여전히 저항하고 있음을 알리고 앙숙이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서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논의하게 만들고 이라크 등 아랍권은 물론 세계 대부분에서의 대규모 시위도 촉발시켰다. 베트남 전쟁 당시의 구정 대공세에 버금간다 생각한다.
중국의 국공내전이 끝나고 1950년 1월 영국은 모택동 정부를 승인했다. 미국의 애치슨은 중국 시장이 워낙 컸기 때문에 장제스만 없으면 공산 중국과 수교를 하려고 했다. 한국전쟁으로 이러한 계획은 무산됐다.
미국은 케네디 행정부 때부터 공산 중국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이를 실천한 것은 닉슨이었다. 베트남 전쟁이 실패하면서 동아시아에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손을 잡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1971년 중국을 방문한 닉슨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2차 대전 직후 빨갱이 때려잡기, 즉 매카시즘의 선봉장이었던 닉슨은 자신이 중국에 가면 아무도 자신을 빨갱이라 하지 못할 것이라 장담했다.
닉슨 대통령은 중국과 화해하고 소련과 군비축소에 합의했다. 1972년부터 미국 내에서는 냉전은 끝났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미국에서는 공산주의와의 공존에 절대 반대하는 네오콘 세력이 등장했다. 네오콘은 공산주의와 화해나 협력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대중동정책과 이란혁명
미국은 1945년부터 1975년 베트남전이 끝날 때까지 동아시아에서만 전쟁을 했다. 그런데 1979년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이란은 중동지역에서 석유가 처음 발견된 나라다(1908년). 그 석유를 영국이 대부분 차지했다(1913년 영국.페르시아 석유회사 창립).
1951년 모사데크 총리가 석유를 국유화할 것을 선언하지만 미국과 영국의 석유회사들이 안 내주고 3년간 대치를 한다. 결국 1953년 CIA가 들어가 모사데크를 날려버리고 팔레비 왕조를 복귀시킨다. CIA 최초의 비밀공작에 의한 외국 정부 전복이었다.
1970년까지 중동지역에 군대를 주둔시켰던 영국은 재정 악화로 군대를 철수시켰다. 1970년 닉슨 독트린을 발표한 미국은 베트남 전쟁과 같은 미국의 대외 군사적 직접 개입을 피하려고 했고 징병제도 모병제로 바꾼 상황이었다.
미국은 중동에 군대를 파병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지만 중동지역은 전 세계 석유매장량의 3분의 2가 있는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닉슨은 1972년 소련방문 후 돌아오는 길에 이란의 팔레비 국왕을 만나 중동의 안정을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이란이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대리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란에 온갖 첨단 무기들을 팔았다.
팔레비 국왕은 이란을 세계 5대 강국으로 만들겠다며 엄청난 군사비를 지출했다. 페르시아 제국 2500주년을 기념한다며 나라 재정을 흥청망청 썼고 결국 이란 민중들이 1978년 11월 반정부시위를 일으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혁명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될지, 이슬람 혁명이 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해외 망명 중이던 팔레비 왕은 미국으로 들어가기를 희망했다. 카터 대통령은 반대했지만 록펠러 등 미국 내 팔레비 친구이자 금권 세력들은 키신저, 브레진스키 등을 앞세워 그의 입국을 관철시켰다. 1953년 테헤란 미 대사관에 본부를 둔 CIA의 모사데크 축출 공작을 지켜봤던 이란 이슬람 세력은 이를 미국의 반혁명 음모로 파악했다.
1979년 11월 미 대사관을 점거한 이슬람 세력은 외교관 50여 명을 444일 동안 인질로 삼아 미국과 대치했고, 결국 이 인질극의 여파로 카터는 재선에 실패하고 네오콘 세력이 지원하는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의 당선과 함께 미국에서는 신자유주의, 금융화, 탈규제, 부자 감세의 시대가 시작된다.
그 무렵(1979년 12월 25일)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했다. 아프간의 공산주의 정부가 이슬람 세력에 밀려 굉장히 위험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이젠하워 정부 때부터 미국은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이슬람 세력을 우군으로 활용해 왔다. 무신론자를 싫어했던 이슬람 세력을 세속주의 혹은 좌파 민족주의와 싸우도록 전략을 만든 것은 애초에 영국이었다.
1920년대 이집트에 무슬림 형제단이 설립됐을 때 영국은 은밀히 지원했다. 하마스는 1930년대 무슬림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로 설립됐다가 1987년 팔레스타인의 1차 인티파다(봉기) 이후 하마스로 바뀐 조직인데, 하마스의 성장을 도운 것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였다.
1979년 이란혁명 이후 1980년 1월 카터 독트린이 발표되었다. 중동지역은 미국의 핵심적 국익이 걸린 지역으로 이 지역 방어를 위해 군사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처할 수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이란에서는 군사쿠데타로 호메이니를 끌어내리려 했지만 실패했고, 아프간에서는 아랍의 이슬람 전사들을 활용해 성공했다.
1979년부터 1989년까지 10년간 소련은 아프간에서 이슬람 반군 세력에 맞서 힘든 전쟁을 벌여야 했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비밀공작이라 불리는 '오퍼레이션 사이클론'을 통해 아프간에서 소련을 패배시켰다. 미국이 돈과 무기를, 사우디가 돈과 정보를 대주고 파키스탄이 이슬람 병사들을 훈련시켰다. 이들을 무자헤딘이라 불렀다.
이 이슬람 사람들은 아프간 사람들이 아닌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사우디 출신들로 10만 명에 달했다. 소련은 10년 동안 아프간에서 피 흘리고 깨지다가 고르바초프가 아프간에서의 철수를 결정했다. 소련의 아프간 전쟁은 소련이 무너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레이건은 1983년 무자헤딘을 백악관에 불러 '자유의 전사'라고 치켜세워주었다. 소련이 물러나고 무주공산이 된 아프간은 탈레반이 차지하게 되었다.
1991년 소련의 붕괴는 미국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로 만들고자 했고 너무나 낭비적인 핵 군비 경쟁을 중단하고자 했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정보산업의 발전으로 기술혁신을 이루었지만 소련은 7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석유 가격의 폭락과 과도한 군비경쟁으로 결국 1991년 망했다.
미국은 이를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최종적 승리로 간주했고, '역사의 종언'이라 부르며 인류가 실험한 여러 사회체제 중 자유민주주의가 가장 완벽하다고 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이외의 체제는 존립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네오콘이 등장했고 폴 월포위츠는 1992년 3월 세계 어떤 지역에서든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세력이 등장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네오콘의 이데올로기를 설파했다. 클린턴 행정부가 재정적자를 흑자로 만들어 놓게 되자 90년대의 미국은 뭐하나 부족한 것 없는 풍요롭고 강력하고 완벽한 국가였다.
새로운 진주만, 9.11테러
그러나 2001년 9.11테러가 발생했다. 4대의 비행기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워싱턴의 펜타곤 등을 공격했다. 범인 19명 중 15명이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었고 그 주모자가 오사마 빈라덴이었다. 그는 '빈라덴'이라는 사우디 최대 건설회사 집안의 자식이었고, 1980년대에는 미국과 사우디 등에서 아프간에서 소련에 맞서 싸울 이슬람 전사들을 모집했다.
미국은 1991년 걸프전쟁(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군을 격퇴) 당시 이라크가 사우디까지 노릴 것이라며 사우디에 미군을 주둔시켰다. 하지만 사우디에는 이슬람의 가장 중요한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가 있는 지역으로 무슬림들은 이교도 군대가 들어온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사마 빈라덴은 걸프전쟁 이후 계속해서 사우디에서의 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9.11테러는 이러한 미군 철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9.11테러가 발생하자 부시 행정부와 네오콘은 이를 재앙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미국 패권 강화의 기회로 여겼다. 1997년 '미국의 새로운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가 만들어진다. 이 단체의 선언문에는 인류문화의 종점인 자유민주주의를 전 세계에 확대시키기 위한 군사행동에 '새로운 진주만'이 필요함을 밝히고 있다.
1930년대 강력한 반전 정서가 지배했던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한 것은 일본의 진주만 기습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새로운 대외 군사개입을 위해서는 진주만과 같은 충격적 사건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미국 네오콘은 9.11테러를 '새로운 진주만'으로 봤다.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의 교수이며 과정신학자로 유명한 데이비드 레이 그리핀은 '새로운 진주만'(국내에는 <맨해튼의 진주만>으로 번역됨)이라는 저서에서 9.11테러를 미국 정보기관이 사전에 알았다는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했다.
부시 행정부의 실질적 권력자이자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의 목표는 중동의 맹주 이라크와 이란을 제거하고 세계 에너지자원의 보고인 중동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2001년 10월에 아프간을, 2003년 3월에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엄청난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브라운 대학의 왓슨 연구소에서 발표한 전쟁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이 전쟁을 위해 쏟아부었거나, 지출해야 할 비용(부상 군인들의 치료비 및 연금 등)이 최소 8조 430억 달러(약 9413조 원)에 달한다고 했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은 450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2001년 이후 미국의 군사적 모험은 20여 년 만에 실패로 드러났다.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파괴는 할 수 있을지언정 굴복시키지는 못했다. 그래서 미국을 혼돈의 제국(Empire of Chaos)이라고 부른다.
미국은 끝났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1929년의 대공황보다 더욱 심각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과 유럽은 엄청난 돈을 퍼부어서 대형 금융기관만 살려줬다. 미국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못 갚아 집을 잃은 사람이 940만 명에 달했지만 이 사람들에 대한 구제는 거의 없었다.
사모펀드가 이 사람들의 집을 사서 가격을 계속 끌어올렸고 금융자본은 돈 한 푼 안 들이고 막대한 이익을 거두어들였다. 여기에 유럽의 금융자본도 동참했고 그 결과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발생했다. IMF의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의 혜택은 국민이 아닌 금융기관에 갔다. 금융기관들은 살아남았지만 국민은 소비할 여력이 없어졌다.
2016년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의 어떤 제도권 학자나 언론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었다. 미국의 기득권 계층은 밑바닥 정서를 읽는 데 실패한 것이다.
1992년 대선 때 로스 페로라는 억만장자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18%를 득표했다. 당시 로스 페로는 제조업을 해외로 내보내는 것을 반대하며 러스트 벨트에서 인기를 끌었다. 미국은 당시 캐나다와 멕시코(NAFTA), 중국으로 제조업을 내보내고 있었다. 국내 제조업은 위축되고 중하층 남성들의 평균 수명이 줄어들었다. 트럼프의 당선도 러스트 벨트의 절대적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 10월 11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플로리다 팜 비치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헛돈 쓰는 미국
미국 육군 대령 출신이자 보스턴 대학교수인 앤드루 바세비치는 미국의 군사주의를 비판하며 계속 헛돈을 쓰고 있고 반성도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미국은 2021년 8월 아프간에서의 철수 이후 불과 6개월 만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했다.
미국은 실제로는 석유, 금융 등 거대 자본의 해외 진출을 위해 전쟁을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믿는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 사망자는 군대보다는 PMC(Private Military Company, 민간군사기업)에서 더 많이 발생했다.
전사자 중에 3분의 1은 군인이고 3분의 2는 용병이다. 전쟁의 참혹함, 전쟁 피해의 실상이 피부에 직접 와 닿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미국인은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별로 없다.
공산주의는 싹부터 잘라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은 1차 세계대전 때 이미 씨앗이 뿌려졌다. 레닌이 1917년 러시아혁명에 성공한 이후 러시아 내 외교문서를 뒤져보니 오스만 터키가 지배하고 있던 중동지역을 전쟁이 끝나면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가 나눠 가지기로 한 비밀협약이 있었다. 레닌은 이를 폭로했고 이것이 미국의 1930년대 '죽음의 상인' 청문회의 단초가 되었다.
레닌이 전쟁반대와 민족자결을 주장하니 윌슨이 14개 조의 민족자결을 발표했다. 그리고 러시아에 내전이 일어나게 되자 영국, 프랑스, 일본, 미국이 러시아에 군대를 보내 혁명 러시아 공산군과 싸웠다. 영국 총리 처칠은 당시 "공산주의는 요람에 있을 때 제거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미국은 소련을 인정하지 않다가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된 이후 히틀러의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1933년에 소련을 인정했다. 미국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자신들이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하지만 승리의 80%는 소련군에 있다.
서부전선보다 동부전선에 10배나 많은 독일병력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2차 세계대전의 미군 전사자는 40만 명이 안 되지만 소련은 2500만 명 이상이 전사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전차 부대 지휘관이었던 조지S.패튼은 차제에 소련도 공격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의 거짓 약속과 배신
1987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중거리핵전력조약을 맺어 핵무기를 감축하기로 한다. 또한 미국은 1990년 2월 독일이 통일되어도 나토는 동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1991년 12월 25일 소련이 해체되자 미국은 약속을 뒤집었다. 고르바초프는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유라시아 공동의 집을 짓자고 했지만 미국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와서 인디언들과 400년 동안 싸웠는데 이 기간에 약속했다가 어긴 것이 400차례나 된다.
1990년대 러시아 경제는 완전히 무너졌다. 2차 세계대전 때보다 피해가 더욱 컸다. 올리가르히라고 예전 공산당 간부 했던 사람들이 국영기업을 불하받아 막대한 부를 차지했다. 옐친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다. 의회에서 이를 문제 삼아 1993년 9월 옐친을 탄핵하자 옐친은 10월 탱크를 동원하여 의회를 포격했다.
이러한 민주주의 파괴 행위에 대해 클린턴 행정부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옐친은 1991년 8월 공산당의 쿠데타를 막아낸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이지만 이후에는 미국의 충실한 하수인에 불과했다.
1999년 3월 미국과 나토는 유엔의 승인도 없이 세르비아를 78일 동안 공습했다. 세르비아는 러시아의 형제국가이자 유고슬라비아의 중추국가였다. 미국은 세르비아 공습으로 유고슬라비아를 다 찢어놓았다. 미국은 미국과는 다른 사회, 경제, 정치 체제를 없애버리고자 했다. 유고슬라비아는 노동자 자주 관리제도라는 아주 특이한 사회주의 제도를 가지고 있었고 초대 대통령이었던 요시프 브로즈 티토는 스탈린과도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미국이 세르비아 공습을 시작할 때 당시 러시아 총리였던 프리마코프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소식을 듣고 비행기를 회항시켰다. 프리마코프는 그 후 러시아, 중국, 인도와 힘을 합쳐 미국에 맞서야 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그 후부터 러시아는 사르마트나 킨잘과 같은 신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소련 해체 이후 8년간 미국과 나토를 믿었던 러시아는 이때부터 미국의 속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은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쫓아낸 마이단 혁명이 있었던 2014년 2월부터 시작된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아주 유사하다. 브레진스키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미국이 계속해서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강대국이 나타나는 것을 막아야 하고 이를 위해 대륙 동쪽과 서쪽에 있는 한국과 우크라이나를 마개로 써야 한다고 언급했다. 미국은 한국을 아주 모범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만든 것처럼 우크라이나도 그렇게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우크라이나는 동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다. 우크라이나는 냉전 종식 당시 인구가 5000만에 달했지만 지금은 3000만이 안 된다. 국내총생산(GDP)은 반 토막이 났다. 유럽의 가정부는 대부분 우크라이나 여성들이다.
러시아의 목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한 안보위협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돈바스 지역과 크림은 러시아계 사람들이 많으니 러시아로 편입하고 오데사도 러시아로 편입시키고 나머지 지역은 완충지대로 두려고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역을 차지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푸틴 스스로가 세계에서 영토가 가장 넓은 나라가 러시아인데 왜 우리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차지하려고 하겠냐고 했다.
안전장치의 파괴와 러시아가 느끼는 안보위협
1972년 미국과 소련 간에 전쟁을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몇 가지 장치가 있었다. 탄도탄요격미사일조약(ABM)과 중거리핵전력조약(INF) 등이다. 미사일 방어망(MD)을 만들면 선제 타격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미사일 방어망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미국은 탄도탄요격미사일조약을 2002년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2019년 미국은 중거리핵전력을 탈퇴했다. 또한 미국은 핵도 없는 이란을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MD를 배치했다. 만약 우크라이나에 MD가 배치되면 5~7분 사이에 미사일이 모스크바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핵균형이 무너지는 것이었다.
2014년 야누코비치를 쫓아냈을 때 푸틴은 크림을 병합했다. 러시아는 크림은 원래 자신의 영토라 생각했다. 크림반도는 1783년 러시아 예카테리나 2세 때 터키한테 뺏은 곳이며 러시아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부동항이었다.
그런데 흐루쇼프가 우크라이나 사람이었다. 1954년 페레야슬라프 조약 300주년을 맞이하여 흐루쇼프가 선물로 우크라이나에 크림반도의 행정권을 줬다. 러시아는 2014년 이를 다시 찾아온 것이다. 게다가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 이어 우크라이나까지 나토에 가입하면 러시아는 흑해에서 군사활동의 자유가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을 키워줘서 2022년 2월 전쟁이 나기 전까지는 우크라이나는 터키와 맞먹는 유럽 최강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50~6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더 싸울 사람이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전쟁을 지속하는 이유는 경제제재를 하면 러시아가 무너질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외환보유고가 6000억 달러인데 미국은 경제제재로 그중에 절반을 동결시켜 버렸다. 그리고 국제결제망인 스위프트(SWIFT)에서 러시아를 배제했고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의 수입을 금지했다.
미국은 이렇게 하면 러시아 경제가 무너질 줄 알았지만 아직까지 러시아는 건재하다. 유럽에서 경제 상황이 제일 좋은 나라가 러시아다. 러시아는 2014년부터 경제제재에 대비해왔다, 러시아는 달러패권에서 벗어나 자립적 경제구조를 만들어가고 있었고 미국의 제재가 이를 촉진해줬다.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는 루블이나 위안화나 루피로 결제를 한다. 결국 달러가 없어도 되는 상황을 미국이 만들어줬다. 중국과 러시아는 달러 중심의 국제무역체제에서 벗어나 별도의 국제통화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를 더욱 앞당겨버렸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전쟁
영국은 1915년 오스만제국에 저항하면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 국가 지역에 독립국 건설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1917년 11월 2일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 수립에 동의한다는 <밸푸어 선언>을 했다. 석유가 나는 중동지역을 차지하고 싶었던 영국은 유대인들을 대리인으로 삼고자 했다. 원래 미국은 이스라엘 건국에 반대했으나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의 편에 서게 된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저항했고 전쟁의 결과 다 쫓겨났다. 1967년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서안지구, 가자지구, 골란고원을 다 차지했고 유엔은 이스라엘이 철수하라는 결의안을 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유엔 결의를 따르지 않았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미국 뜻대로 되지 않자 미국은 전략을 바꾸어 '중동지역의 민주화'를 내걸었다. 그때 이스라엘이 반대했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도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를 하기로 했다. 카터 전 대통령이 직접 참관을 하기도 했다. 그 결과 가자지구에서 하마스가 집권하게 된 것이다. 하마스는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다.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서안지구는 파타가 통치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2007년부터 가자지구에 6m 장벽을 쌓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으로 만들었다. 가자는 폭이 8km, 길이가 40km인 좁은 땅으로 230만 명이 갇혀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칼로리를 계산하여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음식을 집어넣고 있다. 세계 최대의 노천감옥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6년을 살아온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티파다라는 저항운동으로 지금까지 6000명이 죽었다.
▲ 10월 9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을 가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의 생활방식은 제국, 팔레스타인의 생활방식은 저항
미국의 생활방식이 제국이라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저항이다. 동예루살렘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의 성지이다. 그리고 동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영토에 있다. 이슬람 사원인 알아크사 사원을 최근 유대교가 공격하는 일이 있었다. 이것도 하마스가 공격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1993년 오슬로 협정을 맺어 '두 국가' 안을 맺었지만 협정을 맺었던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2년 뒤 암살당하고 하마스의 테러로 오슬로 협정은 이행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1979년 카터의 중재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수교를 맺었다. 미국이 이집트를 매수했다. 전 세계에서 미국의 군사지원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가 이스라엘과 이집트다. 계속 몇백억 달러씩 지원을 해주고 있다. 옆에 있는 요르단은 1994년에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고 재작년 아브라함 협정으로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었다. '아브라함'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공통 조상이다.
최근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추진하고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지역에서 수장과도 같은 나라이다. 수교가 되면 팔레스타인은 완전히 고립되는 상황에서 하마스는 10월 7일, 팔레스타인은 살아있음을 세계에 알린 것이다.
미국은 벌거벗은 임금님
10월 16일 러시아가 즉각 휴전과 인도적 구호 및 평화협상을 하자는 결의안을 유엔 안보리에 제출했지만 하마스를 규탄한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부결되었다. 그 뒤 브라질이 하마스에 대한 규탄내용까지 넣어 즉각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냈지만 미국이 유일하게 반대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에 불리한 모든 유엔 결의안은 미국이 언제나 반대했다. 많은 사람이 미국을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한다. 자신이 다 벗은 줄을 모른다. 즉 세계가 미국의 실체를 직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전 세계 여론이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있는데 그것을 부정하고 여전히 이스라엘을 전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세상이 바뀌었다. 그동안 미국이 군사력으로 억지로 끌고 왔지만 2010년부터 이미 미국의 세기는 끝났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올해 5월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가 미국의 기득권 보수 정치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는데 60%가 다극시대라고 답했다.
오바마 행정부 때만 해도 국채가 9조 달러였는데 지금은 33조 달러에 이른다. 연간 이자만 6천억 달러를 내고 있다. 달러는 여전히 기축통화이자 안전자산이기 때문에 국제무역에서 달러가 제일 많이 유통되기는 하나 최근 10년간 세계적으로 외환거래에서 달러 비중이 72%에서 50%로 줄어들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를 제재하면서 러시아가 자립하게 만드니 달러 비중이 더욱 줄어들게 되었다.
미국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은 독일이 지난 100년 동안 세 번째로 미국에 진 것이라 평가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지금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경제성장의 큰 동력 중의 하나가 러시아의 값싼 가스와 석유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모두 끊겼다.
지난 겨울 독일 정부가 연료비 보조금으로 쓴 돈이 2800억 유로다. 우리 돈으로 400조 원이다. 유럽연합의 경제 기관차였던 독일은 지금 자살하고 있다.
최근 슬로바키아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하는 당이 집권했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대놓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EU의 지원은 잘못된 것이라 비판했으며 폴란드에서는 최근 총선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했던 제1당이 졌다.
몇 달 전 러시아 연구소에서 유럽국가들의 국민을 상대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책임이 누구한테 있다고 생각하는지 설문 조사를 했다. 독일이나 프랑스 국민은 미국이 2, 나토가 2, 러시아가 1의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유럽 국민은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지금의 한국 사회가 이러한 인식이 있는가이다. 1876년 조선이 개항되었을 때, 조선의 지배계층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중국 주도의 경제 질서에서 유럽 주도의 경제 질서로 변하고 있음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1945년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를 펼쳤던 일본이 패하고 미국과 소련이 들어오게 되었을 때도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소련 해체와 동유럽 몰락 이후 냉전이 해체되는 과정이 있었지만 남북은 화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금의 탈탈냉전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1894-1975년을 동아시아 80년 전쟁의 시대라고 하는데, 전반부(1894-1945년)는 일본이, 후반부(1950-1975년)는 미국이 전쟁의 주요 행위자였다. 중요한 것은 두 차례 전쟁의 시대를 연 출발점이 바로 한반도였다는 점이다. 청일전쟁과 6.25전쟁이 그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이 청일전쟁을 불러왔고, 청일전쟁은 50년에 걸친 일본의 동아시아 침탈(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의 시작이었다. 한반도의 분단이 좌우 대립에 이어 6.25전쟁으로 이어졌고 이는 미국/남한/일본과 북한/중국/소련의 국제전을 초래했고 이어 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6.25전쟁은 7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고 있다. 남북 간 체제 대결은 결코 전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게 6.25전쟁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한국은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맞이할 것이라 예상된다. 2021년 IMF는 미중간 경제전쟁 발생 시 가장 큰 피해를 볼 국가로 한국을 꼽았다. 또한 동아시아에서 전쟁 가능성이 큰 곳으로 동중국해, 대만, 남중국해, 한반도를 꼽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그야말로 급변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집권층은 국제정세 변화에 대한 인식이 없다.
박민 KBS 사장이 취임 이튿날인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추가 인사 조처와 편성 변경을 예고했다. 박 사장은 “KBS가 공영방송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하고 정중히 사과한다”며 허리를 숙였다.
15일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1면 머리기사와 사설, 사진 기사 등 이날 여러 면을 할애해 박 사장 취임과 맞물려 강행한 인사 물갈이와 편성 삭제와 진행자 전면 교체를 두고 “군사작전”이자 “칼바람”, “땡윤뉴스 만들기”로 규정하고 강하게 비판했다.
▲15일 아침신문 1면
▲15일 경향신문
▲15일 한겨레
▲15일 국민일보
박 사장이 대표적인 ‘불공정 편파 보도’로 꼽은 사례는 ‘고 장자연씨 사건 관련 윤지오 인터뷰’(2019) ‘채널A 검·언 유착 녹취록 보도’(2020) ‘오세훈 서울시장 내곡동 토지 보상 보도’(2021)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 인용 보도’(2022) 등이다. KBS는 이날 간판 뉴스인 <뉴스 9>에서도 박 사장이 든 4가지 불공정 보도 사례를 당시 뉴스 화면과 함께 다시 한번 설명했다.
박 사장 취임 첫날인 13일은 TV뉴스 앵커와 시사프로그램·라디오 진행자 하차 및 편성 삭제를 강행했다. 공정방송을 위한 단체협약 위반이자 편성규약·방송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불거졌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13일 사측에 긴급 공정방송위원회를 요청하고 주요 보직자를 방송법 위반과 단체협약 위반 등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과방위 위원들과 언론자유대책특별위원회 위원들은 이날부터 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 저지를 위한 릴레이 피케팅’을 시작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방송 진행자, 방송 개편이 이렇게 전격적으로 이뤄진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며 “지금이라도 당장 사장 자리 그만두는 게 자신한테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배진교 정의당 대표 직무대행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박민 사장을 앞세운 윤석열 정부의 KBS 장악 시도가 군사작전처럼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다”며 “권력을 앞세운 윤석열식 언론장악의 추악한 모습은 역사의 한 장면으로 똑똑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15일 한겨레 1면 머리기사
한겨레도 1면 머리기사와 사설, 사진기사를 포함한 7개의 보도로 박 사장 방송장악을 다뤘다. 1면 머리기사 제목은 <군사작전 하듯, 초고속 방송장악>이다.
한겨레는 사설 <‘KBS 점령’ 속도전 펴는 박민 사장, ‘땡윤 방송’ 급한가>에서 “이 모든 일의 종착점이 ‘땡윤 방송’이라는 걸 모를 국민은 많지 않다. 정치권력과 손잡고 공영방송을 유린한 무도한 행태는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15일 한겨레 사설
한겨레는 “방송 독립성과 제작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태를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공식 인사가 나기도 전에 간부 내정자가 출연진 하차를 통보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며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기는 하나 정도가 심하다. 원칙도 절차도 저버린 점령군식 행태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편성 삭제 결정은 제작진과 협의 없이 갑작스럽게 이뤄졌다”며 “물론 사장이 바뀌면 프로그램 개편이나 출연진 교체가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합리적이고 투명해야 한다. 구성원들이 합의한 절차를 거쳐 순리대로 진행해야 한다. 한국방송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이런 상식과 거리가 멀다”고 했다. “‘취재 및 제작 책임자는 방송의 적합성 판단 및 수정과 관련하여 실무자와 성실하게 협의하고 설명해야 한다’는 한국방송의 편성규약은 전혀 안중에 없는 듯하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사설 <‘박민 KBS’의 인사·콘텐츠 칼바람, 이게 공영방송 장악이다>를 냈다. 경향은 이날 1면 보도와 사진기사, 사설을 포함해 6건의 기사로 박 사장 취임 뒤 방송장악을 다뤘다.
▲15일 경향신문
경향신문은 “‘낙하산’ 소리를 듣는 KBS 사장이 정부·여당에 불리한 보도에 불공정·편향 딱지를 붙여 문제 삼고 책임을 물으려는 것인가. 그러면 정부 비판 취재와 보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공정성·신뢰 회복이 아니라 공영방송 장악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이어 “사측이 제작진 의견을 무시하고 편성 규약을 어기며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무너뜨린 처사”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윤석열 대통령이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박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군사작전 벌이듯 KBS 물갈이에 나서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하루라도 빨리 KBS를 쥐고 흔들겠다는 정부의 조급함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며 “박 사장은 정권의 이익을 앞세워 공영방송을 점령하고 좌지우지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1면 머리기사 <박민 KBS 사장, ‘공정 기준’도 제시 않고 “불공정 보도 문책”>에서 박 사장 사과를 두고 “지난 정권하에서 KBS가 내보낸 보도는 ‘불공정했다’고 반성하고, 앞으로 ‘불공정 보도’는 강하게 문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는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겨레는 “취임 첫날부터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해온 시사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저녁 간판 뉴스의 앵커를 교체한 데 이어 공영방송 장악에 가속페달을 밟은 셈”이라고 했다.
▲15일 경향신문
경향신문은 “박 사장은 공정성을 판정하는 구체적인 기준은 밝히지 않고 ‘공정성 논란으로 방심위로부터 40건의 제재를 받은 프로그램도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절차를 무시한 ‘점령군식’ 개편에 KBS 직원들은 모멸감을 느낀다며 반발하고 있다”며 “전문가들은 박 사장 사과가선거 검증 보도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했다. 박 사장 취임 전날 KBS 간판 시사프로 <더 라이브> 편성 삭제와 간판 뉴스 <뉴스9> 앵커 하차를 공지하자 공식 홈페이지에 시청자들의 ‘권리침해’라는 항의가 빗발쳤다고도 했다.
▲15일 경향신문
▲15일 경향신문
KBS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서 하루아침 하차한 진행자 주진우씨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지난 13일 출근길에 갑작스럽게 하차 통보를 받았다며 “라디오센터의 한 부장을 통해서 오늘 사장이 취임하기 때문에 (주진우가 방송에) 나오면 안 된다는 취지의 얘기를 들었다. 녹음 파일로라도 청취자에게 마지막 인사는 하고 싶다고 했는데, 사장이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다더라”고 말했다.
▲15일 한겨레
한겨레는 해설기사 <“KBS 편파보도” 사과한 박민, 총선앞 여권비판 통제 나서나>에서 기자회견 배경을 두고 “정권의 ‘낙하산 사장’으로 비판받았던 박 사장이 케이비에스 내부 통제를 본격화하는 한편, 총선을 앞두고 여권에 유리하도록 방송 수위를 조절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15일 한겨레
▲15일 한겨레
박 사장이 거론한 ‘편파 보도’ 예시에 대해 “당시에는 진실이라 믿을 근거가 있어 보도한 것”이라며 “100% 확인된 것만 보도하라고 하면 어떤 언론도 기득권에 의혹 제기를 할 수 없다”는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지적을 전했다. 가짜뉴스를 빌미로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여권과 관련한 의혹 제기를 억제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사설 <휘몰아치는 KBS 칼바람… 또 다른 편파 우려한다>에서 “KBS에 매서운 칼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며 “제작진과 실무자 협의를 거쳐 절차대로 진행해도 될 터인데, 마치 점령군이 들이닥친 듯한 모양새다”라고 했다.
▲15일 한국일보
이어 “‘군사쿠데타를 방불케 한다’는 야당의 비판이 과장이 아닌 모습”이라며 “KBS 단체협약, 편성규약을 들지 않더라도, 제작진이나 실무진과 충분한 상의를 거치는 건 기본 상식이다. 그래서 이런 조치들이 향후 KBS 행보의 예고편은 아닐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편파방송이 문제가 됐듯, 단 며칠의 행보만으로도 국민들은 또 다른 편파를 낳지 않을지 우려한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8면 <박민 사장 “KBS 편파보도 사과…임원임금 30% 삭감”> 기사에서 “취임과 함께 속전속결식으로 진행돼 논란을 불러온 9시 뉴스 진행자와 정권 비판 프로그램 진행자 교체 등에 대해서는 자신이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했다.
▲15일 한국일보
한국일보는 “박 사장이 제시한 불공정 편파보도들은 현재 여당에 비판적이거나 불리한 보도들이 대부분이라 또 다른 정치적 편향성 시비를 불러오거나 권력 감시 기능을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KBS는 한국언론재단 언론수용자 조사에서도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으로 신뢰도 1위를 차지한 바 있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문화일보 재직 중 기업 자문역 활동이 청탁금지법 위반이라는 신고로 진행 중인 국가권익위원회 조사와 관련해서는 ‘결과에 따르는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고 했다.
일부 보수신문은 박 사장의 ‘사과’를 환영하는 기조의 사설을 냈다. 제작자율성 침해를 우려하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박 사장의 “불공정 편파방송이 이뤄지지 않도록 공개하고 백서를 발간하겠다”는 말에 “공정성 회복을 위해 당연한 조치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하는 행태도 개혁해야 한다”고 썼다. “전 정권 왜곡 보도를 사과했지만, 현 정권 칭송 보도를 한다면 다음 정권에서 또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15일 조선일보
서울신문은 박 사장 기자회견과 편성 삭제, 진행자 전면 교체에 “취임하자마자 편파, 왜곡 방송 시비가 일었던 프로그램들을 대거 수술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라며 “수년간 이어진 편파, 왜곡보도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책임을 묻는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며 “KBS가 다시 국민의 방송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15일 서울신문
동아 사설 “또 외신과만 인터뷰한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에 앞서 AP통신과 인터뷰했다. 대다수 아침신문이 AP가 보도한 윤 대통령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윤 대통령이 국내 언론의 질문은 1년째 받지 않고 외신과만 인터뷰하는 행보를 사설을 내 비판했다.
▲15일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사설 <또 외신과만 인터뷰한 대통령>에서 “윤 대통령은 공개된 장소에서 국내 언론의 질문을 1년째 받지 않고 있다. 작년 8월 취임 100일 회견 이후로는 올 신년 기자회견도, 5월 취임 1년 회견도 열지 않았다. 한 신문과 인터뷰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궁금하고 민감한 국정 현안에 대한 대통령 생각을 제대로 들어야 할 국민의 권리가 제약받고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14일 공개된 윤 대통령의 AP통신 인터뷰를 두고 “북-러 무기 거래, 북한 도발 시 중국의 역할 등 글로벌 안보 이슈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윤 대통령이 3월 한일 정상회담, 4월 워싱턴 국빈방문 등 출국에 앞서 그 나라 언론과 인터뷰한 것과 동일한 방식”이라며 “한정된 주제로 외신과만 인터뷰하는 일은 계속됐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빈자리는 국민과의 대화 형식의 국정 설명회, 기자단 오찬,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 생중계 등으로 채웠다”며 “이런 자리는 하고 싶은 말을 일방향으로 전달하는 한계가 있다. 궁금하고 민감한 국정 현안에 대한 대통령 생각을 제대로 들어야 할 국민의 권리가 제약받고 있다”고 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당선 직후 ‘항상 언론과 소통하겠다’고, ‘ 언론 앞에 자주 서겠다’ 약속했다. 또 100일 회견 때는 ‘질문받는 대통령이 되겠다’ 했다”며 “도어스테핑은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평가됐지만, 여러 논란 끝에 지난해 11월 중단된 뒤 복원 기미가 안 보인다”고 했다. “기자들은 정확히 묻고, 대통령은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고민을 담아 자신의 언어와 표정으로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며 “질문받는 것을 정치 리스크로 여길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15일 한국일보
▲15일 경향신문
아침신문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서면 인터뷰에서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가능성을 경계했다. 북·러 군사협력의 불법성을 강조하면서 APEC 정상회의에서 공조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통과된 노란봉투법을 두고 “망국적 악법”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원내대책회의에 이어 지난 13일 당 공식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에서 진행된 필리버스터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반복해서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관리법에 이어 간호법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어, 이번에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노조를 만들어도 실질적 사용자와 교섭할 수 없었던 간접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이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해 온 “약자 보호”를 위한 법이기도 하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지속해서 개정을 권고한 바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강조한 “글로벌스탠다드”이기도 하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이 법안까지 거부권을 행사하여 입법을 막는다면 자신이 했던 말들을 부정하는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에서는 노란봉투법이 제도화되면 “교섭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지기에 극단적인 비정규직 투쟁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헌법상 노동기본권 보장할 수 없었던 구조
중노위·법원 판결서도 확인된 도입 필요성
“제도화되면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 많아져”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통 ‘노동3권’이라고 부른다. 노동3권은 대한민국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가장 기본권인 기본권 중 하나이며, OECD 거의 모든 국가가 비준하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간접고용노동자들에게는 이 기본적인 권리가 좀처럼 보장되지 않았다.
간접고용노동자가 열악한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회사에 교섭을 요구하면 “원청기업과의 계약조건이 열악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고, 원청기업에 요구하면 “우리 회사와 근로계약 관계도 아닌데 교섭할 의무가 없다”며 거부당했다. 원청기업에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파업 등 쟁의행위라도 하면 원청은 하청과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간접고용노동자들을 모두 손쉽게 해고하거나, 다른 하청노동자를 대체투입하는 식으로 하청노동자의 파업을 손쉽게 무력화했다. 또 이같이 쟁의행위가 쉽게 무력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점거농성이라도 벌이면, 노동자 개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손해배상책임을 물어 괴롭혔다. 경찰의 폭력 진압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 ⓒ한국노총 이지현 대변인여권에서 “극단적인 투쟁”이라고 단순 비하하는 점거농성의 상당수는 이 같은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지난 5월 29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 도로 7m 철탑에서 고공농성 중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구속된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농성을 시작하며 내건 현수막도 “하청 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라”였다. 그는 농성장에서 시간이 생길 때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앞의 글 생략) 사내 하청노동자에게는 노동3권 중 쟁의권은 보장되지 않는다. 노조를 만들고 교섭할 수는 있지만, 원청의 하청사 바꿔치기로 대체근로가 합법이기 때문에 쟁의권을 행사할 의미가 없다. 그래서 포스코 보고 이 분쟁을 해결하자고 하면, 하청사 노사 문제에 공식적으로 개입하기 어렵다 한다. (이하 글 생략)”
유최안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지난해 여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요선) 옥포조선소 선박 건조 작업장에서 31일간 옥쇄농성을 한 배경도 다르지 않다. 대우조선해양이 어려울 때 하청노동자들이 희생해 수년 동안 임금을 30% 정도 줄여 받다가 사정이 개선되어도 임금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자, 하청노동자들은 하청업체들과 교섭을 진행했다. 하지만 아무런 권한이 없는 하청업체와의 교섭은 무의미했다. 하청노동자들은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원청에도 교섭을 요구했으나 원청은 무시로 일관했다. 유 부지회장이 옥쇄농성을 시작한 이유였다. 이런 상황에서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은 옥쇄파업으로 손해가 발생했다며 노조 간부를 상대로 47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협상이 51일 파일만에 타결된 2022년 7월 22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에서 농성을 마친 유최안 대우조선해양 하정지회 부지회장이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2022.07.22. ⓒ뉴시스
이 외에도 2020~2021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농성 등 수많은 사업장에서 같은 배경에서 간접고용노동자들이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을 해야만 했다.
이같이 반복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게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이 법안의 핵심은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헌법상 노동3권을 보장하려는 취지다.
이 같은 법 개정의 필요성은 야당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준사법행정기관 판단이나 법원의 판결에서도 나타난다. 가깝게는 대우조선해양 사례에서도 중앙노동위원회는 원청이 하청업체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행위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택배노조도 직접계약 관계인 대리점과의 교섭이 무의미해 원청인 CJ대한통운에 교섭을 요구했는데, 이 사건에서 중앙노동위원회는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정했고, 1심 법원에서도 같은 취지로 판결했다. 또 현대·기차아 대법원판결 등에서도 원청의 사용자성은 인정된 바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노란봉투법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환경노동위원회를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사건도 있었으나, 헌법재판관 전원은 노란봉투법 국회 본회의 직회부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오히려 국민의힘 의원들이 법사위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고 봤다.
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14일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대우조선해양 중노위 판정 결과를 밝히며 “사용자 측에서는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하청노동의 파업이 더 많아진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청노동자와 원청의 교섭이 제도화되면 교섭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지기에 극단적인 형태의 비정규직 투쟁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택배노조도 지난 9일 성명에서 “파업을 원하는 노동자는 없으며, 파업이 일어나는 주요 원인은 ‘계약관계가 없다’며 진짜 사장들이 교섭을 회피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해당 법안을 최초 발의한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14일 의원총회에서 “만약 윤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권고와 헌재·대법원의 사법적 판단, 국회의 입법 절차와 결정을 무시하고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야당을 비롯한 노동 시민의 전면적인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민 AP(Associated Press) 기자는 한국의 기자들에게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것이 때로는 질문을 받는 사람을 화나게(Mad) 하거나 불쾌하게(Unhappy) 만든다 하더라도, 기자의 책무는 '질문'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지난 10월 26일 낮, 미국 워싱턴D.C.에 자리한 미국 상원 출입기자실에서 김승민 기자를 만나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SNU팩트체크센터가 함께 진행한 '팩트체크 디플로마'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김승민 기자의 이름이 한국에도 알려지게 된 건 2022년 5월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공동 기자회견이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에서 백악관 출입기자였던 그는 바이든 대통령을 따라 함께 방한했고, 기자회견장에서 윤석열 정부의 '남성 편중' 문제를 꼬집었다. 성평등 문제를 전면에 내건 그의 비판적 질문은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이를 반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실제 윤 대통령은 추후 개각에서 여성 인사의 발탁 비율을 늘렸다.
한국계 미국인인 김 기자는 미국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한국에서 온 기자들과 짧은 간담회를 통해, 2022년 5월 한국 방문 당시 자신이 느낀 미국 기자와 한국 기자의 차이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놨다. 본인의 취재 경험담과 함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정치인을 취재하는 한국 기자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아래는 김 기자와 영어로 진행한 공동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태로 정리한 내용이다. 일부는 현장에서 통역사의 도움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 미국 기자가 질문할 줄 몰랐던 것 같다"
▲ 한국 기자들과 대화하는 김승민 기자 한국계 미국인인 김승민 AP 기자가 지난 10월 26일, 워싱턴 D.C 미국 상원 출입기자실에서 한국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김승민 기자는 백악관과 미국 의회를 꾸준히 출입해 온 정치 전문 기자로, <워싱턴 포스트> 근무 당시 윤석열 대통령에게 여성 내각과 관련한 질문으로 화제를 모았다.
"한국 말 잘 못하니까 영어로 할게요(웃음). 제 이름은 김승민입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2008년부터 워싱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USA투데이>에서 1년 여 간 근무했고, 그다음에는 의회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폴리티코>에서 일했습니다. 8년 반 동안 미국 상원을 담당했고, 이후로 <워싱턴포스트>에서 5년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다음 AP로 옮겨서도 똑같이 백악관과 미 의회를 맡고 있습니다. CNN에서는 정치 분석가로도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TV의 CNN 채널에서도 저를 볼 수 있습니다.
AP로 옮기기 전, 가장 좋았던(favorite) 기억은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한국 서울을 방문한 겁니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기자회견에서 '왜 윤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여성을 싫어하는지' 물었습니다. 그건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이었고, 윤 대통령은 제 질문에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 같아요. 청와대(대통령실)에서도 제게 굉장히 화가 났고요. 하지만 그게 바로 기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저희 오빠는 그 기자회견을 두고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뭐라고 하는지 찾아줬어요. 그리고 어머니는 제게 '왜 사람들을 화나게 만드는 질문을 하니?'라고 물었죠(웃음). 그래서 '그게 기자들이 하는 일이야'라고 답했죠. 우리는 때때로 사람들이 불쾌해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 한국에 와서 봤을 때, 한국 기자들이 미국 기자들보다 더 조심스럽다고 느꼈나요?
"그 기자회견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기자가 질문할 줄 몰랐던 것 같아요. 아마 청와대에서 미국 기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에게만 질문하고, 한국 기자들은 윤 대통령에게만 질문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기자 주: 실제로 당시 대통령실은 기자회견 전 상대국 대통령에게 질문하지 말아 달라고 출입기자단에 요청하며, 한미 양측의 '합의'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일하지 않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세계 다른 나라의 지도자와 만날 때, 우리 기자들은 항상 양쪽 모두에게 질문할 수 있도록 돼 있어요. 어제(10월 25일)도 바이든 대통령이 오스트레일리아의 수상과 만났는데, 4명의 기자들 모두 각각 두 정상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제 생각에, 윤 대통령은 미국 기자들의 질문에 답할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것 같아요."
- 왜 윤석열 대통령에게 여성의 내각 비율, 성 평등과 관련한 질문을 했나요?
"제 앞에 첫 번째로 질문한 미국 기자가 질문을 5개나 했어요. 대북 관계, 대일 관계 등 제가 윤 대통령에게 하려고 준비했던 질문을 다 한 거죠. 그래서 제가 준비했던 것 중 유일하게 남은 게 여성 관련 질문이었어요(웃음). 윤 대통령의 당시 내각(Cabinet)에서 여성은 보이지 않았고, 대선 기간 때도 반여성주의(Anti-Feminism) 플랫폼을 상대로 캠페인을 했어요.
더구나 현장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을 취재하는 한국 기자들 거의 대부분이 남성이었어요. 굉장히 남성에 편중돼 있다고 느꼈고, 그들은 아마 여성에게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을 것이라 봤습니다. 윤 대통령도 굉장히 남성중심적인 언론관을 가진 것처럼 보였고, 아마 여성에게 중요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질문 받지 않아 왔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여성에 대해 물어보는 게 중요하다고 봤어요. 제게는 그걸 물어보는 게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 미국 기자들이 정부 권력자들을 대할 때 한국 기자들보다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에서는 기자가 자리를 떠나는 대통령에게 질문을 한다든가, 그가 구두를 신고 있지 않다든가 하는 게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기자 주: 김승민 기자는 자신의 샌들을 가리키며 웃었다).
"네, 한국인들은 대체로 더 예의 바른 문화를 갖고 있어요. 기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건데 말이죠. 예를 들어, 누구든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의 이름을 그냥 불러서는 안되고, 제가 동료보다 나이가 많다면, 동료는 절대 제 성만 불러서는 안 되고, '누나'라고 불러야겠죠. 그런 문화가 일반적인 보도에서의 저널리즘에까지 흘러들어간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는 미국 국민을 대신해 질문한다"
▲ 미국 상원 출입기자실 미국 상원 출입기자들이 이용하는 기자실의 모습. 상원 회의 시간이 다가오자 출입기자석이 하나둘 차기 시작했고, 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하거나 노트북을 켜고 일하는 기자들의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 미국 출입 기자들이 한국의 출입 기자들보다 더 많은 자율성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상원 의원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오려면 기자들의 초대를 받아야만 할 수 있다든지 같은 부분들이요.
"상원 의원이 기자회견을 하고 싶다면, 출입기자들로부터 초대를 받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기자회견장은 기자들에게 질문받기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죠. 이 출입증이 일종의 승인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의회의 승인이 아니라 별도의 독립된 위원회로부터 승인을 받아요.
출입증이 있다는 건, 기자 김승민이 기자회견장을 포함해 국회 의사당에서 내가 원하는 곳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거죠. 우리는 그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고요. 백악관은 조금 더 많은 보안 절차들이 있지만 의회와 비슷해요.
한국 언론은 더 어려운 상황일 겁니다. 왜냐하면 한국은 정부가 언론이 하는 일에 대해 훨씬 더 많은 통제권을 분명히 가지고 있잖아요. 우리가 출입을 보장받는 것 같은 게 한국에 없다면, 당신은 질문할 기회를 보장 받지도 못하고, 매번 질문을 허락 받아야만 하겠죠.
하지만 백악관 브리핑룸이든, 국회의사당이든 의원들에게 질문할 권리가 있어요. 언론은 개념적으로 의회와 동등해요. 입법-행정-사법의 삼권에 이어 언론은 '제4부'니까요.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론적으로 백악관과 의회 그리고 법원이 동등한 것처럼, 우리 기자들도 기자회견장에 의원들을 초대할 때 '이곳은 우리의 공간이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 국민을 대신해서 의원들에게 질문을 하고 싶어서 기자회견장에 초대하는 거죠."
- 미국에서도 정부나 정당, 정치인들에게 비판적인 질문을 하면, 혹시 공격받거나 압력을 받는 일이 있나요?
"극단적인 방법이지만, 때때로 대통령이나 그의 보좌진들이 반발할 때도 있죠.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 때 CNN 기자가 어려운(tough)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CNN은 제일 앞줄에 앉습니다. 가장 큰 언론사부터 앞줄에 앉거든요.
그런데 트럼프는 너무 화가 나서 그 CNN 기자를 6~7번째 줄로 밀어버렸습니다. 그게 백악관의 언론관일 수 없고, 백악관의 권한도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언론사에 소속돼 있든지 상관없이 우리 출입기자 모두 그게 부당하다고 항의했죠. 그 CNN 기자는 제일 앞줄에 앉아야 한다고, 그녀가 힘든 질문을 했다고 그녀를 뒤로 밀어낼 수 없다고 말이죠. 정치인들이 기자들에게 이처럼 보복할 수는 있지만, 그럴 때 우리 모두 하나의 집단이 돼 반발합니다."
- 정권이 바뀌고 나서 비교해 보면 어떤가요?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하는 비율이 변했나요?
"트럼프는 바이든보다 더 거짓말을 많이 합니다. 진짜에요. 이건 사실입니다(웃음).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백악관이나 바이든이 말하는 모든 게 사실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이 틀렸을 때 혹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우리는 그들에게 더 높은 기준을 제시해야 합니다. 트럼프가 더 자주 거짓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기준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다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빨리, 너무 많은 거짓말을 했어요. 그래서 그가 말한 모든 것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정말 옳았는지 다시 확인하기 위해 별도의 기사를 써야 했죠. 또, 마냥 팩트체크를 기다릴 수만도 없었어요.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ABC를 말했다'라는 걸 보도하는 게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하는 말이니까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그가 부정확하게 이야기한 것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마음가짐(mind-set)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매일매일 정말 빠르게 기사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도 팩트체크를 해야 한다는 자세로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SNU팩트체크센터, 포인터 연구소가 공동 진행한 팩트체크 디플로마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이홍정 상임대표의장은 자주, 평화공존, 민족공동체의 재결합과 하나됨, 남북교류 활성화를 위한 지난 23년 분투를 거론하면서 “통일뉴스를 살펴보노라면 사람에 대한 희망이 솟아오른다”고 치켜세웠다.
“통일뉴스에 담긴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 그 수난의 삶의 여정은 분단된 민족공동체의 치유와 화해를 위해 휘몰아치는 거대한 생명운동의 물결로 그 안에는 평화를 만드는 민중의 집단지혜와 문화정치전략과 정의로운 평화의 길이 담겨 있다.”
“통일뉴스를 접하게 된 것은 제 일기에 통일 염원을 담으면서부터”라는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암울한 기운이 한반도를 덮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개탄했다.
“윤석열정부는 미국과 일본의 대중국봉쇄전략인 인도태평양전략에 편승하여 한반도를 대륙과 해양세력이 부딪히는 전선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 마른 덤불 옆에서 불장난하듯 현 정부의 통일외교정책은 갈등을 부추기면서 파탄의 길로 치닫고 있다. 그래서 통일뉴스의 존재는 무엇보다 소중하다. 돌들이 일어나 소리치듯 통일뉴스의 보도는 우리 시대의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인 조정식 의원도 “지난 1년 반 동안 윤석열정부의 외교통일정책을 바라보면 참 암담하고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통일부 장관이 새로 취임해 처음 한 일이 조직 축소다. 수십명의 통일 관련 인력을 하방시키고 잘랐다. 통일부의 직제와 지침에서 ‘평화’라는 단어를 다 삭제하고 있다. 외교부 역시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은 늘 국익 위한 균형 외교를 펴왔는데 지금은 철저하게 이념과 신냉전, 편가르기로 우리 스스로를 좁히고 국익을 훼손하는 길로 가고 있다.”
“30주년 축하는 백두산에서 춤추고 노래하길”
왼쪽부터 권오헌 명예회장, 조성우 공동 운영위원장, 박석운 공동대표, 김수경 대표.
각계 인사들이 영상축사를 보냈다.
권오헌 (사)정의 평화 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통일뉴스는 6·15공동선언과 함께 발족했고 그 이행과정에서 온 민족에게 좋은 소식도 궂은 소식도 다 전해주셨다”면서 “더욱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공동선언 이행할 수 있는 자주통일 세상을 반드시 맞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성우 전국비상시국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은 “지금 여러 조건과 상황이 좋지 않지만 어려울수록 더욱 진득하게 밀고 나가는 게 통일뉴스의 주특기”라며 “통일뉴스 30주년 축하는 다함께 백두산에서 덩실 춤추고 노래하며 걸판지게 놀아봅시다”라고 격려했다.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는 “통일뉴스는 척박한 현실에서 지난 23년간 민족자주와 민주주의, 민중생존권 쟁취,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적극적인 정론 보도를 해왔다”면서 “앞으로도 적극적 보도투쟁을 통해서 민족통일과 평화를 향한 적극적인 담론화에 앞장설 것”을 기대했다.
김수정 대학생겨레하나 대표는 “북을 적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조장하는 데 언론이 큰 역할을 하는 안타까운 지금, 통일뉴스에서 전해주는 우리 민족의 소식, 통일의 소식, 투쟁의 소식이 통일을 진정으로 만들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겨레하나도 지금처럼 통일뉴스와 자주통일의 한 길을 함께 가겠다”고 밝혔다.
노중선 통일뉴스 상임고문이 ‘영원한 문화민족주의자’ 이양재 선생에게, 김지영 통일뉴스후원회 부회장이 ‘민족화해의 길잡이’ 박창일 신부에게 각각 감사패를 전했다.
애서운동가인 이양재 선생은 “내가 통일뉴스에 글을 쓰지 않으면 미쳤을 것”이라며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글을 썼고 그 글을 실어준 통일뉴스에 감사 드린다”고 밝혔다.
박창일 신부는 “통일뉴스는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언론”이라며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서 지원하고 함께 이끌어가야 한다”고 했다. “혹시 유튜브를 통해서 (이 기념식을) 보시는 분들 있다면 통일뉴스와 함께 가주길 부탁드린다”고 거듭 당부했다.
가수 백자 씨가 '임진강', '직녀에게'로 축하 분위기를 띄웠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노래패 우리나라의 터줏대감인 가수 백자 씨가 「임진강」, 「직녀에게」를 부르며, 행사 분위기를 띄웠다.
‘몇십년 뒤 오늘이 민족일보 논설 그대로’
왼쪽부터 조성재 이사, 임헌영 소장, 원희복 이사장.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사)민족일보기념사업회(이사장 원희복)가 주관하는 제5회 민족일보 조용수언론상 시상식이 이어졌다. 올해 수상자는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다.
조성재 이사는 “진보언론인이자 진보 언론인, 정의를 규명하는 역사가, 실천적 문학평론가, 민주화 운동가로 살았고 현재에도 검찰독재, 민생파탄, 전쟁 위기 극복을 추구하는 ‘비상시국회의’에 참여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사회활동은 <민족일보>가 추구했던 정신과 부합하다는 판단으로 제5회 조용수언론상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알렸다.
임헌영 소장은 “저는 그렇게 (칭찬)받을 자격이 없는데 생각해보니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면서 “제가 민족문제연구소장인데 민족일보이니 ‘민족’ 한 글자가 똑같다. 그래서 저에게 주신 모양인데 참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상 준다는) 전화 끊고 생각했다. 민족일보사건으로 열세분이 법정에 선다. (...) 참 신기한 게 편집국장은 징역 10년인데 논설위원은 징역 15년이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면 민족일보 논설이 한국전쟁 이후에 그렇게 명문이 없다. 몇십년 뒤 오늘 그 논설 그대로다. 크게 두 가지 한미군사동맹 문제와 한미경협. (민족일보는) 그렇게 반대하면서 남북 협력하라고 한다.”
축하떡 자르기.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기념촬영.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주최 측을 대표해 전성 통일뉴스후원회 운영위원장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축하떡 자르기, 기념촬영으로 80분에 걸친 행사가 끝났다.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시작된 이날 행사의 사회는 임재근 통일뉴스 객원기자가 맡았다.
예상했던 대로 11월 13일 열린 한미 안보연례협의회(SCM)도, 14일 열린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담도 유엔사에 전투 기능을 부여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한미 SCM은 “1953년 정전협정 이행, 관리, 집행, 북한 공격 억제, 한반도 안보를 위한 다국적 기여 협조 등 유엔사의 역할을 재확인”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 공격 억제, 한반도 안보를 위한 다국적 기여 협조’라는 표현이다.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담 역시 “한반도 전쟁 억제와 평화유지를 위한 유엔사 역할”이 강조되었다. 여기서도 주목해야 할 것은 “한반도 전쟁 억제”라는 표현이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유엔군사령부는 한반도 방어(한반도 전쟁 억제) 임무와 정전협정 관리 임무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1978년 한미연합사가 창설되면서 유엔사가 갖는 한반도 방어 임무는 한미연합사령부에 ‘위임’되었다. 그 후 유엔군사령부는 정전협정 관리 임무만 갖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한미 SCM과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담에서 나온 유엔사가 “북한 공격 억제”, “한반도 전쟁 억제” 기능을 해왔다는 주장은 100% 거짓이다.
주지하듯이 미국은 오래 전부터 유엔사 ‘재활성화’를 추진해왔다. 유엔사 ‘재활성화’는 유엔사를 전투사령부로 만들고, 일본을 유엔사에 편입시키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지금까지도 유엔사가 한반도 방어 임무를 담당해왔다는 전제가 있어야, 유엔사 ‘재활성화’는 어떤 저항도 받지 않고 추진될 수 있다. 그들이 거짓 주장을 버젓이 하는 이유다.
두 회의에서 합의한 것 역시 유엔사의 전쟁 억제 기능 강화이다. 한미 SCM은 유엔사의 임무와 과업을 수행할 것임을 재확인했다. 즉 ‘유엔사의 전쟁 억제 기능’을 지속하기로 합의했다.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담에서도 한반도 전쟁 억제를 위한 유엔사 역할 강화 방안이 논의되었다.
양 회의에서 논의한 유엔사의 역할 강화 방안은 두 방향이다.
첫째, 유엔사 차원의 훈련 강화이다. 한미 SCM은 한국과 유엔사 회원국들 사이의 연합 훈련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담은 한미동맹과 유엔사 회원국 사이의 연합연습과 훈련을 활성화하기로 합의했다.
둘째, 유엔사 회원국의 확대이다. 한미 SCM은 ‘유사입장국들’의 유엔사 참여를 통해 유엔사 회원국의 확대를 모색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다만 우리 국방부의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담 보도자료를 보면 유엔사 확대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까.
첫째, 한반도에 연합 군사 훈련 '전성시대'가 열린다. 한미 연합 훈련은 지금도 해마다 수십 차례 진행되고 있다.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한미일 연합 훈련 역시 내년부터 정례적으로 실시된다. 여기에 유엔사 연합 훈련마저 실시된다면? 한반도는 '연중 무휴' 군사 훈련지가 된다.
둘째, 비록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담에서 합의되지는 않았으나, 한미 양국은 유엔사 참여국을 확대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표현이 한미 SCM에서 등장한 ‘유사입장국’이다. 이는 한미 SCM에서 합의한 내용과 유사한 입장을 갖는 국가를 뜻한다. 일본은 가장 적극적인 유사입장국이다. 따라서 유엔사의 일본 참여를 한미가 합의한 셈이다. 이제 밀어붙이는 것만 남았다.
고용노동부가 13일 주52시간제 틀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업종·직종에 한해 노사가 원하는 경우’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1주로 한정하지 않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 지난 6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전면 중단했던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의 사회적 대화 복귀 제안을 받아들여 관련 논의에 참여하기로 했다.
정부 주52시간제 추진 근거, 해석 엇갈려
▲2023년 11월14일 주요 9개 종합일간지(조간) 1면 모음
이번 노동부 발표는 앞서 윤 대통령 지시에 따라 모든 사업장 대상 연장 근로 단위 확대를 추진했던 3월 입법예고안에 비해 적용 범위가 줄었다. 그러나 연장 근로 단위를 확대하면 특정 주에 최대 69시간까지 몰아서 일할 수 있기에 ‘주 69시간’ 문을 열어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동부는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할 경우 주당 근로시간 상한을 설정하고,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 등을 마련해 노동자 건강권을 보호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이날 공개한 근로시간 개편 관련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선 정부와 노동계의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주 52시간제에 대해 국민의 48.2%가 ‘장시간 근로 해소에 도움이 되었다’고 답한 반면, 54.9%는 ‘업종 직종별 다양한 수요 반영이 곤란하다’고 응답했다”며 “연장근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노사 및 일반 국민 모두 동의한다는 응답이 비동의한다는 응답보다 많았다”고 했다. 노동부가 지난6월26일~8월31일 노동자 3839명, 사업주 976명, 일반국민 1215명 등 6030명을 대상으로 지난 6월26일~8월31일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다.
실제 해당 조사에서 ‘추가 소득을 위해 연장 근로 의향이 있는지’ 물은 답변에 대한 노동자 답변은 ‘아니오’가 과반(58.3%)으로 나타났고, 사업주 85.5%는 ‘최근 6개월간 현행 근로 시간 규정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한겨레 <‘연장근로 늘리기’ 끼워맞추려, 노동자·사업주 목소리 취사선택> 기사는 정부가 연장 근로 단위 개편이 필요한 업종으로 꼽은 제조업(55.3%), 건설업(28.7%)의 경우 주로 일을 할 수록 임금이 많아지는 시간급 체계이기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2023년 11월14일 조선일보(왼쪽)와 한겨레가 전날 발표된 고용노동부의 설문조사 결과를 정리한 그래프
노동부가 앞선 입법예고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여론 역풍을 감안해 ‘속도 조절’을 할 거란 전망도 있다. 경향신문 <정부, 여론 역풍에 ‘속도 조절‘ … 총선 전엔 강행 안 할 듯> 기사는 “노사정 대화를 통해 구체적 방안을 정하겠다고 한 것은 사실상 이 문제를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미루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노동부가 기존 방안의 뼈대는 살려놓되 당분간 이 문제를 수면 아래에 두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며 “한국노총을 포함한 노동계가 노동부 개편 방향에 반대 입장을 밝힌 만큼 노사정대화가 진행된다 해도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달 말 노란 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노정 관계는 더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각 신문사 사설은 근로시간 개편에 대한 입장에 따라 요구 방향이 다르면서도, 공통적으로는 정부의 무책임을 지적했다. 국민일보 사설(‘주69시간‘ 철회 수순…노동개혁, 탁상공론으로 안돼)은 “5월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는 ‘바쁠 때 몰아서 일하고 길게 쉴 수 있어 찬성’이라는 반응이 36%에 불과했고, ‘불규칙한 장시간 노동으로 삶의 질이 저하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비율이 56%로 훨씬 많았다. 이달 8일 한국노총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반대가 60.5%로 찬성(36.2%)을 크게 웃돌았다다”며 “정부가 애당초 누구를 위해 어떤 목표를 가지고 근로 시간 개편을 시도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정부의 노동 개혁이 탁상공론에 그쳐서는 곤란하다”고 했다.
한국일보 사설( 근로시간 개편안 사실상 폐기··· 현실 벗어난 개혁 교훈 삼길)은 “정부가 늦게라도 잘못된 ‘개혁’ 방향을 인정한 것은 다행이다. 현장 파악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정책을 추진했을 때,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이번에 교훈으로 삼기 바란다”며 “주 52시간제로 인한 어려움을 추가 인력 채용으로 대응했다는 비율이 36.6%에 이르는 점으로 볼 때, 근로 시간 늘리기가 근본적인 해결법이 아닐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 사설(국민 원치 않는데, 노동시간 유연화 기어이 추진하나)은 “특정 시기에 필요한 경우라면 현행법상으로도 탄력적 · 선택적 근로 시간제를 활용하면 된다. 정부가 언급한 업종만 유연화를 허용하더라도 그 범위가 상당히 넓어 사실상 정책을 재추진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게다가 ‘노사가 원하는 경우’라는 단서를 달고 있지만, 미조직 노동자가 대다수인 현실을 고려하면 사용자 일방이 결정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지난해 기준 한국의 1인당 연평균 노동 시간은 1901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149시간이나 많다”고 했다.
동아일보 사설(‘근로시간 개편’ 8개월 끌다 노사정대화에 ‘맹탕안’ 던진 정부)의 경우 “개편안을 마련한다면서 설문 조사를 하고, 조사 결과 근로 시간 유연화가 시급한 업종과 직종이 나왔는데도 구체적인 대상 업종과 연장 근로 관리 기간이 빠진 맹탕안을 노사정 대화에 떠넘긴 이유가 뭔가”라면서 “정부는 연금 개혁도 큰 소리치다 연금이 줄어들까 여론이 싸늘해지자 지난달 맹탕 개혁안을 내놓으며 국회 공론화 과정을 거치자고 했다. 반대 여론에 부닥칠 때마다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우회로를 찾기 바쁘면서 무슨 개혁을 하겠다는 건가”라고 했다.
KBS 박민 사장 취임 첫 날, ‘칼춤’ 평가는
13일 취임한 박민 신임 KBS 사장의 취임 첫 날, KBS 메인뉴스를 비롯한 주요뉴스 앵커들이 전면 교체되고 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등 주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가 하차를 강요 받아 사실상 폐지됐다. 2TV 시사 프로그램 ‘더 라이브’는 편성에서 삭제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편성규약, 단체협약, 방송법 위반이라며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12일엔 본부장, 센터장, 실국장, 부장급 등 72명 인사가 단행됐다. 관련 소식을 다룬 주요 신문들 기사 제목은 아래와 같다.
▲2023년 11월14일 국민일보 기사
경향신문 <취임하자마자 ‘칼 휘두른’ 박민>
국민일보 <KBS ‘뉴스9’ 앵커 교체·‘더 라이브’ 결방·주진우 하차>
동아일보 <KBS 박민 사장 “위기 원인 내부에... 재창조 수준 조직 통폐합”>
조선일보 <KBS 사장 취임 당일에 메인 뉴스 간판 다 교체>
중앙일보 <‘편파 논란’주진우 하차시킨 박민, 오늘 KBS 혁신 회견>
한겨레 <KBS사장 취임 첫날, 정권비판 프로 날렸다>
KBS 사례를 비판적으로 다룬 매체는 관련 기사를 1면에 배치한 한겨레와 경향신문 정도다. 한겨레는 “박민 한국방송(KBS) 사장 취임 첫날부터 그간 여권으로부터 ‘편파 방송’이라고 공격받아온 시사 프로그램이 갑작스럽게 편성에서 빠지고 출연진이 교체되는 등 한국방송 내부에서 제작 자율성 침해 및 부당 인사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면서 “한국방송은 노사 단체협약(2022년)을 통해 ‘편성 · 제작 · 보도 책임자는 실무자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22조), ‘프로그램 개편 전에 제작진과 협의해야 한다’(31조) 등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방송법 역시 4조를 통해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있다”고 했다.
▲ 2023년 11월13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박민 KBS 사장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반면 조선일보는 “편파 방송 논란을 빚어 온 KBS1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KBS2 TV ‘더 라이브’ 등에 대해선 진행자 교체와 편성 제외 조치가 취해졌다”고 표현했다. 국민일보는 인사 관련해 “보수 성향의 KBS노동조합(1노조) 관계자는 ‘과거 편향됐던 인사가 일부 정상화되는 과정이라고 본다’고 했다. 반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박민 사장은 임명 직후부터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제작 자율성을 파괴하고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가짜뉴스’와 윤석열, 그리고 NYT
▲2023년 11월14일 경향신문 기사
윤석열 정부의 ‘가짜뉴스 전쟁’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국내 언론이 최근 이를 다룬 미국 뉴욕타임스(NYT) 보도를 인용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경향신문 <“가짜뉴스 척결" 안 꺾는 대통령… 분열 낳는 ‘불변의 언론관’> 기사는 “언론 관련 인사와 정책을 두고 언론장악 비판이 계속되는데도 윤 대통령의 언론관은 변하지 않았고 이는 갈등의 한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뉴욕타임스는 지난 10일 대통령의 가짜뉴스와의 전쟁이 한국에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제목으로 윤 대통령의 언론관을 보도했다”고 전했다. 이어 “윤 대통령의 언론관은 방송 3법(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 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재의 요구권(거부권) 행사 여부로 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이 법들은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다룬법으로 정치권의 이사 추천 비율을 대폭 줄이는 게 골자다. 정치적 외압에서 자유롭게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꾸자는 것”이라고 했다.
중앙일보 사설(뉴욕타임스가 우려한 한국의 ‘가짜뉴스 척결’ 논란)의 경우 뉴욕타임스가 13일자 인터내셔널판 1면에서 다룬 ‘서울이 검열 우려 속에 가짜 뉴스를 정조준하다(Seoul targets ‘ fake news’ amid fears of censorship)’ 기사의 주요 내용을 비중 있게 전했다. 중앙일보는 “사실을 고의로 조작· 왜곡하는 가짜 뉴스는 당연히 근절돼야 할 범죄다. 하지만 ‘ 잘못된 정보’마다 가짜 뉴스 프레임을 씌우고 고소·고발과 압수수색을 남발하면 정상적인 취재 활동은 당연히 위축된다”며 “지난달 방한한 뉴욕타임스 아서 슐츠버거 회장은 서울대 강연에서 가짜 뉴스란 용어 자체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했다. 다만 이 신문은 “야당의 방송 3법 또한 야당에 유리한 방송 환경을 만들려는 꼼수란 지적을 받고 있을 뿐이다. 여야 모두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어떠한 시도도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3년 11월14일 중앙일보 사설
한겨레 사설(방심위 직원들도 “월권” 반발, ‘가짜뉴스 심의’ 중단해야)은 방송통신심의위 ‘가짜뉴스 심의 전담센터’로 발령난 내부 직원들이 원 부서 복귀를 요청한 사례를 전하면서 “업무를 직접 담당하는 직원들 전원의 의견 표명까지 나왔으니 방심위가 가짜 뉴스 심의의 정당성을 아무리 강변해도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뉴욕타임스는 ‘윤석열 대통령이 가짜 뉴스를 빌미로 언론을 침묵시키려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전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 장악 시도는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으며 국제 사회에서도 한국 민주주의의 평판을 깎아 내리고 있다”며 “방심위의 가짜 뉴스 심의를 비롯해 시대역행적 언론 탄압을 멈추지 않는다면 더 이상 우리나라를 민주국가로 부르기도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라고 했다.
[전강수의 경세제민] '김포 서울 편입' 헌법정신·국정철학 위배... 깨어있는 시민의 힘 필요
23.11.13 18:17ㅣ최종 업데이트 23.11.13 18:17
▲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남소연
지난 10월 30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김포시 서울 편입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이후, 메가시티 서울은 연일 언론 지면을 달구고 있다. 처음에는 김포시 서울 편입으로 출발했던 것이 고양·구리·광명·하남 등 서울 인근 지자체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발전했다. 지역 균형발전 정책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나오자, 부산과 광주에서도 메가시티를 만들겠다는 구상까지 나왔다. 여당 대표의 한마디 말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초대형 이슈가 된 적이 과거에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몇 군데 여론조사 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민의 60% 가까이는 메가시티 서울 구상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1일 리얼미터-에너지경제신문 58.6%, 5일 알앤써치-CBS노컷뉴스 55.5%, 6일 여론조사꽃 59%). 그것이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선거용 제안'에 불과하다는 의견은 그보다 더 높아 68%나 됐다(9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전국지표조사.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이 구상을 계속해서 밀고 나갈 태세다. 이쯤 되면 메가시티 서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구상은 국가 경영을 책임진 세력이라면 결코 내놓을 수 없는 '빵점 짜리' 공약이다. 왜 그런지 이야기 해보자. 졸속의 정책 구상
▲ 조경태 국민의힘 뉴시티 프로젝트 특별위원장이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뉴시티 프로젝트 특별위원회 1차 회의에서 특위 위원들과 기념촬영 하고 있다. ⓒ 남소연
여러 사람이 비판했듯이, 이 구상은 졸속 그 자체다. 처음 제안한 김포시에 관련 보고서 한 건이 없고, 관련 표 하나도 없었다고 하는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냥 누군가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김기현 대표의 입을 통해 튀어나왔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며칠 사이에 김포시 편입이 고양·구리·하남 등 서울 인근 지자체의 편입으로, 그리고 부산과 광주에서의 메가시티 추진으로 확대되고, 국민의힘 내 TF팀의 이름이 가칭 '수도권 주민편익 개선 특별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는 '뉴시티 프로젝트 특별위원회'로 바뀐 데서 구상의 졸속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관련 기사: '수도권' 떼고 '뉴시티' 띄운 여당... '편가르기 중독' 반발한 야당, https://omn.kr/26bdw)
이를 두고 <동아일보>의 김순덕 대기자는 최근 칼럼에서 "국가 운영이나 발전에 대한 비전도, 공부도 없는 정부 여당"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평소 <동아일보>의 논조로는 상상이 되지 않는 비난인데(최근 김 기자는 윤 정부 비판 칼럼을 계속 써서 관심을 끌고 있기는 하다), 그만큼 이번 구상이 어처구니없는 내용임을 방증하는 것 아니겠는가.
'탐욕의 정치'를 부활시키려 하다니
메가시티 서울 구상에는 유권자의 탐욕을 자극해 지지를 얻으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물론 어떤 정치세력이건 선거를 앞두면 유권자들에게 사적 이익을 약속하는 정책 공약을 내거는 경우가 많다. 지역개발 공약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메가시티 서울 구상은 단지 한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정도를 훨씬 넘어서 국가 전체의 공간 배치를 뒤흔들 테니 심각한 문제다.
메가시티 구상을 이명박 정부의 뉴타운 정책과 유사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둘 다 탐욕의 정치를 활용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번 구상은 뉴타운 공약을 넘어선다. 과거 뉴타운 공약은 영향이 한 지역에 한정되었지만, 메가시티 서울 구상은 국가 전체에 여파가 미친다. 이 구상이 실현된다면 부동산 문제가 더욱 악화해, 지방소멸, 불평등, 저출산 등 지금 우리 사회를 옥죄는 문제들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과거의 군사 독재 정권이라 할지라도 감히 이런 정책을 추진하지는 못했을 터이다. 국가를 경영하겠다고 나섰다면, 최소한의 공공심과 애국심을 견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현 여권은 총선 필패를 예견해서 그런지 이런 마음을 내팽개친 듯하다. 오죽하면 김순덕 기자가 "국민을 그저 천박한 욕망 덩어리처럼 대하는 듯해 답답하고 참담하다"고 썼겠는가.
헌법정신과 윤석열 정부 국정 철학에 위배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대전시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3 지방시대 엑스포 및 지방자치·균형발전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메가시티 구상은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주지하듯이 대한민국 헌법은 '균형'을 강조한다. 제119조 2항에서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한다고 하고, 제120조에서 "국가는 (국토와 자원의) 균형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한다"고 하는가 하면, 제122조에서는 "국가는 (…)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라고 한다. 또 제123조 2항에서는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라고도 한다.
현행 헌법 경제 장(제9장)에는 총 9개 조가 있는데, 그 가운데 4개 조에 "균형있는"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 헌법이 얼마나 균형발전을 중시하는지 여실히 보여 준다. 역대 정부가 형식적이건 실질적이건 지역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한 것은 나름대로 헌법정신을 따르려고 한 것이었다. 부산과 광주에서 메가시티를 추진한다는 방안을 덧붙이긴 했으나 그것은 곁다리일 뿐, 메가시티 구상은 사실상 서울일극주의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메가시티 서울 구상은 헌법정신에 반할 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가 표방한 국정 철학에도 위배된다. 2022년 5월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서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6대 국정목표 중 하나로 잡았고, 그 목표 아래 "사는 곳의 차이가 기회와 생활의 격차로 이어지는 불평등을 멈추고, '수도권 쏠림 - 지방소멸'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를 통합해 지방시대위원회를 만든 것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을 터이다. 메가시티 서울 구상이 한참 핫이슈로 부각되는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은 '2023 지방시대 엑스포 및 지방자치·균형발전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서 '이제는 지방시대'를 선언했다. 지향점이 정반대인 두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하면서도 고민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으니, 도대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평가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김포농협에서 열린 '김포 한강2 공공주택지구' 연합주민대책위원회 창립총회 및 주민설명회에 김포 서울 편입 추진을 환영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세워져있다. ⓒ 연합뉴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메가시티 서울 구상을 놓고 "총선을 겨냥한 대국민 사기극이며, 세계적 조롱거리로 실천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졸속적이고, 국민을 오도하며, 헌법정신을 위반할뿐더러 스스로 내세운 국정 철학조차 무시하니, 나는 김 지사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빵점 짜리 구상이 과연 현실화할 수 있을지 극히 의심스럽다. 정책 시행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니, 이 구상은 내용을 차치하고라도 실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사실 많은 국민은 이 구상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뉴타운 공약을 따라갔다가,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참담한 처지에 빠졌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사람은 항상 합리적으로만 판단하지는 않으니 그것이 문제다. 한번 탐심을 자극받으면,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 길로 달려간다. 메가시티 서울 구상에 김포시 주민들과 서울 인근 지자체 주민들이 현혹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니 이 구상의 본질을 밝히면서 다시 한번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깨어있는 시민의 애국심이 필요하다
헨리 조지는 불후의 명저 <진보와 빈곤>에서 깨어있는 시민의 이해심과 애국심이 사회를 살린다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이 음성이 바로 지금 한국 국민과 경기도 주민의 마음속에 메아리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인간 행동의 근본 동기를 이기심이라고 보는 철학은 단견이다. 이러한 철학은 이 세상에 가득 찬 많은 사실들을 외면한다. 이 철학은 현재도 모르고 과거의 역사도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의 견해이다. 사람을 움직이려면 무엇에 호소하는가? 돈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애국심에 호소한다. 이기심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심에 호소한다. 이기심은 강력하며 매우 큰 결과를 낳을 수 있기는 하지만, 비유하자면 기계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는 화학적인 힘과 같이 녹이고 융합하고 감싸면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인간은 목숨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친다'고 할 때의 모든 것은 사익을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차원 높은 동기에 충실하기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13일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에서 제23차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3.11.13. ⓒ뉴시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13일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인터뷰’를 인용 보도한 MBC ‘뉴스데스크’에 과징금 4천5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마찬가지로 해당 인터뷰를 인용 보도한 KBS 1TV ‘코로나19 통합뉴스룸 KBS 뉴스 9’에 3천만원, MBC TV ‘PD수첩’에 1천500만원, JTBC ‘JTBC 뉴스룸’에 1천만원, YTN ‘뉴스가 있는 저녁’에 2천만원의 과징금을 각각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주요 방송사들이 한꺼번에 과징금을 부과받은 것은 2008년 방심위 출범 이후 처음이다.
방심위는 이날 오후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뉴스타파는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 씨와 뉴스타파 전문위원이던 신학림 씨가 나눈 대화 내용을 지난해 3월 대선 사흘 앞두고 보도했다. 여기에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2011년 대검 중수부 재직 시절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사할 때 대출 브로커로 조우형 씨를 의도적으로 봐줬다는 내용이 담겼다. 방심위는 이런 뉴스타파의 인터뷰 보도를 인용해 다시 보도한 방송사들에게 줄줄이 중징계를 내린 것이다.
방심위 결정은 ‘문제없음’, 행정지도 단계인 ‘의견제시’와 ‘권고’, 법정 제재인 ‘주의’와 ‘경고’, ‘프로그램 정정·수정·중지나 관계자 징계’, ‘과징금’ 등으로 구분된다.
방심위가 특히 MBC ‘뉴스데스크’에 내린 4천500만원의 과징금 부과 결정은 지상파 방송에 내릴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징계라고 볼 수 있다. 법정 제재부터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시 감점 사유로 적용되고, 특히 과징금 부과의 경우 10점이 깎인다.
방심위는 이 밖에 2011년 당시 대검찰청 중수2과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 조우형 씨에게 커피를 타 주며 부산저축은행 사건 관련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JTBC ‘JTBC 뉴스룸’에 대해선 2천만원의 과징금 부과를 의결했다.
한편 안형준 MBC 대표이사는 이날 방심위가 있는 한국방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는 소위 ‘공산당 기관지’가 아니다. 뉴스타파 인용 보도는 ‘중대 범죄 행위나 정치공작’이 아니었다”며 방심위가 과징금 부과를 의결할 경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MBC는 추가 확인과 반론권 보장이라는 인용 보도의 기본 원칙을 최대한 지키면서 대선 후보 검증 차원에서 보도했다고 확신한다”며 “그래도 방심위가 문제로 삼겠다면 수사와 재판 결과를 지켜본 후에 제재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과징금이 끝내 부과된다면 절차적, 내용적 정당성이 결여된 불공정 심의의 결과라고 판단하고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며 “MBC는 법적 조치를 포함한 모든 방식의 대응을 통해 법의 이름으로, 정의와 상식의 이름으로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고 심판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경고했다.
안형준 MBC 사장이 13일 서울 목동 한국방송협회에서 '뉴스타파 김만배 녹취'를 인용 보도한 MBC 뉴스데스크와 PD수첩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과징금 금액 결정을 앞두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3.11.13. ⓒ뉴시스 “ 최지현 기자 ” 응원하기
대기는 오랜만에 습기를 벗고 뒤늦게 가을의 청량함을 선사하지만, 기온은 벌써 겨울의 문을 열고 있다. 여름이 드리운 긴 그림자 뒤에 곧바로 겨울이 따라붙는다. 가을은 이렇게 단풍조차 완성하지 않은 채 속절없이 지나가려 한다. 이 또한 기후급변 시대에 우리가 감내해야 할 상실의 광경일 것이다.
그러니 다시, 기후위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이들은 이제 지겹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예 기후변화가 '위기'임을 부정하는 판국이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심대한 시험이 될 이 위기를 너무 단편적이고 피상적으로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 가을이 그 잔향마저 거두기 전에 우리는 다시, 무엇보다 기후위기를 말해야 한다.
나는 특히 1.5도 이상 상승 시점을 얼마 안 남겨둔(지금 많은 기상학자들이 그렇게 예측하고 있다) 이 시점에 기후변화가 앞으로 인간 사회에 어떤 위험한 결과들을 초래할지 따져보고 싶다. 우리에게 익숙한 위기 양상은 북극과 남극의 빙상이 모두 녹고 해안에 면한 전 세계 대도시들에 바닷물이 밀려드는 광경이겠지만, 실은 이런 장면들보다 더 확정적인 위기 상황이 있다. 너무나 선명하게 예정된 미래임에도 대다수가 의외로 이를 잘 알거나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중력 덕분에 지구 표면에 발 딛고 살아가면서도 그 작용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세계의 기본 토대로 너무나 당연시해 온 것들, 그래서 그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사실 자체를 감지하지 못한 채 살아온 것들의 붕괴다. 지금 그러한 문명의 요소들 가운데 최소한 두 가지가 심란한 운명을 예고당한 상태다.
기후위기는 곧 농업-식량위기
그 중 첫 번째는 농업이다. 신석기혁명부터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주로 농업에 의존해 식량을 생산해 왔다. 농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주된 작물이었던 불과 몇 종의 곡물, 즉 밀, 쌀, 옥수수 등이 지금도 영양 공급의 막대한 부분을 차지한다. 현대에는 축산업 역시 곡물 사료에 의존하기에 실은 육류 역시 '변형된 곡물'이라 할 수 있다.
80억 인구가 이렇게 농업에 기대 살아간다. 그러나 현대 한국인을 비롯해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 대다수 시민은 이런 진실을 그리 실감하지 못한다. 인구 대부분이 대도시에서 생활하며, 식량을 생산하는 현장은 이들의 시야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심지어 대한민국 같은 나라에서는 그 현장이 바다 건너로까지 격리돼 있다. 자본주의 성장의 토대가 된 농업 생산성 혁명이 이룬 위업이고, 여기에 자유무역이라는 제도까지 힘을 보탠 결과다.
덕분에 현재 우리 문명은 마치 농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치부하면서도 하루하루 별 문제없이 돌아간다. 반도체나 자동차 수출 실적을 걱정하고 아파트 가격 등락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눈길이 온통 주식시장을 향할지언정 올해 작황에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농업에 의한 식량 생산이 여전히 문명의 기반을 이루지만, 이는 지나치게 높이 쌓아 올린 현대 문명의 가장 밑바닥에 꽁꽁 숨어 있는 격이다. 심지어는 '보릿고개'를 기억하는 세대가 아직 생존해 있는 대한민국조차 그러하다.
한데 이런 우리 시대든, 만 년 전 신석기혁명 시대든, 농업에는 절대적인 전제조건이 있다. 그것은 기후의 항상성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기후의 예측 가능성이다. 물론 기후는 변동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껏 한 지역의 기후는, 비록 변덕을 부릴지라도 그 변덕조차 일정한 패턴을 보여 왔다. 사람이 내다볼 수 있는 변동의 폭이 있었고, 그 범위 안에서 조상들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농업을 할지 아니면 목축업을 할지, 농사를 짓는다면 무엇을 주곡으로 삼을지, 그리고 이에 따라 종자나 농법, 생활양식은 어떻게 발전시킬지 등등을 말이다.
기후위기는 바로 이 전제조건을 뒤흔든다. 더는 기후의 예측 가능성을 말할 수 없게 된다. 해가 갈수록 기후는 더욱더 큰 폭으로 요동친다. 모든 지역의 모든 패턴이 무너진다. 수천 년, 길게는 지난 만 년 동안 당연시하던 것들이 더는 당연하지 않게 된다. 작년에는 쉬지 않고 이어지는 가을 태풍에 진저리를 쳤지만, 올해는 태풍이 아니라 마치 여름 같은 온도와 습도가 이어진다. 같은 대륙에 속함에도 중국 동북부는 가을철 이상 한파에 꽁꽁 얼어붙고, 한반도는 여름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농업이, 식량 생산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느닷없이 닥치는 가뭄, 홍수, 병충해 등으로 곡물 수확량이 들쭉날쭉하거나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주곡 생산이 흔들릴수록 농업의 다른 부분이나 축산업도 압박을 받고, 가장 취약한 계층부터 식량 공급난에 처한다. 200여 년 전 프랑스혁명을 다룬 역사책에서나 보던, 빵 값 탓에 불붙은 폭동과 혁명이 21세기의 현실로 돌아온다. 적도에 가까운 지역들에서는 벌써 2010년대부터 이런 상황을 체감했고, 이것이 2011년 '아랍의 봄'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시차는 있지만, 온대 지역도 예외일 수 없다. 특히 한국처럼 쌀 외에 거의 모든 농산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는 앞으로 심각한 긴장과 충격을 겪게 될 것이다. 단지 농업 비중이 줄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농업 역량이 소멸하고 세대 전승이 끊긴 탓에 한국 사회는 다른 어떤 공업국보다 더 커다란 타격을 받을 것이다. 혹자는 온대 농업에서 아열대 농업으로 전환하면 되지 않겠냐고 속 편한 이야기를 하지만, <Hothouse Earth>(국역본 제목은 <기후변화, 그게 좀 심각합니다>, 이민희 옮김, 양철북, 2023)의 저자 빌 맥과이어가 들려주는 답변은 냉정하다.
"지구에서 일부 지역이 특정 작물을 재배하는 데 적합하지 않게 되면 다른 지역이 적합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는 명백한 착각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의 기온이 앞으로 계속 오르고 서리가 줄어들면 언뜻 포도를 재배하는 데 더 적합한 환경이 만들어질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극심한 홍수, 폭염, 가뭄, 신종 해충과 싸워야 할 것입니다. 농업에 관한 한 지구 가열화 게임에서 승자는 없습니다. 모두 패배합니다." (<기후변화, 그게 좀 심각합니다> 제4장 '온실지구'에서)
이런 위험에 처하고 나서야 우리는 현대 문명이 농업이라는 오래 된 토대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불안한 건축물임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건축물이 손 쓸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난 다음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기후위기가 예고하는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다.
▲ 2022년 9월 19일 나이지리아 하데자에서 폭우가 내린 후 사람들이 홍수 속을 걷고 있다. 이 홍수의 원인은 기후 변화로 지목됐다. ⓒAP=연합뉴스
또 다른 불안한 건축물 - 국민국가들로 구획된 세계
그래도 기후위기가 곧 농업-식량위기라는 점에 관해서는 그나마 경고의 목소리가 들린다(<식량위기 대한민국>, 남재작 지음, 웨일북, 2022 ; <6번째 대멸종 시그널, 식량 전쟁> 남재철 지음, 21세기북스, 2023). 하지만 지금껏 우리가 당연시해 온 또 다른 문명의 요소는 이 정도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국민국가들로 구획된 지구 정치 질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 제국주의가 퇴각하고 난 뒤에 옛 제국들의 식민지였던 광대한 지역에 신흥 국민국가들이 들어섰다. 물론 이것은 말처럼 순조로운 과정은 아니었다. 무려 1970년대까지도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물러나길 거부했고, 본국에서 혁명의 일격을 당한 뒤에야 결국 철수했다. 아무튼 이로써 국민국가들이 유럽과 아메리카뿐만 아니라 모든 대륙을 가득 채우는 세상, 즉 국민국가들이 지구 위를 촘촘히 구획하는 세상이 등장했다.
1940년대 말에 분단국가라는 반쪽짜리 국민국가로나마 이 대열에 합류한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이런 세상은 공기 중의 산소나 바닷물 속 염분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대다수 인류가 이제는 같은 심정일 것이다.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토록 기이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누가 봐도 국가와 국가의 충돌은 아니다. 그렇다고 옛 제국과 식민지의 대립 구도에 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다. 국가(이스라엘)와 국가 없는 이들(팔레스타인)이 맞붙고 있다. 이것은 국민국가들로 구획된 세상을 당연시하는 상식 안에는 설 곳이 없는 너무도 예외적인 현실이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대다수 세계인의 상식을 불안에 빠뜨리는 기분 나쁜 얼룩과도 같다. 서안과 가자 지구의 참상은 국민국가들로 구획된 지구 질서가 굳건한 현실이기보다는 오히려 허구에 가까움을 폭로한다. 그럼에도 당장은 다들 이 불쾌한 얼룩에서 눈을 돌릴 수 있다. 팔레스타인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하지만 단 하나뿐인(분명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예외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자신이 거하는 국민국가들의 질서 속에서 일상의 평온함을 만끽할 수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기후위기는 또 다른 근본적 충격을 던진다. <기후위기, 그게 좀 심각합니다>에서 맥과이어는 농업-식량위기와 더불어 기후급변이 초래할 게 확실한 사태를 하나 더 지적한다. 그것은 대규모 기후 난민·이민이다. 바닷물이 도시로 밀려들고 빈번한 가뭄, 홍수, 산불로 땅이 황폐해지면, 다른 도리가 없다. 본래 살던 곳을 떠나 새 터전을 찾아 헤매야 한다. 이런 이주는 한 나라 안에서 일어날 수도 있지만, 기후급변의 거대한 규모로 봤을 때 기존 국경을 넘어서는 대이주가 더욱 빈번히 전개될 것이다.
맥과이어는 2060년까지 12억 명이 난민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을 인용한다(위의 책, 제8장 '기후 전쟁'에서). 지나치게 비관적인 과장된 전망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인류는 2010년대 초부터 벌써 그 초기 양상을 경험하고 있다. 맥과이어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기후 붕괴 탓에 고향을 떠난 인구는 2억 명으로 추산된다. 이 시기에 유럽과 미국을 난민·이민 문제로 들썩이게 만든 아랍인이나 중미인의 이주 동기는 겉으로만 보면 '아랍의 봄' 이후의 정정 불안과 기근, 일자리 부족이다. 그러나 '아랍의 봄'을 부추긴 식량 가격 폭등이든 중미의 농업 붕괴든 모두 기후급변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기후 난민·이민은 이미 시작됐다.
10억 단위를 넘보는 규모로 사람들이 이동한다면, 이는 그간 안정적으로만 여겨지던 국민국가들의 질서를 뒤흔들 것이다. 국경을 둘러싼 긴장이 높아지고, 각국의 시민 자격을 놓고 논란이 계속될 것이다. 또한 그럴수록 각국(핵무기를 보유한 강대국들을 포함하는)이 무력을 통해 난국을 타개하려 할 가능성도 늘어날 것이다. 오래 전 고대 제국들은 다름 아닌 변방 민족들의 대이주 탓에 무너지고 말았다. 국민국가들로 구획된 현대 세계는 기후위기가 강요하는 대이주에 직면해 이 운명을 반복할지 모른다.
달리 말하면, 이는 대다수 인류와 상관없는 극단적 예외라 치부돼 온 팔레스타인 문제가 지구 전체에 '일반화'되는 사태라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팔레스타인 문제란 지독하게 배타적인 국민국가와 국가 없는 민중 사이의 대치다. 만약 인류의 극적인 탈탄소화가 불발로 끝난다면, 기후급변은 지구상의 모든 기존 국민국가들을 지극히 '배타적인' 구명선 국가로 전락시킬 것이며, 국가 없는 유랑민을 양산할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이 화해할 길 없는 갈등에 빠져드는 세상을 열 것이다.
새로운 정치적 발명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
팔레스타인 문제가 기존의 '국가'나 '시민' 관념만으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든 것처럼, 기후 난민·이민의 충격 역시 국민국가들로 구획된 지구 정치 질서에만 갇혀서는 답을 내기 어렵다. 지구본을 내려다보며 국경, 정부, 권력만을 염두에 둘 때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면, 문제에 접근하는 방향을 정반대로 바꿔야 한다. 아래로부터, 즉 위험에 놓인 시민 각자의 시각에서 다시 바라봐야 한다.
국민국가의 테두리가 먼저가 아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권리와 의무가 먼저다. 지금 문제의 핵심은 국민국가를 유일한 의지처로 삼아서는 더는 이 권리와 의무를 현실로 살려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국민국가를 포함하면서도 그에 한정되지 않는 중층적 질서를 통해 시민의 권리와 의무가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소한 도시, 국민국가, 국가 간 연합, 세계(지구) 등의 층위들이 공존하며 교차하는 정치 질서를 통해 모든 인간이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수행하게 만들어야 한다.
애초에 그랬어야 할 일이다. 기후 난민·이민이 국경을 넘어선 문제이기 이전에 탈탄소화 노력 자체가 지구 차원에서 추진되었어야 할 과제다. 그런데도 우리는 재생가능에너지, 신세대 핵발전, 스마트 그리드, 지구 공학 등 온갖 기술의 '발명'을 촉구하면서도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정치 관념과 질서의 '발명'에는 무지하고 무감했다. 마치 공학 세계와는 달리 정치 세계에서는 발명의 시대가 20세기와 함께 영영 끝나버린 것처럼 말이다.
과거 혁명들의 시절처럼 다시 정치적 발명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 이번 과제는 국민국가라는 단일 평면이 아니라 다층의 복합 질서를 통해 인간=시민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사실 기후위기가 아니더라도, 구식의 국민국가 완성이라는 관념으로는 더 이상 평화와 통일을 진전시킬 수 없게 된 한반도에서 이는 이미 절박한 현안이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이 전 지구적 난제의 풀이에 앞장서서 뛰어들어야 한다.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11월 14일 유엔사 참여국들의 국방장관 회담이 서울에서 열린다. 1950년 7월 유엔사 창설 이후 처음으로 개최되는 회의다. 유엔사는 1978년 한미연합사 창설 이후 정전협정 관리 임무만을 맡아왔다. 유엔사가 정전협정 관리 명분으로 남북 관계의 진전을 가로막아 왔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왜 유엔사 참여국들의 국방장관 회담이 올해 11월에 열리는 걸까. 유엔사의 기능을 회복하는 조치의 일환이라는 것은 짐작이 간다. 비록 한국에서 열리는 회담이지만 이것을 주도하는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유엔사를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미국은 2014년부터 유엔사 ‘재활성화’라는 말을 빈번하게 사용해 왔다. ‘재활성화’(revitalization)는 꺼져가는 생명체에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유엔사 ‘재활성화’는 유엔사에 정전협정 관리 임무에서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려는 미국의 기획이다. 유엔사 국방장관 회담도 이 기획의 일환이다.
유엔사 ‘재활성화’는 유엔사를 다국적군으로 재조직하는 것
미국은 유엔사를 다국적군으로 재조직하고 있다. 미군을 제외한 모든 유엔사 소속 군대는 1970년대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름은 유엔사이지만 사실 미군인 셈이다.
2014년 스캐퍼로티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미 국방부 장관에게 보낸 유엔사 재활성화라는 제목의 서신에서 “유엔사는 대한민국 방어를 위해 다국적 작전을 수행함으로써 지속해서 정전을 유지하는 동시에 ▶ 적대행위를 적극적으로 억제하고 ▶ 확전을 방지하며 ▶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주한미군사령관, 유엔군사령관, 한미연합사령관은 동일 인물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한다. 유엔군사령관은 유엔이 임명하지 않고 미국 대통령이 임명한다. 또한 유엔사 부사령관은 미 합참의장이 임명한다. 유엔사는 유엔의 군대가 아니라 미국의 군대이다.
본 기사에서는 문맥에 따라 주한미군사령관, 유엔군사령관으로 표기하지만 사실 동일 인물이다. 또한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연합사령관도 겸직한다.
주한미군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유엔사 회원국 5개국이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에 참여했다. 2016년엔 9개 회원국 참가로 그 규모가 늘어났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우리는 유엔군사령부 소속 국가들의 일상적인 작전 참여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밝힌 바 있다.
2018년엔 유엔사 역사상 최초로 미국 국적이 아닌 제3국 국적의 유엔사 부사령관이 취임했다. 캐나다 군 장성 출신이었다. 2019년엔 호주 국적의 부사령관이, 2021년엔 영국 국적의 부사령관이 취임했다.
따라서 유엔사 ‘재활성화’는 유엔사를 다국적군으로 만들려는 미국의 시도이다.
유엔사 ‘재활성화’는 유엔사를 전투사령부로 전환하는 것
한국전쟁 시기 유엔사는 전투사령부의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나 한미연합사령부 창설 이후 전투사령부의 기능은 한미연합사령부에 넘겨지고, 유엔사는 정전협정 관리 임무와 한미연합사에 전력을 제공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은 유엔사를 전투사령부화하려는 움직임을 노골화하고 있다.
2023년 5월 16일 러캐머라 유엔군사령관은 “유엔사는 위기관리 시 대체할 수 없는 기구”라고 말했다. 위기관리는 한반도 전쟁 위기관리를 의미한다. 유엔사를 대체할 수 없는 기구라고 표현한 것은 유엔사가 유사시 전투조직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7월 25일 해리슨 유엔사 부사령관의 “유엔사 재활성화로 기획 권한 부여해야 한다”라는 발언에서 다시 확인된다. 기획(planning) 권한은 전쟁 기획 권한이다. 기획 권한은 전쟁 기획 권한을 의미하며, 전투사령부가 갖는 권한이다. 이 기획 권한은 1978년 이후 한미연합사령부가 갖고 있었다. 따라서 해리슨의 발언은 한미연합사령부가 갖고 있던 기획 권한을 유엔사에 부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2023년 8월 10일 유엔사 직위자 초청 간담회를 갖고 “유엔사는 대한민국을 방어하는 강력한 힘”이라고 말했다. 1978년 이후 ‘대한민국 방어’는 한미연합사가 담당하고 있는데 말이다.
▲ 2023년 8월 1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유엔사 직위자 초청 간담회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라캐머라 유엔군사령관이 악수하고 있다.
물론 미국은 유엔사가 전투사령부화되는 것을 부인한다. 2020년 11월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엔사를 독립 전투사령부로 전환할 수 있다는 일부의 관측에 대해 “유엔사를 어떤 작전사령부로 탈바꿈하려는 비밀계획 따위는 없다”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아래 사실들은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발언이 ‘거짓말’임을 보여 준다.
2006년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버웰 벨은 “유엔군사령부를 항구적인 다국적군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고, 2007년엔 “유엔사가 전시조직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2018년 9월에도 당시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하여 “유엔사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관한 국제적인 약속의 중심”이라며 유엔사의 역할을 강조했다. 2018년 주한미군이 발간한 문서 ‘전략 다이제스트’ 역시 유엔사에 관해 “세계 각국의 군대와 작전을 유엔사와 연계 및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고 적었다.
따라서 유엔사 ‘재활성화’는 유엔사를 전투사령부로 만들려는 미국의 기획이다.
유엔사 ‘재활성화’되면 전작권 환수해도 무용지물
노무현 정부 시절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가 본궤도에 올랐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유엔사의 전시조직 구성 발언은 그 시점에 나왔다. 이는 유엔사의 ‘재활성화’가 전작권 환수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전작권 전환과 관련하여 한미 양국은 전작권 환수 이후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미래연합사령부’(이 명칭은 바뀔 수 있다)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미래연합사령부’는 한국의 4성 장군이 사령관을 맡고, 미국의 4성 장군이 부사령관을 맡는 구조이다. 이렇게 전작권은 한국에 환수되는 것이다. ‘미래연합사령부’가 만들어지면 미군이 한국군의 작전통제를 받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나 미국은 애당초 이런 조치를 무력화시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 시기 전작권 환수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자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었던 버웰 벨은 “연합사가 해체되면 조직을 정비해 정전에서 전시로 전환될 때 유엔사 지휘 관계에서 하나의 통합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다소 어렵게 들릴 수 있는데, 이 발언은 ‘미래연합사’ 구조에서 한국군이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더라도 ‘미래연합사’가 유엔사로 통합되어 유엔사가 통합된 지휘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지금까지 다른 나라 사령관의 지휘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발언의 의미는 쉽게 다가온다. 미국은 한국 4성 장군의 작전통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전작권 반환 후에도 한반도 유사시 유엔군(즉 미군)이 작전 통제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그것이 바로 유엔군 ‘재활성화’인 것이다. 즉 유엔군을 다국적군으로 개편하여 새로운 전투사령부로 전환하면, 안보리 결의안 84에 따라 한반도 유사시 유엔군은 한국 방어를 책임지게 된다.
여기서 관건은 한국군을 유엔사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한국군이 유엔군 편제하에 놓이게 되면 한국 4성 장군이 사령관으로 존재하는 미래의 한미연합지휘체계는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한국군은 미래의 한미연합지휘체계보다 더 상급인 유엔군사령관 휘하에 편입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초대 국가안보실장을 역임했던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8월 한국이 유엔사에 회원국으로 가입해야 한다는 ‘솔직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유엔사가 우리의 강력한 전략 자산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미국은 이미 2018년에 한국군을 유엔사에 편입
주한미군, 유엔사, 한미연합사가 공동으로 매년 발간하는 『전략 다이제스트(Strategic Digest)』라는 책자가 있다. 이 책자 2019년 판 56쪽에 “유엔사는 호주와 벨기에, 캐나다, 콜롬비아, 덴마크,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필리핀, 대한민국,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터키, 영국, 미국 등 18개국으로 구성되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유엔사에 한국이 편입된 사실을 밝힌 것이다. 2018년 판은 “호스트 국가(한국)와 17개국으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하여 한국과 유엔사 회원국을 구분하였다. 따라서 미국은 2018년 한국을 유엔사에 편입시켰다.
▲ 전략 다이제스트 2019년 판에 유엔사 참여국으로 적시되어 있다.
2019년 전략 다이제스트 59쪽은 한국군이 유엔사에 편입된 사실을 ‘친절하게’ 그림으로까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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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국군이 유엔사에 편입된 현실을 감안하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 전작권을 환수하더라도 유엔사 ‘재활성화’가 완료되면 전작권 환수는 무용지물이 된다.
미국은 일본마저 유엔사에 편입시키려 한다
미 합참은 2018년 6월 ‘유엔사 관련 약정 미 전략지침’을 개정하여 ‘전력제공국’(한국전쟁 참전국을 일컫는 공식 용어)의 정의를 “유엔안보리 결의에 근거해 유엔사에 군사적, 비군사적 기여를 하였거나 할 국가”로 확대했다. ‘기여할 국가’까지 전략제공국 정의에 포함함으로써 일본이 유엔사 전력제공국이 될 수 있는 길 즉 일본이 유엔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같은 해 1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유엔사 참여국 외무장관 회담이 열리기도 했다. 문제는 이 회의에 일본이 참여한 것. 일본은 유엔사 참여국이 아니다. 그런데도 유엔사 외무장관 회담에 일본이 버젓이 참여했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에서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참여했지만, 일본의 회의 참여에 대해 어떤 언급도 없었다.
2019년 8월 한미 연합 지휘소 훈련에서 유엔사 주도로 일본의 개입 상황을 상정한 훈련이 진행됐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일었다. 당시 훈련에서 미국은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의 지위를 겸한 채 실시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유엔사가 북이 일본에 미사일을 쏘고 일본 자위대가 개입하는 상황을 훈련 내용에 포함한 것이다.
2023년 7월 유엔사 부사령관은 유엔사에 일본이 참여하면 대북 억제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발언한다. 사견임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일본의 유엔사에서의 역할 확대는) 우리가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2023년 8.15 경축사에서 이례적으로 유엔사 후방기지를 언급했다. “일본이 유엔군사령부에 제공하는 7곳 후방기지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이라는 것이다.
▲ 주일미군 기지 7곳이 유엔사 후방기지로 지정되어 있다.
2023년 7월 2일 국가안보실에 발간하는 월간 뉴스레터에도 비슷한 주장이 실렸다.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인 박영준 국방대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이 “후방기지 7곳을 관리하는 일본을 유엔사 전략제공국을 포함한 안보협력회의가 개최될 때 일본을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옵서버 자격은 정식 회원으로 가는 중간 다리이다. 결국 옵서버 자격 참가는 정식 참가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미국이 앞에서 끌고, 윤석열 정부가 뒤에서 밀면서 일본의 유엔사 참여는 기정사실로 되고 있다.
한미일 주도 아시아판 나토, 유엔사 ‘재활성화’의 궁극적 목표
현재 유엔사 참여국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모든 대륙에 걸쳐 있다. 유엔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유엔사는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이상 유럽), 터키(중동), 캐나다, 미국, 콜롬비아(이상 아메리카), 호주, 필리핀, 태국(이상 아시아태평양), 남아프리카공화국(아프리카)로 구성되어 있다. 유엔사가 ‘재활성화’된다면 전 대륙의 국가를 아우르는 ‘글로벌 전투사령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프놈펜과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일은 사실상 동맹 수준으로 군사협력 관계를 강화했다. 프놈펜 회담과 캠프 데이비드 회담에서 합의한 군사협력은 북·중·러 3국을 대상으로 한다.
만약 유엔사에 한국과 일본이 편입한다면, 유엔사는 한미일이 주도하는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미일이 주도하는 ‘재활성화’된 유엔사는 아시아판 나토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유엔사 ‘재활성화’를 추진하는 미국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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