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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왜 시진핑에 ‘사드’ 언급을 회피했을까?

[분석] 백악관의 미중 정상회담 발표문에 ‘사드’는 없었다
 
김원식 | 2016-09-06 12:55:1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오바마는 왜 시진핑에 ‘사드’ 언급을 회피했을까?
[분석] 백악관의 미중 정상회담 발표문에 ‘사드’는 없었다


지난 3일(현지 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여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4시간 이상 마라톤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이 정상회담에 관해 한국 언론들은 ‘미·중 정상, 사드·남중국해·인권 놓고 정면충돌’ 등을 제목으로 기사를 쏟아냈다. 그리고 해당 기사에서는 마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에 관해서도 양 정상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짓말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시진핑 주석이 오바마 면전에서 “중국은 미국이 사드 시스템을 한국에 배치하는 데 반대한다”며 “미국 측에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실질적으로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고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직격탄을 날린 것은 사실이다. 왜 사실일까? 중국 외교부가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바마 대통령은 이에 관해 무엇이라고 했을까? 정답은 ‘답변 회피’ 등 무반응이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미국 백악관이 이에 관해서는 하나도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제 외교관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에서 주먹만 날아가지 않을 뿐, 얼굴을 붉히고 서로 싸우는 것은 다반사다. 가정을 하자면, 시 주석이 비밀리에 확보한 사드 레이더 규격표를 꺼내 놓고 “이래도 당신(오바마)이 중국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하고 화를 냈을 수도 있다. 물론 이에 관해 오바마 대통령은 또 다른 자료를 내놓으며, “그쪽(중국)도 남중국해를 그냥 먹으려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닌가”하고 설전을 벌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다. 회담 과정이 소용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외교 관계이기에 공식 발표를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양국이 합의했으면, 이를 공동 성명이나 공동 기자회견으로 발표하고 또 한 쪽이 어떤 주장을 했으면, 이를 발표해야 외교 관계에서는 그 효력이 발생한다. 자, 그렇다면 이날 미중 정상회담에 관해 미 백악관은 무엇이라고 발표했을까?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3일 미·중 정상회담에 열렸다. 회담을 앞두고 두 정상이 악수하는 모습.ⓒ신화/뉴시스

우선, 중국의 인권문제에 관해 오바마는 “중국이 모든 국민의 종교의 자유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면서 중국의 종교 및 인권 탄압 문제도 정면으로 거론한 사실은 맞다. 미 백악관이 그렇게 발표했기 때문이다. 또 남중국해 문제에 있어서도 중국 측에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른 의무 준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중국이 인정하지 않고 있는 국제중재 판결 수용을 강하게 촉구한 사실도 맞다. 백악관은 “양 지도자는 최근 필리핀과 중국 사이의 중재재판소 결정에 관해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했다”며 오바마가 ‘국제법’과 ‘항해의 자유’ 등을 내세우며 시 주석을 압박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그렇다면, 오바마의 ‘사드’ 언급은 어디에 있을까? 이미 말했지만 ‘없다.’그런데 한국 언론들은 용케도(?) 찾아낸다. 백악관이 남중국해 문제를 언급하면서 “대통령은 또한, 미국이 이 지역의 동맹국 안보를 흔들림 없이 준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The President also underscored the United States' unwavering commitment to the security of its treaty allies,)”라고 한 부분이 사드를 언급했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들이 “ ‘동맹국 안보’란 표현에는 북핵 위협으로 인해 사드 배치 논의가 진행 중인 한국의 안보 수호에 대한 확고한 의지도 함께 담겼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자의적 분석을 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오바마, 필리핀 남중국해 문제는 구체적으로 중국 압박… 사드는 꿀 먹은 벙어리

“떡 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고 있는데…”라는 표현까지는 하지 않겠다. 필리핀이 남중국해 문제로 중국과 다투고 있지만, 필리핀 내부에서 국민들의 여론이 심각하게 분열되어 엄청난 문제가 되고 있다는 뉴스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오바마는 필리핀을 내세우며 남중국해 문제에 관해서는 중국을 구체적으로 압박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비한다며, ‘한미 동맹’ 결정이라는 이유로 우리나라에 사드를 도입하겠다고 한미 당국이 발표했다. 하지만 한국은 지금 국회의장도 이견을 제시할 정도로 여론 분열이 심각하다.

누가 나서야 할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일관되게 사드가 “동북아의 전략적 균형을 파괴해 긴장을 초래하며, 중국의 안보 이익을 해친다”고 오바마 면전에서 반박했다. 당연히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사드는 통제 안 되는 북한의 위협 때문에 배치하는 것이다. 중국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고 동북아 안정을 바란다면, 북한을 더 이상 핵개발이나 도발을 못 하게 제어하라” 정도는 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해야 그나마 ‘한미 동맹’의 모양새가 서지 않았을까? 하지만 백악관 발표에는 아무 내용도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사적으로는 무엇이라고 했던, 백악관은 외교적으로든 공식적으로든 사드에 관해서는 발표하지 않았다.

▲ 미 백악관이 발표한 미중 정상회담 보도자료 중 관련 부분ⓒ백악관 보도자료 캡처

미국이, 미 백악관이 왜 사드 문제에 관해 미중 정상회담 발표문에서 발을 뺐는지는 여러 분석이 가능하다. 우리는 사드 문제가 중요하지만,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 입장에서 보면, 사드는 공식 발표문에 언급할 정도의 이슈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오바마가 강력하게 사드 배치를 주장하면 그야말로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정책을 확대하려는 의중을 내보이게 돼 언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상상의 나래를 더 편다면, 한국 내부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에 관해서는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르니, 공식 발표문에 언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사드에 관해 백악관이 한 마디 발표하지 않아도 한국 언론들은 문제를 제기하기는커녕, 문구를 확대하여 해석하는 실력(?)을 발휘한다. 시쳇말로 미국을 안 믿으면 누구를 믿겠냐는 식이다. 물론 오바마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확고한 한미 동맹을 언급하며 사드 필요성을 주장할 것이다. 사드가 한국 국내용인가? 동맹이 무엇인가? 동맹이 공격을 받을 때는 나서서 함께 그것을 막아주겠다는 것이 동맹이 아닌가? 미국 무기인 사드 도입으로 한국은 국론이 분열되며 러시아, 특히 중국으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대놓고 오바마 대통령 면전에서 “사드는 안 된다”고 압박했다. 사드 찬성론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에 대한 공격이 아닌가? 그런데, 오바마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거기서는 한마디도 못 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어깨만 두드릴 심산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에 “북핵 위협이 없어지면, 사드를 철회하겠다”고 이른바 ‘조건부 철회론’이라는 철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혹시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전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푸틴: 조건부요? 미국이 동유럽 미사일방어(MD)도 이란 위협을 핑계로 시작했죠. 그런데 미국은 이란과 핵 합의를 하고 난 다음에도 MD를 더 추진해요. ‘조건부’라는 말을 믿으라고요?

시진핑: 방어용이요? 미국이 한반도에 자꾸 핵항모를 갖다 밀어서 우리야말로 자위적으로 미사일 설치하니, 이제 그거 무력화하려고 레이더 설치한다는데, 우린 손발 다 묶이고 가만히 있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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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법조계, 이 가난한 변호사에게 배워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9/07 08:38
  • 수정일
    2016/09/07 08:3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取중眞담] 법원·검찰의 셀프개혁? '윗선' 감시하고 낮은 곳 살펴야

16.09.07 07:16l최종 업데이트 16.09.07 07:1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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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태 대법원장이 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부장판사 뇌물구속' 사건과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한 뒤 인사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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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양승태 대법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현직 검사장의 비리 혐의 구속에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대국민 사과를 한 지 두 달도 안 된 시점이다. 한국 사법체계가 위기에 처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대국민 사과 직후 전국법원장회의가 내놓은 법조비리 대책은 ▲ 예방활동 강화 ▲ 징계 자료 확보 내실화 ▲ 연임심사 강화 ▲ 비위법관 연금 감액, 징계부가금 부과 ▲윤리행동기준 마련 ▲법조윤리신고센터 신설 등이다. 

지난달 31일 검찰이 내놓은 개혁 방안은 ▲ 법조비리단속 전담반 설치 ▲법조비리신고센터 설치 ▲법조비리 정보수집 전담팀 설치 ▲ 대검 암행감찰반 활용 ▲ 선임서 미제출 변론 전면 금지 ▲ 일선 검찰청 변론 관리대장 운영 ▲ 검찰 간부 비위 전담 특별감찰단 신설 ▲ 주식 관련 정보 취급 근무자의 주식거래 금지 ▲ 승진 대상 검찰 간부의 재산형성과정 심층 심사 등이다. 

 

법원이고 검찰이고 '단속 강화' '신고' '감찰' '신설' 등을 반복하며 수뇌부 중심의 개혁을 내세웠다. '중앙집중식 감찰 체제'를 구축해 수뇌부가 판·검사들을 잘 단속하면 '제2의 홍만표 전관 변호사' '제2의 진경준 검사장' '제2의 김수천 부장판사'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대책이 잘 통하지 않으리란 건 검찰이 미리 보여줬다. '스폰서 검사' 비위 의혹이 검찰 내부에서 '뭉개기'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젠 검찰이 아무리 강한 자체 개혁안을 내놔도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상황이 됐다. 

대책 세우면서 한편으론 의혹 뭉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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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등학교 동창 사업가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고 사건무마 청탁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된 김아무개 부장검사와 사업가 김모씨의 대화 내용으로 알려진 화면 캡처본. 이들의 대화 내용에는 김 부장검사가 김씨에게 금품 등을 요구하거나 여성·친구 등의 '제3자'가 포함된 만남을 가진 정황이 담겼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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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준 검사장 사건이 불거지고 그의 해명이 속속 거짓으로 판명 나고 있던 지난 5월, 대검찰청은 서울서부지검으로부터 김 아무개 부장검사의 비위 의혹에 대한 첩보 보고를 받았다. 횡령 및 사기 혐의 수사를 받던 김아무개씨와 김 부장검사 사이에 수상한 돈거래가 있다는 내용이다. 대검은 서울서부지검에 진상규명 지시를 내렸을 뿐, 감찰에 착수하지 않았다. 

감찰도 소환조사도 없던 3개월여 동안 김 부장검사는 자유롭게 활동했다. 김씨의 사건을 맡은 수사검사와 식사를 하고, 검사실로 찾아가기도 했고, 김씨에게 압수수색 대비 요령도 알려주는 등 사건 무마 시도를 넘어 수사를 방해하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은 각종 비리를 끊어내기 위해 검사들에 대한 감시를 더욱 철저히 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보고된 비리 의혹도 신속히 처리하지 않았던 셈이다. 검찰 수뇌부의 개혁 의지가 '전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같은 일이 가능한 이유는 '검사들의 생명줄'이 전적으로 '윗선'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국이 엄중해도, 잘못이 커도, '윗선'만 잘 무마하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진경준 전 검사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게임회사 넥슨의 주식 100억여 원어치를 차명도 아니고 본인 명의로 보유한 진경준 검사가 "장모에게 빌린 돈으로 샀다"는 해명으로 인사검증을 통과했다. 금융정보분석원에서 근무했고 금융·조세 수사를 전담한 경력이 있는 검사가 갑자기 100억 원대의 비상장주식을 갖게 됐는데,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의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건 실수로 치부하기 힘들다. 오히려 검증 책임자 한 사람에 집중된 정보와 권한 때문에 이 같은 비상식적인 인사검증이 가능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 3억 빚 갚은 1만여 '민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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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영 변호사. 박 변호사는 살인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을 위해 변호사가 돈도 받지 않고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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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각 분야 수장들이 대국민 사과로 머리를 조아리고 있을 때, 법조계 반대편에선 스타가 탄생했다. 변호사 업계에 '재심 전문'이라는 전문 분야를 새롭게 만들어낸 '박준영 변호사 – 박상규 기자' 콤비다. 이들은 '무기수 김신혜 친부 살해 사건' 재심 결정,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과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 재심 확정을 이끌어냈다. 

정작 본인은 '유명한 변호사로 뜨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살인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을 위해 변호사가 돈도 받지 않고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여기에 뜻을 같이한 기자는 사회적 약자들이 경찰과 검찰, 법원에 의해 살인범으로 둔갑하는 과정을 심층 보도했다. 3~6년간 무료 변론으로 모자라 의뢰인들의 차비까지 챙겨준 박 변호사는 3억여 원의 빚을 졌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스토리펀딩'을 통해 이 같은 사정을 접한 시민들은 그야말로 열화와 같이 응답했다. '박준영 변호사의 빚을 갚아주자'는 박 기자의 호소로 시작된 1억 원짜리 모금은 사흘 만에 목표액을 채우더니 20일도 채 안 돼 박준형 변호사의 부채 금액과 맞먹는 금액인 3억 원을 돌파했다. 약자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헌신한 변호사의 빚을 시민들이 대신 갚아준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금액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지갑을 연 사람들이 무려 1만 명이 넘었다는 사회적인 현상, 이들이 돈을 아까워하기는커녕 "작은 도움밖에 드릴 수 없어 죄송하다"며 안타까워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모금 액수는 올라가고 응원의 메시지는 이어지고 있다. 이참에 박 변호사를 아예 평생 약자들을 위해 변론하는 '시민 변호사'로 만들어 버릴 기세다.

더는 '윗선' 중심 셀프개혁은 작동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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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진행한 '스토리펀딩' 프로젝트 제목이다. 공익 변론을 하다가 빚더미에 앉은 박 변호사의 사정을 접한 시민들은 그야말로 열화와 같이 응답했다. 펀딩 시작 사흘 만에 목표액 1억 원을 채웠다. 20일도 채 안 돼 박준형 변호사의 부채 금액과 맞먹는 금액인 3억 원을 돌파했다. 약자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헌신한 변호사의 빚을 시민들이 대신 갚아준 것이다.
ⓒ 스토리펀딩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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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가장 약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며 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시민들의 뜨거운 모금 참여와 응원이라는 또 하나의 감동을 만들어낸 재심 전문 변호사. 개혁하겠다고 해놓고 뭉개는 검찰, 이 명확한 대비에서 시민들이 법조계에 바라는 열망이 드러난다. 제발 좀 '윗선'이 아니라 이 사회의 약자, '낮은 곳'을 바라봐 달라는 것이다. 

여기에 법조계 개혁의 방향이 있다. '윗선'이 감시하고 통제하는 '셀프개혁'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지지도 얻을 수 없다. 일선 검사나 판사들이 아니라 오히려 법원·검찰 수뇌부에 대한 감시 강화가 필요하다. 검사나 판사나 '윗선'을 바라보지 않고 '낮은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개혁, 판검사들이 법률과 양심에 의해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때마침 대한변호사협회가 전국 지검장과 고검장을 소속 평검사가 투표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야당과 시민단체에서는 검사장 직선제 도입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방법원장 주민직선제 주장도 나온다. '셀프개혁'이 분명한 한계를 보여준 이상 '선진국에서나 통할 얘기'로 치부할 상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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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를 부정했던 한국 대통령에게 임시정부 활동을 말한 중국 주석’

시진핑 ‘돌려차기’에 당한 박근혜,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
 
임시정부를 부정했던 한국 대통령에게 임시정부 활동을 말한 중국 주석’
 
임병도 | 2016-09-06 09:37:4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5일 오전(현지시간) 항저우 서호 국빈관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은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건국절 발언을 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사드 배치로 인한 미묘한 시기에 한 중 정상이 만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사드 배치가 북한 핵 미사일 위협에 대한 자위권적 조치’라고 했지만, 시진핑 주석은 ‘사드 배치가 지역안정을 해치고 분쟁을 격화시킬 것’이라며 사드 배치를 반대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만났을 때 시 주석은 모두 발언을 통해 193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항저우에서 3년 정도 활동했다고 언급하며, 한국의 유명한 지도자인 김구 선생님의 아들인 김신 장군이 1996년 항저우 인근 저장성 하이옌을 방문했을 때 ‘음수사원 한중우의’라는 글자를 남겼다고 말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거론하고,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 장군의 말을 인용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의 발언이 무엇을 뜻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임시정부를 부정했던 한국 대통령에게 임시정부 활동을 말한 중국 주석’

박근혜광복절경축사건국절-min

 

 

시진핑 주석이 임시정부가 항저우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을 말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난감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과 3주 전에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건국절을 공식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박 대통령은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건국 68주년이라는 말은 1919년 설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말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관보1호

 

▲대한민국 관보 1호에는 ‘대한민국 30년 9월 1일’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대한민국 관보 제1호에는 ‘대한민국 30년 9월 1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 그 당시가 건국이라면 ‘대한민국 30년’이라는 말을 집어넣을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시진핑 주석은 ‘너는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건국절을 주장하지만, 우리 중국은 임시정부가 일본과 싸웠다는 사실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제의 앞잡이 만주국의 장교였던 박정희’

1932년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항저우로 옮긴 이유는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공원 의거 이후입니다. 항저우에서도 임시정부는 두 차례나 거처를 옮기며 일제의 눈을 피해 다녔어야 했습니다. (관련기사: 100년 된 여관방, 이곳이 임시정부였다고?)

시진핑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항저우에 있었다는 말을 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당시 중국과 임시정부가 함께 항일운동을 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시 주석의 말은 ‘사드 배치가 결국 미국의 패권주의를 통한 외세 침략이 아니냐, 일본의 군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사실을 기억하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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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박정희의 만주국 군관 혈서 지원을 보도한 2009년 세계일보 기사 ⓒ세계일보 캡처

 

여기서 또다시 우리가 생각해볼 문제는 ‘만주국 장교’로 복무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의 과거를 시진핑이 몰랐겠느냐는 점입니다.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과 아버지 박정희의 경력을 그는 알았을 것입니다.

혹자는 일본군이 아닌 만주국에 복무했기 때문에 친일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만주사변이 벌어지고 난 뒤 국제연맹은 조사단을 파견합니다. 당시 ‘릿톤 조사단’은 만주국 정부에 대해 아래와 같은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공사의 회견과 편지 및 진술에 의해 제공된 증거를 신중하게 검토한 결과, ‘만주국 정부’는 현지 중국인에게는 일본 측의 앞잡이로 간주되어, 중국 측의 일반인에게는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중국인에게 만주국은 일본의 앞잡이에 불과합니다. 만주국의 장교였고,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다닌 박정희와 비교하면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은 항일투쟁을 했던 인물입니다.

‘음수사원을 달리 해석했던 김구의 아들과 박정희’

시진핑 주석은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 장군이 1996년 항저우 인근을 방문했을 때 ‘음수사원 한중우의’라는 글자를 남겼다고 말했습니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은 ‘물을 마실 때 수원(水源)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을 뜻합니다.

시 주석이 김신 장군의 ‘음수사원 한중우의’를 말한 이유는 ‘중국과 한국이 함께 일본에 대항해 싸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과거처럼 함께 사드 배치를 반대하자’는 의미도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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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장학회에 박정희가 준 ‘음수사원’이라는 휘호 ⓒ정수장학회 청오회 홈페이지 캡처

 

여기 또 다른 ‘음수사원’이 있습니다. 박정희가 정수장학회에 보내준 휘호입니다.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 장군이 쓴 ‘음수사원’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잊지 말자는 뜻이라면, 박정희의 ‘음수사원’는 ‘너희를 공부시켜준 나를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말들이 시진핑 주석의 진짜 본심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직접적인 어법을 사용하지 않는 외교 대화 방식으로 본다면 시 주석이 사드 배치를 완곡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뜻은 충분히 담겨 있습니다. 오히려 타국의 역사까지 기억하며 외교를 위해 인용하는 시진핑 중국 주석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얘기하며 ‘돌려차기’를 하는 시진핑 주석의 어법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그저 ‘사드 배치의 당위성’만 강조했습니다.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인가 봅니다.

한중정상회담1-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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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싼 집이라 진술해라” 스폰서 부장검사, 조작·은폐 시도

 
등록 :2016-09-06 05:01수정 :2016-09-06 07:56
 
스폰서 부장검사-동창 SNS 내용 보니
여성 접대부 사진 주고받으며
비용 100만~400만원씩 송금
동창 “끝나면 용돈 100만~200만원”
수사대상 오르자 조작·은폐 시도
“술값 50만~60만원으로 해달라...
감찰대상 되면 나도 너도 죽는다”
오피스텔 계약 알아봐달라 부탁에
증여받은 화성땅 매각지원 요청도
‘스폰서 의혹’ 부장검사가 관련 내용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고교 동창 사업가에게 술접대 내용을 축소하도록 조언하는 등 자신의 비위 의혹을 조작·은폐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5일 <한겨레>가 확보한 김아무개 부장검사와 이날 긴급체포된 김아무개씨 사이에 오고 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 내용에는, 이 둘의 관계를 단순한 동창 관계로 볼 수 없는 내밀한 내용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김 부장검사는 김씨를 주기적으로 만나 고급 술집에 갔던 것으로 보인다. 돈은 사업가 김씨가 냈다. 지난 2월1일 오후 김 부장검사는 사업가 김씨에게 “오늘 저녁 ○○○ 갈 거야? 오늘 아님 난 설 전에 목요일 좋아~^^”라는 문자를 보냈고, 김씨는 “난 8시30분까지 간다. 와라 친구야”라고 답장했다. 다음날 김 부장검사는 김씨에게 “친구 어제 잘 들어갔지”라고 문자했다. 3월3일에도 “이따 저녁에 다시 뭉치자. 8시까지 ○○○ 갈게. 여의도 증권거래소 60주년 행사 잠시 참석하고 바로 갈 거야”(김 부장검사), “나는 9시까지 갈게”(김씨)라는 내용의 문자를 주고받았다. 이들은 이외에도 1월21일과 2월26일 등 올해에만 3월초까지 최소 네 차례 이상 만났다. 날짜를 지정하기 힘든 술 약속도 적지 않았다. 김씨는 <한겨레>에 “한 달에 최소 두세 번은 김 부장검사를 만나 술을 샀다”며 “술자리가 끝날 때면 대개 100만~200만원씩 용돈을 줬다”고 말했다.

 

술집에 가기 전 김씨가 동석할 여성 접대부 사진을 문자메시지로 보내면 김 부장검사가 선택하기도 했다. 이들이 만난 ○○○ 술집은 서울 강남의 고급 가라오케로 양주 1병에 안주와 접대비 등을 합치면 100만원 정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세 명이 모이면 200만~300만원 정도 나온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실제 김씨의 계좌 내역을 보면, ○○○ 술집에 한 번에 100만~400만원씩 송금한 내역이 나온다. 해당 술집은 현재 폐업한 상태다. 김 부장검사는 <한겨레>와 만나 “오랜 친구끼리 ○○○ 술집에 두세 차례 간 게 전부다. 여성 접대부 사진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김 부장검사는 둘 사이의 관계가 문제가 될 것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3월말 이후 김씨가 사기 및 횡령 혐의로 형사고소를 당하고, 자신과 김씨의 관계가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자, 김씨에게 거짓 진술을 요구했다. 김 부장검사는 김씨에게 “친구 다시 한번. ㅁㅁㅁ 물어보면 싱글몰트바이고 여자애들 한둘 로테이션해서 술값도 50만~60만원이라고 해달라”는 에스엔에스 문자를 보냈다. 그는 “내가 감찰 대상이 되면 언론에 나고 나도 죽고 바로 세상에서 제일 원칙대로 너도 수사받고 죽어”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특히 7월에는 압수수색에 대비해 사무실 메모 등을 점검해 조치하라고 하거나, “억울하게 나 당하고 너도 몹쓸 지경 당하지 않도록” 휴대폰도 한번 더 바꾸라고도 조언한다. 자신의 위법 의혹을 은폐하려 피의자 진술과 증거를 조작한 사실상의 ‘수사 방해’ 행위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 부장검사가 김씨에게 송금을 부탁하는 문자메시지도 등장한다. 지난 3월7일 “내가 다른 데서 빌려서 먼저 줄 테니 내일 오전 내가 말하는 계좌로 보내주시게. △△△ 이름으로”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다음날 계좌번호를 보냈다. 김씨가 “천만원 맞지. 처리했다. 근데 실수로 회사 이름으로 보냈네”라고 답하자, 김 부장검사는 “괜찮아. 잠시 변통해서 계좌주 전혀 모른다”고 답장했다. 김 부장검사는 “나중에 개업하면 이자 포함 곧바로 갚겠다”고 답하는 등 사실상 돈을 갚을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김 부장검사는 2월3일에도 술집 여종업원 계좌로 500만원을 보낼 것을 요구했다.

 

김 부장검사는 지난해 말 김씨에게 서울 시내 오피스텔을 알아보고 계약해 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김씨가 서울 삼성동과 선릉역 근처 오피스텔을 추천하자, 김 부장검사는 “대략 시세를 뽑아달라”고 요구했고, 이어 “친구 아무래도 좀 떨어진 곳이 나을 듯. 광진구 ○○오피스텔 1000만원에 65만원짜리로 하겠다”고 말했다.

 

김 부장검사는 이외에도 김씨에게 큰아버지로부터 증여받은 경기도 화성 땅의 매각 작업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는 “친구 이번 진경준 검사장 주식파동 보면서, 나도 농지 문제는 백부로부터 증여받은 거지만 우선적으로 정리해야 할 거 같아. 내역 보내니 한번 검토해서 매각 방안 좀 도와주라”고 말했다. 김씨는 <한겨레>에 “나에게 땅을 사달라는 의미였다. 실제 매입을 검토했지만 내 회사가 어려워지고 형사고소를 당하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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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반성’ 정말 달라질 수 있을까?

송주필 개인의 탈법적 왜곡보도에 대한 사과가 전부인 조선일보
 
김용택 | 2016-09-06 08:37:5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최근 송희영 전 주필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해 조선일보 독자 여러분께 충격과 실망을 드린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대우조선해양의 남상태 전 사장과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이 2011년 9월 대우조선으로부터 ‘이탈리아-그리스 호화 여행’을 제공받고 그 대가로 우호적인 사설과 칼럼을 써준 혐의를 폭로하자 송주필이 사퇴하고 난 후 방상훈 사장이 내놓은 사과문의 일부다. 방 사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그 동안의 ‘잘못된’ 관행을 바꿔야 하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관행이라는 명분으로 이어졌던 취재 방식, 취재원과의 만남 등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 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인가? 자칭 일등신문이라는 조선일보는 대부분의 신문사들처럼 ‘진실, 공정, 정의’와 비슷한 ‘정의옹호, 문화건설, 산업발전, 불편부당’이라는 사시(社是)를 내걸고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고당 조만식선생의 8개월 동안의 사장직을 맡으면서 내건 이러한 사시(社是)를 상표처럼 내걸고 있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이런 사시(社是)를 제대로 지키고 있을까? 조선일보가 정의옹호니 불편부당이라면 소가 웃을 일이다. 창간이후 친일제, 친이승만 친박정희, 친전두환… 으로 이어지는 조선일보의 역사는 단 한번도 정의나 불편부당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오죽하면 일베조차 ‘끝없는 기무서이 감싸기, 송희영 주필 등의 각종 언론권력 남용 횡포, 끊임없는 우병우 의혹제기 보도로 국정을 뒤흔든 기레기 언론사의 막장보도 행태 애독자와 전 국민을 배반 한 조선일보는 폐간이 답이다’라고 개탄했을까?

“춘풍이 태탕하고 만화가 방창한 이 시절에 다시 한 번 천장가절(당시 왜왕 히로히토의 생일)을 맞이함은 억조신서가 경축에 불감할 바이다. 성상 폐하께옵서는 육체가 유강하옵시다고 배승하옵는 바 실로 성황성공(황공을 더욱 높힌 말) 동경동하(경하를 더욱 높힌 말)할 바이다. 일년일도(일년에 한 번 있는) 이 반가운 날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홍원(넓고 큼)한 은과 광대한 인에 새로운 감격과 경행이 깊어짐을 깨달을 수가 있다.”

일제시대 일본천왕에 이런 용비어천가를 부른 조선일보는 가증스럽게도 ‘민족지’ 운운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애국금차회(1937),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1938), 임전대책협외희(1941), 조선임전보국단(1941)... 등 친일 단체에 가담해 야차같은 짓을 짓을 한다. 박정희가 10월유신을 발표하자 “앞으로의 보다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얻기 위하여 진정 알맞은 조치임을 기쁘게 생각한다.…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치… 비상 사태는 민주제도의 향상과 발전을 위하여 하나의 탈각이요, 시련이요, 진보의 표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1972년 10월 18일 자 조선일보 사설을 보면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영구집권을 꿈꾸며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우기며 시작한 유신도 박정희시대를 유지시켜 준 일등 공신은 바로 조선일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등신문 조선일보는 광주학살로 세울 정권의 살인자 전두환을 찬양하는 용비어천가도 가관이다. ‘인간 전두환’이라는 큰제목,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와 행동’이라는 소제목을 보면 정말 웃음도 안 나온다. ‘이해관계 얽매이지 않고 남에게 주기 좋아하는 성격’, ‘운동이면 못하는 것 없고 생도 시절엔 축구부 주장’, ‘사에 앞서 공, 나보다 국가 앞에서, 자신에게 엄격하고 책임 회피 안 해…’ ‘위대하신 우리의 영도자 전두환 장군…’1980년 8월 23일 조선일보 3면에 실린 사설 제목이다.

전두환이 광주시민을 학살하는 현장을 “군의 이러한 입장과 결의가 새삼 천명되었다는 것은 전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받아 마땅하다. (1979년 12월 20일 자 사설)거나 학살에 저항하는 시민을 ‘총을 든 난동자’로… 국민 일부를 보호하기 위해 취한 이번 행동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음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1980년 5월 28일자 조선일보 사설)는 주장은 광주학살의 공범자다.

조선일보가 저지른 매국적인 작태와 반민족적 반민중적 역사는 일일이 다 기록하기 조차 어렵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조선일보는 이러한 후안무치한 과거에 대해 단 한 번의 사과를 한 일이 없다. 그러면서 당당하게 ‘민족지’니 ‘일등신문’운운하고 있는 모습은 후안무치의 극치다. 이런 조선일보가 송희영 주필에 민감하게 사과문을 발표한 것은 그들이 잘못을 시인하고 정체성까지 바꾸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두려워 하는 이유는 조선일보 독자들이 구독거부와 함께 언론개혁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요구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방상훈사장의 사과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조선일보 평기자들이 노조를 통해 요구한 사항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사과와 더불어 반성하고 달라져야 한다’는 선언적인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방사장의 사과문 어디에도 지금까지 조선일보가 저지른 반민족적, 친유신적, 친 재벌적인 보도에는 일언반구의 반성도 없다. 오직 송주필 개인의 탈법적 왜곡보도에 대한 사과가 전부다. 조선일보가 진정으로 거듭나고 싶다면 그들이 저지른 과거의 추악한 잘못에 대해 국민 앞에 석고대죄부터 해야 한다. 사과는 그다음에 할 일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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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중국 G20정상회담에 노동미사일 발사로 대미결전 의지 천명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6/09/06 08:51
  • 수정일
    2016/09/06 08:5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북, 중국 G20정상회담에 노동미사일 발사로 대미결전 의지 천명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9/06 [00:2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6년 9월 5일 중국 G20정상회담에 맞추어 북이 3발의 탄도미사일을 전격적으로 발사하였다.     © 자주시보

 

▲ 북의 탄도미사일 발사 소식을 전하며 자료화면으로 소개한 지대지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장면, 일명 스캐럽이라고 하는 전술탄도미사일이다.  북의 미사일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북도 이 미사일을 수없이 많이 보유하고 있다. 노동미사일은 이 미사일보다 훨씬 사거리가 길다.    © 자주시보

 

북이 5일 중국 항저우 G20정상회담이 진행되고 있던 상황에서 동해 상으로 탄도미사일 3발을 불시에 발사했다.

 

5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오늘 낮 12시 14분께 황해북도 황주 일대에서 동해 상으로 노동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면서 "미사일 비행거리는 1천km 내외"라고 밝혔다.

 

합참은 이어 "미사일은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 내 해상으로 사전 항행경보 발령없이 발사됐다"면서 "추가 정보에 대해서는 한미가 정밀 분석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북의 미사일은 일본 방공식별구역을 400㎞ 이상 침범한 것으로 파악됐다.

 

북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지난달 24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한 지 12일만으로, 노동미사일 발사는 지난달 3일 이후 한 달여 만이다.

 

올해 북이 참 많은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돈 많은 미국, 중국, 러시아도 이렇게 자주, 이렇게 많은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특히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그 성능이 무서울 정도로 비약적 발전을 이루고 있어 더욱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에도 일본 방공식별구역을 가장 많이 뚫고 들어갔다. 일본은 그 뛰어난 정찰위성과 사드보다 더 높은 고도의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는 SM3미사일과 관련 레이더를 구축하고 있는데 번번이 북의 미사일 발사를 제 때 포착하거나 요격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은 항행금지구역 선포도 없이 북의 서해에서 자국의 영토를 동서로 가로질러 이런 미사일을 마음 놓고 쏘고 있다.

그만큼 자국의 영토를 비행하다가 폭발할 염려가 없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며 미사일 비행 궤도와 목표지점에 대한 파악을 완벽하게 할 수 있고 또 미사일을 자유자제로 조정통제할 수 있다는 과학적 믿음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여객기, 어선이나 상선에도 피해서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미사일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궤도와 궤도 주변, 목표와 목표지점 주변을 손금보듯 다 장악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엄청난 레이더와 영상장비를 갖춘 정찰능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미국과 일본 우리 관계당국은 북의 미사일 사거리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지점이다.

또 어떤 각으로 얼마만큼 높이 올라갔느냐가 사거리보다 더 중요하다. 같은 1,000KM도 아주 높이 고각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면 사거리는 그에 비례하여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를 이번 시험발사를 통해 확증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이번 미사일은 중거리가 아니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화성 13호와 화성14호는 이미 실전배치된 미사일이라는 것이 북의 주장이고 그 실전용 미사일을 열병식에서 여러차례 공개한 바 있다.

나아가 북은 이런 미사일을 액체연료로켓에서 고체연료로켓으로 전환해가고 있는데 고체연료로켓이 성공한다면 미국에게는 더욱 더 심각한 위협으로 된다. 이는 연료주입시간도 필요가 없어 어제 어디서든 불의의 타격을 가할 수 있고 그만큼 발사징후를 노출하지 않아 미국의 사전 요격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미사일이 있다면 구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이제 마구 공개할 수도 있다고 본다.

 

북이 유례없이 미사일 시험을 다른 나라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 전격적으로 진행하는 것도 더욱 위력적인 새로운 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한 차원일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 상반기 이미 신형 대출력고체로켓과 신형대출력액체로켓 엔진 연소시험을 성공한 자리에서 신형 수소탄과 그 운반수단에 대한 연구과 개발을 더욱 다그쳐 나갈 데 대해 지시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미사일 시험 발사는 G20정상회담에 북의 의지를 전하려는 의도도 없지는 않겠지만 미국과 주변국들의 제재와 압박이 가해질수록 더 강력한 핵억제력을 보여줄 것이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지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분석이 아닐까 생각된다.

 

북이 이번에 전략잠수함에서 신형대출력고체로켓을 이용한 북극성 잠수함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에 완전 성공하자 또 다시 유엔안보리에서는 의장성명형태의 대북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도 함께 했다.

의장성명은 특별한 강제이행사안을 다루지 않고 그저 경고의 입장표명정도에서 그치는 낮은 차원의 결의안이어서 북이 그리 강력하게 반발할 것으로 보지는 않았는데 전격적인 미사일 3발 발사를 보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정도의 제재와 압박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불같은 의지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번 의장성명에서 '향후 더 강력한 대북제재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경고를 담았던 점이 북을 심각하게 자극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극성 완전 성공 현지지도 현장에서 이번 성공을 트집잡아 제재를 가해온다면 단계단으로 더 강력한 힘을 보여줄 것이라고 이미 경고한 바 있다.

 

▲ 2016년 8월 24일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북극성 시험 발사 성공을 보며 기뻐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그는 이 자리에서 이번 성공을 트집잡아 미국과 추종국들이 제재를 가해올 경우 단계단으로 더 강력한 힘을 보여주라는 지시도 내렸다. 그리고 만 12일만에 다시 3발의 위력적인 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을 전격 단행하였다.  ©자주시보

 

사실 북이 미사일을 전격적으로 발사하기 직전 끝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사드배치가 새로운 분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엄중 경고를 하면서도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수호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다"면서 "중국은 (대북제재)안보리 결의를 완전하고 엄격하게 이행할 것"이라고 재확인했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그전에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아예 사드 문제는 논의에서 배제한 채 양국의 경제협력 사업에 대해서 많은 논의와 구두 합의를 이루었다.

 

따라서 향우 한반도 정세가 더욱 더 요동칠 우려가 높다는 생각이다. 이런 북에 대해 미국과 주변국에세 당연히 제재와 압박 이야기가 나올 것인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것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반격할 의지가 명백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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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국선생조형물건립추진위원회' 이용길 위원장

'제2의 박정희' 꿈꾼, 학도호국단장의 변신
[역사 독립군 임종국 4화] '임종국선생조형물건립추진위원회' 이용길 위원장

16.09.06 07:25 | 글:조호진쪽지보내기|편집:최유진쪽지보내기

▲ 천안고등학교 학도호국단장 이용길.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 이용길

"박정희 장군님처럼 나라를 구하는 사람이 되겠다!"

반공 청소년 이용길은 박정희 장군을 흠모했다. 그에게 대통령 박정희는 나라를 구한 영웅이자 진정한 군인이었다. 제2의 박정희를 꿈꾼 천안고등학교 3학년 이용길은 학교에선 학도호국단 대대장이었고 천안 지역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학도호국단에선 연대장이었다. 

1년에 한 번 대대적으로 거행된 가두 검열 및 사열에선 제병 지휘관이 되어 각반과 완장을 차고 천안 시내를 행진했다. 당시 학생회는 형식적으로 존재했다. 그러므로 학도호국단 단장인 그는 최고의 학생 권력자였고 영웅이었다. 사고뭉치 학생들도 그 앞에서는 꼼짝하지 못했다.

선생들은 그는 장군감이라고 추켜세웠다. 고교 3년 내내 군화를 신고 다닐 정도로 군인 정신으로 무장한 그는 육사 생도가 되기 위해 태권도를 배우고 산악 구보를 하며 몸을 단련했다. 대학 진학을 앞둔 3학년 때는 육군사관학교를 방문해 천안고 출신 육사 선배들을 만났는데 선배들은 그에게 "너는 누가 봐도 육사 감이다. 내년에 화랑대에서 만나자"고 격려했다. 

그는 왜 육사 시험에서 떨어졌을까?
 
▲ 천안고등학교 재학 시절의 이용길. 맨 앞줄 가운데 학생. ⓒ 이용길

선생과 선배는 물론 자신 또한 육사 시험에 합격할 것이라고 100% 자신하고 시험을 봤는데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0시의 횃불>(김종신 지음) 등 박정희 관련 책을 읽고 혁명 공약을 외우며 장군의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좌절되자 "이용길을 불합격시키면 누가 대한민국을 지키란 말이냐"고 반발했다. 육사의 꿈이 꺾이자 대학 진학을 포기하려고 하는 등 그는 한동안 방황했다. 

육사는 왜 이용길을 불합격 처리했을까. 원인은 연좌제였다. 그의 부친은 청년시절에 좌익 활동을 했다. 일제 앞잡이였던 순사가 처벌은커녕 경찰 간부가 되는 등 친일파들이 득세하면서 부정부패를 일삼던 해방 전후에 독립운동가와 민족정신이 남달랐던 청년들은 이승만 정권에 반기를 들었고 이승만 정권은 반대 세력들을 빨갱이로 몰면서 인간 사냥을 했다. 

좌익 경력을 가진 사람들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한 것이 연좌제다. 군사독재정권은 친족은 물론이고 외족의 8촌까지 좌익 경력이 있으면 연좌제를 적용해 군인 등 공무원이 될 수 없도록 철저히 관리했다. 박정희 장군처럼 소장이 된 다음에 전역해서 구국의 길을 걷겠노라고 구체적인 인생 계획을 세웠던 반공 청소년 이용길의 꿈은 부친에게 붙은 빨간 딱지로 인해 좌절되고 말았다.  

친일파 실체를 알려준 <친일문학론>
 
▲ 민족문제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는 <친일문학론> ⓒ 이아림

"알고 당하는 것보다 모르고 당하는 게 죄악이라고 가르치며 진리와 정의를 말한 선생들이 거짓 역사를 가르쳤다. 거짓을 가르친 선생은 스승이 아니다. 따라서 나에게 스승은 없다."

1975년 대학생이 된 이용길은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을 읽으면서 가치관과 역사관이 뒤집히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겪었다. 최남선과 모윤숙 등의 시를 외우고 낭송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그들이 친일 문인이었다니, 박정희 장군을 구국의 영웅으로 흠모하며 제2의 박정희를 꿈꾸었는데 그가 일본군 출신 독재자라니….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된 그에게 거짓 역사를 가르친 선생은 더 이상 스승이 아니었다. 관제 교육에 의해 왜곡됐던 의식이 <친일문학론>에 의해 산산이 깨지면서 박정희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황군(皇軍) 출신 박정희는 구국의 영웅이 아니라 민족의 반역자였고 군사쿠데타로 민주주의를 짓밟은 독재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를 학생운동에 입문시킨 <친일문학론>은 유신독재와 싸우던 민주화 인사와 운동권 학생들에게 급속도로 퍼졌다. 이 책을 통해 박정희와 그 세력들이 단순한 정치군인이 아니라 일제의 통치체제를 계승한 친일파라는 것을 깨달기 시작했다. 박정희를 비롯해 문화예술계와 언론계, 학계, 종교계 등에서 호가호위하는 인사들이 친일 반민족 세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겨레의 통일과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역사에 눈을 뜬 이용길은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로 군대에 끌려갔다. 아버지에게 붙여진 빨간 딱지가 아들에게도 붙여진 것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에 참여했다. 민주노총 대전충남본부장과 민주노동당 충남도당 위원장, 진보신당 부대표와 노동당 대표를 지냈다. 이와 함께 천안민주단체협의회 초대의장과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추진위원 등을 지냈다.

진실을 알려준 임종국 선생이 진정한 스승
 
▲ 민족문제연구소를 방문한 이용길 위원장. ⓒ 이아림

"임종국 선생과 아버지가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두 분이 아니었으면 역사에 무지한 인생으로 부끄럽게 살았을 것이다."

'임종국선생조형물건립추진위원회' 이용길(62) 위원장을 지난 7월과 8월 두 차례 인터뷰했다. 인생을 바꿔준 임종국 선생과의 인연 그리고, 조형물 건립 추진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임종국 선생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대학 1학년 때인 1975년 <친일문학론>을 읽으면서 시작됐다. 나에게 <친일문학론>은 그냥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인생을 바꾸게 한 책이다. 이광수와 모윤숙 등 교과서에 실린 소설가와 시인 등의 작품을 읽으면서 위대한 문학인으로 존경했는데 <친일문학론>을 읽으면서 청소년기에 형성됐던 역사관과 가치관이 뒤집혔다. 역사의 진실을 알면서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그건 단순한 충격이 아니라 해일이 덮친 것 같은 큰 충격이었다. <친일문학론>을 읽은 이후 근현대사 등에 대해 공부했다. 일본군 출신 박정희와 5.16 군사쿠데타 그리고 군사독재자의 실상을 깨달으면서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친일문학론>은 반공 청소년이었던 나를 운동권 학생으로 변화시킨 스승 같은 책이다. 

선생을 직접 만난 것은 1982년 천안 요산재에서였다. <친일문학론>을 들고 가서 '이 책에서 받은 충격 때문에 운동권이 됐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께서 '그렇게 충격이었냐!'면서 웃으셨다. 그러면서 청년에게 닥칠 고초를 걱정하셨다. 거짓과 불의가 판을 치는 시대에 진실과 정의를 깨닫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본인은 고초를 당하면서도 아들 같은 청년이 당할 고초에 대해서는 매우 안타까워하셨다." 

"친일연구에 목숨을 내놓은 독립군"
 
▲ 노동운동과 역사운동에 참여한 이용길 위원장. ⓒ 이아림

- 임종국 선생의 첫 인상은 어땠나.
"처음 뵀을 때는 낡은 러닝셔츠에 짧은 머리를 하고 계셨다. 친일파와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당당하고 매서웠지만 그 외의 다른 이야기를 할 때는 소탈하고 순진하셨다. 소년처럼 웃던 선생의 순진한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 임종국 선생을 뵈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선생을 뵈면서 '마지막 독립군이 여기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재정권의 폭압이 서슬 퍼렇던 그 시대에 친일파를 조사 연구해 역사에 기록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싸운 독립군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박정희는 반대 세력을 법과 절차 없이 잡아가두고, 고문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 

박정희는 대통령을 넘어 신적인 존재였다. 박정희 우상화는 북한 정권의 우상화에 버금갈 정도였다. 그런 박정희의 친일행적을 거론한다는 것은 신에 대한 도전일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혼자의 힘으로 그 일을 해냈다. 투철한 사명감과 죽음을 불사한 용기가 없으면 도전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
"<친일문학론>을 처음 읽고 믿을 수가 없었다고 말씀 드렸더니 '책에 실린 인물 중에 누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어보셔서 춘원 이광수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서재에 가득 차 있던, 영어단어장에 기록한 친일인명카드 중에서 이광수의 기록을 꺼내 보여주셨다. 이와 함께 조선총독부 관보와 매일신보 등의 자료를 보여주셨는데 거기엔 빨간 볼펜으로 줄을 친 이광수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 선생을 몇 차례나 만났나.
"(천안)요산재와 구성동에 사실 때 서너 차례 찾아간 것으로 기억한다. 자주 찾아 뵀어야 했는데 당시 나의 관심사는 노동운동이어서 그 이후로는 찾아뵙지 못하고 돌아가신 지 9주기인 1998년 천안민주단체협의회 회원들과 함께 임종국 첫 추모제를 진행하면서 제주가 되어 찾아뵀다. 지역 향토사학자를 비롯해 기관장들은 추모제를 반대했다. 왜 옛날 문제를 꺼내느냐면서 친일 문제가 부각되는 것을 꺼렸다. 이를 보면서 지역의 친일청산 또한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제화 된 조형물 아닌 친일파 청산을 되새기려고 하는 것
 
▲ 민주노총 시절의 이용길 위원장. 손짓하는 사람. ⓒ 이용길

- 임종국 조형물을 추진 중이다.
"임종국 선생 조형물은 2005년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회장 장병화)가 만들어지면서 논의됐지만 여러 사정으로 이제야 추진하게 됐다.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것은 박제화 된 조형물이 아니다. 해방 이후 분단과 군사독재 그리고 독점재벌의 폐해 등 우리 민족문제의 악의 근원인 친일파 청산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되새기려고 하는 것이다. 친일파 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다. 

북한은 핵으로 한국을 위협하고 한국은 사드 배치로 대치하려 하고 있다. 민족의 공멸을 불러올 도박을 서슴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한국 사회의 빈부 차이는 극심해지고 있다. 민족 모순과 계급 모순이 중첩된 한국 사회의 근본적 과제로 친일청산을 제시한 분이 임종국 선생이다. 선생의 조형물에는 친일청산이란 역사적 과제와 민족의 과제가 함께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 지난 7월 9일 '임종국선생조형물건립추진위원회' 발족식에서 인사하고 있는 이용길 위원장. ⓒ 조호진

- 조형물을 어느 곳에 건립하나.
"선생이 집필하셨던 요산재와 가까운 '천안삼거리공원'과 천안시외버스터미널 사거리에 위치한 '신부공원' 등을 후보 장소로 정하고 천안시와 협의하려고 한다. 천안삼거리공원은 요산재와 가깝고 천안삼거리라는 지명도가 있긴 한데 외진 곳이다. 신부공원은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장소로 임 선생의 조형물이 배치되면 선생이 소녀상을 보호한다는 의미를 더할 수 있다."

- 역사 독립군 곧, 조형물 추진위원 모집은 잘 되고 있나.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그리고 시민단체 등에게 참여를 요청한 가운데 조형물추진위의 주축인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 천안지회(지회장 전훈진) 회원들이 주말이면 가두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추진위원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고등학생들의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시도하는 국정교과서가 채택될 경우 학생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국정교과서는 친일은 미화하고 독립운동을 폄훼하는 등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병균 감염을 막기 위해 예방주사를 맞듯이 청소년들이 추진위원이 된다면 친일청산과 역사정의의 항체가 형성될 것이다. 현장에서 체험하는 역사교육은 그 어떤 역사교육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조형물 설치 이후의 사업 계획은.  
"1998년 첫 추모제를 하면서 선생이 10년간 머물면서 집필하던 요산재 건물과 선생이 밤농사를 짓던 1만평의 임야를 구입해 민족교육수련원으로 만드는 논의를 한 적이 있다. 이를 장기적인 사업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요산재 인근에 요산재 안내 표지를 세우고 천안삼거리공원에 선생의 어록비를 설치하는 문제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친일청산의 함성이 제막식에서도 울려 퍼졌으면
 
▲ 임종국 조형물은 평화의 소녀상 작가 김서경-김은성 부부가 제작한다. 이 그림은 디자인 중 하나다. ⓒ 김은성

- 임종국 조형물 추진에 참여하는 누리꾼들의 반응이 뜨겁다.
"선생이 유업으로 남긴 '역사는 꾸며서도 과장해서도 안 되며 진실만을 밝혀서 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씀이 역사 독립군들에 의해 부활하는 것을 보고 있다. 친일파의 후예들이 득세하는 세상에 대한 울분으로 참여하는 역사 독립군들의 뜨거운 행렬이 폭염보다 뜨겁다.

선생의 27주기인 11월 12일 즈음해서 건립하는 조형물 제막식에 역사 독립군들을 초대하려고 한다. 천안은 기미년 삼일만세운동의 대표적인 지역이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세력의 준동이 심각하다. 역사 독립군들이 모여서 아우내 장터에 울려 퍼졌던 대한독립만세처럼 친일청산을 외치면 좋겠다. 임종국 선생 조형물 제막과 함께 친일청산 함성이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9월 5일부터 13일까지 몽골에 다녀옵니다. 추석 주간 한 주는 연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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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와 한국경제, 그리고 최경환

 

대우조선·지경부가 바이올시스템즈를 지원한 이유는?전혁수 기자 | 승인 2016.09.05 08:29
 

여야가 대우조선해양 부실 원인 규명을 위해 합의한 '서별관회의 청문회'가 코앞에 다가왔다. 증인 채택 여부를 두고 줄다리기를 이어가던 여야는, 야당이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증인 채택을 포기하면서 오는 8일과 9일 양일에 걸친 청문회 일정에 합의했다. 따라서 이번 청문회에서는 전직 산업은행장들만이 대우조선해양 부실 원인 추궁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서별관 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 중 하나는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이 대우조선해양을 압박해, 자신의 지인이 운영하는 특정업체에 투자를 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업체로 지목된 '바이올시스템즈'의 대표는 현재 사기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상태다.

관심을 끄는 것은 바이올시스템즈가 지식경제부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9년 1월 설립된 벤처기업이라는 것이다. 이 업체는 최경환 의원이 지식경제부 장관직을 수행할 당시 150억원 규모의 자금지원을 받기도 했다. 대체 강만수 전 행장과 최경환 의원은 바이올시스템즈와 어떤 관계가 있었던 것일까.

강만수, 대우조선해양에 바이올시스템즈 지원 강요했나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은 대우조선 측에 바이올시스템즈에 자금을 투자하라고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강 전 행장의 지시에 당시 대우조선해양 임직원들은 "바이올시스템즈의 사업분야가 대우조선해양과 무관하고 재무구조도 열악해 사업성이 떨어진다"며 강 전 행장의 요구를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 (연합뉴스)
 

하지만 자사 대주주인 산업은행 수장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던 대우조선해양은 결국 바이올시스템즈에 투자를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 승인을 거치지 않기 위해, 5억 원을 넘지 않도록 2000원을 빼는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5억 원을 초과하는 신규투자나 출자 참여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우조선해양이 2011년 9월 4억9999만8000원, 대우조선의 자회사인 부산국제물류가 2011년 11월 4억9999만8000원을 투자형식으로 바이올시스템즈에 지원했다. 2012년 2월에는 바이올시스템즈와 50억 원 규모의 용역계약을 맺고, 프로젝트를 지원하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바이올시스템즈에 대한 지원은 강만수 전 행장이 퇴임하기 전까지 이뤄졌고, 실제 지원한 총액은 약 44억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해양은 강 전 행장이 퇴임한 2013년 4월 이후 바이올시스템즈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강만수의 무리한 바이올시스템즈 투자, 이유는?

그렇다면 강만수 전 행장은 왜 바이올시스템즈에 이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아낌없는 지원을 했던 것일까. 바이올시스템즈의 대표이사가 강 전 행장과 아주 가까운 지인이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현재로썬 가장 유력하다.

바이올시스템즈는 2009년 1월 설립된 업체로 당시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생기원)이 중소기업특별법에 의한 신기술 창업 전문회사의 형태로 설립한 회사다. 생기원이 본격적 파일럿 프로젝트에 착수하기 위해 만든 이 회사의 초대 대표는 김경수 생기원 그린오션사업단장이 맡았다. 2009년 6월에는 금호석유화학과, 9월에는 전남 고흥군과 각각 바이오에탄올 상용화 사업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전남 고흥군 도양읍에 위치한 해조류 바이오에탄올 연구센터. '해조류 바이오에탄올 파일럿 플랜트'는 2013년 당시 150억 원 규모의 국가전략과제로 선정돼 연면적 3362㎡의 공장을 신축해 설비도입·시운전을 거쳐 상용 플랜트용 시설을 갖췄다. (연합뉴스)

그런데 지난 2010년 10월부터 바이올시스템즈에 벤처업체가 가져야 할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기자 출신의 인물이 부사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기자 출신의 대표는 부사장이 된지 1달여 만인 2010년 11월부터 대표이사가 돼 바이올시스템즈를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 인물은 한국경제 기자 출신의 김 모 대표다.

바이올시스템즈 홈페이지는 김 모 대표를 경남 진주 출신으로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에서 14년 4개월 간 경제정책·금융·증권·정치·법조 등의 분야에서 일선 기자로 활동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사실 김 모 대표와 강만수 전 행장이 가까운 사이라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 사실인데, CEO소개에서 보듯 관가와 금융계를 넘나들며 취재활동을 이어가던 김 모 대표가 재경부 주요 공직자였던 강만수 전 행장과 친분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로 보인다. 강만수 전 행장은 2000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경제에서 '다산칼럼'을 연재한 경력도 있기에 둘 사이가 가까운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또한 바이올시스템즈의 상당 지분을 강만수 전 행장의 지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김 모 대표는 대우조선해양의 지원 건과 관련해 사기 혐의로 구속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바이오에탄올을 상용화할 수 있는 구체적 계획과 능력이 없음에도, 상용화 능력이 있는 것처럼 남상태 전 사장과 대우조선해양을 속여 투자를 받았다는 혐의다.

한국경제의 수상한 강만수 감싸기

한국경제는 지난달 8일 강만수 전 행장과의 인터뷰를 전했다. 해당 인터뷰에서 강 전 행장은 "청와대를 업고 있는 슈퍼갑이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이었고, 그걸 자른 것이 자신"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9일에는 한국경제가 강만수 전 행장과 구속된 김 모 대표를 감싸는 듯한 칼럼을 내놨다. 현재 바이올시스템즈 김 모 대표는 사기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데, 대우조선해양이 바이올시스템즈에 투자한 것이 옳았는지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이다.

한국경제 정 모 주필이 작성한 '구속된 벤처인 김인식의 경우'라는 제목의 이 칼럼에서는 "(바이올시스템즈는) 해조류에서 바이오에탄올을 뽑아내는 원천 기술은 보유하고 있지만 실험실에서의 기술이었을 뿐 상업용 양산기술은 없었다는 점, 필리핀에 10만ha의 우뭇가사리 양식장을 확보했다고 밝혔지만 확보된 면적은 55ha에 불과했다는 점, 매일 20t의 해조가 필요하지만 실제 이 회사가 실험에 사용한 해조는 모두 합쳐 44t에 그친 점 등이 사기였다는 것"이라며 "검찰 발표를 들으며 이 회사가 '꽤 앞으로 나아갔었구나'라는 정반대 생각을 갖게 됐다. 1% 가능성에 목숨을 거는 것이 기술벤처라는 것을 생각하면 회사를 설립한 지 불과 3년여 만에 놀라운 가시적 성과를 거둔 것"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정 모 주필은 "이 투자가 사기의 결과였는지 논란거리"라고까지 평가한다. 대체 있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투자를 유치한 것을 사기가 아니면 어떤 표현을 써야 한다는 말일까.

또 정 모 주필은 "남상태가 강만수의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투자했다고 주장한다면 김 모씨의 사기죄는 무죄가 되고, 사기로 결론이 난다면 이번에는 강만수의 강압 혐의가 무죄가 된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면서 검찰의 수사를 "짜 맞추는 수사"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그런데 만약 강만수 전 행장과 김인식 대표가 개인적인 친분관계로 대우조선해양에 투자를 강요한 것으로 드러나면 이는 '업무상 배임'으로 처벌받게 된다. 어찌됐건 혐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한국경제에 몸담았던 두 인물을 옹호하는 뉘앙스의 기사를 내면 낼수록 한국경제가 곤란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자사에 몸담았던 이들을 비호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한국경제 출신, 최경환

이번 서별관 청문회에는 빠져있는 또 하나의 한국경제 출신 주요인물이 있다. 바로 이번 청문회 증인출석을 가까스로 면한 최경환 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최 의원은 재무관료 출신으로 퇴임 후 한국경제에서 논설위원,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최경환 의원은 1999년 5월부터 2001년 11월까지 한국경제에서 논설위원을 지냈고, 2002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경제특보로 들어갔다가 2002년 다시 한국경제로 복귀했다. 복귀 후에는 한국경제 편집국 부국장으로 임명돼 6개월 동안 근무했다. 복귀 당시 한국경제 노동조합은 정치색을 띤 최경환 의원의 한국경제 복귀를 반대했지만, 사측은 '꼭 필요한 사람'이라며 최 의원을 채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연합뉴스)

이후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한 최경환 의원은 2009년 9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바이올시스템즈의 설립 당시 이를 주도한 생기원이 바로 지식경제부 소속이었다는 점이다.

생기원은 1989년 10월에 설립된 생기원은 2004년 과학기술부, 2008년 지식경제부로 이관된 후 2013년 3월 이후 박근혜 정부의 핵심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 직간접적으로 최경환 의원이 바이올시스템즈에 관여를 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바이올시스템즈에 대한 지식경제부의 본격적인 투자는 최경환 의원이 장관으로 임명된 직후 이뤄졌다.

바이올시스템즈의 '해조류 바이오에탄올'사업은 최경환 의원이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임명된 직후인 2009년 12월 지식경제부의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사업으로 선정돼 3년에 걸쳐 총 150억 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김 모 대표와 같은 시기에 한국경제에서 근무했던 최경환 의원의 입김이 작용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혹도 일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밀어주기식 투자와 더불어 지식경제부의 바이올시스템즈 투자 역시 그 배경을 가려낼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최경환 의원이 서별관 청문회 증인에서 제외됐다. 

전혁수 기자  wjsgurt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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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순방 중 ‘전자결재’는 박근혜의 만능열쇠

‘한두 번도 아닌 대통령의 임명 강행’
 
임병도 | 2016-09-05 09:34:0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야당의 반대에도 지난 8월 25일 이철성 신임경찰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정권별 국회 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횟수 (국회 표결이 필요한 청문회 대상자 및 임명철회, 자진 사퇴자 제외)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청문 보고서 ‘부적격’ 의견을 받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공식 임명했습니다.

누구나 예상은 했었습니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은 인사청문회에서 음주운전 교통사고 전력이 있어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이철성 신임경찰청장 임명을 강행했기 때문입니다.

음주운전 경력을 가진 경찰청장 후보도 임명했는데, ‘부동산 투기 의혹’, ‘교통법규 과다 위반’, ‘소득 대비 지출 의혹’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부동산 특혜 및 부실 대출 의혹 알선’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닌가 봅니다.


‘한두 번도 아닌 대통령의 임명 강행’

국회경과보고서채택없이임명강행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하고 임명을 강행한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닙니다. 국회사무처 자료집을 보면 국회의 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횟수만 이미 9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3건보다 월등히 높고, 전임 MB보다는 약간 적습니다.

국회 보고서 채택과 상관없이 MB와 박근혜 대통령의 임명 강행 횟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노무현 대통령에 비해 국회를 무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권분립이 있는 나라에서 여러 차례 국회의 결정과 무관하게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은 협치를 무시한 ‘오만과 독재’의 결과입니다. 헌법에 나온 ‘권력 분립과 견제, 균형’이라는 정신은 박근혜 정부에서는 낡은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해외순방 중 전자결재는 박근혜의 만능열쇠’

국민은 설마 했습니다. 이철성 경찰청장 임명을 강행했으니 최소한 이번에는 국회의 눈치(?)도 보고 어떤 대화나 타협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해외순방 중에 ‘전자결재라’는 최첨단 시스템을 통해 임명을 밀어붙였습니다.

박근혜해외순방전자결재사례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 이루어진 주요 전자결재 사례

 

박근혜 대통령이 전자결재를 통해 사안을 결정한 주요 사례만 이번에만 세 번째입니다. 2013년 서유럽 순방 당시 통합진보당의 ‘위헌 정당 해산 심판 청구’도 전자결재로 처리했습니다. 2016년 5월 아프리카-유럽 순방 중에 상시청문회법이 포함된 ‘국회법 개정안’의 재의요구안을 전자결재했습니다.

위헌정당 해산 심판 청구나, 국회법 개정안 등은 신중하게 처리해야 할 사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해외순방 중에 누구를 만나고 있느냐에 관심이 쏟아질 때 은근슬쩍 처리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이런 모습을 “꼼수 정치”라며 “나라를 정직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박 대통령에게는 ‘해외순방 중 전자결재’가 껄끄러운 사안을 처리하는 ‘만능열쇠’처럼 보일지 몰라도, 국민에게는 국회와 국민을 무시하는 ‘독재의 상징’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이철성신임경찰청장임명-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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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종료’돼야할 청와대 ‘갈라파고스 쇼’

2일 끝난 세월호참사 특조위 3차 청문회를 돌아보며
▲ 사진 416연대 제공

9월1~2일 이틀에 걸친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3차 청문회가 ‘강제종료’란 난관을 뚫고 일정한 성과를 남기며 끝을 맺었다. 먼저 특조위원과 조사관들이 인력과 재정난의 악조건 속에서 진행한 청문회 준비는 눈물겨울 정도였다. 7월부터 직원 급여가 지급되지 않았고 청문회 장소대관에까지 외압이 작용했다. 심지어 지난달 23일 해양수산부는 ‘특조위 조사활동은 지난 6월30일로 끝났기에 청문회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보도자료를 뿌려댔다. ‘불출석 면죄부’와 다를 게 없었다. 이렇게 정부가 관료들에게 청문회에 불참할 명분을 공개적으로 제공하며 전·현직 정부 관료들은 한 명도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조위는 조사과정에서 새로 발굴한 증거들을 이번 청문회에서 공개했는데 특히 해경의 세월호 구조작업이 ‘청와대 보여주기쇼’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더 조사해야 할 다수의 의혹사항을 제기하며 ‘존재의 이유’를 입증해 보였다. 사고 당시 해경은 생존자가 있을 가망성이 큰 3층 식당 칸 에어포켓에 성공적으로 공기주입을 했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특조위가 해경의 TRS교신 음성 파일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해경은 식당 칸이 아닌 접근이 용이한 조타실 근처에 공기를 주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특조위는 “해경이 보유한 TRS 파일이 100만여 개가 있는데 이 중 7164개만 넘겨받아 분석을 했을 뿐인데도 해경의 거짓말을 밝혀낼 수 있었다”며 “TRS 교신내용들은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의 비밀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조위측은 또 “특조위가 해산되더라도 특검이 실시돼 나머지 TRS 파일들도 낱낱이 조사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해경은 또 ‘청와대 보여주기쇼’를 생중계하기 위해 1000t급 함정 4척을 동원했다. 무인수중탐사로봇(ROV)이 선체에 진입했다는 발표 역시 거짓으로 드러났다. 세월호 선내 CCTV 영상이 켜져 있던 시간과 DVR(디지털영상저장장치. digital video recording)에 저장된 기록이 불일치해 기록조작의 의혹도 제기됐다. 청문회 첫날 증인으로 출석한 김시곤 KBS 보도국장은 길환영 전 KBS 사장의 보도개입을 뒷받침하는 문자메시지를 폭로해 주목 받았다.

또 청문회에서 비공개로 증언한 한 선체인양 전문가는 “해수부가 선체바닥에 추가로 34개의 구멍을 뚫겠다고 하는 것은 불필요한 작업이며 이 경우 이동 과정에서 배가 아예 가라앉을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또 특조위는 최근 정부가 밝힌 인양 후 객실부분을 절단해 미수습자를 수습하겠다는 계획에 대해 “심각한 증거 훼손과 인멸”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온전한 선체 인양 약속에 배반함”을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부터 책임져야 할 증인들이 거의 전원 불참한 청문회를 보며 무책임, 무능력, 무관심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 윤리 참사의 현장이 다른 데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현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이 고통이 무뎌지고 기억이 흐려지길 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청문회 진행을 위해 참사 당시 영상이 상영되거나 음성이 나올 때면 방청석에 앉은 수많은 가족들이 귀를 틀어막았다. 참사의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들에게 고통은 아직 생생하다. 그들의 소리 없는 절규가 이를 증언한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건 “내 새끼가 왜 죽었는지 그 이유를 아는 것” 그리고 “다시는 우리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단식을 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사생결단식’이 시작되고 일주일에 2-3번씩 가족들을 만났다. 첫 주엔 잘 몰랐는데 일주일이 지나며 점점 이들이 입고 있는 옷이 헐렁해지고 몸이 확연히 말라가는 게 보였다. 31일 광화문에서 8일째 단식을 이어가던 2학년5반 ‘준영 엄마’ 임영애씨가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비가 내리던 이날 오전 좋지 않은 안색으로 이불을 덮고 앉아 있던 임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4일 현재 이들의 단식농성은 19일째 이어지고 있다.

세상과는 ‘분리’돼 있는 듯한 청와대를 ‘갈라파고스’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평범한 이들이 살아가는 현실 세상이 안전하고 생명이 존중받는 곳이기 위해서라도 청와대의 ‘갈라파고스 쇼’는 ‘강제종료’돼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할 특조위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특조위가 이달 말 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특별법을 개정할 골든타임의 열쇠는 국회에 있다.

이명주 기자  ana.myungjulee@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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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물대포 디지털 조작 아닌 발로 쐈다”…백남기 딸 “이게 적법인가”

 

박주민 “액셀 밟아 살수, 위해 폭력 명백”…SNS “반드시 처벌해야”민일성 기자  |  balnews21@gmail.com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씨와 관련 수압을 정교하게 조절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일 “당시 살수차의 살수방식은 디지털 기기를 조작해 수치를 맞추고 살수하는 방법과, 차량의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살수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나뉘는데 백남기씨에게 살수한 방식은 후자”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경찰은 물의 압력을 조작하는 디지털 기기를 갖추고도 이를 사용하지 않고 차량의 액셀을 밟아 살수한 것으로 나타나 규정의 무색해진다”며 “실제로 지난해 경찰은 20m 거리의 백남기 농민에게 규정을 초과한 2,800rpm으로 쐈다고 밝혔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측은 지난 2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있었던 동일한 살수차의 시연회에서도 경찰은 표적에 살수를 하며 디지털 기기판에 의한 수작업이 아닌 발로 액셀을 밟아 살수했다고 밝혔다.

시연 현장을 지켜본 박 의원측은 “목표치보다 500rpm 가량 초과했다”며 “혼란한 집회 현장이자 야간이라면 정교한 조작을 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박 의원은 “조이스틱으로 방향을 조정하면서 동시에 rpm까지 조작하는 방식으로 규정을 지켜 쏜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며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폭력이 명백하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 <자료출처=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 <자료출처=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한편 백남기 농민 사건 청문회는 오는 12일 10시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열린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주요 인물 15여명이 출석할 예정이다.

참고인으로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백남씨의 두 딸, 구급차운전자 등 18명도 참석해 진술한다. 

경찰의 살수 방식에 백남기씨의 딸 백민주화씨는 페이스북에서 “이래놓고 지금 정당, 적법, 불가피 라는 소리가 나오는가”라고 분노했다.

또 12일 예정된 청문회와 관련 백씨는 “여러분들의 관심과 연대로 청문회가 진짜 현실로 다가왔다”며 “철저하게 잘 진행될 수 있게 여러분 끝까지 많은 응원 부탁한다.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SNS에서는 “무식하게 풀 악셀 밟아서 사람이 뒤로 넘어져서 뇌진탕 일으키게 하고 식물인간 만들다니..”,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누워 계시는 분과 그의 가족에게 누구 하나도 사과하지 않는 정부와 경찰 총장. 진짜 나쁜 대통령”, “규정을 어긴 경찰과 책임자를 철저히 조사해 처벌받게 해라”, “완전 살인할려고 한 거네 병원차에 실려갈 때까지 규정보다 거리 대비 훨 초과한 압력으로 사람에게 쐈으니 그게 죽이려고 한 거 아니면 뭔가”, “발로 조작한 놈보다 그렇게 하게 한 세력들에게 분노하고 단죄해야 한다” 등의 의견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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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낯선 간판, 북한이 달라졌다

 

[수양딸 찾아 평양으로 18] 북한 구월산 그리고 포전담당제

16.09.04 15:51l최종 업데이트 16.09.04 18:13l
글·사진: 신은미(eunmishin)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그리고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해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순회강연을 마치고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북녘의 수양딸을 찾아 북한을 여행했습니다. 또 2015년 10월 초에도 북한을 한 번 더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연재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통해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하려 합니다. - 기자 말

과연 박 교수는 인민복을 입을까

오늘(2015년 7월 6일)은 황해도 구월산에 가는 날이다. 단군이 수도를 평양에서 이곳으로 옮기고 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산이다. 임꺽정의 이야기도 어우러져 있다. 그러나 내가 구월산에 가보고 싶은 이유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북한의 5대 명산인 백두산, 금강산, 칠보산, 묘향산, 구월산 중 유일하게 못 가본 산이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동안 나를 낳아준 조국 한반도의 구석구석을 다 보고싶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식사를 마치고 호텔 로비에 내려오니 아직 약속 시각보다 일러서인지 우리 안내원 김혜영 선생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박 교수의 안내원 송영혜 선생이 초조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다.  

"송 선생, 어디 아파요? 얼굴 빛이 안 좋네." 
"선생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긴데 박 교수님은 함께 식사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놀란 얼굴로 묻는다. 

"아니요. 식사하러 안 왔는데…. 아니, 송 선생, 무슨 일 있어요?" 
"사실은 어젯밤 내내 박 교수님이 인민복 구해 입고 머리에 꽃 달고 오늘 나올 거라는 말이 자꾸 떠올라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요. 자는 둥 마는 둥하고 내려와 박 교수님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머있고 화통한 박 교수의 성품을 잘 알고 있는 나도 걱정이다. 인민복 상의 단추를 몇 개쯤 풀어헤치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위에 꽃을 달고 나타날 상상을 하니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가 안심시켰다. 

"사람들이 그냥 외국 관광객이 그러고 다니나 보다 생각하면서 지나칠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이곳 사람들의 정서를 잘 아는 나는 이렇게 위로할 수밖에. 송 선생은 여전히 초조해하며 안절부절 못한다. 송 선생을 안심시키려고 말을 건네는 중 승강기 쪽에서 박 교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순간, 나는 이곳에서 처음 보는 박 교수의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둘둘 말아 핀을 꽂아 단정히 올려붙인 머리와 정장 옷차림이 마치 내게 학부 시절 교양과목을 가르쳤던 엄숙하신 한 교수님을 연상케 한다. 게다가 걸음걸이마저도 그 교수님을 쏙 빼닮았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송 선생이 박 교수에게 겨우 말문을 연다. 

"아니, 인민복에 머리에 꽃은 어쩌시고…."

박 교수가 미소를 지으면서 송 선생을 바라보면서 다정스럽게 말한다. 

"이곳 아이들이 풀어헤친 내 머리를 보고 울음을 터뜨리니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요. 밤새 잠을 못 이뤘어요. 오늘은 아이들이 내게 안기도록 변장을 좀 해봤어요."

두 사람 다 같은 일로, 그러나 다른 이유로 잠을 설친 것이다. 송 선생이 말없이 내게 눈인사를 건네며 박 교수와 함께 호텔을 나선다. 

'소유'는 가장 큰 인센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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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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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속도로 교통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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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도 사리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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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을 지난다. 원산과 개성의 방향을 일러주는 교통표지판이 나오고 한 30~40분 달리니 눈에 익은 사리원시에 들어선다. 이곳도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애육원을 비롯해 어린이들을 위한 공사가 최우선이란다. 

차가 시내를 빠져나와 농촌길을 달리던 중 놀라운 구호가 눈에 들어온다. '나의 포전'이라고 적혀있다. 지금 북한에서는 '포전담당제'라는 제도가 실시되고 있는데 구호가 이를 실감케 한다. 

'포전담당제'란 한마디로 말해 협동농장을 작은 단위로 나눠 한두 가정이 경작해 일부를 국가에 내고 남은 수확량을 경작자가 소유하는 제도다. 마치 경작지가 개인 소유의 땅인 양 수확량의 일부만 세금 납부하듯 국가에 내고 나머지는 자신이 갖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조치가 아닌가 싶다. 나는 이 '포전담당제'를 적극 찬성한다. 왜냐하면 소유보다 더 큰 인센티브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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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땅'임을 강조하는 농촌의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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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도 농가의 텃밭 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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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월산 가는 길 주변 협동농장의 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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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농촌을 여행하다 보면 텃밭 옥수수 키가 협동농장의 옥수수 키보다 훨씬 크다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텃밭이란 자기 집 앞마당을 말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작물은 100% 자신의 소유물이다.

그러니 나 같아도 협동농장보다 내 집 마당 텃밭에 더 신경을 쓸 것이다. 협동농장에서 있는 힘껏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내게 돌아오는 게 적다고 생각된다면, 아무리 사상교육을 받고 당원들이 깃발을 흔들어대면서 생산을 독려한다고 해도 근로의욕을 고취시키지 못할 것이다. 

아마 북한 당국도 이를 이해해 '포전담당제'를 도입한 것이 아닌가 예상해본다. 요즘 들어 북한의 식량 문제가 많이 좋아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분명 이 제도가 한몫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언젠가 협동농장 옥수수의 키가 텃밭 옥수수의 키와 같아지는 날, 이 제도는 완전한 성공을 이룬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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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르 익어가는 협동농장의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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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협동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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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당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개인의 상행위, 국가에 속해 있지만 자율적 경영과 이윤이 보장되는 기업활동, 농촌의 포전담당제 등의 변화는 북한 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할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덧붙여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경제발전으로 인해 생기는 소득의 격차다. 생산수단의 소유가 불가능한 북한에서 원천적인 빈부의 차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소득의 격차는 분명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관료주의와 함께 생성될 수 있는 관리들의 부정부패다. 이를 잘 극복한다면 이러한 변화들과 함께 북한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북한 5대 명산' 구월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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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도 과일군과 사리원을 오가는 북한의 지방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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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탄 차는 황해도의 지방도로를 따라 구월산으로 향한다. 도로에는 버스들이 종종 눈에 띈다. 지방과 지방 또는 지방과 평양을 연결하는 시외버스들이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2011년 10월, 첫 북한관광을 왔을 때는 시외버스를 거의 보지 못했다. 

버스 안에는 승객뿐만 아니라 짐도 상당히 많이 실려있다. 아마도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활발한 상업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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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이용하는 북한의 지방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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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이용하는 북한의 지방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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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북한의 지방에서는 자전거가 가장 유용한 교통수단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엄청난 양의 짐을 싣고 자전거를 끌며 언덕을 걸어 오르는 모습은 보기에도 힘겹지만, 곡예하듯 꼬부랑 내리막 언덕길을 흙먼지 일으키며 빠르게 내려오는 모습엔 감탄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황해도 재령군, 신천군, 삼천군을 지나 멀리 구월산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구월산 20km'라고 적힌 교통표지판이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자 도로가 말끔히 포장돼 있다. 산 정상까지 모두 포장도로를 만들어놨다고 한다. 내가 본 북한의 산 중 도로를 가장 잘 닦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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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안에서 바라본 구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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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월산 월정사를 찾은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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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현지 해설원의 설명을 들은 후 안내도를 보니 구월산을 하루에 다 보기란 불가능하다. 더구나 오늘 저녁 평양으로 돌아가야 하니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둘러보는 수밖에. 입구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는 월정사를 먼저 찾는다. 

경내에 들어서자 한 외국인이 사진 촬영을 하다말고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말을 붙인다. 이럴 때 "남한에서 왔다"고 말할 수 있으면 정말 좋으련만…. 씁쓸한 마음으로 미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러면 그렇지, 북한 사람의 모습은 아닌데 코리안 언어를 사용해서 의아해했다"라고 말한다. 

이 외국인의 눈에는 내가 북한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아무리 우리 말을 한다 해도 내가 이곳에 속해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듯하다. 나는 그에게 답해줬다. "겉모습은 다르게 보일지 몰라도 우리는 한 가족"이라고. 

그는 잘 이해하고 있다면서 남과 북은 하나라고 덧붙인다. 그는 "코리아의 문화에 심취해 있다, 그래서 머나먼 극동의 산 속 절을 찾아왔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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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절모를 쓴 구월산 월정사 주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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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8월 성불사를 찾았을 때 주지 스님은 노란 가죽구두를 신고 있었다. 웃음을 참으면서 <성불사의 밤>을 함께 부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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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님께서 종종걸음으로 반갑게 다가온다. 그런데 스님이 쓰고 계신 중절모를 보고 웃음이 나와 표정 관리가 잘 안 된다. 2013년 8월의 성불사가 생각난다. 샛노란 가죽구두를 신고 <성불사의 밤>을 부르던 주지스님 때문에 웃음을 참아가며 함께 노래 불렀던 내 모습이. 

중절모를 쓰신 주지스님이 월정사의 유래에 대해 말씀해주신다. 우리의 역사와 종교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으나 수도하는 스님 같진 않다. 원래는 공학을 전공했는데 역사에 관심이 많아 다시 대학에 입학해 조선 역사를 공부했다고 한다. 

스님께서 친절한 설명과 함께 절의 이곳저곳을 안내해주신다. 그러나 스님의 관심은 안내보다 남편과 내게 있었다. 지난번 평양의 경흥관 대동강맥줏집에서 만난 동포들처럼 신상에 대한 온갖 질문을 퍼붓는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디서 사는지, 무얼 하는지 등등.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기분이 상하기는커녕 되레 동포의 정만 가득 느낀다. 묻지도 않은 것까지 말해드리면서 월정사 누각 '만세루' 마룻바닥에 걸터 앉아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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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월산 월정사 주지 스님이 주신 살구를 받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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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스님께서 1분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잠시 후 호박잎 비슷한 큰 잎사귀에 살구를 잔뜩 담아 건네주신다. 방금 따 오셨단다. 가슴이 뭉클하다. 사찰 관람을 온 게 아니라 시골 친척집에 다녀가는 기분으로 절을 떠난다. 

점심식사를 위해 계곡을 찾아 평평한 바위 위에 앉는다. 생수병을 반으로 잘라 잔을 만들어 대동강맥주를 채운다. 이 시간을 서로 축복하며 건배한다. 같은 정서와 같은 행동들…. 남이든 북이든 우리는 같은 DNA임을 수시로 확인한다. 펼쳐놓은 도시락과 살구 그리고 우리들의 대화가 한 폭의 그림으로 남는 느낌이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흥얼거리던 남편이 돌아와 불평을 늘어놓는다. 

"야아~, 여기서 도시락을 먹다니. 여보, 물 속에 가재가 득실 거리고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녀. 저거 잡아다 매운탕 끓이고 나뭇잎 주워서 연기 피우면서 밥을 지어 먹어야 하는데... 아!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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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월산 계곡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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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들은 김혜영 선생이 웃으며 말한다.

"하하, 여기 사람들은 그렇게 합니다. 잘 아시는군요." 

우리는 구월산 정상을 향해 달려간다. 겉에서 보기에 구월산은 그리 험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산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면 오를수록 숲이 장엄하게 우거져 있다. 산길따라 탐스럽게 영글은 산열매는 가던 길을 멈추도록 유혹한다. 참으로 깊고도 풍요로운 산이다. 잘 닦아놓은 산길 사이사이에 묵묵히 자리잡고 있는 우람한 바위들이 역사 속 선조들의 채취를 묵언으로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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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월산 정상을 등지고. 좌측 중앙이 황해도 안악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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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정상 가까이 다다르자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가 나타난다. 헌병으로 보이는 한 병사가 다가오더니 "이곳은 군사지역이라 더 이상 올라 갈 수 없다"고 한다. 김혜영 선생이 간청을 해보지만 "보고 받지 못했다"면서 통과를 불허한다. 우리는 구월산 정상을 눈앞에 두고 아쉽게 하산한다. 차를 근처 전망대에 세운다. 

전망대 아래로 평야와 함께 낮은 동산들이 펼쳐져 있다. 안악군이라고 한다. 아! 역사 교과서에서 배운 고구려의 안악 고분이 있는 바로 그곳이다. 

갑자기 시각이 수천 년 전으로 돌아간다. 하늘의 축복을 받은 산에는 열매가 풍성하고 산 아래 끝없이 펼쳐진 평야에는 곡식이 가득하다. 기름진 평야 옆 바다에는 온갖 물고기가 득실거린다. 단군이 선조들을 이끌고 인간에게 이로운 세상을 펼치며 만세를 누릴만 하다. 고구려의 고분들이 이곳에 남아 있으니 필시 여기서 자손만대를 이어갔으리. 산도, 하늘도, 구름도, 유구한 우리의 역사를 나에게 읊어주는 듯하다. 나는 미어지는 가슴으로 부끄러운 후손의 삶을 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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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용호 운전기사가 따다준 북녘의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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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1/100도 둘러보지 못했지만, 어느새 구월산 정기를 듬뿍 받으며 하산한다. 차가 재령평야를 가로질러 평양으로 향한다. 길가엔 울긋불긋 들꽃들이 피어있다. 리용호 운전기사가 차를 세우더니 꽃을 꺾어다 내게 안겨준다. 북녘땅 들판에 아무렇게나 피어난 풀 한포기도 그렇게 소중하고 아름답다. 이 화사하게 피어난 들꽃송이를 어찌 온실에서 자란 백만 송이의 장미에 비할까. 

평양으로 돌아온 나는 구월산의 풍취를 담아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 친구들과 나누기 위해 사진을 올렸다. 통일을 염원하는 댓글들이 순식간에 달린다. 어떤 페이스북 친구는 아버님을 그리면서 글을 남기기도 했다. 

"구월산 아래 황해도 신천군이 저희 아버님의 고향입니다. 한국 전쟁 때 신천대학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지요. 아버님 생전에도 구월산 이야기를 하시곤 했답니다. 아버님 고향인데...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두고 온 고향을 그리며 눈을 감지 못하셨을 그분의 아버님을 생각하니 북녘땅을 한가로이 관광이나 하고 다니는 나는 이내 죄책감에 휩싸인다. 

내일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다. 수양손자 의성이의 유치원에 간다. 의성이를 볼 마음에 한껏 기쁘다가도 석별의 정을 나눌 생각에 이내 슬픔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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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북한 아이가 걸어가고 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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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수복지당 양고은대변인 호소문발표 ...

  • 환수복지당 양고은대변인 호소문발표 ... <오로지 창당으로 나아갈 때>
  • 정재연기자
    2016.09.04 00:36:32
  • 3일 환수복지당(준) 양고은대변인이 옥중에서 호소문을 발표했다. 
     
    양대변인은 8월31일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돼 종로경찰서에 수감됐으며 현재 부당한 정치탄압에 항거하며 4일째 묵비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다. 
     
    호소문은 <우리당의 정책과 노선인 전인미답의 길이듯, 그 길이 절대 녹록치 않음을 여러분이 더욱 잘 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원여러분의 헌신과 노고로 곧 창당되리라 확신합니다.>며 <그 누구도 실력과 의지가 없어 말하지 못한 <환수복지>, 그러나 99%민을 위한 유일한 새판인 <환수복지>. 이 판을 짜는 힘은 오로지 당원 여러분의 손에 달려있습니다.>고 밝혔다.
     
    아래는 호소문 전문이다.
     
    <호소문>
     
    환수복지당 당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변인 양고은입니다. 
    지금은 묵비단식 4일째 낮입니다. 얼마 전까지 삼봉로를 지키며 별밤과 필리버스터를 하였는데 구금되어 편지로 인사드리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곳에 있으며 바깥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떤 대화들을 나누며 어떤 행동들을 할까 계속 상상합니다. 안에 있는 저보다 더 고생스럽게 노숙단식을 하고있을 부대변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밤낮 가릴 거 없이 이어지고 있을 필리버스터와 철야시위, 하루 한시간씩 어김없이 진행되고 있을 미대시관 1인시위 그리고 그 사이사이 바쁜 와중에도 웃으며 대화하고 심각하게 토론하고 있을 당원들의 모습까지...
     
    우리당의 정책과 노선인 전인미답의 길이듯. 그 길이 절대 녹록치 않음을 여러분이 더욱 잘 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원여러분의 헌신과 노고로 곧 창당되리라 확신합니다. 
     
    저에 대한 정치적 탄압은 제 개인에 대한 탄압이 아니라 환수복지당에 대한 탄압입니다. 이러한 탄압을 뚫고 승리하기 위한 1차적 요건은 바로 창당뿐입니다. 
     
    그 누구도 실력과 의지가 없어 말하지 못한 <환수복지>, 그러나 99%민을 위한 유일한 새판인 <환수복지>. 이 판을 짜는 힘은 오로지 당원 여러분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판을 짜는데 쉽게 가는 것을 기대하기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나 힘들고 고단해도 반드시 가야할 길이기에 웃으며 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당원여러분!
    지금은 오로지 창당만을 화두로 나아갈 때입니다. 이 길만이 우리가 나아갈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저도 안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창당에 이바지하겠습니다. 창당을 위한 당원확대사업으로 모든 초점을 다하여 99% 민이 진정한 희망, 대안으로 당이 성장한다면 지금보다 더 힘든 길도 웃으며 갈 수 있습니다. 
     
    우리 힘을 합쳐 반드시 창당하여 마침내 승리합시다!
     
    환수복지당(준) 대변인 양고은
     
    0903 호소문1.jpg
     
    0903 호소문2.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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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드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세상은 우리 생각만큼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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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ssacre of the innocents

하바드 대학교의 심리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스티븐 핑커는 최근 베르그루엔 연구소의 알렉스 골라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핑커는 2011년의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다음 책의 주제는 ‘새로운 깨달음’이다. 아래 인터뷰에서 핑커는 최근 테러와 총기 난사가 많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의 폭력은 하락 추세라고 설명한다.

-최근 테러와 총기 난사 사건들이 크게 보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전반적인 폭력은 하락세라고 주장했다. 하락의 원인은 무엇, 혹은 누구인가?

일단 세계화와 같은 요인이 있다. 국가들이 더 긴밀하게 엮이고 있어서, 한 국가의 안녕이 다른 국가의 안녕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정복과 침략보다는 사업을 하는 게 더 이득이 된 것이다. 즉 살아있는 인간이 죽은 인간보다 더 가치가 있는, 혹은 제품을 사는 게 훔치는 것보다 더 쉬운 세상이다.

다른 요인은 가치 체계의 변화다. 종교, 국수주의, 언어 등을 놓고 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지금은 모든 국가가 영토와 언어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휴머니즘을 향한 트렌드가 있다. 그 궁극적 목표는 여성과 어린이의 건강이다.

내가 세계적이라는 말을 썼지만 지구 전체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우리는 부족적 존재라, 예전의 나쁜 상태로 돌아가자는 유혹은 늘 있다. 그러나 20세기 전반과 후반을 비교해 보면 휴머니즘을 향한 추세가 명확히 보인다. 우리가 그토록 열렬히 세계 인권 선언 서명을 원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인명을 궁극적 선으로 보고 보호하고 지원하려 하는 밀레니엄 개발 목표, 지속 가능 발전 목표 등의 프로그램은 어떤가?

국제적 폭력의 감소에 기여한 다른 요인은 여러 기관들의 행동의 변화다. U.N.과 NATO, 아프리카 연합, EU가 소프트 파워를 행사하는 것이 어느 정도의 기대치를 만들게 된다. 그들의 규준은 공격적이지 않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다른 문제지만, 그건 억제력으로 작용한다. 이런 규준에는 이제는 무력으로 국경을 바꾸지 않는다, 다른 국가를 정복하지 않는다는 게 포함된다. 물론 언제나 지켜지는 건 아니다.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합병할 때 우린 그 반례를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대체로 국가들 간의 보다 평화로운 공존에 크게 기여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마저도 자신이 이런 규준을 어겼다고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세계의 핵심 원칙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는 크림 반도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러시아에 들어가길 원했다고 주장한다.

푸틴이 크림 반도 주민들의 의지에 따랐다는 건 픽션이다. 세계의 산업화된 다른 국가들이 다 함께 러시아의 행동을 규탄하고 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이 규준이 늘 지켜지지는 않지만 지금도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는 국제적 폭력의 감소를 이야기할 때, 폭력이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전쟁이 있지만, 일반 범죄와 제도적 폭력도 있다. 전쟁 지대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저런 방식 외의 다른 형태로 살해 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니 폭력에 대한 모든 논의는 일반 범죄를 염두에 두고 해야 한다. 일반 범죄도 상당히 줄었다. 중세 이후 범죄율은 현저히 줄었다가 1960년대 무렵에 반짝 늘었지만, 1990년부터 계속 떨어지고 있다. 제도적 폭력의 예로는 체벌, 사형, 동성애 범죄화가 있다. 서구에서는 이것은 현저히 줄었다.

-무역으로 인해 타인에게 범죄를 저질러서 얻을 이득이 줄었다는 점으로 다시 돌아가자. 아주 이건 아주 실용적인 관점이다. 우리는 무역을 계속해야만 평화를 가질 수 있을까? 즉, 그게 도덕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평화를 위한 평화를 가지는 게 가능할까? 이것이 임마누엘 칸트가 유명한 저서 ‘영구 평화론’에서 다룬 주제다.

아이러닉하게도 칸트의 글은 아주 실용적이었다. 그는 두 국가 간에 무역이 존재한다면 서로 공격할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했다. 그가 공화주의(혹은 어쩌면 지금의 민주주의)를 포용한 것 역시 실용적인 이유였다. 바로 평화 유지다.

그러나 역사적 질문과 실제 질문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나는 왜 범죄율이 줄었는지 살피고, 우리가 어떤 가치에 따라 살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 하는 도덕적 질문을 생각했다. 물론 나는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지구상의 사람 전부가 모든 생명은 신성불가침이라는 가치에 따라 살아갈 거라는 생각은 좀 비현실적이다. 점점 늘어나는 인도주의적 노력에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것 중에는 실용적 계산이 있다. 도덕과는 무관한 실제 이득 때문에 싸움을 멈추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그 이상이다. 현재 최고의 선(善)이 삶이 죽음보다 낫고, 교육이 무지보다 낫고, 건강이 질병보다 낫다는 느슨한 인도주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nato

-이게 뒤집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우리가 황금기를 경험하고 있고 앞으로 암흑기가 있는 걸까, 아니면 이런 기준과 가치가 계속 유지될까?

솔직히 말하면 모르겠다. 보코 하람과 IS 같은 집단들의 위협은 과장되었다. 내전의 사망자는 지난 해에 증가했지만, 그래도 2000년의 사망자 수로 돌아간 것뿐이다. 우리가 1970년대, 80년대, 90년대에 이룬 진전이 없어진 것은 아니고,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있긴 하지만 민주화도 마찬가지로 없어진 것은 아니다.

지금 일어나는 내전들은 주로 사하라 사막 아래 아프리카 서부부터 파키스탄에 이르는 지역에서 일어난다. 물론 우리가 세운 기준이 뒤집힐 수 있다. 질병이 돌아올 수 있고, 종교는 이미 다시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이런 것들에 가장 잘 대처하는 방법을 알아내야 하고, 우리가 지금까지 이뤄낸 진전을 생각하면 그 이상의 진전도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만약 당신이 지금 시리아에 있다면 전세계 내전의 총 개수가 줄어들었다는 걸 안다 해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 예를 들면 9/11 같은 사건이 이 모델을 뒤집을 수도 있을까?

첫째, 개인의 폭력 경험은 정책 결정과는 무관하다. 만약 그 방향으로 간다면, 오늘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지구 온난화를 부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 3자 관찰자들에겐 어떤 영향이 있을까?

우리가 각 사건들에 의해 비대칭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게 입증되었다. 테러리스트들은 이 점을 악용했다. 테러로 목숨을 잃을 가능성은 누구든 굉장히 낮다. 그러나 테러 공격이 엄청나게 많이 보도되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테러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은 이성적인 일이다. 테러가 세계 문제에 있어 외교 정책을 지배하게 하는 것은 실수다. 일상의 테러가 미치는 해악은 바로 반응에 있다. 모든 테러 시도의 97%는 실패로 끝나니, 테러는 성공적인 수단이 아니라는 걸 염두에 두라.

aleppo

-무슬림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유럽에서 분쟁이 늘어나는 것은 어떻게 보는가?

중도주의 당들이 문제가 없는 척하면 – 독일 연합 정부가 어느 정도 그렇게 했다 – 우파 정당들이 득표를 늘릴 기회를 주는 셈이라는 걸 우린 보았다. 동화되지 못할 위험, 여성 혐오와 테러리즘을 더 키울 위험이 있다. 만약 중도주의 정당들이 공개적으로 문제를 언급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문제를 이야기하며 유권자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주요 정치의 장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견해의 헤게모니가 우리 모두를 해칠 것이다. 만약 진실을 말하는 유일한 방법이 도널드 트럼프나 마린 르 펜이 되는 거라는 생각이 퍼지면 그건 위험한 유혹이 된다.

-유럽과 미국에는 차이가 있지 않은가? 유럽은 아직도 종교와 수세기 전에 정한 국경으로 갈라진 국가의 ‘부족적’ 영향을 받는다. 미국은 종교적 관용의 역사를 지닌 단일 국가다.

그렇다, 그것이 차이점 중 하나다. 미국에는 급진적 이슬람화가 훨씬 적은 이유 중 하나가 그게 아닌가 생각한다. 스페인 인, 프랑스 인, 독일인이 되는 것보다 미국인이 되는 게 더 쉽다.

-유럽 우파의 주장 중 하나는 이슬람은 평화롭지 않으며 서구식 생활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당신은 대부분의 분쟁은 지금도 아프리카 서부와 파키스탄에 걸쳐 일어난다고 언급했다. 이 지역은 거의 전부 무슬림 국가들이다. 무슬림 국가들이 기독교 전통이 있는 곳보다 폭력에 취약하다는 말인가?

현재 진행 중인 대부분의 전쟁들의 한쪽에는 급진적 이슬람주의 세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슬람권의 전쟁 비율이 높아진 것은 맞지만, 이슬람권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비율은 낮아졌다.

역사적으로는 기독교 국가들이 끔찍한 정복을 저질렀다. 영국,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인데, 예를 들어 십자군 전쟁 때 벌어졌던 잔혹 행위를 생각하면 그런 주장을 하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지난 세기에 일어났던 유익한 추세가 아직 이슬람권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주장은 할 수 있겠다.

ramadan

우리는 일반화, 특히 이슬람의 맥락에서의 일반화는 아주 위험하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를 보라. 어느 정도는 민주주의 국가고, 평화롭고, 시리아, 말리 같은 나라들이 지금 겪는 문제는 전혀 없다.

게다가 도그마와 정체성을 섞으면 그 어떤 분쟁도 더 심해진다. 타협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키우기 때문이다. 또한 과격한 이슬람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식의 지하드는 죽음을 더 나은 삶으로 가는 것으로 봐 버린다. 그러므로 충돌 중인 무장 대원들은 다른 세속적인 이익이 걸려 있을 때의 충돌에서와는 완전히 다르게 행동한다. 나는 이 전쟁들이 순수히 종교적이지는 않다는데 동의 하지만, 충돌 안에 종교적 견해가 있으면 충돌을 억누르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움이 된 적도 없었다.

 

허핑턴포스트US의 The World Is Not As Bad As We Think, Says Harvard Psychologist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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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책임자 처벌하기 위해 탐사보도를 마치고 심층 분석을 이어갑니다

박 대통령님, 아버지처럼 배신하지 마십시오
[4대강 청문회를 열자] 4대강 책임자 처벌하기 위해 탐사보도를 마치고 심층 분석을 이어갑니다

16.09.03 20:36 | 글:김병기쪽지보내기|영상:정대희쪽지보내기|사진:이희훈쪽지보내기|편집:김예지쪽지보내기

4대강 사업, 그 뒤 5년. 멀쩡했던 강이 죽고 있습니다. 1000만 명 식수원인 낙동강 죽은 물고기 뱃속에 기생충이 가득합니다. 비단결 금강 썩은 펄 속에 시궁창 깔따구와 실지렁이가 드글거립니다. 혈세 22조원을 들인 사업의 기막힌 진실. '4대강 청문회'가 열리도록 '좋은기사 원고료 주기'와 '서명운동'에 적극적인 동참을 바랍니다. 이번 탐사보도는 환경운동연합, 대한하천학회, 불교환경연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공동 주최합니다. 4대강 특별취재팀의 활동은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 24일 오후 대구 달성군 낙동강 달성보 하류 3km 지점 박석진교 일대에 녹조가 창궐해 강 전체를 뒤 덮고 있다. ⓒ 이희훈

박근혜 대통령님, 안녕하신가요? 

저는 '4대강 독립군'과 함께 지난주 5박 6일 동안 금강과 낙동강, 내성천을 탐사 보도하고 돌아왔습니다. 지난 22일 서울을 떠날 때는 열대야로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새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한동안 비가 내려 쌀쌀하더니, 요새는 높은 가을 하늘이 보입니다. 

의원회관 545호실의 기억

혹시, 저를 기억하시나요? 벌써 15년이 넘었네요. 2001년 2월 13일 국회의원회관 545호실, 인공 조경물에서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난초 향이 그윽한 곳에서 두 시간 동안 마주 앉아 인터뷰를 했죠. 대통령께서 4년차 정치 초년생일 때였습니다. 그래도 기억이 안 나실 수 있을 텐데요, 당시 인터뷰 제목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사전적 의미론 독재자, 난 그 후광에 '무임승차'했지만..." (관련기사)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다른 길을 걸을 것으로 알았습니다. '사전적'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부친을 독재자로 인정하고 '강권 통치를 했다'는 지적에 동의했습니다. 그 후광에 무임승차했지만 독재자로 남기를 바라는 대통령은 드물 것으로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대통령 임기 4년을 돌아보면…….  

대통령께서 지난 8.15 경축사를 할 때 저는 경북 성주에 있었습니다. 땡볕이 내리쬐는 공원에서 1000명이 집단 삭발하며 '사드'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옆에서 아이들은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나무 판에 물풍선을 던졌습니다. 숙소로 돌아와서 경축사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기사를 보다가 '건국절'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부전여전'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헌법에 명시된 상해임시정부와 항일독립운동의 정통성 계승을 부정하는 이유가 혹시 '박정희군의 혈서'를 지우고 싶어서는 아닌지요? 부친은 독립군 때려잡는 일제 만주국 군관에 지원하면서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을 밝혔었죠. 민족을 배반한 치욕스런 피의 흔적을 지우려고 그런 건 아닌지요?  

독립군 역사가 아니라 MB 흔적 지워야

이 말을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말머리가 길었습니다. 지난주에 4대강을 탐사보도하면서 느낀 점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일제와 맞섰던 우리 독립군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우지 말고, 아직도 독재자처럼 4대강을 지배하는 MB 흔적을 지우라는 겁니다. 전임 대통령의 알량한 자존심의 상징처럼 버티고 있는 16개 댐을 뽑아버리든지, 아니면 수문이라도 열어야 한다는 겁니다. 

대통령께서도 이미 '비슷한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2012년 12월 16일 대선후보 3차 TV토론회에서였습니다. 당시 문재인 후보와 한 토론 중 한 토막을 잘라서 보여드리겠습니다. 

문 : "이미 지난여름에 엄청난 녹조가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중략) 물론 저도 당장 (댐을) 철거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수문은 상시적으로 열어서 수질은 회복시키고 그것으로 충분한지 보의 철거까지 필요한지 그것은 위원회 통해서 검증이 필요하고 국민들 동의하에 실시해야겠죠. 그 점에 대해서 동의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 : "제가 말씀드린 거하고 비슷한 말씀을 하시는 거 같은데요?"
 


'찔끔찔끔' 펄스 방류, 이해는 합니다만

대통령이 되신 뒤에 환경단체는 '제발 4대강 수문이라도 열어 달라'고 수없이 호소했습니다. 4년이 지났지만 MB가 4대강에 세운 수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TV 토론회에서 문 후보가 말한 핵심은 '수문 개방'이었는데, 당시 비슷한 말씀이 아니고 '다른 말씀'을 하셨나 봅니다. 아니면 2013년 1월과 7월 감사원이 '4대강 사업은 총체적 부실' '4대강은 대운하를 염두에 뒀다'고 발표를 했는데 아직도 검증해야 할 그 무엇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거나.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울 겁니다. 많은 국민들은 최악의 토목사업으로 기억하지만, '친이계'는 아직도 4대강 사업을 최대 치적으로 꼽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검증할 무엇이 남아 있기보다는 정략적으로 계산할 그 무엇이 큰 까닭이겠지요. 며칠 전 새누리당 대표가 된 '대통령의 입' 이정현 의원이 2013년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에 대통령 직속의 국가 최고 감사기관인 감사원 발표를 보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죠. 

"(4대강 사업은 대운하를 염두에 뒀다는) 감사원 감사결과가 사실이라면 국가에 엄청난 손해를 입힌 큰일이며 국민을 속인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환호했지만, 친이계는 벌떼처럼 달려들었습니다. 아주 혼쭐났습니다. 그 이유는 대통령께서도 아실 겁니다. 2010년 12월 8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석을 점거한 야당 의원들을 한 명씩 끌어내리면서 4대강 날치기 예산을 통과시켰습니다. 불과 2분 만에 '친이'와 '친박'이 혼연일체가 되어 밀어붙였습니다. 지금에 와서 '우리(친이계)한테만 사기 쳤다'고 남 일처럼 말하니 화가 치밀었던 겁니다. 

이러니 눈치를 안 볼 수가 있겠습니까? 최근 4대강 수문을 3~4시간씩 개방해 물을 흘려보내는 '펄스(Pulse) 방류' 조처를 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찔끔찔끔. 친이계를 자극하지 않고, 4대강에 창궐하는 녹조도 조금은 줄일 수 있는 임시방편이라고 생각하겠지요. '4대강 독립군'이 이번 탐사보도에서 금강과 낙동강이 죽어가는 모습을 연일 톱기사로 배치해서인지, 낙동강 수문을 일시에 연다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역시, 잠깐일 뿐입니다. 

아래 동영상을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4대강 독립군 특별탐사보도팀이 촬영한 금강과 낙동강의 시궁창 펄 모습입니다. 4대강 사업을 마친 뒤 지난 5년 동안 수문에 갇혀서 쌓인 퇴적토입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밑에서부터 썩으면서 올라오는 메탄가스 구멍이 펄 위를 빼곡하게 채웠습니다. 그 속에 이상한 생명체도 근접 촬영했습니다. 환경부가 지정한 수질 최하 등급인 4등급 지표종 실지렁이가 수천수만 개의 구멍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고 꿈틀거렸습니다.  
 
▲ 24일 오전 충남 세종시 금강 세종보 하류에 있는 마리나 선착장에 실지렁이가 보이고 있다. 실지렁이는 환경부가 정한 환경오염 최하위 등급인 4등급 지표종이다. ⓒ 이희훈

수질 최하등급 지표종 발견... '슬픈' 특종

4대강 독립군 특별탐사보도팀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대구 달성군 화원유원지의 사문진교 아래에서 실지렁이를 최초로 발견했습니다. 영남인 1300만 명의 식수원에 사는 수질 최하등급 지표종. 그 뒤에 많은 언론들이 잇달아 보도해서 특종을 건졌지만, 끔찍했습니다. 낙동강 식수원에 비상 경고등을 켜는 '슬픈 특종'이었습니다.   
 

MB가 4대강에 남긴 흔적은 시궁창 펄과 깔따구와 실지렁이입니다. '녹조라떼'는 이제 익숙한 풍경입니다. 탐사보도 때 만난 농부는 굴착기로 농지를 파 보이며 침수피해를 호소하고, 빈 그물을 건진 어부는 물고기 씨가 말랐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금강에 이어 식수원인 낙동강에도 실지렁이가 사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내년 대선정국에는 실지렁이와 깔따구가 한강까지 덮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게 펄스 방류로 지워질까요? 인간으로 치면 물을 정화해서 해독작용을 하는 간이 썩었는데, 녹색으로 쑥대밭이 된 얼굴에 연고를 바르는 격입니다. 금빛 모래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다시 솟구쳐 오르고, 은빛 여울에서 윗물과 아랫물이 한 몸뚱이로 뒤섞여 물속에 산소를 공급하는 게 살아있는 강입니다. 펄스 방류로 윗물만 살짝 바꾼다고 4대강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썩은 펄 바닥을 뒤집어야 합니다.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산소 제로 지대를 없애야 합니다. 

수문을 열고, 4대강 청문회를 여십시오
 
▲ 23일 오후 충남 부여 금강 백제보 상류 2km 지점에서 오마이뉴스 김종술 시민기자가 강바닥의 토양을 채취해 살펴보고 있다. ⓒ 이희훈

우선 수문을 여십시오. 잠깐 열었다 닫지 말고, 계속 열어두십시오. 아직도 MB 측에서는 '녹조는 날이 뜨거워서 생기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핑계는 이미 거짓임이 밝혀졌습니다. 그 뒤에 사회적 토론을 해서 홍수, 가뭄, 지역경제 효과, 물 관리 등에 쓸모없는 댐의 처리 문제를 결정하면 될 것입니다. 22조 원을 들여 만든 4대강 16개 댐은 지금도 국민들의 호주머니 돈인 혈세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부친의 친일 행적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사실이기 때문이죠. 건국절을 만든다고 해서 당시 신문에 대서특필된 부친의 '혈서'를 희석할 수는 없습니다. '위안부' 피해자가 피눈물 흘린 역사를 팔아넘길 수는 없습니다. 10억 엔. 이건 얼마 전 잘 나가는 고위직 검사가 뇌물 주식으로 얻은 시세차익 액수와 비슷합니다. 굴욕적인 한일회담으로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비난받던 부친의 뒤를 이으시렵니까?

내세울 치적이 없어서 '4대강 사업'에만 골몰했던 전임 대통령처럼, 대통령께는 임기 4년이 지나도록 내세울 만한 게 없습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한 몸이 되어 저지른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수문을 열면 단군 이래 최악 토목사업의 장본인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일을 피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환경운동연합, 대한하천학회, 불교환경연대가 공동 기획한 '4대강 청문회를 열라'는 주장을 받는다면 4대강을 지배하는 MB 흔적을 지울 수가 있습니다.

이건 대통령께서 서릿발 같은 권력의 칼을 휘둘러 단죄해왔던 '배신의 정치'와는 다릅니다. 정략적인 판단으로 4대강을 배신하지 마십시오. 친이계의 반발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자연의 역린이 꿈틀대고 있습니다. 국민을 배신하지 마십시오. 대선을 앞두고 먹는 물까지 망친 '이명박근혜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은 기사 원고료' '서명운동'에 참여해주십시오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인사드립니다. 이 기사를 끝으로 지난주 5박 6일간 진행된 현장탐사보도를 마칩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으로부터 4대강을 해방시키려고 오늘도 금강과 낙동강에서 고군분투하는 김종술, 정수근(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시민기자를 위해 '좋은 기사 원고료 주기'로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명진 스님(봉은사 전 주지)은 직접 금강 탐사 현장으로 찾아오셔서 "시궁창 4대강, 시궁창 대한민국"이라는 어록을 남기셨습니다. 
 

 
좋은 기사 원고료 목표액 3000만 원이 모이면 10년 동안 1000개의 댐을 허문 미국으로 해외취재를 떠날 예정입니다. 지긋지긋한 4대강 사업 논란을 끝낼 대안을 제시하겠습니다. '4대강 청문회를 열자' 서명운동에 참여해주신 분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아직은 참여자가 많지 않습니다. 국회 4대강 청문회 문을 열기에 부족합니다. 정치권이 하지 못하는 일을 우리 10만 명의 시민들이 힘을 합쳐서 활짝 열었으면 합니다. 5년짜리 대통령이 세운 오만의 댐을 허물고 그 위에 '갇힌 물은 썩는다'는 상식을 세웠으면 합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각 분야 전문가들의 심층 분석과 인터뷰 기사가 이어집니다. 계속 응원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전 기사 보기] 4대강 청문회를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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