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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초에
우리 노동조합으로 정기적인 칼럼 투고 요청이 들어왔고,
몇몇 동지들이 번갈아 쓰기로 했다.
그 첫번째 글을 내가 쓰기로 하고 9월 12일엔가 보냈는데,
신문은 이번 주에 와서야 창간을 했는지
엊그제 실렸다고 전갈이 왔더라.
제목은 '출연연 몸은 출연연이 잘 안다'로 바뀌었는데, 좀 생뚱맞다.
원래 붙은 제목부터 좀 거시기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암튼, 원문은 요기에 있고, 신문에 실린 건 첨부했다.
정부가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 PBS(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를 도입한 것은 1996년의 일이다. 초기에 ‘총연구원가 프로젝트베이스시스템’으로 불린 데서 알 수 있듯이, PBS는 인건비를 포함하여 연구에 소요되는 실제 비용을 프로젝트에 모두 반영하는 제도이다. 정부는 PBS를 통해 연구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연구책임자에게 권한과 책임을 모두 주겠다, 연구비만 확보하면 비정규직도 정규직과 동등한 처우가 가능하다, 연구만 잘하면 누구나 연구책임자가 될 수 있고 고액연봉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얘기들이 당시 정부가 내세웠던 PBS 강행의 논리였다.
연구현장의 여론은 전연 딴판이었다. PBS는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여 출연연의 정체성을 잃게 할 것이며, 정부가 내세운 PBS의 목표는 결코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1996년 7월에는 출연연 연구원 4천여명이 과천청사에 모여 PBS 폐지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PBS를 강행했다. 그리고 예고된 것처럼, 지난 12년 동안 PBS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연구원들은 자신들을 ‘보따리장사’, ‘앵벌이’라고 자조했다. 인건비를 벌기 위해서 프로젝트 수주경쟁에 매달렸다. 때로는 동료들과 낯 뜨거운 경쟁도 불사했고, 자신의 전공을 뛰어넘기도 했다. 인건비도 충분히 확보되기 않아 비정규직은 도리어 더 늘어났다.
출연연에 무한경쟁시대가 도래했다. 40대 박사들의 돌연사가 이어졌고, 연구비 압박에 자살하는 연구원도 생겼다. 출연연의 고유기능은 실종되었다. 그래서 출연연 개혁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PBS이다. PBS는 국민에게는 이름도 생소하지만 연구원들에는 길고 처절한 악몽이다. 정권과 장관이 바뀔 때마다 PBS는 논란거리가 되었으며, PBS 개선은 대선이나 총선의 단골 공약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인건비를 70%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약속한 것은 출연연의 절박한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어디 PBS 뿐이랴. 1997년 이후에는 IMF 환란 극복을 빌미로 출연연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공기업과 같은 잣대로 평가받고 구조조정을 강요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연봉제, 계약제, 정년단축, 퇴직금누진제 폐지 등으로 인해 연구원들은 철퇴를 맞았다. 많은 연구원들은 살 길을 찾아 대학으로 떠나고 심지어 외국으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지내온 출연연의 고난에 찬 이력서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6개월이 지났다. 이제 정부는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른 정체성 확립 노력이 부족했다고 출연연을 나무란다. 연구원의 사기가 떨어지고, 연구생산성이 저하되고, 국가경쟁력이 뒤떨어지게 된 것이 모두 출연연의 혁신과 개혁이 부족한 탓이라고 비판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푸는 우선적인 일은 출연연의 정체성 확보라고 충고한다. 대학과 민간이 하기 어려운 대형 융·복합형 기초연구와 국가사회적인 문제(National Agenda)를 해결하는 연구를 중심으로 출연연의 정체성을 확보하라고 말한다.
얼핏 들으면 일리는 있지만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아니다. 출연연은 그동안 정부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고 모든 역량을 다 쏟아 과학기술입국에 매진했다. 그러므로 지금은 정책 실패의 책임을 출연연에 떠넘길 때가 아니다.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침대와 같은 획일적인 정책으로 출연연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연구 환경 구축에 실패한 정부가 먼저 지난 실패를 반추하고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PBS의 실패는 좋은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PBS를 도입할 때 연구현장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그 후에도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불완전한 제도의 도입으로 큰 희생을 치른 것은 출연연이었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섣부른 개혁이나 ‘선진화’가 아니다. 시간이 걸려도 목표가 분명하고 실천계획이 충실하며 출연연 현실을 잘 반영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으고 연구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정책 당국과 연구현장이 따로 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럼 출연연은 어떻게 해야 하나? 정부 정책을 수동적으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검증하고 비판하고 충분히 납득한 다음에 실행에 옮겨야 한다. 자기 몸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했다. 정부와 국민은, 출연연 스스로 환골탈태하여 재도약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2008.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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