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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음님의 [[근조] 故 조문익 동지의 명복을 빌며] 에 관련된 글.
챙길 일이 있어서 늦은 밤길을 나섰다가
거리에 눈이 다시 쌓이는 것을 보고
어제 아침 눈길에서 당한 일이 끔찍하게 되살아나서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그 때 민길숙 동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문익 동지가 죽었다고 했다.
-안그래도 몸이 안좋았었잖아요?
=교통사고예요. 이번이 두번째 사고죠.
-만난지도 한참 되었는데 지금 뭐하고 있죠?
=전북본부 부본부장 그만두고는 그냥 우리 연맹 조합원으로 있지요.
-어디?
=전북평등노조 조합원이요.
-어디서 사고가 났어요?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어요. 전북본부 김호근 동지가 지금 남원으로 가고 있다니까 자세한 소식이 들어오면 연락드릴께요.
-오늘은 늦어서 어렵겠네요.
=예, 내일 중앙위원회는 끝내고 나서 내려가봐야겠어요.
-그럽시다.
조문익 동지의 얼굴만 또렷하게 기억난다.
오래 전에 인사를 나누고도 특별한 얘기를 주고받지도 않았던 사이지만,
작년에 이수호 위원장에게 썼던 편지글이 내게도 긴 여운을 주었다.
참 아까운 동지가 세상을 떠났다.
저 세상에도 사람들의 여한과 분노를 풀어줄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하는 뚱딴지같은 생각이 든다.
동지의 명복을 빈다.
[부고] 민주노동운동에 헌신해온 조문익 동지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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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민주 노동운동에 헌신해온 조문익 동지 별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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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노동운동에 헌신해온 조문익 동지 별세 [부고] 향년 43세. 7일 별세, 전북대병원 영안실 2층, 5일장 [근조] 삼가 조문익 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민주 노동운동에 헌신해온 조문익(향년 43세) 동지가 교통사고로 7일 밤 9시 50분경 운명을 하셨습니다. 이날 장수군 번암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제설차의 사고로 다시 돌아올수 없는 길을 떠났습니다.
고인의 유해는 전북대학교 대학병원 영안실에 안치됐습니다. 빈소는 전북대병원 영안실 2층입니다. ☎(063)250-2450
고인의 아내 이현선 님, 상주(喪主) 아들 조용화 조용창 군, 친형 조창익 님과 친동생(3인), 부모님 등 유족들은 노동시민사회단체 인사들과 장례를 엄수키 위해 장례일정 협의에 들어갔습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본부장 신동진)은 8일 유족과 협의해 각 시민사회 민중단체 등 제 단체에 장례위원회 구성을 위한 절차 마련에 들어갔습니다. 장례위원회에서는 8일 오후 2시 위원회 논의를 거쳐 발인, 영결식, 운구, 안장, 장지 등의 장례일정을 주관키로 했습니다.
고 조문익 장례준비위원회 관계자는 “고인의 명확한 사인을 규명한 후, 꾸려질 장례위원회에서는 유족과 협의해 민주노동 열사 5일장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인은 80년대 학생운동과 90년대부터 민주노총 등의 활동을 통해 항상 투쟁의 현장에서 민주 노동운동에 몸을 아끼지 않았으며, 노동열사추모사업회, 노동포럼, 노동자학부모연대, 인터넷 매체 미디어 운동, 이주여성을 위한 논실마을 운영 등 각계와 연대해 폭넓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삼가 선배노동자로 모범을 보여주었던 고 조문익 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고 조문익 동지가 살아온 길> 64. 4 전남 곡성 출생 82. 남성고등학교 졸업 83. 고대 철학과 입학후 제적 85. 전북대 철학과 입학 90. 전북대 철학과 졸업 92. 전북노련 활동 95~2005 민주노총 전북본부 활동(사무처장, 부본부장) 2002 참소리 상임운영위원 2004 민주노동당 전북도당 정책위원 2005 민중언론 참세상 창간제안자 2005 호남사회연구회 분과위원 2005 장수 논실마을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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