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로봇은 누구의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간만에 이사에 버금가는 집구석 구조변경작업을 하다보니 온 삭신이 알알이 쑤시고 아픈 상황이지만, 점검해야 할 구라가 보이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포스팅.
기본소득당을 창당하겠다며 열심히 뛰고 있는 그룹에서 매체에 기고한 글이 있는데, 그 글에 보면 기본소득의 재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글의 취지 자체가 기후위기의 대안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기후악당' 국가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위한 해법은 '생태배당'"이라는 도식을 만들어낸다.
요약하자면, 화석연료사용에 따른 탄소부담금, 핵발전 억제를 위한 원자력안전세 등 세목을 정해 세금을 걷음으로서 화석연료사용과 원자력사용에 제동을 거는 한편, 여기서 마련된 세금으로 기본소득주자는 거다. 이들의 논리가 항상 이런 식인데, 자본거래세, 토지보유세, 글로벌 IT기업에 대한 속칭 '구글세', 이젠 여기에 로봇세 까지 걷어 기본소득 재원 마련하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구구단을 외울 수 있을 정도의 웬만한 산수능력만 있으면, 이들이 주장하는 기본소득이라는 것이 자본주의체제의 존재를 전제한다는 것쯤은 단박에 알 수 있다. 기본소득을 주기 위해선 탄소부담금을 거둘 수 있을만큼의 화석연료사용이 있어야 하고, 그렇게 따지면 원자력 사용이 지속되어야 한다. 투기적 금융자본의 이윤추구가 유지되어야 하고 토지의 지대가 계속되어야 하며 IT기업은 빅데이터가 되었든 AI가 되었든 간에 유저들의 콘텐츠와 개인정보를 이용한 이윤확보가 보장되어야 하고 로봇으로 인한 무인생산은 발전되어야 한다. 그래야 기본소득이 나온다.
이런저런 세금 거둬서 기본소득 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어라, 갑자기 자본가들이 대오각성해서 아니 이젠 화석연료 쓰지 말아야겠다, 원자력 폐기하자, 토지는 국유화로! 투기성 금융거래는 물론 주주자본주의 때려치자! 막 이러면 어떻게 될까? 어라? 세금이 더 이상 안나오네? 아니, 이런 돈이 없잖아? 그럼 기본소득 줄 수가 없네? 자, 이렇게 되면 그동안 기본소득 받아서 겨우 살던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될라나? 이게 그냥 웃기는 소리처럼 보일까?
저렇게 각종 세금 거둬서 기본소득 주자는 논리는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 경선에 출마한 앤드류 양이 하는 이야기와 흡사하다. 앤드류 양은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는 여러 방안들을 예시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현찰을 국가로부터 지급받는 것이 꿈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앤드류 양의 제안은 그 뒤편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우선 그가 이야기하는 '타임뱅크'를 한 번 보자. 기본소득을 가지게 되면 일단의 시간이 남게 되는데 이 때 노동시장을 벗어난 사람들은 돌봄 서비스 등 공동체의 동료시민들에게 필요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P2P로 이루어지는 "동료생산"). 그러면 이들이 제공한 여러 서비스들을 시간 크레딧으로 누적하여 공동관리함으로써 P2P 생산기반 노동력 Commons를 구축한다는 거다.
언뜻 보기에 이는 굉장히 획기적인 안처럼 보이지만, 이미 이러한 아이디어는 많이 거론된 바가 있다. 협동조합형태의 '봉사공동체'를 구성하고 각각 제공한 서비스를 시간에 따라 적립하여 다른 이의 서비스로 환원하는 체제의 아이디어들이 있었다. 실제로 일부 대학의 교수와 교직원이 실험적으로 진행했던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그런데 앤드류 양이 이야기하는 "동료생산"은 이렇게 자기 일이 있는 상황에서 하는 게 아니다. 기본소득을 받지만 임노동 체제 안에 머물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앤드류 양이 이 이야기를 하는 맥락이 있다. 그것은 앤드류 양이 제시하는 기본소득은 그 반대급부로 노동시장유연화가 따라온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명확히 짚지 않으면 앤드류 양의 기본소득 주장은 유토피아론에 머물게 된다.
바로 여기서, 조세기반의 기본소득 재원마련이라는 도식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볼 수 있다. 그것은 지금의 자본주의적 이윤획득체계가 유지될 때에만 이들이 이야기하는 기본소득이 가능한다는 것이다. 환언하자면, 이 기본소득 논의는 자본주의의 영속을 전제한다. 이 기본소득 논의 안에는 생산수단의 소유주체에 대한 논의가 없다.
앤드류 양의 기본소득 재원 요소 중 중요한 것이 바로 IT다. AI와 빅데이터, 이를 통한 무인자동차, 무인택배, 그리고 로봇산업을 위시한 공장무인화. 그런데 그 AI와 빅데이터, 무인자동차, 무인택배, 무인화된 공장은 누구의 것인가? 이를 위해선 수많은 노동자들이 잘려 나가야 한다. 그 노동자들에겐 기본소득이 주어진다. 대신 노동시장 유연화를 받아야 한다. 어찌 하겠나?
그럼으로써, 조세기반 기본소득을 만고의 영약으로 생각하는 자들은 결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사회주의는 공동체 동료시민에 대한 배당을 이야기하기 전에 생산수단의 전유를 고민해야 하고, 현찰 지급 이전에 기반수단의 제공과 이용이 사회화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것 없이 현찰 주겠다는 건 그냥 자본주의의 심장에 스팀팩을 박아주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얼핏 보면, 자본가들의 주머니를 털어 인간다운 삶의 최저조건을 마련한다는 형식논리가 마치 대단한 진보인 듯 보인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보면 이건 자본가들이 먼저 반길 이야기다. 로봇에 세금 매겨 기본소득 마련하자는 주장 전에 "그 로봇은 누구의 것인가?"를 물을 때 모든 이에 대한 사회적 분배의 출발이 이루어질 것이다.
아이구, 그나저나 사회적 분배고 나발이고 기본소득론자들이 좀 더 분발해서 일단 현찰부터 뿌려지게 해봤으면 좋겠다. 이거 뭐 이런 수준으로 언제 현찰이 공중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날을 겪어보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