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덮힌 남산 - 앙겔부처님께 미움받지 않기 위해

잡기장

요즘 블로그는 소홀히 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만 한다고

앙겔부처님의 진노를 사기 직전인 것 같아 얼릉 포스팅. 굽신

 

저 토악질 후 며칠간 아주 쇼를 하다가

1월 2일 새벽에야 욕심을 버리고 겨우, 하지만 순식간에 글을 써버렸다.

완전 홀가분.

새벽 첫차로 증산동 집에 와서는 바로 퍼졌다.

빈집에선 재미난 신년 파티가 계속되고 있었겠지만 그날, 다음날까지 가지 않고

집에서 가족들과 만든 만두로 배를 빵빵 채우고는 그동안 다운받아 놓고 안 본 영화를 보다 졸다 하며 보고 치웠다.

받아 놓고 안 본 건 막상 보려니 재미없을 것 같아 미룬 건데 역시나 재미 없더라

며칠 방전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금새 회복.

 

MWTV에 내 폰이 있어 남산에 오려 하니 아침부터 폭설

눈, 오직 눈때문에 겨울을 좋아하는 지각생은 그저 좋을뿐

예전엔 눈 치우는 아저씨들이 싫었지만 이젠 내가 그 아저씨가 되어 눈을 치우지만

마음은 여전히 기껍고,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려 내가 치우며 지나온 길을 다시 덮는 눈이 반갑고 고맙다.

 

글쓰느라 모든 신경을 써버렸더니 오늘부터 시작되는 이번 주 일정이 하나도 생각이 안난다.

심지어 폰까지 없으니 전화나 문자가 왔는지 알 수 없고, 전화번호만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재미 붙은 트위터를 끊고 지하철을 타고 남산쪽으로 오면서

아이폰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하지만 그러면 자나깨나 트윗만 하고 있을 내 모습이 그려진다.

 

녹사평역에서 거슬러 오르는 완만한 경사도 걷기가 힘들다. 내 신발은 발목까지도 안 오고, 바닥은 맨들맨들. 다리와 어깨에 은근히 힘이 들어간다. 가파른 경사 직전에 꺾어 일단 아랫집에서 쉬자.

아랫집에 가니 뉴페이스가 많다. 왠지 그런 모습이 좋다.

자전거 메신저 지음이 MWTV로 가는 내게 배달할 물건을 전해준다. 어이 어이 나 그냥 걷기도 힘들다고. 가방에 넣고 나선다. 내려올땐 썰매 타고 와야지.

 

MWTV와 수유+너머에 물건을 전해준다. 눈길을 뚫고 온 자전거 메신저, 캬. 두 발로 왔지만.

폰을 챙겨 충전해보니 오늘 까먹은 일정이 생각났다. 아... 이거였구나. 그렇게 생각이 안나더니

역시 무료IT지원 서비스였다. "지반장 서비스"란 명칭을 추천 받았는데, 홍반장 영화를 다운 받아 봐야겠다.

 

소월길을 걸었다. 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남산, 소월길. 캬.. 폰카를 들고 찍었다. 발칙한님이 구해준 폰으로 이제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젠더를 구할때까진 옮기지 못하는게 문제지만 -_-

눈덮힌 남산. 입이 헤벌어진다. 남산이 있어 서울이 다행이라는 생각은 늘 했는데 눈 선물 듬뿍 받은 남산의 모습이 참 아름답고 신비롭다. 발목까지 푹푹 들어가는 길을 발목까지 오지 않는 신발을 신고 걷는다. 장갑이 있고, 신발이 미끄럽지 않고, 가방에 놋북이 들어있지 않았다면 막 뛰어다니고, 몸을 날리고 뒹굴고 했을 것 같다. 대신 계속 걸으며 서억서억뽀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를 듣는 것으로 만족.

 

남산도서관이 정기휴일이라 용산도서관에 가서 밥을 먹곤, 소화시키러 밖에 나왔다. 문득, 다시 걷고 싶어졌다. 내일이면 해가 쨍쨍 뜰지 몰라. 그럼 많은 눈이 조용히 사라지겠지. 눈이 더 오면 좋지만 아니면 적어도 내일까지만 날이 흐리면 좋겠다. 지금 당장 걸어야겠다. 남산 길을 따라 올라갔다.

올라가는 것도 미끄러울 만큼 신발은 엉망인데, 내려올 걱정은 내려올때 하기로 하고 계속 걸었다.

 

가는 길은 염화칼슘을 얼마나 뿌렸는지 눈이 벌써 녹아 검은 아스팔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을 주변으로 돌려 눈덮힌 산의 풍경을 보면서 걷는다. 쌓인 눈은 어쩜 저리 이쁜지.

공터에서 결국 흥을 못 이기고 가방을 내려놓고는 몸을 날린다. 허우적 허우적 우하하 윽 춥다. 한 십여 초라도 낭만을 느끼고 싶은데 금방 추워 몸을 일으키고 눈을 턴다.

잠시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니 눈이 반짝반짝한다. 결정 모양이 그대로 보이는 눈이 옆에서 빛난다. 저 멀리 보이는 도시의 불빛보다 더 아름다운 반짝임이 주변에 가득하다. 한 번 보이기 시작한 반짝임은 보지 않으려 해도 보인다. 사람들의 고통과 아름다움도 한번 보고 나면 안 본 것처럼 살 수 없고.

 

타워 부근에서 한참 기분을 내다가 내려오는데

역시나 올라갈때보다 두배는 더 힘들다. 차도로 내려오기 싫어 중간에 나무 계단길로 빠졌다가 수없이 뒹굴고 항복, 다시 차도로 내려왔다. 소월길을 만나 길 한가운데로 걸어 해방촌 오거리까지 왔다.

어디로 갈까. 이제. 빈집도, 증산동 집도, 다른 어떤 곳도 딱히 가고픈 마음이 없다.

미끄럽지 않은 신발이 있다면 아직도 더 걷고 싶은데.

 

하하... 눈이 와서 힘든 사람들한텐 미안하지만, 종종 이렇게 많이 내려주면 좋겠다.

이것만으로도 겨울은 기다린 보람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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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4 21:30 2010/01/0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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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부처 2010/01/04 21:49 URL EDIT REPLY
걷기는 좀 힘들어도 눈와서 쩜 따뜻하규.. 나도 눈 너무 좋아함 >ㅅ<
진노의 순간을 잘 모면하셨네염 ㅋㅋㅋㅋ
지각생 | 2010/01/04 22:02 URL EDIT
눈와서 좋은 점 또 하나 : 눈 치우는 소리, 눈 밟는 소리, 옆사람들이 속삭이는 소리 말고는 고요하다.. 남산 꼭대기에서 조용한 도시 야경을 바라보며 느낌
스머프... 2010/01/05 02:06 URL EDIT REPLY
나두 눈 좋아라 하는 1人...불편하긴 했지만, 지각생처럼 더 내렸음 하는 맘이 굴뚝! 그리고, 내 문자가 씹힌 이유가 있었구만~ 그럼 그렇지. 그렇게 두개, 세개씩이나 씹을 지각생이 아니지...ㅎ
지각 | 2010/01/05 13:13 URL EDIT
내 폰이 딴 사람에게 있었음. 답이 없으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거 아니겠소 -_-
윗집 마고 2010/01/05 23:08 URL EDIT REPLY
아이고, 각새이~
눈이 엔간이 와야말이지(좋다말았다구!)
왜냐고?
처음에 샤방샤방 눈이 올때야 기분 괘않았다구
근디
엄치비 쏟아지는 꼴에 질려버렸는데다
오늘 집에 돌아오는데
마을버스가 해방촌오거리까지 안올라오고
후암동 종점에다 승객들을 내려놓더라 이말이야!! 어쩌라구~~~
씩씩거리면서 온갖 욕을 혼자 씨불거리면서
고바위 길을 사부작사부작 올라오고 있었는데
마침 내려가던 기린이 날보구 아는 척을 하네그려~
(아, 반가워할 상황이 아니었다구!!)
암튼, 오데가느냐구 물었더니 "용산"에 간다하데~
"그려? 잘 다녀오셔!" 그랬거덩...

긍께, 흐미, 뭔 눈이 이따우루 마이 온다냐?
할망구는 집구석에 쳐박혀 있으라는 야그지?
(화딱지 만땅이여!!)

=.=;;
지각생 | 2010/01/06 19:21 URL EDIT
화난다고 사람을 왜 패고 꼬집어! 마고 각성하랏!!
마귀할멈 2010/01/06 22:03 URL EDIT REPLY
@.@!!

바보, 얼간이, 멍텅구리, 말미잘!!!

흥!
각새이~
"대항폭력" 이런 말 몰러?
(나보고 또 "언어폭력"한다구 뭐라 허것지?)

당분간 윗집에 "출입금지" 시키겠당!!

>.<;;
이제는 "무서운 맹견"도 없는데..
어쩌까이??


지각생 | 2010/01/06 22:23 URL EDIT
맹견보다 마고가 무섭긴 하지만, 뭔 권리로 내 출입을 막는다냐~ 웃기셩 진짜 ㅋㅋㅋ
마귀할멈 2010/01/08 19:25 URL EDIT REPLY
각새이~
나에게 "권리"는 뭔 권리가 있갓어?
그냥 "땡깡"으로 개기는거쥐!
(오기만 와봐라, 있는대로 땡깡을 날려주마!)

ㅡ.ㅡ;;
지각생 | 2010/01/08 19:48 URL EDIT
이 악플러!! 내 블로그에 "출입금지" 시키겠당!!!
악플러!! 2010/01/09 10:07 URL EDIT REPLY
무슨 "권리"로? (분명히 밝히건데 "권리"는 인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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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위한 토악질

잡기장

지난주에 마치기로 한 홈페이지 작업이 이번주까지 이어지면서

이번주 화요일까지 쓰기로 한 글을 오늘부터 쓰기 시작하다.

다른 마음으로 임하기 위해 지금껏 자리와 밥을 아낌 없이 제공한 MWTV가 아닌

남산도서관에 오늘은 와 있다.

 

내가 한 가지에 집중하는 방법은 여럿 있지만 그 중 한가지는 굉장히 쪽팔린 짓을 하나 해서

그거 어떻게 좀 만회하려고 뭔가 급 작성해서 내뱉는 것이다.

지각생 블로그에 오래 온 분은 얘가 꼭 찌질한 글을 한 두개 쓴 다음에는

그럴듯한 매뉴얼이나 뭔가 있어보이는 글을 쓴다는 걸 아실 테다. 뭐? 아니라고?

 

그러니 잘 알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 하루만에 공부해서 쓰기 위해 급 집중모드로 들어가야 하므로

뭔가 게워낼 거 있으면 게워보자. 사실 별로 욱! 넘어올 느낌은 없는데 "쓰기"를 눌렀다.

홈페이지 작업때문에 며칠 동안 꼼짝 안하고 사무실 책상에만 붙어 있었던게 짜증나고 분하고 억울하고 안타깝고 슬프고 괴롭고 원망스럽고 해서 이번 쓸 글만 보내고는 여행을 가던 잠적을 하던 해야겠다. 정리할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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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에서 사는게 재미가 없어지고 있다.

내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걸 알면서도 그냥 얼버무리며 때우며 살아왔는데

나를 무진장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생기고는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참.. 설마 나에 대해 누군가가 이런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산 건 아닐테지. 아녔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이런 류의 생각은 쉬이 사라지지 않으니 곤란하다. 역시 내가 몇몇의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하고 어쩌면 몰아냈는지도 모른다.

 

 

할 수 없는 말, 하기 어려운 말, 하지 않는게 좋아보이는 말. 적어도 지금은 하지 말자고 마음먹게 되는 말이 많아진다. 말이 제약받는다는 것은 내 생각과, 행동과, 마음 씀씀이가 모두 제약을 받기 시작한다는 것과 같은가보다. 한가지의 제약이 다른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재밌게 했던 것이 무미건조해지고, 편하게 했던 일들에 힘이 들어간다.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야 편안함을 느끼고, 누군가의 위치, 존재를 계속 의식하고 내 행동과 위치, 입장 그리고 심지어 생각과 기분까지 스스로 조절하게 된다.

 

 

빈집에서 내가 느꼈던 여러 낙 중 하나였던, "예고 없이 찾아온, 예측할 수 없었던 손님과 만나 나와 다른 세상을 살짝 들여다보고 여행했던 것"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 현실적 이유라 하더라도, 특히 투숙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와 일정들에 대해 누군가 계속 체크하는 것이 좀 딱딱하고 형식적.. 아니 뭐랄까 아니 사실 그말인데..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근처에서 술 먹던 사람을 데리고 빈집에 가서 한잔 더 하고 있으면 미리 얘기하지 않은 손님을 데려온 것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이상하다. 어디까지나 서로 손님들이 겹쳐서 낭패를 보는 일만 피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누가 문의를 했을때 "오늘 방 비었네요. 어서 오삼" 혹은 "다른 손님은 있는데 그 정도면 어떻게든 되겠군요" 정도로 말할 수 있으면 충분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누군가가 책임있게, 체계적으로 엄격하게 따져야 할 것은 빈집의 식재료와 음식, 가사 노동 분담 이런 것인데, 어쩌면 의도적으로 느슨하게 하던 것을, 정작 그것때문에 큰일이 난적이 없는 것을 가지고 엄격하게 하는 것이 여간 불만스럽지 않다.

어느 마을에 호기심이 동하는 좀 "이상한" 집이 있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거기를 기웃거리고 염탐하고 그것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고, 탐험했지요. 어떤 사람들은 다시 돌아왔지만 그전과는 무언가 달라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집에 대한 얘기는 점점 더 이웃 마을로, 저 멀리 있는 곳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부터 그 집의 현관 옆에 누군가 서 있었는데, 그때부터 그 집을 스쳐가던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와 슬쩍 안을 들여다보는 것을 그만 두기 시작했어요. 빈집 동화. 끝.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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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쓰게 된 것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좀처럼 사람들이 물어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묻지 않아도 혼자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 분위기를 지배하거나 다른 사람을 억압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어찌 되서 그랬던 간에 누군가에게 쌓인, 고인 얘기가 많다면 분배하고 흘러보내야 되는데, 그게 매끄럽지 않은 사람은 대놓고 혼잣말 할 수 있는 블로그가 좋은 해소의 공간이다. 그리고 내게 관심이 있으나 다가오기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과 나의 한 경로, 메시지의 통로, 만날 수 있는 홀.

 

자신의 얘기를 스스로 해야 한다고 다들 말하지만, 사실 그것도 기술인 것 같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누구나 똑같다. 자신의 얘기를 잘하고, 남의 얘기를 듣는 것도 기술이고, 그런 기술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기술이란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이 혹 있다면, 여기서 말한 기술이 마음이 없는 순전한 기교를 뜻하진 않는다는걸 덧붙이고 싶다. 난 그래서 원한다. 질문을. 좀 더 찌르는, 좀 더 과감한, 좀 더 함축적인, 좀 더 어려운, 그래서 좀 더 불편한. 질문은 듣는 이에게 던지는 촉매제로서 그가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고 속에서 떠다니는 생각과 감정의 알갱이들을 하나의 문장으로 응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질문은 그 사람의 세계에 다가가고 싶다는,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달라는 두드림이다. 그리고 좋은 질문과 인내심, 기다림은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조합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어제 한 회의가 있었는데, 조직의 위기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하는, 어쩌면 재미 없을 게 뻔한 자리. 하지만 익숙한 분위기. 홈페이지 작업으로 심신이 지치고 감기에 훌쩍이며 가서 회의 안건지를 손에 잡았다. 지금껏 오랫동안 함께 했던 사람들은 오지 않았지만 새로운 사람이 함께 했다. 그는 관찰자의 입장으로, 호기심이 부분적으로 작용해서 함께 했다고, 뒤에 내게 말했다. 그래서 그는 내게 질문들을 던졌다. 그 질문은 그들과 함께 있을때 누구도 그런 식으로는 던지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그 질문들은 즉시 나를 변화시켰고, 마침 심신의 피로로 흥분이 가라앉고 지금까지 내 스스로 두르고 있었던 내 얼굴과 감정을 벗어놓았던 상태였기에 그런 질문들에 대해 당황하지 않고 답을 시도했고, 그 답을 내 입에서 말하면서 나는 살짝 놀랐다. 내가 그때의 상황들, 그때의 내 감정들, 지금의, 지금까지의 내 감정들에 대해 그 정도로 구체적으로 생생히 (물론 충분하진 않지만 평소에 거의 못 그런다고 생각했으니)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었고, 알고 있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언제나 서로 만나면 시간에 쫒기고 파국을 피해 변죽을 올려야 했던 이야기들, 그 속에 묻혀지고 휩쓸려가고 말았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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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내게 묻지 않을까? 충분히. 집요하게.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한 때 내가 되게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안 후로, 전혀 다른 사람들의 신천지가 있다는 것을 안 후로, 그리고 꼭 깊이 만나고 싶은 세계들이 생긴 후로 내 방식이 변했다. 내가 갖고 있는 "재미없을 것 같은" 이야기, 혹은 소수의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혹은 굳이 그들에게 재미 있는 얘기를 해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만 재밌어 할만한 얘기, 어쩌면 재미 있을 수 있지만 외계인들과 소통할 수 있을만큼 재밌게 "짜여지지 못한" 이야기를 날로 하는 것등 따위는 집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냥 다른 사람들에게 툭 질문을 던지고는 그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듣고, 맞장구 치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내가 여러사람들과 어울릴때의 패턴이 되기 시작했다. 사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은 거의 누구나, 재미난 구석들을 갖고 있기 마련이고 그걸 꺼낼 수 있게 물어보고, 맞장구쳐주고, 재밌어 해주면 (적어도 그런 액션을 취해주면) 그들은 더 신이 나서 나머지 시간을 자신의 얘기로 채워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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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만나는 사람들이 지각생은 재밌게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재밌지만 힘들어요. 너무나 뻔하고 참신하지 못한 답을 하는 것 같아 뭐한데. 사실 이 말이 군더더기 없는 그대로의 말이다. 재밌다는 것을 드러내는 웃음과 분주함이 몸에 배어서 그러는지, 그것이 부러워서 그런지 모르지만, 때때로 나는 그 말을 하고 살짝 기다린다. 그 "힘듬"에 대해 물어봐주진 않을까? 역시나 여유 없는, 쫓기는 삶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힘듬만으로 벅찬지 다른 사람의 힘듬에 대해 물어보는 것은 쉽지 않다.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뭔가 원하는 획책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힘듬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하고, 대개 불순하다. 사회운동은 끊임 없이 누군가의 힘듬을 까발리는데, 그것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이중적 반응. 정부와 기득권층의 이중성, 그리고 그 까발리는 주체의 이중성. 아주 배배꼬아 사악하게 바라보고 말하면,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른 사람의 아픔을 통해 목청높여 열올려 얘기하는 것도 같은 모습들. 얘기가 딴데로 간다.

 

 

사람들이 날 좋게 보고, 믿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떡 봐도 쉽게 건드리면 안되겠거나 그래도 소용없다고 생각되서 그러는 걸까. 내가 하고 싶지만 하지 않고 있는 얘기에 대해 질문을 던져달라. 난 그래야 말하는 사람이니까.

내색을 안해서 미안하다. 나 앞으로는 내색도 하고, 자를 건 자르고 살아보려 한다. 착한 지각생의 모습이 날 옭죄고 있는 것이 분명하니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겠다.

의도된 어리석음, 어리숙함과도 작별하고 싶다. 내가 충분히 강하고, 지혜롭고, 경험을 쌓아왔다는 것,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뻔뻔하게 인지하고 살아야겠다. 할 수 있었던 만큼도 점점 못하게 된다. 약한 척을 하면 더 약해진다. 무조건 약한 것이 곧 평화로운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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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4 11:56 2009/12/2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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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ron 2009/12/24 12:02 URL EDIT REPLY
지각생 | 2009/12/25 02:29 URL EDIT
고맙삼 :)
발칙한 2009/12/24 18:56 URL EDIT REPLY
각생 난 지각생의 최초 최고 최훈녀 팬이니깐 돌아다니며, 찾아내서, 작은 것들을 많이 질문할겜.음?ㅋㅋㅋㅋㅋㅋ♡
지각생 | 2009/12/25 02:30 URL EDIT
흠.. 최초..일까? ㅋ 많이 찾아 물어주삼
장동지 2009/12/24 21:25 URL EDIT REPLY
음....내가 뭔가 관련이 있는거 같아서... 영.... 에구에구...
나도 오늘 좀 슬픈데... 빌어먹을 티스토리가 폐쇄한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려구... 티스토리에 메일 보내려구.... 조삼환(사무라이 조) 경감새끼 사진 지울께요... 폐쇄한 블로그 살려주세요.. 이렇게... ^^;;;;;;
지각생 | 2009/12/25 02:31 URL EDIT
장동지는 또 먼일이요.. 블로그 살리고 앞으로 자주 봐요
kim2010 2009/12/29 14:06 URL EDIT REPLY
내 블로그 이상해요 ㅋ
킴씨네 2009/12/29 14:59 URL EDIT REPLY
근무이상 무 입니디
즐거운 하루되세요 ~
킴씨네 2009/12/29 15:03 URL EDIT REPLY
내년에는 좋은일 많이 있으세요
지각생 | 2009/12/29 19:41 URL EDIT
안녕하세요 킴씨네~ 역시 내년에 좋은일 많이 있기를!~
윗집 할매 2009/12/31 13:25 URL EDIT REPLY
각새이~
그냥 한번 불러봐쓰~
^^!!

지각생 | 2010/01/03 23:18 URL EDIT
자꾸 부르면 닳는다~ ㅋㅋ
2010/01/04 00:31 URL EDIT REPLY
각새이~ 메인보드 하나는 그냥 살았다는 비프음도 안 들려주고
하나 남은건 부팅하다 cmos레벨에서 멈추고 리셋하면 부팅하여요.
어찌하오리까.
지각 | 2010/01/04 14:31 URL EDIT
허허 아쉽지만 보내드려야지요.. 보드 뭐 쓰고 있었음? 몇 개 모아 둔게 있는데 호환되는게 있으려나
| 2010/01/04 21:22 URL EDIT
AM2소켓보드요. 그나저나 아쉽다면 보내지 않아도 좋소... 삐졌소...ㅋㅋㅋ
어차피 요즘은 컴터하고도 친하게 지내지 않으니...^^




지각생 | 2010/01/04 21:34 URL EDIT
ㅋㅋ 내말을 오해했구려. 내가 갖고 있는 걸 보내는게 아쉽다는게 아니고, 존의 두 메인보드를 이제 아쉽지만 쉬게 해야겠다는 말이었음. ㅎㅎ 호환되는 보드 멀쩡하게 돌아가는거 있으면 보내주겠삼
| 2010/01/04 21:43 URL EDIT
원래 글이 말보다 더 오해의 소지가 많다는...^^ 근데 보드가 멀쩡하게 돌아가는게 왜 많을까?? -실시간 덧글-


지각생 | 2010/01/04 22:01 URL EDIT
왜냐면 컴퓨터 못 고치고 새로 사서 그 동안 애쓴 컴퓨터를 구석에 처박아둔 단체들이 여럿 있기 때문이지요
| 2010/01/04 22:14 URL EDIT
못 고친 컴퓨터라니...망가진 부품은 있어도 망가진 컴퓨터는 없다는 우리(?)의 신조를 무시하고 못 고쳤다니... 반성하시오!!^^
지각생 | 2010/01/04 22:18 URL EDIT
아놔 또 설명이 부족했구려. 내가 못 고쳤다는게 아니고, 내가 가기 전에 이미 그곳에서 포기하고 새로 컴을 샀다는 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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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정보&quot;말고 다른 이름 없나?

사회운동

정보통신활동가.

7자. 길다.

정보. 살아 있는 느낌이 안든다. 정보활동가? 무슨 정보기관에서 나왔나

정보통신. 이미 4자. 게다가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안테나와 전파. 무슨 통신기기들.

기술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고 사람들의 살아 있는 활동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분위기인데

이건 이미 영어인데다 한글로 6자. "안녕하세요 커뮤니케이션활동가 지각생입니다". 그냥 정보통신활동가 할께요.

 

영어로는 IT 에서 I.C.T 이렇게 약자로 넣어도 세자인데

한글로는 뭐 없나? "소통"이 언뜻 괜찮아 보여도 "소통 활동가"하면... 뜨아

모든 걸 다 받아안는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_-

 

좋은 이름 없을까요?

 

오늘 정보통신활동가 네트워크를 통해 만난 분께 맛난 점심을 얻어먹고

내년 계획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얻은 숙제. 네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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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5 14:03 2009/12/1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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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ya 2009/12/15 14:18 URL EDIT REPLY
줄여서 '정통활동가'?
개토 | 2009/12/15 14:49 URL EDIT
괜찮다~
지각생 | 2009/12/15 15:15 URL EDIT
정통의 길따위 걷지 않으리~ -_-/
돌~ 2009/12/15 14:53 URL EDIT REPLY
정통활동가....?
정통하다.정통이라는 말을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뭐 이렇게도 사용하지.
10여년 전에 위원회 이름을 짓는데, 정보통신**위원회라고 하니 국정원 같다고...
지각생 | 2009/12/15 15:16 URL EDIT
어이쿠. 아무래도 정보란 말과 이별해야겠다능.
들사람 2009/12/15 17:06 URL EDIT REPLY
커뮤넷활동가는 어떠까여. '소통'의 영단어 일부에다 '네트워크'의 줄임말 넷을 접붙인.ㅋ; 아니면 아이넷i-net활동가? 이건 무슨, 아이가 넷인 활동가도 아니고.,-,.-;;
지각생 | 2009/12/15 19:57 URL EDIT
아이가 넷이 될때까진 불인정? ㅎㅎ
2009/12/16 06:48 URL EDIT REPLY
아이넷? 지각생이나 나나 아이는 커녕 독거는 언제 면하려나..ㅡ.ㅜ(물귀신작전)
지각생 | 2009/12/16 11:21 URL EDIT
난 독거 아닌데? 여러 사람과 같이 살고 있잖아 :-D
지각생 2009/12/16 12:20 URL EDIT REPLY
다른 이름을 정할 수 있다면,
- 들었을때 그 뜻을 사람들이 2.7초 안에 알 수 있어야 하고
- 어느 회사나 단체 이름처럼 들리지 않아야겠고
- 가능하면 영어가 아니어야 듣는 사람 중에 겁먹는 사람이 좀 줄겠죠?
- 소통, 온라인, 네트워크(킹), 기술 이런 의미들이 고루 담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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