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블로그는 소홀히 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만 한다고
앙겔부처님의 진노를 사기 직전인 것 같아 얼릉 포스팅. 굽신
저 토악질 후 며칠간 아주 쇼를 하다가
1월 2일 새벽에야 욕심을 버리고 겨우, 하지만 순식간에 글을 써버렸다.
완전 홀가분.
새벽 첫차로 증산동 집에 와서는 바로 퍼졌다.
빈집에선 재미난 신년 파티가 계속되고 있었겠지만 그날, 다음날까지 가지 않고
집에서 가족들과 만든 만두로 배를 빵빵 채우고는 그동안 다운받아 놓고 안 본 영화를 보다 졸다 하며 보고 치웠다.
받아 놓고 안 본 건 막상 보려니 재미없을 것 같아 미룬 건데 역시나 재미 없더라
며칠 방전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금새 회복.
MWTV에 내 폰이 있어 남산에 오려 하니 아침부터 폭설
눈, 오직 눈때문에 겨울을 좋아하는 지각생은 그저 좋을뿐
예전엔 눈 치우는 아저씨들이 싫었지만 이젠 내가 그 아저씨가 되어 눈을 치우지만
마음은 여전히 기껍고,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려 내가 치우며 지나온 길을 다시 덮는 눈이 반갑고 고맙다.
글쓰느라 모든 신경을 써버렸더니 오늘부터 시작되는 이번 주 일정이 하나도 생각이 안난다.
심지어 폰까지 없으니 전화나 문자가 왔는지 알 수 없고, 전화번호만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재미 붙은 트위터를 끊고 지하철을 타고 남산쪽으로 오면서
아이폰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하지만 그러면 자나깨나 트윗만 하고 있을 내 모습이 그려진다.
녹사평역에서 거슬러 오르는 완만한 경사도 걷기가 힘들다. 내 신발은 발목까지도 안 오고, 바닥은 맨들맨들. 다리와 어깨에 은근히 힘이 들어간다. 가파른 경사 직전에 꺾어 일단 아랫집에서 쉬자.
아랫집에 가니 뉴페이스가 많다. 왠지 그런 모습이 좋다.
자전거 메신저 지음이 MWTV로 가는 내게 배달할 물건을 전해준다. 어이 어이 나 그냥 걷기도 힘들다고. 가방에 넣고 나선다. 내려올땐 썰매 타고 와야지.
MWTV와 수유+너머에 물건을 전해준다. 눈길을 뚫고 온 자전거 메신저, 캬. 두 발로 왔지만.
폰을 챙겨 충전해보니 오늘 까먹은 일정이 생각났다. 아... 이거였구나. 그렇게 생각이 안나더니
역시 무료IT지원 서비스였다. "지반장 서비스"란 명칭을 추천 받았는데, 홍반장 영화를 다운 받아 봐야겠다.
소월길을 걸었다. 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남산, 소월길. 캬.. 폰카를 들고 찍었다. 발칙한님이 구해준 폰으로 이제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젠더를 구할때까진 옮기지 못하는게 문제지만 -_-
눈덮힌 남산. 입이 헤벌어진다. 남산이 있어 서울이 다행이라는 생각은 늘 했는데 눈 선물 듬뿍 받은 남산의 모습이 참 아름답고 신비롭다. 발목까지 푹푹 들어가는 길을 발목까지 오지 않는 신발을 신고 걷는다. 장갑이 있고, 신발이 미끄럽지 않고, 가방에 놋북이 들어있지 않았다면 막 뛰어다니고, 몸을 날리고 뒹굴고 했을 것 같다. 대신 계속 걸으며 서억서억뽀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를 듣는 것으로 만족.
남산도서관이 정기휴일이라 용산도서관에 가서 밥을 먹곤, 소화시키러 밖에 나왔다. 문득, 다시 걷고 싶어졌다. 내일이면 해가 쨍쨍 뜰지 몰라. 그럼 많은 눈이 조용히 사라지겠지. 눈이 더 오면 좋지만 아니면 적어도 내일까지만 날이 흐리면 좋겠다. 지금 당장 걸어야겠다. 남산 길을 따라 올라갔다.
올라가는 것도 미끄러울 만큼 신발은 엉망인데, 내려올 걱정은 내려올때 하기로 하고 계속 걸었다.
가는 길은 염화칼슘을 얼마나 뿌렸는지 눈이 벌써 녹아 검은 아스팔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을 주변으로 돌려 눈덮힌 산의 풍경을 보면서 걷는다. 쌓인 눈은 어쩜 저리 이쁜지.
공터에서 결국 흥을 못 이기고 가방을 내려놓고는 몸을 날린다. 허우적 허우적 우하하 윽 춥다. 한 십여 초라도 낭만을 느끼고 싶은데 금방 추워 몸을 일으키고 눈을 턴다.
잠시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니 눈이 반짝반짝한다. 결정 모양이 그대로 보이는 눈이 옆에서 빛난다. 저 멀리 보이는 도시의 불빛보다 더 아름다운 반짝임이 주변에 가득하다. 한 번 보이기 시작한 반짝임은 보지 않으려 해도 보인다. 사람들의 고통과 아름다움도 한번 보고 나면 안 본 것처럼 살 수 없고.
타워 부근에서 한참 기분을 내다가 내려오는데
역시나 올라갈때보다 두배는 더 힘들다. 차도로 내려오기 싫어 중간에 나무 계단길로 빠졌다가 수없이 뒹굴고 항복, 다시 차도로 내려왔다. 소월길을 만나 길 한가운데로 걸어 해방촌 오거리까지 왔다.
어디로 갈까. 이제. 빈집도, 증산동 집도, 다른 어떤 곳도 딱히 가고픈 마음이 없다.
미끄럽지 않은 신발이 있다면 아직도 더 걷고 싶은데.
하하... 눈이 와서 힘든 사람들한텐 미안하지만, 종종 이렇게 많이 내려주면 좋겠다.
이것만으로도 겨울은 기다린 보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