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난 혼자가 아니다꼬뮨 현장에서 2007/02/23 02:35 대추리를 떠나야 할 시간이 점점 가까워오고 있다.
이 마을이 내게 무엇을 뜻하는지 차근차근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집에 대해서다.
내가 서울에 살 때는 집에 대해 이렇게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집은 단순한 하나의 공간이었기 때문이었고,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거와 요리와 휴식과 섹스와 작업 등등 많은 일들을 집에서 하긴 했지만 여전히 집은 하나의 공간일 뿐이었다.
밖에 나갔다가 집으로 들어올 때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이었던가?
문을 안에서 잠그는 일이었다.
그것은 습관이었다.
밖에서 아무도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완전히 나를 그 안에 폐쇄시켜야 나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던 것 같다.
나갈 때 말고는 나는 그 문을 열지 않았고, 열어놓지도 않았다.
그래서 서울에서 집은 나에게 고립의 공간이었다.
나는 집에 있으면서 외부와 철저히 단절되었고, 집은 맥락을 상실한 채 그냥 하나의 공간으로 거기에 존재했을 뿐이었다.
그런 단절된 공간들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것이 지금 대도시에 넘치는 아파트라고 생각한다.
아파트에는 많은 집들이 모여 있지만 그것들은 철저히 고립되어 서로 소통하는 법이 없다.
집은 동네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기에 하나의 동네, 하나의 마을이라는 개념은 내가 살던 도시에서 성립하지 않았다.
그렇게 집 안으로 통하는 문을 걸어 잠그고 살았던 나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수십 년을 그렇게 길들여진 것이다.
이런 물질적인 토대가 얼마나 끔찍하고 괴로운 것인지 나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집을 마을에서, 동네에서, 땅에서 그리고 이웃들로부터 떼어내 단지 하나의 밀폐된 공간으로 고립시키는 것, 이것이 이른바 도시화라는 것일텐데, 한국이라는 자본주의 국가가 대부분의 민중들에게 이토록 비참하고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강제적으로 이뤄진 이 도시화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이유를 나는 대추리라는 마을에 살면서 진하게 절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이 마을에 남은 오십 몇 가구의 사람들이 그걸 깨닫게 해준 것이다.
대추리 불판집 안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도 나는 따로 떨어진 고아가 아니라 여전히 마을에 살고 있다는 소속감이 든다.
내가 사는 집이 우리 동네의 필수불가결한 한 조각이라는 유대감이 날 휘감싸고 있다.
그래서 내가 마을의 일부분이 아니라 그저 내가 곧 이웃이고, 내가 곧 마을이라는 강렬한 느낌이 전해졌었다.
내가 사는 집이 마을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그런 느낌이 내게는 처음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문을 잠글 필요도 없었고, 가끔 주민들이 불쑥 들어와 먹을 것을 던져 놓고 나가기도 하는 광경이라니.
하지만 그 강렬한 느낌은 내가 사는 집 하나를 지키는 것이 바로 마을 전체를 지키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했다.
서울 같은 곳에서 내 집 하나를 지키는 것은 동네를 지키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대추리는 달랐다.
내가 마을이고, 내가 곧 대추리라고 생각을 하니 내 몸을 지키는 것이 내 집을 지키는 것이요, 곧 마을을 지키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정부의 시각으로 볼 때, 그리고 천박하게 발전되어온 한국 자본주의 시각으로 볼 때 하나의 통합된 공간으로서 마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마을에 살고 있는 각 가구별 집들과 개인이 땅들이 있을 뿐이다.
저 땅은 누구의 땅이고, 가격이 얼마고, 저 집은 누구의 집이고, 가격이 얼마고 하는 것들만이 장부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 입장에서 유일한 관심은 개별 가구가 소유한 집과 토지일 뿐이다.
그래서 이놈의 급살맞을 정부는 2005년부터 강제로 마을에 쳐들어와 땅과 집 등을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에서 따로 떼어내 개별적으로 땅값과 집값 등을 매긴다.
그것이 아마도 지장물 조사라는 것이었고, 감정평가라는 것이었고, 협의매수, 아니 강제수용이라는 것이었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 과정 자체가 제 살이 찢겨 나가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돈의 가치로 환산시키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마을 공동체의 가치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러므로 관심의 대상 조차 되지 못했다.
그런 천박한 자본주의를 유지시키는 책무를 가진 한국정부는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그 폭력적인 계산법을 강요하기 시작한다.
결국 하나로 뭉쳐서 살아왔던 주민들은 마을이라는 공동체가 가진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정부에 의해 강제로 가구별로 뿔뿔히 찢어져 각자 가격표를 달게 되었다.
이런 폭력에 마을 주민들은 '고향 땅에서 살고 싶다' '올해도 농사를 지으며 이웃과 함께 오손도손 살고 싶다'며 목숨을 걸고 저항을 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마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고립되고 폐쇄된 하나의 공간으로서 집과 땅을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그런 폭력적인 시각은 여전히 이 땅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내가 짧게 경험한 바로는 이런 비참하고 끔찍한 폭력에 맞서 함께 저항한 공동체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국가의 폭력과 외국군대의 침입에 맞서 함께 마을과 이웃의 따뜻한 유대감을 지켜내려는 주민들의 저항은 그 얼마의 돈으로도 계산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국가는 막무가내였다.
돈을 받았으니 나가라는 것이다!
함께 연결되어 살아온 사람들을, 그 질기고 질긴 끈을 베어버리고 하나의 가구들로, 하나의 세대들로, 하나의 집들로 고립시켜 각각 보상금을 지불하고는 땅에서 내쫓아버리는 일이 가능했던 것은 애초에 저들이 모든 공간을 '도시'로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저주스런 산업화를 통해 모든 마을이 죽음의 도시로 변절되어 가는 과정을 우리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이제 저들이 미처 점령하지 못한 곳들까지 차츰차츰 도시화가 진행되어 마을의 가치는 찢기고 있다.
한국정부가 마을 사람들의 손에 쥐어준 돈에는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뗄레야 뗄 수 없는 마을의 가치가 담겨 있지 않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다.
골프장을 짓는다, 아파트 단지를 재건축한다, 신도시를 만든다고 하면서 매일 같이 우리는 이와 같은 폭력을 목도하며, 힘들게 저항하고 있다.
민중들은 그렇게 찢겨나가고, 몸부림을 치다가 쫓겨나고 만다.
저들이 매긴 값에 내가 즐겨 찾는 솔부엉이 도서관은 포함되어 있지 않고, 저들이 매겨 내가 받게 될 돈의 액수에 내가 매일 거닐며 사색하는 평화공원의 가치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내 집에 난 혼자 있지만 그 집은 옆집과 그 옆집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유기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있으며 난 그 공동체다.
그러므로 날 이 마을에서 떼어내 따로 값을 매기는 이 체제는 부모와 자식을 강제로 떼어내 생이별시키는 것처럼 폭력인 것이다.
마을에서 강제로 나가게 된 지금 나는 다시 한번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어놓지 않고서는 지금 이 마을이 처한 운명이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기분 나쁜 확신이 들고 있다.
난 이대로 순순히 마을에서 나가지는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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