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

평화가 무엇이냐 2006/02/25 13:48
예수살이 공동체가 발행하는 계간지 "산위의 마을" 2006년 봄호에 기고한 글이에요.
피자매 활동가들이 여기저기서 이야기한 것들을 모아서 '피자매연대가 이런 활동을 벌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한 글이에요.
 

피자매연대는 폭력과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
조약골 (피자매연대 활동가)

피자매연대는 대안생리대를 만들어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조그만 운동단체다. 이 모임이 처음 결성되어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3년 9월 초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혹시 '월경페스티벌'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다. 브라질의 리우 축제처럼 커다란 규모의 축제는 아니지만 아직도 가부장제의 인습이 많이 남아 있는 한국에서 월경페스티벌은 매우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하는 월경이 부끄럽거나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서 오히려 즐겁고 당당하게, 그래서 축제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월경페스티벌은 전하고 있는 것이다. 2003년 9월 초에도 월경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다. 피자매연대는 이 자리에 조그만 부스를 차리고 선전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여성들이 일회용 생리대를 사서 쓰고 버리는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스스로 대안달거리대를 만들어 사용하는 생활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회용 생리대는 좋지 않은 각종 화학물질로 만들어져 있어서 여성의 몸을 아프게 하고 자연을 괴롭힌다. 일회용 생리대는 하나같이 흰색인데, 이것은 여성은 순수해야 하고, 순결해야 한다는 통념을 은연중에 전파시키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월경을 남몰래 감쪽같이 처리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렇게 순백색의 일회용 생리대를 만들기 위해서 형광표백제를 사용해 표백을 한다. 이 과정에서 발암물질과 환경호르몬 같은 부산물도 생성된다. 이 때문에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는 많은 여성들이 가려움증, 발진, 짓무름으로 고생을 하고 있으며, 생리가 다가오면 그 불편함 때문에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는 여성들도 많다. 일회용 생리대에 들어 있는 이런 화학물질은 여러 자궁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밝혀진 바는 없지만 한국에 일회용 생리대가 들어온 1970년대 말 이후 자궁근종과 같은 자궁질환들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일회용 생리대가 자궁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고 쉽게 장담할 수는 없으나 그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부정하기도 힘들 것이다.

이렇게 여성들이 무심코 사용하는 일회용 생리대 제품들은 편리함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 그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마음놓고 사용할 수만은 없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여성의 몸에 좋지 않다는 문제점말고도 커다란 문제는 일회용 제품의 사용이 지구의 환경에 아주 좋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이 마구 찍어낸 일회용 생리대는 지구의 허파인 열대우림의 파괴를 촉진시킨다. 제3세계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는 숲의 나무들이 마구 벌목되어 일회용 생리대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쓰이는 것이다. 보통 여성 한 명이 월경 기간 동안 하루에 5개의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한다고 계산하면 일년에 360개의 일회용 생리대를 소비하게 된다. 여성이 월경을 사십년 동안 한다고 하면 일인당 평생 14,400개의 일회용 생리대를 쓰고 버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지구상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이렇게 많은 일회용 생리용품을 단지 편리함이라는 이유만으로 소비하고 나서는 쓰레기로 배출한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 지구의 토양과 강이 오염될 것이고, 월경혈에 젖은 생리대를 소각하기 위해 석유를 끼얹고 태우는 과정에서 많은 유독가스가 배출되어 공기를 오염시킬 것이며 이로 인한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는 이후 세대들에까지 두고두고 커다란 재앙이 될 수 있다.

과연 우리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지금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에너지 과소비와 이로 인한 석유 약탈 전쟁 그리고 환경적 재앙 등을 보고 있노라면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생활방식으로는 인류가 지구상에서 다른 수많은 생명체들과 동등하고 온전하게 살아나갈 수 없겠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피자매연대는 이와 같은 반성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과 같은 대량생산과 대량폐기 그리고 무차별적인 개발과 이윤추구의 세상에서 폭력과 파괴는 필연적이기에 근본적인 대안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피자매연대는 일단 월경에서 대안을 추구해보기로 하였다. 인간 생활의 많은 영역에서 유독 피자매연대가 월경에 집중하게 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월경은 여성들만의 영역이기도 하고, 또한 환경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또한 월경은 여성이 생명을 잉태하는 것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월경이야말로 신성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렇듯 여성과 환경 그리고 생명의 관점이 월경이라는 것에 모두 함축되어 있다. 참으로 매력적인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대안을 추구한다면 이런 신성하고도 근사한 곳에서 시작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남성 중심적이고, 환경파괴적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면 그것에 반대해 새로운 대안을 추구하는 운동이라면 친여성적이고, 친환경적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할 터. 그래서 몇 개월간의 준비 끝에 피자매연대는 대안월경용품을 사용하자는 취지를 내걸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국의 어머니들이 옛날부터 사용해오던 천생리대를 사용해보기도 했고,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대안월경용품인 면생리대와 월경컵 그리고 해면 등을 구해서 요모조모 뜯어보면서 장, 단점을 파악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을 만들거나 구해서 사용하면서 몇 달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한국의 상황에 맞는 대안생리대가 만들어졌고, 누구나 손쉽게 바느질해서 만들어 쓰는 방법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면생리대를 판매하는 쇼핑몰들은 많지만 그것을 직접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고, 자세한 자료들을 공개하면서 사람들에게 워크샵을 열어서 함께 만들기 운동을 하는 단체는 피자매연대가 유일하다. 피자매연대는 이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과 모순을 끄집어내서 밝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보다 많은 여성들과 남성들이 돈을 주고 일회용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들이 만들어 판매하는 일회용 생리대는 가격도 만만찮게 비쌀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다양하게 존재해온 여성의 생리문화를 획일화시킨다는 문제점도 동시에 안고 있다. 여성들이 일회용 생리대를 소비하면 할수록 결국 남성중심적인 다국적 기업의 배만 불리게 된다. 피자매연대가 바늘을 들고 바느질을 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수동적인 소비자가 되지 말자는 뜻이며, 여성이라는 소수자의 입장에서 다른 많은 소수자들과 연대해 적극적인 대안을 만들어나가자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피자매연대의 주장에 반신반의하거나 회의적이었다. 일회용 생리대가 좋지 않은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대안으로 내놓은 대안생리대가 얼마나 좋을 것이며, 불편하지는 않을지, 그리고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을지 염려를 했다. 그래서 피자매연대는 매달 워크샵을 개최해 사람들이 혼자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직접 바느질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리고 피자매연대의 워크샵에 참가한 사람들이 자신의 지역으로 돌아가서 주변 사람들을 모아놓고 다시 워크샵을 개최하도록 장려했다. 이렇게 2차, 3차로 워크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급되면 더 많은 여성들이 만들어서 사용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리라는 계산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피자매연대의 대안생리대 만들기 워크샵이 시작된 2003년 이후 몇 년이 흐르면서 제법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위해 오랜만에 바느질을 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대안생리대를 사용해보기 전에 가졌던 불안과 우려는 대안생리대를 몇 개월 사용해보고 곧 없어졌다고 말한다. 대안생리대가 장점이 아주 많다고 극찬을 하는 여성들도 꽤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대안생리대에는 어떤 장점들이 있을까? 먼저 일회용 생리대에서 나는 것과 같은 불쾌한 냄새가 대안생리대에서는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폴리에틸렌 필름막으로 막혀 있어 통풍이 되지 않는 일회용 생리대는 그 안에 있는 흡수를 위한 화학물질과 생리혈이 만나 불쾌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대안생리대는 그런 냄새가 없고, 뽀송뽀송한 느낌이 지속된다는 장점이 있다고 많은 여성들이 칭찬을 한다. 면생리대를 한 번 바느질을 해서 여러 개 만들어두고 세탁을 해서 매달 사용하면 돈이 확 절약된다는 것도 커다란 장점이다. 또한 일회용 제품이 획일적인 모양과 크기로 제조되어 시장에 나오는 것과는 달리 자신이 직접 만드는 대안생리대는 자신의 몸의 특성에 따라 모양과 크기를 조절해서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우리들 얼굴이 각자 개성 있게 생긴 것처럼 월경혈이 면생리대에 묻는 부위도 여성에 따라 각자 다르다. 어떤 사람은 날개 쪽으로 많이 묻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엉덩이 쪽으로 월경혈이 더 많이 묻기도 한다. 자신의 몸에 따라 날개를 더 두껍게 만들 수도 있고, 엉덩이 부분을 더 크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 직접 바느질을 해서 면생리대를 만드는 커다란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

바느질을 하면서 자신의 몸에 대해, 그리고 여성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즐거움이자 장점이다. 이를 피자매연대 활동가들은 '바느질 명상'이라고 부른다. 바느질을 하면서 깊이 자신에게 몰두할 고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요즘과 같은 속도 위주의 빠른 사회에서 분명히 우리들에게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일회용 생리대를 쓰면서 생리가 너무 싫었다는 사람들이 대안생리대를 바느질로 만들면서 생전 처음으로 다음 생리가 언제 올까 기다리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자신이 스스로 변화한 것이다. 결국 많은 여성들은 대안생리대를 통해 자신의 몸을 더 잘 알게 되고, 스스로를 사랑하게 된다. 이것이 여성의 월경을 여성 스스로 관리하면서 생기는 가장 큰 장점이다. 기업이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주체가 된 월경! 이것에서 여성들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찾는다. 쓰레기가 줄어들어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것 역시 큰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대하는 시각이 바뀌고, 그래서 결국 사회 전체에서 여성을 대하는 시각이 점차 바뀌는 것이야말로 제일 중요한 점이 아닐까. 이것이 피자매연대가 활동하는 이유이다. 피자매연대의 홈페이지에 들어와 보면 쉽게 확인해볼 수 있듯이, 많은 여성들이 이와 같은 고백을 하고 있다.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사용해보니 결국 서서히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관계들이 따뜻하게 변하고 있다고 말이다.

월경을 금기시하는 사회는 차별적인 사회이며, 억압적인 사회임에 틀림없다. 피자매연대가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한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래 전부터 우리의 어머니들이, 그리고 전 세계의 여성들이 매달 월경을 하며 알고 있었던 지식을 모으고, 거기에 약간의 실험정신을 가미해 대안생리용품들을 보급한 것에 불과하다. 여성들은 스스로 워크샵을 조직했고, 대안생리대가 얼마나 좋은지 체험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변화해나갔다. 이에 따라 우리의 가부장적 사회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우리들은 느끼고 있다. 피자매연대는 지금도 조그만 운동단체이지만 그 목표만큼은 회원 수 천명을 가진 커다란 단체 못지 않게 원대하다. 바로 여성과 소수자들이 중심이 되어 희망을 모으고, 조그만 희망들을 그물처럼 짜내어 그 연대의 힘으로 평화롭고, 지속가능하며,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만의 꿈이 아니라 바로 이 땅에서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과 함께 조금씩 힘을 모으자.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자. 피자매연대는 그 길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같이 걸어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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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5 13:48 2006/02/2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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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2/26 07:31 Modify/Delete Reply

    맙소사...그야말로 완벽 정리구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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