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집

꼬뮨 현장에서 2006/01/15 16:18

전에는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오는 것이 싫었다.

새벽에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갈 때마다 누군가 있어서 집을 따뜻하게 해놓고 주전부리라도 하면서 날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반갑게 누가 날 맞이해주었으면 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주 먼 옛날 일이다.

이제는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것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집에 도착해 열쇠로 문을 열고, 어두운 통로를 걸어가 부엌에 불을 켠다.

부엌 바닥에 널려 있는 쓰레기에 발이 걸릴 때도 있지만 발뒤꿈치를 들고 살살 걸어가 불을 켜고 자전거를 들여놓는다.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본 다음 얼굴과 손을 씻는다.

불을 켜도 어두컴컴한 집에서 나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편지를 쓰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한다.

 

오늘은 병점에서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실 지금 이 글도 아무도 없는 집에서 쓰고 있는 것이다.

대추리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잠깐 쉬려고 빠쳄에게 전화를 거니 '유토피아'에 들어가 기다리라고 한다.

시원한 배를 가지고 오고 있다면서 말이다.

배가 먹고싶어서 유토피아에 들어왔다.

이제 조금 있으면 빠쳄이 올 것이다.

도둑질을 잘 하지 않는 나는 내가 사는 집 말고는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본 기억이 없는데, 이제 병점을 지날 때는 이곳에 와서 잠시 쉬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좋다.

 

충주에서 인권활동가대회가 끝나고 120km를 자전거로 달려서 대추리에 왔었다.

대추리는 점점 오고 싶은 마을이 되어 간다.

메이짱이 연 찻집은 대추리 마을이 들어선 이래 최초로 생긴 찻집이다.

처음 와보고서 반해버렸다.

이곳을 나는 라이브 카페로 만들려고 한다.

토요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여기에서 노래를 할 생각이다.

대추초등학교 앞 삼거리에 이 찻집이 있다.

'차 한 잔 하실래요'

 

사람들은 이 찻집에 와서 술을 찾는다.

이 찻집을 신부님은 '다방'이라고 불렀다.

막걸리를 가져다놓으니 술집이 따로 필요가 없다.

사진작가 노순택이 찍은 근사한 사진들도 걸려 있다.

찻집에서 카페로, 다방에서 술집으로 오는 사람들에 따라 자유롭게 바뀌는 공간이다.

그만큼 열린 공간이라는 소리다.

그래서 더 좋다.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매일 이 찻집이 북적대길 바란다.

 

대추리에도 역시 아무도 없는 집들이 있다.

협의매수에 응하고 주인이 떠난 버려진 집들.

이런 집들을 개조해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이것은 평화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며, 빼앗긴 사람들이 계속 살 수 있는 주거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며, 이를 위한 저항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를 나는 진정한 '창조'라고 부르고 싶다.

 

아무도 없는 집은 대추리에도 있고, 병점에도 있지만 그곳에는 사람만이 없을 뿐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차 있다.

언제나 들어오고 싶은 곳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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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5 16:18 2006/01/1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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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ori~ 2006/01/15 17:32 Modify/Delete Reply

    어여 몸 챙기세요.
    빠쳄집에서 푹 쉬시구요~

  2. 시와 2006/01/16 01:52 Modify/Delete Reply

    저항의 공간 창조,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
    활동가대회 때 상품(?) 으로 받은 CD
    소중히 잘 들을게요.
    음악으로 저항하는 돕님 생각 언제 함 들어봤음 좋겠어여 ^-^

  3. 상용 2006/01/16 10:55 Modify/Delete Reply

    어제 일끝내고 집에 오는 길에 동수원사거리를 지나가는 돕을 보았지. 어젠 날씨가 좋아서 자전거 타기 참 좋았을 것 같아.

  4. 2006/01/16 10:58 Modify/Delete Reply

    토리/ 결국 빠쳄집에서 5시간 넘게 뒹굴거리며 저녁까지 먹고 그러다가 자정이 되어서 집에 도착했어요.
    시와/ 영상으로 저항하는 시와님 생각도 같이 들어보기로 해요^.^
    상용/ 아는 척 하지 그랬어... 불렀으면 아주대 앞에 가서 한 잔(!) 하고 가는 건데... 어제 같은 날 자전거 안탄 사람들은 정말 억울했어야 해.

  5. 자작나무 2006/01/16 11:15 Modify/Delete Reply

    아, 유토피아에 가셨군요^^
    찻집에 노래 들으러 가야겠어요.

    몸 잘 추스리시고요.

  6. 2006/01/16 11:24 Modify/Delete Reply

    자작나무님 반가웠어요. 잘 내려가셨죠? 멋진 한 주 보내세요.

  7. torirun 2006/01/16 11:47 Modify/Delete Reply

    돕! 돕 가사 쓴 거..제목이 머에요?~(가제)로 붙였는디

  8. 2006/01/16 12:00 Modify/Delete Reply

    토리 블로그에 답글 붙여놓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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