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로 걷는다
꼬뮨 현장에서 2006/01/07 02:32다시 대추리에 왔다.
요즘은 일주일에 3일은 서울이 아닌 곳에서 보낸다.
좋은 일이다.
차츰 서울을 벗어나려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 그곳에 갇혀 버린다.
서울은 흡인력이 강한 자석과도 같아서 그 자기장 안에 포섭된 것들을 모조리 붙여놓고는 사정 없이 빨아먹는다.
서울만 자석인 것이 아니다.
대저 자본주의 국가란 것이 바로 거대한 자석덩어리다.
빠져 나오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영영 그 세력권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자석을 깨부수려는 노력 역시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평택역에서 대추리까지 걸어오면서 많은 것들을 보았다.
그 길엔 모든 것이 다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기에 좋은 아름다운 산길이 있고(이 산길은 상용이 좋아하는 길이다), 너른 들이 있고, 굽이쳐 흐르는 강이 있다.
그 한가운데를 뚫고 쌔앵 날아가는 것은 KTX다.
산과 들과 강의 허리를 두동강을 내 만들어놓은 길로 미친듯이 달려가는 총알 같은 열차에 탄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 사람들의 몸 안에 있는 세포들은 지금 시속 300km로 여행을 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두려워서 무서워서 떨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건 미친 짓이다.
몸은 그걸 느끼고 이상신호를 보내지만 바삐 달려가 거대한 자석에 달라붙어야 하는 자본주의 국가인들은 그저 살려달라는 몸의 외침을 무시해버린다.
땅을 밟고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비로소 몸이 편안해지지 않던가?
기러기떼가 하늘을 날고, 그 옆으로 전투기와 군용 헬리콥터가 날아간다.
기러기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주고 받는다.
필시 전투기를 조심하라는, 운나쁘게 하늘 한가운데를 두동강을 내려 날으는 저 무지막지한 기계덩어리에 들이받쳐 비명횡사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서로에게 보내고 있음이리라.
십수마리의 기러기들은 자유롭게 비행형태를 바꾸며 날고 있다.
한편으로 교회도 서있다.
이름하여 낙원교회.
낙원이란 어느 곳에 있을까?
멀리 있지 않다.
걷고 있을 때 나는 낙원에 있다고 느낀다.
같은 길이라도 걸을 때, 자전거를 탈 때, 그리고 자동차를 탈 때 보이는 것, 느껴지는 것이 완전히 다르다.
같은 길을 가지만 서로 다른 3가지 세상을 사는 것이다.
그럴 때 낙원은 걷는 세상에 있다.
서편으로 차츰 해가 지며 하늘이 시시각각 붉게 물드는 모습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낙원에 있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아니던가?
다른 곳은 모르더라도 대추리에 올 때는 반드시 평택역에서부터 걸어와야겠다고 다짐한다.
그곳은 평화의 땅이어야 할 곳이다.
내 몸과 마음을 평화롭게 하고서 다가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야 비로소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본주의 국가체제로부터 한 걸음씩 벗어나와 대추리로 향할 때 그곳을 지킬 힘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군침을 흘리며 덤벼드는 제국의 아가리 속으로 그대로 빨려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나는 대추리로 걷는다.
자동차에 의존하는 한, 기계에 의존하는 한, 편리함에 의존하는 한, 빨리감에 의존하는 한 나는 영영 저 거대하고 강력한 자석의 자기장 안에 갇힐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 저벅저벅 걸어나오지 않는 한 나의 몸은 하루하루 자본주의 국가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그렇게 변화되어 온 몸을, 속도에 편승해 변화되어 온 몸을, 억압에 순응하도록 변화되어 온 몸을, 차별에 무감각하게 변화되어 온 나의 몸을 바꾸는 작업이야말로 가장 치열한 투쟁이며, 가장 혁명적인 실천이다.
그것은 빼앗긴 나의 고요한 일상을 되찾아 오는 것이다.
강력한 자기장 바깥으로 서서히 걸어나오는 것이다.
바로 오늘부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