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쓰고 있는 보일러가 고장난 것 같다.
잔고장인지 아니면 아예 새것을 사야 하는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다.
수리하는 사람을 불러야 하는데, 지금 불러서 고치느냐 아니면 고치지 않고 그냥 놔두느냐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보일러는 시공한 지 10년 약간 넘었을 뿐인데, 설마 심하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라 추측하지만 그 보일러에서는 이제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고, 난방도 되지 않는다.
이제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나는 아예 보일러 없이 겨울을 지내볼까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만에 하나 감기라도 걸려서 앓아 눕게 되면, 냉골에 오히려 병만 깊어지지 않을까 지레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지난 9월치 도시가스비가 청구되었는데, 즐겁게도 1950원 정도가 나왔다.
9월엔 뭐 매일 찬물로 샤워하고, 그래서 별로 도시가스를 쓸 일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별로 요리를 해먹지 않았다는 말도 된다.
그만큼 대충대충 먹고 살았으니 도시가스를 쓸 일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실은 대충 먹었다기 보다는 김치와 김, 콩자반과 연근 등 이미 만들어진 반찬을 사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집에서는 밥만 해서 먹었다.
가끔 라면도 끓여 먹었고.
일본 나가사키에 사는 토다 키요시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환경과 평화를 아주 깊이 연구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아나키스트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이 사람이 지난 2003년에 한국에 와서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다.
날씨가 추운 날이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 집 보일러를 틀어놓고 지내는데 자신은 옷을 아주 두껍게 입고 보일러를 틀지 않고 견딘다고 한다.
빼빼마른 토다 키요시가 두꺼운 이불을 돌돌말고 좁은 자기 방에 앉아 소반 위에 책을 한 권 올려놓고 읽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난 그 말을 듣고 '나도 다가오는 겨울 그렇게 간다'고 결심했었다.
그리고 맞이한 겨울들.
실제로 나는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기 위해 보일러를 몇 번 틀었을 뿐이었다.
바깥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집안 온도는 대략 영상 12도 정도가 되었다.
영상 12도면 상당히 따뜻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실제로 가만히 방 안에 앉아서 숨을 쉬다보면 입에서 김이 나오기도 했다.
게다가 창문틈 사이를 아무리 막아도 꾸역꾸역 밀려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까지 나의 초저소비 의지를 뒤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바깥 기온이 영상이 되면 집안 온도는 약 15도 정도까지 올라갔다.
이 정도면 나처럼 몸이 따뜻한 사람이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양말을 2겹 껴입고서 견딜만했다.
이번 겨울도 비슷할 것이다.
아마도, 난 고장난 보일러를 그냥 놔두고 올 겨울은 사상 초유로 에너지를 절약하며 살게 될 것 같다.
항상 내가 바래왔던 것처럼 2천원 이하로 가스비를 내면서 말이다.
두 가지 고민이 남는다.
먼저, 날씨가 아주 추워지면 방바닥이 얼어 터질 수가 있다.
그러면 수리비가 엄청나게 나올 텐데...
그리고 두번째, 목욕은 어떻게 하나?
영하의 날씨에 차가운 물로?
모르겠다.
일단 요즘은 아직도 찬물로 샤워를 하고 있는데, 점점 더 날씨가 추워져 견디기 힘들게 되면 물을 가스렌지에 데운 다음 찬물과 적당히 섞어서 목욕을 하면 되지 않을까...
제발 아프지만 말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규칙적으로 식사를 해야 하고,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