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경계를 넘어 2005/09/21 21:36
나는 머리가 길어서 사람들이 여자로 오해하기도 한다.
특히 뒤에서 날 보는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보인다.
 
며칠 전 늦은 밤에 나는 '보라돌이'라는 이름이 붙은 자전거(이에 대한 웃긴 일화는 담에 소개할께)를 타고 한강 자전거 도로를 따라 집으로 오고 있었다.
매닉과 마붑의 집에서 파티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 자전거 바퀴는 바람이 빠져서 헐렁했다.
바람을 넣을 펌프가 없었던 나는 그 늦은 시간에 자전거포가 열려 있을리도 만무해서 그냥 슬슬 느린 속도로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누군가 뒤에 쫓아오는 것 같더니, 곧 이어,
 
"뒤에서 같이 좀 달릴께요."
하는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난다.
 
달리기 연습을 하는지 운동을 하는지 어떤 남자가 바로 뒤에서 날 쫓아오고 있었다.
 
"천천히 가는 자전거를 따라가면 달리기를 하기가 더 편하거든요..."
 
나는 뒤를 돌아보며 일부러 더 굵직한(!) 목소리로
 
"그러세요!"
라고 응수했다.
그랬더니,
 
"어, 남자분이셨네요. 몰랐어요."
 
아마도 야밤에 달리기 연습을 하는 그 사람도 긴머리를 휘날리며 천천히 자전거를 타던 날 보고는 '웬 횡재냐' 싶어서 달려서 따라왔을 것이다.
나는 그 운동선수에게 쏘아붙이듯 한 마디 했다.
 
"그럼 여자분인줄 알고 따라오신 거에요?"
 
"아니, 뭐...그렇다기 보다는..."
 
사람들은 할 말이 없을 때나 움찔할 때 말끝을 흐린다.
나는 그 사람이 내가 남자라는 것을 안 이상 계속 따라올까 궁금했다.
그래서
 
"그러면 계속 따라오세요. 제가 속도를 잘 맞춰드릴께요."
라고 친절히 대답했다.
 
바람돌이 자전거에 속도계는 붙어있지 않지만 나는 평소에 속도계가 달린 자전거를 항상 타고 다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로 달리면 얼마 정도의 속도인지 감이 있다.
보통 마라톤 선수들은 42.195km를 시속 17km 정도로 달린다고 한다.
굉장히 빠른 속도다.
아마 마라톤을 오래도록 연습한 동호인 정도의 수준이라면 시속 15km 정도로 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들어올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보라돌이를 약 시속 15km 정도로 몰았다.
그 남자가 쫓아올 수 있을까 궁금해 하면서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쉽지 않은 속도일 것이다.
 
그 남자는 조금 쫓아오다가 이내 포기한 듯
 
"먼저 가세요..."
라고 했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낯선 사람들로부터 듣는 말 중에서 자주 듣는 말 한 마디.
"남자야, 여자야?"
 
물론 이 말은 내 성별을 묻는 말이 아니라, 본심은
"웬 남자가 여자처럼 머리를 기르고 다녀...(재수없게시리)..."
이런 것일테다.
 
전에 부안영화제에 갔을 때도 부안성당에 와있던 꼬마가 날 보며 중얼거렸다.
"여자야, 남자야?"
 
며칠 전 추석 때 부모님 집에 갔을 때는 다른 사람도 아닌 6살박이 조카가 날 보며
"삼촌, 삼촌은 여자야, 남자야? 왜 남자가 여자처럼 머리가 길어?"
하고 상당히 심각한 듯 물어본다.
 
나는 고민고민하다가
"응, 왜냐하면 이제는 세상이 변했거든. 더이상 여자냐 남자냐 이렇게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단다..."
라고 했다.
 
조카가 이 말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그래, 나는 정말 여자냐 남자냐의 구별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남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남자와 여자의 가장 큰 차이를 말해보자면, 아니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가장 큰 것을 말해보자면 그것은 내가 아이를 낳을 수 없고, 월경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초희 블로그에 보면 초희가 달거리 30문 30답을 한 것이 나온다.
http://nakedsun.net 이다.
나는 그 글을 보며 나도 그 30문항을 이렇게 조목조목 답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피자매연대 활동을 2년 가까이 해오면서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의 월경에 대해 들었다.
주기가 짧은 사람, 주기가 긴 사람, 주기가 불규칙한 사람, 양이 많은 사람, 적은 사람, 생리통이 없는 사람, 견디지 못할 정도로 아픈 사람...
 
이런 이야기들을 자주 듣게 되면 월경을 못하는 나도 가끔씩은 '내가 월경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나는 내 몸에 대한 호기심으로 내가 월경을 하게 되면 이렇게 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들이 생겨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나도 달거리 30문 30답에 도전해보자.
안될 것도 없잖은가!
 
1. 생리주기는 몇일인가요?
- 보통은 28일 정도. 하지만 몸의 상태에 따라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한다.
 
2. 주로 쓰는 생리대는?
- 대안월경용품(주로 면생리대와 해면)
 
3. 생리통 정도는?
- 하루는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히 심한 정도였는데 채식을 시작하고, 면생리대를 사용하면서부터 신기하게도 생리통이 싹 사라졌다. 일회용 생리대를 버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생리가 시작될때 드는 생각은?
- 특별한 감정의 변화는 없다. 다만 면생리대를 미리 챙겨놓아야 하기 때문에 약간 긴장을 하게 된다.
 
5. 초경은 언제 하셨는지?
- 지금으로부터 한 20년 전쯤?
 
6. 몇몇 생리대들에 대한 자신의 평가
- 일회용 생리대는 당장 버려야 한다. 일회용 생리대는 사용하고 나면 쓰레기처럼 느껴진다. 마치 내 자신이 쓰레기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기분이 안좋다. 대안달거리대를 적극 추천!
 
7. 템포에 대한 생각
- 나는 리듬 감각이 있어서 템포를 잘 맞춘다. 아, 삽입식 생리대 템포를 말하는 것이라면, 일회용 생리대에 대한 생각과 다르지 않다. 환경에도 안좋고, 내 몸엔 더욱 좋지 않다.
 
8. 자신의 생리징크스
- 평소엔 하지 않던 오락을 한다든가 만화책을 보게 된다.
 
9. 생리할때 도저히 못하겠다 하는 행동
- 수영이나 공중목욕탕 가는 것.
 
10. 생리 때문에 기분이 꿀꿀할때가 있나요?
- 있다.
 
11. 생리는 몇일간 하나요?
- 5일 정도
 
12. 자신의 배란기를 잘 알고있나요?
- 계산을 해보면 알 수 있지만 보통은 잘 모른다.
 
13. 초경을 발견하고 엄마에게 뭐라고 말했나요?
- 말하지 않았다. 그냥 친구들에게만 말했다.
 
14. 남자친구에게 그날이라고 말하나요?(없다면 가정해서)
- 남자친구도 알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사용한 면생리대를 남자친구가 빨아주기 때문이다.
 
15. 양이 적은편인가요, 많은 편인가요?
- '쏟아진다'는 내가 아는 몇몇 친구들에 비하면 적은 편인 것 같다.
 
16. 화장실에 널부러져있는 생리대를 보면 드는 생각
- 내가 한평생 쓰고 버리는 일회용 생리대를 모두 모으면 얼마나 끔찍한 오염이 될까.
 
17. 초경때 들었던 생각은?
- 이제부터 일회용 생리대를 매달 사려면 돈이 장난이 아니겠구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18. 이래서 그날이 싫다 3가지
- 나에게 '그날'은 보통 '혁명의 날'을 뜻한다. 노래 '그날이 오면'을 생각해보면 쉽다. 아, 생리할 때를 말하는 것이라면 딱히 싫은 것은 없는 것 같다.
 
19. 생리통때문에 울어본 적이 있나요?
- 예전에는 아파서 약도 먹고 그랬는데, 딱히 생리통 때문에 울어본 기억은 없다.
 
20. 아무것도 없이 생리대사러갔는데 검은봉지를 주지않을때는-_-;?
- 생리대는 보통 내가 만들어서 쓰기 때문에 사러가지 않지만, 일회용 생리대를 사러 갔다고 가정하면, 난 일부터 검은비닐봉지를 받지 않는다. 검은봉지에 넣어주면 난 봉지 필요 없다고 하고 그냥 들고 나온다.
 
21. 생리대의 장단점...?
- 일회용 생리대의 단점은 한 두가지가 아니고, 대안달거리대의 장점 역시 일일이 쓰기가 힘들 정도다
 
22. 생리가 끝나는 날 드는 생각
- 보통 끝날 때는 양이 거의 없어서 특별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피의 색깔이 검은색 비슷하면 내 몸을 혹사시켰다는 것이 되므로 다음 달에는 좀더 몸을 돌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23. 남자친구가 생리대를 선물한다면?(없다면 가정해서)
- 일회용 생리대를 선물한다면 당장 환불해오라고 보낸다.
 
24. 여자친구들과 생리에 관해 깊게 얘기를 나눈적있나요?
- 거의 매일 나눈다.
 
25. 초딩 때 생리하는 여학생들을 손가락질했나요?
- 놀리지는 않았다.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뭐 놀릴 것 까지야.
 
26. 생리로 인해 겁을 먹은 적이 있다면?
- 면생리대 겉감만 가져온 날 안감이 없어서 샐까봐 걱정한 적이 있다. 그리고 엠티 같은 것을 갔었는데, 마침 가져온 달거리대가 없었다. 예상보다 일찍 달거리를 시작될까봐 약간 겁났던 적이 있다.
 
27. 생리에티켓!!?
- 무슨 당치도 않는 질문이람. 생리에티켓이 따로 있나?
 
28. 지금 생리중인가요?
- 아뇨.
 
29. 나만의 생리통 퇴치법
- 채식을 하고 면생리대를 사용하면 생리통이 상당히 줄어든다.
 
30. 생리에 대해 곤란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에게 한마디
- 니가 한번 해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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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1 21:36 2005/09/2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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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eelunar 2005/09/21 22:17 Modify/Delete Reply

    아주 재밌게 읽었어요^^
    저도 피자매연대를 통해 알게 되서 달거리대를 쓰지요.
    아직은 일회용생리대와 달거리대를 함께 씁니다.
    곧.. 달거리대만 쓰게 되겠지요

  2. 초희 2005/09/24 00:06 Modify/Delete Reply

    여전히 바퀴가 몰캉한 보라돌이를 타고 서대문에서 녹두거리까지 잘 왔어.

  3. 돕헤드 2005/09/24 01:27 Modify/Delete Reply

    그거 꼭 바람 넣어서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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