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즈음하여

경계를 넘어 2004/09/27 22:40

지겨운 추석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도대체 명절이란 놈은 죽지도 않고 어김없이 잘도 돌아오는군요.

 

정말이지 그 많은 음식 준비며, 친척들 뒤치닥거리며, 아이들 보기며, 산더미같은 설겆이며, 청소며, 정리며 마치 노예가 된 기분으로 맞이해야 하는 날을 '민족 고유의 명절'이니 '모처럼의 연휴'니 등으로 부르는 남자들을 보면 분노를 넘어서 살의를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항상 참아야만 하는 것은 우리들 여성들이었죠. 그냥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칼질을 하는 것이 차라리 맘 편하기도 했습니다.

 

밖에서 남자들이 모여 티비를 보며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있군요.
이 칼을 들고 저 놈들의 등을 찔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생각을 고쳐 먹습니다.

결국 나만 감옥에 가서 고생을 할 짓을 내가 왜 합니까!

이번 추석엔 더이상 그들의 노예가 되지 않겠습니다.

전 사람들이 모이기 전에 그냥 집을 나갈 것입니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아무도 몰래 그냥 회피할 것입니다.

 

극장에 가 영화를 보거나 피씨방에 가서 게임도 해보고, 만화가게 가서 밤 늦도록 만화책 쌓아두고 볼 생각입니다.

핸드폰은? 물론 집에 두고 나와야죠.

지혼자 삐리리~ 울어대고 있을 핸드폰을 생각하니 벌써 고소해집니다.

 

하여간 이번 추석만큼은 지난 설날과 같이 보내진 않을 작정입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맘 속의 조선시대를 끝장내야겠다고 굳게 맘을 다져 먹습니다.
언니들의 많은 격려와 지지 부탁드립니다.

 

깨부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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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7 22:40 2004/09/27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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