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행정대집행을 막아주세요
평화가 무엇이냐 2011/07/22 22:34간절한 마음을 품고 제주 강정마을에 내려왔다.
85호 크레인에 가겠다고 집을 나선 내가 왜 강정마을로 오게 됐는지 곰곰히 생각해봤다.
아마 행정대집행을 할거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리라.
평택 대추리에 철조망이 쳐지고 아무도 들어갈수 없게 했던 그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2006년 5월 4일.
그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과는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한다.
전날 밤 대추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 하얗게 밤을 지새던 평택지킴이 천 명.
그리고 이튿날 새벽 황새울을 시커멓게 메우던 2만명의 군인과 경찰들.
그날 우리는 두들겨 맞고, 다치고, 부러지고, 피를 흘리고, 끌려가고, 기진맥진할 때까지 펑펑 울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던 그날의 기억은 내게도 트라우마로 남았는가 보다.
내 무의식에 꼭꼭 눌러놓았던 행정대집행의 기억이, 요 며칠 제주 강정마을에서 벌어지는 사태들을 보며 수면 위로 올라왔다.
'여명의 황새울'이라는 작전명으로 진행됐던 평택 대추리 황새울 들녘에 대한 행정대집행이라는 국가폭력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던 기억이었는데, 이제 다시 구럼비 해안가에서 그 학살이 벌어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강정마을로 방향을 틀었다.
오전에 구럼비 바위에 도착해 문정현 신부님도 만나고, 정영신 님도 만나고, 오두희 선배도 보고, 둥글이 감독과도 해후하고, 도둑괭이 혜원과는 멋들어진 노래를 부르고나서 여장을 풀었다.
마침 피스보트를 타고 250명의 사람들이 강정마을을 응원하기 위해 모였다.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이곳은 너무나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저 바다는 얼마나 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가.
차근차근 구럼비 바위를 둘러보았다.
지난 번에 왔을 때보다 물은 약간 더 차있었지만 그 생명력은 그대로였다.
거닐며 나는 흠뻑 취했다.
내 안에서 무엇인가 차올라왔다.
두리반 투쟁 막바지에 피기 시작한 독한 담배를 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사가 흘러나왔다.
서울에 있을 때는 단 한 줄도 써지지 않던 것들이 내 앞에 펼쳐진 저 아름다움 앞에서 그냥 말이 되어 나왔다.
나직하게 노래도 불러보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몇 시간 동안 축 늘어져 있었다.
그냥 평생 이대로 있어도 좋을 듯 싶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다.
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짧은 문자 메시지와 트위터 메시지들을 보내고나니 새삼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7월 초에 평화크루즈를 타고 내려왔다가 며칠 만에 서울로 돌아가면서 강정마을 사람들에게 꼭 다시 오겠다고 말했었는데, 사실 나는 언제 다시 내려올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만큼 상황이 복잡했었다.
나는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으로 가는 희망의 버스를 조직하고, 공연을 기획하고, 잡년행진을 준비하고, 밴드 활동을 하고, 명동 마리에 다니면서 미뤄둔 글도 쓰고 피자매연대 일도 해나가고 있던 차였다.
그러던 순간, 강정마을에 행정대집행이 준비된다는 소식을 듣고 머리가 멍해졌다.
2006년 황새울의 기억이 떠올라 잠을 설쳤다.
다시 친구들이 잡혀가는 악몽을 꿨다.
꿈에서 나는 겨우겨우 도망을 치고 있었다.
현실은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살아나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곳 구럼비 바위 사진전시관을 통째로 부숴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이곳을 잃는다는 것은 그냥 들려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건 완전한 박탈이고, 철저한 학살이다.
평화를 위협하는 해군기지 건설을 불법적으로 자행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 이 자본가 정부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주민들을 가두고, 중덕 해안가 출입을 막은 채 이 모든 생명들을 매장시키려고 한다.
평화를 짓밟으려고 육지로부터 경찰병력을 공수해오고 있단다.
이 구럼비 바위에 황새울을 유린해 간 폭력이 되풀이되선 안된다, 절대.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막을 것이다.
내 모든 힘을 끌어올려 이 살육을 막을 것이다.
7월 26일 화요일부터 저들은 구럼비 해안으로 통하는 모든 길을 막겠다고 한다.
그렇게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면 어느새 맹꽁이와 진흥나팔돌산호와 연수지맨드라미와 나팔고둥과 해송과 붉은발말똥게 등의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이 사는 이곳이 털리고 콘크리트로 메워질지도 모른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을 사람들이 보이지 않도록 도크 쪽으로 잡아당겨 사람들 눈에서 보이지 않도록 한 뒤 강제진압을 하겠다는 저들의 작전과 아주 똑같지 않은가!
그래서 모여야 한다.
희망버스를 타고, 희망보트를 타고, 희망자전거를 타고, 희망기차를 타고, 희망비행기를 타고 구럼비로 영도조선소로 모여야 한다. 알려야 한다. 힘을 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