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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여행 함께 갈 사람들과 만났는데, '각'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글을 쓰고 싶은데 잘 안된다고 했다. 문득 내가 쓰고 싶어졌다.
언제였더라... 민주노동당 정책위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식당에서 밥과 술을 먹다가 '각'이 바이칼호 얘기를 했다. 여럿이 있었는데 그 중 당시 제2정조위원장이었던 김변이 큰 돈 벌면 다함께 바이칼호 관광시켜준다고 했다. 가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아 '나도 갈래'라고 소리쳤지만 그런 날이 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2월초에 사직을 하니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조금씩 걱정되기도 하고 궁금해지기도 했다. 과연 난 뭘 하고 살까? 약 6년 동안 지친 건 몸뿐만이 아니라서 마음을 달래기에 바빴다. 내 안의 괴물을 알게 되니 무섭기도 하거니와 우울중과 불안증으로 하루가 괴로웠다. 앞으로 뭘 하든 당장은 나에게 좋은 건만 하고 살자 맘 먹었다.
소수의 사람들과만 접촉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 누군가 여행을 권했다. 꽤 긴 여행. 새로운 공간에서 익숙치 않은 사람들과의 만남, 그렇다고 너무 진지하면 감당하기 힘드니 적당한 깊이의 만남. 좋은 제안이라고 여겨졌다. 여행을 권한 사람이 괜찮은 프로그램이 있다면서 알아봐주겠다고 했다. 다만, 돈이 얼마 들지 몰라 어떨지 모르겠단다. 잘 알지는 모르지만 '피스 보트'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데 나처럼 연고 없는 사람이 참여하려면 1,500만원이나 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단다. 한달 정도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1,500만원이면 나한텐 지극히 사치스럽기도 하거니와 돈 만들 능력도 되지 않아 포기했다.
김이 새버린 처지일 때 '각'이 바이칼호 얘기를 다시 꺼냈다. 예전에 잠시 스치는 꿈만 꾸었던 바이칼. 상당히 구체적인 구상을 밝혔는데 그 동안 바이칼 여행을 실현하기 위해 이것 저것 많이도 알아보았나 보다. 기본 루트와 기간, 대략적인 예산. 이 정도면 여행을 맘 먹기에는 충분한 정보였다. 퇴직금을 받아내서 여기에도 쏟아 부어야 할테지만 난 떠나고 싶었다. 난 바이칼이 좋다기 보다는 여행이 필요했다.
많은 비용과 긴 시간의 여행에 대해 나는 짝꿍의 이해를 간곡히 구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난 나름대로 가고 싶다는 표현을 했는데 짝꿍은 여행을 가겠다는 결심을 통보받은 것으로 이해했다. 한편으로는 미안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한 문제다. 짝꿍은 내가 긴 여행을 가게 될 걸 여전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난 가야겠다. 기대에 부풀다가 정작 가서는 고생스러워도,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그 생경과 개성을 지닌 풍광을 보고 와야겠다. 사진에다가도 담아 와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삼아야겠다. 난 너무 더럽고 절망적인 것들과 살아왔고 조롱과 비난과 상처에 익숙해져 있다. 난 나와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깊이 느끼지 못하면 앞으로 무얼 하고 살아야 할지도 결심하지 못할 거다. 이건 죽음의 길이다. 아직까지는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니 파산과 함께 여행을 선택했다.
'각'이 제안한 컨셉은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이었다. 누군가의 여행기도 빌려주어 열심히 읽었다. 고생이 눈에 선하나 흥미롭다. '각'은 주변의 인물을 꼬셨다. 내가 알지 못하는 두 명을 더해 넷이 가자고 했다. 하나는 이제 유학을 결심한 듯하다. 이번 여행엔 함께 못하게 될 것 같다. 이번 일로 딱 두 번 만났음에도 아쉬웠다.
예산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불어났다. 지금도 불어나고 있다. 돈도 큰 문제라 고심하던 터에 환경재단의 'Green Asia 2006'이라는 공모 사업을 알게 되었다. 시민사회의 주제를 가지고 아시아 지역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제출하면 심사해서 한 팀에 500만원까지 지원하는 사업이다. 3주 고생해서 나름대로 솔직하고 괜찮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응모했는데 떨어졌다. 나름대로 시민사회 영역에서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들로 구성된 팀이 떨어진 것에 적지 않은 이들이 쪽팔린 일이라며 놀려대고 있단다. 우리는 그냥 내정자들이 있었던 걸로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정리했다. 더더욱 훌륭한 계획을 세웠더라도 채택되지 않았을 공모에 응한 게 어리석었다고. 이게 쪽팔린 거라고. 자존심이 상할 땐 남탓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각'의 애초의 제안과 달라진 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각'도 몰랐던 러시아의 물가 상승이었다. 즉, 대략 200만원 씩이면 꽤나 잘 먹고 놀겠다는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러시아는 여의도 물가란다. 또 하나는 여행 루트다. '각'은 중국의 베이징까지 들르길 원했지만 일정(이는 곧 돈)도 길어지고 체력에 자신없는 내가 몽골에서 끝내자고 했다. 하지만 여행이 주는 또 하나의 묘미는 계획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어찌 될 지 모르니 중국비자는 받아두고 몽골-한국 항공권은 구입하지 않기로 했다. 난 아마 못버티고 몽골에서 한국으로 날라올 것 같다.
며칠 전 여행자들끼리 만나서 날짜와 기본 루트를 만들어 보았다. 몽골 횡단열차의 운행 날짜를 알 수 없어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하루 차이 정도니 문제는 아니다.
[여행 일정(안)]
6/25(일) 인천 → 블라디보스토크(항공편)
6/26(월) 블라디보스토크 출발(시베리아 횡단열차)
6/27(화) 하바로브스크 도착
6/28(수) 하바로브스크 관광
6/29(목) 하바로브스크 출발(시베리아 횡단열차)
6/30(금) 열차 안에서
7/1(토) 이르쿠츠크 도착
7/2(일) 이르쿠츠크 관광
7/3(월) 리스트비얀카 등 바이칼호
7/4(화) 이르쿠츠크 → 알혼섬
7/5(수) 알혼섬 일주
7/6(목) 알혼섬 → 이르쿠츠크
7/7(금) 환바이칼열차
7/8(토) 울란바타르로 출발(시베리아 횡단열차+몽골 횡단열차)
7/9(일) 울란바타르 도착
7/10(월) 울란바타르 관광
7/11(화) ~ 14(금) 고비사막 여행
7/15(토) 울란바타르 근교 등
7/16(일) 울란바타르 → 인천(항공편) or 북경행 열차
7/17(월) ~ 몇 일간 여행. 북경에 있다면
자, 이제는 비자발급과 티켓, 숙박 예매를 해야 한다. 다들 열심히 알아보고 있다. 좋은 결과란 '싸고 좋은 상품'을 취하는 것이다. 정보가 많지 않으니 돈을 무지막지하게 아끼진 못할 것 같다. 이제 러시아어와 몽골어 공부도 해야 하고 여행 물품도 마련하고 할 게 많다. 이런 과정이 나에게 큰 재미를 주었으면 한다. 그게 나의 여행 목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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