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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토) 해 지기 전
파란꼬리가 퇴근하면 오후에 병원에 입원한 조카에게 문병 가기로 했다. 그래서 파란꼬리가 1시 쯤에 퇴근하기 전까지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맛 나는 밥을 짓자고 맘을 먹고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요즘 황사가 잦아서 창문을 열어도 되는지 날씨를 확인하려고 컴퓨터를 켰다.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진보네 블로그 한 바퀴 도는데 그놈의 예비군 녀석들 때문에 낚였다. 이 글 저 글 보면서 "웃겨, 정말" 하는 사이에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밥을 지어야 할 시간을 홀라당 날린 것이다. 예휴~.
그래도 청소와 빨래는 해치우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배를 굶주린 채 저 멀리 조카가 입원한 병원까진 못 가겠어서... 배가 너무 고파서 뭐 먹을까 돌아다니다 결국 파란꼬리가 말걸기한테 낚였다. 회전초밥집에 갔는데 꽤나 비싼대다가 세금까지 별도였다. 점심이 늦으니 왠만큼 먹어도 양이 안 차서 이것저것 냠냠.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가격 대비 효용은 떨어지는 식당이었다.
조카는 오래 입원해야 한다지만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어떤 세균에 감염이 되어서 그 놈들 잡는라 오래 입원해야 한단다. 목이 부어 있었지만 열은 없어서 그렇게 괴로울 것 같지는 않았다. 아동 병동 6인실 창가가 자리인데 전망 참 좋았다. 그런 곳에서 누나는 이 기회에 병실에 붙잡아 놓고 공부를 시키려고 하던데... 그냥 재미나게 놀지...
저녁은 부모님에게서 얻어 먹었다. 점심을 늦게 먹었으니 간단히 쌀국수를 먹었다. 점심만 제때 먹었으면 좀 쎈 거 얻어 먹는 건데... 점심과 저녁이 뒤집힌 느낌.
5월 31일(토) 해 질 무렵부터
말걸기와 파란꼬리가 처음으로 촛불 집회에 참석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시청으로 갔다. 간 이유는 하나다. 너무너무 궁금해서이다. 운동권 집회 같지 않다니 어떤가 싶었다. 8시가 좀 넘어서 도착했는데 날은 어두워지고 사람들이 많아서 어찌할까 난감했다.
우리는 궁금해서 나온 거니까 노는 샘 치고 여기저기 돌아댕기면서 아는 얼굴이나 찾아보자 했다. 역시 진보신당 칼라TV 스튜디오(?)에 가니 아는 얼굴 여럿 봤다. 잠깐 인사하고 이제는 아는 얼굴 찾아 행진 대열을 쫓았다. 서대문 방면과 소공동 방면으로 행진이 시작되었는데 어느 편을 따라갈까 하다가 다함께가 소공동 방면으로 가길래 서대문 방면으로 가기로 했다. 지도 받을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리 해야지.
서대문 방면으로 쫓아 가다가 아는 얼굴들과 또 인사. 아는 얼굴들은 찾아 인도로 빠르게 전진. 충정고가차도 진입하는 곳에서 서소문 사거리에 진입을 하지 못하도록 전경버스가 막고 있는 게 보였다. 행렬은 돌아가고 있었지만 우리는 행렬이 가는 길을 가로 질러 서소문 사거리로 바로 내려갔다. 전경버스가 기가막히게 주차되어 있었다. 예술이었다. 운전자가 앉아있길래 창문을 똑똑. "아저씨, 주차 하나 기차게 하시네요!"하면서 엄지 손가락을 번쩍 내밀어 줬더니 그 사람 웃는다. 칭찬받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서소문 사거리에서 서대문 사거리 중간에 전경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별로 수도 안되는데 쟤네들 왜 저기 저러고 있는지. 시위대가 그냥 생까고 지나가니까 막아서는데... 결국 시위대에 포위되더니 길을 열어주었다. 박수... 짝짝짝. 시위대가 참 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같으면 방패며 곤봉이며 하이바며 장비 다 빼앗았을 텐데... 이때 반가운 얼굴 또 보고.
이 전경들은 시위대를 앞지르려고 인도로 달리다시피 했는데 얼마만큼 가다가 시위대 허리를 자르려는 것이었다. 한 아주머니가 왼손에는 작은 개를 안고 오른손에는 조금 큰 개를 줄로 끌고 행진을 하고 있었는데 전경들이 이 아주머니는 살짝 밀친 모양이다. "야, 이 개새끼들아!" 아주머니는 전경들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나 보다...
행진 중에 예전에 민주노동당 지역에서 함께 활동했던 대학생을 만났다. 시위 현장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나온 모양이다. 또 반갑게 인사.
서대문로터리를 지나 독립문에서 우회전, 사직터널로 올라가는 길을 또 전경들이 막고 있었다. 통행하던 차량들과 전경버스가 엉켜서 틈이 있었고 그리로 시위대는 유유자적 지나갔다. 그곳에서 식판 두드리며 행진하는 사람들 몇을 봤는데 그 중 하나도 아는 얼굴. 재미나게도 행진한다.
차 한 대 없는 사직터널 안의 공기를 나쁘지 않았다. 평소 버스를 타고 지날 때마다 이곳을 걸어서 지난다는 건 미친짓이라 생각했는데... 사직터널을 지나고 나니 사직공원 앞을 전경들이 제대로 막고 있었다. 진보신당 깃발이 보였는데 그곳을 지나칠 때 또 반가운 얼굴 몇과 인사.
길이 막혀서 옆으로 돌아 사직동사무소 앞으로 갔다. 도로 위는 차로 가득해서 인도로 행진했다. 말걸기와 파란꼬리는 시위대에서 아는 얼굴 찾아보자고 행렬 뒷꽁무니부터 시작해서 열심히 앞으로 나섰는데... 결국 시위대 선봉(?)에 서게 되었고 결국 청운동사무소까지 갔다. 근데 우리 둘 뿐이었다...
한 블럭만 더 가면 청와대인데 들어갈 수 있는 골목을 죄다 전경들이 가로 막고 있어서 잠시 쉬다가 일산 가는 전철 막차 시간이 가까와지니 경복궁역 근처까지 내려왔다. 내려 오는 길에 한 오토바이샵 앞에 폭주족들이 모여 있는 걸 보았다. 거의 차가 다니지 않는 그 도로를 오토바이 한 대가 시범을 보였다. 뒤숭숭한 정국에도 할 일 하는 폭주족들...
전경들이 경복궁역 출구 코앞에서 역으로 들어가질 못하게 하고 있었다. 청와대 방향도 아니고 뭐냐... 인도 위에서 우리들은 스무명쯤 되는 전경들을 상대로 길 트라고 방패를 밀고 난리를 좀 폈다. 화가 난 건 아닌데 불편해 하라고 일부러...
혹시나 해서 효자동 입구로 갔는데 진보신당 서대문 깃발이 보이길래 옛동지 만나 잠깐 인사를 했다. 마포에서 온 아는 얼굴도 인사. 그 수많은 인파들 사이에서도 꽤 여럿 찾아 인사했다. 이 정도면 됐지.
막차 시간이 임박해서 전철 타고 집에 왔다. 근데 뉴스를 보니 우리가 자리를 뜬 얼마 후부터 경찰들이 물대포 쏘고 난리를 친 모양이다. 이거 운이 좋은 건지...
6월 1일(일)
휴일엔 정말 하는 일이 없다. 물론 말걸기는 평일에도 하는 일이 없이 보낼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란꼬리의 휴일은 말걸기의 휴일이 되어버린다. 히히.
일산으로 이사 온지 10개월이 지나서야 괜찮다는 과일가게를 하나 알게 되었다. 전화 주문으로 배달까지 해 주는데 수박과 키위를 주문했다. 수박, 고 녀석 꽤나 맛났다. 저렇게 큰 놈을 다 먹으려면 열심히 먹어야겠다. 화요일 쯤에 하루 세 끼를 수박으로 먹지나 않을지...
늦게 일어나서 간단히 먹고 책 조금 읽고 수박 시켜 먹고 잠시 쉬었더니 토요일에 해치우지 못한 산더미 같은 설거지가 압박했다. 설거지를 끝내야 저녁밥을 지어 먹을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열흘 전 쯤 25분만에 반찬 다섯 가지를 해 먹은 기억이 떠올랐다. 왠지 폼나는 휴일 저녁을 먹고 싶어졌다.
말걸기와 파란꼬리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반찬이 저녁상에 올랐다. 여섯 가지의 반찬을 말걸기 혼자서 새로 만들었고 있던 반찬 두 개까지 합쳐서 여덟 가지의 반찬을 교자상에 깔아 놓고 저녁을 먹었다. 오 예~. 이 정도면 만찬이다.
귀찮아서 레시피 검색도 안 하고 그냥 냉장고에 있던 재료에 양념 대충대충 넣고 만들었는데... 맛있다... 쩝쩝. 이 중 다섯은 아직 남아 있으니 월요일 아침 식사도 꽤 훌륭하겠다. 신나네.
TV를 켜면 촛불 집회 소식이 가장 많다. 경찰이 난리치기 직전까지 있던 집회를 다녀오고 나니 슬슬 열 받기 시작했다. 주중 저녁에는 일이 있으니 다음 토요일에 다시 나가볼까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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