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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리에 갔다가 누군가 퍼 온 글을 봤다.
나는 조문익씨가 누군지 몰랐다.
그래서 처음 교통사고 소식을 블로그에서 보았을 때, 내게 구체적인 개인과 얽힌 슬픔은 들지 않았다.
다만 처음 든 생각은 '아 또 교통사고인가? 빌어먹을 자동차!'였다.
나는 그 몇 달 전에도 교통사고로 숨진 어떤 활동가의 소식을 들었었고, 두 죽음이 겹쳐졌던 것이다.
도대체 어떤 사고였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었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묻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그냥 지나쳤었다.
그런데, 다음 글을 보고는 알게된 것이다.
그래, 그랬었구나... 결국 그런 것이었구나...
눈물이 울컥할 뻔 했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조심하라고 야단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조심하면 되는 그런 문제가 아닌 것이다.
도로를 달린 다는 것, 농촌에 산다는 것, 아니 그냥 이 사회에서 걸어가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위험인 것이다.
다들 정말 조심해서 걸어다니세요.
그리고 정말 다른 길, 다른 사회를 맘껏 걷고 달려 봐요.
너무 늦어버렸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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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산다는 것은 죽음이다
한겨레 | 왜냐면
그이의 죽음은 사람보다는 자동차만을 위한 길을 만들어낸 오랜 교통 및 도로정책, 개발정책의 소산일 따름이다. 또한 천대받고 무너져가는 농촌, 살고 싶지 않은 농촌을 여태껏 만들어낸 자본과 도시 중심 정책의 결과다.
그날 밤 그렇게 눈만 내리지 않았어도, 그리고 그가 걷던 길이 도시의 어느 인도 위이기만 했어도 그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폭설이 쏟아졌던 며칠 전, 그러니까 2월7일 밤, 우리 곁에서 밝게 빛나던 소중한 별 하나가 어이없이 스러졌다. 폭설이 쏟아진 전북 장수의 밤 9시15분께 일이었다.
종일토록 쉴 새 없이 눈이 쏟아졌고, 그이는 읍에서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폭설 때문에 자신의 차를 세워 두고 집 가까운 면소재지까지 버스를 이용해 온 뒤 1.5킬로미터 쯤 떨어진 자신의 집으로 걸어서 가던 중이었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고, 가로등과 갓길조차 없는 밤길에 미처 보행자를 발견하지 못한 제설차량에 치이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그이의 숨은 붙어 있었다 한다. 하지만 지나던 자가용을 세워 인근 도시인 남원까지 옮겼을 때는 평소보다 네 배나 걸린 무려 두 시간 뒤였다. 그즈음 이미 그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별다른 외상은 없었으나 파열된 내장에서 출혈이 지나쳐 숨을 거두어 버렸다.
그렇게 쉽게 보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그이는 이제 고작 43살이고 중학교에 입학할 아이와 아비 빈소에서 뛰노는 철없는 초등학생 아이를 남겨둔 채였다. 더구나 우리가 이토록 비통해하는 것은 그가 지난 20여년을 사회민주화와 노동운동에 곁눈질 없이 헌신했으며, 최근에는 주거를 도시에서 농촌으로 옮겨와 힘겨운 농촌에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으려 애쓰던 활동가였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 날도 지역농촌에 새로운 문화와 교육을 일구고자 폐교를 빌려 꾸려가던 ‘논실 마을학교’ 일로 군청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그이의 어처구니없고 갑작스런 죽음은 대단히 침통한 일이지만 사실은 예정된 일이기도 했다. 그이의 사고는 갑작스런 것이지만 농촌에서 그런 사고는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몇 해 전부터 도시를 등지고 시골에 살고 있고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는 차를 비킬 여지도 없는 1.5킬로미터의 길을 걸어 통학해야 하는 처지다.
농촌이 홀대받고 있다는 증거는 수도 없이 많지만, 교통사고 위험은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우선 안전한 보행로가 전혀 확보되어 있지 않다. 고속도로의 갓길처럼 자동차의 주행이 가능할 정도의 갓길을 시골에선 찾아볼 수 없기도 하지만 높낮이를 달리하거나 가드레일을 둘러놓은 보행자 전용도로는 아예 없다. 솜씨 좋은 운전자도 이동수단이 아예 없거나 운전능력을 가지지 못한 노인과 아이들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은 흔한 일이다. 더구나 안개가 심하게 꼈거나 폭우와 폭설이 심하게 내리는 날에는 보행자는 물론 경운기조차 발견하기 쉽지 않다. 누구든 희생자가 될 수 있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둘째, 도시였다면 그이는 불과 몇 분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졌을 것이었다. 그이가 사고를 당한 지점은 면소재지에서 1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구급차도 병원도 없었다. 말해 무엇하랴. 장수군내에는 단 한 개의 소아과도 산부인과와 정형외과도 없는 의료서비스의 사각지대인 것을. 비단 그곳만의 문제가 아니라 농촌 일반의 문제다.
셋째, 교통문제다. 그이가 일을 마치고 귀가를 위해 서둘러 버스 막차에 오른 시각은 겨우 9시도 되지 않은 때였고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걷다가 사고를 당한 시각은 9시를 조금 넘긴 때였다. 택시도 없었기에 그는 걸어야만 했다. 버스가 시간마다 자주 있지도 않고 버스에서 내려도 위험천만한 길을 한참 걸어야 하는 것이 시골의 교통현실이다.
당신이라면 이런 농촌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그이처럼 피할 길도 없는 캄캄한 밤길을 걸으며 쏟아지는 눈을 낭만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밤 아홉시만 되면 꼼짝없이 전화로 택시를 불러야만 귀가할 수 있고 병원에 가려면 인근도시까지 응급조치도 못한 채 통증을 참아내며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구급차를 기다릴 수 있겠는가. “걷는 것이 몸에 좋단다”라고 말하며 아이에게 학교까지 걷거나 자전거로 통학할 것을 권유할 수 있겠는가.
그이의 죽음은 사람보다는 자동차만을 위한 길을 만들어낸 오랜 교통 및 도로정책, 개발정책의 소산일 따름이다. 또한 천대받고 무너져가는 농촌, 살고 싶지 않은 농촌을 여태껏 만들어낸 자본과 도시 중심 정책의 결과다.
그런 사실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농촌을 살리고 농업에 희망을 불어넣자고 농민들 곁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갔던 그이는 그를 존경하고 사랑했던 수많은 노동자, 농민, 지인들의 환송을 받으며 짧았지만 굵은 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이의 빛나는 이름은 조문익 동지다. 희망을 잃은 이들 앞에서 늘 환하게 웃던 형, 잘 가세요. 그래도 노동과 농촌에 대한 희망을 거두지 않을 우리의 소중한 사람 ….
김영규/㈜ 풀무사람들 과장
기사등록 : 2006-02-13 오후 07: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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