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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본래 계획이 없었는데 학교에 일이 있어 갔다가 진 교수를 만나서 두 시간 정도 개별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내가 최근에 쓴 박현채 선생에 관련된 글을 가지고 토론을 하였다. 아직 정리가 되지는 않지만 몇 가지 메모를 남겨뒀다가 나중에 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1) 이론적 간결성. 글이 너무 깨끗하다. 긴장이나 모순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다. 이론적인 글이다. 한국의 역사적 사회의 구체성과의 관련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2) 박현채 선생 역시 사상가적 면모가 있다. 그 시대 지식인은 지금 우리와 지식방식이 달랐다. 그 방법은 무엇이었나? 박현채 선생의 긴장은 무엇인가. 공백은 무엇인가. 사상가의 사상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가 말하지 않은 것을 보아야 한다. 일종의 '정신분석'이다. 이를 꿰뚫어 봄으로써 그의 지식방식의 독특성을 추출할 수도 있다. 특히 문학의 경우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자들이 하듯이 이론중심적으로 접근하지 않기 때문에 일정하게 지식생산에서 탈식민주의를 이미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우리 세대 사회과학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서구적 이론틀로 현실을 인식하고 해석하기 때문에 역사사회의 구체성이 소실된다.
3) 박현채 뿐만 아니라 그 시기의 지식인들 또는 사상가들의 함께 토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일종의 '귀납법'으로 이 사상 학술의 방법과 특징을 추출할 수 있지 않은가. 누가 떠오르냐? 떠오르는 사람이 있냐?
처음에는 이렇게 박현채 선생의 사상에 대한 나의 글의 발전 가능성을 토론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것과 나의 개인적인 연구, 즉 박사논문의 방향과의 연관 가능성을 제기했다. 박현채를 다룬 나의 글은 아주 우연적인 것이었는데, 공교롭게 첫 번째 글이 되었다. 나는 5년 정도 한국과 거리를 두면서 기존에 동의했던 것고 동의하지 않았던 것들 모두를 다시 한번 상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대만에 대해서도 외부인으로서 동시에 5년 동안 일정한 이론적 경험적 인식을 함으로 인해 내부의 사람들과 다르게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접근하여 새로움을 읽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 둘을 나의 연구 안에서 결합할 것인가? 진 선생은 '차이'를 통한 비교 연구가 불가능하지 않다고 슬쩍 말을 건넸다.
한편, 백낙청 선생의 '분단체제론'을 진 교수가 나름 정력적으로 대만에 소개하고 일정한 토론을 가졌는데, 그에 대한 평가를 물어 보았다. 기본적으로 대만 내부에는 거의 반응이나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유일하게 제대로 응답을 한 사람은 손가 교수라고 한다. 물론 손가 교수는 대만의 내부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만의 통/독 구도의 형성 전후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하조' 잡지'를 통해서 할 수 있을까 라는 내 질문에 대해서도 진 교수는 그다지 확신은 없는데 한번 시작해 보란다. 나의 가설은 제3세계에서 본래 좌익 또는 민중운동의 사상은 민족적 인식과 민중적 인식이 결합되어 있었고, 이것이 일정한 계기를 통해서 분리되면서 현재와 같은 이원화를 낳았다는 것인데, 한국과 남한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의 민족운동과 민중운동의 분리 이전의 상황과 대만의 통독 구도 형성 이전의 상황이 어떠한 것인지 인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때는 대중운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수 지식인의 이론 및 사상적 운동에 얼만큼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인가. 대만은 문제가 훨씬 심각한데, 기본적으로 지식인 운동 조차도 존재하지 않았고, 개별 지식인의 신념 차원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처음 있었던 시도가 '하조'이고 3년 만에 폐간 되었기 때문에 과연 얼마만큼의 역사적 의미를 갖는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남한의 경우 1980년대의 대중운동이 있엇고, 이 운동과 사상 및 이론이 일정한 상호작용을 했기 때문에 적어도 가설적으로 궤적을 나누어 볼 수 있다. 물론 여전히 많은 부분이 묻혀있다. 개인적으로는 앞의 박현채 선생에 대한 토론과 관련하여 아래의 내용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길사 <사회와 사상>의 편집인
김진균(1937~2004) 사회학
고은(1933~ ) 시인
리영희(1929~2010) 매체
강만길(1933~ ) 역사학
박현채(1934~1995) 경제학
[임헌영(1941~ ) 문학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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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개념 및 이론)적 방향과 역사/문학적 방향 사이의 긴장을 안고 가자. 그러나 결국 니체 보다는 헤겔과 마르크스에 준거할 수 밖에 없다. 투박하게 말하자면 인문학 보다는 개명한 사회과학자가 나의 길인 것 같다. 물론 지금의 모양새는 인문학 안에서 개명한 사회과학을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역시 궁극적으로는 사회과학을 위한 것, 거기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다.藝術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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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적어도 2년 동안은 '지적 유희'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일정하게 구체적 현실을 직접 마주하지 않으면서, 또는 경직된 규범성을 가지고 현실을 대하여 얻게 되는 구체성과 생생함과 결여된 지식생산의 위험을 경계하면서, 이론 지적 작업에 있어서의 방법론적 고민을 해 온 것 같다. 이제 이를 끝내고 다시 구체적 현실 앞으로 돌아와야 할 것 같다.